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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2 16:00:57

아사다 마오

아사다 마오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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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 하계 올림픽
1908 1908 런던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엘사 렌슈미트 1920 1920 안트베르펀 파일:스웨덴 국기.svg 스비아 노렌
동계 올림픽
1회 1924 샤모니 파일:미국 국기.svg 비아트릭스 로프렌 <colbgcolor=#3c3b6e,#141425> 2회 1928 생모리츠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프릿지 버거
3회 1932 레이크플래시드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프릿지 버거 4회 1936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파일:영국 국기.svg 세실리아 콜레지
5회 1948 생모리츠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에바 파릭 6회 1952 오슬로 파일:미국 국기.svg 텐리 올브라이트
7회 1956 코르티나담페초 파일:미국 국기.svg 캐럴 하이스 8회 1960 스쿼밸리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샤우켜 데이크스트라
9회 1964 인스브루크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레진 하이저 10회 1968 그르노블 파일:동독 국기.svg 가브리엘 세이페르트
11회 1972 삿포로 파일:캐나다 국기.svg 카렌 마그누센 12회 1976 인스브루크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디아네 드 리우
13회 1980 레이크플래시드 파일:미국 국기.svg 린다 프래티아니 14회 1984 사라예보 파일:미국 국기.svg 로잘린 섬너스
15회 1988 캘거리 파일:캐나다 국기.svg 엘리자베스 맨리 16회 1992 알베르빌 파일:일본 국기.svg 이토 미도리
17회 1994 릴레함메르 파일:미국 국기.svg 낸시 케리건 18회 1998 나가노 파일:미국 국기.svg 미셸 콴
19회 2002 솔트레이크시티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20회 2006 토리노 파일:미국 국기.svg 사샤 코헨
21회 2010 밴쿠버 파일:일본 국기.svg 아사다 마오 22회 2014 소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연아
23회 2018 평창 파일:오륜기.svg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 24회 2022 베이징 파일:러시아 올림픽 위원회 기.svg 알렉산드라 트루소바
25회 2026 밀라노·
코르티나담페초
파일:국기.svg ? 26회 ? 파일:국기.svg ?
  • 1912년 올림픽에는 종목으로 추가되어있지 않았고, 1916년 올림픽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취소,
    1940년과 1944년 올림픽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취소됨.
  •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부터 동하계 올림픽 개최 주기가 2년마다 번갈아 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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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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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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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회(1906년) ~ 50회(1945년)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11회 1906 다보스 파일:영국 국기.svg 마지 시어스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12회 1907 빈 파일:영국 국기.svg 마지 시어스
13회 1908 트로파우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릴리 크론베르거 14회 1909 부다페스트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릴리 크론베르거
15회 1910 베를린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릴리 크론베르거 16회 1911 빈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릴리 크론베르거
17회 1912 다보스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오피가 본 메러이 호르바트 18회 1913 스톡홀름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오피가 본 메러이 호르바트
19회 1914 생모리츠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오피가 본 메러이 호르바트 20회 1915 취소WWI
21회 1916 취소WWI 22회 1917 취소WWI
23회 1918 취소WWI 24회 1919 취소WWI
25회 1920 취소WWI 26회 1921 취소WWI
27회 1922 스톡홀름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헤르마 스자보 28회 1923 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헤르마 스자보
29회 1924 맨체스터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헤르마 스자보 30회 1925 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헤르마 스자보
31회 1926 스톡홀름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헤르마 스자보 32회 1927 오슬로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33회 1928 런던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34회 1929 부다페스트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35회 1930 뉴욕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36회 1931 베를린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37회 1932 몬트리올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38회 1933 스톡홀름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39회 1934 오슬로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40회 1935 빈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41회 1936 파리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42회 1937 런던 파일:영국 국기.svg 세실리아 콜레지
43회 1938 스톡홀름 파일:영국 국기.svg 메건 테일러 44회 1939 프라하 파일:영국 국기.svg 메건 테일러
45회 1940 취소WWII 46회 1941 취소WWII
47회 1942 취소WWII 48회 1943 취소WWII
49회 1944 취소WWII 50회 1945 취소WWII }}}}}}}}}
51회(1946년) ~ 100회(1995년)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51회 1946 취소WWII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52회 1947 스톡홀름 파일:캐나다 자치령 국기(1921-1957).svg 바버라 앤 스콧
53회 1948 다보스 파일:캐나다 자치령 국기(1921-1957).svg 바버라 앤 스콧 54회 1949 파리 파일:체코 국기.svg 알레나 브르자뇨바
55회 1950 웸블리 파일:체코 국기.svg 알레나 브르자뇨바 56회 1951 밀라노 파일:영국 국기.svg 지네트 알트웨그
57회 1952 파리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자케린 두 비에프 58회 1953 다보스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텐리 올브라이트
59회 1954 오슬로 파일:독일 국기.svg 건디 부쉬 60회 1955 빈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텐리 올브라이트
61회 1956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캐럴 하이스 62회 1957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캐럴 하이스
63회 1958 파리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캐럴 하이스 64회 1959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캐럴 하이스
65회 1960 밴쿠버 파일:미국 국기(1959-1960).svg 캐럴 하이스 66회 1961 프라하 취소사베나 548 비행기 추락사건
67회 1962 프라하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샤우켜 데이크스트라 68회 1963 코르티나담페초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샤우켜 데이크스트라
69회 1964 도르트문트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샤우켜 데이크스트라 70회 1965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캐나다 국기.svg 페트라 버카
71회 1966 다보스 파일:미국 국기.svg 페기 플레밍 72회 1967 빈 파일:미국 국기.svg 페기 플레밍
73회 1968 제네바 파일:미국 국기.svg 페기 플레밍 74회 1969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동독 국기.svg 가브리엘 세이페르트
75회 1970 류블랴나 파일:동독 국기.svg 가브리엘 세이페르트 76회 1971 리옹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비아트릭스 슈바
77회 1972 캘거리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비아트릭스 슈바 78회 1973 브라티슬라바 파일:캐나다 국기.svg 카렌 마그누센
79회 1974 뮌헨 파일:동독 국기.svg 크리스틴 에라스 80회 1975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다이앤 더레이우
81회 1976 예테보리 파일:미국 국기.svg 도로시 해밀 82회 1977 도쿄 파일:미국 국기.svg 린다 프래티아니
83회 1978 오타와 파일:동독 국기.svg 아네트 푀치 84회 1979 빈 파일:미국 국기.svg 린다 프래티아니
85회 1980 도르트문트 파일:동독 국기.svg 아네트 푀치 86회 1981 하트퍼드 파일:스위스 국기.svg 데니스 비엘만
87회 1982 코펜하겐 파일:미국 국기.svg 일레인 자약 88회 1983 헬싱키 파일:미국 국기.svg 로잘린 섬너스
89회 1984 오타와 파일:동독 국기.svg 카타리나 비트 90회 1985 도쿄 파일:동독 국기.svg 카타리나 비트
91회 1986 제네바 파일:미국 국기.svg 데비 토머스 92회 1987 신시내티 파일:동독 국기.svg 카타리나 비트
93회 1988 부다페스트 파일:동독 국기.svg 카타리나 비트 94회 1989 파리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이토 미도리
95회 1990 핼리팩스 파일:미국 국기.svg 질 트레나리 96회 1991 뮌헨 파일:미국 국기.svg 크리스티 야마구치
97회 1992 오클랜드 파일:미국 국기.svg 크리스티 야마구치 98회 1993 프라하 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 옥사나 바이울
99회 1994 치바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사토 유카 100회 1995 버밍엄 파일:중국 국기.svg 천루 }}}}}}}}}
101회(1996년) ~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101회 1996 에드먼턴 파일:미국 국기.svg 미셸 콴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102회 1997 로잔 파일:미국 국기.svg 타라 리핀스키
103회 1998 미니애폴리스 파일:미국 국기.svg 미셸 콴 104회 1999 헬싱키 파일:러시아 국기.svg 마리아 부티르스카야
105회 2000 니스 파일:미국 국기.svg 미셸 콴 106회 2001 밴쿠버 파일:미국 국기.svg 미셸 콴
107회 2002 나가노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108회 2003 워싱턴 D.C. 파일:미국 국기.svg 미셸 콴
109회 2004 도르트문트 파일:일본 국기.svg 아라카와 시즈카 110회 2005 모스크바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111회 2006 캘거리 파일:미국 국기.svg 키미 마이즈너 112회 2007 도쿄 파일:일본 국기.svg 안도 미키
113회 2008 예테보리 파일:일본 국기.svg 아사다 마오 114회 2009 로스앤젤레스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연아
115회 2010 토리노 파일:일본 국기.svg 아사다 마오 116회 2011 모스크바 파일:일본 국기.svg 안도 미키
117회 2012 니스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카롤리나 코스트너 118회 2013 런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연아
119회 2014 사이타마 파일:일본 국기.svg 아사다 마오 120회 2015 상하이 파일:러시아 국기.svg 옐리자베타 툭타미셰바
121회 2016 보스턴 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 122회 2017 헬싱키 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
123회 2018 밀라노 파일:캐나다 국기.svg 케이틀린 오스먼드 124회 2019 사이타마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리나 자기토바
125회 2020 몬트리올 취소COVID-19 126회 2021 스톡홀름 파일:FSR.svg 안나 셰르바코바
127회 2022 몽펠리에 파일:일본 국기.svg 사카모토 카오리 128회 2023 사이타마 파일:일본 국기.svg 사카모토 카오리
129회 2024 몬트리올 파일:일본 국기.svg 사카모토 카오리 130회 2025 보스턴 파일:국기.svg ?
131회 2026 프라하 파일:국기.svg ? 132회 ? 파일:국기.sv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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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top:-8px;margin-bottom:-8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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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사대륙선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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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1회 1999 핼리팩스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 타티야나 말리니나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2회 2000 오사카 파일:미국 국기.svg 안젤라 니코디노프
3회 2001 솔트레이크 시티 파일:일본 국기.svg 스구리 후미에 4회 2002 전주 파일:미국 국기.svg 제니퍼 커크
5회 2003 베이징 파일:일본 국기.svg 스구리 후미에 6회 2004 해밀턴 파일:일본 국기.svg 오타 유키나
7회 2005 강릉 파일:일본 국기.svg 스구리 후미에 8회 2006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미국 국기.svg 케이티 테일러
9회 2007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미국 국기.svg 키미 마이즈너 10회 2008 고양 파일:일본 국기.svg 아사다 마오
11회 2009 밴쿠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연아 12회 2010 전주 파일:일본 국기.svg 아사다 마오
13회 2011 타이페이 파일:일본 국기.svg 안도 미키 14회 2012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미국 국기.svg 애슐리 와그너
15회 2013 오사카 파일:일본 국기.svg 아사다 마오 16회 2014 타이페이 파일:일본 국기.svg 무라카미 카나코
17회 2015 서울 파일:미국 국기.svg 폴리나 에드먼즈 18회 2016 타이페이 파일:일본 국기.svg 미야하라 사토코
19회 2017 강릉 파일:일본 국기.svg 미하라 마이 20회 2018 타이페이 파일:일본 국기.svg 사카모토 카오리
21회 2019 애너하임 파일:일본 국기.svg 키히라 리카 22회 2020 서울 파일:일본 국기.svg 키히라 리카
23회 2021 시드니 취소COVID-19 24회 2022 탈린 파일:일본 국기.svg 미하라 마이
25회 2023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해인 26회 2024 상하이 파일:일본 국기.svg 치바 모네
27회 2025 서울 파일:국기.svg ? 28회 ? 파일:국기.svg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35deg, #0885C2 20%, #FBB132 20%, #FBB132 40%, #000 40%, #000 60%, #1C8B3C 60%, #1C8B3C 80%, #ED334E 80%); font-size: 1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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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FFFFFF)"
{{{#!wiki style="margin-top:-8px;margin-bottom:-8px;"
<table bordercolor=#ffffff,#1f2023>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그랑프리 파이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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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 1회 1995-96 파리 파일:미국 국기.svg 미셸 콴 <colbgcolor=#3c3b6e,#141425> 2회 1996-97 해밀턴 파일:미국 국기.svg 타라 리핀스키
3회 1997-98 뮌헨 파일:미국 국기.svg 타라 리핀스키 4회 1998-99 상트페테르부르크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 타티야나 말리니나
5회 1999-00 리옹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6회 2000-01 도쿄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7회 2001-02 키치너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8회 2002-03 상트페테르부르크 파일:미국 국기.svg 사샤 코헨
9회 2003-04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일본 국기.svg 스구리 후미에 10회 2004-05 베이징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11회 2005-06 도쿄 파일:일본 국기.svg 아사다 마오 12회 2006-07 상트페테르부르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연아
13회 2007-08 토리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연아 14회 2008-09 고양 파일:일본 국기.svg 아사다 마오
15회 2009-10 도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연아 16회 2010-11 베이징 파일:미국 국기.svg 알리사 시즈니
17회 2011-12 퀘벡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카롤리나 코스트너 18회 2012-13 소치 파일:일본 국기.svg 아사다 마오
19회 2013-14 후쿠오카 파일:일본 국기.svg 아사다 마오 20회 2014-15 바르셀로나 파일:러시아 국기.svg 옐리자베타 툭타미셰바
21회 2015-16 바르셀로나 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 22회 2016-17 마르세유 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
23회 2017-18 나고야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리나 자기토바 24회 2018-19 밴쿠버 파일:일본 국기.svg 키히라 리카
25회 2019-20 토리노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료나 코스토르나야 26회 2020-21 베이징 취소COVID-19
27회 2021-22 오사카 취소COVID-19 28회 2022-23 토리노 파일:일본 국기.svg 미하라 마이
29회 2023-24 베이징 파일:일본 국기.svg 사카모토 카오리 30회 2024-25 오를레앙 파일:국기.svg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35deg, #0885C2 20%, #FBB132 20%, #FBB132 40%, #000 40%, #000 60%, #1C8B3C 60%, #1C8B3C 80%, #ED334E 80%); font-size: 1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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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top:-8px;margin-bottom:-8px;"
<tablebordercolor=#fff,#1f2023>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주니어 세계선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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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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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회(1976년) ~ 50회(20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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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1회 1976 므제브 파일:미국 국기.svg 수지 브래셔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2회 1977 므제브 파일:캐나다 국기.svg 캐롤린 스코젠
3회 1978 므제브 파일:미국 국기.svg 질 쇼어 4회 1979 아우크스부르크 파일:미국 국기.svg 일레인 자약
5회 1980 므제브 파일:미국 국기.svg 로잘린 섬너스 6회 1981 런던 파일:미국 국기.svg 티파니 친
7회 1982 오버스트도르프 파일:동독 국기.svg 자니아 버스 8회 1983 사라예보 파일:동독 국기.svg 시몬 코흐
9회 1984 삿포로 파일:동독 국기.svg 카린 헨드슈케 10회 1985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소련 국기.svg 타티아나 안드리바
11회 1986 사라예보 파일:소련 국기.svg 나탈리아 고르벤코 12회 1987 키치너 파일:미국 국기.svg 신디 보츠
13회 1988 브리즈번 파일:미국 국기.svg 크리스티 야마구치 14회 1989 사라예보 파일:미국 국기.svg 제시카 밀스
15회 1990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일본 국기.svg 사토 유카 16회 1991 부다페스트 파일:프랑스 국기.svg 수리야 보날리
17회 1992 헐 파일:프랑스 국기.svg 라에티티아 허벌트 18회 1993 서울 파일:일본 국기.svg 코이와이 쿠미코
19회 1994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미국 국기.svg 미셸 콴 20회 1995 부다페스트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21회 1996 브리즈번 파일:러시아 국기.svg 옐레나 이바노바 22회 1997 서울 파일:미국 국기.svg 시드니 보겔
23회 1998 세인트 존 파일:러시아 국기.svg 율리아 솔다토바 24회 1999 자그레브 파일:러시아 국기.svg 다리아 티모셴코
25회 2000 오버스트도르프 파일:미국 국기.svg 제니퍼 커크 26회 2001 소피아 파일:러시아 국기.svg 크리스티나 오블라소바
27회 2002 하마르 파일:미국 국기.svg 앤 패트리스 맥도너 28회 2003 오스트라바 파일:일본 국기.svg 오타 유키나
29회 2004 헤이그 파일:일본 국기.svg 안도 미키 30회 2005 키치너 파일:일본 국기.svg 아사다 마오
31회 2006 류블랴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연아 32회 2007 오버스트도르프 파일:미국 국기.svg 캐럴라인 장
33회 2008 소피아 파일:미국 국기.svg 레이첼 플랫 34회 2009 소피아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료나 레오노바
35회 2010 헤이그 파일:일본 국기.svg 무라카미 카나코 36회 2011 강릉 파일:러시아 국기.svg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37회 2012 민스크 파일:러시아 국기.svg 율리아 리프니츠카야 38회 2013 밀라노 파일:러시아 국기.svg 옐레나 라디오노바
39회 2014 소피아 파일:러시아 국기.svg 옐레나 라디오노바 40회 2015 탈린 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
41회 2016 데브레첸 파일:일본 국기.svg 혼다 마린 42회 2017 타이베이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리나 자기토바
43회 2018 소피아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산드라 트루소바 44회 2019 자그레브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산드라 트루소바
45회 2020 탈린 파일:러시아 국기.svg 카밀라 발리예바 46회 2021 하얼빈 취소COVID-19
47회 2022 탈린 파일:미국 국기.svg 이사보 레비토 48회 2023 캘거리 파일:일본 국기.svg 시마다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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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회(202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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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1회 1997-98 로잔 파일:러시아 국기.svg 율리아 솔다토바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2회 1998-99 디트로이트 파일:러시아 국기.svg 빅토리아 볼츠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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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1934-35년) ~ 50회(1978-7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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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6회 1934-35 도쿄 이나다 이츠코
7회 1935-36 도쿄 토고 타마코 8회 1936-37 도쿄 이나다 이츠코
9회 1937-38 도쿄 이나다 이츠코 10회 1938-39 도쿄 이나다 이츠코
11회 1939-40 도쿄 이나다 이츠코 12회 1940-41 도쿄 이나다 이츠코
13회 1941-42 취소WWII 14회 1942-43 취소WWII
15회 1943-44 취소WWII 16회 1944-45 취소WWII
17회 1945-46 취소WWII 18회 1946-47 하치노헤 츠키오카 요시코
19회 1947-48 모리오카 니와 요시코 20회 1948-49 스와 취소
21회 1949-50 토마코마이 ? 22회 1950-51 닛코 이나다 이츠코
23회 1951-52 도쿄 ? 24회 1952-53 도쿄 츠키오카 요시코
25회 1953-54 오사카 야마시타 츠야코 26회 1954-55 도쿄 야마시타 츠야코
27회 1955-56 쿄토 우에노 준코 28회 1956-57 도쿄 우에노 준코
29회 1957-58 도쿄 우에노 준코 30회 1958-59 오사카 우에노 준코
31회 1959-60 도쿄 후쿠하라 미와 32회 1960-61 도쿄 우에노 준코
33회 1961-62 오사카 후쿠하라 미와 34회 1962-63 도쿄 후쿠하라 미와
35회 1963-64 도쿄 후쿠하라 미와 36회 1964-65 오사카 후쿠하라 미와
37회 1965-66 토마코마이 후쿠하라 미와 38회 1966-67 도쿄 오카와 쿠미코
39회 1967-68 도쿄 오카와 쿠미코 40회 1968-69 도쿄 야마시타 카즈미
41회 1969-70 오사카 야마시타 카즈미 42회 1970-71 도쿄 야마시타 카즈미
43회 1971-72 삿포로 야마시타 카즈미 44회 1972-73 오사카 와타나베 에미
45회 1973-74 교토 와타나베 에미 46회 1974-75 히로시마 와타나베 에미
47회 1975-76 도쿄 와타나베 에미 48회 1976-77 도쿄 와타나베 에미
49회 1977-78 교토 와타나베 에미 50회 1978-79 도쿄 와타나베 에미 }}}}}}}}}
51회(1979-8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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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51회 1979-80 도쿄 와타나베 에미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52회 1980-81 도쿄 코바야시 레이코
53회 1981-82 도쿄 요시다 마리코 54회 1982-83 도쿄 오자와 주리
55회 1983-84 도쿄 카토 마사코 56회 1984-85 도쿄 이토 미도리
57회 1985-86 도쿄 이토 미도리 58회 1986-87 도쿄 이토 미도리
59회 1987-88 도쿄 이토 미도리 60회 1988-89 도쿄 이토 미도리
61회 1989-90 기타큐슈 이토 미도리 62회 1990-91 요코하마 이토 미도리
63회 1991-92 고베 이토 미도리 64회 1992-93 나고야 사토 유카
65회 1993-94 요코하마 사토 유카 66회 1994-95 고베 요코야 하나에
67회 1995-96 요코하마 이토 미도리 68회 1996-97 나가노 스구리 후미에
69회 1997-98 고베 아라카와 시즈카 70회 1998-99 요코하마 아라카와 시즈카
71회 1999-00 후쿠오카 시나 치사토 72회 2000-01 나가노 스구리 후미에
73회 2001-02 오사카 스구리 후미에 74회 2002-03 교토 스구리 후미에
75회 2003-04 나가노 안도 미키 76회 2004-05 요코하마 안도 미키
77회 2005-06 도쿄 스구리 후미에 78회 2006-07 나고야 아사다 마오
79회 2007-08 카도마 아사다 마오 80회 2008-09 나가노 아사다 마오
81회 2009-10 카도마 아사다 마오 82회 2010-11 나가노 안도 미키
83회 2011-12 카도마 아사다 마오 84회 2012-13 삿포로 아사다 마오
85회 2013-14 사이타마 스즈키 아키코 86회 2014-15 나가노 미야하라 사토코
87회 2015-16 삿포로 미야하라 사토코 88회 2016-17 오사카 미야하라 사토코
89회 2017-18 도쿄 미야하라 사토코 90회 2018-19 오사카 사카모토 카오리
91회 2019-20 도쿄 키히라 리카 92회 2020-21 나가노 키히라 리카
93회 2021-22 사이타마 사카모토 카오리 94회 2022-23 카도마 사카모토 카오리
95회 2023-24 ? 96회 2024-25 ? }}}}}}}}}
피겨 스케이팅 내셔널 역대 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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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닛케이 로고.svg
닛케이 엔터테인먼트 파워랭킹 1위
아야세 하루카
2013년
아사다 마오
2014년
아라시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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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b0000><colcolor=#fff> 아사다 마오
浅田 真央 | Mao Asada
파일:아사다 마오 밴쿠버 은메달.jpg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은메달 획득 당시
본명 아사다 마오 ([ruby(浅田, ruby=あさだ)] [ruby(真央, ruby=まお)])
Mao Asada
출생 1990년 9월 25일 ([age(1990-09-25)]세)
아이치현 나고야시 메이토구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학력 추쿄대학 (체육학 / 학사)
종목 피겨 스케이팅
신체 163cm, B형
가족 아버지[1], 언니 아사다 마이
은퇴 2017년 4월 10일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3. 평가
3.1. 총평3.2. 점프
3.2.1. 트리플 악셀 점프3.2.2. 그 외 점프
3.3. 스핀3.4. 스파이럴3.5. 엣지 컨트롤3.6. 표현력
4. 논란5. 여담
5.1. 기타5.2. 개인사5.3. 2와의 인연5.4. 표정 관리5.5. 김연아와의 라이벌 구도
5.5.1. 전적
5.6. 악성 팬덤

[clearfix]

1. 개요

일본의 前 여자 싱글 피겨 스케이팅 선수.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다.

2. 선수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아사다 마오/선수 경력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평가

3.1. 총평

김연아, 카롤리나 코스트너와 함께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여자 싱글 피겨 스케이팅을 이끌어왔다. 4~5살 때 피겨 스케이팅을 시작하여 굉장히 빠른 시기인 2000년에 트리플 점프를 랜딩해낸 것으로 보이며, 2002년 11~12살에 트리플 5종 점프를 완성했다.[2] 여담으로 에테리 투트베리제 코치는 아사다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트리플 악셀을 제외한 다른 트리플 점프들의 컨시가 좋다는 것과 가벼운 몸에서 나오는 빠른 회전력이 장점이지만, 점프의 퀄리티가 정말 심각했다. 시니어 선수들과 경쟁해도 될 정도로 무서운 등장을 했던 주니어 시절에는 가벼운 몸으로 트리플 악셀과 3+3 콤비네이션 점프를 팡팡 뛰었으나, 시니어 데뷔 후 고질적인 회전수 부족에 시달리게 되었고 결국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열린 2009-10 시즌까지 트리플 악셀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할 정도로 트리플 악셀의 성공률을 높이는데만 몰두하는 바람에 다른 점프에 투자하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본인이 가장 잘 뛰는 점프인 더블 악셀을 제외한 모든 점프의 안정성이 크게 흔들리고 말았다. 이 점이 아사다 마오의 선수 생활에서 발목을 잡았다. 마오측에서도 이점을 인식했는지 밴쿠버 이후 두 시즌간 부진을 각오하고 점프 교정을 한 덕에 점프의 전반적인 질이 한결 나아졌다. 엣지 문제는 고치기가 어려워서 계속 플러츠를 구사하긴 하였지만, 두 시즌을 전부 점프 교정에 갈아넣으며 점프를 전반적으로 전부 뜯어고친 덕에 하이킥이라든지 토픽 사용 등은 상당히 나아졌다.

일본 여자 싱글 선수 중엔 경력이 매우 좋은 편이지만, 전성기가 긴 편은 아니었다. 시니어로 올라온 후 김연아가 부상에 시달리던 2007-08 시즌까지는 김연아의 유일한 대항마로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김연아가 부상에서 자유로워지기 시작한 2008-09 시즌부터는 김연아한테 밀린다는 평이 대다수였다.[4] 하지만 전성기 시절의 아사다를 보면 확실히 당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라는 것이 실감나는데, 2006-07 시즌에는 트리플 악셀 앞에 스텝+트랜지션을 넣어오는가 하면[5], 2008-09 그랑프리 파이널 프리 스케이팅에서는 2번의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키며 우승했다. 또한 슬럼프를 깨고 전성기의 폼을 되찾아가던 2012-13 시즌에는 출전한 6개의 대회에서 5개의 금메달과 1개의 동메달을 획득했다.

사실상 서양의 전유물인 피겨 스케이팅을 김연아와 함께 아시아에 알리는데 공헌한 공신이다. 김연아와 아사다의 실력이 워낙 압도적이기도 했지만, 안도 미키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던 아시아에서 갑자기 김연아와 함께 등장한 점도 있고, 이 둘이 등장만으로 끝나지 않고 양대 산맥을 만들어갔다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실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도 이 둘이 금메달과 은메달을 휩쓸어간 것에 시선이 집중되었고 꾸준히 평균 이상의 성적을 내던 일본 여자 피겨계를 강국으로 만들었다. 아사다가 은퇴한 이후에는 미야하라 사토코, 사카모토 카오리, 키히라 리카가 뒤를 이어가고 있다.

3.2. 점프

3.2.1. 트리플 악셀 점프

3A[6] 3A[7]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시즌까지 마오의 점프는 '가볍고 부드러움'이 강점이었는데, 본인의 가벼운 신체의 특성을 살려 빠른 속도로 회전을 해 회전수를 채우는 전략을 구사했다. 하지만 2008-09 시즌 부터 여성 선수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신체 변화를 겪으며 체형이 여성스러워 졌는데, 그 여파로 인해 '가볍고 빠른' 점프를 구사하지 못하게 되어 회전수 부족에 시달리게 되었다. 밴쿠버 시즌 이전까지 심한 프리로테이션(비비기), 토 계열 점프의 블레이드화(엣지를 눌러서 뛰는 현상) 등으로 지적 받았으나 이후 두 시즌에 걸쳐 점프 교정을 하면서 토를 정확하게 찍으려 노력하고, 엣지 컨트롤 실력을 향상시키는 등, 점프의 퀄리티를 향상시켜왔다. 그리고 불굴의 의지로 은퇴 직전 끝끝내 인엣지로 뛰던 러츠를 아웃엣지로 교정하는데 성공하였고, 본인도 연륜이 쌓이고 나서는 러츠를 뛸때 엣지가 잘못된게 느껴지거나 악셀에서 뭔가 삐끗했다는 느낌이 들면 회전을 바로 풀어서 부상을 줄이는 센스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피겨 종목의 특성상 20대 초반을 넘기면서 도약력이 감소할 수 밖에 없었고, 전성기(2006~08) 때 처럼 연결 트리플 룹이나 트리플 악셀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기는 어려워졌다.

그러나 결과만 놓고 봤을 때는 트리플 악셀이 아사다의 발목을 잡았던 것은 아닌가 하는 비판도 있으며, 이로 인해 얻은 감점도 매우 많았다. 사실 지금까지 트리플 악셀을 할 줄 알았던 여성 선수들이 모두 우승을 했던 것도 아니었다.[8] 오히려 트리플 악셀에 매달리면서 다른 기량 향상이 늦어졌다는 평가도 있었다. 주니어 시절보다 신장과 몸무게가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트리플 악셀을 뛰기 위해 살인적인 다이어트를 해야 했고 그 결과 점프를 뛰는데 원동력이 되는 근육을 잃게 되어서 가장 필요한 점프력이 늘지 않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지적도 있었다. 실제로 연결 트리플 토룹이 충분한 회전수가 나오지 않아 결정적으로 트리플+트리플을 못뛰게 되는 불상사가 생겼고, 트리플 러츠의 고질적인 엣지문제와 감점, 트리플 살코가 상대적으로 굉장히 약해 잦은 실수를 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9] 트리플 악셀에 대한 집착에 비해 다른 점프들의 문제가 전혀 개선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냥 만화를 많이봐서 그런지 '김연아를 이기기 위해선 필살기가 꼭 필요해' 라는 일본 내의 만화적 여론들이 아주 높았다.[10] 특히 일본의 피겨 중계진들은 아사다 마오가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킬 때마다 '트리플 악셀! 트리플 악셀이 꽂혔다! 라는 식으로 무슨 격투기 중계를 방불케 하는 중계로 일본 내에서도 악평이 자자한 편이었다.[11]

본인 역시 트리플 악셀을 쉽사리 포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트리플 악셀에만 목을 매지 않고 다른 구성을 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는 평을 팬들로부터 받기도 했다. 김연아의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룹에 러츠보다 높은 악셀을 해야 한다는 일본 언론의 강박이었다. 그러나 트리플러츠-트리플토룹에 맞서 러츠에서 한단계 낮춰 플립을 뛰더라도 토룹을 본인이 잘하는 룹으로 높였으면 해볼만 했을 지도 모른다.[12] 그러나 2008-09 시즌부터는 트리플 플립-트리플 룹 컴비네이션 점프에서 뒤의 트리플 룹의 회전수를 채우지 못했다. 본래 연결 점프로서의 트리플 룹은 오른 다리(혹은 왼다리) 하나의 힘으로만 도약해야 하기 때문에 트리플 토룹보다 회전수 채우기가 더 힘들다. 다운그레이드에 추가감점까지 받으면 5~7점대의 점수밖에 나오질 않으니 마오 입장에선 트리플 악셀을 안 뛸 수가 없는 딜레마에 처한 셈이다. 어차피 기초점만 받아도 8~9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트리플 토룹-트리플 토룹을 뛰는 편이 자약룰이나 성공률을 고려했을 때 나은 선택이었지만 2009-10 시즌에 연습하다가 실전에서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실제로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아라카와 시즈카는 '많은 사람들이 아사다 마오를 점퍼로, 김연아를 연기파로 생각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김연아가 점퍼고 아사다 마오가 연기파다. 어째서 연기력이 장점인 선수에게 그리도 트리플 악셀을 강요하는지 모르겠다' 라고 평가하기도 했다.[13] 사실 기술과 예술 모두에서 김연아가 우세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며, 올림픽 2연패를 기록한 독일의 카타리나 비트는 밴쿠버 올림픽 직후 "두 사람은 라이벌이라고 보기 어렵다. 라이벌은 어느 정도 비슷한 실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번 올림픽은 차이가 너무 난다. 두 사람이 라이벌로 불린다면, 아마 상업적인 이유 때문일 것이다."라고 평했다. 일본 매스컴에서[14] 워낙 '아사다 마오=트리플 악셀'이라는 공식이 박혀 있다 보니, 은퇴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트리플 악셀에게 한 마디 건낸다면 뭐라고 하시겠어요?"라는 개드립을 치는 바람에 상당한 비난을 받았다.[15]

3.2.2. 그 외 점프

러츠는 롱엣지였다. 이는 초기 코치의 탓도 있다. 아사다 마오의 점프를 가르친 코치에게서 배운 선수들은 모두 롱엣지의 러츠를 구사한다. 타티야나 타라소바도 다 망해가는 아사다의 러츠를 뜯어고치려 노력했고, 실제로 교정이 어느 정도 되기도 했다. 아사다가 깊지는 않지만 얕게라도 아웃 엣지로 도약하는 메커니즘을 통해 점프를 뛰기 시작한 것이다. 2008-09 시즌 맞이를 위해 이 교정 작업을 계속 단행했으나, 정작 실전에서의 러츠 성공률이 처참해지는 바람에 끝까지 끌고 가지를 못했다.

안도 미키의 경우 플립 엣지를 교정하면서 러츠의 성공률까지 떨어져가며 교정했고, 교정의 여파로 인해 허벅지 근육 파열을 당하면서 2008년 세계선수권에서 프리스케이팅 도중 기권했었다.

마오 역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끝난 후 실제로도 교정을 시도했고, 실제로 인엣지로 뛰던 러츠를 중립 엣지로 뛰는 등 어느 정도 교정에 성공했지만, 성공률에 문제가 생겨 포기했다. 은퇴 경기가 된 2016 전일본선수권 프리 스케이팅에서, 정석의 깊은 아웃 엣지는 아니지만 처음으로 얕은 아웃 엣지의 러츠를 성공하긴 했다. 반면 살코 역시 상대적으로 좋지 못했으며, 도약 자세가 좋지는 못했지만 2013-14 시즌부터 성공률이 좋아졌다. 그 외 트리플 플립은 정말 말을 잇지 못할 정도의 수준 낮은 퀄리티를 보여줬으나 교정을 통해 상당히 좋아졌다.
토 계열 점프의 퀄리티는 다소 아쉽지만, 이와 별개로 트리플 룹은 꽤 좋은 퀄리티를 가지고 있다. 가장 자신있고 좋아하는 점프 역시 룹이었고, 전성기 시절에는 트리플 플립 - 트리플 룹의 콤비네이션을 시도하기도 했다. 더블 악셀도 교과서 수준의 도약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어 비거리와 회전, 랜딩 스피드 모두 뛰어나다.

일부 팬들은 "마오가 차라리 트리플 악셀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트리플 플립 - 트리플 룹과 같은 3-3 컴비네이션의 성공률과 완성도를 키웠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었다.

3.3. 스핀

유연성이 아주 뛰어났었다. 덕분에 다양한 포지션을 구사할 수 있었으며, 은퇴 할 때 까지도 비엘만 포지션을 구사할 수 있었다. 특히, 비엘만 스핀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까지 한 손으로 구사하기도 하였다. 시니어 초창기 때에는 엣지 체인지 등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레벨을 챙기지 못하는 일이 잦았으나,[16] 점프 교정을 통해 엣지 컨트롤 실력이 향상되고 근력이 증가하면서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다. 2013-14 시즌 이후 나이가 듦에 따라 고난도 점프를 구사하지 못하게 되었으나 스핀과 스텝, 스파이럴 등의 비점프에서 훌륭한 수행을 보이며 어느 정도 기술 점수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마저도 마지막 시즌에는 잦은 실수가 나오며 스핀에 강하다는 말이 무색해졌다. 여러모로 마지막 시즌에 기술적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만 것이다.

3.4. 스파이럴

상체 유연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포지션의 스파이럴을 구사했다. 속도가 빨라야만 좋은 자세가 나오는 스파이럴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느릿하다는 혹평이 무색하게 무척이나 고난도의 유연성을 요구하는 스파이럴 동작을 선보이며 최고의 GOE 점수를 얻었다. 김연아가 주로 아라베스크 - 비엘만 스파이럴, Y 스파이럴을 빠른 속도와 깊은 엣지로 수행하여 레벨과 GOE를 받아갔다면, 마오는 상당한 유연성이 필요한 캐리건 스파이럴, 펜 스파이럴 등을 바탕으로 점수를 가져간다. 스파이럴의 속도가 느린 것과 깊은 엣지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지적되는 사항이 있는데, 속도 지적은 김연아, 나카노 유카리, 카롤리나 코스트너 등 당시 여자 싱글 스케이터들의 속도가 너무 빠른 탓도 있었지만 여자 싱글 탑 피겨 스케이터에 들기 위한 속도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비교를 당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허나, 그렇다 하더라도 유연성을 기반으로 보여준 포지션은 아주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려 국내의 SBS 해설진도 마오의 한 손 비엘만 스파이럴의 포지션을 칭찬한 바 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엣지가 깊지 못하고 중립엣지를 사용한 스파이럴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며, 이는 스파이럴 시퀀스의 주요 평가항목중 하나인 엣지 사용에 못 미치는 부분이었다. 스파이럴 시퀀스의 레벨을 높이기 위해서는 상체 자세를 바꾸며 엣지를 확실한 인에서 아웃으로, 혹은 아웃에서 인으로 바꿔야 하는데, 마오의 스파이럴 엣지는 그러지 못했다. 대신 마오는 굉장한 상하체 유연성으로 이를 커버했기에 스파이럴 시퀀스가 없어질 때까지 이 요소에서는 충분히 많은 GOE를 받아가곤 했다. 스파이럴 시퀀스가 단지 유연성과 예술성을 보고자 하는 요소가 아니고 선수의 엣지 컨트롤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였기 때문에 엣지사용이 좋지 못했던 마오는 다른 선수들과 비교를 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3.5. 엣지 컨트롤

스텝에서는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왔다. 김연아의 형용할 수 없는 정확한 스텝과 카롤리나 코스트너의 힘이 넘치고 아주 시원한 스텝과는 또 다른 마오만의 엣지컨트롤과 빠른 턴의 조합들은 마오 프로그램의 클라이막스를 꾸미는데 자주 활용되어 왔다. 스텝의 구성엔 트위즐이 4~5번 이상이 들어갔고 브라켓 등 어려운 턴이 많이 들어간다. 트위즐이 지나치게 많다는 일부 비판도 있지만, 애초에 스텝 시퀀스는 레벨 요건을 충족한 이상 음악과의 조화, 선수의 특성을 고려하여 자유롭게 짜는 것이므로 정답은 없다. 다만 12-13 시즌 전까지는 깊은 엣지 사용을 하지 못했다. 대표적인 마오의 약점이 바로 룹턴. [17] 마오는 발목 힘이 좋은 선수였음에도 룹턴 궤적을 제대로 그리지 못해 궤적이 중간에 끊기거나 선수 본인이 중심을 잃어 룹턴을 엉성하게 하는 경우가 유독 많았다. 그 이외의 요소에서는 탑급 선수의 모습을 보여줬다. 마오의 스텝 시퀀스가 엄청 빠르진 않지만 경쾌하며 그녀만의 오밀조밀한 느낌이 돋보이는 이유는 트위즐의 장점을 잘 살려낸 유연성에 있었다. 가장 호평은 스텝 시퀀스는 2014년 소치 올림픽 프리에서의 스텝 시퀀스. 휘몰아치는 음악에 맞춘 경쾌한 트위즐과 상체의 사용 등이 잘 어우러진 안무라는 평이 많다.

3.6. 표현력

주니어 시절에는 귀엽고 순수한 외모를 바탕으로 서정적인 노래에 맞춰 발랄한 연기를 선보였고, 시니어에 올라가게 되며 여러 시도를 했다. 2008년부터는 체형에 변화가 와 선이 고와졌고, 이는 스텝에서 그대로 강점이 되었다. 마오의 빠르고 복잡한 트위즐에 한 층 아름다워진 선이 더해져 예술적인 부분에서 큰 성장을 이루었다. 다만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프리 스케이팅에서 선보인 경기는 마오가 열정적인 경기를 펼쳤지만 노래를 지배하지 못했단 평가가 많았다. 그렇지만 선수 생활 후반에는 표현력에서 많이 발전했다는 평을 많이 받았다.

4. 논란

양 팬들의 갈등의 정점을 찍은 것은 2008 세계선수권이다. 이 대회가 양 선수의 팬들 사이에서 갈등이 가장 극심했는데(이후 국내에서 아사다 마오 팬이 많이 줄었다.) 이 대회에서 아사다는 1위로 우승했지만 대회 결과는 금-은-동메달 총점이 1점씩밖에 차이나지 않았던 전설적인 대회였다. 이 대회의 판정 논란에는 카롤리나 코스트너도 깊이 관련이 되어 있다는 말이 있었고 코스트너의 평가도 국내에서 나빠졌다.[18] 김연아 팬들의 주장은 아사다 마오는 프리에서 트리플 악셀 시도 중 넘어졌는데 그 후 약 15초 동안 안무를 수행하지 않고 활주만 했다. 문제는 10초 이상 안무가 없을 경우 감점을 받는다는 규정이 있지만 이것이 아사다 마오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에 아사다 마오 팬들의 주장은 이렇다. 비록 트리플 악셀은 넘어졌고 김연아가 3-3을 1번 뛰었지만 마오는 3-3을 2번 뛰었으며 그 중 하나는 김연아와 같은 점프, 또 하나는 더 고난도의 점프이다. 트리플 악셀을 뺀 다른 점프들의 점수가 김연아의 총점보다 높다고 주장했는데, 여기에는 모순이 있다. 마오가 김연아보다 어려운 3-3을 한번 더 뛰었으나, 후속 트리플 룹이 회전수 부족으로 다운 판정을 받아 더블 룹의 기초점을 받았으므로 3-3이 아닌 3-2를 뛴 것으로 처리된다. 김연아는 마오와 같은 3-3을 뛰었고 더블 악셀-트리플 토룹 컴비네이션 점프도 뛰어 인정받았기 때문에 오히려 김연아가 마오보다 더 고난도의 점프를 한번 더 뛴 것이 사실이다. 또한 당시 마오의 점프 총점이 김연아보다 높다고 주장하는데 겨우 0.19점 높은데, 피겨 스케이팅은 점프 이외에 비점프 요소가 존재하고 가산점까지 합쳐서 기술점수가 결정된다. 오히려 최종 기술점은 김연아가 마오보다 2.93점이 높았다. 또한 '아사다 마오가 트리플 악셀을 뛰러 가다가 넘어지고 활주만 20초 넘게 하고도 감점 없이 금메달을 따갔다' 는 주장을 듣기로는 마치 아사다 마오가 빙판에서 자빠링하고 활주 정도 겨우 하다가 파워 편파판정으로 금메달을 따간 것처럼 묘사되어 있는데 실제 경기 장면을 보면 넘어진지 약 3초만에 일어나 활주만 10초 하다가 다시 경기를 수행했다. 넘어진 뒤 수행들은 훌륭한 편이다.

ISU 규정집에는 11초부터 20초 간 연기가 중단될 경우 감점 1점, 21초부터 30초간 연기가 중단될 경우 감점 2점을 받는다는 규정이 있다.[19] 이 규정은 각종 사고로 인해 정말로 연기가 일정시간 '중단' 되었을 경우 적용되는 것으로 보아야 타당하다. 따라서 3초 만에 일어나 활주를 시작한 마오의 경기에 연기 중단 규정이 해당된다고 보기 힘들다. 연기 중단에 따른 감점이 사용된 사례는 다음 각주 참조 요망.[20]

하지만 김연아의 팬들이 2008 세계선수권을 편파판정이라고 하는 이유는 위에 나온 감점 문제만이 아니다. 저 경우에 감점이 잘 되지 않는다는 건 대부분 알고 있던 부분이었으나 더 문제였던 건 프로그램 구성점이다. 프로그램 구성점수는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인상과 스케이팅 기술, 기술 사이 전환, 안무에 관련된 점수인데 일반적으로 탑 선수인 경우 어느 정도 점수대가 형성되고 아무리 실수가 많아도 보통 그 점수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21] 대표적인 예가 2009 로스텔레콤 컵이었는데, 이 경기에서 아사다는 쇼트와 프리를 둘다 망쳐 시니어 데뷔 이후 처음으로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에 실패했으나 구성점은 모두 1등이었다. 다른 예로는 2009 세계선수권카롤리나 코스트너가 있다. 이 경기 프리에서 코스트너는 제대로 뛴 점프는 거의 없고 대부분 싱글 처리해 프리 스케이팅 순위는 15위였으나, 구성점은 6위였다.[22]게다가 시즌이 진행되면서 후반으로 갈수록 증가하는 패턴을 매년 보여서 시즌 막바지인 올림픽 또는 세계선수권에서는 구성점이 굉장히 높게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연아의 프리 스케이팅 경기를 보면 넘어진 것도 아니라 점프 하나를 싱글로 처리한 것과 트리플 살코 점프에서 약간의 감점을 받은 것 이외에는 스텝 레벨 3, 스파이럴 시퀀스와 스핀은 모두 레벨 4를 받으며 우수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그러나 직전 경기인 그랑프리 파이널보다 구성점이 2.5점 가까이 하락했다. 심지어 그랑프리 파이널 프리에선 트리플 룹 점프에서 넘어졌는데도 말이다. 구성점이 전체적으로 상승하는 시즌 막바지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탑 선수가 크게 문제 없는 경기를 마치고도 구성점이 이처럼 하락한 일은 거의 없다.[23] 게다가 구성점 2.5점은 굉장히 큰 차이라서 올리기도 꽤나 쉽지 않고 탑 선수 중에서는 경기를 완전히 망쳐도 이와 같은 하락은 많지 않다는 것을 비춰봤을 때 애매한 판정이다. 위에 아사다의 감점이 아니라 구성점 항목에서라도 제대로 된 판정이 되었다면 메달색이 바뀔 수 있었다. 당시에 관중들 사이에서 야유도 나올 정도였다. 점수 공개 이후 부상으로 팅팅 부은 김연아가 보인 허탈한 표정 때문에 김연아 팬들에게는 금지영상이다. 대부분의 팬들도 이 사건이 아사다 측이나 일본 측의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권이 피겨계에서 두드러지면서 유럽 심사위원들이 위기감을 느껴 유럽 선수 밀어주기를 위해 김연아의 구성점을 낮추고 카롤리나 코스트너를 은메달로 만들어주었다는 의견이 더 강하다. 그 사이에서 아사다는 어부지리 혜택을 입은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 의견은 나름대로 신빙성이 있는 것이 유럽 심사위원이 저지로 다수 포함된 경기에서는 구성점 장난이나 적은 점수 차로 줄세우기가 굉장히 심했다. 정리하면 이때나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이나 유럽 텃세 때문에 두 선수의 명승부가 빛을 바랜 것이다.

미셸 콴의 코치 경력이 있던 라파엘 아르투니안 코치를 영입해서 시니어 초기를 같이 보냈다. 둘의 결별에 대해서 한국에서는 점프 교정에 대한 의견에 대한 불화로 헤어졌다고 알려져있으나 그렇지 않다. 오히려 라파엘은 마오가 빙판에서 구르는 모습을 보기 싫다며 다른 점프로도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고 인터뷰를 하였다. 라파엘 코치는 집요하고 무시무시한 일본의 대중들과 언론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미국에서 훈련하고 싶어했지만, 아사다 마오는 어머니의 건강과 자신의 훈련 스타일상 일본을 벗어나기를 싫어했다.(당시 코치는 어머니의 건강 소식을 몰랐다.) 결국 훈련지에 선정에 대한 의견의 차이가 둘의 결별을 야기했다.

2006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김연아에게 큰 점수차로 졌던 그때부터 점프 교정의 필요성은 늘 아사다 마오를 따라다녔다. 올림픽 시즌을 책임졌던 타티야나 타라소바 코치는 기술 코치가 아니었고 올림픽을 1년 앞둔 시점에서 점프들을 모두 교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결국 그 해결책이 된 게 엄청난 다이어트였는데, 올림픽 당시 아사다 마오의 체지방률이 놀랍게도 7%였다. 이 쯤 되면 많이 심각한 수준인데, 남성 중에서도 극도의 몸 만들기를 통해 대회에 참가하는 보디빌더 중에서도 일부만이 체지방률 7% 수준이다. 남성보다 체지방이 일반적으로 훨씬 많은 여성이 7%의 체지방률을 가진 몸을 만들었다는 건, 운동선수 생활을 떠나 일생의 건강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일이다.[24] 원래 근육은 지방보다 더 무게가 나가는데 근육을 길러 점프를 뛰는 것이 최선이지만 어떻게든 몸을 가볍게 만들어야 하는 아사다 마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일본 최고의 피겨 스케이팅 코치로 거명되는 야마다 마치코의 제자들은 모두 이 이슈에 대해서 어느정도 할 말이 있다. 아사다 마오를 길렀던 야마다 마치코 코치는 트리플 러츠에 대한 개념이 전무하다! 그녀의 옛 제자이자 일본 피겨 스케이팅의 시작이며 트리플 악셀을 여자 싱글 최초로 뛰었던 이토 미도리조차 플러츠였다. 그 외에도 야마다 코치의 제자들은 전부 플러츠다.[25] 심지어 야마다 코치가 직접 쓴 피겨 점프에 대한 책에서조차 트리플 러츠를 플러츠로 설명하고 있다. 사실 여성 피겨에서 플러츠 등의 치팅 점프는 너무 만연화되어 있어서 김연아 이전까지는 알고도 넘어가는 측면이 있었다.

2007-08 시즌부터 강화된 에지 규정으로 플러츠나 립에 감점이 매겨지지만[26] 감점당하는 선수들은 그때도 지금도 별로 없는 건 이 때문이다. 물론 아사다 마오가 플러츠로 다른 선수보다 유독 심한 비난을 받게 된 것은 언론의 탓도 아주 크다. 언론에서 라이벌 구도로 붙인 김연아가 워낙 피겨 역사에서는 전무후무한 교과서 점프를 구사하다 보니[27] 당연히 비교가 되고 NBC와 일본의 방송에서 아예 대놓고 두 선수를 비교한 탓에 아사다 마오가 플러츠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팬들이 보기에는 그렇게 배운 것도 문제가 아니냐고 지적하겠지만, 아무튼 본인 입장에서는 정말 억울한 셈이다.

코치인 타티야나 타라소바는 지병 때문에 일본으로 갈 수 없어서 아사다 마오에게 러시아로 와서 훈련할 것을 권유했지만 그녀는 일본에 있는 것을 선택하는 바람에 코치와 따로 떨어져서 연습을 했다고 한다. 화상으로 코치를 받았다고 한다. 타라소바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술 문제에 대해 지적받자 자신이 케어하는 것은 예술력과 표현력 부분으로 기술적인 측면은 선수 본인이 완성시켜야 한다며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알렉세이 야구딘일리야 쿨릭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타라소바 코치는 기술적으로 상당 부분 완성된 선수들에게 화룡점정의 한 점을 찍어주는 듯한 케이스가 많았다.

한편 타라소바 코치는 러시아에 머물면서 러시아의 꼬꼬마 3인방[28]으로 불리는 차세대 주니어 선수들을 육성한 것으로 보인다. 소문에는 아사다 마오 선수를 가르치고 받은 수임료로 그 선수들을 무료로 가르쳤다는 말까지 있다.

5. 여담

5.1. 기타

W : Thank you, Billy. I did my best to win.
M : You became the silver medalist today. Is this your first Olympic medal?.
W : Right. I hoped to win the gold medal, but it ended up this way.
M : Could you tell us about your performance tonight?
W : Although I did successfully complete a triple axel twice, I'm not satisfied.
M : You've proven you're the queen of the triple axel, but your body looked too stiff a couple times.
W : I don't know what went wrong. After the two jumps, I felt a tremendous tension. It's a pity.
M : This Olympics will over soon. What will you do next?
W : I don't know. I don't want to think about anything now. ||<bgcolor=#ffffff,#2d2f34>남: 축하해. 너의 오늘 밤 퍼포먼스는 정말 좋았어!
여: 고마워, 빌리. 나는 메달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
남: 너는 오늘의 은메달리스트가 됐잖아. 이건 너의 첫 올림픽 메달이지?
여: 맞아. 나는 금메달을 얻고 싶었지만, 이미 끝났어.
남: 너의 오늘 밤 공연에 대해 우리한테 좀 말해줄래?
여: 나는 성공적으로 2번의 트리플 악셀을 해냈지만, 만족하질 못하겠어.
남: 넌 이미 증명된 거야. 너는 트리플 악셀의 여왕이라고. 하지만 너의 몸이 2번 다 좀 많이 뻣뻣해 보였어.
여: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어. 2번의 점프를 한 다음, 난 너무 불안했어. 안타까워.
남: 이 올림픽은 곧 끝날 거야. 다음에 너는 뭐 할 거야?
여: 나도 모르겠어.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가 않네.||

5.2. 개인사

5.3. 2와의 인연

사실 아사다 마오는 2보다는 1이 어울리는 선수다. 아시아 선수 최초로 세계선수권에서 3회 우승했으며 전 피겨 역사 최초로 6개 그랑프리 대회에서 모두 우승[36]하는 등 1위, 최초와 관련한 기록들도 많이 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콩라인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동시대에 선수 활동한 김연아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이며 2인자로 남았기 때문이다. 아사다 마오는 김연아보다 많은 대회를 나가며 김연아보다 많은 우승횟수를 기록했지만 우승확률은 훨씬 떨어진다.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시상대에 오른 김연아와 달리 메달권 밖으로 밀려난 대회가 많아 김연아만큼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둘의 상대전적 역시 김연아가 월등하게 앞섰다.

무엇보다 아사다 마오가 2인자로 남은 결정적인 요인은 선수 인생에서 가장 큰 대회인 2번의 올림픽에서 김연아에게 2번 모두 패한 것이다. 아사다 마오는 2010년과 2014년 2번의 올림픽에서 총 4번의 프로그램을 수행했고 그중 2번은 큰 실수 없이 마쳤음에도 김연아보다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37] 특히 2010 밴쿠버 올림픽에서 아사다 마오와 숫자 2의 인연은 놀라운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2와 관련된 것을 적으면 다음과 같다.

결국 프리 스케이팅에서 131.72라는 무서운 점수[38]를 기록했지만 김연아의 150.06이라는 지구멸망급 점수[39]에 밀려 23.06이라는 점수차로 2위를 함으로서 또다시 콩라인, 콩사다(or 황사다) 마오가 되어버렸다. 위키백과에서 홍진호를 치면 아사다 마오가 콩라인 항목에 나올 정도였다.

그래도 한국에서 시청률은 김연아보다 높게 나왔다. 김연아의 경기는 너무 떨려서 못 본 사람이 많을 정도였다.

사족으로 조 추첨 전 일본 방송에서는 유명한 점쟁이가 나와 2010 밴쿠버 올림픽에서 아사다 마오가 조 추첨시 3번째를 뽑으면 운이 좋다고 예언했다. 그런데 정작 3이란 숫자를 얻은 건 김연아였다.

5.4. 표정 관리

한일 양국의 자존심 구도가 되어버린 탓인지 한국 내에서는 아사다 마오의 굴욕짤이 퍼진 적이 있었는데, 주로 연기하는 중 반동으로 일그러진 표정이 주로 쓰이곤 했다. 사실 피겨 스케이팅이라는 종목이 원래부터 육체적인 충격도 만만치 않은지라 남자 선수들도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다수에서 일어나는 현상[40]이지만, 표정 연기도 중요한 종목 특성상 비판의 대상이었고, 유독 아사다 마오는 자주 발견되는 편이었다. 주로 트리플 악셀을 뛸 때 굴욕짤이 자주 잡히는 편이었는데 사실 아사다 마오는 트리플 악셀을 뛸 때 정석으로 뛰지 않고 미리 반바퀴 얼음 위에서 비빈 다음 뛰는 일종의 치팅을 많이 썼는데 이 치팅 기술을 쓰는 과정에서 머리에 힘주면서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이다. 머리에 힘을 너무 준 나머지 일그러진 표정들이 자주 잡혔던 것이었다.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제법 유명했는데, 경기에서 김연아에게 밀릴 때마다 언론사 및 지상파에서까지 굴욕 사진을 인용한 적도 있었고 멀쩡히 연기하는 김연아와 대조하는 게 참으로 걸작이다. 거기다 일본의 개그맨 마스야 키톤이 방송에서 아사다 마오로 분장을 하면서 표정까지 따라하는 개그를 선보이는 바람에 웃음거리가 되어버린 적도 있었는데, 마오 팬덤에서는 들끓어오르고 소송까지 진행되는 사태도 있었다. 일본에서도 부정적인 반응이 더 많았다.[41]

5.5. 김연아와의 라이벌 구도

이 짤을 보면 된다. 2006년 이후로 아사다 마오와 김연아의 위상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한-일 양국 피겨의 에이스이자 두 나라의 특수한 관계, 둘 다 1990년 9월생[42]에 집안의 차녀라는 공통점 때문에, 김연아라이벌로 엮이며 양국의 언론 및 일반팬들에게 모두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일본 역시 아사다의 라이벌로 김연아에게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수준을 넘어, 거의 자국 선수급으로 방송에서 줄기차게 언급하고 있다. 애초부터 피겨 스케이팅에 무지한 대한민국 언론보다 일본 언론에서 먼저 김연아를 주목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라이벌 구도는 이미 전설이 되었다. 한일전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라이벌 구도가 더욱 흥했고, 순정만화 유리가면기타지마 마야히메가와 아유미로 빗대어 vs놀이를 하면서 비교떡밥으로 설정하기도 했다. 척박한 환경에서 천재적인 재능으로 우뚝 일어선 김연아, 그리고 어릴 때부터 주목받으면서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 아사다 마오의 대결 구도가 <유리가면>의 설정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연아는 이미 주니어 시절부터 유명한 선수였고, 아사다 마오도 알려진 만큼 가정 환경이 좋지는 않았다고 한다. 스타크래프트의 임진록, 축구의 메호대전, 드래곤볼의 카카로트베지터의 라이벌 구도로 빗대어서 표현하는 경우도 많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김연아의 라이벌로 주니어 시절을 포함한 소싯적에는 넘버원 아사다 마오와 그에 도전하는 김연아라는 인상이 강했으나, 점차 역전되어 2009년 이후에는 항상 김연아에게 밀리는 콩라인이 되어버렸다.[43]

다만 의외로 두 선수의 쟁쟁한 대결은 많지 않은 편인데, 주니어 1시즌은 마오가 월등하게 우세했고, 2시즌의 경우 마오는 주로 시니어에서 활동했던 터라 김연아와 경쟁이 많지 않았다. 시니어로 올라와서는 0708시즌까지 김연아가 부상으로 고전했고, 그 이후는 거의 압도적인 우세를 범하면서 라이벌 관계라고 보기 어려워졌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경기를 앞두고 피겨 스케이팅의 레전드 카타리나 비트김연아와 아사다 마오는 라이벌 관계라고 보기 어렵다. 라이벌은 어느 정도 수준이 비슷해야 하는데, 두 사람은 수준 차이가 너무 난다. 둘 사이에 라이벌 구도가 있다면 이는 아마 상업적인 이유 때문일 것이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라이벌 구도가 흥행할 당시 일본에서 내세우던 구도는 '밝고 씩씩한 주인공 타입인 마오'와 '차가우며 시크한 라이벌[44]인 김연아' 라는 만화에서 가끔씩 볼 수 있는 그런 타입이었다. 피겨를 다룬 일본 라노베 은반 컬라이더 스코프에서도 비슷한 구도가 나온다. 당시 일본에서 바란 스토리는 '실력은 뛰어나지만 인간미 없는 라이벌을 재능과 노력으로 이기는 주인공' 같은 느낌이겠지만 둘의 라이벌 구도는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흥미롭게 다루었다.

사실, 김연아와의 관계 이전에도 안도 미키와 묶여서 쿼드 점프의 미키티 vs 트리플 악셀의 미라클 마오로 언론에서 애칭도 지어주는 등 언론공세가 강했다. 다만, 안도 미키가 올림픽을 말아먹은 시점에서 김연아가 뛰어오르며 이 라이벌 구조는 대한민국의 김연아 vs 일본의 아사다 마오로 계승되었다.

외모나 실력 면에서도 자국 내 인지도가 높아서 CF도 여러 개 찍는 등 일본 내에서의 위치는 김연아와 비슷한 스포츠 소녀 스타다. 일본이 대한민국보다 피겨 스케이팅 문화가 더 확산되어 있고 아사다 마오 이전에 일본에 피겨 붐을 일으킨 이토 미도리의 가장 큰 후계자로 평가받으며 일찌감치 유명세를 누렸다.

외모나 성격도 언론이 요구하는 '천진하고 귀여운 천재 소녀' 틀에 가까웠고 기량도 뛰어났으니 띄워서 팔기에도 딱 좋은 컨텐츠였던 셈이다. 언론이 띄우면 붐으로 이어지는 일본 특성답게 '미라클 마오' 로 불리며 일본의 국민 여동생적인 입지를 차지했으나 그와 동시에 광적인 팬들의 지나친 열광으로 눈살을 사게 되었다. 속칭 '마오타(마오 오타쿠)' 가 그것이다. 마오를 제외한 다른 피겨 선수들은 마구 깎아내린다든지 마오만 추켜세운다든지 하는 광신도적인 태도로 일본은 물론 해외 팬들에게까지 눈총을 샀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김연아와는 어려서부터 같이 대회에서 만나곤 했기 때문에 사적으로는 굉장히 친한 사이였고 두 사람의 어머니도 상당히 친해서 놀러도 많이 가고 했다고 한다. 둘의 사이가 정확히 틀어진 시기가 미묘한 편인데, '종달새의 비상' 다큐멘터리를 보면 이미 그 당시 서로 정면에서 마주쳐도 인사도 안 하는 상황이었다.[45] 하지만 정작 두 선수의 어머니들은 반갑게 인사했다. 실제로 김연아의 모친이자 올댓스포츠의 대표이사인 박미희 씨가 본인의 자서전에서 아사다 마오의 모친과는 같은 입장에 있기 때문에 서로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어서 부둥켜 안고 운 적도 있다고 언급했다.

15세 쯤부터 '아사다 마오가 김연아에게 처음으로 패배한 이후 아는 척을 안 했다' 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 이후에도 둘은 같이 사진도 찍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많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서로를 싫어하는 극성팬들 때문에 그리고 경기에 집중하다 보니 아무래도 예전 만큼 좋은 사이가 아닌 것이 분명하긴 했다. 사실, 이를 김연아도 일본 언론에서 시인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심각할 정도로 사이가 안 좋은 것이 아니고, 아무래도 경쟁구도 때문인지 다른 선수들보다 조금 더 거리감이 있는 편이다. 그러나 둘을 붙여놓기를 좋아하는 언론 때문에 "서로가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었다." 라는 인터뷰는 요즘에도 종종 나온다. 당장 김연아 항목 평가 문단의 넘버원 잡지에서 언급한 아사다 마오의 인터뷰만 보더라도 "마음 속으로는 언제나 연아를 이기는 것이 목표였다." 고 했다.

2008 사대륙선수권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에서는 아사다 마오에 대해 우호적인 반응이 많았었다. 그러나 같은 해에 치러진 세계선수권에서 석연찮은 판정으로 아사다 마오가 금메달을 손에 쥔 이후부터 여러모로 미움받기 시작했으며 그 이후에 일본 선수들의 연습 방해 사건 등이 수면 위에 오르면서 완전히 미움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2008-09 시즌부터 김연아가 확실한 우위를 점하게 되자, 그 이후부터는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물론,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대한민국 팬들도 아사다 마오를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대놓고 밀어주는 것 같은 일본의 뒷배경을 더 싫어할 뿐이다. 사실,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일본인 피겨 스케이팅 선수 1위는 아사다 마오이기도 하며[46] 실제로 팬클럽의 회원들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또 결정적으로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논란이 터지면서 소트니코바에게로 증오의 감정이 다 옮겨갔다. 오랫동안 보면서 미운정 고운정 든 아사다 마오를 보다 시원찮은 뉴비가 갑자기 등장해서 홈그라운드 버프를 받고 금메달을 가져가는 꼴을 보니 아사다 마오 역시 김연아와 같은 피해자라는 인식이 생긴 것이다. 이건 아사다 마오 팬이거나 라이트 팬 한정이고, 한국 피겨 팬들은 큰 관심이 없었다. 애초에 마오는 쇼트부터 말아먹으면서[47] 이미 메달권 경쟁과도 멀어졌기 때문에 판정과 큰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프리 6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전 코치 타라소바 덕에 갈라쇼까지 출전했기 때문에 실보다는 득을 더 본 편이다. 편파판정으로 금메달을 강탈당한 김연아와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

5.5.1. 전적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을 포함한 김연아와의 최종 전적은 주니어를 포함하면 16전 6승 10패, 시니어만 본다면 13전 4승 9패이다. 둘의 맞대결 중 두 선수의 승자가 우승한 적은 주니어 포함 16회 중 13회다. 시니어만으로는 13회 중 10회. 2007-08시즌 전까지는 퐁당퐁당으로 정말 라이벌 같았다면, 김연아의 컨디션이 좀 나아지고 점프들이 본격적으로 안정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2008-09 시즌 이후로는 실질적으로 김연아가 리드하여 9번의 경기 중 아사다 마오가 이긴 것은 2번에 지나지 않는다.

8년 동안 한 경기에서 두 선수를 한번에 이겨본 선수는 안도 미키아델리나 소트니코바다.[48]

그러니까 근 10년을 김연아랑 아사다 마오가 다 해먹었다.

총 전적에서 김연아에게 밀리며 가장 권위 있는 대회인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대회에서의 전적도 3승 5패로 열세이다.

카롤리나 코스트너와의 전적은 6승 4패로 근소 우세다. 참고로 김연아의 대 카롤리나 코스트너 전적은 13승 1패다.[49]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이후 연마카 트로이카 전쟁은 김연아>아사다 마오>카롤리나 코스트너의 결과로 끝이 났다고 보는 게 중론이다.

쇼트와 프리를 구분해서 보면 아사다 마오 기준 총 전적 11승 21패, 시니어 기준 7승 19패다.

5.6. 악성 팬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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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머니는 2011년 사망했다.[2] 퀄리티 자체는 좋지 않은 관계로, 완성시킨 것에 의의를 두는 것이 좋다. 뛰어난 퀄리티로 트리플 5종을 완성한 김연아와 비교되기도 하고 현재는 초등학교 저학년 나이대 선수들도 트리플 점프를 뛰어서 더욱 비교되지만, 2002년 당시 12살의 소녀가 3-3 컴비네이션 점프를 뛰는 것은 대단한 점이었다. 더군다나 아사다가 주니어 데뷔를 할 땐 시니어에 3+3은 커녕 3+2도 제대로 뛰는 선수 하나 없었다. 이래도 이해가 안된다면, 알렉산드라 트루소바의 데뷔 당시 피겨계의 반응을 생각하면 편하다.[3] 또한 코스트너는 공중 회전수를 다 채운 후에도 나이+신체 조건 때문에 발목이 약해 랜딩을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 아사다 마오와 반대의 특징을 갖는다고 덧붙였다.[4] 실제로 2008-09 시즌 이후 2008-09 그랑프리 파이널2010 세계선수권을 제외하고 모두 전패했다.[5] 다만, 06-07 시즌 프리 차르다시 프로그램에서 스탭을 복잡하게 넣은 후 구사했던 트리플 악셀은 대부분 회전부족이거나 투풋 랜딩인 경우가 허다했다. 대표적으로, 2007 세계선수권 프리 경기에서 인엣지와 아웃엣지를 번갈아 가며 스탭을 밟다가 시도한 경기 초반 첫 트리플 악셀은 명백한 두발 랜딩에 회전수 부족이었다. 당시 해당 경기의 일본 방송 해설을 맡은 2006 토리노 올림픽 챔피언 아라카와 시즈카도 이를 바로 알아채고 해설 도중 '약간 두발로 착지한 것 같네요.' 라며 대놓고 지적했을 정도.[6] 2008 사대륙선수권[7] 2015 컵 오브 차이나[8] 어떻게 보면 트악의 저주인 것으로 보인다. 토냐 하딩도 그렇고 이토 미도리도 1989 세계선수권이나 몇몇 그랑프리 시리즈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챔피언 대접을 못 받았다. 특히 토냐 하딩의 경우 탁월한 기술력을 지녔지만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피겨계에서 퇴출 당했다. 옐리자베타 툭타미셰바의 경우에도 트리플 악셀을 본격적으로 장착하고 나더니 2015 세계선수권 우승 이후에는 다른 점프들이 무너져 국내선수권 통과도 못하기도 했었다.[9] 특히 점프 교정이 어느 정도 이뤄진 2012-13 시즌 전에는 공식 프로그램에 아예 트리플 살코를 넣지 않을 정도였다. 살코가 토픽도 아니고 엣지로 가볍게 도약하는 점프인 데다가 점프의 기초점에서 알 수 있듯이 난이도가 굉장히 쉬운 점프였음에도 불구하고 단독 점프로도 구성하지 않았다. 아주 가끔 경기에서 시도했으나 이 때 시도한 트리플 살코는 대부분 도약하는 과정에서 엣지가 밀리며 중심을 잃어 뒤로 넘어지기 직전까지 가거나 아예 도약조차 못하며 점프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단독 점프뿐만 아니라 컴비네이션에 오일러 시퀀스로도 구성되는 살코를 못 뛰었다는건 메달권에 있는 여자 싱글 선수에게는 큰 문제였고, 결국 트리플 악셀에 치중하느라 다른 점프가 돌아오지 않았던 아사다는 롱엣지 문제로 러츠도 프로그램 구성에 넣을 수 없었기에 웬만한 탑선수들은 컴비네이션 연결 후속점프가 아니면 자존심 때문에라도 프로그램에 넣지 않는 '단톡 트리플 토룹'을 08-09시즌부터 프리 프로그램에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트리플 토룹은 가장 쉬운 난이도의 점프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탑 선수들은 컴비네이션으로만 쓰지 이 점프를 단독으로 쓰며 아까운 점프 횟수 7번 중 하나를 할애하지 않으려 하기 마련인데, 악셀에 집중하느라 별다른 대체재가 없던 아사다는 울며 겨자먹기로 트리플 토룹을 단독점프로 구성할 수밖에 없었다.[10] 스포츠 프리미어지 같이 아사다가 김연아를 이기기 위해서는 트리플 악셀 같은 고난도 프로그램을 포함시켜 기초점을 높이는 길밖에 없다고 분석한 것은 충분히 타당성이 있었다. 하지만 '아사다 마오가 트리플 악셀을 버리는 건 도망가는 거다' 라는 헛소리를 하는 언론도 있었다. 이런 여론 때문에 트리플 악셀 점프에 과도하게 매달리다보니 트악을 뛸 수 있는 능력만 유지할 뿐 나머지 점프가 계속 무너졌다.[11] 특히 시오바라 츠네오(塩原恒夫)라는 아나운서가 그랬다. 참고로 이 사람은 일본에서 경마F1 중계로 유명한 아나운서다.[12] 기초점으로 비교하더라도 3Lz+3T는 5.9+4.2=10.1점, 3F+3Lo은 5.3+4.9=10.1점으로 동일하다.[13] 사실 표현력 역시 많이 밀린다. 김연아의 섬세한 안무 표현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아사다 마오는 점퍼가 맞다. 커리어 내내 예술보다 트리플 악셀 점프에 집착했으니 말이다. 김연아는 점프를 잘했지만 집착하진 않았다.[14] 일본 국민 전체는 아니다. 오히려 매스컴이 너무 트리플 악셀에 집착해서 오히려 발목을 잡는다는 의견도 다수이다.[15] 하지만 그 직후에 한 대만 기자가 "은퇴 후에는 대만 남자랑 결혼하는 게 어때요?"라며 이 개드립을 능가하는 뜬금포를 터뜨리는 바람에 해당 기자의 어그로를 다 빼앗아 갔다.[16] 엣지를 바꾸다가 스핀 축 중심 전체가 흔들려 스핀을 통째로 날려먹는다거나, 어려운 카멜 포지션을 수행하려다가 레벨을 놓친다던가 하는 자잘한 사고가 정말 많았다. 이 문제로 2007 세계선수권에서 충분히 금메달을 딸 수 있었으나, 프리 후반 레이백 스핀에서 레벨을 통째로 다 날리면서 1점 차안도 미키에게 금메달을 내주었다. 선수로써 이러한 실수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말 어처구니 없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17] 룹턴은 한쪽 발과 엣지만을 사용해서 빙판에 숫자 3에 가까운 물방울 모양이 나오도록 하며 턴을 도는 스텝인데, 깊은 엣지를 사용하는 컨트롤 능력이 중요하다.[18] 사실 이 경기는 코스트너를 밀어주려다가 망해서 어부지리로 아사다가 금메달을 딴 케이스인데, 코스트너가 프리에서 첫 점프를 제외하고 모든 점프를 실패했기 때문이다.[19] ISU 규정집 20쪽- Deductions are applied for each violation as follows) 항목에서 볼 수 있다.[20] 연기 중단으로 인한 감점의 대표적인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남자 프리에서 스케이트 끈이 풀리는 사고로 인해 경기를 중단하고 끈을 다시 묶고 시작한 오다 노부나리가 연기중단 규정에 의한 최고 감점인 -2점,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남자 쇼트에서 쿼드토룹 랜딩 실패로 골반이 빙판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해 약 19초 동안 활주를 시작하지 못한 제레미 애봇이 연기 중단 규정에 의해 -1점을 받았다.[21] 물론 당일 경기에 따라 판정을 받아야 하는 게 맞지만 전혀 그러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탑급 선수가 어마어마하게 경기를 망쳐 프로그램 인상이 굉장히 안 좋아짐에도 불구하고 구성점은 어마어마하게 높은 경우도 생긴다.[22] 카롤리나 코스트너의 커리어 대부분이 구성점으로 쌓은 커리어다. 기술점이 50점대여도 구성점이 항상 70점이 넘었다.[23] 부상을 당했다고 이전 경기와 비교해서 구성점을 깎는 일은 더더욱 없다. 당시 경기를 같이 펼쳤던 선수들과의 프로그램을 비교해서 구성점을 주는게 맞는데 김연아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과 비교 당해 구성점을 받은 격이다.[24] 일반적인 여성 운동선수의 체지방률이 20%정도이다. 하지만 2018년 후배 스케이터 키히라 리카가 방송에서 체지방이 6%에 달한다고 밝혔다. 본인은 그것도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더 근육을 키우려고 한다.[25] 아사다 마오, 스즈키 아키코, 무라카미 카나코 전부 다 플러츠 뿐만이 아니라 플립, 러츠에서의 하이킥을 하는 문제도 가지고 있다. 룹에서의 비비기도 심한 편이다.[26] 밴쿠버 올림픽 시즌 이후에는 감점폭이 현저하게 줄었다. 아사다 마오의 경우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전에 본인이 받던 감점과 비교하면 약 1점 정도의 이득을 보는 편이다.[27] 사실 러츠를 정석으로 뛰는 선수의 수는 매우 적다. 또한 피겨계 대형국가인 러시아와 일본 선수들이 주로 러츠를 멋대로 뛰다보니 채점도 대형국가 입맛에 맞춰 멋대로 진행됐다.[28] 순서대로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옐리자베타 툭타미셰바, 폴리나 쉘레펜이다. 이 중 타라소바가 메인 코치를 맡은 선수는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뿐이다.[29] 당시 김연아가 자매 프로그램이었던 무릎팍 도사에 게스트로 나왔는데 마침 녹화 날짜가 겹친 것이다.[30] 이 유튜버는 이전에도 아사다 마오에 대한 여러가지 허위사실과 비방 등을 유튜브에서 가짜뉴스로 만드는 등의 내용을 올리고 있었다.[31] 다만 다른 국뽕유튜브들도, 특히 메이저 국뽕 유튜브들은 몇시간만에 수십만뷰의 조회수를 달성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완전히 특이사항은 아니다.[32] 결혼 전 이름은 오키타 미키[33] 품종은 토이 푸들이다.[34] 이 에어위브 광고는 알리나 자기토바도 일본으로부터 선물받은 아키타견 마사루와도 찍은 적이 있다.[35] 일본에서 대학 교수는 직업별 연봉 순위 3위를 차지할 만큼 고소득 직종이고 세간의 인식도 좋다.[36] 그랑프리 시리즈 중 일본에서 열리는 NHK 트로피에서 당시 김연아를 초청하는 일은 자기 얼굴에 침뱉는 격이라 초청을 못하는게 아니라 안하는 것이였어서 김연아는 NHK 트로피스케이트 캐나다만 빼고 다 우승하였다. 2013-14 시즌 스케이트 캐나다에 초청받았으나 부상으로 스킵하였다.[37] 밴쿠버 올림픽 이전까지는 둘이 대결했을 때 한쪽이 잘하면 다른 한쪽이 실수하는 등 클린 프로그램으로 대결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는데 밴쿠버 올림픽 쇼트 프로그램에서 나란히 실수 없는 경기를 펼쳤고, 그 결과 5점에 가까운 적지 않은 점수차가 나면서 김연아의 우위가 입증됐다. 이에 아사다 마오는 점수차가 너무 컸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38] 이게 얼마나 무서운 점수냐면 김연아의 프리 스케이팅 세계 신기록이 133.95다. 상식적으로 세계 신기록이 그렇게 간단히 경신될 수가 없는 걸 감안하면 승산이 있는 점수다. 올림픽 때의 김연아가 상식을 한참 뛰어넘었다는 걸 제외한다면 말이지…[39] 세계신기록을 27점을 상회하는 점수차로 갱신해버렸다.[40] 김연아를 비롯한 레전드급 선수들도 피할 수가 없었다.[41] 2011년 추석특집 프로인 '코미디 한일전'에 출연하며 같은 개그를 선보인 적도 있었다. 거기다 2년 뒤에는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로 한 번 더 방한하여 다시 시전했다.[42] 생일은 김연아가 20일 더 빠르다.[43] ISU 규정상 시니어 대회 출전은 시즌 시작 해의 7월 1일 기준으로 만 15세를 넘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시니어 그랑프리 시리즈의 경우 전년도 주니어 세계선수권/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메달리스트는 본인이 원하면 만 15세에 미달하더라도 자동출전권 1장을 확보한 상태로 출전이 가능하다. 이 규정은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이후에는 폐지되었다. 2005-06 시즌의 아사다는 시니어 연령에는 미달이었으나 이 규정에 따라 시니어 그랑프리 시리즈에 출전할 수 있었다. 김연아도 같은 케이스로 출전이 가능했지만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를 한 해 더 치렀다. 그랑프리 시리즈는 세계선수권 결과와 랭킹에 따라 주는 출전권 외에는 각 대회 주최국의 초청으로 선수 명단을 발표하는데 아사다 마오의 경우 모국인 일본에 그랑프리 시리즈인 NHK 트로피가 있어 자국 연맹이 결정하면 초청으로 출전 가능했고 주니어 세계선수권 우승으로 얻는 출전권으로 다른 경기도 나갈 수 있어 그랑프리 시리즈 2개 출전은 거의 확정이고 파이널까지 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연아는 주니어 세계선수권 우승 출전권 1장만 확보된 상태고 다른 나라에서 초청을 해줄지 여부를 확신할 수 없어서 주니어 그랑프리에 나가기로 결정하였다. 이후 2006년 주니어 세계선수권 우승 이후에도 김연아는 시니어 그랑프리에 초청을 받지 못할까봐 걱정할 정도였다. 시니어 그랑프리에 출전한 게 김연아가 처음이었고 대한민국 피겨 스케이팅 현실이 암울했기 때문에 당연한 걱정이었다. 이 시즌에 마오가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을 우승하자 일본에서는 마오에 대해 시니어 연령 규정의 예외를 적용받아 올림픽에 특례로 출전시키자는 여론이 일기도 하였으나 ISU 측의 거부로 무산되었다. 2005 트로피 에릭 봉파르2005-06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두 달 후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될 아라카와 시즈카, 사샤 코헨, 이리나 슬루츠카야를 이겼기 때문에 당시 일본의 기대는 매우 컸다.[44] 실제 김연아는 무표정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던 시절이 있었다.[45] 아사다 마오가 스포츠 잡지 '넘버' 인터뷰에서 밝힌 바로는 시니어 대회 때부터 언론에서 서로를 라이벌로 엮은 것이 서로 멀어지게 된 원인이라고 한다.[46] 다만 이는 당연한게, 피겨 팬 나아가 스포츠 팬도 아닌 정말 평범한 한국의 일반인들은 일본 피겨 스케이팅 선수라고 하면 언론에서 죽어라 라이벌로 묘사해준 아사다 마오 말고는 아예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47] 플립 언더, 컴비 점프 더블링, 트악 실패 등[48] 각기 다른 대회에서 둘을 모두 이겨 본 선수로 확장을 해도 카롤리나 코스트너조아니 로셰트 뿐이다. 그러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의 편파 판정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으므로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한다. 단 전일본선수권 대회까지 포함한다면 수구리 후미에도 해당된다.[49] 2008년 세계선수권 대회 논란을 고려할 때 사실상 14승 0패다. 그러나 이 대회는 마오-연아 판정 논란보다 코스트너-연아 논란이 더 거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