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efe1d8><colcolor=#000000> 낸시 케리건 Nancy Kerrigan | |
본명 | 낸시 앤 케리건(Nancy Ann Kerrigan)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출생 | 1969년 10월 13일 ([age(1969-10-13)]세) |
매사추세츠 주 스톤햄 | |
신체 | 162cm |
종목 | 피겨 스케이팅 |
은퇴 | 1994년 |
링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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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前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며,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은메달리스트 &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이다. 2004년 미국 피겨 스케이팅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으며 토냐 하딩 습격 사건의 피해자로 유명하다.2. 선수 경력
케리건은 강한 점프 선수로서의 초기 인상을 남겼지만, 컴펄서리에서는 비교적 약했다. 1989-90 시즌 이후 컴펄서리가 폐지될 때까지 그녀는 계속해서 컴펄서리에 의해 제지되었다.2.1. 1986-87 시즌
1986 NHK 트로피에서 5위를 하고 1987 전미 주니어선수권에서 4위에 오르면서 자국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2.2. 1987-88 시즌
1988 전미선수권에서 12위를 기록했다.2.3. 1988-89 시즌
1988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5위, 1989 전미선수권에서 5위를 기록했다. 1989 동계 유니버시아드에서 동메달을 땄다.2.4. 1989-90 시즌
1989 친선경기에서 5위, 1989 트로피 랄리크에서 3위를 기록했다. 1990 전미선수권에서는 4위를 기록했다.2.5. 1990-91 시즌
1990 트로피 랄리크에서 3위, 1990 나치온스 컵에서 1위를 기록했다.1991 전미선수권 | 1991 세계선수권 |
2.6. 1991-92 시즌
1991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2위를 기록했다.1992 전미선수권 |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
2.7. 1992-93 시즌
1993 전미선수권 |
2.8. 1993-94 시즌
올림픽 선발전을 겸한 전미선수권을 앞둔 1994년 1월 6일, 케리건은 피겨계를 넘어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한 범죄의 희생양이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토냐 하딩 습격 사건 문서 참조.결국 케리건이 전미선수권을 기권한 가운데, 토냐 하딩이 우승했고 미셸 콴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케리건은 올림픽 대표 2자리 중 한 자리에 들어가게 되었고, 미셸 콴은 대체 선수로 대표팀과 동행하게 되었다. 케리건은 부상에서 빨리 회복하여 집중 훈련을 재개했다.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는데, 월트 디즈니 월드 퍼레이드에서 케리건이 미키 마우스와 함께 관람객들에게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케리건이 미키 마우스에게 중얼거리는 말이 그대로 녹음되었는데, "It’s so corny.", "so dumb… I hate it.", "This is the most corny thing I’ve ever done."[4]세계선수권에도 불참하였으며 이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3. 커리어
올림픽 | ||
은메달 | 1994 릴레함메르 | 여자 싱글 |
동메달 | 1992 알베르빌 | 여자 싱글 |
세계선수권 | ||
은메달 | 1992 오클랜드 | 여자 싱글 |
동메달 | 1991 뮌헨 | 여자 싱글 |
유니버시아드 | ||
동메달 | 1989 소피아 | 여자 싱글 |
국제대회 | ||||||||||
대회 | 84–85 | 85–86 | 86–87 | 87–88 | 88–89 | 89–90 | 90–91 | 91–92 | 92–93 | 93–94 |
올림픽 | 3rd | 2nd | ||||||||
세계선수권 | 3rd | 2nd | 5th | WD | ||||||
피뤠텡 | 1st | |||||||||
나치온스 컵 | 1st | |||||||||
트로피 랄리크 | 3rd | 3rd | ||||||||
친선경기 | 5th | |||||||||
유니버시아드 | 3rd | |||||||||
스케이트 아메리카 | 5th | 2nd | ||||||||
노버랫 트로피 | 1st | |||||||||
NHK 트로피 | 5th | |||||||||
국내대회 | ||||||||||
전미선수권 | 9th N | 11th J | 4th J | 12th | 5th | 4th | 3rd | 2nd | 1st | WD |
미국 올림픽 페스티벌 | 3rd | 1st | ||||||||
J=주니어, N=노비스, WD=기권 |
4. 기타
-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의 사라 케리건은 이 사람의 이름에 유래되었다. 이는 디자인 구상 당시 전반적인 캐릭터의 모델인 레드얼럿 시리즈의 타냐가 토냐 하딩과 이름이 비슷한 타냐를 빗대서 낸시 케리건의 이름을 따왔다.
-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토냐 하딩은 기술성, 이 선수는 예술성이 뛰어난 것으로 소개하였는데, 낸시 케리건 선수도 예술성보다는 기술성이 뛰어난 선수였다. 트리플-트리플 콤비네이션 점프를 했었고, 점프의 안정적인 성공률[5]이 좋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하딩보다 우위를 점하기 쉬웠다. 반면 토냐 하딩은 트리플 악셀, 트리플 콤비의 기술 난이도는 높았지만, 점프의 안정성이 낮았다.
- 토냐 하딩 습격 사건의 피해자인 것과 별개로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는 다소 프로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다. 메달 시상식이 우크라이나 국기와 국가를 준비하던 당시, 천루에게 옥사나 바이울에 대한 불만을 쏟는 모습이 미국 방송 카메라에 잡혔다. 경기가 끝나고 폐막식 대신 디즈니 퍼레이드에 참가하여 언급한 불만에 대한 변명을 했지만, 이 때부터 자국 여론은 좋지 못했고 이미지가 추락했다. 반대로 옥사나 바이울은 미국 아이스 쇼에 초청을 받으며 미국 언론에서 "은반의 요정"으로 각광받았다. 다만 낸시 캐리건이 해당 발언으로 인해 지나치게 비난을 받는다는 의견 역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당시 현장에 있던 관계자로부터 "옥사나 바이울이 우느라 메이크업이 지워져서 다시 손 봐야 하기 때문에 시상식이 지연되고 있다"고 잘못 전달받은 상황이라, 보통의 선수 입장에서는 충분히 짜증스러운 상황인 것은 분명했다. 왜냐하면 포디움에 오른 선수들은 스케이트화를 계속 신은 채로 대기해야 하는데, 경기가 끝난 후에도 스케이트를 계속 신고 있으면 딱딱한 스케이트화로 인해 발목과 다리가 상당히 아프기 때문이다.즉 낸시의 언행이 잘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녀가 이렇게 큰 비난을 받는 것도 다소 가혹하다는 의견이다. 특히나 아주 사소한 차이로 평생의 꿈인 금메달을 놓친 캐리건의 입장에서 기분이 좋았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 하지만, 낸시 케리건의 여론을 정말 악화시킨 것은 옥사나 바이울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케리건은 토냐 하딩 습격 사건의 피해자라는 인식과, 사실상 그녀의 마지막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간발의 차이로 놓쳤다는 여론이 강했기 때문이다.[6]하지만, 케리건이 폐막식에 불참하고 미국으로 떠난 뒤, 케리건이 디즈니 퍼레이드에서 웃는 얼굴로 그녀 옆에 있던 미키 마우스에게 짜증과 불평을 한 것이 그대로 녹음되어 방송되며 여론이 극도로 나빠졌다. 바이울에 대해 불만을 표출한 것은 실망감에 이해할 수 있다는 반응이 많았으나, 무려 200만 달러 스폰서인 디즈니의 행사에서 미키 마우스에게[7] 짜증을 낸 것은 변명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 직후 디즈니가 NBC의 아침 토크쇼에 케리건이 출연하도록 주선했는데[8] 어떤 이유에선지 낸시 캐리건이 제시간에 오지 않아, NBC의 아침 토크쇼에서는 텅 빈 의자가 생방송으로 그대로 송출되었고, 방송이 끝나기 직전에야 케리건이 나타났다.
- 은퇴 이후 아이스 쇼 무대에 오르고 주니어 시절의 김연아의 경기를 해설하는 등 선수 및 해설가로서는 성공적이고 모범적인 삶을 살았으나, 아픈 가정사를 가졌다. 용접공인 아버지가 집을 저당잡힐 정도로 딸의 스케이팅에 지원을 해줬으나 2010년, 여러 면에서 문제가 많았던 오빠와의 큰 다툼으로 인한 충격으로 심장 마비로 사망하였다. 낸시의 어머니도 당시 그 자리에 있었으나 시력이 실명에 가까운 상태[9]라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중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음에도 법정에 서서 증언을 하는 등 가혹한 일을 겪어야 했다.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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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 1916 | 취소WWI | 4회 | 1917 | 취소WW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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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 | 1920 뉴욕시 | 테레사 웰드 | 8회 | 1921 필라델피아 | 테레사 웰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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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회 | 1932 뉴욕시 | 메리벨 빈슨 | 20회 | 1933 뉴헤이븐 | 메리벨 빈슨 | |
21회 | 1934 필라델피아 | 수잰 데이비스 | 22회 | 1935 뉴헤이븐 | 메리벨 빈슨 | |
23회 | 1936 뉴욕시 | 메리벨 빈슨 | 24회 | 1937 시카고 | 메리벨 빈슨 | |
25회 | 1938 필라델피아 | 조앤 토저 | 26회 | 1939 세인트 폴 | 조앤 토저 | |
27회 | 1940 클리블랜드 | 조앤 토저 | 28회 | 1941 보스턴 | 제인 본 | |
29회 | 1942 시카고 | 제인 본 | 30회 | 1943 뉴욕시 | 그레천 메릴 | |
31회 | 1944 미니애폴리스 | 그레천 메릴 | 32회 | 1945 뉴욕시 | 그레천 메릴 | |
33회 | 1946 시카고 | 그레천 메릴 | 34회 | 1947 버클리 | 그레천 메릴 | |
35회 | 1948 콜로라도 스프링스 | 그레천 메릴 | 36회 | 1949 콜로라도 스프링스 | 이본 C. 셔먼 | |
37회 | 1950 워싱턴 D.C. | 이본 C. 셔먼 | 38회 | 1951 시애틀 | 소냐 크로퍼 | |
39회 | 1952 콜로라도 스프링스 | 텐리 올브라이트 | 40회 | 1953 허시 | 텐리 올브라이트 | |
41회 | 1954 로스앤젤레스 | 텐리 올브라이트 | 42회 | 1955 콜로라도 스프링스 | 텐리 올브라이트 | |
43회 | 1956 필라델피아 | 텐리 올브라이트 | 44회 | 1957 버클리 | 캐럴 하이스 | |
45회 | 1958 미니애폴리스 | 캐럴 하이스 | 46회 | 1959 로체스터 | 캐럴 하이스 | |
47회 | 1960 시애틀 | 캐럴 하이스 | 48회 | 1961 콜로라도 스프링스 | 로런스 오언 | |
49회 | 1962 보스턴 | 바버라 롤스 퍼즐리 | 50회 | 1963 롱비치 | 로레인 핸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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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회 | 1966 버클리 | 페기 플레밍 | 54회 | 1967 오마하 | 페기 플레밍 | |
55회 | 1968 필라델피아 | 페기 플레밍 | 56회 | 1969 시애틀 | 재닛 린 | |
57회 | 1970 털사 | 재닛 린 | 58회 | 1971 버팔로 | 재닛 린 | |
59회 | 1972 롱비치 | 재닛 린 | 60회 | 1973 미니애폴리스 | 재닛 린 | |
61회 | 1974 프로비던스 | 도로시 해밀 | 62회 | 1975 오클랜드 | 도로시 해밀 | |
63회 | 1976 콜로라도 스프링스 | 도로시 해밀 | 64회 | 1977 하트퍼트 | 린다 프래티아니 | |
65회 | 1978 포틀랜드 | 린다 프래티아니 | 66회 | 1979 신시내티 | 린다 프래티아니 | |
67회 | 1980 애틀랜타 | 린다 프래티아니 | 68회 | 1981 샌디에이고 | 일레인 자약 | |
69회 | 1982 인디애나폴리스 | 로잘린 섬너스 | 70회 | 1983 피츠버그 | 로잘린 섬너스 | |
71회 | 1984 솔트레이크시티 | 로잘린 섬너스 | 72회 | 1985 캔자스시티 | 티파니 친 | |
73회 | 1986 유니언데일 | 데비 토머스 | 74회 | 1987 타코마 | 질 트레나리 | |
75회 | 1988 덴버 | 데비 토머스 | 76회 | 1989 볼티모어 | 질 트레나리 | |
77회 | 1990 솔트레이크시티 | 질 트레나리 | 78회 | 1991 미니애폴리스 | 토냐 하딩 | |
79회 | 1992 올랜도 | 크리스티 야마구치 | 80회 | 1993 피닉스 | 낸시 케리건 | |
81회 | 1994 디트로이트 | - | 82회 | 1995 프로비던스 | 미셸 콴 | |
83회 | 1996 산호세 | 타라 리핀스키 | 84회 | 1997 내슈빌 | 미셸 콴 | |
85회 | 1998 필라델피아 | 미셸 콴 | 86회 | 1999 솔트레이크시티 | 미셸 콴 | |
87회 | 2000 클리블랜드 | 미셸 콴 | 88회 | 2001 보스턴 | 미셸 콴 | |
89회 | 2002 로스앤젤레스 | 미셸 콴 | 90회 | 2003 댈러스 | 미셸 콴 | |
91회 | 2004 애틀랜타 | 미셸 콴 | 92회 | 2005 포틀랜드 | 미셸 콴 | |
93회 | 2006 세인트루이스 | 사샤 코헨 | 94회 | 2007 스포캔 | 키미 마이즈너 | |
95회 | 2008 세인트 폴 | 미라이 나가수 | 96회 | 2009 클리블랜드 | 알리사 시즈니 | |
97회 | 2010 스포캔 | 레이첼 플랫 | 98회 | 2011 그린스보로 | 알리사 시즈니 | |
99회 | 2012 산호세 | 애슐리 와그너 | 100회 | 2013 오마하 | 애슐리 와그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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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스케이팅 내셔널 역대 챔피언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3c3b6e; font-size: 1em;" | }}}}}}}}} |
6. 관련 문서
[1] 프로토콜 결과, 기술점수에서는 낸시는 5.7점을 3개, 5.8점은 6개를 받았다. 반면 바이울은 5.5점 1개, 5.6점 1개, 5.7점 1개, 5.8점 5개, 5.9점을 1개 받았다. 예술점수에서는 낸시는 5.9점을 6개 받아 미국 관중들은 거의 낸시의 금메달을 예상하고 있었다.[10] 그런데 당시 동독 출신 독일 심판이었던 얀 호프만이 바이울에게 예술점수 0.1점을 더 주어서 바이울 역시 낸시처럼 5.9점을 6개를 받게 되었을 뿐더러, 그로 인해 낸시와 바이울의 점수를 1위로 채점한 심판의 수가 동점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당시에는 예술점수로 순위에 우위를 두었던 채점제였기 때문에 예술점수를 조금 더 높게 받은 바이울이 금, 낸시가 은메달이 되었다. CBS TV는 이 논란을 냉전시대 동서 분단으로 묘사함으로써 격앙된 평가를 했으며, 그로 인해 얀 호프만은 북미에서 까일대로 까였다. 위에서 얘기했듯이 같은 유럽, 그것도 같은 공산권 출신 선수에게 점수를 더 주었다고 까였다.[2] 올림픽 관계자들이 우크라이나 국가와 국기를 20분 넘게 찾느라 시상식이 지연됐었는데 옥사나 바이울이 울어서 화장이 지워져 다시 고치느라 시상식이 지연됐다고 누군가 케리건에게 잘못 알렸다.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케리건은 함께 대기하던 천루에게 “Oh, Come on. So She's going to get out here and cry again. What's the difference?” 라고 불만을 터뜨리는 것이 카메라에 잡혔다.[3] 당시 그녀의 소속사는 이것이 노르웨이 보안 팀이 그녀에게 살해 위협 때문에 떠나라고 충고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이것은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대신 그녀는 2백만 달러의 스폰서인 월트 디즈니 월드에서 예정된 홍보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노르웨이를 일찍 떠났다.[4] "진짜 진부해.", "완전 바보같아… 진짜 싫다.", "내가 했던 것 중 가장 진부한 일이야." 라는 의미인데, 당시 언론에서 "Icy Nancy" 라고 대놓고 부를 정도로 평판이 추락했다.[5] 전문 용어로는 Consistency(컨시)라고 한다.[6] 당시 낸시 케리건의 나이가 24살이었는데, 이는 여자 싱글 선수로서는 많은 나이다.[7] 당연하지만, 인형탈을 쓴 직원이었다.[8] 여론을 악화시키는 논란에 대해 해명을 하라는 의미일 가능성이 높았다.[9] 이 때문에 케리건은 시각 장애인 단체의 대변인을 맡기도 했다.
[10] 당시 프리 스케이팅에서 트리플 토룹+트리플 토룹 컴비네이션 점프를 성공했다. 첫번째 트리플 토룹은 회전수가 부족했지만, 당시에는 개별 요소에 점수를 주지 않았던 구채점제였고 무엇보다 3회전+3회전 컴비네이션은 일부 최상위권 선수들도 시도조차 못하는 최고난도 점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