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일본은 선진국 중에서 미국, 대만 등과 더불어 사형을 실제로 집행하고 있는 나라이다.2. 역사
고대부터 사형제도가 시행되어 왔으며, 기록에 따르면 당시의 사형 방식은 참수형이나 교수형이었다.일본은 과거 세계 최초의 사형제 폐지국 중 하나였다는 이례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헤이안 시대 초기인 810년 사가 덴노가 사형을 금지한 이후 1156년까지 346년간이나 일본에서 사형이 공식적으로 집행되지 않았다. 이는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의 영향 때문으로 해석된다.[1] 그러나 1156년 호겐의 난을 계기로 일본에서 사형제가 부활하였고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에도 시대에는 사무라이 문화의 영향으로 할복이 비공식적 사형으로 활용된 바 있으며, 에도시대에는 평민들에게는 다음의 6 가지 사형방법이 시행되었다.
- 참수형(下手人, げしゅにん, 게슈닌) - 죄인을 꿇어앉히고 칼로 목을 베는 일반적 사형. 중죄인이 아닌 평민에게 집행.
- 요참형 (死罪, しざい, 시자이) - 강도 등 죄가 무거운 중죄인에게 집행. 참수로 목을 벤 후 시체를 길게 눕여 몸통을 칼로 벤다. 재산을 몰수하고 매장과 애도가 허용되지 않는다. 새로 만든 칼이 잘드는 지 시체를 베어서 칼을 시험 (辻斬 츠치기리) 하기도 했다.
- 효수형(獄門, ごくもん, 고쿠몬) - 참수 후 머리를 기둥 위에 얹어 3일간 거리에 전시하는 공개처형. 재산몰수, 매장/애도 금지.
- 책형(磔, はりつけ, 하리쓰케) - 죄인을 높은 나무십자가에 매달고 옆구리와 목을 창으로 수십 차례 찔러 죽임. 집행 후 매달린 채로 3일간 전시한다. 탄압받던 기독교인 키리시탄에게도 집행되었다.
- 화형(火罪, かざい, 가자이) 화배(火焙, ひあぶり),분형 (焚刑, ふんけい) - 중세 마녀재판 같이 죄인을 기둥에 묶고 발 아래 나무더미를 쌓고 짚단을 키보다 높이 쌓아 불에 태워 죽임.
- 톱질형 (鋸挽き, 노리기리히키) - 반역 등 가장 중죄인에게 적용되는 보복형. 목만 내놓고 몸을 땅에 묻고 톱을 옆에 두어 피해자나 원한이 있는 행인들이 톱질로 목을 조금씩 자른다. 실제로는 톱질로 사망하지 않도록 감시인을 붙여 3일간 전시한다. 그후 죄상을 적은 깃발과 함께 또는 목판을 목에 걸고 포박해 거리에 끌고 다니며 돌아다니고 (걷거나 말이나 수레에 태우기도 함) (引回し히키마와시) 그 후 위의 책형으로 목숨을 끊는다.
메이지 유신으로 인해 전근대적인 법률의 근대화가 이루어져, 단계적으로 공개처형이나 잔인한 처형 방식이 폐지되고 교수형, 그리고 일본군에 한해 총살형으로 처형 방식이 일원화되었다.
현대 일본의 사형제도는 메이지 유신 당시 확립된 제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나, 사형이 적용되는 사례나 죄목은 줄어오고, 패전으로 일본군이 해산되면서 총살형도 사라졌다.[2][3]
3. 사형 존폐 논란
사형수의 사형 당일을 묘사한 만화[4]역대 법무대신의 의견에 의하면, '사형은 인권의 근간인 생명을 빼앗는 형벌이며 하지 않아도 된다면 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폐지는 시기상조이다. 흉악한 범죄가 끊이지 않는 일본 사회에서는 사형제를 유지해야만 한다'라고 한다. 위 링크의 말미를 보면 일본 국민의 80% 이상이 사형제에 대해 '부득이하게 존속해야 하는 것'[5]이라고 인식하며 사형제에 대한 찬성 의사를 밝혔다.#
일본의 사형제는 일본 특유의 '속죄성 자살' 문화에 기인한다는 시각도 있다. 즉, 일본의 사형제가 '죽어서 책임을 지겠다'는 일본인의 인식과 관련되었다는 것이다. 속죄성 자살 혹은 사형을 일종의 자살로 생각하는 문화에 의거해 1심에서 사형을 받은 죄수가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내릴 수 있는데도 일부러 항소를 포기하고 사형을 받아들이는 경우도 더러 있으며, 실제로 사형수 중에서도 속죄를 위해 자발적으로 사형 집행을 요청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코바야시 카오루(小林薫)나 카나가와 마사히로(金川真大), 야마지 유키오(山地悠紀夫), 칸다 츠카사(神田司) 등이다. 넷 다 항소를 자발적으로 포기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사형제에 관하여 극형이 유지됨에 따라 발생하는 위하력으로 인한 범죄 예방 가능성이, 폐지에 따른 개인생명권 존중 등의 이익보다 더 크다는 이론에 따라 공공복리 차원에서 '합헌'이라는 입장을 1948년 3월 12일[6] '쇼와 22년 제119호 사건[7]'의 판결선고를 통하여 밝힌 이후, 70여 년이 현재까지도 위 판례를 변경하여야 할 타당한 이유가 없다면서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연이어 일본 최고재판소는 만일 사회가 진보됨에 따라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평화로운 사회가 도래하여 대다수의 국민이 사형제도로 하여금 느끼게 될 범죄 위하력을 전면부정하는 순간이 와서 입법자인 국회에서 사형제도를 폐지하거나 각 사건을 판결하는 판사가 양형시 '사형'이라는 선택지를 회피하여 선고하는 때가 된다면 자연스럽게 생명권 우위의 관점에서 위와 같은 사형제의 '합헌' 해석을 변경할 여지는 남겨둔다고 밝혔다. 일본 최고재판소의 이러한 입장은 한국의 헌법재판소에서 사형제 위헌 여부에 관한 헌법소원에서 밝힌 판시 내용과 상당히 유사하다.
정치적으로 집권여당인 자민당 및 연립여당인 공명당은 사형제를 적극 지지하며,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역시 사형제 폐지에 시큰둥하다.[8] 일본 정계에서 사형제를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원내 정당은 사회민주당, 일본공산당, 레이와 신센구미 등 군소 정당들 뿐이다.
물론 일본 내에도 사형제 폐지 의견은 소수나마 있다. 대표적으로 일본변호사연합회가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유럽 국가들과의 FTA를 비롯한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9] 사형제를 2030년 이전까지 폐지하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 그러나 아베 본인은 임기 중 사형을 여러 차례 집행하였기에 이는 외교적인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았다. 스가 내각 1년간 잠시 사형 집행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지만 기시다 내각이 집행을 재개했다.
2023년 2월에 사이토 겐 일본 법무대신은 일본의 사형제도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비판에 대해 "흉악 범죄에 대한 대처로 사형제도가 필요하다"며 사형제 유지 입장을 내놓았다.
4. 사형 방식
일본은 사형 방식으로 교수형을 사용한다.사형수에게 사형 집행일을 일절 알려주지 않으며 보통 수년, 심지어는 십여 년 이상 질질 끌다가 갑자기 집행하는
사형 집행 당일이 되면 면회 등을 핑계로 혹은 요청 시 알려줘서 사형수를 독방에서 끌어내 사형장으로 향한다. 단, 구치소에 따라서는 곧 사형이 집행될 것이라는 언질을 미리 주고 기다렸다가 끌어내서 집행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대기 시간은 길어야 1시간이다. 이는 공포의 시간을 줄여주는 배려이기도 하다.
사형장은 중간이 커튼으로 나뉘어져 있는 긴 방으로, 한쪽은 전실(前室)이라 하여 기독교, 불교, 신토 등 각 종교식 제단이 설치되어 있고,[11] 탁자와 의자가 배치되어 있으며, 커튼 반대쪽은 교수대가 설치된 집행실이다. 전실에서 교도소장이 교도관들과 변호사, 검사, 종교인의 입회 하에 법무대신의 사형 집행 명령서를 전한 후 종교 의식을 하고 탁자에 앉혀 유서를 작성하게 하며, 자신의 시신을 인수할 대상자를 지정하도록 한다. 이때 교도관은 사형수가 원할 경우 음료수나 간식(과일, 과자 등) 등을 제공하기도 하며, 담배를 피울 수 있도록 해 주기도 한다.[12] 이러한 절차 후에는 곧바로 사형수의 눈에 안대를 씌우고 수갑을 채우고 발을 묶은 뒤 커튼 뒤의 집행실로 호송한 후, 사형수를 발판 위에 세우고 목에 밧줄을 건다. 이러한 준비가 끝나면 집행실 뒤의 밀실에서 3명의 교도관이 신호에 맞춰 3개의 버튼을 동시에 눌러 주황색 테두리가 그려진 문 형태의 발판을 아래로 연다. 이렇게 해서 사형 집행이 종료된다. 3개의 버튼 중 1개의 버튼만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버튼이며 어떤 버튼이 작동하는 버튼인지는 교도관도 알 수 없는데, 이는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의 심리적 부담감을 완화하기 위해서이다. 집행 시 법무성 관계자들이 집행실 앞의 입회대에서 교수대 정면에 설치된 유리창을 통해 집행 절차를 확인하며, 의사는 사형수가 떨어지는 바닥문 아래의 지하실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사형수가 떨어진지 10분 후 사망을 확인하며 약 30분 동안 매달아 놓는다.
사형 집행이 끝난 후에는 사형수가 지정한 인수자에게 넘겨주지만 사형수가 인수자를 정하지 않았거나, 정했지만 인수자가 시신 인수를 거부할 경우, 사형수가 무연고자일 경우에는 일본 정부가 시신을 화장해 임의로 처리한다. 설령 인수받는 사람이나 단체가 위험단체라고 해도 우선은 고인의 의지가 최우선이므로 인수자가 거부하지 않는 한 유언대로 넘겨준다. 또한 사망진단서에는 사인이 사형으로 기록된다.
옛날에는 사형수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기회를 주는 차원에서 사형 집행 전전날 저녁 혹은 전날 아침에 미리 언질을 준 다음 사형 집행 전 마지막 만찬을 가능한 범위 안에서 사형수가 원하는 대로 준비하고 특별 면회를 허가하며 동료 수감자와 담당 종교인, 교도관 등과 함께 송별회를 여는 등 융숭한 대접을 해 주고 사형 집행 예정일인 다음날에 본격적으로 집행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이렇게 했더니 그 부작용으로 집행 전에 자살하는 경우가 많아져서 집행 당일 알려주고 곧바로 끌어내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저항하는 사형수가 많을 것이라는 편견도 있지만 실제로 교도관이나 참관인(특히 종교인)들이 펴낸 책을 보면 집행되는 사람 수만큼 반응은 가지각색이다. 방 정리를 하겠다고 5분만 시간을 달라는 사람도 있고, 1초라도 형을 늦추기 위해서 형장으로 걸어가는 곳에 안전 요원으로 서 있는 교도관들 한 명 한 명에게 일일이 그동안 신세 많이 졌다고 인사하며 악수를 청하는 사형수도 있고,[13] 마지막까지 센 척하려는 건지 내 발로 걸어갈 테니 손대지 말라고 하면서 연행하려는 교도관의 인도를 뿌리치고 본인 발로 걸어가는 사형수도 있다. 혹은 끌려 나올 때까지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순순히 끌려 나온 다음, 형 집행 직전이 되어서야 상황을 파악하고 저항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가장 많은 케이스는 저항이 아니라 두려움에 정신이 나가서 대소변을 지리고 그 자리에 굳어버려서 교도관에게 질질 끌려 나오는 케이스이다.
2020년부터 일본 정부가 피해자의 유족들에게 사형수의 사형 집행일을 알려주는 제도를 실시한다.# 스가 내각이 출범한 이후의 변화인데, 정작 스가 내각에서는 사형이 동결되었기 때문에 해당 제도가 시행된 이후의 사형 집행은 차기 내각인 기시다 내각에서 이루어졌다.
2010년에 일본 법무성에서 국내외 언론에 정식으로 도쿄 구치소의 사형 집행실을 공개했다.[14]
5. 기준
5.1. 법령
일본 형법 제11조
①사형은 형사시설 내에서 교수형으로 집행한다.
②사형선고를 받은 자는 그 집행까지 형사시설에 구치한다.
일본 형사소송법 제475조
①사형의 집행은 법무대신의 명령에 의한다.
②전항의 명령은 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하여야 한다. 단, 상소권 회복 또는 재심의 청구, 비상상고 또는 은사의 출원 또는 제출되어 그 절차가 끝나기 전까지의 기간 및 공동피고인에 대한 판결이 확정되기까지의 기간은 산입하지 아니한다.
명령권자는 한국의 법무부장관에 상응하는 법무대신이다.①사형은 형사시설 내에서 교수형으로 집행한다.
②사형선고를 받은 자는 그 집행까지 형사시설에 구치한다.
일본 형사소송법 제475조
①사형의 집행은 법무대신의 명령에 의한다.
②전항의 명령은 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하여야 한다. 단, 상소권 회복 또는 재심의 청구, 비상상고 또는 은사의 출원 또는 제출되어 그 절차가 끝나기 전까지의 기간 및 공동피고인에 대한 판결이 확정되기까지의 기간은 산입하지 아니한다.
타국의 군인과 달리 일본의 자위관은 군사재판이 아니라 일반재판을 받는다. 군사법원과 같은 특별재판소의 설치를 일본 헌법에서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일본국 헌법 제76조[15]) 군사경찰에 해당하는 경무대(警務隊)는 있지만, 군검찰과 군사법원에 해당하는 조직은 일본에 존재하지 않는다.
5.2. 양형
일본에서는 사형 선고에 있어 나가야마 기준에 몇 가지를 보탠 형식의 양형 제도가 있는데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1. 4명 이상 살해한 성인은 반강제적으로 사형 선고를 해야 한다.
* 여기서 벗어나려면 극단적인 심신미약이나 심신상실 상태 혹은 상당한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어야 한다.
* 대량살인일 경우 100% 사형 선고된다.
2. 피살자가 2명 이상~3명 이하면 사형선고가 원칙이나, 정신병이 있는 등 명백한 정상참작 사유가 있다면 무기징역이나 유기징역[16]을 선고할 수 있다.
* 그 예로 오가타 준코는 3건의 살인과 1건의 상해치사가 인정되어 나가야마 기준에 미치지 않으며 진상 규명에 앞장서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반성한다는 이유로 사형을 면했다.
3. 피살자가 1명이라도 집단에 의한 살인, 살인 재범, 유괴살인, 잔혹한 살해 과정, 묻지마 살인 등 극악무도한 경우에 한정하여 사형을 선고할 수 있다. 특히 집단에 의한 살인이고 피의자가 성인이면 최대 사형, 미성년은 최대 무기징역이 원칙이다.
* 어둠 사이트 살인 사건의 경우 가해자 칸다 츠카사가 살해한 사람은 1명이었지만 3명으로 구성된 집단에 의한 묻지마 살인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사형이 집행되었다.[17]
* 오카야마 전 여성 동료 토막 살인 사건의 가해자인 스미다 코이치(住田紘一)의 경우 초범에 피살자가 1명 이었으나, 강간 및 토막살인으로 살해 과정이 상당히 잔혹했었기에 이례적으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 그리고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재판 당시 이 사건의 주범인 미야노는 '1년만 더 늦게 저질렀어도 너는 사형이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18]
* 여기서 벗어나려면 극단적인 심신미약이나 심신상실 상태 혹은 상당한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어야 한다.
* 대량살인일 경우 100% 사형 선고된다.
2. 피살자가 2명 이상~3명 이하면 사형선고가 원칙이나, 정신병이 있는 등 명백한 정상참작 사유가 있다면 무기징역
* 그 예로 오가타 준코는 3건의 살인과 1건의 상해치사가 인정되어 나가야마 기준에 미치지 않으며 진상 규명에 앞장서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반성한다는 이유로 사형을 면했다.
3. 피살자가 1명이라도 집단에 의한 살인, 살인 재범, 유괴살인, 잔혹한 살해 과정, 묻지마 살인 등 극악무도한 경우에 한정하여 사형을 선고할 수 있다. 특히 집단에 의한 살인이고 피의자가 성인이면 최대 사형, 미성년은 최대 무기징역이 원칙이다.
* 어둠 사이트 살인 사건의 경우 가해자 칸다 츠카사가 살해한 사람은 1명이었지만 3명으로 구성된 집단에 의한 묻지마 살인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사형이 집행되었다.[17]
* 오카야마 전 여성 동료 토막 살인 사건의 가해자인 스미다 코이치(住田紘一)의 경우 초범에 피살자가 1명 이었으나, 강간 및 토막살인으로 살해 과정이 상당히 잔혹했었기에 이례적으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 그리고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재판 당시 이 사건의 주범인 미야노는 '1년만 더 늦게 저질렀어도 너는 사형이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18]
6. 사형 집행 명령
6.1. 집행 명령 및 보고체계
먼저 법무대신이 고등검찰청 검사장에게 집행 명령을 내리면 고등검찰청 검사장이 명령서를 수령하였음을 보고한다. 그리고 보고하는 즉시 해당 사형수가 수감되어 있는 구치소장에게 지시함으로써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고, 집행 이후에 고등검찰청 검사장이 법무대신에게 해당 사항을 보고한다. 사형 집행 명령서는 작성 당시에는 기밀 사항이지만 사형이 집행된 이후에는 기밀을 해제해 누구나 볼 수 있게 한다.2018년 7월 6일에 사형이 집행된,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의 주범인 아사하라 쇼코의 사형집행 과정을 예시로 들면 다음과 같다.[19]
법무성 형총비 제1호
도쿄고등검찰청 검사장 이나다 노부오
헤이세이 19년(2007) 3월 13일 상신과 관련된 아사하라 쇼코(마쓰모토 지즈오)에 대한 사형집행의 건을, 재판 언도에 따라 집행하라
헤이세이 30년(2018) 7월 3일
법무대신 가미카와 요코(직인)
우선 법무대신이 도쿄고등검찰청 검사장에게 아사하라 쇼코에 대한 사형 집행을 지시한다.
수 령 서
헤이세이 30년(2018) 7월 3일
법무대신 가미카와 요코 귀하
도쿄고등검찰청 검사장 이나다 노부오(직인)
아래의 서류를 수령하였습니다.
- 아래 -
사형집행명령서 1부
사형수 마쓰모토 지즈오 - 통칭 아사하라 쇼코[20]
헤이세이 30년(2018) 7월 3일
법무대신 가미카와 요코 귀하
도쿄고등검찰청 검사장 이나다 노부오(직인)
아래의 서류를 수령하였습니다.
- 아래 -
사형집행명령서 1부
사형수 마쓰모토 지즈오 - 통칭 아사하라 쇼코[20]
검사장은 해당 명령서를 수령한 즉시 법무대신에게 보고해야 하며, 명령에 따라 사형수 아사하라 쇼코가 수감된 도쿄구치소장에게 사형을 집행할 것을 지시한다. 구치소장은 지시를 받은 지 6개월 이내에 명령에 따라 사형을 집행하고 그 즉시 고등검찰청 검사장에게 사형집행시말서를 제출해 보고해야 하며, 고등검찰청 검사장은 사형 집행일로부터 5일 이내에 해당 등본을 첨부한 사형집행보고서를 법무대신에게 보고함으로써 사형 집행 절차가 완료된다.
양식 제45호(집행사무규칙 제14조 관련)
사 형 집 행 보 고 서
도쿄고등검찰청 2부 제2048호
헤이세이 30년(2018) 7월 11일
법무대신 가미카와 요코 귀하
도쿄고등검찰청 검사장 이나다 노부오(직인)
다음 사형수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사형을 집행하였기에 보고드립니다.
1. 사형수
성명: 마쓰모토 지즈오 - 통칭 아사하라 쇼코(쇼와 30년(1955) 3월 2일생, 63세)
1. 판결
죄명 살인, 살인미수, 사체손괴, 체포감금치사, 무기등제조법위반, 살인예비음모[21]
선고일 헤이세이 16년(2004) 2월 27일
선고법원 도쿄지방재판소
확정일 헤이세이 18년(2006) 9월 15일
1. 집행명령수령일
헤이세이 30년(2018) 7월 3일
1. 집행일
헤이세이 30년 7월 6일
1.집행형사시설
도쿄구치소
1. 첨부서류
사형집행시말서 등본
1. 비고
헤이세이 19년(2007) 3월 13일 사형집행상신(도쿄고등검찰청 2부 제523호)
법무성 30.7.11. 제 927호 형사국 등기
사 형 집 행 보 고 서
도쿄고등검찰청 2부 제2048호
헤이세이 30년(2018) 7월 11일
법무대신 가미카와 요코 귀하
도쿄고등검찰청 검사장 이나다 노부오(직인)
다음 사형수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사형을 집행하였기에 보고드립니다.
1. 사형수
성명: 마쓰모토 지즈오 - 통칭 아사하라 쇼코(쇼와 30년(1955) 3월 2일생, 63세)
1. 판결
죄명 살인, 살인미수, 사체손괴, 체포감금치사, 무기등제조법위반, 살인예비음모[21]
선고일 헤이세이 16년(2004) 2월 27일
선고법원 도쿄지방재판소
확정일 헤이세이 18년(2006) 9월 15일
1. 집행명령수령일
헤이세이 30년(2018) 7월 3일
1. 집행일
헤이세이 30년 7월 6일
1.집행형사시설
도쿄구치소
1. 첨부서류
사형집행시말서 등본
1. 비고
헤이세이 19년(2007) 3월 13일 사형집행상신(도쿄고등검찰청 2부 제523호)
법무성 30.7.11. 제 927호 형사국 등기
6.2. 일본의 사형수 목록
자세한 내용은 사형/국가별 현황/일본/사형수 문서 참고하십시오.6.3. 무작위
사형 집행 명령은 법무대신이 피해자 수나 유가족의 요구, 사형 확정 연도와 무관하게 무작위로 내려지는 것으로 보인다. 20대에 사형 선고를 받고 집행이 보류된 지 오래된 사람이 60~70대가 될 때까지 생존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조금이라도 엔자이가 의심될 경우,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무죄가 입증될 때까지 어떻게든 구치소에 가두는 경우이다.반면, 최종 판결 후 1~3년 만에 집행되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일본인들 사이에서 최악의 범죄자로 악명이 높았던 미야자키 츠토무는 2006년에야 오랜 재판 끝에 최종적으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2년 뒤인 2008년 6월 17일에 형을 집행받았다.[22]
7. 관련 문서
[1] 마찬가지로 일본은 불교의 영향으로 육식을 오랫동안 금지했다. 사형은 12세기에 재개되었지만 육식은 19세기 메이지 유신 이후에야 허용되었다.[2] 도조 히데키 등 2차 대전 전쟁범죄로 인해 사형된 사형수들은 일본 법이 아닌 국제법에 의거해 재판을 받고 사형에 처해졌고, 미국의 강권으로 총살형 대신 교수형을 받았다.[3] 현대 일본은 전후 일명 평화헌법이라 하여 헌법으로 군대 포기를 못박았기 때문에 자위대는 명목상으로는 국군이 아니라 준군사조직이다. 그래서 현역 자위관에게만 별도로 적용되는 군형법도 존재하지 않고 자위관 역시 민간 형법에 따라 재판을 받으므로 사형 판결을 받는다면 교수형이 적용된다. 다만 아직까지 자위관이 사형 판결을 받은 적은 없다.[4] 휴먼버그대학교의 영상으로, 그 유명한 사타케 히로후미의 데뷔작이다.[5] 일본만의 특이사항은 아니다. 사형제 폐지의 선두주자인 유럽에서도 꽤 많은 국가들이 과반이 넘는 국민의 반대에 부딪혔다.[6] 1947년 일본국 헌법 시행 전후로 일본의 최고사법기관에서 '사형제'에 대한 입장을 처음 밝힌 사례이다.[7] 미성년자(사건 당시 만 19세)이자 무직자 신분인 피고인이 동거하던 어머니와 누이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고 격분하여 망치로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사건에서 그의 변호인이 미성년자의 생명권과 잔혹형벌 금지라는 헌법가치에 사형제도가 반한다면서 사형제의 존폐 가능성에 대한 해석을 최고재판소에 구한 사례. 이 사건의 피고인은 최고재판소 확정 판결 1년만에 사형 집행으로 사망하였다.[8] 55년 체제 이후 자민당이 야당으로 밀려나고 혁신 세력들이 집권했던 짧은 시기에도 사형은 꾸준히 집행되었다.[9] 유럽연합은 사형제도를 폐지했거나 혹은 오랜 기간 집행하지 않아 사문화된 국가를 상대로만 FTA 등의 호혜적인 외교협약을 체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유럽연합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더욱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하다. 단순히 법률로서 폐지하는 것을 넘어 헌법 등 보통법보다 상위 개념의 법률로 사형제를 부정하여야만 한다. 그래서 사형제가 법에는 남아있어도 집행은 하지 않는 한국은 유럽과 FTA를 맺을 수 있었다. 단, 일본과도 FTA보다 한 단계 낮은 EPA 체결해 활발히 교역 중이다.[10] 다만 이는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일본 법조계의 성향(엔자이)의 영향이 크다. 사린가스 테러를 일으켜 누가봐도 사형 당하는 것이 확실한 아사하라 쇼코도 수십년을 거쳐서 조사를 했으며, 이후 근거가 확실한 후에야 사형을 집행 했다[11] 사형수가 믿는 종교에 따라 제단을 장식한다.[12] 담배는 보통 교도관이 물어 본 다음 원하면 주기도 하고, 과일이나 과자, 음료수류는 보통 준비되어 있다고 하고 없는 것도 바로 구할 수 있는 것 같은 자판기나 구내매점 등에서 살 수 있는 것들은 되도록 구해주는 듯하다. 이때에도 곧 닥쳐올 죽음에 준비되어 있는 음식을 전혀 손도 못 대는 경우도 있고, 좋아하던 것을 천천히 맛본 뒤 형 집행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으며, 드물게 왜 자기가 좋아하는 게 없냐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13] 이건 교도관이 쓴 책에 있는 내용인데, 이런 케이스가 제법 많이 있는데다가 실제로 당하면 제일 난감한 케이스라고 한다. 왜냐면 이제 죽으러 가는 사람이라 이별할 때 많이 쓰는 "그래 잘 지내라(일어로는 元気でな)" 같은 인사를 해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죗값을 치러라 같은 말을 해줄 수도 없으니 진짜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서 난감하다고 한다.[14] 링크는 로이터 통신의 기사.[15] 모든 사법권은 최고재판소 및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설치되는 하급재판소에 속한다.
특별재판소는 설치하지 못한다. 행정기관은 종심으로서 재판을 하지 못한다.
모든 재판관은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그 직권을 행사하며 헌법 및 법률에만 구속된다.[16]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17] 이 사건에서 피해자 가족들이 가해자의 사형 집행을 적극적으로 요구하였다. 정부에서 이를 수용한 것인지, 혹은 관례대로 무작위로 집행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18] 재판 당시 "1년만 늦게 저질렀어도 너는 사형이었다"는 말에 "그랬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나라에서 이런 짓을 하려면 미성년 시절 말고는 기회가 없다", "준코는 운이 나빠서 붙잡힌 것 뿐이다. 하필이면 나 같은 놈의 먹이가 됐으니"란 망언을 했다.[19] 일본에서는 대외용 외교문서를 제외한 모든 공문서에서 연호를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날짜표기가 연호로 되어 있다. 본문에서는 연호로 적되 필요시 서력을 병기한다.[20] 본문의 こと는 ~と呼ばれる 내지는 ~と言われる의 뜻을 가져 '~라고 불리는/말해지는'으로 해석되는 접속어로, 앞에 이명 및 통칭, 뒤에 본명을 써 본명이 아닌 이름을 나타낼 때 쓴다. 따라서 아사하라 쇼코가 통칭, 마쓰모토 지즈오가 본명이라는 뜻을 지닌다.[21] 아사하라 쇼코의 범죄사실에 대해서는 현대종교 기사 참조.[22] 범행 시기는 1988년 8월 22일~1989년 6월 11일이므로, 최종 범행 19년 만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특별재판소는 설치하지 못한다. 행정기관은 종심으로서 재판을 하지 못한다.
모든 재판관은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그 직권을 행사하며 헌법 및 법률에만 구속된다.[16]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17] 이 사건에서 피해자 가족들이 가해자의 사형 집행을 적극적으로 요구하였다. 정부에서 이를 수용한 것인지, 혹은 관례대로 무작위로 집행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18] 재판 당시 "1년만 늦게 저질렀어도 너는 사형이었다"는 말에 "그랬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나라에서 이런 짓을 하려면 미성년 시절 말고는 기회가 없다", "준코는 운이 나빠서 붙잡힌 것 뿐이다. 하필이면 나 같은 놈의 먹이가 됐으니"란 망언을 했다.[19] 일본에서는 대외용 외교문서를 제외한 모든 공문서에서 연호를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날짜표기가 연호로 되어 있다. 본문에서는 연호로 적되 필요시 서력을 병기한다.[20] 본문의 こと는 ~と呼ばれる 내지는 ~と言われる의 뜻을 가져 '~라고 불리는/말해지는'으로 해석되는 접속어로, 앞에 이명 및 통칭, 뒤에 본명을 써 본명이 아닌 이름을 나타낼 때 쓴다. 따라서 아사하라 쇼코가 통칭, 마쓰모토 지즈오가 본명이라는 뜻을 지닌다.[21] 아사하라 쇼코의 범죄사실에 대해서는 현대종교 기사 참조.[22] 범행 시기는 1988년 8월 22일~1989년 6월 11일이므로, 최종 범행 19년 만에 사형이 집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