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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25 22:28:00

사형/국가별 현황/일본/사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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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1910~1960년대3. 1970~1990년대4. 2000년대5. 2010년대6. 2020년대7. 미집행 사형수

1. 개요

사형이 집행된 사형수는 집행 날짜에 따라, 수감중인 사형수는 사형 확정 연도에 따라 정렬되어 있다.

사형이 언제 집행되는가는 차이가 있는데 당시 사회 분위기와 정권에 따라, 혹은 그 전해 사형 집행을 얼마나 했느냐에 따라 사형 집행건수가 달라지는 편이다.

1990년대 초반(1989년~1993년)에는 4년간 사형 집행이 동결되었는데 총 4명의 법무대신들이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았다. 이 시기 하세가와 법무대신이 병으로 쓰러지는 등(사임 직후 사망) 사무 쪽에 혼선이 있었고, 1989년에 쇼와 덴노가 사망하고 1991년에 아키히토의 즉위식이 거행되는 등 국가적 사정도 있었지만, 자신이 정토진종의 주지로 있었기에 신념상의 이유로 사형 집행 명령서에 서명하지 않은 사토 메구미(재임 1990년 12월-1991년 11월)의 예도 있다. 그러나 1993년 3월 26일 3명의 사형이 집행되었고 동결은 끝났다. 이 당시 유럽 국가들은 일본의 사형제 폐지에 희망을 걸었으나 결국 이는 좌절되었다.

2010년대 들어 일본의 전반적인 국민여론이 엄벌주의로 가는 추세인 데다 2018년에는 아베 정권 이래 가장 많은 15명이 집행되었는데, 그 다음년에 헤이세이가 끝나고 차기 덴노가 즉위하는 시기라 헤이세이의 극악 무도한 사건은 헤이세이에서 처리한다는 아베 내각의 시각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1년과 2020년, 2023년, 2024년은 사형 미집행년이 됐다. 총리 교체도 영향이 있어 2020년 스가 내각은 코로나 위기로 사형을 집행할 겨를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후의 제2차 기시다 내각은 2021년 12월에 흉악범 3명의 사형을 집행하고, 이후 2022년 7월에도 아키하바라 무차별 살상사건의 범인 카토 토모히로의 사형을 집행하면서 또다시 동결을 끝냈다. 2023년에는 다시 사형 집행을 동결했다. 2024년에도 사형 집행이 동결되었다.

2. 1910~1960년대

이름 사형 집행 날짜 범죄
야마구치 아키라(20) 1913년 12월 9일 카메이도 경찰관 전살 사건, 당시에도 흔하지 않던 전기를 이용한 감전사 살인사건. 경찰1명 사망, 중상자 2명이 발생했다.
A군(15) 미상 도쿄 야나기시마 자전거상 일가족 살인 사건, 남편,아내, 아이들(4세,2세)까지 무참히 살해당한 사건. 초기에 경찰의 계략으로 허위 진술한 피해자가 있었으나 결국 진범을 붙잡았다.
후키아게 사타로 1926년 9월 28일 관동지역 소녀 연쇄 강간 살인 사건
다치바나 요시오1947년 9월 24일치치지마 식인 사건
마토바 스에오(的場末男)
요시이 시즈오(吉井静夫
이토 키쿠지(伊藤菊二)
나카지마 노보루(中島昇)
코다이라 요시오 1949년 10월 총 7건의 연쇄살인을 일으킨 연쇄살인범
이진우(18) 1962년 11월 16일 코마츠카와 사건, 재일 한국인인 18세의 이진우가 2명의 여성을 살해한 사건. 재일 한국인이 사형당한 사례라 여러 가지 의문점이 있다. [1]
손두팔(孫斗八)[2] 1963년 7월 17일 고베 옷가게 주인 살인 사건
카타기리 미사오 1972년 7월 21일 시부야 총격전

위의 사례는 극히 일부로, 이 시기 일본은 제국주의 침략 행보를 걸었고 인권 억압과 후진적인 정치 및 사법체계, 정치 탄압과 식민지 경영, 그리고 군부의 폭주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비합리적인 절차를 거쳐 수많은 사형집행을 실시했다. 그 범위도 일본 본토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 걸쳤으며, 전쟁 및 전투 중 약식으로 재판을 거쳐 사형을 집행하거나 아예 재판도 없이 처형된 케이스도 많았다.

2차대전 패전 이후 미 군정기를 거쳐서야 현대적인 의미의 법률과 사법체계, 민주주의가 작동하게 되었으므로 위의 사례는 일부일 뿐이다.

3. 1970~1990년대

이름 사형 집행 날짜 범죄
스기무라 사다메(杉村 サダメ) 1970년 9월 19일 스기무라 사다메 사건
니시구치 아키라 1970년 니시구치 아키라 사건
코하라 타모츠(小原保, 28세) 1971년 12월 23일 요시노부 유괴 살인 사건
와카마츠 요시키 1975년 12월 5일 요코스카선 전차 폭파 사건
하기와라 마사토 1976년 4월 토다 이상 성욕 살인사건
오쿠보 키요시 1976년 41일동안 8명의 여성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와타나베 켄이치 1988년 6월 16일 네야가와 부부 살인사건
나가야마 노리오 1997년 8월 1일 1968년부터 1969년까지 연쇄 피스톨 사살 사건
하마다 타케시 수감 중 질식사 후쿠오카 보험금 연쇄 살인사건, 웬만하면 사형을 집행 시키는 일본이지만 사형 선고를 받은 범인 중 한 명을 2017년까지 집행하지 않다가 결국 토사물에 목이 막혀 질식사했다.

4. 2000년대

이름 사형 집행 날짜 범죄
카츠타 키요타카 2000년 22건의 자백을 했으나 8건의 살인만 인정되어 사형당한 연쇄살인범
아사쿠라 코지로(48) 2001년 12월 27일 네리마 5인가족 살인사건
타쿠마 마모루 2004년 9월 14일 이케다 초등학교 무차별 살상사건
미야자키 츠토무 2008년 6월 17일 도쿄·사이타마 연쇄 유아납치 살해사건
마에우에 히로시 2009년 7월 28일 자살 사이트 연쇄 살인 사건

5. 2010년대

이름 사형 집행 날짜 범죄
우와베 야스아키 2012년 3월 29일 시모노세키역 무차별 살상사건, 서현역 칼부림 사건과 유사한 사건.
핫토리 준야 2012년 8월 3일 미시마 여대생 살인사건, 금전적 사리사욕 목적이나 살인 전과가 모두 없는 피고인에게 하급심의 사형 판결이 최고 재판소에서 그대로 유지된 유례가 없는 사례
에토 사치코 2012년 9월 후쿠시마 구마 살인사건, 자칭 '기도사'라고 활동하며 구마 의식을 명목으로 신도 6명을 구타하여 살해했고 일본의 10번째 여성 사형수가 되었다.
가나가와 마사히로 2013년 2월 21일 아라카와오키 역 흉기난동과 그 외 1명 살해
고바야시 가오루 2013년 2월 21일 나라 초1 유괴 살인사건으로 피살자가 한 명이지만 죄질이 흉악해 위와 같이 2013년 2월 21일 사형 집행.
카가야마 료지 2013년 12월 12일 오사카 연쇄 강도살인사건
코바야시 미츠히로 2014년 8월 29일 타케후지 히로사키지점 방화 살인사건
칸다 츠카사 2015년 6월 25일 나고야 다크사이트 살인 사건
와카뱌아시 카즈유키 2015년 12월 이와테 강도 살인 사건
요시다 준코 2016년 3월 25일 후쿠오카현 구루메시에서 보험금을 목적으로 4명의 여성 간호사의 가족들을 연쇄 살인한 사건
타지리 켄이치 2016년 11월 11일 우토시 병원장 부인 살인사건구마모토 강도 살인사건
니시카와 마사카쓰(西川正勝·61) 2017년 07월 13일 1991~1992년에 스낵바 여주인 4명을 살해한 혐의
스미타 코이치(住田紘一·34) 2017년 07월 13일 2011년에 여성 1명을 강간 및 토막살해한 혐의. 피살자가 1명이었고 전과도 없었으나, 워낙 죄질이 흉악해서 이례적으로 사형에 처하게 되었다.
세키 테루히코(関 光彦) 2017년 12월 19일 이치카와 4인가족 살인사건, 비록 범행 내용은 인간 말종이지만 1997년 이래 20년 만에, 그것도 재심 중에 사형이 집행되어 일본의 형사 체계의 문제점이 논쟁의 도마에 오른 사건.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 및 13명 2018년 07월 06일 ~ 07월 26일 1995년 도쿄 지하철에 독가스를 퍼뜨려 수많은 사상자를 발생시킨 테러를 지시한 옴진리교 교주와 테러를 실행한 옴진리교 간부 13명. 여기에는 사카모토 츠츠미 변호사 일가족 살해사건을 실행한 범인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 변호사 일가족 살해 사건중 나머지 범인 1명은 재판을 받기전 무라이 히데오 척살 사건로 인해 먼저 사망했다.
오카모토 게이조(60) 2018년 12월 27일 강도살인 등의 혐의로 전직 야쿠자 2명이 사형
스에모리 히로야(67)
쇼지 코이치 2019년 8월 2일 야마토 시내에서 주부 2명을 연달아 강도 살해
스즈키 야스노리 2019년 8월 2일 2004년 12월부터 다음 2005년 1월까지 약 1개월간에 걸쳐 후쿠오카 현내 에서 여성 3명을 잇따라 강도 살해
웨이웨이 2019년 12월 26일 후쿠오카 일가족 살인사건(2003년), 유학생 신분으로 일본에 들어와 2명의 아이를 포함, 일가족을 강도 살인. 일본 법무성이 사형수 신원을 발표하기 시작한 2007년 이후 외국인에 대한 사형 집행은 이번이 2번째이다. 나머지 공범 두 명은 중국으로 도주하는데 성공했으나 양국의 사법공조로 귀국 즉시 공안에게 체포되어 각기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당해에 집행되었다. 이러한 협력을 기념(?)하고자 함인지, 특이하게도 이번 집행은 아베 총리가 한중일 정상회담 차 중국에 방문하고 있었을 때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6. 2020년대

이름 사형 집행 날짜 범죄
타카네자와 토모아키 2021년 12월 21일 2003년에 파칭코 종업원을 대상으로 2명을 교살후 현금을 강탈
오노가와 미츠키
후지시로 야스타카 친척 3명을 살해 하고 옆집에 살고 있는 일가족 4명도 살해 후 자택을 방화하여 전소 시킨 범죄자. 재판 당시 망상 장애로 인한 책임 유무에 대한 변호사의 주장이 있긴 했으나 망상 장애보단 인격 장애로 판단한 재판부가 사형을 선고했다.
카토 토모히로 2022년 7월 26일 아키하바라 무차별 살상사건

7. 미집행 사형수



현재 일본은 총 107명의 사형수가 미집행 상태로 복역중이다.
이름 사형 확정 비고
오다 노부오 1970년 11월 12일 마루요 무선 살인 사건의 범인. 한때 자신이 일했던 전기상점에 침입해 망치로 2명을 폭행하고 현금 22만엔과 손목시계 2개를 가져갔다. 이후 증거 인멸을 위해 석유 스토브를 발로 차서 불을 질러 점원 1명을 살해하였다. 현재 일본의 최장기간 복역(현재 [age(1966-12-05)]년) 사형수로 복역중이다.
오하마 마츠조 1977년 4월 16일 피아노 소음 살인 사건의 범인. 현재 일본 최고령 (1928년생, 현재 [age(1928-06-04)]세) 사형수로 복역중이다.
카타오카 토시야키 1987년 3월 24일 1974년 미쓰비시 중공업 폭탄 테러의 범인. 현재도 공범 2명이 도주중이다.
와타나베 키요시 1988년 6월 2일 19살이었던 1967년 4월부터 1973년 3월까지 살인을 저지른 연쇄 강도살인범. 아이치현에서 매춘부를 살해하였고, 3개월 후엔 지나가던 남성을 살해하였다. 5년 후, 그는 두명의 매춘부를 추가로 살해하였다. 1967년에 저지른 2개의 범행은 범행 당시엔 미성년자였기에 1심에서는 무기징역이 선고되었으나, 2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고 이후 형이 확정되었다.
세키구치 마사야스 1989년 10월 13일 불륜 상대의 남편을 살해하는 것을 사촌에게 의뢰하였고, 빚을 갚지 않는 두 남자를 살해하였다.
가네가와 하지메 1990년 4월 3일 길을 가던 한 여성을 강간하려다 실패해 살해하였다. 가나가와는 10년전에도 강도살인죄로 10년을 복역하고 출소한지 3개월만에 이와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1심에서는 지능이 낮다고 판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고, 이후 형이 확정되었다.
사사키 테츠야 1992년 1월 30일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과의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를 칼로 살해하고 금고에서 30만엔을 탈취한 뒤 부모의 시신을 바다에 유기하였다.
사카구치 히로시 1993년 2월 19일 산악 베이스 사건, 아사마 산장 사건의 범인. 일본 적군파의 3인자로, 해당 사건 외에도 2명을 추가로 살해해 총 17명을 살해한 극악무도한 범죄자다.
오모리 카츠히사 1994년 7월 15일 홋카이도 본청에 소화기 폭탄을 폭발시켜 2명을 살해하고 80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국제 앰네스티 일본 지부에 따르면, 엔자이 가능성이 가장 높은 7명의 사형수 중 한명이라 한다.
이노쿠마 다케오 1995년 7월 3일 음식점 경영에 실패해 살인을 마음먹은 전직 경찰관의 범죄 제의에 수락하여 보석상과 금융업자를 연속적으로 살해하고 약 8000만엔을 강탈였다.
야마노 세이지로 1996년 10월 25일 부동산 회사를 경영하던 그는 사업 경영이 난항을 겪자 쇠 방망이로 2명을 살해한 뒤 현금 2000만엔과 수표 3000만엔을 강탈하는 강도살인을 저질렀다.
아키요시 히데야키 1997년 9월 11일 교제 여성의 언니로부터 '동생과 헤어져라' 라는 말을 듣고 격분해 언니 부부의 일가족 4명을 살해하였다.
히로타 마사하루 1997년 12월 19일 전직 경찰관이었던 그는 빚을 갚기 위해 강도 사건을 일으켜 징역 6년형과 경찰 자격 박탈 형을 선고받았다. 5년후, 그는 가석방되었으나, 가석방이 된지 5일 후 순찰관을 살해하고 총을 강탈한뒤 소비자금융에서 일하는 남성을 총으로 사살하였다.
미야자키 토모코 1998년 9월 4일 빨간색 페어레이디 z를 타고 두 여자를 납치해 몸값을 요구하고 두 여자를 살해하였다.
시바사키 쇼이치 1998년 9월 17일 전 육상 자위관이었던 시바사키는 은행 강도를 위해 권총을 빼앗으려 칼로 경찰 2명을 살해하였으나 경찰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총을 탈취하는데 실패했다. 대한민국의 이학만의 범행과 비슷하다. [3]
무라마츠 세이치로 1998년 10월 8일 강도 목적으로 동생과 함께 동료 남성의 집에 침입해 남성과 그의 어머니를 목졸라 살해하였고, 현금 14만엔과 금고를 가져간 뒤 방화를 하였다. 무라마츠의 동생에게는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
마츠모토 미사오 1998년 12월 1일 한 남성과의 금전 문제를 갖고 있던 그는 돈을 빌리고 자신에게 갚지 않은 남성의 목을 밧줄로 졸라 살해하였다. 이후 반년 뒤엔 자신의 동료의 카드를 훔쳐 인출하다 동료와 동료의 아버지와 싸움을 하게 되었고, 두 사람 또한 살해하였다.
마츠모토 켄지 2000년 4월 4일 지적장애가 있는 마츠모토는 자신의 형이 주도한 강도 행각에 동참해 교토,시가,돗토리에서 자산가를 연쇄살인하였다. 형은 체포 전 자살을 하였고, 지적장애가 있는 마츠모토의 사형 선고에 대한 논쟁이 있었으나 결국 사형이 선고되었다.
진대위(陳代偉)2002년 6월 11일1992년 5월 30일, 타마시의 한 파칭코 매장을 대상으로 중국 출신 불법체류자 3인이 강도를 공모, 폐점 이후 침입해 종업원 2명과 점장을 살해하고 현금 약 234만엔을 훔쳐 도주했다. 두 범인은 1심에서의 사형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었지만, 주범인 왕강용이 출국 후 체포되지 않아 집행 대기 중이다.
하력(何力)
요코타 켄지 2002년 10월 24일 스낵바에서 일하는 여성과 술을 마시고 택시비로 2만엔을 주었으나 여성이 이를 '뽀찌'라고 말하는 것에 격분해 목을 졸라 살해한 뒤 시체를 토막내고 강에 유기하였다. 과거 다른 살인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년만에 가석방을 받았으나, 이와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황진선(黄奕善) 2004년 4월 19일/ 2005년 9월 16일 말레이시아계 중국인 폭력단원 황진선과 시모야마 신이치는 강도단을 결성해 두달 안에 3명을 살해하고 3000만엔을 강탈하였다.
시모야마 신이치
쿠라요시 마사타카 2004년 12월 2일 동료와 함께 직장인 한명과 함께 있던 여성을 살해하고 현금을 강탈하였다. 이후에도 강도사건을 저지르다 체포되었다.
사와모토 노부유키 2004년 12월 14일 부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던 공범과 함께 불법 체류중이던 필리핀 여성의 집에 침입해 목을 졸라 살해하였다. 반년 후엔 파칭코에서 강도살인을 벌여 3000만엔을 강탈하였다.
마나카 히로미 2005년 1월 27일 화재 보험금을 얻기 위해 차량을 태우고 차량을 태워준 공범을 살해하였다. 이후 보험금 지급에 성공하자 비슷한 수법으로 남성을 또 살해하였다.
호리에 모리오 2005년 9월 26일 자산가인 노부부에게 일을 하고 싶다며 부탁을 했지만 부부가 언급을 피하자 이에 격분해 부부를 철봉으로 때려 살해한뒤 현금을 강탈하였다.
우에다 요시노리 2005년 12월 15일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리석은 성격 탓에 부모로부터 의절당한 그는 개 훈련소를 운영하기 위해 구입한 안락사 약품으로 5명을 살해하였다.
쿠보리 다케히코 2006년 2월 14일 금전 문제를 겪고 있던 남성 한명을 살해하였고, 2년 뒤에도 강도살인을 저질렀다.
야마구치 마스오 2006년 2월 24일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동료 한명의 돈을 강탈하기 위해 살해하였고, 1년 후에는 미술관 원장을 살해해 돈을 강탈하였다.
도요타 요시미 2006년 3월 2일 돈을 빼앗기 위해 동거하는 여성에게 각성제를 투입시켜 살해하였고, 1년 뒤 그림을 훔쳐 담보로 대출로 받고, 대출금을 갚기를 원치 않아 돈을 빌려준 여성 또한 살해하였다.
에토 히사시 2006년 9월 7일 자산을 빼앗을 목적으로 동료 3명과 함께 노래방에서 노인 부부를 살해 후 암매장하였다.
이시카와 케이코 2006년 9월 21일 아버지가 영업하는 가게의 사정이 어려워지자 이를 수습하기 위해 아버지의 지인 남성을 살해 후 1만엔을 강탈하였고, 10개월 뒤 골프 모임의 동료 여성에게 돈을 빌려달라 부탁했지만 거절당해 살해 후 절벽 아래로 시체를 유기하였다.
나가 카츠히사 2006년 10월 12일 자신의 폭력적인 성향을 피해 도망친 아내에게 끊임없이 재결합을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해 아내의 목을 졸라 살해하였고, 1년 뒤 지인 남성을 납치, 감금해 약 2개월 동안 고문해서 살해하였다.
마츠모토 카즈히로 2007년 1월 30일 보험 살해를 의뢰받고 공범인 자신의 동생과 시모우라 에이치와 함께 의뢰자의 회사 임원인 남성을 살해 후 1350만엔을 얻게 되었다. 그후 공범들과 함께 한 남성에게 보험을 들게 하고 필리핀으로 출국해 마닐라에서 살해하였다. 이후에도 여행사 직원을 납치, 살해하였다.
시모우라 에이치
니시야마 쇼조 2007년 4월 20일 파칭코에 중독되어 빚을 갚기 위해 동료 남성과 함께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노인 여성을 살해하고, 현금 3000엔과 통장을 훔쳤다. 니시야마는 과거에도 살인으로 무기징역 판결을 받았으나, 14년 9개월만에 가석방을 받고 2년 6개월 후 해당 범행을 저질렀다.
조타 히로시 2007년 4월 19일 이케부쿠로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의 범인.
나카하라 스미오 2007년 6월 12일 폭력단원이었던 나카하라는 자신의 조직원 4명을 시켜 상대 조직의 조장을 살해하였고, 부하 한명의 체포가 다가오자 입막음을 위해 그 부하를 살해 후 암매장하였다.
설송(薛松) 2007년 6월 19일 중국인인 설송은 알게 된 기혼 여성에게 교제를 제안하지만 거절당해 그녀에 집에 침입해 여성과 여성의 남편을 살해하였다.
하마가와 쿠니히코 2007년 7월 5일 돈을 빼앗을 목적으로 동료 남성과 함께 보험 대리인인 남성을 권총으로 살해 후 현금 1000만엔과 자동차를 탈취하였다. 3개월 후에도 같은 수법으로 다른 남성을 살해하였다.
고토 요오지 2007년 9월 28일 야쿠자 출신이던 그는 자신의 부하가 자신을 배신하였다는 이유로 손발을 묶고 강으로 던져 살해하였다. 이후 본인과 사이가 좋지 않던 이들 4명을 납치해 창고에 가둔후 가스를 살포해 1명을 살해하고 3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오카오 카즈오 2008년 1월 31일 1억엔의 보험금을 위해 애인의 전 남편을 바다로 수장시켜 살해하였다. 6년 후, 보험금을 모두 탕진해 애인의 차남도 같은 방식으로 살해하였다.
하세가와 시즈오 2008년 3월 19일 부모의 사망 보험금과 유산으로 동생과 금전적 트러블을 겪던 그는 부모의 모든 자산을 얻기 위해 동생을 살해하였다. 하세가와는 과거 다른 살인 사건으로 무기징역 판결을 받았으나, 23년 2개월만에 가석방을 받고, 약 2년 후 해당 범행을 저질렀다.
카가 토시야키 2008년 6월 5일 불꽃놀이를 보러가자는 자신의 말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동거녀의 딸을 살해하였고, 이후 집으로 돌아온 동거녀를 살해 후 금품을 빼앗았다.
야기 시게루 2008년 7월 17일 보험금을 얻기 위해 본인의 술집에 자주 오는 단골손님을 자신의 내연녀를 이용해 독극물을 넣은 음식을 먹여 천천히 살해하고 강에 유기하였다. 이후에도 비슷한 방법으로 남성 한명을 추가로 살해하였다.
하야시 마스미 2009년 4월 21일 와카야마 독극물 카레 사건, 무죄라는 의혹이 짙은 사건으로 죄질이 흉악함에도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다. 현재 재심 계류중이다.
카자마 히로코 2009년 6월 5일 사이타마 애견가 살인사건의 범인. 남편 세키네 겐과 함께 강아지 사육장을 운영했다. 세키네 겐이 자신의 지인 남성에게 강아지를 속여 판매한것이 들통나자 그를 불러 강아지용 안락사 약을 먹여 살해하였고, 시신을 매우 잔인하게 훼손했다. 이후에도 같은 방법으로 두명을 더 살해하였다.[4]
이시카와 스그루 2009년 6월 23일 사이가 좋지 않던 남성을 살해한 뒤 콘크리트 블럭을 묶어 바다에 유기하였고, 한달 뒤 대부업을 운영하는 남성의 의뢰를 받아 남성 한명을 추가로 살해하였다.
코히나타 마사토 2009년 7월 10일/ 2013년 6월 7일 적대하는 폭력단 조직의 회장을 살해하라는 의뢰를 받고 공범 야마다 켄이치로와 함께 폭력단 회장의 스낵바로 가 보디가드를 살해하였고, 이후 가게에 들어가 총을 난사해 스낵바 안에 있던 3명을 추가로 살해하였다.
야마다 켄이치로
스가 미네오 2009년 12월 11일 부동산 중개인이었던 그는 땅은 판매하는데 차질이 있다 판단한 부동산 회사 사장을 살해하였다. 5개월 후에는 허구의 건설 계획을 만들어 건설 회사의 사장을 유인한뒤 살해해 계약금 41만엔과 현금 900만엔을 강탈하였다.
오하시 켄지 2010년 1월 29일 도박 중독으로 빚이 생긴 그는 일면식이 없는 여성의 집에 침입해 여성을 살해하고 현금 1만 5천엔을 강탈하였다. 며칠 뒤에도 같은 방식으로 여성의 집에 침입해 여성을 살해하였다.
타카오 코지 2010년 9월 16일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이유로 민가에 놓인 신문지를 이용해 방화를 저질러 일가족 4명을 살해하였다. 그는 해당 사건 이전에도 같은 이유로 방화를 3번이나 저질렀다.
후지사키 소지 2010년 10월 14일 유흥비를 내는데 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노인 여성의 집에 침입해 여성을 살해하고 약 7만엔을 강탈하였다. 10일후에도 같은 방식으로 다른 노인 여성을 살해하였다.
타케모토 마사요시 2010년 11월 18일 주점 영업을 하던 그는 직원인 타케모토 타다시에게 한 남성의 살해를 의뢰하고 예금 통장을 빼앗았다. 약 3주 후에는 보험을 이용해 타다시를 시켜 노숙자를 살해하였다.
타케모토 타다시
코모리 아츠시2011년 3월 10일야쿠자 소속 18~19세의 미성년자 3인조가 1994년 9월 28일부터 10월 8일까지 시비가 붙은 일반인 총 4명을 폭행살인하고 시신을 유기한 오사카·아이치·기후 연쇄 린치 살인 사건의 범죄자. 1심에서는 코바야시만을 주범으로 보아 사형, 남은 2인에게는 무기징역 판결이 내려졌으나, 2심에서 피고인 모두가 동등하게 범행에 가담했다고 보아 전원 사형을 선고한 후 상고가 기각되었다.
코바야시 마사토
하가 마사요시
고바야시 류지 2011년 3월 25일 히가시오사카 생매장 살인사건의 주범.
타키 오사무 2011년 4월 11일 불륜을 저지르던 그는 자신의 애인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하는 회사 동료를 칼로 살해하였다. 약 1년 뒤 불륜 사실이 아내에게 들키자, '아내가 재혼하기를 원치 않는다'라는 황당한 이유로 아내 또한 살해하였다.
후지가미 유키하루 2011년 4월 19일 보험 사기를 위해 동료 5명과 함께 추돌 사고를 일으켜 약 1400만엔을 얻었지만 분배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자 운전자였던 남성을 살해하였다. 반년 후에는 보험 사기 행각을 알게된 회사 동료를 입막음 목적으로 살해하였다.
오야마 키요타카 2011년 6월 7일 보험금을 목적으로 자신의 양아버지를 둔기를 내리쳐 살해해 약 6000만엔을 얻은 그는 2년 후 자신의 아내에게 수면제를 먹게한 후 욕실에서 목졸라 살해하였다. [5]
이케다 히로유키 2011년 6월 16일 요코하마 토막 살인사건의 실행범. 피해자의 목을 전기톱으로 참수하는 행동을 저질렀으며 일본에 배심원제(재판원 재판)가 도입된 이후 최초로 사형이 확정된 사례다.
키타무라 사네오(北村実雄) 2011년 10월 17일 오무타 연쇄 살인사건, 남편과 아내, 장남, 차남까지 모두 사형 선고를 받은 이례적인 사건. 2011년 10월에 4명 모두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차남이 양친에게 편지를 주고받게 하지 못한 구치소를 상대로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하고 있어 모두 집행되지 않고 있다.
키타무라 마미(北村真美) 2011년 10월 3일
키타무라 타카시(北村孝) 2011년 10월 17일
키타무라 타카히로(北村孝紘) 2011년 10월 3일
카네이와 유키오 2011년 11월 29일 교제하던 여성이 돈을 돌려줄수 없다는 이유로 여성의 목을 졸라 살해하였다. 4년 후에는 교제하는 다른 여성이 결혼을 거절하자 같은 방식으로 살해하였다.
마쓰나가 후토시 2011년 12월 12일 매우 악랄하고 잔인하기로 유명한 키타큐슈 감금 살인사건의 주범. 7명이나 되는 사람을 살해하였으나 그 누구도 제 손으로 죽이지 않았다.
후쿠다 다카유키 2012년 2월 20일 야마구치현 히카리시 모녀살인사건,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1,2심까지 무기징역을 받았으나 피해자 유족에게 조롱하는 편지를 보내고 재판에 불출석하는 등 개선의 요지가 보이지 않자 최고 재판소가 2심으로 파기 환송을 보내면서 아이러니하게 2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상고를 기각. 사형이 확정되었다. 현재 사형 대기중인 상태.
치바 유타로(만 18세) 2016년 6월 17일 이시노마키 살인사건의 범죄자. 1999년 이후로 나타난 첫 소년 사형수
키지마 카나에 2017년 4월 14일 뚱녀 꽃뱀 살인사건의 주범
호미 코세이 2019년 7월 18일 야마구치 연속 살인 방화사건
시라이시 타카히로 2021년 1월 5일 가나가와현 토막살인사건을 저지른 범죄자. 아이스 박스에 피해자 9명의 머리 일부분을 보관했으며 연쇄살인이 아닌 연속살인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우에마츠 사토시 2022년 12월 12일 사가미하라 장애인 시설 흉기 난동 사건의 주범. 사망자 19명, 부상자 26명이라는 최악의 범죄를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정남규같이 카메라를 보고 웃는 등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적인 면모를 보였다.
이마이 하야토 2023년 5월 11일 가와사키 노인요양시설 연쇄 살인사건
엔도 유키 2024년 2월 2일 짝사랑하던 여성에게 고백했지만 거절당하여 여성의 집에 침입해 자고있던 여성의 부모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무참히 살해한 후 방화를 저질렀다. 범행당시 엔도 유키는 미성년자인 19세였지만, 2022년 소년법 개정 최초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아오바 신지 2025년 1월 27일 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 방화 사건


[1] 사형 구형 기간에 대한 논란이지, 해당 인물이 사건을 저지른 게 아니라는 것이 아니다.[2] 위 이진우와 같은 재일 한국인이다.[3] 공통점은 우선 둘다 칼로 잔혹하게 경찰관 2명을 죽였다는 것이다. 차이점은 이학만은 자신을 체포하려는 경찰관들을 살해한것이고, 시바사키는 은행 강도 목적으로 총기를 탈취하려 경찰관들을 살해한 것이다.[4] 원래 다른 한명 또한 그녀와 세키네 겐이 벌인 공동 살인으로 취급되었으나, 불기소 처분으로 범행이 인정되지 않았다. 세키네 겐 역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2017년 지병이 악화되어 병사했다.[5] 오야마의 아들은 인터뷰를 진행한적이 있다. 인터뷰에서 가해자의 가족이자 동시에 피해자의 가족으로서 살아가는 그의 혼란스러운 마음이 드러난다. https://youtu.be/y3KBKtO2iVg?si=9NKge3teqi8ATe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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