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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6 22:41:09

야마구치현 히카리시 모녀살인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상세
2.1. 범인2.2. 재판 과정
3. 사건의 여파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1. 개요

[ruby(光市母女殺人事件, ruby=ひかりしぼしさつがいじけん)]
파일:attachment/야마구치현 히카리시 모녀살인사건/hikari1.jpg
피해자 모토무라 야요이(), 유카() 모녀
파일:attachment/야마구치현 히카리시 모녀살인사건/hikari2.jpg
범인 후쿠다 다카유키( / ふくだ たかゆき)

1999년 4월 14일 일본 야마구치현 히카리시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2. 상세

1999년 4월 14일, 오후 2시 30분 무렵 야마구치현 히카리시의 한 아파트에 후쿠다 타카유키(당시 18세)가 침입했는데 배수구 검사를 하러 왔다고 가장해서 들어간 뒤 집에 있던 피해자 모토무라 야요이(당시 23세)를 강간하려고 쓰러뜨렸지만, 야요이가 맹렬하게 저항하자 목 졸라 살해한 뒤 시체 대상 범죄를 저질렀다.

더욱이 시간을 하면서 생후 11개월 밖에 안 된 야요이의 딸 모토무라 유카가 울자 시끄럽다는 빌미를 내세워 마루에 내던진 뒤에 노끈으로 목 졸라 살해해 버린 뒤[1] 모녀의 시신을 벽장에 숨기고, 벽장에 있던 지갑을 훔쳐서 달아났다.

이후 지갑에 있던 화폐로 오락실을 전전하다가 사건으로부터 4일 뒤인 1999년 4월 18일에 체포되었다.

2.1. 범인

후쿠다 타카유키는 도라에몽 살인마라고 불린 일본의 살인자이며, 미성년자 시절 살인을 저질러 사형을 선고받은 나름 이례적인 사례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여느 흉악범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가정환경도 불우하였다.

그는 폭행과 폭언을 일삼는 아버지를 둔 가정에서 성장했으며[2] 어머니는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다가 정신질환을 얻어 그가 중학교 1학년이었을 때 자살했다.[3] 하지만 이 아비라는 작자는 일말의 반성의 기미도 없이 바로 필리핀 여성과 재혼하였다.

이러한 환경이 그에게 영향을 끼쳤는지 그는 여느 사춘기 소년들과 마찬가지로 성적인 호기심을 갖기 시작하였는데, 문제는 이 생각들이 어딘가 엇나간 위험한 생각들이었다는 것이 문제다. 그는 아버지와 대화를 할 때 야요이를 성적 대상으로 삼은 적도 있다고 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취직했지만, 2주만에 출근을 잘 하지 않기 시작했고, 게임을 하는 등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1999년 4월 14일, 아무 여자나 강간하고 싶다는 충동이 생겼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 결과 이 사건을 초래했다.

사건 이후 재판 과정에서 애비라는 작자는 아들이 범죄를 저질러 자신을 향한 비난의 화살이 날아오자 매우 뻔뻔한 태도로 일관했다. 그의 망언은 아래와 같다.
아들이 우연히 범죄를 저지른 것이지 나와는 관련이 없다.
다른 주변의 어른들도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
나도 지금 이 사건으로 인해 많이 힘들다.
피해자 남편도 빨리 사건을 잊고 새 가정을 만들어라.

2.2. 재판 과정

1999년 6월, 야마구치현 지방법원에서 1심 재판이 진행되었다. 검찰은 범인이 미성년자임에도 죄질이 너무 무겁다는 이유로 사형을 구형했지만, 1심 법정은 '흉악한 범죄이지만, 살인이 우발적이었고, 반성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에 유족들과 일본 사회는 경악에 휩싸였고, 가정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남편 모토무라 히로시는 기자회견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사법에 절망했다. 빨리 피고를 사회로 내보내라. 내가 직접 죽이겠다."
(した。早くを社会に出してほしい。私がこの手で殺す。)

검찰이 항소해 히로시마 고등법원에서 2심 재판이 진행되었으나 2심 재판에서도 검찰의 항소가 기각되었다. 이에 재판은 최고재판소까지 가게 되었는데, 검찰은 후쿠다가 1심 이후 지인에게 보낸 유족을 조롱하는 편지를 증거로 제출하면서 후쿠다에게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거기에 후쿠다의 변호사들이 최고재판소 변론에 불참하는 등으로 판사에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서 결국 최고재판소는 '파기 환송'을 명령하고, 히로시마 고등법원에 사건을 되돌려 보냈다.

2007년 5월 24일, 파기 환송심이 열렸다. 변호인 측은 '살의가 없었기 때문에 과실치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반면 검찰 측은 '명백하게 살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형이 당연하다'라고 맞섰다.

결국 2008년 4월 22일, 히로시마 고등법원은 사형을 선고했다. 변호인단은 여기에 불복해 상고하여 상고심을 진행했으나 2012년 2월 20일 최고 재판소가 상고를 기각하며 후쿠다 타카유키에 대해 사형이 확정되었다. 후쿠다는 현재 사형수로서 히로시마 구치소에서 사형을 대기하면서 복역 중이다.

3. 사건의 여파

다만, 피고 측 변호인단에 대한 징계청구를 거부한 변호사회의 입장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억지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형사재판에서 변호사는 '설령 피고인이 극악무도하고 흉악한 범죄자더라도' 피고인을 변호하고 피고의 이익을 위해 노력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7] 물론 그렇다고 증거조작이나 증인매수 같은 불법적인 짓거리를 해도 상관없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지만 법적 테두리 내에서 피고인이 받는 처벌의 수위를 낮추려고 노력하는 것은 변호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정황상 가능하기만 하다면 의도적인 살인보다 형량이 가벼운 과실치사를 주장하는 것은 변호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역할과 의무를 수행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는 것은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아무리 변호사라고 해도 저렇게 흉악한 범죄자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라고 도덕적인 의분을 보이는 것은 얼핏 보면 정당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위험한 논리다. 왜냐하면

2. 변호사에게 있어서 피고의 변호란 의무이자 권리로서 검사의 '기소'나 판사의 '판결'과 동등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개인적 감정(설령 도덕적 감정이라 하더라도)을 이유로 변호사가 자기 책임을 방기해도 좋다고 말하는 것은 검사가 개인적인 감정을 이유로 기소 내용을 제멋대로 좌지우지하거나 판사가 자기 감정에 따라 멋대로 형량을 늘이고 줄여도 좋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3. 법과 도덕, 상식에 따라 피고의 행동을 판단하는 것은 판사의 직무이고 피고의 범죄사실을 주장하고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검사의 직무이다. 그런데 위의 주장처럼 변호사에게 피고의 범죄에 대한 단죄와 책임추궁까지 요구할 거라면 굳이 변호사, 검사, 판사의 업무영역을 나눌 필요도 없지 않은가?||
조금 더 구체적인 차원에서 변호사회가 징계청구를 받아들여 해당 변호사들을 징계한 경우 어떤 결과가 나타날 것인지를 생각해 본다면 이는 변호사가 형사 피고인의 양형(量刑)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는 이유로 징계 받은 선례(先例)를 만드는 일이 된다. 이럴 경우 변호사들은 당연히 피고인을 적극적으로 변호하는 것을 꺼리게 될 것이다. 만약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면 정말 무죄누명을 쓴 피고인들의 이익은 누가 지켜줄까? 변호사로서 자신의 의뢰인을 변호하는 이러한 사례와 많은 경우 범죄행위에 가담하기까지 하거나 협조하는 야쿠자 고문 변호사의 사례를 같은 선상에 놓고 부도덕한 행동이라고 까는 것은 현대 법 논리의 기본조차 무시하는 말도 안 되는 억지라는 것이다.

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1] 유카는 한 번 내던져진 뒤에도 엄마의 시체에 울면서 기어갔지만 후쿠다는 그런 유카를 몇 번이고 내던지고 교살했다.[2] 여담이지만 그의 아버지가 그의 어머니를 강제임신시켜 태어난 자식이 후쿠다였다.[3] 한 번은 후쿠다 타카유키가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막아서자 이에 더욱 분노한 그의 아버지가 그를 기절할 때까지 폭행한 뒤, 물속에 머리를 쳐박는 등 지독한 폭행을 가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원문] うはなのが今の世だ。ヤクザはツラで逃げ、馬鹿(ジャンキー)はげ、私はのせいにして逃げるのだよ、アケチ君[원문2] 犬がある日かわいい犬と出会った。… そのまま「やっちゃった」… これはでしょうか[6] 일본 국민 6,000명이 1명의 변호사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건데 한국은 2,500명에 1명이다.[7] 대한민국에서 김길태조두순국선변호인이 변호를 맡았다. 아무리 죄질이 나쁜 범죄자라도 변호를 받은 권리는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고 일본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