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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04 19:57:22

우토시 병원장 부인 살인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사건 경위
2.1. 병원장 부인의 처참한 죽음2.2. 1시간의 공백2.3. 의문의 범행 동기와 잡히지 않는 실마리
3. 또 다른 강도살인 사건, 그리고 범인 검거4. 재판

1. 개요

宇土市院長夫人殺害事件[1]

2004년 일본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약 7년 동안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었다가 범인이 다른 강도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면서 해결되었다.

2. 사건 경위

2.1. 병원장 부인의 처참한 죽음

2004년 3월 13일 구마모토현 우토시 하시리가타마치 소재 하시리가타 의원의 나카츠 타쿠로(中津卓郎, 당시 54세) 원장은 오후 1시경까지 진료를 본 후 일단 귀가했다가 2시경에 골프 연습을 하러 나갔는데 1시간 가량 연습을 마치고 오후 3시 30분경 귀가한 후 현관 문 앞에 작은 혈흔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장이 황급히 문을 열어 보니 그의 아내 치즈코(千鶴子, 당시 49세)가 현관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숨져 있었다. 당시 현장은 현관은 물론 심지어 천정과 벽에까지 피가 튀었을 정도로 참혹한 상태였다고 한다.

원장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치즈코가 유독 얼굴을 집중적으로 공격당해 무수한 자상[2]을 입은 점을 토대로 이 사건을 살인사건으로 규정하고 마츠바시경찰서(現 우키경찰서)에 수사본부를 설치하여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으며 보다 정확한 사인을 밝혀내기 위해 14일에 부검이 실시되었다. 당초에는 범인 체포는 시간 문제라고 여겼던 경찰이지만 사건 현장이 평소 인적이 드문 곳이었기 때문에 수사는 난항을 겪게 되었다.

2.2. 1시간의 공백

사건 당일 나카츠 원장 부부는 함께 점심식사를 했고 원장은 응급환자의 진료를 마친 뒤 전술한 바와 같이 2시경에 골프연습장으로 갔다가 오후 3시 30분경에 귀가해 아내의 시신을 발견했다. 치즈코의 사망 추정 시각은 오후 3시경으로, 범인은 2시에서 3시 사이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었다. 한편 나카츠 원장은 평소에도 골프연습장에 자주 다녔다고 하는데 그렇다는 것은 범인이 치즈코가 집에 혼자 남는 시간대를 알고 있었다는 것으로도 해석되었다. 그러나 이 1시간의 공백이 과연 우연인지, 범인의 계산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2.3. 의문의 범행 동기와 잡히지 않는 실마리

치즈코는 머리와 얼굴에 집중적으로 공격을 당했다. 시신 옆에는 원장의 집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식칼이 남아 있었으나 치즈코를 사망에 이르게 한 가장 치명적인 부상은 끝이 뾰족한 금속제 둔기로 강하게 맞은 듯한 머리 부분의 외상이었다.[3] 이렇듯 살해 수법이 끔찍하고 잔인한 반면 굳이 식칼을 범행 현장에 남겨두고 둔기는 챙겨 갔다는 점에서 계획범일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범행 동기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범인이 거실 옷장을 뒤진 흔적이 있었고 치즈코의 옷과 가죽 핸드백을 가져간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이상하게도 현금이 들어 있던 휴대금고와 통장 등은 손대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었기 때문에 금품을 노린 범죄로 보기에는 어폐가 있었다. 한편 경찰은 잔혹한 범행 수법으로 미루어 보아 원한관계에 의한 살인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과의 인간관계 등에 대해서도 조사했지만 별다른 마찰은 없었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금품 목적의 강도살인인지, 원한관계에 의한 살인인지 좀처럼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치즈코가 평소 집에 방문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반드시 확인하는 습관이 있었다는 점 때문에 면식범일 가능성도 제기되었고 이로 인해 한때는 남편인 나카츠 원장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일부 있었지만 원장에게는 명백한 알리바이가 있었기 때문에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현장에 남은 족적을 통해 범인이 현관으로 침입했다가 그대로 현관으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되었고 이 족적은 길 건너편에 위치한 약국 부지까지 이어져 있었다. 현경은 이 족적을 통해 범인이 신고 있던 신발이 나이키 제품임을 밝혀내기는 했지만 범인의 성별이나 연령대 등까지는 판별하지 못했다. 거듭되던 수사에도 좀처럼 실마리가 잡히지 않자 현경은 전단을 배포하고 사진을 공개하는 등 온갖 루트를 통해 사건에 대한 제보를 요청했으나 해결될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은 채 시간만 계속 흘러갔다.

그렇게 사건이 영구 미제로 남게 되는가 싶었을 때...

3. 또 다른 강도살인 사건, 그리고 범인 검거

이 사건으로부터 7년이 지난 2011년 2월 23일 오후 6시 10분경 구마모토시 도로쿠 소재의 어느 가정집에 한 남성이 찾아왔다. 집주인(회사원[4], 당시 72세)이 아직 퇴근하지 않아 집에는 부인(당시 65세) 혼자 있었는데 이 남성은 "차가 집 벽을 들이받았다"라고 거짓말을 해서 현관 문을 열게 한 뒤, 집안으로 침입해 부인의 얼굴과 목 등을 발리송으로 수 차례 찔러 살해한 후 6시 30분경 퇴근한 집주인과 마주치자 재차 발리송으로 집주인의 가슴과 옆구리 등을 찔러 전치 1개월의 중상을 입히고 도주했다.

이틀이 지난 2월 25일 오후 4시경 구마모토시 나가미네히가시에 거주하던 39세의 무직 남성 타지리 켄이치(田尻賢一)가 가족과 함께 경찰서에 출두했다. 그리고 타지리는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되었고 후에 강도살인 및 강도살인 미수로 혐의가 변경되어 검찰에 송치되었다. 그러던 중 도로쿠 사건의 범행 수법이나 현장 상황이 치즈코 살인 사건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한 경찰이 조사를 계속한 결과, 타지리는 치즈코도 자신이 공구로 때려 숨지게 했다고 진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증언대로 구마모토시 토미아이정의 한 산 속에서 그가 치즈코 살해 당시 입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옷이 발견되었다.

타지리는 경찰 조사에서 도로쿠 사건의 범행 동기에 대해 단순히 금품 목적이라고 진술했으며, 현금 약 10만엔과 2만엔 상당의 상품권을 훔쳤다고 밝혔으며 택배 일을 하면서 집에 가 본 일이 있었고 돈이 많아 보여서 빚을 갚을 목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도 증언했다. 자세한 내용은 구마모토 강도 살인사건 문서 참조.

4. 재판

1심 공판은 재판원 재판[5]으로 진행되었으며 구마모토 지방법원은 2011년 10월 25일 타지리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타지리는 항소했으나 2012년 4월 11일 후쿠오카 고등법원이 항소를 기각했고 최고재판소에 상고했다가 같은해 9월 10일 상고를 취하함으로써 사형이 확정되었다.

2016년 11월 11일 범인 타지리는 카네다 카츠토시 법무대신의 집행 명령에 따라 후쿠오카 구치소에서 45세의 나이로 사형에 처해졌다.#


[1] 우토시 원장 부인 살해사건[2] 후에 자상이 아니라 둔기에 맞아서 생긴 상흔으로 판명되었다.[3] 이래서 수사 초기에 치즈코의 머리 부분 상흔이 칼에 찔린 상처로 여겨졌다.[4] 정확한 직급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중역급으로 알려졌다.[5] 한국의 국민참여재판에 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