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FFFFFF)" {{{#!wiki style="margin-top: -8px; margin-bottom: -8px" | <tablebordercolor=#ffffff,#1c1d1f><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fff,#1c1d1f> |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 | | | | |
1986 삿포로 | 1990 삿포로 | 1996 하얼빈 | 1999 강원 | 2003 아오모리 | |
6회 | 7회 | 8회 | 9회 | 10회 | |
| | | | | |
2007 창춘 | 2011 아스타나·알마티 | 2017 삿포로 | 2025 하얼빈 | 2029 네옴 | |
* 2021 동계 아시안 게임은 개최 희망지가 없는 관계로 코로나19와 무관하게 취소됨. | |||||
둘러보기 : 역대 하계 아시안게임 | }}}}}}}}} |
1990 삿포로 동계 아시안 게임 | ||
제2회 동계 아시안 게임 第2回アジア冬季競技大会 1990 삿포로 동계 아시안 게임 II Asian Winter Games™ Sapporo 1990 | ||
| ||
대회기간 | 1990년 3월 9일 ~ 1990년 3월 14일 | |
개최국 | | |
참가국 | 9개국 | |
참가선수 | 310명 | |
경기종목 | 4개 종목 - 33개 세부 종목 | |
개회 선언 | 아키히토 일본 천황 | |
선수 선서 | 하시모토 세이코 | |
개·폐회식장 | 마코마나이 실내 체육관 |
[clearfix]
1. 개요
1990년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개최된 제 2회 동계 아시안 게임. 원래 인도에서 개최하기로 했으나 기술적인 문제, 재정적자 등으로 개최권을 반납하여 1989년 긴급히 이전 대회인 1986 삿포로 동계 아시안 게임을 개최했던 일본 삿포로로 개최지를 옮겼다.2. 참가국
300명이 넘어가는 최초의 동계 아시안 게임.*) 원래는 홍콩도 출전하려 했으나, 이번에는 심판만 보냈다.
3. 개최 종목
단 6개의 스포츠 종목만이 열렸다. 피겨 스케이팅은 1990년 세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와의 충돌로 인해 일시적으로 중단되었고, 라지힐(90m) 스키 점프는 여전히 시범 스포츠였다.- 알파인 스키 (4)
- 바이애슬론 (3)
- 크로스컨트리 스키 (6)
- 아이스 하키 (1)
-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10)
- 스피드 스케이팅 (9)
시범 종목
- 스키 점프 (1)
4. 메달 집계
| |||||
순위 | 국가 | 금 | 은 | 동 | 합계 |
1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18 | 16 | 13 | 47 |
2 | [[중국| ]][[틀:국기| ]][[틀:국기| ]] | 9 | 9 | 8 | 26 |
3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6 | 7 | 8 | 21 |
4 | [[북한| ]][[틀:국기| ]][[틀:국기| ]] | 0 | 1 | 4 | 5 |
5 | [[몽골| ]][[틀:국기| ]][[틀:국기| ]] | 0 | 0 | 1 | 1 |
합계 | 33 | 33 | 34 | 100 |
5. 대한민국의 메달리스트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 |||||
금메달 | 김기훈 금 3 은 1 | 1,000m | |||
금메달 | 1,500m | ||||
금메달 | 5,000m 계주 | ||||
은메달 | 500m | ||||
금메달 | 권영철 금 1 동 1 | 5,000m 계주 | |||
동메달 | 1,000m | ||||
금메달 | 모지수 금 1 | 5,000m 계주 | |||
금메달 | 이준호 금 1 은 2 | 5,000m 계주 | |||
은메달 | 1,500m | ||||
은메달 | 3,000m | ||||
은메달 | 이현정 은 1 | 1,000m | |||
금메달 | 김소희 금 1 은 1 | 1,500m | |||
은메달 | 3,000m 계주 | ||||
은메달 | 이윤숙 은 1 | 3,000m 계주 | |||
은메달 | 이현정 은 1 | 3,000m 계주 | |||
은메달 | 전이경 은 1 동 1 | 3,000m 계주 | |||
동메달 | 1,000m | ||||
합계 | 금 4 은 5 동 2 | ||||
스피드 스케이팅 | |||||
금메달 | 배기태 금 2 은 1 | 1,000m | |||
금메달 | 1,500m | ||||
은메달 | 500m | ||||
동메달 | 오용석 동 1 | 1,500m | |||
동메달 | 이인훈 동 1 | 1,500m | |||
동메달 | 유선희 동 1 | 500m | |||
합계 | 금 2 은 1 동 2 | ||||
스키 | |||||
은메달 | 박기호 은 1 | 노르딕 40km 계주 | |||
은메달 | 박병철 은 1 | 노르딕 40km 계주 | |||
은메달 | 조성훈 은 1 | 노르딕 40km 계주 | |||
은메달 | 홍근표 은 1 | 노르딕 40km 계주 | |||
합계 | 금 0 은 1 동 0 | ||||
알파인 스키 | |||||
동메달 | 허승욱 동 1 | 알파인 스키 남자 회전 | |||
합계 | 금 0 은 0 동 1 | ||||
바이애슬론 | |||||
동메달 | 김상욱 동 1 | 남자 30km 계주 | |||
동메달 | 김용운 동 1 | 남자 30km 계주 | |||
동메달 | 김은기 동 1 | 남자 30km 계주 | |||
동메달 | 신용선 동 1 | 남자 30km 계주 | |||
합계 | 금 0 은 0 동 1 | ||||
아이스하키 | |||||
동메달 | 남자 대표팀 동 1 | ||||
{{{#!folding[남자 대표팀 명단] | 동메달 | 김경태 동 1 | [남자대표팀] | ||
동메달 | 김관성 동 1 | [남자대표팀] | |||
동메달 | 김재학 동 1 | [남자대표팀] | |||
동메달 | 노정원 동 1 | [남자대표팀] | |||
동메달 | 박성주 동 1 | [남자대표팀] | |||
동메달 | 박현욱 동 1 | [남자대표팀] | |||
동메달 | 변선진 동 1 | [남자대표팀] | |||
동메달 | 서태석 동 1 | [남자대표팀] | |||
동메달 | 송기영 동 1 | [남자대표팀] | |||
동메달 | 신승호 동 1 | [남자대표팀] | |||
동메달 | 신현대 동 1 | [남자대표팀] | |||
동메달 | 심의식 동 1 | [남자대표팀] | |||
동메달 | 오재원 동 1 | [남자대표팀] | |||
동메달 | 윤성엽 동 1 | [남자대표팀] | |||
동메달 | 이강수 동 1 | [남자대표팀] | |||
동메달 | 이기훈 동 1 | [남자대표팀] | |||
동메달 | 이동호 동 1 | [남자대표팀] | |||
동메달 | 이동호 동 1 | [남자대표팀] | |||
동메달 | 이재혁 동 1 | [남자대표팀] | |||
동메달 | 최민석 동 1 | [남자대표팀] | |||
동메달 | 표영운 동 1 | [남자대표팀] | |||
동메달 | 한중현 동 1 | [남자대표팀] | |||
동메달 | 홍종성 동 1 | [남자대표팀] | }}} | ||
합계 | 금 0 은 0 동 1 |
6. 여담
- 대한민국은 획득한 금메달 6개 중 쇼트트랙에서 4개,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2개를 거두어 두 종목에 편중되는 현상을 보였다. 하지만 2위 중국의 금메달 9개, 은메달 9개, 동메달 8위에 비해 바싹 따라 잡은 것은 성과.
- 여자 쇼트트랙 1500m 우승자인 김소희 선수 시상식 때 조직위가 엉뚱하게 다른 나라 국가로 두 번이나 잘못 틀어서 비난을 받았다. 처음에는 몽골 국가를 틀다가 당시 김종하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부회장이 잘못되었다는 신호를 보내자 그 다음에는 북한 국가를 틀어서 촌극을 벌였다. 이에 대한민국 응원단이 항의하며 애국가를 직접 제창하자 그제서야 부랴부랴 애국가로 연주했다. 이 사건은 일본 언론에서도 조직위의 중대한 실수라며 비난 여론이 일었고 일본올림픽위원회(JOC)는 한국 대사관에 사과 방문을 해야 했다.
- 북한은 이후 5년 뒤 삼지연시에서 개최하기로 한 동계 아시안 게임이 경제난으로 무산되고, 하얼빈과 강원 동계 아시안 게임을 보이콧하면서 13년 뒤인 아오모리에서 다시 출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