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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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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by(秦, ruby=はた)][ruby(氏, ruby=うじ)]
하타씨
하타 가문의 가몬
카고메[1]
籠目
<colbgcolor=#5b0a56,#5b0a56><colcolor=#ece5b6,#ece5b6> 출신지 백제(일본서기)
신라(실제)
씨성 하타노 키미(秦公)
하타노 미야츠코(秦造)
하타노 이미키(秦忌寸)
본가 하타씨(波多氏)[2]
영성 조씨(嬴姓趙氏)(자처)
시조 궁월군(자처)
종별 제번(諸蕃)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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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젠국(豊前国)
이즈모국(出雲国)
이요국(伊予国)
아와국(阿波国)
키비국(吉備国)
하리마국(播磨国)
야마시로국 카도노군·키이군(山城国葛野郡·紀伊郡)
야마토국(大和国)
카와치국 사시라군(河内国讃良郡)
단바국 쿠와다군(丹波国桑田郡)
미노국 카모군(美濃国加茂郡)
사가미국 오오스미군(相模国大住郡)
분가 코레무네씨(惟宗氏)
토기가(東儀家)
카와카츠씨(川勝氏)
오오쿠라씨(大蔵氏)
마츠시타
쵸소카베
시마즈

1. 개요2. 역사3. 기원
3.1. 한반도 기원설3.2. 중국 기원설3.3. 유다 왕국 기원설3.4. 결론
4. 어원
4.1. 시조들의 신빙성
5. 기타 성씨6. 인물
6.1. 秦6.2. 畑6.3. 羽田
7. 창작물

1. 개요

하타([ruby(秦, ruby=はた)])는 일본의 성씨 중 하나이다.

2. 역사

과거에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 이동한 도래인계가 뿌리인 성씨이다. 가쓰라 강에 제방을 쌓아 농지를 넓히는 등, 아직 수도가 되기 전이던 교토 지역을 개척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 지금도 교토 서쪽의 고류지, 마츠노오 대사부터 동남쪽의 후시미이나리 대사까지 교토 각지에 하타씨의 유산이 많이 남아있다.

특히 고류지 근처는 '우즈마사'(太秦)라는 지명으로 그 흔적이 남아있다. 우즈마사는 숙자훈 읽기라서 일반적인 일본어 한자 읽기와 다르기 때문에 일본인들도 太秦을 우즈마사라고 읽는 줄 모르는 사람도 많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우즈마사의 어원은 '우두모리 마좌'(禹豆母利麻佐)라고 하는데,# 한국어의 우두머리와 음운상 연관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전철역도 우즈마사코류지역이고, 이 동네에 있는 우즈마사 영화촌도 교토의 유명한 관광지이다.

하타씨의 본가는 똑같은 발음의 "波多"씨라고 한다. 이 하타씨의 경우 타케우치노 스쿠네의 아들인 하타노 야시로(羽田矢代)를 시조로 두었다고 하며, 이 하타씨가 발음은 유지하되 한자를 바꾼 것으로 추정된다.

3. 기원

하타씨의 기원은 역사적으로 많은 가문들을 가리킨다.가장 오래된 고사기부터 신찬성씨록 그리고 제일 최근의 일유동조론를 보면 일본, 한반도(백제/가야), 중국 및 이스라엘을 기원으로 두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역사학적으로 봤을 때 위 기원들은 하나같이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하며 정확한 정보를 알기 위해서는 많은 정보를 살펴봐야 한다.

3.1. 한반도 기원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중 3편인 -교토의 역사- 편에서는 하타씨가 신라에서 건너온 도래인이었음을 주장함과 동시에 그 이유에 대한 설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래 하술할 대부분의 내용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해당 부분을 많이 참조했다.)[3]

하타씨의 출신에 대해서는 큰 줄기는 같지만 기록마다 조금씩 다르다. 《일본서기》에서는 하타씨의 선조인 궁월군백제 도래인으로 서술되어 있지만 한·일 학계에서 성씨 자체는 신라에서 온 것으로 보고 있다. 아래에 설명하듯 '진'(秦)이란 글자는 신라와 많이 엮이는 글자였고, 그 외에 많은 정황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즉, 원래 신라인이거나 신라계 백제인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4]
이 해 궁월군(弓月君)이 백제로부터 와서 귀화하였다. 그리고 아뢰기를, “신은 우리나라 120현의 사람들을 이끌고 귀화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라인이 방해하여 모두 가라국(加羅國)에 머물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일본서기 권10 오진 덴노 14년(283)#
일본서기》에서는 제15대 오진 덴노 치세인 283년[5] 백제에서 120현의 백성(百二十県の民)을 이끌고 귀화한 궁월군(弓月君, 유즈키노키미 ゆづきのきみ/유츠키 ユツキ/윤즈 ユンヅ)이 시조라고 했다.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가야 지역을 거쳐서 일본으로 이주했고, 도래 이후 견직물을 다루는 일에서 종사했는데 이들이 만든 견직물이 피부(肌, 하다)처럼 부드럽고 따뜻해서, 또는 바다를 건너왔기 때문에 波多(하타)라는 성씨를 얻었고, 훗날 씨성(氏性)에게 登呂志公, 秦酒公, 禹都萬佐(太秦)을 하사했다고 한다. 일본 학계에서는 하타가 고대 한국어로 바다를 뜻한다는 견해도 있다. 波多를 현대 한국한자음으로 읽으면 파다라고 발음하며, 네이버 한자사전 기준 波多는 바다라는 뜻이라고 나온다.

하타씨의 기원을 신라(진한) 울진 출신으로 보기도 한다. 그 근거로 울진 봉평리 신라비에서 보이는 '파단'(波旦)이라는 지명을 일본식 발음으로 읽으면 '하타'라고 하는 점도 있다.
<bgcolor=#3b3b3b,#3b3b3b> 파일:반가사유상 83.jpg 파일:보관미륵상.jpg
신라의 반가사유상 하타씨의 보관미륵상
또한 교토에 있는 고류지의 경우, 쇼토쿠 태자의 명령으로 하타씨가 세운 것인데 고류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일본의 국보 1호 목조각상인 반가사유상 불상의 재질이 한국의 경상도에서 흔한 목재라는 점, 《일본서기》 기록상 623년 7월에 신라에서 전해준 불상이 이 반가사유상이라는 점 등이 하타씨가 신라계 도래인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 주었다.

3.2. 중국 기원설

후대에는 '진'(秦)이라는 한자로 표기했기 때문에 중국의 첫 번째 통일제국인 진나라의 '진', 즉 중국계 성씨라는 주장이 있으나 부정되고 있다. 훗날 만들어진 《신찬성씨록》에는 '하타'(秦)라고 하여 진시황 영정의 후손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궁월군(弓月君)이 백제에서 일본으로 도래했을 때는 秦씨나 진시황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일본서기》에서는 중국이 아닌 백제에서 건너왔다고 서술되어 있다. 그리고 실제 진시황을 비롯한 진나라 황족의 성씨는 영(嬴)성, 조(趙)씨였다.

또한 '하타'라는 성씨에서 이후 秦이라는 한자를 사용했고, 신라의 제31대 신문왕 또한 문무왕릉비 비문에서 자신의 선조로 '진백'(秦伯)을 언급했다. 그 이유는 《삼국지》 <동이전>에 한 노인이 신라인은 진나라에서 피난을 온 사람들이라고 말한 오류가 서술되어 있어 중국인들은 신라인들을 진나라의 후예로 믿고 있었고 이 잘못된 오류 서술이 신라와 일본에도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무왕릉비 원문의 뜻은 '진백(秦伯)의 터전을 다시 일으켰다'이며, 이를 자신의 선조로 언급했다고 볼만한 근거는 없다. 이는 모화사상 및 숭조사상 씨족중심주의에 의한 7세기 신라인들의 역사왜곡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서해 용왕의 후손이라고 자칭했던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다만 여기서 당시 신라인들이 그렇게 '믿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는 일본으로 넘어간 그들의 한 갈래인 하타씨가 자신들의 성씨로 '진'(秦) 자를 쓴 이유가 된다.

신라의 사실상 전신인 진한(辰韓)을 한자를 다르게 써서 秦韓이라고도 부른다고 《진서》에 써 있을만큼 이런 '오류'는 신라때부터 그 역사가 길었다. 그런데 후대 신라인들이 완전히 지어낸 얘기까진 아닌 것이, 《사기》 <조선열전>에서 진나라가 무너질 때, 그 유민이 대규모로 고조선에 유입되었다고 했고, 《삼국사기》 <신라본기>에서는 신라를 건국한 경주 6촌이 고조선의 유민 출신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모든 신라인이 통일제국 진나라 출신은 아니라도 일부 인적 연결성은 기록에 명시되어 있긴 하다. 다만, 《사기》는 중국의 책이고 《삼국사기》는 한국의 책이다. 서로 인식이 다른 국가들의 책들을 비교할 땐 매우 신중해야 한다. 참고로, 삼국사기는 진나라 유민들의 유입에 대해 일절 언급이 없다. 진나라의 서복이 일본에 정착했다는 것이 중국 내에서 정설이 된 것도 같은 《사기》로부터 나온 이야기 때문이다. 카더라 천지인 중화사상

즉 후대에 성씨의 권위를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찬성씨록》에서 하타씨가 진시황 영정의 후손이라고 조상을 거창하게 윤색한 서술 때문에 일부 중국인들은 《일본서기》나 《신찬성씨록》에 전혀 나오지도 않는 인물인 서복에 대해 언급하면서 하타씨를 서복과 관련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 때문에 실제 중국에서는 《일본서기》나 《신찬성씨록》 등 일본 문헌에서도 서복이 하타씨의 선조로 나온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일어나고 있으나 일본 문헌에는 전혀 없는 기록이며, 서복 전설은 중국에서만 나타나는 기록으로 신빙성이 없다.

3.3. 유다 왕국 기원설

그밖에도 일유동조론 중에는 하타씨가 중국을 거쳐 일본으로 도래한 유대계 씨족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다지 신빙성 있는 주장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는 몇몇 일본의 환빠 수준의 유사역사학자들이 하타씨는 본래 유다 왕국의 "유즈키"라는 국가로부터[6] 나온 이민자들이었다고 하는 주장이다.

물론,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아니다. 애당초 "유즈키"라는 유대계 국가를 찾을 수도 없고, 하타씨가 일유동조론에 포함되게 된 이유도 가몬이 "다윗의 별"[7]육각성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실제 하타씨의 가몬은 "카고메"라는 바구니의 결을 묘사한 것이며 다윗의 별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3.4. 결론

사실상 하타씨가 백제계나 중국계 또는 유대계가 아닌 신라계 성씨라는 것은 정설이 되었다. 여우 신사라는 별명과 무수히 늘어선 토리이들로 유명한 교토 이나리 신사는 하타씨의 씨족신을 모시고 산에서 제사지내던 것에서 비롯했는데 공식 홈페이지 설명에서는 신라 출신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교토시 공식 홈페이지 역시 '하타'는 고대 한국어로 '바다'라는 뜻이며 5세기 중반 신라에서 도래했다고 언급하고 있다.[8] 이후 백강 전투 이전까지 서로 우호적이었다가 왜국과 신라가 서로 국교단절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하타씨의 신라 뿌리도 잊혀진 듯. 신라-왜의 악관계는 몇백년 동안 지속됐으며 고려가 설립돼서야 관계가 회복됐다.[9] 그 때가지는 신라에 대한 추가적 언급이 아예 없거나 아니면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로 나타난다.

즉, 원래 신라계였던 하타씨족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자리잡았고, 이후 《일본서기》 제작 당시 신라를 늘 적대하던 일본 측에서 하타씨의 시조를 구상할 때 '신라가 못살게 군 백제와 가야 출신 씨족'[10]으로 새롭게 창조해낸 것. 이후 《신찬성씨록》을 제작할 당시 하타씨는 '신라(新羅)'로부터, 신라는 '진한(秦韓)'으로부터, 진한은 '진나라(秦)'부터이니 '하타씨=진나라 씨족'이라고 가정해버린 것. 따라서 본래 신라인들을 백제계/가야계/진나라계로 위조시켜버렸고 그 후손들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아직까지도 믿고 있다.[11]

다만, 일본 학계에서는 이미 신라계인 것으로 결론났고 적어도 중국계가 아닌 한반도인들이라고 명시돼있다. 애당초 하타씨가 중국계라는 것은 《신찬성씨록》에 나온 근거없는 발언 때문에 시작된 것이었고, 이 또한 《삼국지》로부터 나온 중화사상카더라 정보에서 파생된 가짜 뉴스라는 것. 그리고 《일본서기》에서 언급된 가야 또는 백제 출신의 궁월군 이야기는 일본의 적대국이었던 신라를 더 악질로 보이기 위해 만들어낸 가상 인물이자 허위일 뿐이다. 실제 하타씨는 진나라도 아닌, 가야도 아닌, 백제도 아닌 신라 출신들이다.

이후 같은 한반도계이지만 시조가 다른 사카노우에(坂上) 가문의 사카노우에노 아라(坂上阿良)가 하타씨의 기존 한자였던 "하타(波多)"를 또 한 번 사용하게 된다.[12]

위키백과 영문 페이지에 더 자세한 설명을 찾을 수 있으며 하타씨의 기원부터 가설들, 일본 신들의 관계 및 어원들의 뿌리까지 매우 자세하게 나와있으니 하타씨에 관심이 있다면 번역기를 돌려서라도 읽어보자.[13]

4. 어원

"하타(はた)"라는 어원 자체는 아직까지 미지수다. 다만 앞에 상술돼있듯 역사적으로 "진(秦)"을 쓰기 전에 "하타(波多)"라는 이름을 썼으며 이 하타는 한국어족인 "바다"였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 정설이다. "바다"란 한국에서도 "波多"라는 한자를 사용했고 이 발음이 고대 일본어 발음인 "파타"로, 이 "파타"가 나중에 "하타"로 변했다는 것이다. 이 "파타/바다" 계열의 의미는 일본어에 "바다를 건너다"의 "와타루「渡る」(건널 渡/도)"의 "와타(渡)" 또는 앞서 언급된 "하타(波)"한테서도 보이며, 둘의 비슷한 한자와 부수(삼수변 ) 및 유사한 발음으로 인해 어원이 바닷물과 연관있다는 것이 명확해진다.
바다(波多) 파타(波多) 하타(波多) 하타(秦)
와타(渡) 와타루(渡る)
이 "바다" 어원의 단어들은 당시 한반도에서도 보였으며, 하타씨의 기원으로 추정되는 신라의 "파단(波旦)"(현 울진군) 지명 또한 "바다"의 의미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14]

마찬가지로 타케우치노 스쿠네의 아들인 하타노 야시로가 시조인 "하타씨(波多氏)"의 경우도 기원이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애당초 타케우치노 스쿠네의 자식들이 한반도와 연관이 깊은 가문들(하타씨, 소가씨 등)의 시조라는 것을 포함해, 스쿠네 본인 또한 가상의 인물일 확률이 높으니 위와 같은 행보를 걸었다고 볼 수 있겠다.[15]

이랬던 하타가 갑자기 "진(秦)"을 쓰게 된 것은 몇백년이 지난 신찬성씨록 때부터인데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상술된 내용 참조.

4.1. 시조들의 신빙성

하타씨의 시조들이 너무 많다보니 그들의 이야기의 대한 신빙성도 거론되는 중이다.

5. 기타 성씨

기타 성씨로는 하타케(畑), 하네(羽) 등이 있다. 대중적으로는 이쪽이 좀 더 익숙하다고 한다. 2018년 기준으로 秦 씨보다 살짝 많은 정도로 존재한다. 羽田라고 쓰고 하네다가 아닌 하타로 읽는 성씨도 있다.

6. 인물

6.1.

6.2.

6.3. 羽田

7. 창작물


[1] 바구니의 결을 묘사한 것이다.[2] 전설에 따르면 타케우치노 스쿠네의 아들인 하타노 야시로(羽田矢代)를 시조로 둔 가문. 역사학적으로 봤을 때 하타씨의 본래 이름이자 본가이다.[3] 허나 객관적 사료보다는 정황증거를 따르고 있을 뿐더러, '일본서기가 쓰여질 당시엔 신라와 일본의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일본서기가 친백제 성향을 띄고 있기 때문에 도래인의 대부분이 백제인으로 세탁된 것'이라는 소위 결론을 정해놓고 끼워 맞춘 급의 논리를 펼치고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일본서기에 기록된 스사노오 또한 백제인으로 세탁이 되었어야 마땅하나 신라의 소시모리 출신으로 기록이 되어있다.[4] 비슷한 사례로 속일본기에 기록된 덕래(德來)라는 인물이 있다. 원래는 광개토대왕의 후손으로 백제에 귀화했으나 의술을 전파하고자 다시 야마토에 정착했다고 전해진다.[5] 이주갑인상으로는 고구려 광개토대왕과 싸우는라 국력이 쇠락해졌던 백제 제17대 아신왕 치세 말기인 403년이다.[6] 이 '유즈키'라는 국호가 궁월군(유즈키노키미)의 어원이라고 주장한다.[7] 이스라엘 국기에 흔히 보이는 별 문양.[8] 5세기가 가장 말이 되는 게, 신라가 하타씨에게 보관미륵상을 선물한 게 7세기 초반이라고 치면 길어봤자 100년 정도 차이가 있는 반면, 기존 1-2세기였다고 가정하면 적어도 500-600년 이후라 꽤나 뜬금없어 보일 수 있다. 도래 100년 후 자신들의 혈통이자 동족 후손들에게 선물 또는 우대를 한다는 것은 그다지 드문일이 아니며, 현대의 대한민국 정부와 한국계 디아스포라, 고려인, 독립운동가 후손들과의 관계 및 상호작용 등을 고려해보면 신라와 하타씨도 비슷한 관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9] 이름에서도 보이듯, 고려는 대놓고 신라를 까고 오히려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선전했다.[10] 일본 입장에서 백제와 가야는 친일 국가로 봤다.[11] 한국사로 따지면 삼국유사에서 허황옥인도인 공주라고 하여 김해 김씨들이 자신들을 인도계로 믿는 것과 마찬가지. 실제 허황옥과 그녀의 후손들은 일본의 조몬계와 가까운 인종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12] 사카노우에씨는 본래 동한(東漢)씨를 본가로 두고 있다. 이 동한(야마토노아야)씨도 원래 일본서기에는 백제 출신이라고 적혀있는데 신찬성씨록에는 한나라영제를 시조로 두었다고 표기되어 후손들은 아직까지도 한나라를 기원으로 믿고 있다. 다만 근대 역사학자들은 안라국이 기원이라고 한다.[13] 참고로 나무위키 내의 많은 정보들도 위키백과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며 위키백과 또한 하타씨를 신라계로 제대로 기재해놨다.[14] 실제 "파단(波旦)"이란 고구려어바다를 뜻했다.[15] 실제로 타케노우치노 스쿠네 또한 신라와 접점이 꽤나 많다. 그가 섭정한 진구 황후가 신라계라는 점, 그가 그녀를 도와 삼한정벌(신라)를 공격했다는 점, 그의 아들인 헤구리노 쓰쿠(平群木菟)가 신라로부터 직접 궁월군과 그의 인부들을 데려왔다는 점 등을 봤을 때 신라와 꽤나 두터운 관계가 있던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