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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1 07:15:21

완적

죽림칠현(竹林七賢)
산도 왕융 유영 완적 완함 혜강 상수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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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몽손 혁련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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阮籍
(210년 ~ 263년)
1. 개요2. 생애3. 미디어 믹스

1. 개요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이며 는 사종(嗣宗)으로 본관은 연주 진류군 위시현. 완우의 아들, 죽림칠현 중 한 사람.

2. 생애

도량이 크고 남에게 매이기를 싫어했고 예속에 구속되지 않았으며, 상을 당했을 때 평상의 예속을 따르지 않았지만 심신을 훼손하는 것이 거의 목숨을 잃을 지경에 이르렀다. 연주자사 왕창이 그를 청해 만났지만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는데, 왕창은 그에게 감탄하면서 칭찬했고 자기로서는 완적을 평가할 능력이 없다고 했고 완적이 입으로는 세상사를 논하지 않아 저절로 훌륭해졌다.

태위 장제가 이를 듣고 부르자 완적은 주청문을 보냈는데, 주청문을 보고 응한 줄 알고 기뻐해 사람을 시켜 부르도록 했지만, 완적이 이미 돌아간 후라 장제가 화내자 고향 친척들이 의사를 분명히 밝히라고 권해 관직에 들었다가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갔고, 다시 관직에 들어 상서랑을 지내다가 병으로 물러났다.

조상이 불러서 참군으로 삼으려 하자 병을 칭해 고향으로 돌아갔고, 1년 여후에 조상이 처형되자 완적은 종사중랑이 되었으며, 관내후에 책봉되었다가 산기상시로 옮겼다. 조정에서 완적이 명성이 높아 그를 존중했지만 완적은 세상에 난리가 많아 녹을 받기 위해 벼슬하는 것에 불과했다.

사마소사마염을 완적의 딸에게 혼인시키도록 청했으나, 완적은 60일 동안 술에 취해 지내면서 중지했으며, 종회가 여러 번 시사에 대해 물어 대답에 따라 죄를 물게 하려 했지만, 항상 술에 취해 화를 면했다. 사마소가 권력을 장악하자 동평에서 놀면서 즐기고 싶다고 부탁해 동평상에 임명되었다.

동평상을 지내면서 노파를 사마소에게 천거했고, 동평에 도달해 관아의 건물을 허물고 병풍을 두르면서 부중의 안과 밖이 서로 보이게 하면서 법령을 분명히 하고 간단하게 집행했다. 10일 만에 도성으로 돌아왔고 대장군 종사중랑에 임명되었다.

관리가 어떤 사람의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했다고 하자 완적은 아버지를 죽였으면 다행이지 어찌 어머니를 죽였다고 했는데, 주변에서 실언했다고 하면서 사마소도 책망하면서 극악무도한 자인데 어찌 다행이냐고 하자 완적은 금수는 어머니를 알지만 아버지는 모른다면서 아버지를 죽인 자는 금수와 같지만 어머니를 죽인 자는 금수보다 못하다고 하자 사람들이 그 말에 납득했다.

보병교위가 비어있는데다가 미주가 많고 영중에 술을 잘 빚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서는 교위 자리를 구했다가 마침내 술에 취해 세상일을 버렸다.

일찍이 소문산에 놀러 다닐 때 그 산에 손등이 있었으나 이름을 몰랐고 죽실 수 곡에 절구, 절구공이가 있을 뿐이었는데, 완적은 그를 쫓아 태고의 무위지도, 삼황오제의 도의를 논했지만 손등은 주의깊게 듣지 않았다.

완적이 손등에게 길게 휘파람 불었고 소리가 청량해 손등은 편안하게 웃었으며, 완적이 내려오자 손등도 휘파람을 불었고 난세 또는 봉황의 울음소리와 같았다. 이에 완적은 손등의 논의에 의지해 마음에 품은 바를 나타냈으며, 그 노래에 이르길
"해는 부주산의 서쪽으로 지고 달은 단연에서 뜨는데, 태양은 가려져 보이지 않고 달빛은 이를 대신 웅패했네. 고원한 것은 잠깐이고 미미한 것도 장차 떠오를지니 부귀도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내리는 사이인데, 빈천이 어찌 종신토록 지속되겠는가?"

또한 탄식하면서 말했다.
"천지가 나뉘어지고 육합이 열리며 일월성신이 은퇴하는 때에 내가 날아 올라 위로 간들 장차 무슨 포부를 갖겠는가?"

라고 했다.

완적은 사마소의 부중에서 문객으로 머무르며 연회에는 빠지지 않고 참가했고, 사마소가 진공에 봉해졌다가 사양하고 받지 않자 많은 사람들이 사마소에게 찾아가 정중하게 권유했는데, 정충이 사신을 보내 권전문을 지어달라고 청했다. 이 때 완적은 원준의 집에 있다가 밤새도록 술을 마신 터라 부축해서 일으켰고 완적은 단숨에 목찰에 써내려 갔고 더 이상 손댈 곳이 없어 그대로 필사해 사신에게 줬으며, 당시 사람들은 완적이 쓴 것을 신필이라 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날 때 완적은 바둑을 두었고, 손님은 중지할 것을 요청했지만 완적은 승부를 끝까지 하자고 했다. 승부가 끝나자 두 말의 술을 들이키고 대성통곡을 하다가 몇 되의 피를 토했으며, 어머니의 시신을 매장할 때는 두 말의 술을 들이킨 후에는 제가 드릴 말씀이 없다고 하면서 대성통곡을 하다가 몇 되의 피를 토했다.

완적은 평소 자신의 몸을 학대해 몸이 쇠약해져 뼈만 앙상하게 드러난 상태라 혼절한 적이 여러 번이며, 배해가 문상을 오자 완적이 머리를 산발하고 땅바닥에서 책상다리를 하면서 꽂꽂이 앉아 기분좋게 취한 모습을 눈을 크게 뜨고 직시했으며, 배해가 떠나자 어떤 사람이 문상은 주인이 곡하면 손님이 두 번 절하는 법이지만 완적은 곡도 하지 않았는데 어찌 그대가 했냐고 묻자 완적이 속세를 떠나 세속의 법도를 따르지 않는다면서 세속인인 자신이라도 세상의 예절을 행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자 사람들은 두 사람이 각기 할 일을 했다고 여겼다.

고사성어 백안시의 주인공이기도 해서 완적은 청안과 백안을 수시로 바꿔 세속의 예절을 따지는 자에게는 백안으로 쳐다보니, 혜희가 조문을 오자 백안으로 대해 혜희가 불쾌하게 여기면서 돌아갔고, 혜강이 술병을 차고 거문고를 들고 찾아오자 기뻐하면서 청안으로 대했다. 완적은 입으로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말하지 않고 훌륭했으며, 하증처럼 예법을 중시하는 선비들에게 깊이 미움을 받았지만 사마소가 항상 그를 간직했기에 천수를 다 누릴 수 있었다.

사마소는 완적이 지극히 신중하다고 칭찬해 매번 그와 담론할 때마다 그 말이 현묘하고 심원했으며, 한 번도 인물의 선악을 비평한 적이 없었다.

완적의 큰형수가 친정에 들른다고 길을 떠나자 송별했고, 어떤 사람이 그를 비웃으며 비난하자 예법이 어찌 나를 위해 만들어졌겠냐고 했으며, 이웃에 아름다운 신부가 살아 주막에서 술을 팔았는데, 완적은 그 주막에 가서 술을 마시고 신부의 곁에서 누워 자면서도 전혀 피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신부의 남편도 의심하지 않았다.

호군 직에 있는 사람의 딸이 재주를 지니고 매우 예뻤지만 출가하기 전에 죽자 그 가족과는 면식이 없었지만, 완적은 곧바로 문상을 가서 곡을 길게 하고 애통한 마음을 표현한 후에 집으로 돌아갔으며, 그 밖의 일은 모두 평탄하고 마음이 안정되었고 모두가 이런 정도의 일이었다. 기분에 따라 홀로 수레를 타고 도로를 경유하지 않으면서 가다가 길이 끊기는 곳에 이르면 한바탕 통곡하고 되돌아왔다.

일찍이 광무에 가서 초한의 전쟁을 하던 곳을 보고 탄식하면서 당시에는 영재가 없어 저런 경박한 아이들이 명성을 얻었다고 했으며, 기분에 따라 홀로 수레를 타고 도로를 경유하지 않으면서 가다가 길이 끊기는 곳에 이르면 한바탕 통곡하고 되돌아왔다.

무뢰산에 올라 경읍을 쳐다보면서 한탄하고 호걸시를 지었고, 완적은 문장에 능해 글을 쓸 때 처음부터 생각나는 대로 썼으며, 영회시 등 80여 편이 있어서 세상 사람들은 중히 여겼고, 장자의 무위를 예찬한 달장론을 썼으며, 글을 많이 썼지만 많이 없어졌다.

3. 미디어 믹스

파일:external/san.nobuwiki.org/1293.jpg
삼국지 13 PK, 14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13 PK에서 추가되었다. 일러스트는 백안시를 표현하고 있다. 능력치는 통솔 32, 무력 27, 지력 80, 정치 69. 특기는 문화 6, 설파 3, 언변 1. 전수특기는 문화보다 3 낮은 설파이고 전법은 기공약화.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18, 무력 22, 지력 69, 정치 61, 매력 58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14, 무력이 5, 지력이 11, 정치력이 8 하락했다. 개성은 악주, 시상, 주란, 주의는 명리, 정책은 본초학 Lv 2, 진형은 방원, 전법은 혼란, 매성, 친애무장은 왕융, 혜강, 혐오무장은 없다. 악주, 시상 개성이 있지만 스탯이 별로라 내정용으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