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22 05:37:44

하후광희

夏侯光姬
(? ~ 307)
진서(晉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color: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제기(帝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1권 「선제기(宣帝紀)」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사마의 사마사 · 사마소(昭) 사마염
4권 「혜제기(惠帝紀)」 5권 「회제민제기(懷帝愍帝紀)」 6권 「원제명제기(元帝明帝紀)」
사마충(衷) 사마치 · 사마업 사마예 · 사마소(紹)
7권 「성제강제기(成帝康帝紀)」 8권 「목제애재폐제기(穆帝哀帝廢帝紀)」
사마연(衍) · 사마악 사마담 · 사마비 · 사마혁
9권 「간문제효무제기(簡文帝孝武帝紀)」 10권 「안제공제기(安帝恭帝紀)」
사마욱 · 사마요 사마덕종 · 사마덕문
※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 31·32권 「후비전(后妃傳)」 ||
[ 재기(戴記) ]
||<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width=33%> 101권 「유원해재기(劉元海戴記)」 ||<-2><width=34%> 102권 「유총재기(劉聰戴記)」 ||<width=33%> 103권 「유요재기(劉曜戴記)」 ||
유원해 ,유화 · 유선, 유총 ,유찬 · 진원달, 유요
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석륵 ,석홍 · 장빈, 석계룡 ,석세 · 석준 · 석감 · 염민,
108권 「모용외재기(慕容廆戴記)」 109권 「모용황재기(慕容皝戴記)」
모용외 ,배억 · 고첨, 모용황 ,모용한 · 양유,
110권 「모용준재기(慕容儁戴記)」 111권 「모용위재기(慕容暐戴記)」
모용준 ,한항 · 이산 · 이적, 모용위 ,모용각 · 양무 · 황보진,
112권 「부홍등재기(苻洪等戴記)」 113 · 114권 「부견재기(苻堅戴記)」 115권 「부비등재기(苻丕等戴記)」
부홍 · 부건 · 부생 ,왕타, 부견 ,왕맹 · 부융 · 부랑, 부비 · 부등 ,삭반 · 서숭,
116권 「요익중등재기(姚弋仲等戴記)」 117 · 118권 「요흥재기(姚興戴記)」 119권 「요홍재기(姚泓戴記)」
요익중 · 요양 · 요장 요흥 ,윤위, 요홍
120권 「이특등재기(李特等戴記)」 121권 「이웅등재기(李雄等戴記)」
이특 · 이류 · 이상 이웅 ·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800080><tablebgcolor=#800080> ||
}}} ||

1. 개요2. 생애3. 여담

1. 개요

서진의 인물. 자는 동환(銅環)으로 하후장의 딸이자 낭야공왕 사마근의 왕비, 진원제 사마예의 생모.

2. 생애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지혜로웠으며 하후씨의 집안 또한 하후연, 하후위부터 이어져내려온 뼈대있는 가문이라[1], 하후광희가 성년이 되었을 때 황족인 사마근과 맺어졌다. 그리고 276년에 하남군 낙양에서 훗날 동진의 황제가 되는 사마예를 낳았다.

283년, 사마주가 죽고 낭야왕에 오른 사마근은 하후광희를 왕비, 그녀 소생의 아들 사마예를 왕세자로 삼았다.

290년, 사마근이 사망하고 그 뒤를 이은 사마예가 어머니 하후광희를 왕태비로 모셨다. 이후 17년 뒤인 307년에 하후광희 또한 죽었고, 그녀의 시신은 낭야국에 안장되었다. 참고로 그녀가 사망하고 10년 뒤에 아들인 사마예가 동진의 황제가 된다.

3. 여담

위서에 아들인 사마예 출생에 관한 일화가 하나 수록되어 있다. 조위 말기 당시 세간에서는 《현석도(玄石圖)》라는 참언서가 유행하고 있었다. 여기에 "소가 말의 뒤를 잇는다."는 구절이 있었는데, 사마의는 소는 우(牛)씨, 말은 사마(馬)씨를 뜻하므로, 사마씨 국가가 망하고 우씨가 집권한다 해석하였다. 그래서 유명한 점쟁이에게 가 자신의 후손들의 운세를 점쳐달라 했지만, 점괘는 사마의가 예상한 것과 조금도 틀리지 않게 나왔다. 이에 사마의가 우금을 독살했으나, 훗날 방탕한 하후광희는 우금과 통정하여 사마예를 낳았으니, 결국 참언이 들어맞았다는 식의 이야기이다. 이 일화의 최초 출처인 위서는 북조 25사 중에서도 질이 나쁘기로 악명이 높고, 남조측의 정통성을 깎아내리기 위해 지어낸 참언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다.[2]

진서에는 또다른 내용의 참언이 실려있다. 서진 초에 "동마(銅馬)가 바다로 들어가 업(業)을 세울 것이다."라는 참언이 유행했다고 한다. 하후광희의 아명이 동환(銅環)이고 사마는 본래 말(馬)을 가리키므로, 동마인 사마예가 바다와 가까운 건강에 들어가 동진의 황제에 올랐으니 참언대로 되었다.


[1] 하후연-하후위-하후장-하후광희[2] 다만 《현석도》라는 참언서 자체는 실제 존재했는지, 사마광의 《자치통감》이나 허숭(許嵩)의 《건강실록》에서 그 내용의 일부분을 엿볼 수 있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