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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11 13:46:32

유린지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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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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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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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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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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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

劉驎之
생몰연도 미상

동진의 은사. 자는 자기(子驥). 형주 님양군(南陽郡) 출신. 동진의 광록대부 유탐(劉耽)과 문중이 같다.

2. 생애

유린지는 어려서부터 질박하고 소탈하여 몸가짐을 바르게 하지 않았고, 항상 세상사에 공허함을 느껴 욕심이 적었다. 그는 산천을 유람하면서 그 풍경을 즐기는 것을 낙으로 삼았기에 은둔하고자 하는 뜻을 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산(衡山)에 들러 약초를 캐던 중, 너무 깊숙이 들어가는 바람에 돌아가는 길을 잃고 말았다. 유린지는 산 속을 헤메다가 골짜기에서 흐르는 시냇가를 발견하였고, 시냇가 남쪽에 돌로 된 2개의 곳집을 발견하였다. 곳집 하나는 문이 닫혀 있었고, 다른 하나는 문이 열려 있었는데, 시냇가의 수심이 무척 깊어 곳집이 있는 건너편으로 넘어갈 수 없었다. 되돌아가고자 해도 길을 몰라 망연자실해 하고 있을 무렵, 우연히 사냥꾼을 만난 덕에 산을 빠져나와 간신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온 유린지가 사람들에게 자신이 형산에서 발견한 곳집에 대해 이야기하니, 어떤 이가 그 곳집 안에 신선의 영약과 기타 잡다한 물건들이 있을 것이라 말하였다. 여기에 혹한 유린지는 다시 한번 형산을 들러 샅샅히 산을 뒤졌으나, 끝내 아무것도 찾지 못 하고 돌아와야만 했다.

거기장군 환충이 유린지의 명성을 듣고 그를 불러 장사로 삼으려 했지만, 유린지는 굳게 사양하였다. 이에 환충은 유린지를 직접 설득하고자 그의 집을 방문하였다. 그때 마침 밖에서 뽕나무 가지를 치고 있던 유린지가 말했다.
"사군께서 친히 마차를 이끌고 왕림하셨다고는 하나, 의당 저희 아버님부터 먼저 뵙고 오셔야 합니다."
그 말을 들은 환충은 크게 무안해져서 유린지의 아버지를 만나 자신이 왔음을 고하였다. 유린지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명해 환충을 만나보라 하니, 그제서야 유린지는 환충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둘이 대화를 나누던 와중, 유린지의 아버지가 다시 들어와 유린지에게 탁주와 나물을 대접하도록 하였다. 유린지가 자리를 뜨자, 환충이 그 아버지에게 유린지의 설득을 도와달라 부탁하였다. 이에 유린지의 아버지가 말했다.
"만약 종자를 쓰고 싶으시다면 속세에서 찾는 것이 맞습니다."
환충은 매우 아쉬워하였고, 결국 날이 어두워져 목적을 이루지 못 하고 돌아가야만 했다.

유린지의 집안은 관료를 많이 배출하여 나름 권세있는 세족이었으나, 유린지는 집안 배경에 구애받지 않고 몸소 신붓감을 찾아 평범한 백성 집안의 딸과 혼인하였다. 이후 양치산(陽岐山)에 들어가 자급자족하면서 은거하였고, 다른 이들이 선물하는 것도 일절 받지 않았다. 유린지는 인근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어진 마음을 가진 선비로 유명하여, 한번은 유린지의 집에서 100여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사는 노파가 병에 걸려 위독해지자 사람들에게 이렇게 한탄하고 다녔다.
"누가 나를 묻겠느냐? 오직 유 장사(劉長史)뿐이로다! 그대들은 가서 그에게 알려주시오."
그리고 얼마 뒤에 그 노파가 사망하였다. 이내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유린지는 그녀와 일면식이 없는 사이임에도 달려가 그녀의 관을 묻어주었다. 그의 인자함과 은측함이 이와 같았다.

이후로도 평안하게 은둔하며 생활하던 유린지는 천수를 모두 누리고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