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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13 07:31:25

환비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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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2권 「후비전(后妃傳)」
장춘화 · 하후휘 · 양휘유 · 왕원희 · 양염 · 양지 · 좌분 · 호방 · 제갈완 · 가남풍 · 양헌용 · 사구 · 왕원희(1) · 하후광희 · 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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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건 · 배수 ,배외 배해 배헌,위관 ,위항 위개, · 장화 · 유변
37권 「종실전(宗室傳)」
사마부(孚) ,사마옹(邕) 사마숭 사마망 사마무 사마보 사마익 사마황 사마부(裒) 사마작 사마위(韡) 사마소(韶) 사마괴, ,사마규 사마송 사마형 사마돈 사마경 사마도, · 사마권 ,사마식 사마석 사마웅, ,사마굉 사마홍 사마소(邵) 사마숭 사마집 사마준(俊) 사마순 사마회, · 사마태 ,사마략 사마등 사마모, · 사마수(綏) ,사마효, · 사마수(遂) ,사마훈, · 사마손 ,사마수(隨) 사마수(邃) 사마승 사마무기 사마념 사마상지 사마회지 사마휴지 사마윤지 한연지, · 사마목 · 사마릉 ,사마순 사마빈,
38권 「선오왕문육왕전(宣五王文六王傳)」
사마간(榦) · 사마주 ,사마근 사마담 사마요 사마최, · 사마경(京) · 사마준(駿) ,사마창 사마흠, · 사마융 · 사마유(攸) ,사마유(蕤), · 사마조 · 사마정국 · 사마광덕 · 사마감 · 사마연조
<rowcolor=#ece5b6>39권 「왕침등전(王沈等傳)」40권 「가충등전(賈充等傳)」41권 「위서등전(魏舒等傳)」
왕침(王沈) ,왕준(浚), · 순의 · 순욱 ,순번 순조 순혁, · 풍담가충 · 양준 ,양요 양제, 위서 · 이희 · 유식 · 고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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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 ,정묵, · 이윤 · 노흠 ,노지(盧志) 노심, · 화표 ,화이 화항 화교, · 석감 · 온선유의 ,유돈, · 화교 · 무해 · 임개 · 최홍 · 곽혁 · 후사광 · 하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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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기 · 육운하후담 · 반악 · 장재강통 · 손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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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헌 ,나상, · 등수 · 마륭 · 호분 · 오언 · 장광 · 조유주처 · 주방 ,주무 주초 주효,
59권 「여남왕량등전(汝南王亮等傳)」
사마량 · 사마위(瑋) · 사마륜 · 사마경(冏) · 사마예 · 사마영 · 사마옹(顒) · 사마월
60권 「해계등전(解系等傳)」
해계 · 손기 · 맹관 · 견수 · 무파 · 황보중 · 장보 · 이함 · 장방 · 염정 · 색정 ,색침, · 가필
<rowcolor=#ece5b6>61권 「주준등전(周浚等傳)」62권 「유곤등전(劉琨等傳)」63권 「소속등전(邵續等傳)」
주준 ,주복, · 성공간 · 구희 · 화질 · 유교유곤(劉琨) · 조적소속 · 이구 · 단필제 · 위준 ,위해, · 곽묵
64권 「무십삼왕원사왕간문삼자전(武十三王元四王簡文三子傳)」
사마궤 · 사마간(柬) · 사마경(景) · 사마지 · 사마유(裕) · 사마윤 · 사마연(演) · 사마해 · 사마하 · 사마모(謨) · 사마안 · 사마회 · 사마부(裒) · 사마충(沖) · 사마희 · 사마환 · 사마도생 · 사마욱(郁) · 사마도자
65권 「왕도전(王導傳)」
왕도
<rowcolor=#ece5b6>66권 " 「유홍등전(劉弘等傳)」67권 「온교등전(溫嶠等傳)」68권 「고영등전(顧榮等傳)」
유홍 · 도간온교 · 치감고영 · 기첨 · 하순 · 설겸
<rowcolor=#ece5b6>69권 「유외등전(劉隗等傳)」70권 「응첨등전(應詹等傳)」71권 「손혜등전(孫惠等傳)」
유외 ,유파, · 조협 · 대약사 · 주의응첨 · 감탁 · 변곤 · 유초 · 종아손혜 · 웅원 · 왕감 · 진군 · 고숭
<rowcolor=#ece5b6>72권 「곽박등전(郭璞等傳)」73권 「유량전(庾亮傳)」74권 「환이전(桓彝傳)」
곽박 · 갈홍유량 · 유역 · 유빙 · 유익 환이(彝) ,환운 환활 환비 환충,
<rowcolor=#ece5b6>75권 「왕담등전(王湛等傳)」76권 「왕서등전(王舒等傳)」77권 「육엽등전(陸曄等傳)」
왕담(湛) · 순숭 · 범왕 · 유담 · 장빙 · 한백왕서 · 왕이 · 우담 · 고중 · 장개육엽 · 하충 · 저삽 · 채모 · 제갈회 · 은호
<rowcolor=#ece5b6>78권 「공유등전(孔愉等傳)」79권 「사상등전(謝尙等傳)」80권 「왕희지전(王羲之等傳)」
공유 · 정담 · 도회사상 · 사안 ,사염 · 사혼 · 사현 · 사만 · 사랑 · 사석 · 사막,왕희지
81권 「왕손등전(王遜等傳)」
왕손 · 채표 · 양감 · 유윤 · 환선 ,환이(伊), · 주사 · 모보 · 유하 · 등악 · 주서
82권 「진수등전(陳壽等傳)」
진수(陳壽) · 왕장문 · 우부 · 사마표 · 왕은 · 우예(預) · 손성 · 간보 · 등찬 · 사침 · 습착치 · 서광
<rowcolor=#ece5b6>83권 「고화등전(顧和等傳)」84권 「왕공등전(王恭等傳)」85권 「유의등전(劉毅等傳)」
고화 · 원괴 · 강유 · 차윤 · 은의 · 왕아왕공 · 유해 · 유뇌지 · 은중감 · 양전기유의 · 제갈장민 · 하무기 · 단빙지 · 위영지
<rowcolor=#ece5b6>86권 「장궤전(張軌傳)」87권 「양무소왕전(涼武昭王傳)」
장궤양무소왕 · 양후주
88권 「효우전(孝友傳)」
이밀 · 성언 · 하방 · 왕부 · 허자 · 유곤(庾袞) · 손구 · 안함 · 유은 · 왕연 · 왕담(談) · 상우 · 하기 · 오규
89권 「충의전(忠義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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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권 「양리전(良吏傳)」
노지(魯芝) · 호위 · 두진 · 두윤 · 왕굉 · 조터 · 반경 · 범귀 · 정소 · 교지명 · 등유 · 오은지
91권 「유림전(儒林傳)」
범평 · 문립 · 진소 · 우희 · 유조 · 범육 · 서묘 · 최유 · 범륭 · 두이 · 동경도 · 속함 · 서막 · 공연 · 범선 · 위소 · 범홍지 · 왕환
92권 「문원전(文苑傳)」
응정 · 성공수 · 좌사 · 조지(趙至) · 추담 · 조거 · 저도 · 왕침(王沉) · 장한 · 유천 · 조비 · 이충 · 원굉 · 복도 · 나함 · 고개지 · 곽징지
93권 「외척전(外戚傳)」
양수 · 왕순 · 양문종 · 양현지 · 우예(豫) · 유침 · 두예(乂) · 저부 · 하준 · 왕몽 · 왕하 · 왕온 · 저상
94권 「은일전(隠逸傳)」
손등 · 동경 · 하통 · 주충 · 범찬 · 노승 · 동양 · 곽원 · 곽기 · 오조 · 노포 · 범등 · 임욱 · 곽문 · 공장 · 맹루 · 한적 · 초수 · 적탕 · 곽번 · 신밀 · 유린지
삭습 · 양가 · 공손봉 · 공손영 · 장충 · 석원 · 송섬 · 곽하 · 곽우 · 기가 · 구형 · 사부 · 대규 · 공현지 · 도담 · 도연명
95권 「예술전(藝術傳)」
진훈 · 대양 · 한우 · 순우지 · 보웅 · 두불건 · 엄경 · 외소 · 복후 · 포정 · 오맹 · 행령 · 불도징 · 마유 · 선도개 · 황홍 · 색담 · 맹흠 · 왕가 · 승섭 · 곽논 · 나습 · 욕곽 · 태산
96권 「열녀전(列女傳)」
신헌영 · 엄헌 · 종염 · 왕혜풍 · 이락수 · 순관 · 사도온 · 용린 · 유아 · 염부인 · 소혜 · 모황후 · 단원비 · 양황후 · 윤태후
97권 「사이전(四夷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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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돈 · 환온환현 · 변범지 · 은중문
100권 「왕미등전(王彌等傳)」
왕미 · 장창 · 진민 · 왕여 · 두증 · 두도 · 왕기 · 조약 · 소준 · 손은 · 노순 · 초종
(1) 사마소 부인 왕원희와는 다른 인물로 효회태후로 추존된 사마치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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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권 「유원해재기(劉元海戴記)」 102권 「유총재기(劉聰戴記)」 103권 「유요재기(劉曜戴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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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권 「모용외재기(慕容廆戴記)」 109권 「모용황재기(慕容皝戴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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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권 「모용준재기(慕容儁戴記)」 111권 「모용위재기(慕容暐戴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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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권 「부홍등재기(苻洪等戴記)」 113 · 114권 「부견재기(苻堅戴記)」 115권 「부비등재기(苻丕等戴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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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권 「이특등재기(李特等戴記)」 121권 「이웅등재기(李雄等戴記)」
이특 · 이류 · 이상 이웅 ·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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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혁련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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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

桓秘
생몰연도 불명

동진의 인물로 자는 목자(穆子). 예주 초국(譙國) 용항(龍亢) 출신. 환이의 4남이자 권신으로 유명한 환온의 동생이다.

2. 생애

젊은 시절, 재기가 있어 비서랑에 제수받았으나, 다른 형제들인 환활, 환충과 달리 형 환온에게 중용받지 못했다. 이후 보국장군, 선성내사를 역임했다.

태화 원년(366년) 2월, 양주자사 사마훈이 거병해 성도를 포위하고 성도왕을 자칭했다. 동진 조정은 보국장군 환비를 가절, 감양익2주정토군사(監梁益二州征討軍事)에 임명하고 사마훈의 난을 평정하게 했다. 난을 진압한 후, 부임지인 선성(宣城)으로 귀환했다.

함안 원년(371년) 11월, 대사마 환온은 이전에 자신과 대립했던 은호의 진군 은씨(殷) 집안과 유빙의 영천 유씨(庾) 집안을 미워했다. 결국 그들을 축출하기로 결심한 환온은 동생 환비를 산기상시, 중령군에 임명하고, 신채왕 사마황을 조사하게 했다. 환비는 환온의 지시대로 황궁 서당(西堂)에서 사마황을 심문하고, 그로부터 "무릉왕 사마희의 아들 사마종이 은호의 아들인 저작랑 은연, 유빙의 아들인 태재장사 유천, 산기상시 유유 등과 함께 모반을 꾸몄다"는 거짓 증언을 확보했다. 환온은 이를 근거로 그들을 모두 반역죄로 체포해 정위(廷尉)에게 넘겼다. 이로 인해 무릉왕 사마희와 그 세 아들들은 폐출당하고, 은연, 유천, 유유 등 환온의 정적들은 짐독으로 사사되었다.

함안 2년(372년) 12월, 스스로를 '대도좨주(大道祭酒)'라 지칭하는 도사 노송이 요사스런 술법으로 백성들을 현혹하니, 그를 추종하는 무리가 800여 가(家)나 되었다. 노송은 폐제 사마혁을 복위시킨다는 명목으로, 새벽에 무리 300명을 모아 건강성 북문인 광막문(廣莫門)을 공격해 부쉈다. 이윽고 건강성에 진입한 노송의 무리는 황궁 정문인 운용문(雲龍門)마저 뚫어버리고, 전정(殿庭)에 올라 무기고에서 갑옷과 병장기를 탈취하니, 관리와 병사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유격장군 모안지가 운용문으로 들어가 손수 침입자들을 베고, 좌위장군 은강과 중령군 환비도 지거문(止車門)으로 황궁에 들어가 모안지와 합류하면서 노송을 포함한 수백 명의 무리는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다.

영강 원년(373년) 2월, 고숙(姑孰)에 있던 환온은 노송의 황궁 난입 사건을 보고받고 입조하여, 궁성의 관리들에게 수비를 소홀히 한 죄를 물었다. 이 사건에 연루된 자가 무척 많아 상서 육시 등은 정위에게 넘겨졌고, 중령군 환비 또한 면직 처분을 받으니, 환비는 집에 머물면서도 매번 불평불만의 기색이 역력하여 형 환온을 심히 원망했다. 당시 병을 앓고 있던 환온은 건강에 14일간 머물다가 다시 고숙으로 돌아갔다.

영강 원년(373년) 7월, 병세가 나날이 위독해져 재기할 수 없음을 직감한 환온은 장남 환희가 재능이 모자람을 걱정해, 군재가 있는 막내동생 환충에게 형주의 모든 병권을 넘겨주고 그 무리를 통솔케 했다. 환비는 이에 불만을 품은 조카 환희, 환제[1]와 함께 환충을 도모할 음모를 꾸몄다. 환충은 이를 알고 감히 환온의 병문안을 갈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환온이 병상에서 숨을 거두자, 그 소식을 입수한 환충은 재빨리 사람을 보내 환희와 환제를 구속해 허튼 짓을 못하게 만든 후에 환온의 장례를 올렸다. 조카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관직도 없던 환비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환씨 가문에서 폐출된 환비는 관직으로 나아가는 것을 포기했다. 그는 자신이 원망하던 큰형 환온의 묘소 곁에 기거하면서 밭농사를 하고, 때때로 산과 강을 돌아다니며 유람하는 것을 즐겼다. 훗날 조정에서 그를 불러 산기상시로 삼으려 했지만, 환비는 세 차례나 상표해 굳게 사양했다.
「이 비(秘)는 조정으로부터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것 만큼은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제가 누차 표를 올려 사양한 것은 진실된 마음이며, 이미 병까지 앓고 있어 그 임무를 맡을 수 없음이 그저 한탄스러울 따름입니다.」
환비가 산기상시 벼슬을 거절한 이유는 평소 자신이 깔보던 동생 환충보다 낮은 자리에 서고 싶지 않아서였다. 환비가 이토록 거절하니, 조정에서도 더이상 그에게 벼슬을 권유하지 않았다.

말년에 사안과 서로 서신을 주고 받으며 시를 공유했는데, 그 문장이 자못 빼어났다고 한다. 훗날 황제에 오르는 회계왕 사마욱은 환비의 시를 마음에 들어해 그와 친분을 쌓았다. 환비가 사망하고 아들 환울(桓蔚)이 뒤를 이었는데, 그는 동진 시기 산기상시, 유격장군을 역임했고, 환현이 제위를 찬탈했을 때 예릉왕(醴陵王)에 봉해졌다.


[1] 환온의 차남으로 환희의 동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