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1-19 11:23:58

사마충(동진)

진서(晉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color: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제기(帝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1권 「선제기(宣帝紀)」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사마의 사마사 · 사마소(昭) 사마염
4권 「혜제기(惠帝紀)」 5권 「회제민제기(懷帝愍帝紀)」 6권 「원제명제기(元帝明帝紀)」
사마충(衷) 사마치 · 사마업 사마예 · 사마소(紹)
7권 「성제강제기(成帝康帝紀)」 8권 「목제애재폐제기(穆帝哀帝廢帝紀)」
사마연(衍) · 사마악 사마담 · 사마비 · 사마혁
9권 「간문제효무제기(簡文帝孝武帝紀)」 10권 「안제공제기(安帝恭帝紀)」
사마욱 · 사마요 사마덕종 · 사마덕문
※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 31·32권 「후비전(后妃傳)」 ||
[ 재기(戴記) ]
||<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width=33%> 101권 「유원해재기(劉元海戴記)」 ||<-2><width=34%> 102권 「유총재기(劉聰戴記)」 ||<width=33%> 103권 「유요재기(劉曜戴記)」 ||
유원해 ,유화 · 유선, 유총 ,유찬 · 진원달, 유요
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석륵 ,석홍 · 장빈, 석계룡 ,석세 · 석준 · 석감 · 염민,
108권 「모용외재기(慕容廆戴記)」 109권 「모용황재기(慕容皝戴記)」
모용외 ,배억 · 고첨, 모용황 ,모용한 · 양유,
110권 「모용준재기(慕容儁戴記)」 111권 「모용위재기(慕容暐戴記)」
모용준 ,한항 · 이산 · 이적, 모용위 ,모용각 · 양무 · 황보진,
112권 「부홍등재기(苻洪等戴記)」 113 · 114권 「부견재기(苻堅戴記)」 115권 「부비등재기(苻丕等戴記)」
부홍 · 부건 · 부생 ,왕타, 부견 ,왕맹 · 부융 · 부랑, 부비 · 부등 ,삭반 · 서숭,
116권 「요익중등재기(姚弋仲等戴記)」 117 · 118권 「요흥재기(姚興戴記)」 119권 「요홍재기(姚泓戴記)」
요익중 · 요양 · 요장 요흥 ,윤위, 요홍
120권 「이특등재기(李特等戴記)」 121권 「이웅등재기(李雄等戴記)」
이특 · 이류 · 이상 이웅 ·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800080><tablebgcolor=#800080> ||
}}} ||
<colbgcolor=#800080>
동진의 종실
동해애왕(東海哀王)
司馬沖 | 사마충
시호 애(哀)
작위 동해왕(東海王)
성씨 사마(司馬)
충(沖)
도양(道讓)
가족 부친: 사마예(司馬睿)
생몰기간 311년 ~ 341년
1. 개요2. 생애3.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동진의 황족으로 자는 도양(道讓)이다. 사례 하내군 온현 사람.

2. 생애

사마충은 311년에 원제 사마예와 첩여 석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동해왕 사마월의 아들인 사마비(司馬毗)가 석륵에게 살해당하자, 원제가 사마충을 사마월의 후사로 대신 세워 동해왕세자가 되었으며 장수교위로 임명되었다.

이후 사마충은 중군장군, 산기상시, 표기장군, 거기장군을 역임하다가 341년에 세상을 떠났다. 사마충은 사후 시중, 표기대장군, 의동삼사로 추증되었다. 사후 시호는 애(哀).

사마충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성제 사마연이 자신의 아들인 사마혁을 후사로 들였다. 이후 사마혁의 형인 사마비(司馬丕)가 애제로 즉위하다가 4년만에 세상을 떠나고, 사마혁이 황제로 즉위하였다. 하지만 사마혁이 환온에게 폐위되어 동해왕이 되었다가, 해서공으로 강등되면서 동해국은 다시 단절되었다.

사마언장(司馬彦璋)[1]이 399년에 동해왕으로 책봉되었지만, 환현의 난 와중에 살해당하여 동해국은 완전히 단절된다.

3. 둘러보기

동진의 동해왕
2대 사마월 3대 사마충 4대 사마혁

[1] 간문제의 증손으로, 재상 사마도자의 손자이며, 사마원현의 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