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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12 06:03:08

좌사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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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마소 부인 왕원희와는 다른 인물로 효회태후로 추존된 사마치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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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思
(250? ~ 305)
1. 소개2. 『삼도부(三都賦)』를 짓다
2.1. 낙양지가귀(洛陽紙價貴)2.2. 삼도부가 지어진 시점
3. 『삼도부(三都賦)』 이후 생애, 평가4. 일화5. 가족관계

1. 소개

서진의 인물이며 자는 태충(泰沖)[1]. 좌분의 오빠. 청주 제국 임치현 사람. 아내는 적(翟)씨.

선제(先齊)의 공족으로 좌우공자(左右公子)가 있었는데 그로 인해 성씨가 좌씨가 되었다. 대대로 유학을 하는 가문으로 부친은 좌희라는 사람인데, 작은 관리에서 일어나 중시어사(中侍御史)가 되었다. 좌사는 부지런히 공부하고 음양술(陰陽之術)을 좋아했다. 좌사는 용모가 추하고 말 주변도 없어 존재감이 없는 인물이었고 서로 사귀어 왕래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나마 자신이 있는 것이라면 문장력이었다. 그가 가진 문장의 재주는 장엄하고 화려했다.

2. 『삼도부(三都賦)』를 짓다

당시에는 부(賦)라고 해서 사물의 화려함을 묘사하는 글이 유행했는데, 좌사는 우선 1년에 걸쳐 춘추시대 제나라의 수도였던 임치를 노래한 『제도부(齊都賻)』를 1년에 걸쳐 집필했다. 그리고 다음 작품인 『삼도부(三都賦)』를 지을 생각을 하게 된다.

이후 좌사의 누이동생 좌분이 궁에 들어가자 좌사는 낙양으로 옮겨왔다. 이후 진무제 태시 8년(272년)에 좌사의 누이동생 좌분이 수의로 책봉되었으므로 좌사가 낙양에 온 것은 272년 이전임을 알 수 있다. 어쨌거나 『제도부(齊都賻)』에 자신감을 얻은 좌사는 이때부터 바로 직전 시대인 삼국시대, 위나라, 촉한, 오나라의 수도인 업(鄴), 성도(成都), 건업(建業)의 화려함을 노래하고, 실제로 세 개의 도성만을 쓰는 것이 아니라 위, 촉, 오 세 나라의 개황(대략의 형편과 모양, 형세, 풍토, 지리, 인정 및 생산물 등)을 적은 『삼도부(三都賦)』의 집필에 착수한다.

좋은 글귀가 떠오를 때마다 기록하기 위해 대문과 집안의 뜰, 울타리, 뒷간에 집안 곳곳 화장실이나 밥상머리까지 지필묵을 놓아뒀고, 우연히 한 글귀를 얻으면 즉시 익히고 새겼다. 스스로의 소견이 넓지 않다는 이유로 (책을 읽기 위해) 비서랑(秘書郎, 도서를 관리하는 관직)이 되었다. 좌사는 비서랑으로서 배경이 되는 삼국에 관한 다양한 도서를 읽으며 『삼도부(三都賦)』를 썼고 이렇게 하고서도 10년이나 걸려 『삼도부(三都賦)』가 완성되었다.

『삼도부(三都賦)』는 작품 안에 등장하는 이야기도 구 삼국 세 나라 각각을 대표하는 화자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기에 사실상 서진 시기를 다룬다기 보단 그 이전인 삼국시대를 다룬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좌사는 이 세 도읍의 웅장함과 화려함을 묘사할 뿐만 아니라 그 곳의 민심, 풍물, 상황 등까지 망라하여 각자 서촉공자, 동오왕손, 위국선생이란 가상의 세 인물이 저마다 나열식으로 수사적인 문장을 사용하여 각자 세 도읍을 자랑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참신한 방식을 보여주었다.

2.1. 낙양지가귀(洛陽紙價貴)

워낙 인기가 낮던 좌사였던지라 기껏 글을 쓰고도 '나님이 이런 명문장을 지었음'이라고 다른 사람에게 알릴 방도가 없었다. 당시가 광고나 출판이 성했던 시대도 아니고... 좌사는 이 부에 서문을 써줄 고명한 인사를 찾았고 '고명한 인사'로 당첨된 인물이 바로 황보밀. 황보밀은 삼도부를 한 번 읽어보더니 칭찬하여 좋게 여겨 단숨에 서문을 써주었고, 저작랑 장재(張載)가 「위도부(魏都賦)」에 주석(註)을 쓰고 중서랑 유규(劉逵)가 「오도부(吳都賦)」, 「촉도부(蜀都賦)」에 주석(註)을 붙이고 위관이 약해(略解)를 써주었다. 그리고 이것을 당시 문단의 영수였던 사공(司空) 장화가 "이 글은 반고, 장형의 부류이다. 읽는 이가 책을 덮어도 여운이 남고, 오래 읽어도 새롭다." 라고 절찬하여 일약 유명해졌다.

명사가 낸 소문에 당대의 부자와 귀족들이 너도나도 『삼도부(三都賦)』를 구하려고 애쓰기 시작한다. 그러나 인쇄술이 없던 시대라 『삼도부(三都賦)』를 받아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바로 필사. 때문에 다투어 삼도부 필사 붐이 일었고, 필사를 하려면 종이가 있어야 하기에 종이의 수요가 폭증하여 낙양의 종이값까지 폭등해버렸다. 이에 '낙양의 종이값이 폭등했다'는 '낙양지가귀(洛陽紙價貴)'라는 단어가 베스트셀러를 의미하는 고사성어가 되었다.

어찌나 유명했던지 진서 좌사전에 따르면 당시 저명한 작가 중 한 명이었던 육기가 당초 낙양으로 들어가[2] 이 부( 『삼도부(三都賦)』)를 지으려 했으나 좌사가 『삼도부(三都賦)』를 짓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손뼉을 치며 웃었다. 동생 육운에게 편지를 쓰며 말하기를 '요즘 듣자하니 웬 시골뜨기 하나가 『삼도부(三都賦)』라고 깔짝인 모양인데, 틀림없이 술독을 엎어놓은 꼴이 될 것이다.ㅋㅋㅋ'라고 비웃었다가, 좌사가 부를 지은게 나오자 육기는 직접 『삼도부(三都賦)』를 읽어보고 애타게 탄복하여 여기에 능히 (글을 더) 덧붙일 수 없다 여기며 붓을 내려놓았다고 한다.

2.2. 삼도부가 지어진 시점

좌사는 누이가 궁에 들어간 후 10여년에 걸쳐서 『삼도부(三都賦)』를 썼고 좌사가 『삼도부(三都賦)』를 완성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해 명성을 빌린 황보밀은 282년에 죽었다. 또 위에서 나오듯이 육기가 낙양에 들어와 『삼도부(三都賦)』를 짓고 있던 좌사를 비웃다가 얼마 후 좌사의 『삼도부(三都賦)』가 출간되어 나오자 이를 보고 탄복했는데, 사실 육기는 오나라가 망한 후 포로로 잡혀 들어온 것으로, 육기가 지은 『형평원중(兄平原贈)』 서문에서는 '내 나이 20살에 일찍이 홀로 되어 아우 사룡(士龍, 육운)과 함께 부모를 잃고 가정을 잃었다네. 또 왕명에 쫓겨 포승을 받고 북쪽으로 갔다.'라고 하고 있다.

따라서 좌사가 『삼도부(三都賦)』를 지을때인 280년에 육기가 포로로서 낙양에 들어왔음을 알 수 있고 『삼도부(三都賦)』의 완성 시점은 오나라가 멸망한 280년에서 황보밀이 죽은 282년 사이임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삼도부(三都賦)』를 짓기 시작한 것은 270년부터 272년 사이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좌사가 『삼도부(三都賦)』를 쓰고 완성한 시기는 촉한 멸망 후~나라 멸망 전후, 삼국의 유풍(遺風)이 남아있던 시기이다.

3. 『삼도부(三都賦)』 이후 생애, 평가

원강(元康, 진혜제의 연호, 291년~299년) 연간 동안 좌사는 당시의 권력자 가밀의 문인그룹인 24우에 참여하였고, 가밀을 위해 『한서』를 강의하였다. 300년에 가밀이 주살되자 의춘(宜春) 향리로 은거하며 저술에 전념했고 제왕 사마경이 기실독(記室督)으로 초청했지만 병을 핑계로 이를 응하지 않았다. 이후 기주로 가서 몇 년 뒤에 사망했다.

오언시(五言詩)에도 빼어나서 섬세화되는 시풍 속에서도 기골찬 작풍으로 특이한 존재가 되었고, 오늘날 서진 제일의 시인으로 평가된다. 그 중에서도 아가씨의 응석을 농담조로 노래한 『교녀시(嬌女詩)』는 독특한 작품으로 주목된다. 『영사시(詠史詩)』는 옛 일을 빌려 세태를 풍자한 작품이다. 저서에 편집된 『좌태충집(左太沖集)』이 있다.

4. 일화

세설신어에는 『삼도부(三都賦)』를 처음 저술할 때의 일화가 있는데, 그가 『삼도부(三都賦)』를 처음에 지을 때 당시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아 편치 못해 장화를 찾아갔는데, 장화가 고명한 인사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좌사는 황보밀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고 황보밀이 『삼도부(三都賦)』의 서문을 지어줬으며, 지난번에 비난했던 사람들이 글을 칭찬했다. 그러나 좌사별전에 따르면 황보밀이 서주의 명사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삼도부의 여러 주해는 자신이 기록한 것으로 자신의 문장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일부러 당시 명사의 이름을 빌린 것이라 했다.

세설신어 같은 기록에 따라서는 외모가 너무 못 생겨 반악을 흉내내 놀러나갔다가 여인들이 일제히 침을 뱉는 바람에 기가 죽어 돌아왔다거나 외출할 때마다 아이들이 기와조각을 그에게 던져 수레가 가득찼다고 한다.[3]

5. 가족관계

누이동생 좌분묘지명에서 가족관계가 드러난다.


[1] 좌분묘지명의 기록으로 진서에는 태충(太沖)으로 기록되어 있다.[2] 아래에서 언급하듯이 오나라가 멸망하고 포로로 잡혔을 가능성이 높다.[3] 참고로 반악같은 얼짱들이 수레 타고 외출하면 여자들이 과일을 던져주는 게 당시 유행이었다니 그거에 빗대서 한 이야기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