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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17 17:51:40

도담(동진)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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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선제기(宣帝紀)」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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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욱 · 사마요 사마덕종 · 사마덕문
※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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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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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기(戴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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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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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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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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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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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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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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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陶淡
생몰연도 불명

동진의 은사. 자는 처정(處靜). 양주 여강군(廬江郡) 심양현(尋陽縣) 출신. 형주자사 도간의 손자. 도하(陶夏)의 아들.

2. 생애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도담은 도교의 도양(導養)에 관심을 가지고 신선이 되려는 수행을 시작하였다. 그는 56세에 이를 때까지 곡식을 끊고 약식으로 몸을 다스리려 하였고, 혼인 또한 하지 않았으며, 《주역》을 즐겨 읽어 복서(卜筮)라는 점법에 능하였다. 도담의 집안은 할아버지 덕에 재산이 무척 많았음에도 장사(長沙)의 임상산(臨湘山)에 들어가 오두막 한 채를 짓고, 그곳에서 흰 사슴 한 쌍을 기르면서 살았다. 그가 워낙 깊은 산 속에 자리잡은 나머지 친척이나 친구들이 그를 방문하려 개울가를 건너도 집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주에서 도담을 수재로 천거하자, 도담은 이를 듣고는 나현(羅縣)의 비산(埤山) 깊숙이 들어가 죽을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그의 행방은 아무도 알지 못 했기에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