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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6 00:45:42

채표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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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2권 「후비전(后妃傳)」
장춘화 · 하후휘 · 양휘유 · 왕원희 · 양염 · 양지 · 좌분 · 호방 · 제갈완 · 가남풍 · 양헌용 · 사구 · 왕원희(1) · 하후광희 · 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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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건 · 배수 ,배외 배해 배헌,위관 ,위항 위개, · 장화 · 유변
37권 「종실전(宗室傳)」
사마부(孚) ,사마옹(邕) 사마숭 사마망 사마무 사마보 사마익 사마황 사마부(裒) 사마작 사마위(韡) 사마소(韶) 사마괴, ,사마규 사마송 사마형 사마돈 사마경 사마도, · 사마권 ,사마식 사마석 사마웅, ,사마굉 사마홍 사마소(邵) 사마숭 사마집 사마준(俊) 사마순 사마회, · 사마태 ,사마략 사마등 사마모, · 사마수(綏) ,사마효, · 사마수(遂) ,사마훈, · 사마손 ,사마수(隨) 사마수(邃) 사마승 사마무기 사마념 사마상지 사마회지 사마휴지 사마윤지 한연지, · 사마목 · 사마릉 ,사마순 사마빈,
38권 「선오왕문육왕전(宣五王文六王傳)」
사마간(榦) · 사마주 ,사마근 사마담 사마요 사마최, · 사마경(京) · 사마준(駿) ,사마창 사마흠, · 사마융 · 사마유(攸) ,사마유(蕤), · 사마조 · 사마정국 · 사마광덕 · 사마감 · 사마연조
<rowcolor=#ece5b6>39권 「왕침등전(王沈等傳)」40권 「가충등전(賈充等傳)」41권 「위서등전(魏舒等傳)」
왕침(王沈) ,왕준(浚), · 순의 · 순욱 ,순번 순조 순혁, · 풍담가충 · 양준 ,양요 양제, 위서 · 이희 · 유식 · 고광
<rowcolor=#ece5b6>42권 「왕혼등전(王渾等傳)」43권 「산도등전(山濤等傳)」
왕혼 ,왕제, · 왕준(濬) · 당빈 산도 ,산간 산하, · 왕융 ,왕연 왕징 곽서, · 악광
<rowcolor=#ece5b6>44권 「정무등전(鄭袤等傳)」45권 「유의등전(劉毅等傳)」
정무 ,정묵, · 이윤 · 노흠 ,노지(盧志) 노심, · 화표 ,화이 화항 화교, · 석감 · 온선유의 ,유돈, · 화교 · 무해 · 임개 · 최홍 · 곽혁 · 후사광 · 하반
<rowcolor=#ece5b6>46권 「유송등전(劉頌等傳)」47권 「부현전(傅玄傳)」48권 「상웅등전(向雄等傳)」
유송 · 이중부현 · 부함 · 부지상웅 · 단작 · 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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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曹志) · 유준 · 곽상 · 유순 · 진수(秦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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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밀 · 지우 · 속석 · 왕접극선 · 완충 · 화담민회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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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기 · 육운하후담 · 반악 · 장재강통 · 손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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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헌 ,나상, · 등수 · 마륭 · 호분 · 오언 · 장광 · 조유주처 · 주방 ,주무 주초 주효,
59권 「여남왕량등전(汝南王亮等傳)」
사마량 · 사마위(瑋) · 사마륜 · 사마경(冏) · 사마예 · 사마영 · 사마옹(顒) · 사마월
60권 「해계등전(解系等傳)」
해계 · 손기 · 맹관 · 견수 · 무파 · 황보중 · 장보 · 이함 · 장방 · 염정 · 색정 ,색침, · 가필
<rowcolor=#ece5b6>61권 「주준등전(周浚等傳)」62권 「유곤등전(劉琨等傳)」63권 「소속등전(邵續等傳)」
주준 ,주복, · 성공간 · 구희 · 화질 · 유교유곤(劉琨) · 조적소속 · 이구 · 단필제 · 위준 ,위해, · 곽묵
64권 「무십삼왕원사왕간문삼자전(武十三王元四王簡文三子傳)」
사마궤 · 사마간(柬) · 사마경(景) · 사마지 · 사마유(裕) · 사마윤 · 사마연(演) · 사마해 · 사마하 · 사마모(謨) · 사마안 · 사마회 · 사마부(裒) · 사마충(沖) · 사마희 · 사마환 · 사마도생 · 사마욱(郁) · 사마도자
65권 「왕도전(王導傳)」
왕도
<rowcolor=#ece5b6>66권 " 「유홍등전(劉弘等傳)」67권 「온교등전(溫嶠等傳)」68권 「고영등전(顧榮等傳)」
유홍 · 도간온교 · 치감고영 · 기첨 · 하순 · 설겸
<rowcolor=#ece5b6>69권 「유외등전(劉隗等傳)」70권 「응첨등전(應詹等傳)」71권 「손혜등전(孫惠等傳)」
유외 ,유파, · 조협 · 대약사 · 주의응첨 · 감탁 · 변곤 · 유초 · 종아손혜 · 웅원 · 왕감 · 진군 · 고숭
<rowcolor=#ece5b6>72권 「곽박등전(郭璞等傳)」73권 「유량전(庾亮傳)」74권 「환이전(桓彝傳)」
곽박 · 갈홍유량 · 유역 · 유빙 · 유익 환이(彝) ,환운 환활 환비 환충,
<rowcolor=#ece5b6>75권 「왕담등전(王湛等傳)」76권 「왕서등전(王舒等傳)」77권 「육엽등전(陸曄等傳)」
왕담(湛) · 순숭 · 범왕 · 유담 · 장빙 · 한백왕서 · 왕이 · 우담 · 고중 · 장개육엽 · 하충 · 저삽 · 채모 · 제갈회 · 은호
<rowcolor=#ece5b6>78권 「공유등전(孔愉等傳)」79권 「사상등전(謝尙等傳)」80권 「왕희지전(王羲之等傳)」
공유 · 정담 · 도회사상 · 사안 ,사염 · 사혼 · 사현 · 사만 · 사랑 · 사석 · 사막,왕희지
81권 「왕손등전(王遜等傳)」
왕손 · 채표 · 양감 · 유윤 · 환선 ,환이(伊), · 주사 · 모보 · 유하 · 등악 · 주서
82권 「진수등전(陳壽等傳)」
진수(陳壽) · 왕장문 · 우부 · 사마표 · 왕은 · 우예(預) · 손성 · 간보 · 등찬 · 사침 · 습착치 · 서광
<rowcolor=#ece5b6>83권 「고화등전(顧和等傳)」84권 「왕공등전(王恭等傳)」85권 「유의등전(劉毅等傳)」
고화 · 원괴 · 강유 · 차윤 · 은의 · 왕아왕공 · 유해 · 유뇌지 · 은중감 · 양전기유의 · 제갈장민 · 하무기 · 단빙지 · 위영지
<rowcolor=#ece5b6>86권 「장궤전(張軌傳)」87권 「양무소왕전(涼武昭王傳)」
장궤양무소왕 · 양후주
88권 「효우전(孝友傳)」
이밀 · 성언 · 하방 · 왕부 · 허자 · 유곤(庾袞) · 손구 · 안함 · 유은 · 왕연 · 왕담(談) · 상우 · 하기 · 오규
89권 「충의전(忠義傳)」
혜소 · 왕표 · 유심 · 국윤 · 초숭 · 가혼 · 왕육 · 위충 · 신면 · 유민원 · 주해 · 환웅 · 한계 · 주기 · 이웅 · 악도융 · 우괴 · 심경 · 길읍 · 왕량 · 송구 · 차제 · 정목 · 신공정 · 나기생 · 장의
90권 「양리전(良吏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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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권 「유림전(儒林傳)」
범평 · 문립 · 진소 · 우희 · 유조 · 범육 · 서묘 · 최유 · 범륭 · 두이 · 동경도 · 속함 · 서막 · 공연 · 범선 · 위소 · 범홍지 · 왕환
92권 「문원전(文苑傳)」
응정 · 성공수 · 좌사 · 조지(趙至) · 추담 · 조거 · 저도 · 왕침(王沉) · 장한 · 유천 · 조비 · 이충 · 원굉 · 복도 · 나함 · 고개지 · 곽징지
93권 「외척전(外戚傳)」
양수 · 왕순 · 양문종 · 양현지 · 우예(豫) · 유침 · 두예(乂) · 저부 · 하준 · 왕몽 · 왕하 · 왕온 · 저상
94권 「은일전(隠逸傳)」
손등 · 동경 · 하통 · 주충 · 범찬 · 노승 · 동양 · 곽원 · 곽기 · 오조 · 노포 · 범등 · 임욱 · 곽문 · 공장 · 맹루 · 한적 · 초수 · 적탕 · 곽번 · 신밀 · 유린지
삭습 · 양가 · 공손봉 · 공손영 · 장충 · 석원 · 송섬 · 곽하 · 곽우 · 기가 · 구형 · 사부 · 대규 · 공현지 · 도담 · 도연명
95권 「예술전(藝術傳)」
진훈 · 대양 · 한우 · 순우지 · 보웅 · 두불건 · 엄경 · 외소 · 복후 · 포정 · 오맹 · 행령 · 불도징 · 마유 · 선도개 · 황홍 · 색담 · 맹흠 · 왕가 · 승섭 · 곽논 · 나습 · 욕곽 · 태산
96권 「열녀전(列女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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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권 「사이전(四夷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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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미 · 장창 · 진민 · 왕여 · 두증 · 두도 · 왕기 · 조약 · 소준 · 손은 · 노순 · 초종
(1) 사마소 부인 왕원희와는 다른 인물로 효회태후로 추존된 사마치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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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권 「이특등재기(李特等戴記)」 121권 「이웅등재기(李雄等戴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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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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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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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혁련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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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

蔡豹
(269 ~ 320)

서진동진의 인물. 자는 사선(士宣). 연주 진류군(陳留郡) 어성현(圉城縣) 출신. 조부 채목(蔡睦)은 삼국시대 위나라에서 상서를 지냈고, 부친 채굉(蔡宏)은 서진 시기에 음평태수를 지냈다. 채모와는 육촌이다.

2. 생애

채표는 기개와 재간이 있어, 바로 하남승(河南丞)으로 출사했고, 장락(長樂)과 청하(清河)의 태수직을 차례로 지냈다. 서진 말기에 영가의 난이 발발하자, 채표는 장강 이남으로 피신해 건업에 자리를 잡고 있던 낭야왕 사마예의 휘하로 들어가, 진무장군, 임회태수, 건위장군, 서주자사 등의 직책을 역임했다.

대흥 원년(318년) 12월, 팽성내사 주무(周撫)가 패국내사 주묵(周黙)을 살해하고 후조에 투항하자, 채표는 하비내사 유하와 태산태수 서감과 함께 주무를 토벌했다. 주무는 한산(寒山)에서 격파되어 패주하다가 서감의 장수 우약(于藥)에게 사로잡혀 참살당했다. 하지만 논공행상을 시행할 때, 서감은 자신의 공적이 유하보다 뒤처지는 것을 보고 노하여 태산을 들어 후조에 투항하고, 스스로를 안북장군, 연주자사라 칭했다.

대흥 2년(319년) 6월, 서감이 제수(濟水) 인근을 노략질하면서 동완(東莞)까지 공격해오니, 동완태수 후사모(侯史旄)는 제방에 의지해 위태롭게 성을 지켰다. 사마예는 조서를 내려 정로장군 양감, 서주자사 채모, 무위장군 후예(侯禮), 임회태수 유하, 선비족 장수 단문앙(段文鴦) 등에게 서감을 토벌하라 명했다. 하지만 동진의 장수들은 서감군이 두려워 하비(下邳)에 진을 치고 나아가지 않았다. 채표는 거듭 진군해야 한다 주장했으나, 이번 작전의 대장인 양감이 끝까지 허락하지 않았다.

대흥 3년(320년) 5월, 보다못한 채표가 자신의 군대만이라도 움직여 단구(檀丘)에서 서감을 무찔렀다. 다급해진 서감이 후조에 구원을 요청하자, 석륵은 장수 왕복도(王伏都)에게 300명의 기병을 주어 서감을 돕게 하고, 장경(張景) 등으로 하여금 그 뒤를 잇게 했다. 이때 석륵이 서감의 청을 들어주는 조건으로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고, 구원하러 왔다는 장수 왕복도 또한 음란하고 포학하니, 서감은 앞으로의 일을 크게 근심하였다. 왕복도의 후발대인 장경 등의 군대가 동평(東平)에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은 서감은 의심이 깊어져, 장경이 자신을 습격해오리라 판단하고, 먼저 왕복도를 공격해 후조군 300명을 몰살해버렸다.

왕복도의 구원병이 동진군이 아닌 서감의 배신으로 전멸했다는 소식에 석륵은 크게 노하여 장경에게 자리를 지키라 전하고, 석호를 보내면서 본격적으로 토벌하려는 모양새를 보였다. 서감은 재빨리 동진에 다시 항복하겠다는 서신을 전달했지만, 원제 사마예는 자주 배신하는 서감을 미워해 항복을 거절하고 양감과 채표에게 서감을 토벌하라 재촉했다. 일이 이 지경까지 왔음에도 의심하며 진격하지 않은 양감은 이내 상서령 조협에게 탄핵당해 면직되었고, 채표도 책임을 면치 못해 절충장군으로 강등당하는 대신 양감의 토벌군 전부를 지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양감의 일로 동진군이 허송세월하는 사이에 서감은 처자식을 볼모로 다시 후조에 투항했고, 이미 석호의 군대도 전부 내려와 거평(鉅平)에 주둔한 상황이었다.

대흥 3년(320년) 8월, 채표는 서감을 토벌하기 위해 변성(卞城)까지 나아갔지만, 석호가 진군을 개시하자 야밤에 다시 하비로 퇴각했다. 그때 서감이 퇴각하던 채표를 단구에서 야습해 치중을 빼앗았다. 장수 유총(留寵), 육당(陸黨)이 힘을 다해 싸웠으나, 결국 이기지 못하고 모두 전사했다. 겨우 패잔병을 수습해서 하비에 들어간 채표는 자진하여 건강(建康)에 출두하려 하니, 북중랑장 왕서가 제지하며 말했다.
"오랑캐의 군대가 이르렀으니, 그대는 잠시 이곳에 머무르며 백성을 보호해주시오. 사죄는 적이 물러간 후에 해도 늦지 않소."
채표도 왕서의 말을 일리있다 여기고 이에 따랐다. 한편, 채표의 패전 소식을 들은 원제는 바로 조서를 내려 당장 채표를 수도로 체포해 오게 했다. 원제의 사신으로부터 체포하라는 명령을 전달받은 왕서는, 그 날 밤에 군대를 이끌고 채표의 진영을 포위했다. 채표는 정체불명의 적이 침입해온 줄로만 알고 응전하려 했으나, 이내 체포하라는 조서를 들고 온 왕서임을 깨닫고 순순히 사로잡혔다. 이후 건강으로 압송된 채표는 적을 앞에 두고 겁에 질려 도망쳤다는 죄목으로 참수되고, 그의 시체는 3일간 저잣거리에 효시되었다. 향년 52세. 자식이 한 명도 없어 대가 끊겼다.

채표는 안으로는 부하들을 위무하고, 밖으로는 백성들을 잘 보살펴 인망이 높았는데, 이토록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깊이 슬퍼했다. 참고로 형의 아들인 조카 채예(蔡裔)는 삼촌과 달리 출세하여 산기상시, 연주자사를 지냈고, 고양향후(高陽鄉侯) 작위에까지 봉해졌으며, 훗날 은호가 북벌할 때도 참여해 군대를 지휘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