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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22 19:14:38

산도(서진)

죽림칠현(竹林七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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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창작물에서

1. 개요

山濤
205년 ~ 283년

서진의 인물. 자는 거원(巨源). 산요[1]의 아들. 죽림칠현의 한 사람이자 사례 하내군 회현 사람.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가난하게 살았으며, 어려서부터 기량이 뛰어나 명망있는 선비들은 산도를 업신여기지 못했다. 221년에 어떤 친족이 사마의에게 산도를 사마사, 사마소와 함께 천하를 잘 통치할 인물이라고 했다. 노장 사상의 도를 좋아해 늘 은신해 스스로 감췄고 아내 한씨에게는 허기와 추위를 견디라면서 내가 이후 삼공이 되지만 당신이 삼공 부인 노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244년에 벼슬을 시작해 처음에는 군의 주부를 지내다가 공조, 상계연이 되었으며, 효렴에 천거되었다가 주의 벽소를 받아 부하남종사가 되었다. 왕창의 중랑을 지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국상에 임명되었다가 상서이부랑으로 옮겼다.

노자, 장자 등을 좋아하고 혜강과 친하게 지냈으며, 석감과 함께 역사에서 숙박하다가 산도가 밤에 일어나 석감을 밟으면서 지금이 어떤 때인데 잠을 자는 것이냐면서 태부(사마의)가 병상에 누운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아냐고 말했다. 석감은 재상이 3일 동안 조회에 참여하지 못하면 조서를 내려 사저로 돌아가 요양해야 하는데, 무엇을 걱정하냐고 묻자 산도는 말발굽 사이에서 무사할 것 같냐고 하면서 부절을 내던지고 떠났는데, 산도가 우려한 대로 고평릉 사변이 일어났다.

산도는 은둔해서 세상의 일과 관계를 끊었지만, 원래 사마씨 집안과 먼 친척뻘[2]이었기 때문에 사마소에게 발탁되어서 수재로 선발되어 낭중이 되었다.

263년에 위나라에서 촉을 정벌하고 264년에 사마소가 장안까지 행차하자 산도는 행군사마에 임명되어 업성에 주둔했으며, 신답자에 봉해지고 상국좌장사에 임명되었고 사마소가 장남 사마염과 형의 양자로 보낸 아들 사마유를 두고 후계자를 고민하자 장자를 폐하는 것은 예에 어긋난다고 조언해 사마염이 세자가 되자 감사를 표했다.

265년에 서진이 건국되자 대홍려가 되어 조환을 호송해 업으로 갔으며, 봉거도위에 임명되고 신답백에 올랐다. 나가서는 기주자사, 영원장군이 되었다가 북중랑장으로 옮겨 업성을 지켰다가 중앙으로 들어가 시중, 상서 등을 지냈고 어머니가 늙었다는 이유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후에 태상경이 되었다가 병으로 취임하지 않았고 모친상을 당하자 고향으로 돌아갔고 이부상서에 임명되었다가 275년에 태자소부, 산기상시를 지내다가 상서복야, 시중, 영이부로 옮겼다.

산도는 이부에서 관리를 임용하는데 있어서 명망이 없는 자는 길을 막았고 인재를 선발한 것이 거의 백여 관직으로 대부분은 자신이 뽑았는데, 육량은 조서를 통해 등용한 것으로 육량은 산도와 뜻이 달라 논쟁을 벌였다. 산도는 육량이 관리의 재목은 아니라고 했고 결국 육량은 뇌물수수로 면직되었다.

격의 현령 원의가 뇌물로 실 1백 근을 바치자 산도는 받았다가 들보 위에 얹었는데, 276년에 원의의 일이 드러나자 산도는 그 실을 꺼내 관리에게 줬다. 몇 년이 지나 실이 먼지가 껴 검고 누렇게 되었어도 봉인된 것은 그대로였다.

280년에는 우복야, 광록대부, 시중이 되었고 병에 걸렸다고 해서 물러나려고 했지만 허락되지 않았으며, 오나라 평정 후에는 사마염이 조서를 내려 군을 줄이고 나라의 평안을 표시해 큰 군에서는 백 명, 작은 군에서는 오십 명을 두었고, 천하의 무를 낮추고 문을 높일 생각이라서 사마염이 선무장에서 군사에 대해 강연회를 열어 스스로 그 곳에 도착해 신하들을 모이게 했다.

산도가 이를 반대했고 노흠과 용병의 근본을 논해 주군에서 군을 줄이는 것을 적절하지 않다고 여겼고 그 논리가 정묘했고 모인 이들은 감탄해 산도의 말은 명언이라고 칭송했다. 후에 사도에 임명되었다.

죽림칠현 중에서 부마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제거된 혜강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대부분 산도를 통해서 관직에 오르게 되고, 심지어 혜강의 아들인 혜소를 비서승으로 천거하기까지 했다. 칠순이 넘어서도 조정의 중책을 맡았다. 화교, 배해, 왕제 등에게 추앙받았으며, 78세에 사망해 시호를 강후(康候)라 했다.

2. 창작물에서

네이버 웹툰 삼국전투기에서는 이름이 이름이다 보니 촉촉한 초코칩으로 패러디되었던 초촉에 이어 크라운산도(...)로 패러디됐다. 진의 관원이었지만 학자적 면모를 강조했는지 사복을 입고 등장하는 것도 특징.

삼국 통일 편에서 가충, 순욱 일당의 오 정벌 반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밖이 조용해지면 안이 시끄러워진다며, 이들의 오 정벌 반대의 이유가 없을 수 없다고 말하는 장면으로 잠깐 출연. 즉 이들은 자신들만의 안위를 위해 외부의 적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짓거리를 하려고 한 것이다.


[1] 山曜, 원구의 현령을 지냈다.[2] 사마의의 부인인 장춘화가 산도의 아버지와 고종사촌간이다. 즉, 사마의는 산도에게 오촌 당고모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