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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21 12:43:48

차제(전량)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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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제기(帝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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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18,#e5e5e5
1권 「선제기(宣帝紀)」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사마의 사마사 · 사마소(昭) 사마염
4권 「혜제기(惠帝紀)」 5권 「회제민제기(懷帝愍帝紀)」 6권 「원제명제기(元帝明帝紀)」
사마충(衷) 사마치 · 사마업 사마예 · 사마소(紹)
7권 「성제강제기(成帝康帝紀)」 8권 「목제애재폐제기(穆帝哀帝廢帝紀)」
사마연(衍) · 사마악 사마담 · 사마비 · 사마혁
9권 「간문제효무제기(簡文帝孝武帝紀)」 10권 「안제공제기(安帝恭帝紀)」
사마욱 · 사마요 사마덕종 · 사마덕문
※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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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 31·32권 「후비전(后妃傳)」 ||
[ 재기(戴記) ]
||<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width=33%> 101권 「유원해재기(劉元海戴記)」 ||<-2><width=34%> 102권 「유총재기(劉聰戴記)」 ||<width=33%> 103권 「유요재기(劉曜戴記)」 ||
유원해 ,유화 · 유선, 유총 ,유찬 · 진원달, 유요
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석륵 ,석홍 · 장빈, 석계룡 ,석세 · 석준 · 석감 · 염민,
108권 「모용외재기(慕容廆戴記)」 109권 「모용황재기(慕容皝戴記)」
모용외 ,배억 · 고첨, 모용황 ,모용한 · 양유,
110권 「모용준재기(慕容儁戴記)」 111권 「모용위재기(慕容暐戴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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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권 「부홍등재기(苻洪等戴記)」 113 · 114권 「부견재기(苻堅戴記)」 115권 「부비등재기(苻丕等戴記)」
부홍 · 부건 · 부생 ,왕타, 부견 ,왕맹 · 부융 · 부랑, 부비 · 부등 ,삭반 · 서숭,
116권 「요익중등재기(姚弋仲等戴記)」 117 · 118권 「요흥재기(姚興戴記)」 119권 「요홍재기(姚泓戴記)」
요익중 · 요양 · 요장 요흥 ,윤위, 요홍
120권 「이특등재기(李特等戴記)」 121권 「이웅등재기(李雄等戴記)」
이특 · 이류 · 이상 이웅 ·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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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

車濟
(? ~ 346)

전량의 인물. 자는 처규(處規). 양주(涼州) 돈황군(敦煌郡) 출신. 과감하고 의연한 성격에 도량이 넓었다고 한다.

2. 생애

영화 2년(346년) 5월, 전량의 문왕 장준이 붕어하고 왕세자 장중화가 가양왕(假涼王) 자리를 계승하자, 차제는 금성(金城)의 현령으로 부임하였다. 새로운 왕의 즉위로 불안정한 정세를 틈타 후조의 천왕 석호가 양주자사 마추(麻秋), 장수 손복도를 파견해 금성군을 공격해왔다. 금성태수 장충(張沖)은 후조군이 두려운 나머지 군을 들어 마추에게 항복했으나, 금성현령 차제만이 장충의 이 결정에 굴하지 않았다.

마추는 압도적인 병력으로 협박하여 차제의 투항을 받아내고자 하였지만, 차제는 정색하고는 거리낌 없이 말했다.
"나는 비록 방덕과 같은 능력은 타고 나지 않았으나, 그와 비슷한 중임을 맡고 있다. 내 몸은 죽을지언정, 내 지조는 꺾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말을 마친 후, 칼을 뽑아 자신의 배를 가르고 자결하였다. 마추는 그 충절에 감탄하면서 그의 시신을 수습해 예로써 장사를 치러주었다.

훗날 장중화가 그의 상여를 수도로 영접하고, 친히 마중 나가 큰 소리로 서럽게 울면서 그의 넋을 기렸다. 이후 의화도위로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