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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24 10:16:43

두예(동진)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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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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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杜乂
생몰연도 미상

동진의 인물. 자는 홍리(弘理). 옹주 경조군(京兆郡) 두릉현(杜陵縣) 출신. 정남대장군 두예의 손자. 상서좌승 두석의 아들. 성공황후 두릉양의 아버지.

2. 생애

순수하고 온화한 성격에 미모도 빼어나 강좌(江左)에서 이름을 날렸다. 명필로 유명한 왕희지가 그를 보고는
"피부는 희고 기름 바른 듯이 매끄러우며, 눈동자는 옻칠한 것처럼 새까맣고 영롱하게 빛나는 것이 신선에 비할만 하다."
며 감탄하였다. 강좌팔달의 일원인 명사 환이 역시
"위개(衛玠)가 정신이 맑다면 두예는 외모가 맑구나."
라 평하기도 하였다.

아버지 두석의 작위인 당양후(當陽侯)를 습작하고, 출사하여 단양승(丹陽丞)에 임명되었으나 얼마 안 가 요절하였다. 두예에게는 아들이 없었으므로 후사가 끊겼고, 과부가 된 그의 처 배씨(裴氏)는 수절하여 덕성이 있는 것으로 명성을 얻었다. 딸 두릉양도 미모가 상당하여 성제 사마연의 황후가 되니, 황제의 장인이 된 두예는 금자광록대부로 추증되고 '목(穆)'이라는 시호가 내려졌으며, 배씨 또한 고안향군(高安鄉君)에 봉해지고 식읍은 500호에 달하였다. 다만 그의 딸도 아버지처럼 수명이 짧아 황후에 오른 지 고작 5년만에 20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배씨는 남편이나 딸과 달리 수명이 무척 길어 백성들이 그녀를 "두모(杜姥)"라고도 불렀는데, 딸이 사망하고도 무려 30년 뒤인 효무제 사마요 재위기 당시에도 생존해 있었다. 효무제는 오랜 세월 동안 수절하고 있는 배씨를 광덕현군(廣德縣君)으로 승격시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