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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劉沈(? ~ 304)
서진의 인물이며 자는 도진(道真)으로 유주 연국(燕國) 계현(薊縣) 출신.
2. 생애
유주의 명문 호족 출신인 유침은 젊어서부터 박학하고 고전을 좋아하여 주군(州郡)의 관리로 임관하였다. 지방의 관리를 지내던 중, 태보 위관의 부름에 응해 그의 속관이 되었다가 본읍대중정(本邑大中正)에 부임하여 고향으로 돌아왔다. 유침은 유교의 가르침을 두텁게 하고 현능한 이들을 아껴, 명사 곽원을 2품에 해당하는 벼슬로 추천하고, 중서감 장화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도 변호해주니, 당시 사람들은 모두 이를 가리켜 아름답다 칭송했다.영녕 원년(301년) 4월, 제왕 사마경이 황위를 찬탈한 조왕 사마륜을 제거하고 조정을 장악했다. 유침은 사마경의 부름을 받고 입조하여 좌장사에 임명되었다.
영녕 원년(301년) 10월, 촉 땅에서 유민 이특과 이류가 봉기하자, 사마경은 조서를 내려 유침에게 가절을 더하고, 익주자사 나상, 양주자사 허웅(許雄) 등을 통솔하여 이특의 무리를 토벌하게 하였다. 유침이 이끄는 토벌군이 장안(長安)에 이르렀을 때, 하간왕 사마옹은 유침을 마음에 들어하며 조정에 청해 그를 자신의 군사(軍司)로 삼았다. 그리고 석원(席薳)으로 하여금 유침을 대신해 토벌군을 이끌게 했다. 이후 유침은 옹주자사로 옮겨졌다.
태안 2년(303년) 5월, 의양(義陽)에 거주하던 만족 장창이 안륙(安陸)에서 무리를 모아 반란을 일으키고, 강하(江夏)를 공격해 강하태수 궁흠(弓欽)을 쫓아내고 강하군을 점거하였다. 장창이 산도현령 구침(丘沈)을 황제로 옹립하면서 스스로 상국에 오르고 한(漢)의 재건을 주창하니, 1달여 만에 그 추종자가 30,000명으로 불어났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조정은 둔기교위 유교를 예주자사, 녕삭장군 유홍을 형주자사로 삼고, 옹주자사 유침에게 조서를 내려 옹주병 10,000명과 정서장군부 소속 병력 5,000명을 거느리고 남전관(藍田關)으로 나아가 장창을 토벌할 것을 명했다. 하간왕 사마옹이 조서를 받들지 않자 유침은 독단으로 옹주병만 거느리고 남전으로 출진했으나, 그가 남전에 도착했을 때 사마옹이 그의 병력을 회수했다. 이후 유침은 장사왕 사마예의 명에 따라 무관 400명을 거느리고 옹주로 귀환하였다.
태안 2년(303년) 8월, 하간왕 사마옹이 장사왕 사마예의 토벌을 명목으로 거병하고, 진무장군 장방을 도독으로 삼아 정예병 70,000명으로 낙양을 공격했다. 장방은 사마예를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 하던 중, 꾀를 내어 낙양 서쪽에 위치한 제방인 천금알(千金堨)을 점거하고 물길을 끊어버렸다. 이로써 낙양성 내의 물레방아가 멈추니, 사마예는 관리와 백성들을 징발해 직접 손으로 방아를 찧어 군량을 공급하게 했으나, 고된 노동으로 인해 모두가 피폐해져만 갔다. 위기를 느낀 사마예는 왕호(王瑚), 조적의 조언에 따라 혜제의 이름으로 "사마옹을 토벌하라"는 조서를 써서 유침에게 보냈다.
태안 2년(303년) 11월, 유침이 조서를 받들어 급히 사방으로 격문을 띄우자, 7개의 군(郡)과 여러 오벽(塢壁)에서 이에 호응해 도합 10,000명의 군대가 모였다. 유침은 안정태수 아박(衙博), 신평태수 장광, 안정군의 공조 황보담(皇甫澹)을 선봉에 세우고 장안을 엄습했다.
영화 원년(304년) 정월, 당시 사마옹 정현(鄭縣)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유침이 거병했다는 소식을 듣고 위성(渭城)으로 들어가 굳게 지켰다. 그리고 독호 우기(虞夔)를 파견해 보•기 10,000명을 이끌고 호치(好畤)에서 유침의 군대를 역습하게 했다. 유침이 접전 끝에 우기를 격파하자, 사마옹은 크게 두려워 하며 장안으로 퇴각하고 장방에게 사람을 보내 위급함을 알렸다. 마침 낙양을 함락하고 한창 약탈 중이던 장방은 낙양성 내의 공•사노비 10,000여 명 가량을 탈취하고 다시 서쪽으로 이동했다.
유침의 군대가 위수(渭水)를 건너고 보루를 세워 장안을 위협하니, 사마옹은 매번 군대를 파견해 공격했지만 번번이 패하고 아무런 이득도 얻지 못 했다. 연전연승으로 기세를 올린 유침은 아박과 황보담을 앞세워 정예 중갑병 5,000명을 거느리고 장안으로 진격했다. 유침의 선봉군은 힘껏 싸워 장안성 문을 뚫고 순식간에 사마옹의 장막 아래까지 진격했으나, 유침의 후위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 하고 뒤쳐졌다. 사마옹군의 빙익태수 장보(張輔)는 두 부대 간에 연결이 끊어져 있는 것을 눈치채고 곧바로 가로질러 선봉군을 습격하자, 두 군대는 성문 아래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혈전 끝에 아박과 그 아들이 전사하고 황보담이 생포당하면서 유침의 선봉군은 전멸하였다. 사마옹은 황보담의 재능을 아껴 등용하려 했지만, 황보담이 항복을 거부하여 그대로 처형했다. 사마옹군이 뒤늦게 들어온 유침군마저 격파하니, 유침은 하는 수 없이 패잔병을 거두어 보루로 돌아갔다.
마침내 장안에 도착한 장방은 장수 돈위(敦偉)를 보내 유침의 보루를 야습했다. 유침군은 크게 놀라 제대로 된 저항도 해보지 못 한 채 무너졌으며, 유침은 휘하의 병력 100여 명만 겨우 수습하고 남쪽으로 도주하다가 진창(陳倉)의 현령에게 사로잡혀 장안으로 압송되었다. 이윽고 사마옹과 대면하게 된 유침이 그를 향해 말했다.
"친구 간의 은혜는 가벼우나 삼절(三節)의 은혜는 위중하니, 임금의 조서를 어기고 그 세력의 강약을 따져가며 목숨을 부지할 수는 노릇이오. 옷깃을 여미고 거병한 이래로 필히 죽을 것을 각오하였기에, 설령 젓갈로 담겨진다 하더라도 냉이처럼 달콤하게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하간왕 사마옹은 분노하여 채찍으로 유침을 실컷 때린 후에 요참하였다. 식견 있는 자들은 사마옹이 순리를 범하고 충의지사를 살해하였으니, 오래지 않아 멸망할 것이라 예상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