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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9-14 14:27:44

장빙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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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선제기(宣帝紀)」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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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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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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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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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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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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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

張憑
생몰연도 불명

동진의 인물. 자는 장종(長宗). 양주 오군(吳郡) 출신.

2. 생애

장빙이 10살도 채 되지 않았을 때, 할아버지인 창오태수 장진(張鎭)이 어린 손주를 보고 탄식하며 장빙의 아버지에게 이르기를,
"네게 이렇게 훌륭한 아이가 있는 것을 보니 나는 너만도 못하구나."
라 하였다. 그러자 장빙이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할아버지께서는 어찌 자식을 가지고 아버지를 희롱할 수 있습니까!"
아직 어린 나이였음에도 장빙의 총명함은 이와 같았다.

시간이 흘러 장성한 장빙은 기개와 뜻이 있었고, 현학에도 능통해 마을 내에서 명성을 얻었다. 이후 효렴으로 천거되고 유담을 만나, 그를 통해 국정을 보정하던 회계왕 사마욱과 교류했다. 그리하여 사마욱의 신임을 받게 된 장빙은 태상박사, 이부랑, 어사중승, 사공장사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이후의 행적은 알려진 바 없다.

위진남북조 시대를 포함해, 과거의 서적과 문서를 정리한 《당서》 「경적지(經籍志)」에 따르면 생전에 여러 문집을 집필했다고는 하나 모두 실전되어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