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晉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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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王遐생몰연도 불명
동진의 인물. 자는 환자(桓子). 병주 태원군(太原郡) 진양현(晉陽縣) 출신. 회계왕 사마욱의 왕비인 왕간희의 아버지. 훗날 딸 왕간희가 순황후로 추존되어 외척이 되었다. 표기장군 왕술의 사촌.
2. 생애
젊었을 때부터 태원 왕씨 가문의 위세 덕에 벼슬길에 진출할 수 있었고, 관직이 광록훈에 이르렀다. 사후 특진, 광록대부로 추증되고 산기상시가 더해졌다. 시호는 '정(靖)'.왕하의 장남 왕각(王恪)은 영군장군, 그 아들 왕흔지(王欣之)는 예장태수, 왕흔지의 동생 왕환지(王歡之)는 광주자사를 지냈다. 왕하의 막내아들 왕진(王臻)은 관직이 숭덕위위를 지냈다.
왕하의 딸 순황후 왕간희는 회계왕 사마욱에게 시집 가서 회계왕세자 사마도생과 왕자 사마유생(司馬兪生)을 출산하였는데, 사마도생은 왕간희와 함께 유폐되어 사망했고, 사마유생은 너무 일찍 요절하여 황족임에도 작위를 받지 못 했다. 왕간희와 사마도생은 사마욱이 황제에 오른 뒤에도 외면당했고, 효무제 사마요 대에 들어서야 추존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