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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03 13:36:21

맹루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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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몽손 혁련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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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

孟陋
생몰연도 불명

동진의 은사. 자는 소고(少孤). 형주 무창군(武昌郡) 출신. 맹자의 후손. 삼국시대 동오의 사공 맹종의 증손자. 형 맹가(孟嘉)는 환온이 정서장군일 때 그 밑에서 장사를 지냈다.

2. 생애

맹루는 어린 시절부터 정직하고 청렴한 지조가 절륜하여, 베옷을 입고 채식을 하였으며, 홀로 글과 서적 읽는 것을 즐겼다. 세상일에 구애받지 않아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았고, 가끔 혼자 낚시를 떠나기도 하여 가족들조차 그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때가 많았다. 어머니가 사망하자, 맹루는 너무 슬퍼한 나머지 몸이 심하게 야위었음에도 그로부터 10여 년간 술이나 고기를 입에도 대지 않았다. 그의 가족들이 거듭 말하길,
"소고(少孤)야! 누군들 부모가 없을까? 누구에게나 부모는 있다! 성인이 예법을 제정하여 오늘날의 현자들로 하여금 따르게 하였지만 이에 미치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만약 네가 네 생명을 해치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더욱 불효한 일이다."
맹루는 이 말을 듣고 느끼는 바가 있어 마침내 상복을 벗었다.

맹루의 명성이 국내에 널리 퍼지니, 명사를 좋아하는 회계왕 사마욱이 그를 참군으로 삼았으나, 맹루는 병을 핑계로 응하지 않았다. 또, 한번은 환온도 몸소 맹루를 방문하였는데, 이때 혹자가 환온에게 넌지시 말했다.
"맹루는 행실이 높고, 학식은 만인의 존경을 받고 있으니, 그를 등용하여 그 능력을 발휘하게 하십시오."
그 말을 듣고 환온이 한탄하였다.
"맹루는 회계왕에게도 굽히지 않은 자이니라. 감히 그런 일을 의논하여 괜한 의심을 사지 살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말을 맹루가 우연히 듣고는 말했다.
"환공(桓公)께서는 마치 제가 일부로 가지 않는 것이라 여기는군요. 무수히 많은 사람들 중 관직이 없는 자가 열에 아홉인데, 어찌 모든 이가 높은 자리에 올라 사대부가 될 수 있겠습니까! 저 역시 병으로 어쩔 수 없이 왕의 명령을 받들지 못 하고 감히 고귀한 관직에 오르지 아니한 것입니다."
이 대화가 세간에 알려지면서 맹루의 명성 더욱 높아졌다.

맹루는 유학 경전에 박학하고 아는 것이 많았으며, 특히 《삼례(三禮)》에 통달하였다. 또, 《논어》 주석서를 저술하여 세상에 알렸다. 이후 천수를 모두 누리고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