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6-03-17 22:48:19

논어


파일:다른 뜻 아이콘.svg  
#!if 넘어옴1 != null
''''''{{{#!if 넘어옴2 == null
{{{#!if 넘어옴1[넘어옴1.length - 1] >= 0xAC00 && 넘어옴1[넘어옴1.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1[넘어옴1.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1[넘어옴1.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1[넘어옴1.length - 1] < 0xAC00 || 넘어옴1[넘어옴1.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2 != null
, ''''''{{{#!if 넘어옴3 == null
{{{#!if 넘어옴2[넘어옴2.length - 1] >= 0xAC00 && 넘어옴2[넘어옴2.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2[넘어옴2.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2[넘어옴2.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2[넘어옴2.length - 1] < 0xAC00 || 넘어옴2[넘어옴2.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3 != null
, ''''''{{{#!if 넘어옴4 == null
{{{#!if 넘어옴3[넘어옴3.length - 1] >= 0xAC00 && 넘어옴3[넘어옴3.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3[넘어옴3.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3[넘어옴3.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3[넘어옴3.length - 1] < 0xAC00 || 넘어옴3[넘어옴3.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4 != null
, ''''''{{{#!if 넘어옴5 == null
{{{#!if 넘어옴4[넘어옴4.length - 1] >= 0xAC00 && 넘어옴4[넘어옴4.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4[넘어옴4.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4[넘어옴4.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4[넘어옴4.length - 1] < 0xAC00 || 넘어옴4[넘어옴4.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5 != null
, ''''''{{{#!if 넘어옴6 == null
{{{#!if 넘어옴5[넘어옴5.length - 1] >= 0xAC00 && 넘어옴5[넘어옴5.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5[넘어옴5.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5[넘어옴5.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5[넘어옴5.length - 1] < 0xAC00 || 넘어옴5[넘어옴5.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6 != null
, ''''''{{{#!if 넘어옴7 == null
{{{#!if 넘어옴6[넘어옴6.length - 1] >= 0xAC00 && 넘어옴6[넘어옴6.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6[넘어옴6.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6[넘어옴6.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6[넘어옴6.length - 1] < 0xAC00 || 넘어옴6[넘어옴6.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7 != null
, ''''''{{{#!if 넘어옴8 == null
{{{#!if 넘어옴7[넘어옴7.length - 1] >= 0xAC00 && 넘어옴7[넘어옴7.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7[넘어옴7.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7[넘어옴7.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7[넘어옴7.length - 1] < 0xAC00 || 넘어옴7[넘어옴7.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8 != null
, ''''''{{{#!if 넘어옴9 == null
{{{#!if 넘어옴8[넘어옴8.length - 1] >= 0xAC00 && 넘어옴8[넘어옴8.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8[넘어옴8.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8[넘어옴8.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8[넘어옴8.length - 1] < 0xAC00 || 넘어옴8[넘어옴8.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9 != null
, ''''''{{{#!if 넘어옴10 == null
{{{#!if 넘어옴9[넘어옴9.length - 1] >= 0xAC00 && 넘어옴9[넘어옴9.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9[넘어옴9.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9[넘어옴9.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9[넘어옴9.length - 1] < 0xAC00 || 넘어옴9[넘어옴9.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10 != null
, ''''''{{{#!if 넘어옴10[넘어옴10.length - 1] >= 0xAC00 && 넘어옴10[넘어옴10.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10[넘어옴10.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10[넘어옴10.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10[넘어옴10.length - 1] < 0xAC00 || 넘어옴10[넘어옴10.length - 1] > 0xD7A3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if 설명 == null && 리스트 == null
{{{#!if 설명1 == null
다른 뜻에 대한 내용은 아래 문서를}}}{{{#!if 설명1 != null
{{{#!html 유럽의 소멸된 언어}}}에 대한 내용은 [[노른어]] 문서{{{#!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를}}}{{{#!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의 [[노른어#s-|]]번 문단을}}}{{{#!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의 [[노른어#|]] 부분을}}}}}}{{{#!if 설명2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를}}}{{{#!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3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를}}}{{{#!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4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를}}}{{{#!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5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를}}}{{{#!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6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를}}}{{{#!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7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를}}}{{{#!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8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를}}}{{{#!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9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를}}}{{{#!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10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를}}}{{{#!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의 [[#|]] 부분을}}}}}}
#!if 설명 == null
{{{#!if 리스트 != null
다른 뜻에 대한 내용은 아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if 리스트 != null
{{{#!if 문서명1 != null
 * {{{#!if 설명1 != null
유럽의 소멸된 언어: }}}[[노른어]] {{{#!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문서의 [[노른어#s-|]]번 문단}}}{{{#!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문서의 [[노른어#|]] 부분}}}}}}{{{#!if 문서명2 != null
 * {{{#!if 설명2 != null
: }}}[[]] {{{#!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3 != null
 * {{{#!if 설명3 != null
: }}}[[]] {{{#!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4 != null
 * {{{#!if 설명4 != null
: }}}[[]] {{{#!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5 != null
 * {{{#!if 설명5 != null
: }}}[[]] {{{#!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6 != null
 * {{{#!if 설명6 != null
: }}}[[]] {{{#!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7 != null
 * {{{#!if 설명7 != null
: }}}[[]] {{{#!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8 != null
 * {{{#!if 설명8 != null
: }}}[[]] {{{#!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9 != null
 * {{{#!if 설명9 != null
: }}}[[]] {{{#!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10 != null
 * {{{#!if 설명10 != null
: }}}[[]] {{{#!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문서의 [[#|]] 부분}}}}}}

유교 십삼경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colbgcolor=#345799><colcolor=#fff> 삼경 시경 · 상서 · 주역
삼례 주례 · 의례 · 예기
삼전 춘추좌씨전 · 춘추곡량전 · 춘추공양전
기타 논어 · 맹자 · 이아 · 효경
관련 틀 사서삼경 }}}}}}}}}


사서삼경
사서 삼경
대학 논어 맹자 중용 시경 상서 주역

파일:논어.jpg

1. 개요2. 논어의 성립과 주석
2.1. 한국에서
3. 내용과 특징4. 편제5. 번역6. 여담7. 관련 고사성어8. 관련 문서9. 둘러보기10. 외부 링크11. 둘러보기

1. 개요

파일:논어 모습.jpg
子曰: 「學而時[1]習之[2],不亦[3][4]乎。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 맞춰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먼 곳에서 찾아오는 벗이 있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5]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를 쌓아두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논어 학이(學而)편 1장

논어()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어록을 엮은 경전이다. 공자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제자들이 그의 언행을 모아 책으로 엮어냈다. 전 20편, 482장, 600여 문장으로 내려온다. 본래 판본은 제논어, 노논어, 고문논어 세 종류였지만 현재 전해지는 것은 노논어의 교정본이다.

논어는 공자의 제자에서부터 그 제자 대에 이르기까지 2대에 걸쳐서, 혹은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수 차례에 걸쳐서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논어의 최종 판본은 유자를 거쳐 공자 학파의 후계자 자리를 차지한 증자의 제자들이 완성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6]

2. 논어의 성립과 주석

2천 년 이상 된 고전들이 대개 그렇듯 오랜 세월에 걸친 수많은 짜깁기로 완성되었다. 논어라는 책은 수백 년에 걸쳐 최소 세 차례 증보되고 편집된 듯하다. 대표적인 예로 당시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던 관이오를 두고 상론의 <팔일>과 하론의 <헌문>에서 다르게 평한다는 점에서 추측할 수 있다. 이는 노나라와 제나라의 평가가 서로 나뉘었던 것이 통합되었다는 점에서 노논어와 제논어가 합쳐졌다는 뜻이다.

전통적인 견해에 따르면 1세대 편집자는 중궁, 자유, 자하 등의 직계 제자, 2세대는 유자, 민자 등의 직계 제자, 3세대는 전국시대 맹자나 동시대, 혹은 맹자 사후의 제자들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청나라의 고증학자들부터 시작해 현대의 서양 및 일본 학자들에 이르기까지의 견해에 따르면 논어는 춘추 시대의 언어와 괴리되어 있어 공자 사후부터 편찬이 시작되었다고 볼 근거가 없으며 실질적인 논어의 편찬은 전국시대부터 형성되었다고 본다. 또한 형식 면에서도 논어는 크게 1장부터 10장까지의 상논어와 나머지 부분인 하논어로 나눌 수 있으며, 이 두 부분은 저자와 내용 상으로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고 한다. 20세기 초 영국의 중국학자인 아서 웨일리에 따르면 3장부터 9장까지의 부분이 가장 먼저 성립된 부분이라고 한다.

현대의 고고학적 발견에 따르면 논어의 가장 오래된 판본은 기원전 300년경이다. 즉 아무리 늦어도 맹자가 살 때 쯤에는 논어가 있었던 것. 그런데 이 판본 중 첫번째에서는 공자의 말을 서술할 때 현존 논어처럼 '자왈'이라고 부르지 않고 예기처럼 '중니왈'이라고 부른다. 즉 지금 통용되는 논어는 전국시대 후기 ~ 한나라 시대에 추가적으로 상당한 편집을 거쳤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중니' 판본에는 지금은 논어에는 없고 예기에 증자의 말이라고 전하는 것이 '중니왈'이라고 전해지는 등 현존 판본과 상당히 차이가 크다.

비슷한 시기에 저술된 두번째 판본은 첫번째와는 달리 '공자왈'이라고 시작하며, 몇몇 내용들은 현전 논어보다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맹자에 공자의 말이라고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즉 맹자가 실제로 당시 통용되던 논어의 특정 판본을 보았을 가능성이 큰 것.

한나라 시대의 왕충은 맹자가 자기 저서에서 인용한 공자의 말 대부분이 논어에 없다는 것을 근거로 당시 기준 현전하던 논어의 여러 판본들이 모두 지금은 소실된 공자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한 거대한 저서의 일부분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진시황의 분서갱유 때 당연히 논어가 소실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논어의 원본이 뭔지는 알기가 힘들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분서갱유의 진짜 모습을 고려하면 그 때문에 원본을 알 수 없다는 말은 근거가 희박하다.[7] 어찌되었든 전한대에 이르러 논어 같은 고전이 말하고자 하는 원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연구하는 학풍이 훈고학이란 형태로 나타났다.

이미 한나라 대에 논어의 세 가지 판본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분서갱유 설은 설득력이 적다. 먼저 공자가 일생의 시작과 끝을 보낸 고국 노나라 옛 땅에 전해지던 텍스트(노논어)와 제나라 땅에서 별도로 전해지던 텍스트(제논어), 그리고 한경제곡부의 공자 생가를 허물다 벽에서 나온 텍스트(고논어)이다. 현재 전해져 우리가 보는 논어는 전한의 장우(張禹)가 노논어를 중심으로 하여 장구(章句)를 나누고, 제논어의 내용을 첨가한 통합본이다.[8]

하안은 "제논어는 문왕(問王), 지도(知道)편이 있으니 노논어보다 2편이 많다."라고 했는데 2010년대에 해혼후묘에서 지도(知道)편으로 추정되는 죽간이 발견되었다. # '논어'라는 명칭이 붙은 때는 기원전 2세기 한나라 경제, 무제 연간이고, 후한에 이르러 현재와 같은 형태로 정리되었다고 한다. 한국에는 삼국시대에 전해진 듯한데, 3-4세기 한성백제시대 목간에 5편인 공야장(公冶長) 편의 주요 내용이 있다.

원래 전한 시대까지는 오경만을 경전으로 인정하고 논어는 공자가 오경을 주석한 것으로 보아 중요도가 떨어졌으나, 후한 시대에 이르러 오경보다도 더 권위가 높아지게 되었다.

논어에 주석을 다는 작업도 이때부터 활발하게 이루어져 공안국, 마융, 정현 등이 주석을 달았으나 지금 전해지지는 않고 위나라(魏)의 하안이 이를 바탕으로 《논어집해》(論語集解)를 펴냈다. 이 《논어집해》를 저본으로 남북조시대 양나라의 황간이 《논어의소》(論語義疏)를, 송나라 때에는 형병이 《논어정의》(論語正義)를 저술하였는데 모두 《논어집해》의 재해석이다.

형병의 《논어정의》는 북송대에 《논어집해》와 함께 십삼경주소에 포함되었다.[9] 성리학이 집대성되기 전까지 가장 많이 읽혔던 것이 바로 이 《논어주소》(論語注疏)이다. 《논어의소》는 현학적 경향이 있음이 특이하다.[10] 형병이 단 주석은 훈고를 중심으로 하는 주석학의 경향에서 의리를 밝히려는 경향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성향이 있다. 여기까지를 일반적으로 고주(古註)라고 한다.[11]

이후 남송의 주자가 그동안 축적된 연구성과를 집약해 《논어집주》(論語集註)를 편찬하였는데, 이것을 신주(新註)라고 한다. 여기에는 《논어주소》의 설은 물론, 정호(程顥), 정이(程頤), 사량좌(謝良佐), 장식(張栻), 범조우(范祖禹) 등 송대 유학자의 설이 다양하게 망라된 데다가 원대 이후 성리학이 관학의 지위를 차지하였기 때문에, 《논어집주》는 가장 보편적으로 읽히는 논어 주석서로 자리매김하였다.[12]

이후 청대에는 고증학이 발달하였고, 이러한 고증학적 성과들이 경전 독해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유보남의 《논어정의》(論語正義)가 그러한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주석이다. 청나라가 멸망하고 20세기에 들어서는 정수덕의 《논어집석》(論語集釋), 양수달의 《논어소증》(論語疏證), 양백준의 《논어역주》(論語譯注) 역시 중요한 주석으로 꼽힌다.

2.1. 한국에서

대한민국의 경우 퇴계 이황이 현존 최초 논어 주석인 논어석의(論語釋義)를 편찬했다. 이는 논어의 해석에 대해 주자의 견해에 기반해 정확성을 더하고자 하는 시도로서, 한국 성리학의 중요한 작업 중 하나이다.

17세기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여러 학자들의 주석이 출간되었다. 이이의 학통인 김장생이 71세 나이로 당대 및 이전의 견해를 모두 정리해 저술한 논어변의(論語辨疑), 정여립의 옥사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받아 실각한 권득기의 논어참의(論語僭疑), 윤근수의 제자인 조익의 논어천설(論語淺說), 김장생과 김집의 제자인 이유태가 논어에 대해 난해하거나 의혹이 있는 부분을 정리해 편찬한 논어답문 등이 있었다.

이 중에서도 돋보이는 것은 당연히 송시열의 주석이다. 송시열은 일찍이 박세채와 함께 퇴계학파의 사서 해석을 비판하는 퇴계사서질의의의(退溪論語質疑疑義)를 저술하였는데, 이 중 논어질의(論語質疑) 편에서 논어의 58편을 주석하였다. 이후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주희의 주석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생각해 1689년 제주도에 유배되었을 때 논어와 맹자의 집주서인 논맹혹문과 기타 송대 주자학자들의 주석을 모은 논맹정의를 합쳐 정리한 논맹혹문정의통고(論孟或問精義通攷)를 편찬했다.

그의 이러한 학문적 경향은 노론 낙론의 대표자 김창협에게 계승되어 다양한 논어 주석서를 찾아본 끝에 논어의 본질을 알게 되었다고 보아 서술한 논어설(論語說)이 나오게 된다. 또 송시열이단상의 제자이며 역시 노론 낙론인 임영은 논어차설(論語箚錄)을 통해 수양론의 관점에서 논어를 바라보아 또 한단계의 독자적인 경전 해석을 이루어냈다. 송시열의 수제자이자 호론의 대표자 권상하 역시 논어에서 의문나는 부분을 정리해 풀어 논어집의(論語輯疑)라는 주석서를 펴냈다. 한편 당대의 학문적 이단아였던 박세당은 논어사변록(論語思辨錄朴)에서 탈주자학적, 독자적 경전 해석을 시도했다.

18세기에는 노론 학맥 이외에 다양한 주석서가 편찬되었다. 강화학파의 시조 정제두양명학적 입장의 주석서 논어설(論語說)을 편찬하였고, 송시열의 죽음을 주장하다 유배된 강경 남인 이문부가 논어강목(論語講目)을 펴내 기호학파 쪽에 치중된 논어 연구를 비판했다. 그의 주석 작업은 한동안 위축되었던 영남학파의 논어 연구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었다. 한편 그는 학문적으로 주자와 이황을 따르기는 했으나 주희의 논어집주는 비판하였고, 이는 제자 성호 이익에게로 이어졌다.

성호 이익은 이러한 스승의 견해를 이어받고 본인의 학문적 업적을 더해 논어질서(論語疾書)를 편찬했다. 다만 통념과는 달리 주자학을 부정하는 단계에까지 이르지는 않았고, 단지 몇몇 구절에서 고증학적 견해를 더한 것에 주희의 수양론을 합친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후대의 근기남인들과 소위 '실학'이라 불리는 성리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한편 노론, 특히 낙론을 중심으로도 주석서가 계속 편찬되었다. 노론이자 실학자인 위백규는 이이-송시열-김창협의 도통을 이어받아 당대 동아시아에서 인기를 끈 수사적 분석법을 적용해 논어차의(論語箚義)를 저술하였다. 이는 당대 조선의 학문이 타국과의 교류도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후 정약용이 일본 에도 막부의 이토 진사이(伊藤仁斎),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같은 인물까지 참고하여 논어고금주(論語古今注)[13]를 썼다. 다만 조선시대 인물들의 사고를 추적하는 경우에는 주희의 《논어집주》(論語集註)를 주로 읽는다. 조선 지식인들은 기본적으로 주희의 성리학에 입각해 사고했기 때문이다.[14]

이상의 인물 및 저작들은 서로 살았던 시기가 심하면 1500년은 훌쩍 차이나며 학문관도 그만큼 상이하므로, 같은 논어임에도 결코 비슷한 종류의 저작이라고 할 수 없다.

3. 내용과 특징

난해하다. 내용 자체는 그리 어려운 편이 아니라고 볼 수 있지만, 공자와 그 제자들의 간단한 대화만 덩그러니 남아 있으니 전후의 맥락을 유추하기가 어렵고, 축약되고 생략된 표현이 많으며 특히 수백, 수천년의 세월 동안 중국어의 용법이 많이 바뀌어서 텍스트만으로는 공자 당대의 언어적 의미를 복원하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공자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15]라고 한마디했는데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어떤 식으로 그 말을 했는지는 없고 그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라는 한마디만 남았다. 말 그대로 상황은 하나도 없고 말씀만 남아 있으니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 물론 이는 이미 널리 알려진 말이지만, 역시 정확한 상황과 전후 맥락이 어땠는지는 영영 알 길이 없다.

게다가 인, 예, 충 등의 의미가 후대 유교에서 변화, 각색된 예가 있다. 공자가 말하는 인, 예, 충 등의 의미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인, 예, 충의 의미가 상충되기도 하므로 현대인들이 읽기에는 명확하게 와닿지를 않는다. 하기사 2천 년도 더 전의 책을 글자만 보고 바로 이해가 간다면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화가 아무 것도 없다는 소리니 말이 될 리가 없다. 더구나 한문 특유의 중의적인 의미까지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예를 들어 학이편에 나오는 증자의 말 중 '전불습호(傳不習乎)'라는 문장은 크게 아래와 같은 4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1. 전해 받은 것을 익히지 못했는가?
  2. 남에게 전하고도 스스로 익히지 못했는가?
  3. 고전(古傳)을 익히지 못했는가?
  4. 스스로 익히지 못한 것을 남에게 전했는가?

또 위정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 중 '색난(色難)'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대로 해석하면 '안색이 어렵다'. 이에 대해서는 크게 2가지 해석이 있다.
  1. 자식이 늘 부드러운 얼굴빛으로 부모를 섬기기는 어렵다.
  2. 자식이 부모의 얼굴빛을 살피고 그에 맞게 대처하기 어렵다.

저 긴 문장을 두 글자로 확 줄여버리니 해석하기 어려울 수밖에. 다만 조선시대로 한정하면 사실상 주자의 주석이 절대기준이어서 주자의 주석을 보면서 공부한다면 크게 혼란스러운 점은 없었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중의성은 고전 한문의 특징에서 비롯된 것으로, 표의문자인 한자의 특성과 함께 글의 해석하기에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고대에는 책을 만들기가 지극히 어려웠다. 간독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책을 만드는 일은 굉장히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길이를 줄여서 '꼭 필요한 공자 어록'만 요점 노트 비슷하게 만들고 이를 모조리 암송한 후 구체적인 맥락과 해석은 스승에게 구두로 전수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문자는 남아도 말은 흩어져 사람마다 경전의 풀이가 달라졌다. 후대에 주석으로 남은 부분을 제외하면 해석 부분이 사라진 것이다.

물론 해석을 구전의 영역에 둔 것이 정확성을 훼손하는 것만은 아니다. 일정한 체계와 연속성이 있다면 오히려 문자 기록만 남아있을 때보다 구전이 더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다.

그 외에도 《논어》는 여러 단문의 모음집이라 앞 내용과 뒷내용이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공자의 말을 제자들이 기록한 논어의 몇몇 구절은 배경지식이 없을 시 곡해하거나 아예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비슷한 예로 《맹자》 양혜왕 편을 들 수 있다."처음으로 나무 인형을 만들어 순장에 사용한 사람은 틀림없이 자손이 끊어져 후대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신 적이 있으니"[16]라는 문구는 순장에 대한 공자의 적개심을 알지 못한다면 이해가 어렵고, 심지어 정반대 뜻으로 오해를 유발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런 만큼, 하나의 일관된 사상하에 전개된 노자장자, 중용, 맹자보다 훨씬 어려울지도 모른다. 이들은 원전 하나만 파도 이해가 되지만, 《논어》는 획일화된 사상이 직접 드러나지 않는 명언 모음집을 읽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문 해석 면에서는 일부 난해한 비유들을 제외하면 맹자가 더 쉽고 주제의식도 명확하다. 논어는 책 전체를 꿰뚫는 주제의식을 찾기가 대단히 어려운 경전이다.

이것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논어를 읽으면 "그냥 착하게 살라는 말 아니야?"로 오해하기가 매우 쉽다. 사실 이건 유교에 대한 흔한 오해이기도 하다. 물론 논어는 책 전체를 꿰뚫는 일정한 사상 아래에 쓰여진 책이지만, 아무 생각 없이 읽으면 완독 후 "이게 무슨 소리야?"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게 된다.

이는 서양에 소크라테스처럼 동아시아의 철학자인 공자가 시대와 시대의 문제를 고찰하며 사색한 관념을 제자들이 대화 형식으로 옮겨 적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 인생을 살기에도 버겁지만 시대를 앞서간 철학자 들은 개인뿐만 아니라 인류의 인생 자체를 사는 것과 같은 고민을 했었기 때문이랄 수 있다. 이 때문에 읽는 사람은 현실과 동떨어진 듯한 진리만 말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답답함과 너무 추상적이라서 이해가 쉽지 않은 어려움을 느끼기가 쉽다.

하지만 현대인에게 주는 교훈이 분명히 있는데 '위정자는 위정자답고 부모는 부모다워야 한다는 것', '말한 것은 당연히 행동으로 옮겨야 해서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등등이 있다.

4. 편제

논어의 편제는 모두 20편이다. 편들의 제목은 각 편의 맨 첫 단락 중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기를(子曰)'을 제외한 구절을 따서 붙인 것이다. 상론 10편과 하론 10편은 문체와 호칭 및 술어 면에서 분명히 차이가 난다. 상론은 문장이 간략하고 글자 수가 적은 반면, 하론은 문장이 길고 글자수가 많다. 또한 상론의 마지막 10편 향당은 공자의 일상생활을 담아 결말을 내는 셈이어서, 하론 10편의 사실성을 두고 의문이 있다. 여하간 상론이 먼저 쓰였음은 거의 확실하다고.

5. 번역

논어는 많은 언어로 번역되었는데, 영어로는 아서 웨일리와 찰스 뮬러, 그리고 윌리엄 에드워드 수틸(1861~1935)이 번역한 것이 가장 유명하다. 일찍이 16세기 후반에 논어의 일부는 예수회 중국 선교사들이 라틴어로 번역했다.

한국어 번역은 워낙 다종다양하며 동아시아철학 전공자들은 '괜찮은 논어 번역본 추천해 달라.'는 질문을 받으면 난감해한다. 번역본 종류가 워낙 많거니와 동아시아철학 전공자 수준이라면 번역본이 아닌 원문으로 논어를 읽기 때문. 따라서 동아시아철학 전공자에게 추천을 부탁해 봤자 '서점에서 죽 훑어 봐서 자신에게 적당하다고 느껴지는 것을 고르라.' 하는 판에 박힌 답변만 듣게 될 것이다.

6. 여담

7. 관련 고사성어

8. 관련 문서

9. 둘러보기

{{{#!wiki style="margin:-10px"<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000> 파일:공자_투명.png공자
관련 문서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000,#fff> 생애 및 사상 생애 및 사상
평가 평가
관련 작위 문선제 · 연성공 · 기타 작위
가족 공자 가문 군주 · 자사
저서 논어 · 춘추
현대 대중매체
기타 기타 · 공자평화상 · 공부가주 · 안연이 공자에게 인을 물었다 · 공자학원
낭설 공자식인설 · 공자 한국인설
}}}}}}}}} ||

10. 외부 링크

11. 둘러보기

'''[[중문학|중문학사
{{{#!wiki style="font-family: serif; display: inline"
]]'''
{{{#!wiki style="word-break: keep-all; 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colbgcolor=#cc0000,#cc0000> 선진 · 진한시대
(BC 11C~AD 3C)
<colbgcolor=#cc0000,#cc0000> · 서사시 [[춘추시대|
春秋
]]
파일:음양.svg 시집: 시경(저자미상)
[[전국시대|
戰國(战国)
]]
파일:음양.svg 초사: 굴원(초사)
[[후한|
後漢(后汉)
]]
파일:음양.svg 서사시: 공작동남비(저자미상)
[[삼국시대(중국)|
三國(三国)
]]
파일:음양.svg 한시: 조조(단가행) · 조비(전론 · 연가행) · 조식(칠보시 · 낙신부)
· 소설 [[춘추시대|
春秋
]]
파일:음양.svg 신화집: 산해경(저자미상)
산문 [[주나라|
]]
파일:음양.svg 점복학: 문공(주역)
[[춘추시대|
春秋
]]
파일:음양.svg 철학: 노자(이이)(도덕경) · 공구(논어 · 춘추)
파일:음양.svg 병법: 손무(손자병법)
[[전국시대|
戰國(战国)
]]
파일:음양.svg 철학: 자사(중용) · 장주(장자) · 맹가(맹자) · 묵적(묵자) · 순황(순자) · 한비(한비자)
파일:음양.svg 병법: 오기(오자병법)
[[진(영성)|
]]

파일:음양.svg 병법: 황석공 등(육도·삼략)
[[전한|
前漢(前汉)
]]
파일:음양.svg 역사학: 사마천(사기) · 상서(저자미상) · 유향(전국책)
파일:종교표지_유교_검은색.png파일:종교표지_유교_흰색.png 유교: 예기(저자미상)
[[후한|
後漢(后汉)
]]
파일:음양.svg 자전: 허신(설문해자)
파일:음양.svg 역사학: 반고(한서)
[[삼국시대(중국)|
三國(三国)
]]
파일:음양.svg 표문: 유비(한중왕표), 제갈량(출사표), 이밀(진정표)
위진남북조 · 수당시대
(3~10세기)
· 서사시 [[동진|
東晉(东晋)
]]
파일:음양.svg 한시: 도연명(귀거래사)
[[남북조시대|
南北朝
]]
파일:음양.svg 서사시: 목란사(저자미상)
파일:음양.svg 교육서: 주흥사(천자문)
[[당나라|
]]
파일:음양.svg 한시: 왕발(송두소부지임촉주) · 왕지환(양주사 · 등관작루) · 왕유(녹시 · 송원이사안서 · 구월구일억산동형제) · 이백(정야사 · 장진주) · 고적(연가행) · 두보(춘야희우) · 맹교(유자음) · 한유(조춘정수부장십팔원외) · 백거이(비파행 · 매탄옹 · 부득고원초송별) · 유종원(강설), 이하(상심 · 금동선인사한가) · 이상은(무제 · 춘우) · 두목(청명)
· 소설 [[동진|
東晉(东晋)
]]
파일:음양.svg 지괴소설: 간보(수신기)
[[남북조시대|
南北朝
]]
파일:음양.svg 지인소설: 유의경(세설신어)
[[당나라|
]]
파일:음양.svg 연애소설: 원진(앵앵전) · 백행간(이와전)
파일:음양.svg 신이소설: 이조위(유의전)
산문 [[남북조시대|
南北朝
]]
파일:음양.svg 시문집: 소통(소명문선)
[[당나라|
]]
파일:음양.svg 여행기: 현장(대당서역기) · 유종원(영주팔기)
파일:음양.svg 역사학: 오긍(정관정요) · 한유(소선등전 · 마설 · 사설)
파일:음양.svg 시문집: 두목(번천문집)
송원 · 명청시대
(10세기~1912년)
· 서사시 [[북송|
北宋
]]
파일:음양.svg 부(賦): 구양수(추성부) · 소식(적벽부)
[[남송|
南宋
]]
파일:음양.svg 한시: 이청조(취화음 · 하일절구), 육유(시아)
[[금나라|
]]
파일:음양.svg 한시: 원호문(안구사)
· 소설 [[원나라|
]]
파일:몽골 제국 국기.svg 장편극: 왕실보(서상기)
파일:몽골 제국 국기.svg 잡극: 기군상(원보원조씨고아)
[[명나라|
]]
파일:명나라 황제 용보.png 연의소설: 나관중(삼국지연의 · 수호전) · 견위(초한지) · 풍몽룡(열국지) · 시내암 · 봉신연의(저자미상)}
파일:명나라 황제 용보.png 풍속소설: 소소생(금병매)
파일:명나라 황제 용보.png 모험소설: 오승은(서유기)
파일:명나라 황제 용보.png 화본소설: 탕현조(모란정환혼기)
[[청나라|
淸(清)
]]
파일:청나라 국기.svg 희곡: 공상임(도화선)
파일:청나라 국기.svg 인정소설: 조설근(홍루몽)
파일:청나라 국기.svg 풍자소설: 오경재(유림외사)
파일:청나라 국기.svg 무협: 석옥곤(칠협오의)
파일:청나라 국기.svg 기담집: 포송령(요재지이)
산문 [[북송|
北宋
]]
파일:음양.svg 역사학: 사마광(자치통감)
[[남송|
南宋
]]
파일:종교표지_유교_검은색.png파일:종교표지_유교_흰색.png 유교: 주희(소학)
[[원나라|
]]
파일:몽골 제국 국기.svg 역사학: 증선지(십팔사략)
[[명나라|
]]
파일:명나라 황제 용보.png 양명학: 왕수인(전습록)
파일:명나라 황제 용보.png 수신서: 범립본(명심보감) · 홍응명(채근담)
[[청나라|
淸(清)
]]
파일:청나라 국기.svg 정치학: 황종희(명이대방록)
파일:청나라 국기.svg 에세이: 고염무(일지록)
파일:청나라 국기.svg 자전: 장옥서 등(강희자전)
민국시대 · 현대
(1912년~21세기)
· 서사시 [[중화민국 국민정부|
中華民國(中华民国)
]]
파일:중화민국 북양정부 국기.svg 낭만주의: 궈모뤄(여신) · 쉬즈모(재별강교)
[[중국|
中國(中国)
]]
파일:중국 국기.svg 몽롱시: 베이다오(북도)
· 소설 [[중화민국 국민정부|
中華民國(中华民国)
]]
파일:중화민국 북양정부 국기.svg 사실주의: 루쉰(아Q정전 · 광인일기)
파일:중화민국 북양정부 국기.svg 향토주의: 선충원(변성)
[[홍콩|
香港
]]
파일:영국령 홍콩 국기.svg파일:홍콩 특별행정구기.svg 무협: 김용(사조삼부곡 · 설산비호외전 · 천룡팔부 · 소오강호 · 녹정기)
파일:홍콩 특별행정구기.svg 추리소설: 찬호께이(13.67)
[[대만|
臺灣(台湾)
]]
파일:대만 국기.svg 무협: 고룡(절대쌍교 · 초류향)
파일:대만 국기.svg 모더니즘: 바이셴융(타이베이 사람)
[[중국|
中國(中国)
]]
파일:중국 국기.svg 사실주의: 마오둔(자야) · 바진(격류삼부곡) · 라오서(낙타상자 · 찻집)
파일:중국 국기.svg 사회주의 리얼리즘: 딩링(소피의 일기 · 태양은 쌍간강에서 빛난다)
파일:중국 국기.svg 사회파: 빙신(두 가정 · 어린 독자에게) · 첸종수(위성) · 차오위(뇌우)
파일:중국 국기.svg 혁명문학: 왕멍(청춘만세)
파일:중국 국기.svg 상흔문학: 루신화(상흔)
파일:중국 국기.svg 반사문학: 구화(푸룽진))· 장현량(남자의 반은 여자)
파일:중국 국기.svg 심근문학: 루야오(평범한 세계) · 모옌(붉은 수수밭)
파일:중국 국기.svg 선봉문학: 쑤퉁(나, 제왕의 생애)
파일:중국 국기.svg 신사실주의: 류전윈(닭털 같은 나날) · 츠리(번뇌하는 인생)
파일:중국 국기.svg 자전적 소설: 장룽(늑대 토템)
파일:중국 국기.svg 아방가르드: 위화(인생 · 허삼관 매혈기) · 옌롄커(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 찬쉐(마지막 연인)
파일:중국 국기.svg SF: 류츠신(삼체)
[[미국|
美國(美国)
]]
파일:미국 국기.svg 리얼리즘: 장아이링(경성지련 · 금쇄기 · 색, 계)
[[프랑스|
法國(法国)
]]
파일:프랑스 국기.svg 아방가르드: 가오싱젠(영혼의 산 · 도망)
[[싱가포르|
新加坡
]]
파일:싱가포르 국기.svg 모더니즘: 옝 페이 응온(英培安)
[[말레이시아|
馬來西亞(马来西亚)
]]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모더니즘: 리쯔수(黎紫書)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실존주의: 허수팡(許素芳)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포스트모더니즘: 응킴추(黃錦樹)
산문 [[중화민국 국민정부|
中華民國(中华民国)
]]
파일:중화민국 북양정부 국기.svg 모더니즘: 주쯔칭(아버지의 뒷모습)
[[중국|
中國(中国)
]]
파일:중국 국기.svg 혁명문학: 마오쩌둥(사령부를 포격하라 · 모순론 · 실천론)
파일:중국 국기.svg 실존주의: 스톄성(나와 디탄공원)
[[홍콩|
香港
]]
파일:영국령 홍콩 국기.svg파일:홍콩 특별행정구기.svg 에세이: 린위탕(생활의 발견)
[[싱가포르|
新加坡
]]
파일:싱가포르 국기.svg 리얼리즘: 팡슈(方修)
세계의 문학사 둘러보기
관련 문서: 중문학 | 고전주의|신고전주의|계몽주의|낭만주의|초월주의|리얼리즘|역사 소설|자연주의|탐미주의|장르문학|모더니즘|허무주의|상징주의|표현주의|디스토피아|판타지|SF문학|무협 }}}}}}}}}

[1] 여기서 時를 '때때로'가 아니라 '때에 맞추어 적절하게'로 번역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 경우 習은 실천의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사실 습의 구성이 새가 날개짓을 하는 모양에서 따왔다. 새는 날개짓을 실천으로 배우므로 결론적으로 배웠으면 적절한 시기에 실천하란 뜻으로 해석이 된다. 덧붙여 한대에는 "때에 맞추어"의 해석이 대세였고, 주희의 논어집주에서는 "때때로"라는 해석이 대세였다. 여기서 "때때로"는 수시로, 시간 날 때마다라는 뜻이다.[2] 일각에선 중국어의 '下去'와 비슷한 뉘앙스를 가지는 조동사의 之로 보고 '익혀 나간다면'으로 해석하기도 한다.[3] 대체로 한문에서 부정의문문의 형태로 많이 쓰이는 '不亦~乎'로 보고 亦을 허사로 간주하고 해석을 안하는 경우도 있다.[4] 말씀 설이 아니다. 기쁠 열()로 해석하고 읽는다.[5] 여기에서 '벗'은 단순히 친구가 아니라, 뜻을 함께하는 사람을 말한다. 즉 동지에 가까운 말이다. 이 두번째 구절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했을 때 처음으로 한 말로도 유명하다. 최인훈소설 회색인 첫마디로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않은가"로 나오기도 했다.[6] 논어에서 공자를 제외하고 子가 붙는 이가 바로 유자(有子)와 증자(曾子)이기 때문이다. 공자 생전의 생생한 이야기들이 많으며 안회나 자공 등에게는 子를 안 붙인 것으로 미뤄볼 때 초기 판본은 공자의 제자 대에 만들어졌고, 개정본이 유자와 증자 대에 완성되었다고 여겨진다. 한편 자왈파편(공자 생전의 말)을 달리 모아둔 논어의 원형이 공자 제자대에 이미 완성되었을 것이라는 추정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올 김용옥은 자공이 6년상을 할 때 논어의 초기 판본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한다.[7] ≪논어≫의 성립에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은 대부분 ≪춘추좌씨전(좌전)≫에서 근거를 찾는데, 최근의 연구 성과에 따르면 ≪논어≫가 ≪좌전≫보다 앞서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8] 《논어장구》(論語章句), 혹은 《장후론》(張侯論)이라고도 한다.[9] '경문(대문)-집해(대주)-정의(세주)'의 형식으로 편집되었다.[10] 이런 이유로 이미 《논어정의》 단계에서도 《논어의소》의 설은 많이 까인다.[11] 혹은 《논어주소》와 같이 십삼경주소에 포함된 것만을 특정해서 고주라고 하기도 한다.[12] 현대에 논어 번역서를 내는 경우에도 이를 저본으로 삼는다.[13] 일상어를 잘 살린 명번역으로 꼽히는 이을호의 한글 논어가 이를 저본으로 삼았다.[14] 논어 자체를 공부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한문학과등 관련 학과에서도 주희의 주석을 주로 한다. 예컨대 한국고전번역원의 부설기관인 교육원의 입학시험에서, 시험범위가 '논어'일지라도 문제는 논어 원문과 주희의 주석을 포함한다.[15]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참고로 부정의문문을 표현할 때 관습적으로 不亦~乎의 형태로 나타내는 예가 많아서 亦(또한)의 의미를 굳이 해석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 역시 있다.[16] 맹자 원전 《맹자》 우재호 옮김, 을유문화사, 2007, 권1 양혜왕장구 상[17] 학이시습지의 "학이"다.[18] 제후는 6일무, 대부는 4일무까지만 할 수 있다.[19] 예를 들면, 똑바로 썰지 않았거나 너무 익혔거나 덜 익힌 음식은 손도 대지 않는 공자의 성향이라든가, 반드시 겉옷과 색이 똑같은 가죽옷을 골라서 입고 나가는 습관, 잘못된 습관을 세우지 않는 등 공자의 예가 일상생활에서 나타난다.[20] 원래 안회인데 안회의 자가 자연이라 이렇게 된 것. 안자연이라 불러야겠지만, 공자는 안회든 다른 제자들이든 종종 뒷글자만 부르곤 했다. "연아"라고 하는 식. 그래서 안연이 되었다.[21] 다만 이 부분은 낮에 공부를 안하고 딴 짓을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22] 어머니가 돌아가신 걸 좋아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냥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것이다.[23] 문장에서 나오는 叩는 힘껏 때리는 게 아닌 툭툭 치는 정도를 나타내는 글자다.[24] '原壤夷俟[31], 子曰: 幼而不孫弟, 長而無述焉. 老而不死, 是爲賊. 以杖叩其脛.' 이 내용은 헌문편 45장 내용이다. 위와 같은 내용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이 해석이 된다.
원양이 쭈그리고 앉으면서 공자를 기다렸다. 공자가 말했다. "너는 어려서는 공손하지 않았고, 장성해서는 이뤄놓은 것도 없고, 늙어서는 죽지도 않으니 네놈이 바로 도적놈이다." 그러면서 지팡이로 그의 종아리를 (툭툭) 건드렸다.
[25] 쉽게 해석하자면, "너는 지금 이 나이가 되도록 나잇값도 못하냐?" 하면서 불알친구에게 들고 있는 지팡이로 "야야, 일어나." 하면서 정강이를 툭툭 건드리는 것이다.[26] 이 뜻이 무슨 뜻이라면 당시 춘추전국시대에는 주나라로부터 정리된 예법들이 무너지고 각 나라들이 각자의 기준대로 사용해서 문란했던 시대였다. 그래서 큰아버지를 그냥 아저씨라고 부르질 않던가... 제후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감히 천자의 예법으로 제사를 지내는 등 혼란했던 시대였다. 주석에서도 "이 때에 출공이 아버지를 아버지로 여기지 아니하고 할아버지를 아버지로 여겨 명칭과 실제가 문란했었다."(是時, 出公不父其父而禰其祖, 名實紊矣.)라고 기록했다.[27] 주석에서 "우(迂)는 사정에 대해 먼 것을 이른다.(迂謂遠於事情.)"[28] 여담이지만 웬만한 사상가나 종교의 교조는 스스로 책을 쓰는 일이 없다. 꾸란무함마드가 한 말을 후세에 정리한 것이고,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담은 성경은 말할 것도 없고, 석가모니불경도 그렇다. 하다못해 공자와 비견될 만한 소크라테스도 <변명> 등에서 플라톤에 의해 그 사상이 쓰였다. 거꾸로 말하면, 그렇기에 후세의 제자들에 의해 스승의 주장이 재단당할 확률도 없지 않게 있고, 그래서 욕도 먹는 게 사실이다. 초대형 규모의 사상집단의 교조급이 직접 자료를 남기는 경우는 기껏해야 도가의 노자가 남긴 노자(도덕경) 정도. 그마저도 사후에 도가가 다른 형태로 흘러가면서 종교화된 것이라 이마저도 얘기가 조금 다르긴 하다.(노자 당대의 죽간본과 현대에 전해진 도덕경을 비교해보면 그 사상의 차이가 적지 않게 난다. 자세한 것은 노자 항목 참조.)[29] 메이저 급은 아니나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진 종교 가운데에 원불교창시자가 살아있을 때에 교리와 경전을 확립한 바 있으나, 이 또한 박중빈이 직접 저술한 것은 아니고, 송규 등 핵심 제자가 글을 써오면 감수하는 형태였다.[30] 안연이 공자에게 인을 물었다가 극기복례의 일화에서 유래했다. 세 원숭이의 모티브도 여기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