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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6 16:41:54

노나라

1. 魯
1.1.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왕조
1.1.1. 개요1.1.2. 역사1.1.3. 유력 세경가
1.1.3.1. 삼환(三桓)1.1.3.2. 삼환이 아닌 세경가
1.1.4. 역대 군주1.1.5. 기타
1.2. 수말당초의 왕조
2. 潞

1.

중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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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왕조

춘추시대 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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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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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존속기간 서기전 11세기 ~ 서기전 256년[2]
위치 중국 산둥
수도 곡부
국성 (姬)
국가원수 후작
언어 상고 중국어
문자 금문전서 (대전체)
종교 중국 토속 종교[3]
종족 화하족
성립 이전 주나라
멸망 후 초나라
현재 국가 중국

[clearfix]

1.1.1. 개요

중국 서주 시대부터 존재하던 나라로 지금의 산둥성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시조는 주공 단의 장남인 백금이고 수도는 곡부다.

본래는 '로(魯)'나라이다. 두음법칙 때문에 국내에서는 노(魯)나라로 부른다.

주공 단은 주나라 원로 관직인 주공이 되어 주 문공으로 일컬어지며 장남 백금에게는 노나라를 주고 차남 군진에게는 자신의 주공 자리를 주니 그가 주 평공이다.

공자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주나라의 예절을 따지는 노나라의 기풍을 생각하면 과연 공자에 걸맞은 고향이라 말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현재의 산동성 역시 대대로 이어져온 가정폭력의 고장으로 중국인들에게 유명세를 떨친다.

1.1.2. 역사

1.1.2.1. 서주
주나라의 예절이 가장 잘 보존된 나라였다.[4] 그런 만큼 기풍이 엄격하고 전통과 예의를 중시[5]하였으며, 여러 나라들 사이에서 전쟁을 중재하는 등 남을 배제하는 것이 상식인 난세에서 정도를 지키고자 한 특이 케이스다.
1.1.2.2. 춘추시대
서주 시대까지만 해도 시조 주공 단의 위상에 힘입어 송나라, 위나라와 더불어 주요 제후국 중 하나로 손꼽혔으나 이후 동주 춘추시대로 접어들면서 근린국인 제가 패자를 칭할 정도로 무섭도록 성장해 크게 압박을 받은 데다, 내부적으로도 맹손씨, 숙손씨, 계손씨라 불리는 세 가문, 일명 삼환(三桓)[6]이 공실을 제치고 실권을 손에 넣으면서, 이에 반발한 군주와 이들 간의 권력 다툼[7]으로 오랜 기간 혼란이 지속돼 약소국으로 전락하고 만다.
1.1.2.3. 전국시대
그래도 전국시대까지 아득바득 살아남았고 노공공 때까지는 위나라와 연합해 제나라를 칠 정도의 여력은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결국 다른 나라들의 성장세를 따라가지 못해 전국시대 후기에 (楚) 고열왕의 침공으로 멸망한다. 상전이었던 주나라가 멸망하기 몇년 전 차이로 멸망하여 이미 군주의 작위를 박탈당한 위나라를 제외하면 전국칠웅을 제외한 제후들 중 가장 마지막까지 버티다 사라진데다 마지막 군주도 끔살당하는게 아닌 초나라의 배려로 천수를 누리다 갔으니 나름 호상이라 할 수 있겠다.

먼 훗날, 전한평제가 노의 마지막 군주였던 경공의 6대손, 공자 관을 찾아내 제후로 봉한다.

1.1.3. 유력 세경가

1.1.3.1. 삼환(三桓)
노환공의 장자인 노장공을 제외한 자식인 서장자 경보, 서차자 숙아, 적차자 계우의 후손으로 노나라 멸망 때까지 권력을 쥐고 흔들었다. 양호가 이들의 처결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했고, 공자는 삼환 권력을 약화를 노리며 헌신했으나 실패했다.
1.1.3.2. 삼환이 아닌 세경가

1.1.4. 역대 군주

노 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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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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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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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대

고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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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대

양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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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대

유공
제5대

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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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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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대

평공
제3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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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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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기타

1.2. 수말당초의 왕조

수말당초 주요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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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궤 이자통 임사홍 두건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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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진(薛秦) 양양(梁梁) 고연(高燕)
,초대,
설거
,2대,
설인고
양사도 고개도
보송(輔宋) 우문허(宇文許) 주초(朱楚) 심양(沈梁)
보공석 우문화급 주찬 심법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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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당교체기 서원랑이 세운 단기정권이다. 통칭 서로(徐魯).

2.

춘추시대 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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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에 적적(赤狄)족의 일파가 세웠으나 나중에 진(晉)나라에게 멸망당하였다. 항목 1과 동음이의의 노나라이다.


[1] Baxter-Sagart의 재구에 의하면 상고음은 /*rˤaʔ/ 또는 /*r.ŋˤaʔ/. 현대 발음은 lǔ. 魯.[2] 사기에선 249년.[3] 단, 춘추전국시대 사람들은 세속적인 편이었다.[4] 공구, '논어', 김형찬 역, 홍익출판사, 2016, p19[5] 특이한 점은 이웃한 제나라는 이와는 정반대로 열국 중에서 가장 손꼽힐 만큼 실리를 따졌다. 입장이 완전히 상반된 두 나라가 인접해 있었던 것. 노와 제의 이러한 성향차를 잘 보여주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 주나라가 상나라를 쓰러뜨리고 천자국이 되자 큰 공을 세운 왕족, 대신들이 제각각 제후로 임명되어 봉지로 부임하게 된다. 강태공은 제를, 주 문공의 장남 백금은 섭정 직을 맡아 분주한 부친을 대신해 노를 다스리게 됐는데, 강태공은 고작 5개월 만에 대강의 업무를 마치고 봉국의 상황을 조정에 보고하러 온 데 반해 백금은 무려 3년 지나서야 겨우 입조한다. 한 사람은 너무 빠르고 한 사람은 너무 늦으니 이 완전히 상반된 결과에 놀란 주 문공이 그 까닭을 물으니 강태공은 현지 사정에 맞춰 예법을 간소화했기에 금방 일을 끝낼 수 있었다고 말하고, 백금은 아예 처음부터 풍속을 완전히 뜯어고쳐 예에 합치되게 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한다. 양국의 창설자들이 서로 이토록 극과 극으로 사고가 달랐으니 이후에도 그러한 면들이 시정(施政)에 강하게 반영됐던 것. 여담이지만 주 문공은 두 사람의 대답을 듣곤 정치의 요체는 간단함에 있어, 행하기 쉬워야지만 백성들이 모이고 따른다며 노는 장차 제에게 잡혀 지내겠다고 탄식했다 한다.[6] 노 희공이 할아버지 노 환공의 아들들, 즉 삼촌들을 중신으로 임명한 데서 비롯됐다. 맹손씨는 경보, 숙손씨는 숙아, 계손씨는 계우가 시조.[7] 삼환을 몰아내기 위해 군주가 직접 나섰다가 쫒겨난 사례도 있다. 공자가 아직 젊었을 무렵, 사소한 사건이 발단이 돼(자세한 내막은 노소공 항목 참조) 당시 노나라 임금이었던 소공이 측근인 후소백을 비롯해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이끌고 삼환 중 하나인 계손씨를 공격하였다. 그런데 계손씨가 밀리자 뒤에서 사태를 관망하던 숙손씨와 맹손씨가 공실이 강해질 것을 우려해 계손씨의 편을 들었고 결국 세 가문의 힘을 당해내지 못한 소공은 싸움에 패해 제나라로 달아난다. 이렇듯 삼환은 강성하기도 강성하거니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곧잘 단합하였기에 노나라 군주에게는 가히 골칫거리였는데, 결국 백 년 뒤인 노 원공 대에서 이르러서야 겨우 몰락한다.[8] 본명이 전획, 시호는 혜. 유하는 그의 식읍 봉지이다.[9] 당연히 제 경공이 직접 미인계를 부린 건 아니고(...) 우호를 위한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자국의 미녀들을 노나라로 보냈다.[10] 달리 시호가 문공(文公)이라 먼저 있는 노 문공과 구별하기 위해 노후문공(魯後文公)이라고 한다.[11] 당시 노나라는 정말 말할 것도 없는 약소국이었지만, 초나라도 초회왕초양왕의 실정으로 기울어가던 중이었음은 염두에 두자.[12] 물론 주나라 본국에 주둔했던 주공 단이라 본인의 장자에게 노나라를 관리하게 한다.[13] 특히 노 은공이 죽고 노 희공이 즉위하기까지 약 50년 동안의 기간은 동생을 죽이고 숙부가 조카를 죽이고 계모의붓자식을 죽이는 등 매우 어지러웠다. 그나마 노 장공이 제나라의 침략이라는 위기 상황에서도 그럭저럭 나라를 잘 다스리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