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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5 12:03:50

오언(삼국지)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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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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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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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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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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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서』 「나헌등전(羅憲等傳)」
나헌 등수 마륭 호분 도황 오언 장광 조유
吾彦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정사 삼국지3. 삼국지연의4. 미디어 믹스

1. 개요

삼국시대 오나라, 서진의 장수. 는 사칙(士則). 양주 오군 오현 사람.

2. 정사 삼국지

비천한 집안 출신이며, 키가 8척에 달하고 힘이 세었고 통강리 벼슬을 지내다가 육항의 부장이 되었다. 육항은 미천한 출신의 그를 중용하기 위해 한 가지 계책을 세워 어떤 이에게 난입해 미치광이처럼 칼을 휘두르게 했는데, 다른 모든 사람들이 도망칠 때 오언 혼자서 침착하게 그를 진압하자 오언은 육항의 뜻대로 장수로 등용된다.

272년보천진나라로 배반해 서릉성을 점거하자 좌혁, 채공과 함께 그를 포위해 육항의 본군이 와서 그를 공격해 죽이는데 공을 세워 건평태수로 임명되었으며, 왕준이 오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배를 만들 때 강을 타고 흘러내리는 나뭇가루를 보고 오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 손호에게 군사 증강을 요청하지만 거절당한다.

280년에 왕준의 군대가 공격하자 오언은 그를 막기 위해 장강에 쇠사슬과 쇠막대기를 깔아두어 배를 막으려고 했지만 왕준은 뗏목으로 쇠말뚝을 없애거나 횃불로 쇠사슬을 없애 별 소용이 없었으며, 건업이 점령되어 오나라가 항복할 때까지 오언은 건평을 지키고 있었지만 오나라가 멸망한 것을 알게 되자 진나라에 항복한다.

낙양에서 왔을 때 사마염이 오가 왜 망했냐고 질문하자 오나라 군신 모두 현명했으나 천운이 끝나 멸망한 것이라고 대답했는데, 며칠 전에 설영이 손호가 멍청했기 때문이라는 대답에 비해 훌륭하다고 여겼다. 금성태수, 돈황태수, 안문태수를 지내다가 순양내사에 임명되었으며, 순양내사가 오는 족족 꼬투리를 잡아 죽이던 사마창도 오언만큼은 함부로 하지 못했다.

교주목 도황이 죽자 남중도독이 되어 구진[1]에서 조지가 일으킨 반란을 진압했으며, 303년에 영주가 우릉승의 공격을 받았을 때 조정에서 그들을 구원하라는 명령을 받자 307년에 아들 오자에게 군사를 주어 영주를 구원하게 한다.

20년 동안 남중도독, 교주자사를 지내다가 나이가 들자 다른 사람을 후임으로 삼아달라고 청해 중앙으로 돌아와 대장추를 지내다 사망한다.

3. 삼국지연의

쇠사슬과 쇠막대기로 배를 막은 것은 잠혼이 한 것으로 바뀌었으며, 건평에서 진군을 상대로 방어하다가 손호가 항복한 소식을 알고 항복한 것만 나온다.

4. 미디어 믹스

파일:external/kongming.net/535-Wu-Yan.jpg
삼국지 11
파일:external/san.nobuwiki.org/0292.jpg
삼국지 13, 14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모든 능력치가 70을 넘거나 70에 가까운 오 멸망기 오나라 에이스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 4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73/70/76/66. 연사, 누선, 정란, 교사를 가진 후반기 기준으로 A급의 장수.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73/68/76/67/65의 올라운더. 특기도 7개나(기술, 보수, 화시, 고무, 저지, 유인, 기염) 돼서 나름대로 쓸 만하다. 유인, 기술 특기는 상대적으로 높은 지력을 살릴 수 있는 특기이고, 화시를 가지고 있어서 궁병대를 맡기면 좋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74/72/77/69/68로 골고루 상향. 특기는 조선. 등장 년도가 253년이라 사실 시나리오에서는 거의 볼 일이 없고 보통은 영웅집결 유요군 휘하에서 활약한다.

삼국지 13에서 복귀했는데 능력치는 매력만 빠진 상태에서 전작과 같으며 특기는 상업 3, 농업 3, 순찰 1, 수영 1. 전수특기는 상업이며 전법이 기공강화였지만 PK에서 단일도발으로 변경되었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74, 무력 72, 지력 77, 정치 69, 매력 66이며 개성은 축성, 수전, 법률, 견뢰, 주의는 왕도, 정책은 수군육성 Lv 3, 진형은 안행, 장사, 정란, 전법은 화시, 철벽, 강습, 시람, 친애무장은 설후, 육항, 혐오무장은 없고 PK에서는 간파 개성이 추가되었다.

삼국전투기에서는 고스트 바둑왕의 야시로 키요하루로 등장.

서릉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보천이 진에 투항한 이후 육항, 좌혁 등과 함께 서릉 공략을 위해 움직였다. 다른 인물들과 더불어 뇌담이 깨진 뒤에 군소리 없이 포위망을 쌓는 노가다 작업에 참여하였다. 양호군이 강릉에 당도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육항에게 서릉은 자신들만으로 어떻게든 해 볼테니 강릉으로 돌아가보라고 했지만 육항은 강릉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며 이를 거절했다.

유찬주교 등과 함께 양조에게 투항한 뒤에는 육항의 명을 받고 본디 방어벽의 약점이었던 남서 포인트의 병력을 최정예로 교체했다.

삼국 통일 편에서는 건평태수로 재임 중 함선의 재료 일부인 목재들이 장강을 따라 떠내려오자 진이 함선을 건조하고 있다고 판단해 손호에게 병력 증원을 요청지만 거절당했다. 이에 오언은 급한 대로 장강을 가로지르는 철쇄를 설치했다. 그러나 왕준은 이미 양호의 자료를 토대로 철쇄가 설치됐다는 걸 알았기에 먼저 뗏목을 떠내려보내는 방법으로 철쇄를 제거한 다음 건평을 무시하고 진격했다.[2] 그래도 왕준에게 상대하기 껄끄러운 장수라고 나름 고평가를 받기도 했다. 끝까지 건평을 사수하던 오언은 오의 멸망 소식을 듣고 투항했다. 마지막엔 오의 멸망이 손호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라는 의견을 살짝 내비치기도 했다.


[1] 한나라 때부터 당나라 때에 걸쳐 베트남의 하노이 이남, 탄호아 이북에 두었던 군[2] 오언은 안 그래도 병력이 부족한데다 최전방 건평을 비워 둘 수도 없는 노릇이라 왕준을 쫓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