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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혈통 우상화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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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서적 미제와 일제의 조선침략 죄행 · 백두혈통 우상화 교과서 · 세기와 더불어 · 조선력사
* 괄호 안의 연도는 북한의 주장에 근거한 연도이며, 실제 역사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단체 및 사건이거나 실제와는 다른 연도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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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실상4. 내용들
4.1. 김일성
4.1.1. 김일성의 항일투쟁/군사적 능력 과장4.1.2. 김일성에 대한 외부인의 평가 날조4.1.3. 김일성에 대한 북한 내 찬사들4.1.4. 김일성의 생활 미화4.1.5. 김일성의 외양&'태양상' 묘사4.1.6. 김일성의 천재성 묘사4.1.7. 북한이 주장하는 김일성의 업적 정리
4.2. 김정숙
4.2.1. 김정숙의 사격술 과장4.2.2. 김정숙의 외양, 성품 묘사
4.3. 김정일
4.3.1. 김정일의 생일4.3.2. 김정일의 어릴 적4.3.3. 김정일이 가졌다는 '초자연적 능력'4.3.4. 김정일의 생활 미화
4.3.4.1. '쪽잠에 줴기밥'
4.3.5. 2010년 8월 24일 로동신문 기사 중
4.4. 김정은
4.4.1. 김정은의 '어린이 사랑'4.4.2. 김정은의 '비범한 천품'
4.5. 종합
5. 해외에서의 유사 사례
5.1. 근황 - 초능력 선전 포기
6. 남북통일 이후7. 참고자료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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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백두혈동 우상화 교과서.png
2010년대 초반 출판된 백두혈통 우상화 교과서
충실성은 말로써가 아니라 당과 수령의 위대성이 전면적으로 구현되여 있는 불멸의 혁명력사를 깊이 체득하는 과정에 더욱 높이 발양되게 됩니다.
2014년에 발간된 고급중학교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혁명활동 교수참고서'에 실린 김정은 교시

북한에서 배우는 <혁명력사> 교과서로, 조선력사 이후 벌어진 '근현대사'를 다룬다.

실질적으로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김정숙백두혈통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 책은 공산주의 이념과 목표에 따라 계급 의식을 가르치고, 공산주의적 인간으로 육성하며 또한 집단주의 원칙에 따라 일하고 생활하며 사회와 인민의 이익, 과 혁명의 이익을 위하여 헌신할 것을 교양함으로써 조선로동당과 수령의 영도 밑에 하나의 사상, 하나의 조직으로의 결속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그 어떤 교과목들보다도 우선시하고 제일 중요하게 교육하는 과목들로 여겨지며, 보육원, 탁아소 때부터 평생 동안 이 모든 내용들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우도록 할 정도다. 실제로 많은 북한이탈주민은 아무리 다른 과목 성적이 좋아도 이 '혁명력사'를 모르면 대학 입학이 불가능할 정도라 증언한다. 관련하여 유치원 교사 출신 북한이탈주민 증언이 있다. 그리고 교과서를 무상으로 공급해준다는 북한의 선전과는 정반대로 새학기를 맞이하여 상파지[1]를 내지 못한 학생에게는 '기본 과목'으로 간주되는 '혁명활동' 교과서만 주면서 상파지를 바치면 나머지 교과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한 적도 있다. #

이 우상화 교과서 제목은으로 시작한다. 북한에서 김씨 삼부자 이름은 강조 표기하여야만 한다.

학교별로 교과서 이름이 다른데, 소학교(남한의 초등학교)는 '어린시절', 초급중학교(남한의 중학교)는 '혁명활동', 고급중학교(남한의 고등학교)는 '혁명력사'로 끝난다. 예로 초급중학교 김정숙 교과서 이름은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 혁명활동". 김정은 우상화 교과서는 2013년 교육과정 개정으로 추가되었다.

교과서가 학교별로 다른 이유는 간단하다. 우상화 교과서 속 백두혈통도 어린이들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나이를 먹어가며 어린이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해 보다 효과적으로 어린이들을 세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친모 고용희를 다룬 과목은 2024년 현재까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고용희는 남한 혈통 '째포'요 아버지는 일본에 군복을 납품하던 친일 자본가니 북한 입장에서는 완벽한 적대계급잔여분자(적대계층)이므로 '항일정신'을 내세우는 '백두혈통' '정통성'에 막대한 흠집을 입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고용희는 김정일의 정실부인도 아닌 이었고, 김정은은 고용희의 장남도 아닌 차남이었으며 김일성은 죽을 때까지 김정은의 존재조차 몰랐다. 이 때문에 김정은 우상화 교과서에서도 김정은의 출생지는 커녕 생년조차 언급하지 않았고, 김정은의 출생지는 성역화는 커녕 언급도 없다. 김정일처럼 출생지 날조조차 시도된 바 없다.

따지고 보면 김일성도 적대계층이다. 친모 강반석은 독실한 개신교도에 친부 김형직공산주의자에게는 치료조차 하지 않았고(무면허 의사였다) 원한을 사 공산주의자에게 살해당한 골수 반공주의자였다. 즉, 김정은은 친가, 외가 모두 완벽한 적대계층이기에 일반적인 북한 주민이라면 아예 최창익, 황장엽[2], 장성택[3], 신태수처럼 사실상 가문 자체가 소멸했을 인물이다. 게다가 김정은도 그 장성택의 조카였다.[4] 따라서 김정은은 일반적인 북한 주민이면 3대가 멸족되고도 남았을,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적대계급잔여분자 출신인 셈이다. 때문에 김정은 우상화는 김일성/김정일과 달리 내력을 상세히 공개하지 않는다. 생일조차 공식적으로 공개하지 않을 정도.[5]

보천보 전투 이외에 군공이 전무했던 김일성의 기짜 무장 투쟁 이력도 창작해야 했는데, 그 내용이라는 것들이 김일성이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고 모래로 쌀을 만들었으며 가랑잎을 타고 강을 건넜다든가, 축지법을 써서 미제와 남조선 괴뢰들을 격멸했다던가 하는 온갖 비현실적이고 허무맹랑한 것들이 난무하기에 북한의 교육만 받은 사람조차도 "이게 말이 되나?"라고 의문을 제기할 정도다.

김만철의 증언에 따르면 이런 내용들을 실제로 가르치던 시절에는 우상화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한 학생들이 "혁명정신이 없다"며 선생님한테 호되게 혼나는 것도 아주 많이 봐주는 것이었다고 하며, 북한의 전직 외교관 고영환은 이런 근거도 없고 비논리적인 우상화에 대해 조금의 의문만 제기해도 바로 수용소로 직행한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하술하듯 프랑스에서 고용한 번역자가 번역할 우상화 자료에 의문을 표했다가 CIA 공작원이라는 누명을 받고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 후 사망한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다.[6]

초자연적 능력을 동반한 우상화 선전들은 조선사회과학원 산하 력사연구소가 날조한 에피소드들을 당에 소속된 '유포담당책임일꾼'들이 구전을 통해 주민들과 학생들에게 유포하고는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언론매체를 통해 선전하고는 출판사를 통해 '입증'한 뒤 교과서와 일반 서적에 소개하여 신빙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행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이렇게 만들어간 날조들을 "이것들은 모두 조선의 사회과학자들이 중국 동북지방에까지 수백번이나 돌아다니며 힘들게 자료를 찾아가면서 겨우겨우 발굴해간 검증된 사실들이며, 이 이야기들의 진원지는 남조선과 외국이다"라고 선전했으며, 더 가관인 것은 필요에 따라 우상화 교과서의 내용을 아예 완전히 바꾸기도 해 이전에 배우는 교과서와 후에 배우는 교과서의 내용이 완벽하게 모순되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은 자신이 배워 온 내용들이 갑자기 바뀌어도 과거에 배웠던 내용들을 모른 채 하며 새롭게 배운 내용들을 진실로 인식해야 한다. 예시[7]

초자연적 능력 선전 외에도 북한이 단순히(?) 이들에 대해 찬사하는 내용들도 가관인데, 단순한 일 하나하나를 묘사한다고 해도 이름 앞에 붙이는 진부한 호칭, 터무니없이 과장된 수사법[8]과 김씨 3대의 '인품'에 감명을 받은 사람들의 작위적이다 싶을 정도의 반응[9], 날조된 '업적'과 날조된 외국인들의 찬사 나열, 감성팔이들은 선전 인원들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김씨 3대의 '위대성'을 고양시키는커녕 하도 어처구니가 없다보니 오히려 이들에 대한 혐오감까지 들게 만들 정도다.[10] 농담이 아니라 하술할 김씨 3대 찬양 멘트들을 보면 진지하게 김씨 3대가 애정결핍을 앓고 있어 이에 대한 보상심리의 일환으로 과장된 우상화 멘트를 만들라고 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들 지경.[11][12] 안드레이 란코프는 이런 과장된 선전들에 대해 '북한방송 개방이 실현되면 로동신문이나 김정일 로작을 아무 때나 자유롭게 보게 될 남한 사람들은 북한에 대해 보다 더 부정적인 인상을 갖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RFA 칼럼)

2. 역사

사실 김일성 우상화 교과서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68년인데, 김일성은 1967년 유일영도 체계를 지도 체계로 채택하며 하나의 집단과 그 미래 세대를 가장 잘 통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도자 자신을 우상화하는 것이고 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교육이라는 것을 인지하며 1968년부터 소학교에서 대학까지 모든 학년을 대상으로 김일성 우상화 교과서를 만들어 필수과목으로 가르치게 했다. 다만 당시부터 교과서에 김일성이 초자연적 능력을 쓴다는 이야기는 없었고, 김일성의 항일정신과 '조국애'를 강조하며 한 명의 '탁월한 인간'으로서의 김일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등극한 지 1년 뒤인 1975년 김정일의 어릴 적을 다룬 교과서도 출판되었다. KCI 논문 물론 이 때에도 김일성이 일본군을 피해 지구 둘레의 2배에 이르는 거리를 돌았다는 등의 허황된 날조 에피소드들이 만들어졌다. 김정일의 날조 에피소드들은 아주 늦게 잡아도 1982년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1982년 6월 경항신문 보도

그러다가 1987년 북한은 '주민들 사이에서 구전으로 떠돌던 것을 책으로 편찬했다'며 '김일성 전설집'을 출판한 뒤 1990년대에 출판된 교과서에 이들 전설집의 내용이 삽입되었는데, 사실 이것은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이 사실상 북한의 실권자로 등극하면서 아버지를 신격화하고 그 '신화'에 자신을 끼워넣어 김일성의 아들인 자신이 권력을 승계한 것을 정치적으로 정당화하고자 하는 의도였다고 한다. 김정일의 우상화 전설집인 '백두광명성 전설집'은 1993년 출판되었으며, 남한에서도 유명한(?) 선전가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도 1996년 발표되며 김일성 부자가 초자연적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강조했다. 김정숙에 대한 우상화 교육은 원래는 대학교의 전공과목에 국한되어 있었으나 2000년부터 전 학교로 확대되었다. 또 금수산기념궁전 조성 작업중에도 이와 관련된 전설들을 만들어 1999년 '금수산기념궁전전설집'으로 출판했다.[13]

김정은 시절에도 우상화 교육은 지속되어 2013년 교육과정이 개정된 것의 영향으로 2014년부터 김정은 관련 교과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고 한다. 2024년 현재까지 북한의 교육과정이 개정되었다는 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북한의 우상화 교육은 현재진행형일 것으로 보인다.

김주애는 후계자 확정 여부 및 형제자매 존재 여부 자체가 불명확해 그녀에 대한 우상화 교과서는 현 시점에서는 계획이 전무하지만 2023년 8월경부터 북한 당국에서 김주애가 '천재', '만재'라는 소문을 유포하고 있다는 소식이 아시아프레스에서 보도되었단 것을 볼 때 김주애에 대한 우상화적 멘트가 나올 가능성도 아주 없지는 없다. 아시아프레스 보도 김주애가 2023년 11월 23일부터 공식적 차원으로 조선의 샛별, 2024년 3월 16일부터 공식적 차원으로 향도자들이라고 불린 것이 알려지며 김주애 우상화 작업에 본격적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졌다.[14] 현재까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을 종합해보면 거의 오펜하이머마냥 여러 과학 분야(핵, 미사일 포함)에 전문가적 자질을 지닌 천재처럼 언급된 모양이다.(...) 주엔하이머

어떤 우상화 교과서가 있는지 보려면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에서 확인할 수 있다.

3. 실상

파일:김정일교과서.jpg
파일:북한김정숙교과서.jpg
북한에선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이름은 '존함'이라 하여 무조건 볼드체로 작성하게 한다. 이 때문에 북한 자체 OS인 붉은별에서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을 타자로 치면 자동으로 두꺼운 커스텀 글자로 변환된다. 그것이 어려울 경우 폰트 크기를 키운다.
당연히 실상은 왜곡과 거짓으로만 가득 찬 우상화 교육으로 북한 최고 지도자에 대한 신화적인 내용이다. 게다가 후술할 내용과 같이 교육적 가치라고는 전혀 없을 뿐더러 이 내용들을 처음 배우는 아이들조차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극도로 조잡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내용들밖에 없다.

단적으로 북한에서 200명의 동북항일연군을 이끌며 수십만을 무찌른 것마냥 선전되는 김일성의 최대의 업적이자 한산도 대첩이나 귀주 대첩, 살수대첩 등을 뛰어넘는 대승으로 교육시키는 보천보 전투의 경우 실상은 170명이 5명의 순사가 있는 작은 마을을 기습해서 2살짜리 유아 1명과 요리사 1명을 죽인 사건이다. 게다가 이 요리사와 어린이는 둘 다 일본인이라 순사들과 같이 지냈기에 습격 당시 휘말려 유탄에 맞아 죽은 것이었다. 게다가 동북항일연군은 게릴라전을 벌였음에도 오히려 추격대의 공격으로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전술적으로는 무의미했다. 이렇게 큰 의미 없는 보천보 전투조차 제외하면 김일성은 내세울 공적이 전무하다시피 하다.[15] 김일성의 전공이 하도 없는 나머지 후술하듯 최측근의 전공까지 뺏어서 김일성의 전공으로 만들 정도였으면 말 다한 셈이다.

그리고 이오시프 스탈린도 반대하던 전쟁을 무려 48번이나 일으키게 해 달라고 김일성이 요청했다가 겨우 허락을 받아 발발시킨 6.25 전쟁 때도 김일성은 평양을 잃고서는 강계에 고립된 채로 스탈린이 격노해 시베리아로 수용될 거라고 생각하며, 벌벌 떨면서 중국 인민지원군의 지원병력이 오기만을 기다렸고, 오히려 똥별 짓을 하다가 당시 중국군 총사령관인 펑더화이에게는 "당신은 요행만 믿고 전쟁을 일으켰나!"는 말까지 들으며 펑더화이에게 뺨을 맞았다는 소문도 있다. 김일성 문서의 '무능한 전쟁광' 문단과 펑더화이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펑더화이와 김일성은 동맹국의 사령관이었음에도 사이가 매우 험악해서 서로 주먹다짐 일보 직전까지 간 적도 있다. 심지어 김일성뿐 아니라 그 아들과 손자인 김정일김정은 역시 하술할 북한에서 주장하는 '비범한 천품'이 있기는 커녕 중국러시아의 도움이 없으면 존립하지 못하는 처지다.

4. 내용들

4.1. 김일성


여기에 김일성의 날조된 초자연적 능력들이 나와 있다. 한마디로 21세기에도 이런 내용들을 정규 과목, 그것도 가장 중요한 과목으로 가르쳤다는 것이다.

4.1.1. 김일성의 항일투쟁/군사적 능력 과장

4.1.2. 김일성에 대한 외부인의 평가 날조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나는 비록 당신을 오늘 처음 만났지만 오랜 친구를 만난감을 느낀다고 하시며 뜨겁게 포옹해주시던 그이의 영상[42]은 그대로 태양의 모습이였다. 나는 저도 모르게 그분께 끌려드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중략)[43]

나는 첫 상봉에서 벌써 주석각하께 완전히 매혹되였음을 숨기지 않는다.

오랜 문화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딸리아에서 나서자란 나는 유럽중심주의자라고 할만큼 남다른 자존심과 주견을 안고 살아온 사람이였다. 무엇인가 사회와 정의를 위해 동분서주하던 열혈의 그 시절 유럽과 라틴아메리카 등 여러 지역과 나라들의 적지 않은 고위인물들과 대상하면서도 언제 한번 주저하거나 자존심을 굽힌적이 없었다. 하지만 김일성주석각하를 만나뵙는 첫 순간에 나는 어머니가 자주 외우시던 하늘의 성인을 대하는듯한 느낌을 강렬하게 받아안았다.
이것은 그의 심장속깊이에서 우러나온 진실한 고백이였다. 노동자들과 농민들, 지식인들과 군인들은 물론 해외동포들과 외국의 벗들마저 만나뵙자마자 대번에 끌리여 마음속진정을 스스로 터놓고 헤여지면 또 뵙고싶어지는분이 바로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한 출판물은 김일성의 인간상에 대해 "김일성주석을 한번 만나뵈온 사람들은 그 인품과 감화력, 뛰여난 외교술에 융화되여 마치 마술에 걸린듯 행동한다. 전 미국대통령 카터가 북조선을 방문한 후 가진 기자회견과 그의 발언 등을 지켜본 정계, 외교계에서는 〈김일성주석을 만나뵈옵고 요술에 빠져든것같다.〉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카터만이 아니라 평양으로 가서 김일성주석을 만나뵙고 돌아온 인사들은 하나같이 김일성주석을 대변하군 하였다."고 전했다.* 20세기의 대표자, 인류의 걸출한 령도자, 위대한 사상가 등 김일성에 대한 존칭들이 수없이 수록되여있는 《김일성백과전서》는 태양칭송의 정화이다. 세계 출판 역사상 처음으로 나온 위인인물사전인 이 전서는 수많은 나라의 저명한 인사들과 학자들이 편찬발행한 인류의 기념비적도서이다. 김일성백과전서를 읽은 유럽정계의 명망높은 고위인사는 편찬위원회에 보낸 편지에 "김일성주석께서 주체사상을 창시하시고 자신의 숭고한 덕망으로 사람들에게 마음의 기둥을 안겨주시였으니 그분이시야말로 만민의 하늘이시다.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김일성주석만은 하늘의 태양이 인간계의 태양으로 환생하여 내리신 분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썼다.* 모잠비크 독립 기념식에서 모잠비크 초대 대통령은 "위대한 영웅이신 김일성동지께서 앞길을 가르쳐주시였기때문에 우리는 조상들과 우리의 발목을 묶어놓았던 쇠사슬을 끊어버리고 노예의 운명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이하였다."라고 말했다.* 김일성의 70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한 잠비아 대통령은 김일성에게 자기가 쓴 시 《인류를 사랑하시는 분 김일성동지께》를 읊으며 김일성을 '피압박인민들의 기수'로 높이 칭송하였다.* 1949년 이오시프 스탈린은 "김일성동지는 동방에서 제국주의침략으로부터 쏘련을 피로써, 무장으로 옹호하여주신 참다운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자이시며 공산주의운동의 귀감이다"라고 격찬하였다.* 1975년 4월 중국을 방문한 김일성을 중환속에서도 손꼽아기다려 맞이한 모택동은 "김일성동지와 같은 세계적인 위인을 가장 친근한 전우로 모시고있은것을 무한한 행복으로 생각한다"고 절절히 말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반제반미투쟁을 승리의 한길로 이끄시는 탁월한 명장'으로 높이 칭송한 주은래 총리의 심정도 같았다.* 피델 카스트로는 김일성을 혁명선배로 존대하면서 김일성동지는 세계의 지도자 중에서 가장 노련하고 권위있는 분, 천재이시라고 높이 칭송하였다.* 호치민은 김일성의 이민위천의 뜻과 덕망에 감복하여 김일성은 이 세상 더없이 훌륭한 인민적 정치가라고 칭찬했다.* 캄보디아노로돔 시아누크 대왕은 김일성을 '한번 맺은 친분관계를 변함없이 이어가신 천하제일의 가장 위대한 인간'이시라고 격찬했다. 그나마 폴 포트까지 안 끌고 온 게 어디냐.[44]* 김일성을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운명의 참다운 수호신'으로 흠모한 포르투갈 전 대통령 프란시스쿠 다 코스타 고메스(Francisco da Costa Gomes, 1914~2001)는 "장구한 인류력사에 사상정치, 경제문화, 군사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걸출한 위인은 오직 김일성주석 한분밖에 없다. 세계적위인이신 김일성주석의 서거로 하여 지구가 가벼워졌다."며 자기의 비통한 심정을 이렇게 터놓았다.- 진지하게 따지자면 (북한 주장에 따르면) 김일성이 지닌 '국제적 권위와 지위, 현대인류 역사에 새긴 업적'이 얼마나 거대한 것이었는가를 알게 해주는 발언이라고 한다. 그래도 교묘하게 비꼬는 듯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서방 7개국 수뇌자회의에 참가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서거에 대한 비보를 받은 프랑스 대통령은 애석함을 금치 못하며 회의참가자들앞에서 "김일성주석은 위대한 국가원수이시였다. 그이는 제2차 세계대전후부터 오늘까지 활동한 위인들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위인이시였다."라고 말했다.* 김일성에게 나이지리아에서 처음으로 주는 태양의 족장 칭호 수여식에서 우모지공동체 왕은 김일성주석은 어둠을 밝혀주고 생을 주시는 위대한 태양이시며 저 하늘의 태양이 영원하듯이 영생하신다고 말하였다.* 태양의 품속에서 꺼져가던 생명을 되찾은 기니의 평범한 기자는 김일성은 한나라의 국가수반이시기 전에 한없이 위대하고 인자하신 만민의 어버이라고 칭송하였다.* 비슈와나스[45]는 주체사상의 보편적 의의와 그 절대적 가치에 감동을 받아 "영국의 유명한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일찌기 단 하나의 사상으로 우주의 무한한 공간을 채울수 있다고 하였다. 참으로 주체사상은 인간의 넋을 깨우쳐 그의 힘과 미를 무한대로 증폭시키고 역사의 자주적주체로 내세워 이 세상의 모든 곳에 복지사회를 일떠세울수 있게 하는 하늘이 인류에게 내린 〈성서〉였고 〈복음〉이였다. 김일성주석은 이 위대한 주체의 정치리념을 만민에게 안겨주시고 그것을 당대에 실현해나가시는 성인중의 성인, 위인중의 위인이시였다."고 썼다. 기독교를 탄압하면서 김일성 찬양에 기독교를 인용하는 클라스[46]* 1945년 한반도 해방 직후 코스타리카 인민당에 소속된 바나나 생산 노동자들은 '노숙하고 세련된 영도로 인민이 주인이 된 새 사회를 건설하는' 김일성에 대한 흠모심을 안고 김일성세포[47]를 결성했다. 이는 세계 최초로 외국에서 김일성의 이름을 따와 명명한 것이다.* 인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정치가나 위인들이 적지 않지만 김일성처럼 세기를 이어오며 5대륙 인민들로부터 세계혁명의 걸출한 수령으로 다함없는 흠모를 받고 있는 사람은 일찌기 없었다.

외국인이 했다는 북한과 김일성 찬양 선전을 면밀히 보면 ~의 한 저명한 ~' '공화국을 찾는 외국인들은' 처럼 그 발언을 했다는 사람의 이름이 전혀 적혀 있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북한이 선전 차원으로 날조한 발언을 외국인이 한 것마냥 가장한 것이라고 봐야 타당하다. 덤으로 국제친선전람관에 전시된 김씨 부자를 위한 선물들이 외교 관례상 해외 국가수반에게 의례적으로 줘야 하는 선물인 것과 마찬가지로 해외 지도자들이 김일성 면전에서 했다는 김일성 칭찬은 있었더라도 외교 석상에서의 립서비스로 보는 게 더 타당하다.

사족으로 북한이 외부의 평가인 것처럼 날조한 김일성에 대한 호칭 중 가장 흥미를 끄는 몇 개만 꼽자면 인류의 최고사령관, 만고절세의 애국자, 인류의 대성인, 세계정치의 원로, 공산주의운동의 령수, 전지전능한 수령, 삶과 생의 은인, 세계인민들의 자애로운 친어버이, 영원히 세계를 밝혀주시는 태양, 인간계에 더는 없을 위대한 인간태양, 등등이 있다.

4.1.3. 김일성에 대한 북한 내 찬사들


대충 봐도 알 수 있듯, 이들은 정반대의 내용이나 다른 의미로 해석하면 사실과 완벽히 부합하는 내용들이다. 과연 소련 사람들이 밥상머리에서 가족끼리 읽으며 같이 웃었을 만하다.

4.1.4. 김일성의 생활 미화

4.1.5. 김일성의 외양&'태양상' 묘사

북한에서 김일성의 얼굴은 '존안'이라고 불리며 김일성이 매우 뛰어난 용모를 가진 것처럼 터무니없는 수준으로 미화하고 있다. 후술하듯 북한에서의 김일성의 얼굴 묘사는 남한으로 치면 차은우 포지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태양상'이라고 불리는 미소에 대한 묘사도 터무니없는 수준이다. 물론 김정일과 김정은, 김정숙의 얼굴/미소에 대한 묘사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 외에도 김일성은 자신의 외양에 대해 '해빛같은 미소, 친근한 음성, 자애로운 안광, 따뜻한 체취' '눈부시게 환하신 존안, 천기를 헤가를듯 한 예지로운 안광, 마디마디 따스히 스며드는 친근한 음성' '거룩하신' '조선의 성산 백두산의 기상을 지닌 천출위인의 용모' 등 눈 뜨고 볼 수 없는 수준의 미사여구들을 동원해 표현하게 했으며, 이러한 선전 때문인지 북한에서는 김일성 같은 후덕한 얼굴이 잘생긴 외모로 여겨진다고 한다. 그나마 엄청 진지하게 따지자면, 젊었을 적만큼은 남한 기준으로도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이라는 인식이 많다. 물론 나이 먹은 김일성도 저렇게 묘사하는 것은 우상화가 맞다.

4.1.6. 김일성의 천재성 묘사

이에 브레즈네프는 "나는 지금까지 이 방에서 큰 나라, 작은 나라 할 것 없이 수많은 나라 수반들을 다 만나보았는데 김일성동지처럼 4시간이 넘도록 원고 없이 발언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나는 지금까지 세계 여러 나라 수반들을 비롯하여 위인이라는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보았지만 김일성동지와 같이 만능의 위인은 처음이다."라고 자기의 진심을 터치였다. 이윽고 소련측 녹음사도 김일성은 원고없이 발언하면서도 토 한자 틀린 것 없고 논리정연한 발언을 했으며 그 발언은 그 자체로 철학적 깊이가 있는 위대한 논문이자 저서였다고 엄지손가락을 내보이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82] 이 수첩은 후대에 '신기한 수첩'으로 불리게 되었다.-(반박(?))물론 브레즈네프는 하도 멍청했기에 그와 연설문에 대한 유머도 많은 편이지만, 브레즈네프 생전에 이런 날조 일화가 공개되었으면 100% 소련과 북한 사이의 외교 문제로 번졌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개 공산주의 소국의 지도자가 자신의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해 소련 서기장을 바보로 만들어놨으니...* 김일성은 늘 인민들 속에 있으며 사람들의 눈빛, 표정, 말투, 손세, 몸가짐까지 직접 포착하고 그들의 요구와 지향을 알아보았으며, 그 속에 체현되여있는 시대의 숨결과 혁명의 절박한 요구를 헤아리고 그에 기초하여 새로운 정책들을 제시했다.* 일군들은 김일성의 교시를 접할 때마다 김일성의 비범한 통찰력과 한없이 넓은 식견, 심오하고 해박한 지식에 감탄을 금치 못하군 하였다. 김일성의 접견을 받은 다른 나라 인사들도 정치가이건 학자이건 누구나 다 김일성의 빛나는 예지와 넓은 식견에 탄복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김일성은 한생에 체험하신 모든것을 상세하게 재현해내시는 비상한 기억력을 지니고 있었다. 회고록《세기와 더불어》에 담겨진 비상히 풍부하고 다방면적인 자료들이 김일성의 비상한 기억력을 웅변적으로 말해주고있다. 회고록《세기와 더불어》에는 혁명의 새로운 길을 찾으시려고 본 책들과 그 내용들,국내외에서 벌어진 사변,사건들과 그 관계자들,어려운 지하투쟁과 무장투쟁시기에 있었던 크고작은 일들의 상세한 정황들과 과정들,혁명조직성원들과 유격대원들의 이름과 용모,습관,그들과 나누신 이야기의 세부에 이르기까지 모든것이 생동한 화폭으로 그려져있다.
김일성은 한번 보고 듣고 체험하신 문제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잊지 않았다. 김일성은 어렸을 때 본 동네 순사나 지주들의 이름은 물론 그때에 있었던 일도 기억난다고 하시였으며 5살때에 아버지를 따라 학교에 가서 아버지가 학생들에게 글을 가르치는것을 본것이 생생하게 기억된다고 교시하시였다.
김일성의 기억력은 정확성에 있어서도 비상하였다. 60여년전 항일무장투쟁의 나날에 있었던 약사적인 다홍왜회의에 대하여 김일성은 회의소집동기,회의에 참가한 조선사람들의 이름 특히는 회의에서 하신 말씀의 내용을 생동하고도 정확하게 회고하였다.* 김일성은 세계 여러 나라 정치정세와 과학기술에 대한 자료로부터 우리 작가들이 써내는 장편소설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다 보았다. 김정일도 아버지의 독서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장편소설 같은것은 녹음하여 올렸다.

4.1.7. 북한이 주장하는 김일성의 업적 정리


지극히 당연하지만, 이들 중 사실인 것은 단 하나도 없다.

4.2. 김정숙

김정일의 친모인 만큼 김정숙도 북한에서 매우 찬양받는 존재인데, 그나마 김씨 3부자에 비해 찬양의 강도는 확실히 덜한 편이긴 하나 가장 덜하다는 게 이 정도다.

4.2.1. 김정숙의 사격술 과장

4.2.2. 김정숙의 외양, 성품 묘사

김정숙의 용모에 대해서는 자주 묘사되지는 않지만 전반적으로는 굉장한 미녀로 묘사되며, 더 정확히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봄빛같은' 미소를 지은 환한 얼굴, 밝은 정기와 그윽한 정이 어려있는 눈길, 강직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을 주는 단정한 외모'로 묘사된다.[88] 다만 과거에는 김정숙을 '키가 작고 못생겼다'고 했다간 문자 그대로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갔으니 살기 위해서라도 김정숙을 절세미녀로 묘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4.3. 김정일


2009년 북한에서 출판된 백과사전격 서적 박식가의 벗 2권 초반에서 김정일 생전의 김정일 우상화 선전을 많이 확인할 수 있다.

4.3.1. 김정일의 생일

4.3.2. 김정일의 어릴 적

4.3.3. 김정일이 가졌다는 '초자연적 능력'

4.3.4. 김정일의 생활 미화

4.3.4.1. '쪽잠에 줴기밥'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30여 개의 초호화 별장에서 끼니마다 30여 종의 최고의 음식을 먹고 살았던 김정일이 평생 야전차량에서 쪽잠을 자고 주먹밥(줴기밥) 한 덩어리로만 끼니를 때우며 인민들의 끼니를 걱정했다고 거짓 선전하는 중이다.

4.3.5. 2010년 8월 24일 로동신문 기사 중[118]

4.4. 김정은

4.4.1. 김정은의 '어린이 사랑'[142]


보이다시피 김정은이 어린이들에게 행하는 가스라이팅을 진심 어린 사랑이라고 포장하고 있다. 김정은 시기에 들어와서는 이전보다 '어린이를 사랑하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주입시키는 것이 더욱 심해진 것으로 보이며, 이런 모습들을 보면 과장 안 보태고 소름이 끼칠 정도다.[147]

4.4.2. 김정은의 '비범한 천품'[148]


탈북자 출신 기자 주성하가 이 교과서의 교사 참고서를 서문부터 2장 1절 중간까지 자신의 블로그에 일일이 타이핑해서 공개한 바가 있다. 물론 이 내용들은 북한 정권을 찬양할 목적으로 올린 것이 전혀 아니라 북한의 우상화 교과서가 어떤 내용인지 알아보고자 하는, 사실상 분석 목적으로 올린 것이기에 법적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다. 북한의 우상화 교육 실태가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매우 귀중한(?) 자료인 셈이다. 보러 가기

자유아시아방송에서 저 내용들을 보다 '현실적으로' 바꾸면서 풍자하기도 했다. #

4.5. 종합

5. 해외에서의 유사 사례

자신이 초자연적 힘이 있다고 주장한 독재자가 북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조차 지도자가 초자연적 힘을 가졌다는 날조 일화들을 그 자체만으로 정규 과목으로, 그것도 가장 중요한 과목으로 삼지는 않았다. 그나마 북한 외의 독재자 중 자신의 일대기를 교과 과목으로 만든 독재자는 이라크사담 후세인투르크메니스탄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도 있지만, 이들조차 자신이 초자연적 능력이 있다는 내용을 교과서에 넣지는 않았다.

5.1. 근황 - 초능력 선전 포기

그러나 김정은 시대에 와서는 일반인들의 인터넷 사용을 금지하는 등 아무리 외부정보 유입을 막으려고 해도 북한의 신세대들 사이에서는 북한의 허무맹랑한 우상화 선전이 먹히지 않고 있으며, 악명이 높았던 허무맹랑한 초능력 선전들은 이제 완전히 포기한 상태다.

북한 내부에서도 옛날에나 이런 거에 속아넘어가지 요즘 어린애들이나 젊은이들은 안 믿는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뒤에서는 거짓말이라고 욕을 한다는 말이 있는데, 2014년에 출판된 김정은 우상화 교과서는 상술한 것처럼 내용이 너무 유치한 나머지 남한에서는 물론이고 북한 내에서도 내용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나왔을 정도였기에 제대로 망신을 당한 북한 당국은 이 책들을 회수하고는 내용을 정정해서 다시 출간하게 되었다.

그리고 2020년 5월 20일자 로동신문에서 "축지법은 실제론 불가능하다. 사실 사람이 있다가 없어지고, 없어졌다가 다시 나타나며 땅을 주름잡아 다닐 수는 없는 것이다. 일제와 싸워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인민대중의 적극적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라며 김일성과 김정일의 축지법 사용을 문자 그대로의 뜻이 아닌 "항일빨찌산 유격대가 여기저기서 기습하는 것이 왜놈들에겐 축지법 같았다"라는 비유적인 표현이라고 순화하기도 했다. 애초에 '축지법은 실제로 불가능하다'라는 말을 하는 것부터가 자신들이 김정일 시기까지 김일성이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축지법을 썼다고 주장한 것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김정은 본인도 "수령의 혁명 활동과 풍모를 신비화하면 진실을 가리우게 된다"고 말한 것을 보면, 과도한 우상화가 오히려 권력 유지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듯.# 현 시점에서 북한에서 이전에 진지하게 선전하던 김일성의 축지법은 '항일빨치산 유격대의 신출귀몰함을 본 민중들 사이에서 돈 전설'이고 김정일의 축지법은 '불철주야 현지지도를 하시는 장군님의 모습을 반영한 말'이라면서 어떻게든 비유적인 의미로 돌리려고 하고 있다.

북한은 2015년부터 '축지법은 실제로 쓸 수 없다'는 주장을 로동신문을 통해 관철해왔는데, 이는 북한 사람들이 외부 문물을 접하면서 의식 수준도 예전보다 높아진 만큼 허무맹랑한 내용을 동원한 우상화는 북한의 대외적인 인상도 안 좋아지고 북한 주민들도 믿지 않기에 안 좋은 소리만 듣기에 현실적 사고를 가지고 우상화를 해야 한다는 김정은의 취지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애초에 김일성이 살아있던 1990년에도[158] 북한의 고등학생들은 김일성 부자의 명령에는 무조건 절대복종, 관철해야 한다고 인식하면서도 김일성의 초자연적 재주에 대해서는 단지 '신화'로만 여겼다고 한다.

이미 북한은 1974년부터 축지법이 실제로는 불가능하며 김일성의 축지법(을 위시한 초자연적 능력 관련 '전설'들)은 민중들 사이에서 돌던 소문이었다고 로동신문 등지에서 밝혀왔는데, 여기서까지 나온 내용들을 다소 의역해 말하자면 김씨 부자에게 초자연적 능력이 있다는 '전설'을 민중들 사이에서 돌던 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김씨 부자의 우상화가 국민들에 의한 '자발적'인 측면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남한 측에서 오해한다는 것이다. #[159]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항일투쟁을 한 적도 없는 김정일도 왜 축지법 '전설'이 나왔는지는 전혀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이를 감안하더라도 어쨌든 북한이 지도자 우상화 목적으로 지도자들의 초자연적 능력 관련 '전설'을 유포한 것은 사실이긴 하다. 물론 김정은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났던지라 항일운동 관련 에피소드들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외부 기반이 전무했던지라 초자연적 능력 관련 '전설'이 주민들 사이에서 돌았다는 전설을 만들 수 없어서 이런 전설을 만들 수 없게 되었다.

6. 남북통일 이후

남북통일이 된다면 북한의 우상화 교육에 대한 연구를 위해 보존하거나, 분단 시대를 다룬 박물관에 일부가 전시될 것이다. 일제가 식민 통치를 위해 펴낸 식민사학, 식민지 근대화론어 입각한 교과서를 역사적 고찰과 "일본 제국이 당시 한국을 지배하기 위해 이러한 서적을 내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일제강점기 당시의 조선사 교과서 일부를 독립기념관에 보존한 것처럼.

교육 과정에서나 교양 매체에서 후대 사람들에게 북한 독재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서도 인용되거나 그 내용이 통일 이전에 비해 훨씬 자세히 알려져서 개그 소재로써 활용되기도 할 것이다. 상술한 것처럼 소련에서 북한 선전 잡지들이 유머 잡지로 애용될 정도였는데 통일 후 북한의 우상화 선전물들은 상술한 바와 같이 내용이 문자 그대로 개그 노다지(...) 수준이기 때문에 배꼽 잡을 만한 개그 매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나름의 수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외에는 전혀 쓸모가 없으므로 폐지로써 폐기처분되어 사라질 것이다. 아마 나치 독일의 자국 수뇌부 우상화 교과서와 비슷한 길을 걷게 될 것이다.

7. 참고자료

8. 관련 문서



[1] 훼손되지 않은 서적, 로동신문 같은 비교적 고급 폐지[2] 가까운 친척들과 측근들의 일가족이 전원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 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긴 하나 먼 친척들은 오지로 추방되는 수준으로 그친 것으로 보인다. 참고자료 1 참고자료 2[3] 주성하의 증언에 따르면 장성택의 남편이던 고모 김경희의 제지로 먼 친척들은 단기적인 처벌만 받거나 정치범수용소에서 수감되었더라도 풀려나왔다고 한다. # 장성택의 3족과 조카 부부가 처형되었을 가능성은 높긴 하나 먼 친척까지 잡혀간 것은 아니기에 일가 멸족이라 볼 수는 없으므로 취소선 처리.[4] 그나마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는 적대계층이라는 소문이 없다. '정통성'이 부족한 이상 혈통이 '좋은' 사람을 골라야 김정은 입장에서는 체면이 섰을 것이다.[5] 김일성 생일 4월 15일은 '태양절', 김정일 생일 2월 16일을 '광명성절'로 칭하며 기념하는 것과 대조적. 그러나 김정은 생일 1월 8일을 사실상 국가명절로 쉬게 하거나 이 날 북한 주민들에게 '선물' 명목의 배급을 주고 있기에 1월 8일이 김정은의 생일임을 북한 주민도 눈치채고 있다. 2024년 1월 자유아시아방송 보도[6] 그나마 2010년대 이후에는 북한에서 하술할 초능력 선전들이 허구라고 욕해도 수용소에 끌려갈 가능성은 없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자세한 내용은 하단 내용 참조.[7] 예시에서는 소련군이 북한 지역을 해방시켰다는 진실을 가르쳐오다가 1950년대 중후반부터 김일성이 일본을 패방시키고 한반도를 해방시켰다는 왜곡된 내용을 가르쳤다는 내용이 나온다. 상술한 '김일성 전설집'에서는 그의 부하들도 김일성처럼 초자연적 능력을 발휘했다고 기술된 것과 달리 '백두광명성 전설집'에서는 김일성, 김정숙, 김정일만이 초자연적 능력을 구사하는 것처럼 나온다고 하며, 김정은 시기에 북한이 '축지법은 비유법이었다'라고 여러 번이나 강조해 말하는 것, (김씨 일가 찬양 내용은 아니긴 하나)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다'와 '최대의 행복은 수령에게 자기 운명과 미래를 전적으로 의탁하는 것이다'를 동시에 주장하는 주체사상을 '인류사상사의 최고봉'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과 북한이 미국보다 몇 배나 더 강한 나라이면서도 미국의 '대조선고립압살책동'은 다른 나라라면 열흘도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같이 주장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8] 북한에서는 김씨 3대와 김정숙을 언급할 때에는 극도의 존댓말과 특수한 높임 표현들을 써야 하는데, 심지어 어릴 적의 지도자들과 지도자의 꼬꼬마 딸을 언급할 때에도 존댓말을 쓴다.[9] 우상화 선전 속에서는 김씨 3대가 뭐만 하고 말하면 북한인이든 외국인이든 항상 너무나 큰 감명을 받고는 곧바로 눈물을 흘리고 이들을 찬양한다. 문자 그대로 sake L 밈 실사판(?) 수준.[10] 하술한 우상화 선전들을 보면 '군인' 김일성은 실제 역사 속에서의 서초패왕 항우의 전술적 능력&카리스마, 한신의 대국적 전략 능력&천부적 재능, 이순신의 기적적 성과&고결함 등 사령관에게 필요한 모든 능력에 흠 잡을 데 없는 명장으로 묘사되며, '지도자' 김일성은 명량 해전 + 한강의 기적을 합한 것 이상의 성과를 이룩한 인물이자 실제 역사 속에서의 고려 현종, 강희제와도 같은 천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성군으로 묘사된다. 심지어 이것조차 실제 선전의 내용을 아주 축소해서 표현한 것이다. 물론 과거에 김일성과 김정일은 밈 속의 척 노리스사이키 쿠스오의 능력을 실제로 가진 수준의 초능력자로 묘사되었다.[11] 김정일과 김정은은 진지하게 애정결핍이 있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김정일은 6살 때 남동생 김만일이 수영장에서 익사하는 모습을 힘없이 지켜봐야만 했던 데다가 8살 때 어머니 김정숙을 잃었고 6살 때 새어머니와의 관계도 좋지 않았다. 김정은도 어머니 고용희의 출신 때문에 할아버지조차 존재를 모를 정도로 대외적으로 없는 자식 취급이었다.[12] 주성하TV에서도 히틀러를 희대의 광인으로 만든 성격의 밑바닥에는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억압받은 유년시절과 화가로서 성공하지 못한 열등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보는 정신분석학자들의 이야기와 함께 김정은 역시 할아버지에게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자랐고 아버지 김정일은 첩의 자식인 김정은의 존재를 숨기려고 어렸을 때 유럽으로 보낸 사춘기와 후지산 혈통이라는 컴플렉스가 작용했을 것이라고 했다.#[13] 내용도 가관이다. "김일성이 살던 금수산궁전이 이상한 빛이 비추어 밤에도 꽃술이 보이도록 밝아졌다" "김일성이 죽자 하늘에서 천마리 백학이 내려와 앉아 돌로 굳어 금수산기넘궁전의 울타리가 되었다"(...) 등.[14] 반면 김일성은 태양절 호칭을 사실상 금지시키는 등 격하(?) 작업에 들어갔다.[15] 다만 보천보 전투는 국내 항일 무장 투쟁이 거의 힘을 잃었던 시기인 1937년에 일어난 사건이었기 때문에 소멸한 줄 알았던 항일 저항 세력이 아직 존재한다는 것을 알렸다는 측면에서 최소한의 의미는 가진다고 볼 수 있다.[16] 김일성이 김정일을, 김정일이 김정은을[17] 김정일이 김일성을, 김정은이 김정일을[18] 김정은이 김일성을[19] 사실 당시 김일성은 냉전 시기 제 2세계, 3세계 국가들의 지도자들에게는 인지도가 꽤 높은 편이였다.[20] 북한의 선전대로라면 서예에 능통하다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해당 글씨를 보고 “저는 이런 옥필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이 글은 위인이 쓴 글이올시다. 제가 어찌 이런 글에 감히 붓을 댈 수 있겠습니까.”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21] 이름은 '광명성찬가'로, 그 글씨는 다음과 같다. 북한의 말마따나 인류사 최고의 명필 수준인지는 알아서 판단하자. 참고자료 파일:김일성 글씨.jpg[22] 북한의 선전에 따르면 그 교사는 '김일성이 건강해야만 자신의 조국인 수단의 번영과 발전이 약속된다'고 믿었으며, 평소 즐겨읽었다는 김일성의 일대기에서 먼 거리를 걸어다니는 김일성의 발 건강을 염려했다고 한다.[23] 김일성이 조선인민혁명군을 결성했다는 해. 참고로 조선인민혁명군은 실존하지 않은 날조된 군대이다.[24] 8.15 광복이 있던 해.[25] '무산지구전투'는 북한에서 김일성의 전투 중 보천보 전투에 버금가는 위상을 가진 중요한 전투로 인식되나, 실제로는 최현이 이끈 소규모 습격 사건을 김일성이 주도한 대규모 전투로 완전히 왜곡한 것이다. 대홍단군 문서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26] 북한에서는 자신들이 기습 남침해서 일어난 6.25 전쟁에 대해 남한과 미국이 북한을 침략한 전쟁이라고 우기고 있으며 이를 넘어 당시 전 세계에서 '정의를 사랑하고 선의의 감정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정의의 운명을 걱정하며' 북한을 응원했다는 역사 왜곡을 하고 있다. 물론 전쟁 결과는 북한이 미국의 항복을 받아내고 승리한 것이라고 날조했다.[27]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무기만능, 무기중심론에 집착되어 있는 선행한 전쟁사와 군사이론들을 새롭게 전면적으로 분석총화한데 기초하여 사람중심의 우리 식의 독특한 군사사상을 창시했다고 주장한다.[28] 정확히는 1945년일본을, 1953년미국을 항복시켰다는 주장을 말한다. 물론 이 주장은 모두 허위 날조로, 실제 역사 속에서 일본을 패망시킨 것은 미국이었던 데다가 6.25 전쟁에서 북한은 적화통일의 야욕을 전혀 달성하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을 식민지배한 나라(프랑스)와 미국을 모두 이긴 명장은 김일성이 아니라 베트남보응우옌잡이며, '무패백승을 떨친 만고의 영장'은 바로 자신들이 김일성보다 못하다고 폄하하는 이순신이다. 물론 북한 선전에서 주장하는 김일성의 군사적 공조차 실제 역사 속의 수부타이와 이순신, 보응우옌잡 같은 진짜 명장들의 발톱의 때에도 미치지 못한다.[29] 실제 역사에서 주문진항 해전은 UN군의 완승으로 끝났으며, 이 때문에 이 전투의 진실을 깨달은 탈북자들은 이 전투의 진실을 고향 사람들을 놀려먹는 데에 써먹는다고 한다. 그리고 '세계해전사에 수수께끼를 남긴' '기적'과도 같은 해전은 자신들이 김일성보다 훨씬 못하다고 터무니없이 폄하하는 이순신이 이끈 명량 해전이다.[30] 이와 함께 인천 상륙 작전도 북한군이 완승했다고 날조하고 있고, 351고지 전투는 단 15분 만에 북한군이 승전했다고 터무니없이 뻥튀기했다.[31] 쉽게 말해 군인들이 총을 가지고 미군 전투기들을 격추시키라는 이야기다. 자기들 말로는 단 두 해 동안 보병총을 비롯한 저격무기로 근 3000대에 달하는 적기를 격추했다고 하지만, 당연히 순 거짓말이다. 사실 이런 전술은 화망이라는 말이 있는 만큼 의외로 정식 전술이기는 한데, 물론 전투기에 화망을 쏘는 것은 저고도 저속 순항기체를 상대할 때를 제외하면 하지 않는 것만도 못한 효용을 기록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고사포 화망구성에 따른 연합군 폭격기 격추숫자는 3,324발 당 한 대였을 정도인데 고사포도 아닌 그냥 총으로 전투기를 격추시키라 했으니 이 전술이 대실패였을 것이란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리고 애초에 이 전술이 성공적이었다면 한국전쟁기 미군의 폭격이 전쟁범죄라는 비판까지 들을 정도로 북한에 괴멸적인 피해를 입히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32] 지뢰와 수류탄으로 탱크를 파괴하자는 내용이다. 대전차 지뢰는 이미 제1차 세계 대전 때부터 사용된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대전차 지뢰까지 김일성의 발명품인 것마냥 왜곡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33] 북한 말로는 그 외에 김일성이 창안했다는 전술들로 독립중기조활동, 적후파괴조활동, 기동고사포병중대활동, 직사포조활동 등을 들고 있다.[34] 요정(了定)내며. 끝장을 낸다는 말이다.[35] 아마 세계 7대 불가사의를 일컫는 말로 보인다.[36]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도 북한 유학생들이 해외(동독)에서 주체사상이나 김일성을 잘 모르는 것에 괴리감을 느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37] 김씨 3대 외에 어린이들에게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강요한 독재자는 모부투 세세 세코, 니콜라에 차우셰스쿠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도 있으나 차우셰스쿠를 제외한 이들은 사실상 모두 김일성의 후배들이다.[38] 김일성이 사망한 해인 1994년 세계 인구가 56.2억 명 정도였다.[39] 실제로 적도 기니는 1968년 10월 12일 독립하고 고작 3개월밖에 안 지난 1969년 1월 30일 북한과 수교했다.[40] 실제로 적도 기니의 의사당도 북한이 건설을 지원해준 거라고 한다.[41] 북한의 주장대로라면 그 정치인은 자국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지만 거리에도 마음대로 나다니지 못하고 평양으로 떠날 때에조차 비행장에서 반대파의 공격을 받을 뻔했다고 한다.[42] '영상을 흐리게 한다'는 식으로 쓰이는 '이미지' 정도의 의미가 있는 단어다. 용례[43] 원문 그대로의 표현이다.[44] 사실 시아누크는 김일성과 의형제 관계까지 맺을 정도로 매우 친했던 인물이었기에 시아누크를 탄압한 폴 포트는 북한 입장에서는 존재 자체를 완전히 지워야 했을 것이다.[45] 1925년경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인도인으로 70년대부터 자체사상 관련 활동을 해왔으며, 국제김일성상이사회, 국제김정일상이사회 서기장과 주체사상국제연구소 이사장이었다고 한다.[46] 사실 북한 체제에는 알게 모르게 기독교적 요소가 많다.[47] 세포는 당의 최말단조직을 의미한다.[48] 과장이 아니고 한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김일성이 죽기 전까지는 김일성이 문자 그대로 영원히 사는 존재인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죽은 지 30년 정도나 지났다. 그리고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미라로 보관된 것을 '영생의 모습으로 계신다'며 포장하고 있다.[49] 김일성을 숭배한 독재자들을 생각하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긴 하다.[50] 보이다시피 북한의 대외 도발을 아주 자랑스럽다는듯이 당당히 '업적'인 것마냥 적어놨다.[51] 多心하다, 지나치게 걱정하고 생각하는 것이 많다.[52] 포전(圃田)길에서 '포()'는 '채소밭'을 뜻하는 한자어이며, '포전' 자체는 구획을 나눠 놓은 경작지라는 뜻이다.[53]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한 날이다.[54] 북한에서는 인민들이 '피눈물의 바다와 고난의 행군길을 헤치면서도 사탕보다 총알을 더 소중히 여기고 쓰러지면서도 우리 당의 선군로선을 굳건히 지지하고 진심으로 받들어왔으며' '세대를 이어 허리띠를 조이면서도 우리 당의 병진로선을 충직하게 받들어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김정일도 "사탕알이 없이는 살아도 총알이 없이는 살지 못한다."라고도 말했다.[55] 최빈국을 벗어난 것도 1969년~1970년이었을 정도였다.[56]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낮지만, 사실 호자주의는 중남미권에서는 입지가 상당한 사상이다.[57] 일례로 주체사상을 이념으로 삼은 정당도 네팔 노동자농민당 하나밖에 없고, 그 당조차 여당은 커녕 하원 의석 1석만 차지한 군소정당에 불과하다. 사실 주체사상은 초창기에는 흑표당/적군파를 위시한 서양/일본의 신좌파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긴 했으나 주체사상이 오늘날과도 같은 모습이 된 후에는 완전히 버림받은 사상이 되었다.[58] 한국은 1994년 경제력으로만 따지면 선진국급에 이르렀으나 IMF 외환 위기를 위시한 내실의 취약성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한 시기는 2002년으로 간주된다.[59] 조갑제 등의 남한의 보수 인사들이 황장엽에 우호적인 것 역시 그의 탈북이 북한 체제의 실패와 남한 체제의 우월성을 가장 단도직입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의 영향이 크다.[60] 또는 '김일성처럼 한평생 조국과 인민을 위해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모진 고생을 다 겪으며'/'인민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깡그리 다 바치시고 인민을 위한 고생을 더없는 즐거움으로 여기시며'. 물론 김일성의 실체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거짓된 감성팔이 표현으로만 보인다.[61] 또한 김일성이 진짜로 국가의 번영과 발전만을 생각하는 지도자였다면 겨우 자신이 평양에서 영화를 보는데 전기가 끊겨서 영화를 제대로 못 봤다는 이유만으로 "전국의 공장이 다 멎어도 좋으니 평양에 전력을 충분히 보내야 한다"라고 지시하는 만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관련 글 마치 국민들이 배를 타고 외국으로 도피해 자신에 대한 음모를 꾸밀 것이 두려워 나라에 있는 카누를 모조리 불태운 적도 기니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를 연상시키는 저열한 행각이다.[62] 여기서 고기국은 '고기를 넣고 끓인 국'이 아니라 '고기로 우려낸 국물', 단순히 말해 육수를 의미한다. 즉, 이론상으로는 고기 분말을 넣은 라면 스프를 넣고 끓인 라면과 쌀밥을 같이 먹어도 북한이 말하는 '백미밥에 고기국'이 될 수 있는 셈이다.(...)[63] 이 무렵 한국이 중진국에 진입했다.[64] 2023~2024년에도 북한의 시골 주민들이 굶주림에 시달리다 못해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하는 경우까지 있다는 것을 안 후 다시 한 번 읽어보면 실소만 나온다. 풀뿌리 관련 기사(데일리NK) 나무껍질 관련 기사(아시아프레스) 그나마 추수철을 맞이한 후 곡물가가 하락하면 '강냉이로만 지은 밥을 먹던 세대들이 조금씩 흰쌀을 섞어 먹고 있고, 강냉이죽을 쑤어 먹기도 어려웠던 집들은 강냉이밥을 먹게 되었다'며 어느 정도 먹는 상황이 나아지게 되지만, 애초에 시골에서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한 집조차 제대로 된 이밥을 먹지 못한다는 것부터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관련 기사(데일리NK) 남한도 60년대 중반까지는 춘궁기에 초근목피로 연명하긴 했지만 60년대 후반 이후 경제사정이 어느 정도 나아지니까 초근목피는 거들떠도 보지 않게 되었다.[65] 뉘앙스를 보면 마치 모든 북한 주민이 흰쌀밥을 배불리 먹는 것마냥 묘사하고 있다.[66] 이밥에 고깃국 드립도 '2년 안에 이걸 지키겠다'였는데, 현실은 약속 기간으로부터 60년이 지나도록 지키지 못하고 있다. 이밥에 고깃국 실현을 위한 노력은 포기한 듯하다.[67] 이는 2001년 개봉된 선전 영화 '자강도 사람들'에도 나온 내용인데, 영화 내용은 고난의 행군을 온몸으로 견디고 있을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충성심을 고양하자는 내용이다. 물론 현실은 벤츠 차에서 쪽잠을 자며 비싼 해산물이 든 줴기밥, 샥스핀 수프를 먹어가며 잘 살아갔지만. 관련 기사(조선일보) 관련 글(통일부 공식 블로그)[68] 또는 특권[69] 우리가 아는 그 김일성 동상이다.[70] 1977년 잠깐 37kg(현재 가치로 약 29억 2천만 원에 달한다)의 금박을 입힌 바가 있으나 1978년 방북한 덩샤오핑이 이를 보고 "돈 없다면서 왜 이런 데에 쓸 금은 있나?"고 지적하자 당황해서 금박을 떼어냈다. 당시 사진[71] 靜養所, 몸과 마음의 안정과 휴양을 위한 시설을 갖추어 놓은 곳.[72] 여담으로 김일성은 최고급 음식과 전통적 한식을 같이 먹는 절충형이었다.[73] 여기서 '5호댁'은 보통강변에 위치한 김일성의 사저 '제5호 관저'로, 1950년대 후반부터 주석궁이 완공된 1977년까지 김일성이 살던 곳으로서 김정일이 젊은 시절을 보내던 곳이다. 2009년 평양 10만호 건설사업 와중에 김정일이 철거를 지시했으나 10만호 사업의 실패로 흐지부지해지는 듯 싶었다가 2021년 김정은이 헐고 북한 내 최충성층들에게 하사한 호화 주택가 경루동을 지었다. 관련 기사 북한의 선전대로라면 이 저택은 '종합농사시험장', '식물연구소', '가금연구소'와도 같았다고 하는데 북한에서는 이를 '우리 인민을 남부럽지 않게 잘 입히고 잘 먹이기 위해' 설치한 거라고 선전했지만 이렇게 만든 음식들이 누구의 뱃속으로 들어갔을지는 안 봐도 뻔하다.[74] 문맥상으로도 은근히 부자연스럽고 뜬금없는 것은 물론이고 김일성 별장의 실체를 고려하면 어떻게든 김일성이 실제로는 사치스럽게 살았다는 것을 부인하려고 애쓰는 흔적이 보인다. 김일성의 별장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링크 참조.[75] 이것 역시 김일성의 제5호 관저가 실제로는 서양식으로 꾸며졌을 것임을 유추할 수 있는 증거다.[76] 김일성 시기 노동자와 농민들은 주로 작은 방 한두칸이 달리고 개인 화장실도 없이 공동 화장실밖에 없는 7평짜리 조그만 집에서 살았다. #1 #2 얼마나 북한에서 악랄하게 착취하고 빈약한 보상으로 '은혜'를 주는 것마냥 세뇌를 시키는지 잘 보여주는 증거인 셈.[77] 금수산태양궁전(당시에는 주석궁) 인근 지역을 일컫는 지명이었을 것으로 보인다.[78] 여담으로 카륜회의는 처음 언급되었던 1971년 역사사전에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기반하여 조선혁명의 진로를 밝혔다고 언급되었지만 1980년대 이후로는 슬그머니 주체사상에 기반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며 날조에 날조를 더했다고 한다. #[79] 여기서 무비하다(無比하다)는 '아주 뛰어나서 비길 데가 없다'는 뜻이다.[80] 북한에서는 이를 '감동 깊은 일화'라고 소개했다.[81] 정치, 군사,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두 나라 사이의 관계문제와 당면한 국제정세들을 폭넓고 국제적으로 개괄하였다고 한다.[82] 브레즈네프가 발언문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것도 이 녹음사가 평한 말이라고 한다.[83] 이 사실은 김정은이 해방탑에 참배를 갔다는 기사에서만 언급된다. 아무리 북한이라도 러시아와의 외교관계를 다루는 기사에까지 날조된 역사를 이야기해 러시아와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자충수는 둘 리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해방탑과 무관한 모든 자료들에는 깔끔히(?) 독립에 있어서 소련의 역할을 0으로 지워버렸다. 북한 주민들도 해방탑 기사를 보면 뭐가 역사의 진실인지 혼란이 오겠다.[84] 물론 (김일성과 사이가 매우 나빴던)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인 펑더화이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85] 사실 이조차 마오주의를 모방한 거다. 참고자료[86] 사족으로 링크에 언급된 2023년 12월 18일 로동신문 기사에서 "사상사업이 오늘의 현실에 부응하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겉치레 식으로 진행되고 구태의연한 도식과 경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혁명진지와 계급진지를 지켜낼 수 없다"고 말한 것도 북한의 시대퇴행적 행보와 비교하면 완벽한 자기소개이자 배꼽을 잡는 일이다. 애초에 AI, 기술적 특이점이 화두인 시기에 빨치산정신 운운하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87]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이끌었다는 (날조된 군대인) 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 진공에 김일성이 이끌었다는 한반도의 민중들이 합세하여 무장 봉기로 일본을 무찌르고 8.15 광복을 일으킨 것처럼 선전된다. 자세한 사항은 이 링크를 참고하자.(자유아시아방송) 물론 100% 날조이다.[88] 김일성을 숭배하던 루마니아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부인 엘레나 차우셰스쿠도 본인을 우상화하면서 이와 판박이의 선전을 했다. 다만 이쪽은 김정숙과는 달리 본인이 나서서 우상화를 한 케이스이라 김정숙과는 약간 다른 케이스이다.[89] 여기서 회령은 김정숙의 고향으로, 회령 여성들은 예로부터 얼굴이 아름답고 성품이 좋았던 것으로 유명했다.[90] 이는 인품 관련한 묘사로 보인다.[91] 至性. 知性이 아니다.[92] '여미', '행미'(살구), '토미'(도자기 등에 사용되는 흙)[93] 북한의 주장대로라면 김정숙이 만 23세이던 1941년 3월 1일 찍었다는데, 이때는 김정숙이 김정일을 낳은 지 2주도 채 안 됐을 때다. 때문에 사진이 조작되었다는 주장도 있다.[94] 또는 '혁명과 건설의 모든 분야에 걸쳐 비상히 다방면적이며 풍부한 내용을 담은 업적을 이룩한 지도자를'[95]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이 책들 중 대부분이 군사와 관련된 내용들이었다고 한다.[96] 보통 11회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 북한의 주장으로는 5회다.[97] 국내에서는 그렇게까지 유명하지는 않지만, 해외에서는 축지법보다도 인지도가 높은 것을 넘어 후술할 햄버거 건과 함께 가장 유명한 북한의 김정일 선전이다. 오히려 서양에서는 김정일의 초자연적 능력 관련한 '보다 자극적인' 선전들이 이상할 정도로 유명하지 않고 '탄생 관련 설화를 만들었다'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이는 아마 서양 사람 입맛에 맞는 개그 코드(?)라 인지도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98] 2011년 12월 28일, 김정일이 장례식이 열린 날.[99] 대놓고 효성(孝誠)이란 말을 써서 북한 주민들이 김정일을 여기는 것을 마치 자신들의 친부모님 여기듯이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100] 2022년 기준 남한의 사과 생산량이 56만 6041톤이던 것과 달리 북한은 남한의 1.5배 가량인 80만 1533톤이다.[101] 그 불면불휴가 비유적 의미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쪽잠 외에는 잠을 전혀 자지 않고 단 한 번도 쉬지 않았다는 뜻이다.[102] 그 동안 김정일은 러시아 극동 지역을 순방했다.[103] 이 때의 영향으로 김정일은 동년 9월 정교회 단체 '조선정교위원회'를 창설하고 2006년 평양정백사원을 건설하기에 이른다. #[104] 장미과의 갈잎큰키나무, 구원의 상징으로 여겨졌다.[105] '광명성', 즉 김정일을 의미한다.[106]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이는 김정일의 탄생 3년 후인 1945년에 해방이 될 것임을 암시한 것이라고 한다.[107] 김일성, 김정숙[108] 조각을 모아 큰 한 조각을 만든 지도를 일컫는 말[109]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북한에 왕래하는 재일동포들을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110] 500만 개의 만두를 대접했다고 한다.[111] 이를 본 노동자들은 김정일의 '은덕'에 어린애처럼 흐느껴 울었다고 한다. 당시 식사 만두를 보고 흐느끼는 북한의 노동자들[112] 다만 스탈린은 김정일과는 달리 지도자로서 최소한의 품위만 유지하는 수준의 검소한 생활을 했다.[113] 하필이면 줴기밥이 언급되는 이유는 2008년 7월 7일 로동신문에 언급된 바에 따르면 "줴기밥은 만드는 데는 특별한 음식감도 필요 없고 품도 적게 들기 때문에 준비하기가 쉽고 짧은 시간에 먹을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 좋은 혁명가들에게 이상적인 도중식사"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북한 주장으로는 이는 김정일의 발언이라고 하나, 김정일이 먹은 줴기밥과 일반 국민이 먹은 줴기밥은 이름만 똑같지 전혀 다른 물건이었을 것이 너무나도 자명하다. #[114] 북한의 묘사대로라면 이 죽은 통강냉이죽이라고 한다. 물론 실제로는 샥스핀이 들어간 죽이었지만.[115] 기사 작성자인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은 악명 높은 종북주의자로, 해당 기사도 김정은이 고난의 행군 때 쪽잠에 줴기밥으로 버텼다는 게 사실이라는 입장 하에 써진 것이다.[116] 여기에 따르면 후지모토 겐지의 책에 대해 북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우리 장군님을 중상 모략하기 위해 만들어낸 책이다"고 흥분했지만, 책 내용에 실린 사진들(김정일/여담 문서의 2.2.1 / 2.2.2 문단에 실린 김정일의 별장 사진들 등)을 보고는 얼굴색이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117] 이는 북한이 날조한 생가이다. 김정일은 실제로는 소련 우수리스크 출신이다.[118] 기사 제목은 '김정일장군 선군승리의 50년에서 무궁번영할 천만년을 내다보며'이다. 김정일 생전에 쓰인 기사이다보니 김정일 찬양 표현이 상술한 (김정일 사후 발표된) 김정일 찬양들, 하술할 김정은 찬양들과 비교해도 극히 노골적이다. 생전의 김정일 찬양이 이 정도였으니 김일성 생전에 김일성을 어떻게 찬양했을지는 가늠이 가지 않는다.[119] 참고로 기사 작성 당시 북한의 1인당 GDP는 아프가니스탄보다도 낮았다.[120] 여기에 따르면 몇몇 대진연 회원들은 김정은이 살이 '쪄 보이는' 이유가 인민들 걱정에 잠을 못 자 스트레스를 받아 부은 거라고 진지하게 믿는다고 한다.[121] 3천 평(9,917.4㎡)[122] 원문 그대로의 인용[123] 문재인(대한민국), 도널드 트럼프(미국), 시진핑(중국),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124] 문재인, 도널드 트럼프, 시진핑, 블라디미르 푸틴. 쭘말리 싸이냐쏜 라오스 국가주석도 만난 적이 있긴 하나 김정일 사망 2개월 전에 만난 것이기에 논외.[125] 2022년 기준 북한의 1인당 GDP는 590달러로 소말리아(592달러)보다도 낮다.(...) 그리고 6.25 휴전 직후인 1954년 남한의 실질 1인당 GDP를 2022년 환율로 환산한 것이 566달러로 2022년 북한과도 거의 차이가 없었다. 다른 의미에서는 '불멸의 업적'이 맞긴 하다.[126] 김정은은 2022년 12월 26~27일 열린 조선소년단 제9차대회 참가자들에게 보낸 서한 <소년단 깃발 높이 강국의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자>에서 조선소년단 단원들에게 "만약 원쑤들이 덤벼든다면 전화의 소년근위대원들처럼 용맹하게 싸워 300만 조선소년단의 본때를 보여주어야 합니다."며 전쟁이 일어난다면 사실상 소년병으로 싸울 것을 강요한 바가 있다. # 참고로 조선소년단원의 나이는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 2학년~중학교 2학년 수준.[127] 2017년 3월 18일. 북한이 ICBM용 엔진 시험에 성공한 날이다.[128] 이는 로동신문 논설위원 동태관이 묘사한 모습인데, 사실 동태관은 북한 기준으로도 매우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언론인으로 평가받는다.[129] 참고자료 익명의 탈북자의 과장된 증언이 아니라,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도 인정한 사실이다. 참고로 김정은은 속으로는 김일성이 자신의 어머니를 인정하지 않은 점을 상당히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하는데, 때문에 김정은이 김일성을 속으로는 증오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는 상황. 실제로 2024년 김정은이 태양절, 광명성절 명칭을 점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결정하기도 했다.[130] 이는 사회주의 대가정론을 묘사한 것인데, 물론 외부인들에게는 완전히 반어법으로만 보인다. 그 '어머니, 아버지'라는 게 최악의 막장 부모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사실이긴 하다.[131] 원문에서 언급된 것은 아니지만 평양 재개발, 서해갑문 건설 등이 그 예시로 언급된다.[132] 대놓고 연어를 '고급 생선'인 것마냥 말하고 있다.[133] 얼핏 보면 많아 보이겠지만, 남한은 2020년 기준 연간 어류 총소비량이 171만 톤이다. 전국에서의 하루 어류 소비량만 4,600톤이 넘는다. 북한은 동년 기준 연간 어류 총소비량 26만 톤, 하루 어류 소비량은 712톤이다. #[134] 이 말대로라면 '위대한 수령'이라는 김일성은 인민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아 식량난 해결을 건성건성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는 척만 했다는 결론이 나오며,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진심으로 인민을 사랑했다고 가정하면 더욱 가관인 게 김일성은 어언 반 세기 동안 집권하면서 식량난 해결을 위해 평생 노력을 가했다는데도 북한 주민들에게 이밥에 고깃국은커녕 신선한 물고기도 제대로 먹이지 못해 아들이 신선한 물고기를 인민들에게 먹이기 위해 '한평생 온갖 노고를 바칠'(물론 이는 북한의 거짓말이다) 지경에 이르게 만들 정도로 지도자적 자질이 아주 형편없었다는 것만 암시하는 꼴이 된다. 물론 17년 동안 집권하면서 주민들 식탁에 물고기도 제대로 올리지도 못한 김정일도 마찬가지이고.[135]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김정일은 죽기 하루 전 양력설을 맞이한 평양 시민들에게 물고기(정확히는 명태, 청어)를 공급하기 위한 문서를 검토했고, 이는 김정일 사망 거의 직후 김정은이 지켰다고 한다. #[136] 정황상 명태청어 위주였던 것으로 보인다.[137] 사족으로 한국에 이를 보도한 KBS 기사에서는 김정은의 물고기 배급을 '선물'(무료 배급을 의미한다)이라고 표기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돈을 주고도 못 살 정도로 물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다른 지역보다 평양 시민들에게 먼저 판매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138] 그나마 이는 평양 중심부(중구역 등) 바깥에 사는 주민들에게 한 대우였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수도 외곽 시민들마저 물고기를 따로 배급받아야 먹을 수 있다는 것도 북한 민생이 파탄났다는 결정적인 증거이긴 하지만.[139] 덤으로 북한에서는 이를 '반만년 역사에 이처럼 웅대한 목표가 제시된 적이 없었다' '농민들의 세기적 숙망이 실현되고 공산주의에로 뻗은 지름길이 열었다' '사회주의농촌들을 완전히 천지개벽시키기 위한 거창한 창조대전의 시작을 알리는 장엄한 뇌성'이라고 자찬했다.[140] 북한에서는 일명 '원수님 바지'로 불린다.[141] 빈곤국에서 살이 찐 사람을 부유함의 표식으로 바라보는 사례가 많긴 하다.[142] 이는 북한의 선전 내용에 불과하다.[143] 이제는 대놓고 어린이들에게 최고지도자를 '아버지 같은 존재'가 아닌 '친아버지'로 부르도록 강요하고 있다.[144] 지도자가 대놓고 아이들에게 자신이 아이들의 '아버지'라고 세뇌시키고 있다.[145] 그 초등학생은 전남 곡성 시골의 오지에서 자라며 전기조차 없다고 시골에도 전기를 깔아달라고 박정희에게 부탁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박정희가 이 편지를 보고 비서실을 통해 교장에게 "뭐가 달라도 다른 아이다. 크게 될 아이니 잘 키우시라"라고 칭찬을 전했다. 그 어린이가 바로 이정현새누리당 대표다.[146]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옛날 유럽 사람들이 감자를 '악마의 작물'이라 천대하고 '하얀 흑인' 취급 받던 아일랜드인 정도만이 주식으로 삼았던 이유가 개량 전의 감자는 진짜로 맛도 더럽게 없는 마당에 식감까지 나빴기 때문이었다.[147] 더구나 김정은이 어린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지도자라면 어떻게 외국 지도자방문을 환영한답시고 기온이 33도를 훌쩍 웃도는 한여름의 정오에 유치원생~초등학생까지 야외에 동원할 생각을 했을까? 덤으로 증언에 따르면 새벽 5시에 평양 주민들을 깨워서 6시에 예비 집합 장소에 모이게 하면서 푸틴을 마중하도록 했으며, 이를 넘어 푸틴이 오는 시간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면서 주민들이 땡볕 아래에서 화장실도 못 가고 물도 제대로 못 마신 채 기다리게 했다. # 그러면서 김정은은 푸틴에게 너무 날씨가 뜨겁다고 에어컨이 나오는 시원한 실내로 차담 자리를 옮기며 회담 일정까지 바꿨으니 그야말로 마귀, 사이코패스가 따로 없다. 저런 짓 저지른 자가 계속 어린이 사랑 운운하는 거면 문자 그대로 폴 포트까지 능가한다는 소리 들어도 싸다. #[148] 북한 교과서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 것. 천품(天稟)은 비범한 기품을 의미한다. 이 아니라 이라면 맞을지도[149] 정확히는 1989년 4월. 이때 김정은은 만 5세였다.[150] 후술할 이 교과서의 교사 참고서에는 "학생들에게 200km/h는 몇m/s인가를 계산해보도록 하고 55.56m/s의 속도로 달리는 초고속배가 얼마나 빠르겠는가를 상상해보도록 한다."고 적혀 있다.[151] 평양과 몇몇 관광지들(원산시, 삼지연시, 양덕온천)의 외관적인 개발만 중요시하지 국가 발전에 필요한 실질적인 경제 개발은 천시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표현이다.[152] 또는 '우리는 불패의 사상강국이고, 사상강국이야말로 이 행성의 최강국이며 동서고금에 있어보지 못한 그런 위대한 강국의 지위에 바로 우리(북한)가 올라섰다.'[153] 이는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가 1978년 자신의 학정과 경제 파탄을 피해 국민들이 살기 위해 해외로 도피하는 것을 막기 위해 나라의 개인 소유 선박을 모조리 불태웠던 일을 연상시킨다. 참고로 응게마는 국민들이 외국으로 도피해 반역을 꾸밀 것이 두려워서 저랬다.[154] 북한에서는 보통 '167만 4 610여리'로 표현된다.[155] 천리마동상 준공 60주년을 기념한 것이라 '60년'이라는 표헌이 쓰였다.[156] 그러나 언어학적으로 문화어는 서울말, 즉 한국 표준어와 상당히 비슷하다. 북한이 주장하는 ‘평양문화어‘는 그저 평안도 사투리를 기반으로 지도층의 입맛에 맞춘 잡탕 언어이다.[157] 대놓고 "마시아스 응게마 외의 신은 없다"는 프로파간다 슬로건을 만드는 등 광적인 우상화를 해 '북한도 능가하는 수준'이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였다.[158] 고난의 행군 이전이라 김씨 일가 정권에 대한 충성도가 최고조였을 때였으며, 북한 내부 상황도 막장화되기 이전이다.[159] 기자 작성자인 마틴 와이저(Martin Weiser, 1987~)는 독일 출신으로,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북한인권 정책에 대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얻은 독립연구자다.[160] 徐玉植, 1944~, 대한민국의 언론인, 북한문제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