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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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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어원3. 호칭4. 한국에서의 용례

1. 개요

순사([ruby(巡査, ruby=じゅんさ)])는 일본 경찰 계급의 최말단 계급이다. 대한민국 경찰청순경에 상응한다.

2. 어원

일본 경찰 조직이 생긴 메이지 시대 초기에는 순라병졸(巡邏の兵卒)을 줄여서 라소츠([ruby(邏卒, ruby=らそつ)], 나졸)라고 블렀다. 조선에서도 나졸(邏卒)은 포도청에 딸린 군졸을 부르는 호칭으로 사용되었다.

서양의 'patrol'에 해당하는 일본어가 존재하지 않아서, 순라사찰([ruby(巡邏査察, ruby=じゅんらささつ)])이라는 단어를 조합해내고 그 줄임말인 순사(巡査)가 되었다. 일반적인 경찰 업무의 하나인 순회하면서 사찰하는 기능을 강조하는 단어였다.

메이지 초기에는 지금처럼 계급이 다양하게 나눠지기 전에는 순사 계급은 1등 순사에서 4등 순사까지 4단계 등급이 있었고, 1등 순사는 현재의 경부보에 해당했다.

3. 호칭

현재도 쓰이고 있는 단어이기 때문에, 일본의 창작물에 간혹 '순사'라는 계급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 경찰관을 '경찰 아저씨'라고 호칭하듯 일본에서는 오마와리상(お巡りさん)이라고 호칭한다. 오마와리상은 순사 또는 제복 차림의 경찰관을 친근하게 부르는 말이다. 일반인이 경찰관의 계급을 인지하고 호칭하지 않으므로 우리말로 번역하면 '경찰 아저씨'로 할 수 있으나, 보통 거리를 순찰하는 경찰관이 순사(순경)인 경우가 많으므로 '순경 아저씨'로 번역할 수도 있겠다. 참고로 오마와리상에서 마와리는 순회하다, 돌아다니다라는 뜻이다.

4. 한국에서의 용례

일제강점기 일본 제국 경찰들을 통틀어 일컫던 단어로 조선에서는 일경, 왜경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순사라는 말 자체는 정확히는 일본의 경찰계급 중 최하위로, 우리나라의 경찰공무원 계급들 중에서 경찰의 시작인 순경에 해당하는 단어이다.

무단통치 시기 일본 육군 헌병경찰이 있었다. 이들이 입던 육군 헌병 군복일본군에 대한 한국인들의 대표적인 부정적 인상으로 뿌리 박히기도 했고, 그야말로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이들 대신 신임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 제독이 내세운 문화통치를 표방하며 일반 경찰을 한반도 치안 유지에 투입했다.

당연히 당시 조선인들에게는 헌병 못지 않은 엄청난 증오의 대상이었는데, 말이 헌병에서 순사로 바뀌었을 뿐이지 조선인들에 대한 대우는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우는 아이를 달래는 방법이 바로 "호랑이가 물어간다!", "왜놈 순사 온다!!" 등으로 달래는 것이었다. 순사가 잡으러 온다, 저기 순사 온다, 울면 순사가 꽉 잡아간다, 순사가 총 메고 온다 등의 바리에이션들이 있다. 심지어 일본 순사의 이름을 적은 부적도 있었다.

문화통치를 시작한 일제는 원망의 대상인 헌병경찰제를 끝내고 일반경찰제를 시행한다고 선언했는데, 그러자면 기존 경찰 인력 외에 6,800명을 증원해야 했다. 일본 육군 헌병에서 약 2천 명을 전역과 동시에 순사로 임용토록 하는 형식으로 이관받고 일본 본토(소위 '내지')에서 1,500명을 차출하고 3천 명 이상을 신규로 뽑았는데, 인적 자원 수준은 다음과 같았다.

이런 자원으로 경찰 정원을 채웠으니 간부도 아닌 일선 순사들의 질이 좋을 리가 없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물론 내지인들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조선인들도 순사(보통경찰제도 시행과 함께 순사보 계급을 폐지하면서 기존 순사보였던 조선인 전원을 순사로 진급시켰다)로 모집했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지원했다. 1935년에는 경쟁률이 무려 19.6대 1이나 되었을 정도다. 당시 조선인으로서 가질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권력도 있고 철밥통인 직장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단순히 경찰이 되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원한 사람도 많았다. # 순사 시험 인기는 오늘날 공시족의 그것 못지않았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충청북도에서는 30명을 채용하는 순사 시험에 500여 명이 지원하기도 했고, 전라남도에서는 35명을 채용하는 순사시험에 477명이 지원하기도 했다. 순사 시험에 합격하면 동네잔치가 열렸다는 말이 과하지 않다고 한다.#

이건 비단 순사만이 아니라 우리로 치면 9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하급 공무원 자리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 시골 동네에선 순사나 면서기에 누가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 집에 동네 사람들이 던지러 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동네 사람 다 모아놓고 큰 잔치를 벌이는 풍경이 더 흔했다. 1938년 조선인의 육군 병사로의 지원 입대가 허용되자 경쟁률이 엄청났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일제의 토지 조사 사업으로 인해 소작농의 소작권이 소멸하고 지주와 소작농 관계가 법적인 계약관계로 전환되면서 많은 소작농들의 권리가 약화되었다. 그렇다고 장사를 하자니 당장 먹고 살 돈도 없고 제대로 배운 것도 없는 조선인들이 기본적인 밑천이 필요한 장사로 곧바로 대박날 수 있을 리가 없었고, 공부 좀 한다는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순사나 하급 공무원에 지원했던 것이다. 특히 순사의 경우엔 당시 경찰 임용에는 학력 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저학력자들도 많이 응시했다. 이 때문에 반민특위 등에서 친일파를 잡아낼 때 끌려온 사람들이 하는 대표적인 변명이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그 예로 각시탈의 작가 허영만의 부친도 일제시대 때 순사였는데, 송덕비까지 있을 정도로 대단한 집안이었으면서도 먹고 살기 위해서 그랬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였는데, 당대 일본은 조선, 일본 할 것 없이 빈곤 농민을 착취하여 국가를 돌리는 기형적인 체제를 진행하고 있었다. 일본에선 부모가 직접 어린 딸을 인신매매하는 경우도 있었고, 기아 문제도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조선처럼 춘궁기에 굶어죽은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일제 말엽에 가면 일본에서도 경찰이나 군인이 되어서 어떻게든 먹고 살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제에 순응해서 순사나 군인이 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호구지책인 경우가 많았던 셈이다. 그러니 당대 순사의 지원율이 높았던 건 일제가 조선인을 우대했다기보단 오히려 악랄하게 착취한 반동이었던 셈이다. #

일본군은 그 경직성으로 인해 몇몇 부대에서의 쏘가리 따돌리기 같은 하극상은 있었지만 그런 걸 제외하면 계급을 철저히 따지는 편이었고, 이는 계급이 높으면 특히 사병들은 일등병 이상으로의 진급도 100% 시험을 통과해야 할 수 있었던 제도 특성상 계급=능력으로 간주되어 후임병이라도 진급하는 순간 어제의 선임을 밟아버릴 수 있는 곳이었다.

근데 이것도 부대마다 케바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니까 원래 상위 계급자나 같은 계급에 있는 선임들을 제치고 먼저 상병장으로 진급해도 짬이 딸리면 여전히 진급 이전처럼 이들에게 당하고 살 수밖에 없다는 소리. 이런 경우는 주로 먼저 입대했으나 상병/병장 진급에 실패한 고참 일병/상병이 계급은 상병/병장이으로 자기보다 높지만 입대일은 늦은 사람에게 시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내지인이건 조선인이건 별 상관이 없었기에, 당시의 기록들을 보면 조선 출신 상급병이나 하사관들에게 꼼짝도 못하고 얻어터지며 가혹행위에 시달리던 내지 출신 사병들의 이야기가 수도 없이 나온다. 설령 그 조선인 선임보다 상급자인 내지인이 있어도 "조센징보다 못나서 진급도 못하는 한심한 놈"이라며 되려 조선인 선임 편을 드는 경우도 허다했다.

만일 일본인 후임들이 내부의 조선인 선임들을 무시하거나 차별하는 등의 하극상을 저지르는 걸 묵인해버리면 이들이 선임 계급을 우습게 볼 가능성을 준다. 또 이로 인해 조선인들이 반발을 시작할 경우에는 일본인 선임병과 간부 본인들도 피해를 보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전투, 임무, 작전 도중에 조선인 선임들의 정당한 명령을 일본군 후임들이 거부하고 이행하지 않을 경우엔 부대가 와해되는 상황까지 올 수 있다. 그리고 조선인의 일본군 입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30년대 후반에는 내선일체 정책에 맞춰서 형식적으로나마 조선인을 일본인과 동등하게 대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짬과 계급이 높아도 조선인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일본인 후임들에게 무시당하는 걸 묵인하면 자기들이 내세우는 정책과 정면으로 반하는 멍청한 짓을 스스로 사서 하는 꼴이 되어 버린다. 이는 내선일체를 통해 조선인을 자기들의 전쟁에 동원시키려는 일본군 상부의 의도를 깨뜨릴 수 있었다.

고참이 되어도 일본인 후임들에게 여전히 무시당하고 가혹행위를 당한다고 조선인 군인들이 떠벌리고 다니면 일본군에 자원입대할 리가 없다. 더군다나 당시 조선인이 가질 수 있는 공직들만 해도 교사, 순사, 면서기, 철도공무원 등 생각보다 많았다. 그러므로 본인의 의지와 능력만 있으면 일본군에 입대하는 대신 다른 직종들에 지원해서 합격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조선인은 군필자가 아니어도 공무원이 되는 게 가능했다.

조선인은 육군 하사에 해당하는 오장 계급까지만 진급해도, 매일 밤 내무반에서 내지인들을 족치며 실컷 화풀이를 할 수 있는데다, 당시 일본 제국은 군국주의 국가여서 군의 위상이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몇 배는 높았다. 때문에 휴가라도 나오면 그간 자기를 괴롭히던 동네 일본인 주재소장[1]의 싸대기를 때려도 그 주재소장도 아무 말도 못 했을 정도였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단순히 일본군의 위상이 높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바로 일제강점기의 공무원 신분 체계에 있다. 위에서 예시로 든 주재소장은 보통 순사부장(한국 경찰의 경사에 대응) 내지는 경부보(한국 경찰의 경위에 대응)가 맡았다.

순사부장은 고원으로, 일본에서 판임관 미만의 무관 등 공무원들 중 상위 계급에 있는 이들이며, 대개 한국의 8~9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최하위직 공무원이다. 또 과거 일본군과 현대 한국군의 상병장, 전투경찰의 상경과 수경, 의무경찰의 고참급 대원 역시 여기에 포함된다. 경부보는 판임관으로, 일본의 공무원들 중 천황의 개입 없이 오로지 일본 총리의 판단만으로 임명하는 이들이다. 현대 한국의 6~7급 공무원에 해당되는 하위직 공무원이다.

문제는 일본군의 하사관들도 판임관 신분이었고, 이는 일본군 하사관들이 주재소장을 본인들과 동급 내지 이하로 본 원인을 제공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 한일 군대(자위대)와 경찰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것이, 한국 경찰의 경위와 경사, 일본 경찰의 경부보와 순사부장은 한국군의 부사관과 자위대의 (육해공) 조급 대원보다 직급 서열이 높으며, 짬도 대개 경찰 쪽의 우위이다.

따라서 일개 하사급 군인이 일제 때 마냥 파출소(주재소)장의 뺨을 갈기는 짓거리를 저질렀다간 군에서 퇴출당하는 건 둘째치고 상관폭행죄에 걸려서 일반적인 폭행보다도 더 크게 처벌받는다.

일제강점기 매체의 필수요소로 나올 때는 보통 악역으로 설정되며, 찌질하고 야비하며 무고한 사람을 패거나 고문하는 역으로 나온다. 자주 붙는 이름은 나카무라.

이외수 작가의 '사부님싸부님'에서도 '일본 순사 올챙이'가 나온다. 주인공인 하얀 올챙이에게 병먹금 당한 다음 털린다.

간혹 도시와 멀리 떨어진 시골 같은 곳에선 일제강점기를 직접 겪으신 아주 연세 지긋한 노인들이 순경을 '순사'라고 말하기도 하며, 경찰로 재직 중인 사람들도 이런 노인층에게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하여 본인의 직업을 순사라 칭하기도 한다. 이 경우는 약간의 자조적인 뉘앙스가 있는 경우가 많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분한 박두만은 스스로를 순사라고 부르며, 이끼천용덕도 자신이 순사 생활을 했다고 밝혔다.
[1] 현대 한국의 파출소장에 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