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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3 14:36:25

공산주의 유머/소련/정치와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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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유머
소련 동유럽 / 동독 북한 중국 기타
정치 경제 언론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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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러시아의 지도자들이 보여준 것1.2. 화장실 낙서1.3. 지도자별 집권기1.4. 기차 여행1.5. 공산주의 밈
2. 레닌 시대(1917~1924)
2.1. 울고 있는 소녀2.2. 양당제도2.3. 야당2.4. 볼셰비키의 흉포함2.5. 불심검문2.6. 체카와 천사2.7. 레닌과 트로츠키의 명성2.8. 주류의 긴급 지원2.9. 신성한 금화2.10. 줄루 공산당의 행방은?2.11. 라데크의 비결2.12. 레닌의 관대함
3. 스탈린 시대(1924~1953)
3.1. 첩자3.2. 권력승계3.3. 마야콥스키의 죽음3.4. 집념3.5. 체포하겠어3.6. 체포하겠어 Part 23.7. 가족이 있다3.8. 파이프 도둑3.9. 긴급 상황3.10. 엄격한 법률3.11. 행사의 정체3.12. 콧수염쟁이3.13. 독소전쟁 참전3.14. 승리의 이면3.15. 여성 동지3.16. 고슴도치 위에 앉으려면3.17. 고마워요 스탈린!3.18. 재채기3.19. 광대3.20. 스탈린이 위대한 이유3.21. 스탈린의 유서3.22. 뭐가 불만인가?3.23. 산타클로스와 스탈린의 공통점3.24. 키예프의 두 해골3.25. 크렘린의 쥐굴3.26. 똥물3.27. 계구우후3.28. 스탈린 총장님3.29. 당의 이익3.30. 따귀 배급3.31. 스탈린 전집3.32. 스탈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3.33. 훌륭한 농담
4. 흐루쇼프 시대(1953~1964)
4.1.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4.2. 잠꼬대4.3. 동지는 어디 있었소?4.4. 레닌 묘의 경비가 더 삼엄해진 이유4.5. 확신4.6. 국적4.7. 키릴 문자 엠(М)4.8. 흐루쇼프와 케코넨4.9. 마술사4.10. 건초4.11. 41년형의 이유4.12. 케네디 대신4.13. 기술력4.14. 돼지와 흐루쇼프4.15. 전람회의 그림4.16. 흐루쇼프와 우주선의 공통점4.17. 흐루쇼프가 침을 뱉는 이유4.18. 저우언라이를 앞세운 이유4.19. 1964년의 작황4.20. 안나 카레니나
5.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 체르넨코 시대 (1964~1985)
5.1. 수술대에 올라선 브레즈네프5.2. 만약 악어가 브레즈네프를 먹는다면?5.3. 교통수단5.4. 무적의 애꾸눈5.5. 장수의 비결5.6. 중소관계 정상화5.7. 암살 미수5.8. 브레즈네프의 자동차5.9. 태양 탐사5.10. 지옥으로 가는 전화5.11. 브레즈네프 우표5.12. 부활절5.13. 연설문 15.14. 연설문 25.15. 연설문 35.16. 치매끼5.17. 구두5.18. 담뱃갑5.19. 이안과(耳眼科)5.20. 간첩5.21. 노인들 15.22. 노인들 25.23. 폴란드에 온 브레즈네프5.24. 푸시킨5.25. 브레즈네프와 손자의 대화5.26. 올림픽5.27. 브레즈네프와 황제의 대화5.28. 해외 순방5.29. 브레즈네프와 허수아비
6. 고르바초프 시대 (1985~1991)
6.1. 서기장이 된 고르바초프6.2. 국방장관법무장관의 필요성6.3. 임기6.4. 소련제 로봇6.5. 운전수 고르바초프6.6. 노동자와 고르바초프6.7. 나는 빼 줘6.8. 비누가 부족한 이유6.9. 식당에서6.10. 고르바초프의 연설6.11. 기차 여행6.12. 고르바초프와 100인의 경제보좌관
7. 소련 해체 이후(1991~)
7.1. 옐친의 업적7.2. 기나긴 줄7.3. 스탈린과 푸틴7.4. 옐친과 아들
8. 검열/감시/탄압에 관한 농담들
8.1. 서신 검열8.2. 작품 검열8.3. 표현의 자유8.4. 미국인과 소련인8.5. 사형수8.6. 그런 소릴 하다간8.7. 이심전심8.8. KGB와 앵무새 18.9. KGB와 앵무새 28.10. 감시 카메라8.11. 세상에서 가장 웃긴 농담8.12. 소련 지식인의 5대 원칙8.13.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8.14. 입원사유8.15. 토끼 수색8.16. 나쁜 어린이8.17. 배관공8.18. 텔레비전8.19. 차 한 잔 부탁드립니다8.20. 베스트셀러8.21. 3인조8.22. 아틸라8.23. 통금령
9. 수용소에 관한 농담들
9.1. 죄수들9.2. 태만죄9.3. 수용소에 온 이유9.4. 어느 유배자의 푸념9.5. 운하를 건설한 것은9.6. 노동수용소가 살기 좋다는 게 사실입니까?9.7. 수용소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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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러시아의 지도자들이 보여준 것

1.2. 화장실 낙서

블라디미르 레닌크렘린 궁전의 화장실에 들어가니 이런 낙서가 있었다.

"레닌 바보"

레닌은 낙서한 자본가에 대항해 혁명을 일으켰다.

이오시프 스탈린이 크렘린의 화장실에 들어가니 이런 낙서가 있었다.

"스탈린 바보"

스탈린은 청소부를 처형했다.

니키타 흐루쇼프가 크렘린의 화장실에 들어가니 이런 낙서가 있었다.

"흐루쇼프 바보"

흐루쇼프는 스탈린에게 책임을 돌렸다.

레오니트 브레즈네프가 크렘린의 화장실에 들어가니 이런 낙서가 있었다.

"브레즈네프 바보"

브레즈네프는 화장실을 폐쇄했다.

유리 안드로포프가 크렘린의 화장실에 들어가니 이런 낙서가 있었다.

"안드로포프 바보"

안드로포프는 어떤 조치를 취해보기도 전에 죽었다.

콘스탄틴 체르넨코가 크렘린의 화장실에 들어가니 이런 낙서가 있었다.

"체르넨코 바보"

체르넨코도 어떤 조치를 취해보기도 전에 죽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크렘린의 화장실에 들어가니 이런 낙서가 있었다.

"고르바초프 바보"

고르바초프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에게 낙서를 보여주었고, 같이 웃었다.

보리스 옐친이 크렘린의 화장실에 들어가니 이런 낙서가 있었다.

"옐친 바보"

옐친은 취해서 알아차리지 못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크렘린의 화장실에 들어가니 이런 낙서가 있었다.

"푸틴 바보"

푸틴은 자신의 이름을 바이든으로 바꾸고 나왔다.

여담으로 이 유머는 시간이 지날수록 마지막에 푸틴이 바꾼 이름이 클린턴, , 오바마, 트럼프등으로 바뀐다. 의도치 않게 푸틴의 장기집권과 독재를 비꼬는 유머가 된 셈. 사실 옐친과 푸틴은 소련 이후의 지도자니 여기엔 들어가지 않는 것이 맞지만, 노는 수준이 거기서 거기인데다 소련이나 러시아나 그렇게 크게 바뀐 것은 없어서(...) 아무 위화감 없이 세트로 언급된다.

1.3. 지도자별 집권기

레닌 시절(1917~1924), 소련은 터널 속 같았다. 왜냐하면 주위는 다 어두웠으나 앞에서는 환한 햇빛이 비쳤기 때문이다.

스탈린 시절(1924~1953), 소련은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 같았다. 한 사람운전을 하고, 승객의 반은 조용히 앉아있었으며 나머지 반은 선 채로 심한 흔들림을 겪었다.

흐루쇼프/불가닌 공동 수상 시절(1953~1958), 소련은 난기류 속을 날아가는 비행기 안 같았다. 두 사람이 운전을 하고, 다른 모든 사람은 속이 메스꺼웠으나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흐루쇼프 시절(1958~1964), 소련은 서커스 천막 안 같았다. 한 사람이 입을 열면 다른 모든 사람들이 웃었기 때문이다.

브레즈네프 시절(1964~1982), 소련은 영화관 안 같았다. 모든 사람들이 상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르바초프 시절(1985~1992), 소련은 저잣거리 같았다. 모든 사람들이 상거래를 시작하려던 중에 웬 시정 잡배들이 쳐들어왔기 때문이다.

옐친 시절(1992~1999), 러시아 연방은 공연 후 아수라장이 된 극장 안 같았다. 모두가 공연을 다시 하라고 앙코르를 외쳐대었고 그 와중에 극장 관리인들은 관객들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돈을 집어가고 있었다.

※ 레닌 시절은 내전과 전시공산주의 정책 등으로 파탄이 났을지언정 혁명 직후의 열기가 넘쳐 곧 프롤레타리아 지상락원이 올 것이란 희망이 부풀었음을 얘기한다.

스탈린 시절은 스탈린의 철권 통치 하에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굴라크로 끌려간 것을 얘기한다. 스탈린 사후 소련을 두고 갇힌 사람과 가둔 사람의 나라라고 부를 정도였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굴라크 수용자들이 집에 돌아오는 것을 매우 불편하게 여겼다. 대개 자기가 밀고한 사람들이니까!

스탈린 사후의 과두정 시기는 스탈린 격하의 충격과 스탈린주의자들과 흐루쇼프의 싸움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말한다.

흐루쇼프 시절은 스탈린주의자들을 반당분자로 몰아 권력을 독점했으나 쿠바 미사일 위기, 처녀지 개간 사업의 실패로 웃음거리로 전락해버린 흐루쇼프를 말한다. 혹은, 제한적 자유화로 분위기가 부드러워진 것을 뜻할 수도 있다.

브레즈네프 시절은 늙고 맛가버린 브레즈네프의 20년 가까운 통치에 다들 신물이 난 것을 얘기한다.

고르바초프 시절은 고르바초프의 개혁이 시작되자 반개혁 보수파, 소련 해체파, 민족주의자들이 사방팔방에서 난리를 치던 것을 의미한다.

옐친 시절은 옐친 집권 후의 난장판에 사람들이 차라리 소련이 나았다고 아우성을 치고 혼란을 틈타 갑부가 된 올리가르히들이 판을 치던 시절을 얘기한다.

1.4. 기차 여행

소련의 지도자들이 기차 여행을 하는데, 갑자기 기차가 멈춰섰다. 앞을 보니 선로가 끊어져 있었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할 것인가?

레닌: 수보트닉[1]을 선언, 노동자와 농민에게 참여를 호소한다.

스탈린: 기차를 움직이지 않은 혐의로 기관사를, 앞에 선로를 부설하지 않은 것을 태업으로 간주하여 철도 공사에 참여한 노동자들을 숙청한다.

흐루쇼프: 열차 뒤의 선로를 철거하여 앞의 선로를 만드는 데 사용하도록 명령한다.

브레즈네프: 커튼을 닫고 열차가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며 레코드를 듣는다.

고르바초프: "선로가 없다! 선로가 없어!"라고 외치며 열차를 흔든다.

옐친: 기차 자체를 파괴해 버린다.

푸틴: 기차가 멈춘 것이 서방과 NATO의 수작이라고 선전한다.

1.5. 공산주의 밈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원작자

레닌: 그것을 밈으로 만든 자

스탈린: 밈을 커뮤니티 여기저기에 뿌린 자.

브레즈네프: 밈을 너무 많이 양산해서 노잼으로 만든 자

고르바초프: 재미없어진 밈을 대신할 새로운 밈을 찾는 자.

옐친: 차라리 한물 간 공산주의 밈이 그리울 정도로 핵노잼 밈을 만든 자.

출처1출처2

2. 레닌 시대(1917~1924)

2.1. 울고 있는 소녀

레닌이 모스크바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러다 길 한 편에 앉아서 서럽게 울고 있는 소녀를 보았다. 레닌이 물었다.

"애야, 왜 울고 있니?"

소녀가 울면서 답했다.

"1 코페이카짜리 동전을 잃어버렸어요."

레닌은 불쌍한 마음에 자기가 갖고 있던 동전을 주었다. 하지만 소녀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얘야, 왜 계속 우는 거냐?"

"잃어버리기 전에 제가 갖고 있던 돈은 사실 2 코페이카였어요."

레닌은 크게 실망하고는, 씁쓸한 얼굴을 지은 채 소녀에게 줬던 1 코페이카를 도로 가져갔다. 소녀의 옷과 부츠도 함께.

※ 소녀는 바로 러시아다. 즉 레닌이 비록 무능하고 부패한 제정타도했지만, 그 후 민주적으로 선출되었으나 자신의 의견과는 맞지 않았던 제헌의회를 폐지하고 공산당의 일당독재로 나아간 것과, 현실을 등한시한 정책의 실패로 러시아를 알거지로 만들어버린 것을 풍자한 유머이다.

2.2. 양당제도

소련은 양당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다. 한 당은 집권을 하고 있고, 나머지 한 당은 감옥에 들어가 있다.

※ 이 유머의 기원은 니콜라이 부하린코민테른 집행위원회에서 한 발언으로 추정된다. 물론 일당제를 지지하는 차원에서 한 말이지만.

2.3. 야당

소련에서는 야당이 존재할 수 없다. 야당이 허용된다면 모두 야당에 가담하여, 결국은 또 하나의 당만 남게 되기 때문이다.

※ 실제로 소련 공산당은 소련 역사 대부분 동안 구색정당도 없는 진짜 유일정당이었다.[2] 고르바초프 집권 이후 공산당의 권력을 크게 약화하여 국가에 대한 영도권을 박탈하고 다당제를 허용했으나[3], 그 결과는 당내 보수파의 반발로 인한 쿠데타, 그리고 소련 붕괴로 이어졌다.

2.4. 볼셰비키의 흉포함

혁명 직후 어느 노파가 처음으로 모스크바 동물원을 방문하였다. 낙타 우리 앞에 선 노파는 충격을 금치 못하고 성호를 그으며 부르짖었다.

"오, 주여! 볼셰비키들이 저 불쌍한 에다가 무슨 짓을 한 겁니까?"

2.5. 불심검문

어느 행인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체카 요원 둘이 신분증을 보자고 남자를 붙들어세웠다. 하지만 행인은 불행하게도 신분증을 집에 놓고 온 상황이라 방금 병원에서 받은 소변검사 기록 밖에 없었다. 하지만 행인은 자랑스럽게 소변검사 기록을 체카 요원들에게 주었다.

체카 요원 1: "알부민(albumin) 무검출, 설탕 무검출."

체카 요원 2: "자본주의 첩자들은 언제나 소변에서 설탕이 나오지! 훌륭한 소비에트 인민이로군. 계속 가도 좋소."

※ 알부민은 단백질로 우유와 계란에 많이 들어있고 설탕은 기호성 사치품이다. 소변에서 이 둘이 검출되지 않아야 훌륭한 소비에트 인민이라는, 즉 소비에트 인민들은 고기와 설탕을 접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는 뜻의 풍자.

※ 사실 소변에서 단백질과 당분이 추출되면 단백뇨와 당뇨로, 건강하지 못한 상태이다. 즉 소련 인민들은 당뇨병 같은 성인병에 걸릴 만큼 풍족하게 먹을 가능성 자체가 없다는 뜻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2.6. 체카와 천사

10월 혁명이 일어나고 볼셰비키들이 권력을 잡자 하느님이 러시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내기 위해 성 루카, 성 게오르기우스, 성 베드로 세 사람을 보내서 조사를 하게 되었다. 며칠 후 3통의 전보가 도착했다.

"하느님! 체카에게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루카"

"하느님! 체카에게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게오르기우스"

"하느님 동지, 아무 문제 없습니다. 러시아의 상황은 완벽합니다. -체카 감찰국장 페트로프"

베드로의 러시아식 이름은 표트르(Пётр)이고 페트로프(Петров)는 표트르에서 유래한 성씨이다. 사실 성 베드로의 본명이 "시몬 바르요나" 즉 "요나의 아들 시몬"이라는 점을 고려해 보았을 때 세묜 요나노프(Семён Ионанов)가 되는 것이 더 맞겠지만.[4]

2.7. 레닌과 트로츠키의 명성

혁명이 일어난 직후 레닌과 트로츠키가 현지지도를 나갔는데, 어느 시골마을에 이르자 아이들이 쏟아져나와 소리를 치면서 레닌과 트로츠키를 가리키기 시작했다. 이에 흐뭇해진 트로츠키가 레닌에게 말했다.

"레닌 동지! 이런 시골 아이들까지 우릴 알아보는군요! 혁명이 우리를 유명하게 만들긴 했나 봅니다!"

레닌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아이들이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유대인이다! 유대인!"

※ 해당 농담은 독소전쟁 당시인 1940년대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치 독일만큼은 아니었지만 동유럽과 러시아 지역은 전통적으로 민간의 반유대주의 감정이 상당히 심각한 지역 중 하나였다. 사실 그 당시 유럽 국가 치고 유대인에 대해 감정이 좋은 국가는 없었지만 제정 러시아 시절에는 유대인에 대한 조직적인 박해와 학살이 공공연히 이루어졌을 지경이고[5] 독소전쟁 당시에도 나치와 별개로 유대인들이 학살당한 케이스가 드물지 않았다.[6] 이 외 유대인들이 소련보다 '정신적 모국'인 이스라엘에 더 충성할 것을 우려한 스탈린의 지시로 주요 유대인 인사들이 암살당하는 등 소련에서 반유대주의적 인식이 사라지기까지는 수십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 여담으로 레닌은 유대계 혈통이 일부 흐르고 있었고, 트로츠키(본명 레이바 브론시테인)는 혈통으로는 순수 유대인이었다. 물론 유대교도가 아니었으므로 스스로는 유대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유대계 쿼터였던 레닌은 유대인이 영특한 민족이라고 자신에게 유대계 혈통이 흐르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2.8. 주류의 긴급 지원

적백내전이 한창이던 어느날 리스키[7] 전화교환국에서 모스크바로 급전이 도착하였다.

"여기는 혁명군사위원회 위원장 트로츠키다! 지금 당장 소비에트 인민위원장 레닌 동지를 대라!"

"나요, 트로츠키 동무. 무슨 일이오?"

"레닌 동지! 큰일입니다! 지금 당장 리스키로 2탱크 분량의 곡주를 보내주십시오!"

"아니, 그렇게 많은 술은 무엇에 쓰려는 거요, 동무?"

"지역 농민들이 술에서 깼습니다! 지금 차르가 왜 폐위됐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2.9. 신성한 금화

전시공산주의의 막바지인 1922년, 볼셰비키들은 지역 농민들에게 식량을 징발하고 그 대가로 신정부에서 발행한 금화 한 닢을 주었다. 이에 금화를 받아든 농민들이 일제히 금화를 향해 성호를 그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마을 신부가 궁금해져서 물었다.

"여러분, 어째서 볼셰비키의 금화에 성호를 긋습니까?"

"신부님, 그야 교회에서 털어간 금으로 만든 금화니까요."

2.10. 줄루 공산당의 행방은?

1차 코민테른 대회가 열려 모스크바로 전 세계의 공산당 대표단이 몰려들었다. 그런데 줄루 공산당 대표단이 보이지 않자 한 대표가 물었다.

"줄루족 대표단은 왜 오지 않았죠?"

그러자 혁명의 메가폰이라고 불리던 카를 라데크[8]가 답했다.

"안타깝지만 어떤 유대인들도 코를 뚫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 실제로 있었던 일. 어느 나라 공산당에나 유대인들이 많았던 것에 대한 풍자로 유대인들이 줄루족 관습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하여 아직 줄루 공산당이 없다는 농담이다.

이 일화는 다음에 이렇게 변형됐다.
문: 왜 2차 인터내셔널에 아프리카인들은 한명도 오지 않았을까?
답: 라비노비치[9]의 몸에 뿌린 검은 페인트가 아직 마르지 않았기 때문이다.[10]

2.11. 라데크의 비결

카를 라데크는 다양한 언어를 매우 능숙하게 구사했고 번역에도 일가견을 보였다. 어느날 어떤 사람이 라데크에게 어떻게 그렇게 빠른 속도로 번역을 할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라데크가 대답했다.

"뭔 소리를 하는거요? 어떤 말이 허용되는지는 뻔하지 않소?"

※ 정답은 러시아어다. 이것도 실화라고 한다.

2.12. 레닌의 관대함

어느날 학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린이 여러분. 레닌 동지의 관대함과 인간애 정신에 대해서 말해볼 수 있나요?"

어느 아이가 당당히 손을 들고 발표를 자청했고 선생님은 그에게 기회를 주었다.

"어느날 레닌 동지께서 크렘린에서 집무를 보시는데 아이들이 찬 공이 레닌 동지의 책상 위로 뻥 날아들었습니다! 레닌 동지는 짜증을 내면서 봉투칼로 공을 찢어서 아이들에게 던지셨습니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적잖게 당혹한 선생님이 되물었다.

"그것과 레닌 동지의 관대함이 무슨 관계가 있죠?

아이가 당연하지 않냐는 듯이 대답했다.

"총살당할 걸 봐줬으니 관대한 일이 아닌가요?"

※ 실제로 레닌은 아이들을 대단히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다.

3. 스탈린 시대(1924~1953)

3.1. 첩자

한 남자는 직장에 5분 일찍 출근해서 사보타주(파괴공작원)라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다른 남자는 직장에 5분 늦게 출근해서 태업으로 체포되었다.

또 다른 남자는 정시에 출근했는데도, 첩자라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자본주의자의 시계를 차고 있는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 이유 자체가 제멋대로인 대숙청을 신랄하게 풍자한 유머. 참고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수용소군도에는 "실적"이 궁한[11] NKVD나 지역 경찰이 통근 버스를 잡아둔 뒤 출근 시간이 지나자 전부 태업죄로 끌고 갔다는 일화와 이웃집 사람의 갓난아기가 버려진 것을 보고 한 이웃이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냐며 아이를 데리고 경찰서를 찾아갔더니 실적에 궁한 경찰이 "제 발로 걸어들어온 두 반동분자"를 그대로 체포했다는 일화가 실려 있다.[12]

3.2. 권력승계

블라디미르 레닌은 자신의 병이 위독하여 곧 죽을 것임을 알고, 스탈린을 불렀다.

"스탈린 동무, 내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소... 내가 죽으면 동무가 내 뒤를 이어 연방을 이끌어주오..."

"알겠습니다, 레닌 동지."

"그런데 말이오... 당원들과 인민들이 동무 지시를 잘 따를런지..."

"뭘 그리 걱정하십니까? 저를 따르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곧 레닌 동지의 뒤를 따르게 될 겁니다."

※ 1917년 10월 혁명 직후 생긴 초대 정치국을 이루던 7명 중에서, 레닌과 스탈린을 제외한 나머지 5명은 전부 스탈린에 의해 처형당하거나 암살당함으로서 제 명에 못 죽었다.

※ 사실 레닌은 유언장에 스탈린에 대해서는 시종일관 까면서 "위험한 인물이니 하루빨리 내쳐야 한다"고 적었고 다른 후계자 후보들-지노비예프, 카메네프, 부하린 등은 결점도 지적했지만 대체로 좋게 평가했으며 트로츠키는 높게 평가하긴 했으나 그의 독선적, 영웅주의적 기질을 우려했다. 사실 이 유언장의 의미는 트로츠키를 지도자로 올리라는 거였다. 그러나 트로츠키의 독선적 기질을 경계했고 레닌이 자신들을 깐 것이 세상에 밝혀질까봐 두려워한 나머지 4명이 유언장을 은폐했고 그결과 지노비예프, 카메네프, 부하린, 트로츠키는 모두 스탈린에게 죽는다.

3.3. 마야콥스키의 죽음

문: 시인 마야콥스키가 스스로 총을 쏴서 자살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답: 물론입니다. 죽기 전 마지막 남긴 말은 "동지들, 쏘지 마시오!"였다더군요.

※ 먀아콥스키는 1930년 4월 12일 머리에 총상을 입고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정설은 당시 동거하고 있던 여배우 베로니카 폴론스카야와의 불안정한 관계[13] 및 소련 체제에 대한 염증 등으로 인해 권총 자살을 했다는 것이지만, 이후 수상한 정황이 여럿 발굴되어 사실 당국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음모론이 소련 시절 내내 끊이지 않았다.

3.4. 집념

모스크바에 사는 폴란드인체코인, 유대인트로츠키파로 몰려 사형 판결을 받았다. 판사가 세 사람에게 마지막 소원을 물었다.

먼저 폴란드인.

"내 시체를 화장하여 그 재를 조국 폴란드 땅에 뿌려 주십시오."

다음 체코인.

"내 시체를 화장하여 그 재를 체코의 강에 뿌려 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유대인.

"내 재는 이오시프 스탈린 동지의 묘에다 뿌려 주십시오."

"뭐라? 스탈린 동지는 아직도 살아 있지 않는가?"

"그러니까 그가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이오."

※ 소련 대신 나치 독일을 배경으로 스탈린 대신 히틀러의 묘에 뿌려 달라고 하는 버전도 있다.

3.5. 체포하겠어

대숙청적색 테러가 횡행하던 1930년대 소련.

한 여자가 집에서 자고 있다가 누군가 쾅쾅 문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서 일어났다.

"누, 누구세요?"

밖에서 거친 목소리가 소리쳤다.

"문 열어, 나데즈다 니콜라예브나! 너희 집은 포위됐다! 네 남편을 체포하러 왔다!"

여자가 대답했다.

"어? 세르게이? 우리 남편은 20분 전에 너 잡으러 나갔는데."

3.6. 체포하겠어 Part 2

1930년대 소련-핀란드 국경, 한 떼의 양들이 핀란드로 넘어가려다 국경 경비대에게 붙들렸다.

경비대장이 양들을 이끌던 늙은 양에게 물었다.

"왜 핀란드로 넘어가려고 했지?"

늙은 양이 대답했다

"NKVD 국장 라브렌티 베리야가 소련 안의 모든 코끼리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거든요."

경비대장은 고개를 갸웃하고 다시 물었다.

"너희는 코끼리가 아니고 양이잖아?"

늙은 양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말을 NKVD에게 한번 해 보시죠."

※ 출처: 공산국가 유머집(Hammer & Tickle)

3.7. 가족이 있다

처칠과 스탈린이 어느 날 모스크바의 고층빌딩에서 회담을 가졌다. 휴식시간에 두 사람은 너무나 심심하여 누구의 경호원이 더 충성심이 강한지 내기를 했다.

처칠이 먼저 자신의 경호원 에드워드를 방으로 불러 창문을 열고 말했다.

"에드워드, 뛰어내려!"

그러자 에드워드는 울먹이면서, "각하, 어찌 이런 일을 시키십니까? 저에게는 아내와 아들이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처칠은 너무 미안해져서 눈물을 흘리며 에드워드에게 사과하고 그를 내보냈다.

그러자 스탈린은 큰 소리로 자신의 경호원 드미트리를 불렀다.

"이보게 드미트리 동무, 여기서 뛰어내리게나!"

드미트리가 두말없이 뛰어내리려고 하자 깜짝 놀란 처칠이 그를 덥석 끌어안으며 말렸다.

"잠깐, 무슨 짓을 하려는 겐가? 자네 미쳤어? 여기서 뛰어내리면 정말로 죽어!"

하지만, 드미트리는 필사적으로 창밖으로 나가 뛰어내리려고 발버둥치면서 말했다.

"날 놓으십시오! 저한테는 아내와 아들이 있습니다!"[14]

※ 이 이야기는 추축국 버전[15], 공산주의 국가 버전 2[16], 북한 버전 등등 바리에이션이 다양하다.

3.8. 파이프 도둑

어느날 스탈린이 그루지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대표단을 크렘린에서 접견하였다. 대표단을 배웅한 직후 스탈린은 자신의 파이프가 없어진 것을 알아차리고 내무인민위원 베리야를 불렀다.

"베리야 동무, 내 파이프가 없어졌는데 아무래도 그루지야 대표단 중 한 사람이 가져간 것 같군. 그들이 크렘린을 떠나지 못하게 하고 범인을 색출해내게."

"예. 곧 범인을 잡아내겠습니다."

베리야가 물러나자 스탈린은 우연히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파이프가 주머니에서 나온 것을 깨달았다. 그는 다시 베리야를 불렀다.

"베리야 동무, 대표단을 모두 풀어주게."

"죄송합니다, 스탈린 동지. 아무래도 대표단을 모두 풀어주기는 이미 늦은 것 같습니다. 대표단을 모두 심문해보았는데 절반은 자백했고 절반은 심문을 받던 중 죽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갑자기 부르신 겁니까?"

이 말에 스탈린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음... 아무것도 아닐세. 그냥 외투 주머니에 내 파이프가 들어있었어."

※ 사라진 물건이 만년필이나 시계로 나오거나 또는 혐의를 받은 사람들의 정체나 숫자가 다르게 나오는 등 판본이 다양하다. 아무튼 '스탈린이 어떤 물건을 잃어버려서 부하에게 도둑을 찾아내라고 명령했는데, 얼마 후 부하는 범인이 자백했다고 보고했지만 정작 스탈린은 그 물건 이미 찾았다고 대답했다(=그렇다면 범인은 왜 자백했을까?)'라는 내용이 핵심이기 때문에 이 전개는 동일하다.

3.9. 긴급 상황

때는 대숙청이 절정이던 1937년. 아파트에 사는 어느 부부가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있다.

한밤중에 갑자기 들리는 소음, 계단에서 울리는 발소리… 그러다가 갑자기 초인종이 "삐~익!"하고 울리고 누군가 문을 쾅쾅거리며 두드린다.

혹시 비밀경찰이 들이닥친 게 아닌가?? 놀란 남편이 혼이 다 빠진 채로 황급히 뛰어나간다. 그리고는 바로 돌아와서 겁에 질린 아내에게 한다는 소리가,

"여보, 놀라지 마. 그냥 우리 아파트에 불이 난 것 뿐이래!"

※ 소련같은 공산주의 국가의 아파트는 국가 재산인 만큼 자신이 죽지 않는 이상은 아파트가 불에 타도 국가에서 다시 집을 준다. 또한 집에 화재가 발생한 것보다 비밀경찰이 더 무서운 존재라는 것을 말해준다.

3.10. 엄격한 법률

1940년 7월에 공포된 새 법령에 의해, 소련의 근로자들은 직장에 지각하면 태업행위로 간주되어 엄벌에 처해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시민이 길을 걸으며 어제 있었던 대화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들었나? 간밤에 불이 나서 볼쇼이 극장이 다 타 버렸다네."

"아니, 극장이 다 타도록 소방대는 뭘 하고 있던 거야?"

"그게 말야... 알고 보니 소방대는 출동해서 10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지만 태업죄로 전원이 체포되는 바람에 진화작업을 할 수가 없었다는 거야."

※ 물론 어디까지나 농담이지만, 전술했듯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멀쩡한 통근버스를 강제로 정지시킨 뒤 시간을 끌다가 태업죄로 버스 내 인원들을 전부 체포해 버리는 것이 스탈린 치하 소련의 막장스러운 관행이었으니 현실과 그리 동떨어진 유머도 아니었다. 출동 도중 할당량을 채우려는 지역 경찰이 다짜고짜 시간을 끌다 체포했을 수도 있고, 10분 만에 도착한 것도 태업이라는 이유로 엔카베데에 끌려가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17]

※ 실제 볼쇼이 극장은 화재로 전소되었다가 통째로 다시 지은 적이 있다. 다만 시기가 제정 러시아 시절인 1853년이라 공산주의와는 무관하다.

3.11. 행사의 정체

문: 벽에는 스탈린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발표자는 스탈린에 대한 보고를 읽고 있다. 합창단은 스탈린에 대한 노래를 부른다. 배우는 스탈린에 대한 시를 낭송한다. 이 행사의 정체는 뭘까?

답: 푸시킨 사후 100주년 기념 행사.

※ 출처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저서 <세컨드 핸드 타임>.

※ 이 유머는 스탈린 시대 소련의 정치적, 문화적 상황을 비판하는 것으로 푸시킨과 같은 러시아 문화의 아이콘 같은 사람의 기념 행사조차 스탈린 찬양으로 뒤덮이는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 이 농담을 실제로 시전했던 대학생은 그 덕에 "외부와 일체의 연락이 불가한 굴라크 10년형"[18]을 받았다고 한다.

3.12. 콧수염쟁이

독소전쟁 당시, 작전을 제멋대로 밀어붙이려는 스탈린에게 화가 난 게오르기 주코프는 회의가 끝나고 사무실을 나오며 "저 망할 놈의 콧수염쟁이 새끼가... 사람 열받게 하네." 라고 혼잣말을 되뇌었다.

때마침 NKVD 요원이 이를 듣고 스탈린에게 까발렸다.

스탈린은 바로 주코프를 호출했다.

스탈린: 주코프 동무, 방금 자네가 '망할놈의 콧수염쟁이'라고 욕을 했다고 하던데, 누굴 욕한 건가?

주코프: 예, 히틀러를 욕했습니다, 서기장 동지.

스탈린: 음, 그렇구만. 자넨 그만 가도 좋네. 그렇다면 요원 동무, 자넨 방금 누가 '망할놈의 콧수염쟁이'일 거라고 생각했나?

3.13. 독소전쟁 참전

A: 독재주의 국가공산주의 국가전쟁을 하는데, 어느 한쪽 군대에서 싸워야 한다면 자네는 어느 편을 택하겠나?

B: 그거야 물론 공산주의 군대지.

A: 그건 왜지?

B: 독재 국가에 포로가 되면 그나마 살 가능성이 있지만, 공산 국가에 잡히면 그럴 수 없으니까.

※ 1970년대 말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렸던 유머. 여기서 독재주의란 파시즘, 즉 나치 독일을 가리키는 것 같고, 공산주의는 물론 소련을 뜻하는 듯하다. 영어 원본은 파시즘(파시스트)이었을 것 같은데, 시대가 시대라서 번역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참전하면서 포로가 될 생각부터 한다는 점도 또 하나의 웃음 포인트.

※ 다만 실제로는 소련군으로 나치 독일에 잡히는 것보다는 독일군으로 소련에 포로로 잡히는 편이 살아남을 확률이 몇 배는 높았다. 돌아올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생존률은 대충 미국/영국에 포로로 잡힘 > 소련에 포로로 잡힘 > 나치 독일/일본제국에 포로로 잡힘 정도로 나오며 나치 독일에 잡힌 소련군은 57% 가량이 사망하였다. (서유럽 포로 집계시)나치 독일과 일본군은 전체 약 40% 정도의 포로가 사망했다. 항복을 했음에도 죽임을 당하지 않고 살아남은 소련에 잡힌 독일군 포로는 15% 가량이 사망했으며 영국과 미국에 잡힌 포로는 1% 미만의 사망률을 기록했다. 독일군은 영국군/미군에 대해서는 비교적 신사적으로 전쟁에 임한 편이었으나 소련군에 대해서는 폭압적으로 대우했다.[19]

※ 물론 그렇다고 독일군을 소련군이 잘 대해준 것은 아니다. 대부분 독일군들은 분노한 소련군과 게릴라들에게 항복을 해도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독일군 사망률이 15%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앞서 말한 잡힌 소련군 포로들은 대부분 전쟁 전기 1941년~1942년 중반이다. 1942년 후반부턴 독일군도 "니네도 우리 죽이고 다니잖느냐, 너희들도 죽어봐라"하고 그냥 다 죽이고 다니는 일도 적지 않았다. 물론 그 외에도 독일군이 포로를 잡을 수 있을 정도의 전황되지 않았고...

3.14. 승리의 이면

"붉은 군대가 나치 독일을 물리친 데 어두운 면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두 가지 정도가 있겠군요. 붉은 군대가 유럽을 만난 것과 유럽이 붉은 군대를 만난 것?"

※ 각각 붉은 군대가 유럽에서 닥치는 대로 약탈을 저지른 것과 동유럽이 소련군의 점령 하에서 공산화된 것을 말한다.

3.15. 여성 동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베를린은 4개국 공동관리를 받게 되었다. 연합국 회의장에서 미군 대표 하나가 다리를 뻗었다가, 잘못해서 맞은편에 앉아있는 소련군 여자 통역사의 발을 건드렸다.

"실례했습니다. 숙녀분."

통역사는 얼굴이 빨개진 채, 도움을 청하려는 듯 옆에 앉은 마르마쇼프 소령에게 귓속말로 소근거렸다. 소령은 푸쉬킨 대령에게 소근거렸다. 대령은 일어나서 시모노프 장군에게 갔다. 장군은 일어나서 회의실을 나와 모스크바에 전화를 걸었다. 30분 후, 회의실로 돌아온 장군이 대령에게, 대령은 소령에게, 소령은 통역사에게 차례로 소근거렸다.

그러자 통역사는 방긋 웃으며 미군 대표에게 말했다.

"천만에요."

※ 현실 사회주의 체제의 관료제적 경직성과 사회 통제를 풍자하는 농담이다. 스탈린주의 체제의 특징은 철저한 사회의 통제이고 통제사회에서 외국인과의 접촉은 특히나 민감한 상황이다. 물론 탈스탈린주의화가 이루어진 후에도 현실 사회주의 체제들은 극도의 관료주의적 경직성에 시달렸으며 '시장조정', '자치조정'을 말살하고 '관료조정'과 수직적 관료체계로 사회를 관리하였다.

※ 이와 관련해서 비슷한 실화가 1972년 8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적십자 회담 때 있었다. 평양 거리를 지나던 대한적십자사 대표단이 어느 건물을 보고 저 건물이 무엇이냐고 묻자 안내원은 알아보고 답해주겠다고 하더니 다음날 아침이 돼서야 나타나 그 건물이 평양 세무서라고 가르쳐줬다고 한다.[20] 그리 어렵지도 않은 대답이 다음날 아침에야 온 것은 당연하지만 평양 세무서인거 가르쳐줘도 되는지 상부의 지시를 일일이 받기 위해서였다.

3.16. 고슴도치 위에 앉으려면

인간이 고슴도치 위에 앉게 하려면 2가지 방법이 있다.

1. 엉덩이에 철판을 대면 된다.

2. 대원수 동지께서 앉으라고 명령하시면 된다.

※ 스탈린이 김일성로 바뀌는 버전도 있다.

3.17. 고마워요 스탈린!

5월 1일이다. 어린이들과 청년들의 행진 대오 속에 아주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 이런 플래카드를 들고 가고 있었다.

"스탈린 동지, 우리에게 행복한 어린 시절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자 사복을 입은 누군가가 노인들에게 다가갔다.

"잠깐만요, 지금 뭐 하는 거요? 지금 사람 놀리는 거요, 뭐요? 당신들이 꼬마였을 때는, 스탈린 동지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잖소!"

"바로 그거지! 바로 그래서 우리가 스탈린 동지한테 고맙다고 하는 거 아니오!"

※스탈린이 더 일찍 태어나지 않아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어 다행이라는 뜻이다(...).

3.18. 재채기

당 대회에서 스탈린이 보고서를 읽고 있는데, 누군가 기침을 했다.

"동무들 중 누가 기침을 한 거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첫 번째 줄! 일어서시오!"

스탈린이 손가락을 튕기자 밖에서 병사들이 들어와 서 있는 사람들을 모두 끌고 나간다.

요란한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누가 기침을 했소? 얼른 대답하시오!"

역시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두 번째 줄도 일어서시오!"

또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또다시 병사들이 들어와 사람들을 끌고 나간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계속 이어진다.

"기침을 한게 누구요?"

드디어 뒷줄에서 누군가 주저하는 목소리로 눈물과 함께 훌쩍거리며 말한다.

"저... 접니다, 서기장 동지..."

스탈린이 몸을 앞으로 기울인 뒤 웃는 얼굴로 입을 연다.

"감기 조심하시오, 동무!"

3.19. 광대

어느 날 스탈린이 영화관에서 부하들을 데리고 함께 한 편의 코미디 영화를 감상하였다.

스탈린은 영화를 보는 내내 껄껄 웃었지만, 영화가 끝나자 입을 열었다.

"재미는 있었네만, 중간에 나오는 저 광대 놈의 콧수염이 내 것과 비슷하더군. 쏴 버려."

싸늘한 적막이 감도는 가운데, 누군가가 용기를 내어 간신히 말했다.

"스탈린 동지, 그냥 저놈의 콧수염을 밀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러자 스탈린은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오, 좋은 생각이군! 쏴 버리기 전에 먼저 잊지 말고 콧수염을 밀게 하게나."

3.20. 스탈린이 위대한 이유

질문: 스탈린이 가장 위대한 인간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답변: 자신보다 위대한 인간을 모두 숙청했기 때문이죠.

※ 레닌의 아내 나데즈다 크룹스카야는 만약 레닌이 오래 살았다면 그조차도 스탈린에게 숙청당했으리라고 비판했다. 사실 크룹스카야는 레닌이 살아있던 시절부터 스탈린과 사이가 험악했기에 스탈린이 크룹스카야에게 폭언을 퍼붓기도 했고 그걸 안 레닌이 화가 나서 "누구도 내 마누라에게 그 따위로 말하지 못해!"라고 사과하지 않으면 연을 끊겠다고 스탈린을 호되게 질책해서 스탈린이 엉엉 울면서 사죄하기도 했다. 그러나 스탈린도 레닌에게 마누라 간수를 잘하라고 대들기도 한 덕분에 충격받은 레닌의 건강이 더 악화되었고 레닌의 명을 재촉하게 되었다.

3.21. 스탈린의 유서

스탈린은 두 개의 봉투에 유서를 남겼다.

첫 번째 봉투에는 "내가 죽으면 열어보시오"라고 썼고, 두 번째 봉투에는 "위기가 닥치면 열어보시오"라고 썼다.

그가 죽자, 중앙위원회가 첫 번째 봉투를 개봉했는데 거기에는 "모든 잘못은 나에게 있다고 인민에게 고하시오"라고 적혀있었다.

그래서 위원회는 그대로 했지만, 인민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고 위기가 닥쳤다.

위원회는 두 번째 봉투를 열었고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제 내가 했던 대로 그대로 하시오."

※ 파비앵 뉘리, 티에리 로뱅, <스탈린의 죽음>. 작중 베리야가 말렌코프에게 친 농담인데 그의 말로는 생전 스탈린도 듣고서 웃었다고 한다(...).

※ 진지하게 말하자면 흐루쇼프가 스탈린을 격하한 것은 스탈린이 없으면 유지될 수 없는 폭압적 스탈린 체제에 다들 지치기도 했고, 몰로토프를 비롯한 정치국 내부의 스탈린주의자들을 때려잡기 위함이었다. 다만 흐루쇼프는 1957년 스탈린주의자들을 때려잡아 각료회의 의장, 국방위원장, 제1서기를 모두 겸하면서 자신이 내세운 집단지도체제 원칙을 무시하고 수령의 길을 다시 걷기 시작한다. 그래도 서방과의 평화 공존, 경공업과 농업의 비중 격상 등의 원칙 등은 이어나갔다. 물론 농업은 망했다

※ CEO 버전으로 변형되기도 하며, 봉투가 3장이 되는 버전도 존재한다. 이 때 두 번째 봉투에 들어갈 말은 '구조조정을 하라(사람을 바꾸라)' 혹은 '언론을 비난(장악)하라', 마지막 봉투가 '같은 봉투를 (3장) 준비하라'가 되기도 하는데 이는 후임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도망치라는 뜻이다.

3.22. 뭐가 불만인가?

스탈린이 민생 시찰을 위해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는 정작 뒷좌석의 승객이 스탈린인 줄 모른채 투덜투덜 거렸다. 스탈린이 물었다.

"자네는 뭐가 그리 불만인가?"

"혁명 전에는 셔츠가 두 벌이었는데 혁명 이후에는 셔츠가 한 벌밖에 없습니다."

"긍정적인 면을 보게, 아프리카 사람들은 아직도 발가벗고 다니지 않나?"

"아프리카 사람들은 세 번이나 혁명을 했단 말입니까?"

※ 출처: 공산국가 유머집(Hammer & Tickle)

3.23. 산타클로스와 스탈린의 공통점

- 붉은색을 좋아한다.

- 멋진 수염이 있다.

- 당신이 착한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알고 있다.

- 모두에게 평등하다.

- 추운 곳에 산다.

- 작업장을 갖고 있다.

- 무료로 뭔가를 나눠준다.
출처

3.24. 키예프의 두 해골

키예프의 거리에서 두 구의 해골이 우연히 마주치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반갑소 동무! 동무는 언제 죽었소?"

"반갑소! 나는 1932년 대기근 때 굶어죽었소. 동무는요?"

"사실 난 아직 안 죽었소. 못 먹어서 마른 것 뿐이오. 그런데도 아직 살아있다니 하느님께 감사할 일이지요!"

그러자 죽은 해골이 대경실색하면서 뼈다귀만 남은 손가락으로 주의를 주었다.

"쉿! 아니 요즘 세상에 아직도 하느님을 찾는 거요? 감사할 일이 있다면 스탈린 동지에게 하시오."

"그럼 스탈린 동지가 돌아가시면 그땐 누구에게 감사를 해야 하죠?"

"그야말로 하느님께 감사할 일 아니겠소?"

※ 출처: 공산국가 유머집(Hammer & Tickle)

※ 스탈린의 집단농장화는 경제적으로 큰 실패를 부른 것도 모자라[21] 우크라이나 내 식량수탈을 강화하여 대기근까지 겹친 우크라이나인들은 수백만명이 아사하였다.

3.25. 크렘린의 쥐굴

1930년대의 어느날 스탈린이 크렘린 집무실에서 국정을 돌보는데, 쥐들이 나타나서 방바닥을 가로질러갔다. 몹시 불쾌해진 스탈린은 미하일 칼리닌을 불러서 크렘린의 위생상태가 매우 형편없다고 화를 냈다. 스탈린의 말을 열심히 듣던 칼리닌이 묘책을 냈다.

"스탈린 동지, 이 문제의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크렘린도 집단화한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쥐들의 반은 굶어죽고 나머지 반은 외국으로 망명할 겁니다."

3.26. 똥물

Q : 독재자 둘이 똥물이 든 컵에 빠져 있는데 히틀러는 머리까지 차 있고 스탈린만 유독 허리 부분만 남아있다. 그 이유는?

A : 스탈린은 레닌을 깔고 있어서다.
※ 출처: 공산국가 유머집(Hammer & Tickle)

3.27. 계구우후

전연방공산당 12차 당대회에서 트로츠키가 입장하였다. 그의 뒤를 따라 카를 라데크가 들어왔다. 그러자 스탈린 추종자들과 보로실로프 원수가 일제히 야유를 보냈다.

"저기 봐! 사자와 그 꼬리가 입장하고 있다!"

그러자 라데크가 그들을 향해 맞받아쳤다.

"트로츠키의 꼬리가 되는 게 스탈린의 엉덩이가 되는 것보단 낫지 않겠소?"

이 일이 있은 후에 스탈린이 라데크를 불렀다.

"동지가 그런 농담을 했다는 것이 사실이오?"

라데크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예, 하지만 스탈린 동지께서 국제 프롤레타리아의 지도자라는 농담은 제가 만든 게 아닙니다."

※ 놀랍게도 이것도 실화.

3.28. 스탈린 총장님

1925년, 카를 라데크는 모스크바 중산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라데크가 학교에 다니는 아시아 공산주의자들과 토론을 하던 어느날 스탈린이 측근들을 거느리고 대학에 현지지도를 왔다. 스탈린은 라데크에게 또 자신에 대한 농담을 하고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라데크는 당돌하게 대답했다.

"아뇨, 이번 쿠데타가 성공하고 나면 어떻게 권력을 분배할지 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스탈린이 다시 물었다.

"그럼 나는 감옥에 처넣을 거요?"

"아뇨, 우리는 유대인 대학을 만들고 스탈린 동지를 총장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좌중이 웃음바다가 되자 스탈린의 오른팔인 몰로토프가 지적했다.

"하지만 스탈린 동지는 유대인이 아니시지 않소?"

그러자 라데크가 대답했다.

"그럼 전 중국인입니까?"

※ 이것도 실화.(...). 참고로 모스크바 중산대학은 대부분 중국에서 온 중국 혁명가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라데크가 그럼 난 중국인이냐고 드립을 친 것. 중국인 드립이 스탈린을 멕인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으나, 스탈린이 자기를 아시아인이라고 부르는 걸 싫어했다는 것은 근거가 부족한 얘기다. 레닌이 스탈린을 아시아인이라고 모욕했다는 얘기도 있는데, 지는 시베리아 혼혈이면서 이는 로버트 서비스 교수의 스탈린 평전에서 나온 것이지만 이에 따르면 스탈린보고 담배 끄라고 짜증낸 것에 가깝고, 스탈린은 담배를 던지면서 성질 부린 것이 아니라 즉시 담배를 껐다. 같은 일화를 스탈린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인 올레크 흘레브뉴크 교수는 오히려 스탈린과 레닌이 서로 아시아인 드립도 칠 수 있는 친밀한 관계였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또한 스탈린은 나중에 일본의 마쓰오카 요스케를 만나서 "나도 아시아인이다"라고 외교적 드립을 치기도 했다.[22]

3.29. 당의 이익

1936년, 카를 라데크는 마침내(...) 체포되었다. 그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NKVD 모스크바 지부장 몰트샤노프가 그를 직접 심문하였다. 마침내 라데크는 한가지 거래를 제안했다.

"좋소, 한가지 조건에 동의한다면 내가 정치국 위원 전원을 살해하고 히틀러를 크렘린에 옹립하려는 음모를 꾸몄다고 인정하겠소."

몰트샤노프가 그 조건이 무엇인지를 묻자 라데크는 다시 대답했다.

"그야 동무도 나랑 한패였다는 거요. 나의 자백이 당에게 그렇게 귀중한 것이라면 당은 동무같은 사람 12명 정도는 기꺼이 희생하지 않겠소?"

※ 카를 라데크는 스탈린 측 세력이 아니었고, 결국 대숙청을 피하지 못하고 1936년에 체포되었다. 이후 약 6개월 간의 취조 이후 반역죄 혐의로 수용소 10년형을 선고받았고, 복역 중이던 1939년 5월 베르흐네우랄스크(Верхнеуральск)에 위치한 수용소에서 맞아죽었다. 표면상으로는 동료 죄수와 싸움이 붙어 살해당했다고 기록되었지만, 흐루쇼프 시절 진상 조사 결과 엔카베데가 손을 써 때려죽인 것으로 밝혀졌다.

※ 참고로 체포된 사람들에게 당에게 최후의 봉사를 하기 위해서 없던 죄를 자백하라고 하는 것은 대숙청 도중에 지도급 간부들을 굴복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에 대한 자세한 것은 아서 쾨슬러의 소설인 "한낮의 어둠"을 참조.

3.30. 따귀 배급

어느 할머니가 길게 늘어진 배급줄에 합류했다. 할머니가 앞 사람에게 물어봤다.

"오늘은 뭘 나눠주나요?"

"뺨 한대씩 때려준다는군요."

"설마 그것도 스타하노프 메달 받은 사람들에게만 해주는건 아니겠죠?"

※ 스탈린 시대 노동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모범 노동자 알렉세이 스타하노프를 따라 배우자는 스타하노프 운동을 풍자한 농담. 스탈린은 스타하노프처럼 열심히 일하면 물질적 인센티브를 준다고 선전했는데, 스타하노프 메달을 딴 사람들은 사회적 질시를 받았다.[23]

3.31. 스탈린 전집

어느날 스타하노프 메달을 따게 된 사람들에 대한 시상식이 열렸다.

첫번째 수상자는 라디오 수신기를 받았다.

두번째 수상자는 축음기를 받았다.

세번째 수상자는 자전거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협동농장의 가장 우수한 돼지치기가 나왔다. 사람들은 돼지치기가 뭘 받을지를 기대하면서 숨을 죽였고 협동농장 관리위원장은 감동에 벅차 눈물까지 훔치며 선물을 증정했다.

"바로 우리의 사랑하는 지도자 스탈린 동지의 전집입니다!"

그러자 시상식장 뒷편에서 누군가 외쳤다.

"꼴 좋다!"

3.32. 스탈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두 친구가 길을 걷는데 첫 번째 친구가 두 번째 친구에게 물었다.

"스탈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놀란 두 번째 친구는 첫 번째 친구를 잡아서 대로에서 골목길로 끌고갔다.

"여기선 말 못해, 좀 조용한 데로 가자고."

골목길에 도착하자 첫 번째 친구가 물었다.

"여기서?"

"안돼, 여긴 위험해."

두 번째 친구는 첫 번째 친구를 아파트 단지의 공터로 끌고 갔다.

"여기면 되겠네."

"아니, 여기도 너무 공개적인 곳이야. 따라오라고."

두 번째 친구는 아파트 지하의 어두운 지하실까지 첫 번째 친구를 끌고 갔다.

"여기라면 아무도 우리 얘기를 못 들을 거야. 이제 스탈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보라고."

"좋아, 사실 난 스탈린이 좋아. 정말로."

※ 이미 누가 들을까 봐 조용한 곳으로 몇 번이고 자리를 옮겼지만 끝내 한 이야기조차 스탈린을 긍정하는 이야기인 것이 포인트이다. 만약 진짜로 스탈린을 긍정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 굳이 조용한 곳으로까지 자리를 옮겨야 했을까?

3.33. 훌륭한 농담

1933년의 어느날, 이반 블라디모비치가 지인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수다스러운 그는 친구에게 쉬지않고 떠들어댔다.

"장례식 끝나고 나서 나한테 칼리닌을 만나러 간 유대인 두 명에 대한 농담 해달라고 하는거 잊지 말라고. 반혁명적이지만 너무 재밌는 농담이야. 대체 누가 이런 농담을 만들어내는지 알아내고 싶단 말이야. 아 이런, 지금은 안 되겠군. 다들 쳐다보고 있잖아. 당장 여기서 나가야겠어."

4. 흐루쇼프 시대(1953~1964)

4.1.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오시프 스탈린이 숨을 거두자 크렘린의 종들이 일제히 조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시민 한 사람이 크렘린에 전화를 걸어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당직자는 정중하게 스탈린 동지가 서거했다고 대답했다. 잠시 후 똑같은 목소리가 또 전화를 걸어서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당직자는 똑같은 대답을 해주었다. 그런데 이 전화가 계속 걸려오자 당직자도 화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봐! 벌써 20번이나 똑같은 대답을 해 줬어! 왜 자꾸 귀찮게 구는 거야?"

그러자 전화를 건 사람이 껄껄 웃으며 하는 말.

"하하하, 동지. 제발 화내지 마십시오. 스탈린이 죽었다는 말은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가 않는단 말입니다."
※ 스탈린이 죽었을 때 대놓고 기뻐한 소련 인민들도 소수나마 있었다. 허나 스탈린을 비판하다 걸리면 처벌이 가해지는 사회 분위기까지 당장 바뀌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이들의 이러한 행동들은 소련 당국에 걸려 즉시 KGB에게 체포당했다. 소련에서 누구든지 스탈린 비난을 맘껏 할 수 있게 된 건 1956년 흐루쇼프의 집권 이후 시작된 스탈린 격하 운동을 하면서부터다.

4.2. 잠꼬대

모스크바에서 제21차 공산당 대회가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볼로자와 이반은 흐루쇼프가 스탈린을 비판하는 지루한 연설을 듣고 있었는데, 그만 볼로자가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이윽고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렸다. 이반은 깜짝 놀라 볼로자를 깨웠다. 그러자 볼로자는 벌떡 일어나면서 큰 소리를 질렀다.

"흐루쇼프 꺼져라! 이 반혁명 악질 반동 분자 새끼야!"

볼로자는 잠결에 그 자리가 제22차 공산당 대회인 줄로 착각해 흐루쇼프의 후임자가 흐루쇼프를 격하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 제22차 공산당 대회에서 스탈린은 여전히 까였다. 이때 나섰던 사람은 바로 게오르기 주코프로, 스탈린의 군부 숙청 관련 기밀문서를 공개하면서 스탈린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참고로 이때 흐루쇼프는 스탈린 숭배를 이어나가는 엔베르 호자도 공개적으로 깠다.

※ 흐루쇼프가 몰락하던 순간인 1964년 10월 전원회의에서는 스탈린 시절에 배운 그대로 흐루쇼프를 향한 당중앙위원회 위원들의 저주와 야유가 쏟아져나와서 이 농담이 현실화되긴 했다. 하지만 흐루쇼프의 후임인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는 흐루쇼프를 모든 공직에선 해임했을지언정 연금과 자동차, 경호를 제공하고 어느 정도 예우했기 때문에 그의 존재가 한동안 소련 매체에서 기록말살당하긴 했어도 흐루쇼프가 스탈린이 격하당한 수준으로 격하당하진 않았다. 하지만 역으로 스탈린의 명예도 브레즈네프 시절에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4.3. 동지는 어디 있었소?

스탈린 사후, 공산당대회에서 니키타 흐루쇼프가 신나게 스탈린의 대숙청을 비판하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가 고함을 쳤다.

"동지는 그 때 어디에 있었소? 죄없는 인민들을 스탈린이 죽일 때 동지는 어디에 쳐박혀 있었냐 이 말이오!"

이 말을 들은 흐루쇼프는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방금 어떤 새끼야! 굴라크에 들어가고 싶나!"

좌중은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그러자 흐루쇼프가 서서히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자, 이제 제가 그때 어디에 쳐박혀 있었는지 잘 아시겠지요?"

※ 사자후 대신 "1분을 줄 테니 나오시오"라고 조용히 말하는 판본도 있다. 결말은 같다.

※ 워낙 잘 알려진 일화라 실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문제의 20차 당대회 연설문 전문에 그런 내용은 없다. 스탈린주의의 서슬이 시퍼렇던 소련 사회에 감히 공산당 제1서기에게 너는 뭐했냐는 식으로 대들 수 있는 간 큰 사람이 있을리가... 다만 흐루쇼프의 스탈린 격하에 반발한 스탈린의 고향 조지아 사람들은 스탈린을 옹호하며 시위를 벌였다가 진압당했다.

※ 사실 흐루쇼프는 대숙청 당시 스탈린에게 먼저 선수를 쳐서 위기에서 벗어났고, 우크라이나에서 대숙청을 담당했다.

프랑스 혁명의 핵심 인물인 에마뉘엘 조제프 시에예스에게 비슷한 일화가 있다. 시에예스는 공포정치 시절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후일 "시에예스 당신은 공포정치 시절에 그걸 안 막고 뭣 하고 있었소?"라는 지적을 받자 웃어 넘겼다고.

4.4. 레닌 묘의 경비가 더 삼엄해진 이유

때는 흐루쇼프가 20차 공산당 대회에서 스탈린을 한창 비판하고, 레닌 영묘에 합장했던 스탈린을 다시 꺼낸 직후였다. 두 명의 시민이 붉은 광장을 걷고 있었다. 한 시민이 물었다.

"스탈린의 유해를 빼낸 다음에 레닌 묘 경비가 한층 더 삼엄해진 것 같은데?"

"경비병들이 간이 침대를 들고 레닌 묘를 서성이는 흐루쇼프를 봤다고 하더라고."

4.5. 확신

소련 어부들이 험악한 캄차카 반도 바다에 나갔다가 조난을 당했다. 구조신호는 타전했지만, 구명정에 탄 어부들은 구조선이 올 것 같지 않아서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러나 무전사만은 구조선이 틀림없이 올 거라고 느긋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SOS를 발신 할 때마다 "우리 당의 제1서기는 악질 중의 악질"이라는 말을 덧붙였던 것이다.

※ 비슷한 이야기로 시대는 러시아 제국으로 바뀌기도 한다. 한 겨울에 빙판을 걷던 사내가 얼음이 깨져 물 속에 빠지자 지나가던 군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무시하는 군인들. 그러자 사내는 기지를 발휘해 "빌어처먹을 짜르 새끼!!"라고 욕하자, 생까던 군인들이 분기탱천해서 사내를 체포하기 위해 그를 손수 물 속에서 꺼내어 준다는 이야기.

※ 자본주의 상황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부부가 조난당했는데 아내는 신용카드를 연체해서 이자가 엄청날 것 같다고 새파랗게 질렸다. 그러자 남편은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든 우리를 찾아올테니 안심하라'라고 아내를 달랜다. 가끔 저작권, 2차 창작 등에 지나치게 민감해서 비난의 대상이 되는 월트 디즈니JASRAC에 관한 개그가 되기도 한다. 조난된 상황에서 SOS신호 대신 미키마우스를 그렸더니 잡으러 온다는 식.

※ 실제 사례 중 이와 비슷한 일도 있었다. 소련 당국에서 사람이 절대 살 수 없을 것 같은 시베리아의 황무지를 비행기로 측량하던 중, 외부와 고립된 미등록 마을이 발견되자 군대를 동원해서 새로 길을 만든 다음 마을 주민 전원을 체포했다.

4.6. 국적

소련의 어느 초등학교 교실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물었다.

"이 세상 최초의 인간은 누구죠?"

"아담하와요."

"그들은 어디에 살았죠?"

"에덴동산이요."

"에덴동산은 어디에 있을까요?"

"물론 우리나라지요. 아담과 하와는 도 없고 도 없으면서, 가진 거라곤 사과 1개뿐이었어요. 그러면서도 그곳을 천국이라고 불렸으니까요."

소련이 북한으로 바뀐 버전도 있다. 다른 건 거의 없지만.
※ 다른 버전에선 미국-소련 정상회담 때 흐루쇼프가 먼저 "아담과 하와는 공산주의자였소. 모든게 평등한 에덴동산이란 낙원에서 살았으니까요."라고 주장한다. 이에 재빨리 대답하지 못한 케네디가 고민 끝에 미국에 있는 추기경[24]에게 연락해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질문하자 추기경이 아담과 하와는 공산주의자가 맞다면서 저렇게 말해준다.

4.7. 키릴 문자 엠(М)

"러시아에서 엠(м)이란 글자를 쓰는 날이 올까?

"아마 없을 걸. 우린 고기(мясо)도 없지, 마가린(магарин)도 없지, 우유(молоко)도 없잖아. 거기에 몰로토프(Молотов)도 없고, 말렌코프(Маленков)도 없어졌어. 그러면 미코얀(Микоян)만 남았는데, 그 양반은 아르메니아 사람이야."

※ 1950년대 스탈린 사후 권력투쟁기에 나왔던 유머이다. 1945년부터 1953년까지는 온 나라가 대조국전쟁 전후복구에 매진하느라 안 그래도 후달리던 경공업은 더욱 천시받았고 물자부족이 극심했던 때였다[25]. 이 때 말렌코프가 경공업을 살리자고 강조하며 당내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나 흐루쇼프에게 숙청당하고[26] 스탈린 다음 가는 2인자였던 외무인민위원 몰로토프도 나가리가 되어버린다. 반면 아나스타스 미코얀[27]은 줄을 잘 서서 소련 장관회의 제 1부의장, 소련 최고회의 의장을 지내는 등 1970년대까지도 고위급 인사로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이사람은 '일리치'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레닌의 본명) 부터 '일리치' (레오니트 '일리치' 브레즈네프) 까지 멀쩡하게 고위직을 하고서도 자연사했다는 평을 듣는 인물이다.

4.8. 흐루쇼프와 케코넨

소련 서기장 흐루쇼프와 핀란드 대통령 케코넨[28]사우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흐루쇼프: 케코넨 동무, 우리 소련과 핀란드는 세상에 둘도 없는 우호국 아닙니까?

케코넨: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서기장 각하.[29]

흐루쇼프: 그럼 그 우호의 표시로 우리 두 나라 사이의 국경을 아예 없애버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동무?

케코넨: 하하하, 서기장 각하. 그렇게 많은 인민들을 다스리는 것은 저에게도 무리입니다.

※ 자꾸 흐루쇼프가 케코넨에게 핀란드를 합병하겠다고 위협했다는 뜻으로 엉뚱하게 해석되지만, 말 그대로 우호의 뜻으로 국경통과 절차를 서유럽에서 그러듯이 간소화하자는 정도의 얘기고 케코넨의 대답은 그렇게 했다간 소련의 모든 사람이 핀란드로 이주할 것이라는 의미다. 여담으로 케코넨은 측근들을 핀란드식 사우나로 불러서 정책을 논의하는 사우나 정치로 유명했다.[30]

4.9. 마술사

"세계에서 가장 창의력 있는 마술사는 누구지?"

"물론 흐루쇼프지. 파종은 카자흐에서 했는데 수확은 캐나다에서 하지 않나!"

※ 야심차게 시작했던 처녀지 개간 사업이 처참하게 망해서 결국 외국에서 곡물을 수입하게 된 것을 비꼬는 농담이다. 그래도 소련은 자존심 굽히고 외국에서 곡물을 수입하여 대약진 운동, 고난의 행군 같은 파멸적인 결과를 부르지는 않았다. 물론 러시아 제국 시절부터 곡물 수출국이었다가 수입국이 되어버린 건 문제지만[31]... 결국 이것은 훗날 소련 붕괴의 원인이 되었는데,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 캐나다를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소련에 대한 농산물 수출을 대폭 감축하거나 금지시킨 것이다.

4.10. 건초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한 미국인이 소련을 방문하던 중, 아주 가난한 노동자와 우연히 말을 나누게 되었다.

신세를 한탄하는 노동자에게 미국인은 이렇게 조언했다.

"저도 사실 예전에는 몹시 빈궁했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은 워싱턴에 있는 백악관으로 가 정문 앞에서 건초를 뜯어먹는 퍼포먼스를 벌였지요. 우연히 대통령의 눈에 띄어서, 왜 그러느냐는 질문을 받자, 음식을 살 돈이 없노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대통령님이 딱해하면서 도움을 좀 주신 덕에 지금은 형편이 피게 되었지요."

그래서 소련 노동자는 모스크바의 크렘린 정문에 가서 건초를 씹기 시작했고, 당시 서기장이던 흐루쇼프의 눈에 띄여 자초지종을 고하기에 이르렀다.

노동자의 하소연을 듣고 난 흐루쇼프는 말했다.

"올해 겨울에는 경제가 더 어려워질 것 같으니 건초는 아끼시구려. 아직은 잔디가 자라고 있지 않소?"

4.11. 41년형의 이유

붉은 광장에서 "흐루쇼프는 바보다! 흐루쇼프는 스탈린 비판 외에 할 줄 아는 게 없다!"라고 외친 한 청년이 41년형을 선고받게 되었다.

국가 원수 모독죄로 1년, 국가 기밀 누설죄로 40년.

전두환 시리즈에도 비슷한 유머가 있다.

※ 흐루쇼프가 영국에 국빈방문하여 총리 관저를 방문했다가 국가 기밀이 더 이상 국가 기밀이 아니게 되어 1년 후 석방되었다는 버전도 있다. 다우닝 가 10번지는 일국의 총리 관저라기엔 도심지의 평범한 가정집처럼 생겼기 때문.

※ 사실 흐루쇼프가 무학이라서 무식쟁이 이미지가 붙었지만, 스탈린 치하에서 살아남는 솜씨나, 권력을 장악하는 솜씨에서 보면 정치적 술수와 계략이 스탈린 이상으로 비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애초에 국가 지도자라는 직책은 멍청하면 결코 오를 수 없다. 그것도 소련 같은 초강대국의 지도자 자리면 더더욱 그렇다.

4.12. 케네디 대신

니키타 흐루쇼프가 질문을 받았다.

"만약 당신이 존 F. 케네디 대통령 대신 저격당했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요?"

흐루쇼프의 대답.

"글쎄요, 잘 모르겠군요. 하지만 오나시스가 결코 니나 흐루쇼바와 결혼하진 못했을 겁니다."

※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인 재클린 케네디는 나중에 그리스의 선박왕 아리스토틀 오나시스와 재혼했다. 니나 페트로브나 흐루쇼바는 흐루쇼프의 아내이다.

4.13. 기술력

니키타 흐루쇼프와 존 F. 케네디는 회담을 가지면서 자국의 기술력을 자랑했다.

"우리 미국은 이미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알약을 개발했습니다."

"우리 소련은 10분만에 사람을 모스크바에서 뉴욕으로 이동시키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신기하군요. 한 번 보여줄 수 있습니까?"

당황한 흐루쇼프는 회의를 소집하여 대책을 연구하였다. 이에 누군가가 방법을 생각해냈다.

"미국이 개발했다는 약으로 스탈린 동지를 살려내면 됩니다. 그러면 서기장 동지께서 5분만에 뉴욕으로 이동하실 테니까요"

4.14. 돼지와 흐루쇼프

흐루쇼프(Хрущёв) 제1서기가 협동농장을 찾았다. 그곳에서는 돼지들이 "흐루 흐루"(хру хру)[32]하며 울고 있었다.

그러자 흐루쇼프가 말하길, "돼지들이 발음을 똑바로 할 수 있도록 교육을 잘 시키시오."

※ 실제로 흐루쇼프가 농담조로 한 말이다. 여러 정황에 의하면, 흐루쇼프는 농담을 상당히 좋아했지만 농담을 하는 실력은 그닥 뛰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아이고 흐부장님 또 시작이시네

4.15. 전람회의 그림

어느 날 흐루쇼프가 보좌관과 경호원을 대동하고 한 현대미술 전람회를 관람하러 갔다.

"노란 점이 온통 박힌 이 초록색 원은 대체 뭐요?"

"곡물 2백만 톤 증산 계획 달성을 위해 열렬히 투쟁하는 우리 영웅적 농민들을 나타낸 그림입니다, 흐루쇼프 동지."

"아하... 그럼 저기 빨간색 줄이 그어진 검은 삼각형은?"

"공장에서 노동하는 우리 영웅적 산업역군들을 나타낸 그림입니다, 흐루쇼프 동지."

"그렇군. 그럼 여기 있는 이 귀 달린 돼지는?"

"저... 흐루쇼프 동지, 그건 그림이 아니라 거울입니다."

4.16. 흐루쇼프와 우주선의 공통점

"너 보스호드(소련이 내놓은 세계 최초의 다인승 우주선)와 흐루쇼프의 공통점을 알아?"

"소련 과학기술의 결정체와 그 대머리 얼간이가 대체 무슨 공통점이 있다고 그래?"

"딱 하나 있지. 1964년에 날아갔다는 거 말야."

※ 실제로 흐루쇼프는 1964년에 숙청당했다.

4.17. 흐루쇼프가 침을 뱉는 이유

흐루쇼프는 여느 때처럼 나랏일을 처리하면서 크렘린의 복도를 따라 걸었다. 그런데 흐루쇼프가 소련 사회의 여러 문제점을 설명하면서 자신의 불쾌감을 표출하기 위해 자꾸 가래침을 카펫에 뱉는 것이 아닌가? 보다못한 흐루쇼프의 보좌관 레오니트 예프레모프(Leonid N. Yefremov)가 한마디를 하였다.

"서기장 동지! 제발 점잖게 행동하십시오! 이 복도는 위대한 레닌 동지도 걸으셨던 곳입니다!"

하지만 흐루쇼프는 아랑곳하지 않고 을러댔다.

"입 닥쳐! 나는 내 마음대로 침을 뱉을 수 있어. 영국 여왕이 허락했단 말이야!"

"영국 여왕이요?"

영문을 모르고 당황한 예프레모프에게 흐루쇼프가 자랑스럽게 대꾸했다.

"그래! 내가 저번에 영국에 갔을때 버킹엄 궁전 카펫에도 침을 뱉어대니까 그 여자가 그러더군. '흐루쇼프 씨, 크렘린에서라면 마음대로 침을 뱉으셔도 상관없지만 여기서는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 흐루쇼프는 1956년 4월, 불가닌과 함께 영국을 방문하여 엘리자베스 2세를 만났다. 실제 회담에서 흐루쇼프는 비록 여왕이란 직위가 자신에게 익숙하진 않지만 여왕에게 대단히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하며 엘리자베스 2세를 소련으로 초청했다. [33]

4.18. 저우언라이를 앞세운 이유

스탈린 사후 국제혁명의 노선 문제와 당 지도자에 대한 개인숭배 문제의 입장 차이로 중국 공산당과 소련 공산당 사이에서 분쟁이 벌어졌을 때 이 갈등을 봉합하고 형제 사회주의 국가의 연대와 우애를 유지하기 위한 회담이 모스크바에서 열렸다. 이때 중국대표로 회담에 참여한 사람은 저우언라이였다.

한참 동안 격렬한 논쟁을 벌어졌지만 양국의 의견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고 서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회담이 끝난 후,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서 흐루쇼프는 손님인 저우언라이에게 행렬의 선두 자리를 양보했다. 그러자 저우언라이가 당황하며 말했다.

"아니 국제혁명의 영도자인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두고 어떻게 내가 선두에 서겠습니까?"

그러자 흐루쇼프 왈

"당신을 내 뒤에 두면 그 지팡이로 내 머리를 후려칠까봐 무섭소."

※ 실화이다. 이후 중소결렬로 이어진다.

4.19. 1964년의 작황

문: 1964년 작황은 어땠나?
답: 평균이다. 1963년보다는 형편없었고, 1965년보다는 훨씬 나았다.

4.20. 안나 카레니나

어느 날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서기 니키타 흐루쇼프가 소련 국방과학연구소를 방문하였다. 신무기개발의 최일선을 담당하고 있는 젊은 과학자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흐루쇼프는 소련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과학자들의 인문학적 소양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제1서기 자신이 모스크바 스탈린공대를 졸업한 이과 출신인데다 평소 자연과학도들도 인문사회과학에 대해 일정한 교양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지론 때문이었다.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한 젊은 과학자에게 흐루쇼프가 질문했다.

"연구원 동무는 <안나 카레니나>를 누가 썼는지 알고 있지?"

톨스토이에 대해 몇 가지 물어보기 위해 이렇게 말을 꺼낸 것이다.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한 젊은 과학자는 난처한 얼굴로 서기장 얼굴을 쳐다볼 뿐 입을 열지 못했다. 한참 후 그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만 저는 알지 못합니다. 제1서기 동지."

당황하기로는 흐루쇼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재차 물었다.

"<안나 카레니나>를 누가 썼는지 정말 모른단 말인가?"

이미 흐루쇼프의 목소리엔 힘이 들어가 있었다. 젊은 과학자가 답을 하는데 아까보다 더 긴 시간이 흘렀다. 골똘히 생각하던 끝에 그가 다시 말했다.

"정말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결코 쓰지 않았습니다. 정말입니다."

흐루쇼프 서기장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크렘린으로 돌아오자마자 국가보안위원회(KGB) 책임자를 호출하여 질책했다.

"<안나 카레니나>를 누가 썼냐고 물었는데 자기가 안 썼다고 대답하다니 이게 말이 되나? 도대체 KGB가 어떻게 활동하길래 이런 답변이 다 나오나?"

※ 흐루쇼프는 경직된 소련을 유연화하기 위해서 비밀경찰의 수와 권한을 줄이고 비밀경찰 업무도 체포에서 감시로 바꾸는 등 비밀경찰의 힘을 약화시켰다.

※ 무명의 작품도 아닌, 소련 시절에도 고평가받고 독서를 적극 권장한 레프 톨스토이의 작품에 대해서조차도 저런 반응을 보일 정도로 경직된 시절이었다는 점도 포인트. 참고로 안나 카레니나는 서방권 작가들이 만장일치로 뽑은 최고의 소설 중 하나이며, 소련의 건국자 블라디미르 레닌도 닳도록 읽으며 극찬한 책으로 유명하다.

※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지구본이 기울어진 이유를 묻는 비슷한 판본도 있다.

5.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 체르넨코 시대 (1964~1985)

브레즈네프 시대의 유머는 당대의 정치상황을 까는 것도 많지만, 브레즈네프의 개인 처신(훈장덕후, 무식함 등...)을 풍자하는 것이 주가되는 경향이 있다.

5.1. 수술대에 올라선 브레즈네프

어느 날 브레즈네프는 크렘린의 주치의를 찾아가서 수술을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그 내용이 범상치 않았다.

"의사 동무, 오늘은 가슴 확대 수술을 해주시오."

주치의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브레즈네프 동지, 이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성전환 수술이라도 바라시는 것인가요?"

"새 훈장이 나왔는데 훈장을 달 자리가 없어서 그렇소!"
그럼 그냥 어깨에 달어 이미 어깨에는 스스로 소장에서 원수로 4단계나 자가진급시켜서 원수 계급장이 달려있다. 그럼 등이나 배에 달자

브레즈네프는 자뻑이 심해서 온갖 훈장을 자신에게 달아주는 걸로 유명했다. 최상급 훈장인 소비에트 연방 영웅을 4번씩이나 자신에게 수여한 것이 바로 그 예시이다.

또한 앞의 수술 경위 부분에선 "브레즈네프 동지는 수술 중입니다"라고 하자 "또 심장 수술이냐"는 버전도 있다. 심장이 안 좋아 페이스메이커를 달고 있었기 때문. 참고로 소련에서 본격적인 성전환 수술이 1970년에 시행되기 시작, 입상과정이 매스미디어를 통해 보도되어 성전환 수술이 유명해지면서 생긴 유머인 듯 하다.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콜드 워 싱글 캠페인 중 "절박한 조치" 에서도 이 농담이 나왔다.

5.2. 만약 악어가 브레즈네프를 먹는다면?

Tv에서 브레즈노프의 자뻑이 자주 나오자 화가 난 유대인이 이렇게 말했다.
"제기랄! 저 브레즈네프 낯짝 좀 그만 보고 싶군. 악어한테나 잡아먹혀라!"
그러자 옆에 있던 친구가 달래주며 하는 말을 보라.
"이봐 라비노비치[34], 진정 좀 하고 악어한테 불쌍한 소리 하지 말라고. 악어가 브레즈네프를 잡아먹으면 2주 동안 똥으로 훈장을 싸지 않겠나?"

※ 전술했듯이, 브레즈네프의 자뻑 증세는 하도 심해서 자기 자신에게 수여한 훈장이 200개가 넘으며, 유리 가가린이나 바실리 자이체프도 단 1회 수상한 소비에트연방영웅 칭호를 4번이나 자기에게 수여했다. 참고로 이 횟수는 게오르기 주코프와 더불어 가장 많은 횟수이다.

5.3. 교통수단

미국인과 소련인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출근할 땐 버스를, 파티에 갈 땐 캐딜락 엘도라도를, 유럽에 갈 땐 비행기를 타고 갑니다. 소련에선 어때요?"

소련인이 답했다.

"우리도 비슷합니다. 출근할 땐 지하철을, 파티에 갈 땐 가즈 볼가를, 유럽에 갈 땐 전차 타고 가죠."

1956년 헝가리 혁명, 프라하의 봄, 1953년 동독 봉기 당시 시위대를 소련군과 WTO군으로 무력 진압한 것을 빗댄 것이다.

5.4. 무적의 애꾸눈

브레즈네프가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코시긴(Алексе́й Никола́евич Косы́гин) 총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그 장군 이름이 뭐지요? 그 코끼리를 타고 알프스산맥을 넘어 로마를 쳐부순 애꾸눈 장군 말이오."

"그건 한니발 장군입니다."

"그 체코의 장군 이름은요? 애꾸눈으로도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다는 장군 말이오."

"지슈카 장군입니다."

"가만있자. 그 사람은 누굽니까? 우리 러시아 장군 말이오. 조국전쟁나폴레옹 군대를 물리친 애꾸눈 장군 있잖소?"

"그건 쿠투조프 장군입니다."

"또 프랑스 함대를 격파한 영국 제독은요? 그도 역시 애꾸였는데."

"넬슨 제독입니다."

"하나만 더 가르쳐 주시오. 중동 전쟁에서 아랍 연합군을 격퇴한 이스라엘의 애꾸눈 장군은요?"

"모세 다얀 장군입니다. 그런데 브레즈네프 동지.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단어 퀴즈라도 풀고 계신 겁니까?"

"아니오. 코시긴 동지. 조금 전에 국방장관이 왔다 갔는데, 우리도 그 자를 애꾸눈으로 만들어 버리는 게 어떨까 싶어서요."

※ 여기서 "그 자"란 드미트리 우스티노프를 말한다. 1976년부터 1984년까지 국방장관이었으며, 1978년과 1983년 대한항공 여객기가 소련 전투기에 격추된 사건도 그의 재임 기간에 있었던 일이다. 1970년대 말 아프가니스탄 개입에도 관여했다. 사실 아프간의 삽질은 최종 결정을 한 브레즈네프 책임이 더 크지만. 드미트리 우스티노프는 핵무기 전력 강화와 첨단 무기로 무장된 소수의 기동부대로 적의 요충지를 공략하여 적을 무너트리는 방식을 선호했고 이는 지금의 미군의 전쟁 방식과 같다. 그러나 유럽같이 중앙집권화돼있고 사회 인프라가 잘되고 정규군을 상대할 때는 이 방식이 통했지만 부족연맹체 국가이고 험지인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는 게릴라전에서는 잘 통하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을 완전히 점령하려면 총력전으로 2백만 넘는 전투병과 그 못지않은 보급부대를 한번에 투입해야 했으나 이것이 당시 소련에게는 큰 모험이었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로 소수의 병력으로 탈레반을 무너트린 미군도 게릴라전에서는 큰 힘을 발휘 못하고 아프간에 패한다.

5.5. 장수의 비결

브레즈네프: 산악 지대에 사는 사람들이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사는 이유가 뭐요?

코시긴: 매일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단순하지만 균형잡힌 식사를 하며, 그리고 KGB 요원들이 산을 탈 줄 모르기 때문일 겁니다.

5.6. 중소관계 정상화

중소관계 정상화를 위해 브레즈네프와 마오쩌둥이 만나 협상을 했다. 협상은 성공리에 끝났고, 마오쩌둥은 브레즈네프가 얼마나 진심인지를 떠보기 위해서 요청을 하나 했다.

마오쩌둥: 자동차 1만대를 지원해주시오.

브레즈네프는 비서에게 관련 부서에 전화를 해보라고 하더니 몇분만에 고개를 끄덕였다.

브레즈네프: 문제 없소. 지원하겠소.

마오쩌둥은 브레즈네프가 매우 선뜻 나서는 것을 보고 놀라서 두번째 요청을 했다.

마오쩌둥: 자전거도 10만대가 필요하오.

이번에는 브레즈네프는 관련 부서의 보고를 받은 후에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브레즈네프: 좋아, 지원하지요.

브레즈네프가 공산품인 자동차와 자전거 모두 선뜻 내주는 것을 보고 정말로 중국과 관계개선을 하고 싶어 한다고 확신한 마오쩌둥은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쉬운 품목을 제시했다.

마오쩌둥: 쌀도 10만 가마니를 보내주시오.

하지만 브레즈네프는 고개를 저으면서 단호히 거부했다.

브레즈네프: 유감이지만 그건 안 되겠소.

마오쩌둥이 당황해서 되물었다.

마오쩌둥: 자동차와 자전거도 줄 수 있으면서 왜 쌀은 못준다는거요?

이에 브레즈네프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답했다.

브레즈네프: 동독에서는 쌀 농사를 짓지 않아요.

※ 하필 동독인 이유는 동독이 소련의 위성국 중에서 가장 강한 영향력을 받았고, 가장 공업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즉 동독제 공산품을 빼다가(=삥뜯어서) 중국에 원조한다는 뜻...그렇지만 중소결렬 이후 소련과 그 동맹국들은 중국보다 일본에 더 각별해졌다는게 함정.

5.7. 암살 미수

1969년 1월, 모스크바의 크렘린 성벽 인근에서 브레즈네프에 대한 암살 미수 사건[35]이 일어났다. 범인 빅토르 일리닌은 현장에서 즉시 체포되어 심문을 받았다.

"그나저나 당신이 군인이었다니, 다행히 암살에 실패한 게 더 신기할 따름이군."

"내가 권총을 빼들자마자 옆에 있던 사람들이 덤벼들었소."

"과연 인민들이 우리 지도자의 생명을 구했구먼!"

"그게 아니고, 모두 자기가 쏘겠다며 권총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바람에 실패한 거란 말이오..."

5.8. 브레즈네프의 자동차

브레즈네프는 권력을 쥔 후 고급 자동차를 비롯한 서방의 사치품을 수집하는 등 사치스러운 생활을 보냈다.

어느 날 브레즈네프의 다차를 방문하여 아들의 대단한 수집품들을 본 그의 어머니는 감탄은 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어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료냐(브레즈네프의 이름인 레오니트의 애칭), 이건 멋지긴 하다만, 볼셰비키가 되돌아오면 어쩌려고 그러니?"


※ 이 시기 노멘클라투라는 점차 공산주의의 전위가 아닌 기득권세력으로 변질되어 가던 시기였다.

5.9. 태양 탐사

미국이 사람을 달에 착륙시키는 데 성공하자, 충격에 빠진 소련 정치국은 어떻게 하면 미 제국주의자들을 능가하는 성과를 낼 것인가를 놓고 회의를 벌렸다.

기나긴 토론 끝에 내려진 결론은 바로 "사람을 태양에 보낸다"였다.

브레즈네프가 정치국을 대표하여 소련 우주인들에게 당의 계획을 설명하자, 아연실색한 우주인들은 비명을 질렀다.

"태양에 착륙은커녕 접근만 해도 우리는 모두 타죽습니다, 동지!"

그러자 브레즈네프 왈,

"여러분, 염려 마시오. 정치국에 바보들만 있는 줄 아나! 우리는 여러분을 밤에 태양에 보내기로 했다네!"

브레즈네프만 빼고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당연하게도 애초에 "태양 착륙"은 불가능하다. 온도를 논하기 이전에 항성인 태양은 가스로 이루어져 있어 '바닥'이 없기 때문.
199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외국어 영역에서 동물 버전으로 약간 수정되어 출제되었다. 여기서 브레즈네프 역할을 한 동물은 돼지.

5.10. 지옥으로 가는 전화

리처드 닉슨이 소련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회담을 마친 후, 브레즈네프가 닉슨에게 소비에트 연방의 첨단 기술을 보여주겠다며 자신만만한 얼굴로 공중전화 한 통을 가져오게 하였다.

궁금해하는 닉슨에게, 브레즈네프는 "이건 지옥과도 통화할 수 있는 전화기라오!"라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말뿐만이 아니었다. 브레즈네프는 실제로 지옥에 전화를 걸어 닉슨이 사탄과 통화를 해볼 수 있게까지 해 주었다. 심지어 통화료는 불과 27코페이카[36].

감탄하고 돌아온 닉슨은 백악관에 돌아오자마자 통신국장을 불러 야단을 쳤다. 소련이 그런 첨단 기술을 개발할 때 우리는 뭘 했느냐며.

그러자 통신국장이 억울해하면서 말하기를, 이미 그런 전화는 소련보다도 먼저 개발을 마친 상태라고 닉슨에게 설명하였다.

닉슨이 반신반의하자 통신국장은 즉시 전화기를 대령해서 지옥과의 전화를 연결, 닉슨이 통화를 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런데 통화를 마친 닉슨에게, 통신국장이 "요금은 2만 달러입니다."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닉슨이 놀라서 "소련에서는 한 통에 27코페이카밖에 안 됐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라고 묻자, 통신국장이 말하기를,

"거기서는 국내 전화였잖습니까, 각하."

그럼 브레즈네프가 사탄인가?

5.11. 브레즈네프 우표

브레즈네프 서기장 취임 10주년을 맞이하여 소련에서 브레즈네프 얼굴이 그려진 우표를 발매했다. 한데 이 우표는 판매량은 매우 높았지만 회수율이 그렇게 높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우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우표의 뒷면에 침을 발라야 하는데 공산당원들은 우표의 뒷면을 너무 핥은 나머지 접착제가 붙지를 않게 되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우표의 앞면을 핥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5.12. 부활절

부활절 날, 당사로 출근한 브레즈네프에게 누군가가 지나가며 말을 건넸다.

"레오니트 일리치[37], 즐거운 부활절입니다!"

"고맙소."

얼마 후, 또다른 누군가가 브레즈네프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레오니트 일리치, 즐거운 부활절입니다!"

브레즈네프의 대답.

"고맙소. 하지만 그 일은 이미 보고를 받았소."

※ 브레즈네프의 우둔함과, 그가 보고를 받는 것을 너무나 좋아했던 것을 조롱하는 유머라나.

※ 원래 정교회권에서는 부활절 인사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라고 말하고 답으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라고 인사하는 전통이 있다. 러시아도 마찬가지이다. 브레즈네프는 진짜로 예수가 부활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해볼 수 있다.

그보다 공산주의 소련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즐거운 부활절' 이라고 하는게 개그같다.[38]

5.13. 연설문 1

대중 연설을 마치고 나서, 브레즈네프는 연설문을 써 준 대필 작가를 불러 질책했다.

"나는 분명히 15분짜리 연설문을 써 달라고 했는데, 글을 왜 이리 길게 써 놓았나? 45분이나 읽느라 고생했단 말일세!"

그러자 깜짝 놀란 대필작가가 확인을 하고 난처한 얼굴로 한 말.

"예? 그게 무슨... 잠깐 확인을 좀 해 보겠습니다... 저기... 브레즈네프 동지, 아무래도 종이를 세 부 복사해서 들고 가신 것 같은데요..."
※ 똑같은 말을 세 번 반복해도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그가 무식했다는 뜻이다.

5.14. 연설문 2

어느 날, 브레즈네프가 집무실에서 일하던 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브레즈네프는 일어나서 문으로 다가가, 안경을 코에 걸치고는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잠시 뚫어져라 보더니,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

"밖에 누구요?"

※ '밖에 누구요'라는 말조차도 대본을 보지 않고는 말할 수 없을 만큼 무식하다는 뜻이다.

5.15. 연설문 3

인도의 수상 인디라 간디가 소련을 국빈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공항에 간디 여사를 영접하러 나간 브레즈네프는, 여사가 비행기에서 내리자 환영 연설을 시작했다.

"오늘 우리는 친애하는 대처 수상의 친선 방문에 즈음하여..."

당황한 보좌관이 브레즈네프에게 속삭였다.

"브레즈네프 동지, 대처 수상이 아니라 간디 수상입니다."

브레즈네프는 미간을 잠시 찡그리더니 연설을 계속했다.

"오늘 우리는 친애하는 대처 수상의 친선 방문에 즈음하여..."

"아이고, 레오니트 일리치 동지, 대처가 아니라 간디라니까요!"

"조용히 하시오, 나도 간디인 줄 알고 있으니까. 그치만 여기 종이에 뭐라고 쓰여 있소? '대처'라고 쓰여 있잖소!"

※ 종이에 쓰인 오탈자라고 해도[39] 이를 정정할 생각조차 없는 고집을 보여주고 있다. 브레즈네프의 보좌관이 해당 오탈자를 정정한 새 연설문으로 바꿔야만 겨우 제대로 연설할 정도로 얼마나 고집이 센지 잘 알 수 있다.[40]

5.16. 치매끼

어느 자리에서, 브레즈네프가 툴툴거리며 동료 정치국원들에 대한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요즘 정치국원들은 너무 늙었는지 다들 치매끼가 좀 있는 것 같소.

가령 펠셰 동무[41]는 자기가 누군지도 잊고 다닌단 말이야. 내가 "반갑소, 펠셰 동지!"라고 하니까, 나보고 "반갑습니다, 레오니트 일리치! 그런데 전 펠셰가 아닙니다..."라고 말하지 뭐요?

그리고 그로미코 동지는 마치 어린애 같이 군다오.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코를 훌쩍이며 말한다) 내가 내 자리에 놔두었던 고무 당나귀 인형[42]을 아무래도 그자가 가져간 것 같소.

심지어 얼마 전 그레치코 동지의 장례식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올 때 나만 빼고 아무도 춤을 추지 않더라 이 말이오. 그나저나 그레치코 자리는 왜 아직도 비어 있는 거지?"

※ 진짜로 치매끼가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다시 한 번 읽어보자. 단숨에 알아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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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펠셰(?)가 자기가 누군지도 잊고 다닌다고 했지만, 사실은 브레즈네프야말로 엉뚱한 사람을 펠셰라고 착각했고 심지어 그 사람이 자신이 펠셰가 아니라고 말을 해줬는데도 다른 사람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2. 그로미코가 어린애처럼 군다고 했지만, 오히려 브레즈네프가 애처럼 징징대고 장난감이나 갖고 놀고 있었다.

3. 본인이 그레치코의 장례식에 갔다고 말해놓고 바로 그레치코 자리는 왜 비어 있는 거냐며 자기가 방금 한 말조차도 잊어버렸다.(...) 무엇보다도, 호상, 그것도 특정 문화권에서의 것을 제외하면 장례식에서 음악이 나온다는 이유로 어떤 미치광이가 거기서 춤을 추겠는가?

5.17. 구두

"브레즈네프 동지, 실례하지만 구두를 짝짝이로 신으신 것 같습니다만은. 한 쪽은 검은색이고 다른 한 쪽은 갈색입니다."

"알고 있소."

"갈아 신지 않으셔도 괜찮습니까?"

"웬걸, 갈아 신으려고는 했지! 그런데 신발장에 가 보니 거기에도 구두라고는 검은색 한 개, 갈색 한 개인 짝짝이밖에 없지 뭐요?"

※ 이런 경우 보통은 그냥 한쪽 검은색 구두나 한쪽 갈색 구두를 벗고 다른 검은색 구두나 갈색 구두를 신으면 되는데 브레즈네프는 그 생각도 못 하는 멍청이라는 의미다.

5.18. 담뱃갑

레이건, 미테랑, 브레즈네프가 정상회담 중 휴식시간에 잠시 담배를 한 대 태우고 오기로 했다.

세 정상은 각자 개인 담뱃갑을 꺼내들었는데, 흥미롭게도 각각 서로 다른 문구가 한 문장씩 새겨져 있었다.

레이건의 담뱃갑에 새겨진 문구는 <그리운 벗 론에게, 할리우드 친구들이>였다.[43]

미테랑의 담뱃갑에 새겨진 문구는 <사랑하는 프랑수아에게, 사랑하는 아내가>였다.

브레즈네프의 담뱃갑은 순금으로 만들어지고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아주 고급스러운 것이었는데, 거기에 쓰인 문구는 이랬다.

<친애하는 푸시킨에게, 뱌젬스키 공작이>

※ '뱌젬스키 공작'은 표트르 안드레예비치 뱌젬스키(Пётр Андреевич Вяземский, Pyotr Andreyevich Vyazemsky) 공작을 지칭하는데 러시아의 귀족 출신 시인으로 생전에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절친한 친구였으며 본인이 남긴 작품들도 많다. 즉, 귀한 문화재급 물건을 브레즈네프가 자기 멋대로 쓰고 있다는 의미.

5.19. 이안과(耳眼科)

1980년대 초, 소련의 한 도시의 종합병원.

한 남자가 접수대에서 간호사에게 자신은 꼭 이안과(耳眼科) 의사를 봐야겠노라고 고집을 피우고 있었다.

간호사는, 이비인후과안과 의사들이 있을 뿐 이안과 의사 같은 것은 없으며, 그가 정 원한다면 두 의사로부터 동시에 검진을 받을 수 있게는 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간호사는 일단 문제가 대체 무엇인지부터 설명해달라고 남자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남자가 말하기를,

"내가 듣는 것보는 것이 도저히 일치하지를 않으니, 귀와 눈 둘 중 한쪽에 큰 이상이 생긴 게 아니겠소?"

5.20. 간첩

1980년대 어느 날. 당 대회에 침투한 미국 간첩을 신고, 체포한 열성당원이 브레즈네프로부터 훈장을 받게 되었다. 브레즈네프가 물었다.

"동지, 동지는 어떻게 하여 제국주의 간첩을 잡을 수 있었소?"

열성당원 왈,

"옙, 레닌 동지께서 말씀하시기를 "자본주의 스파이들은 사회주의 모국 소련을 한 시도 눈을 떼지 않고 호시탐탐 감시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동지가 연설할 동안 코를 골며 퍼질러 자고 있을 때, 유일하게 그 작자만이 눈을 빛내며 서기장 동지의 연설을 열심히 받아적고 있었습니다."

5.21. 노인들 1

이빨이 32개에 발이 4개인 것은? 악어.

이빨이 4개에 발이 32개인 것은?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 사람은 16명이나 있는데(=다리 32개), 그 사람들의 멀쩡한 이빨을 다 합쳐봐야 4개밖에 안 될 정도로 정치국원들의 평균 연령이 너무 높다는 것.

브레즈네프 시기, 흐루쇼프를 축출한 반정 세력들의 집단지도체제가 지속되면서 18년간 정치국의 변동은 이전에 비해서 놀라울 정도로 안정되었는데, 그게 정도가 지나쳐서 정체 상태에 머물렀고, 브레즈네프 말년에 가면 50대의 고르바초프가 영입되기 이전에는 정치국원들의 평균 연령이 70세를 돌파하여 치매, 당뇨, 폐병, 심장병 등 각종 중병에 시달리는 영감들이 거의 운신도 못하고 골골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소련의 주요 국정은 영감들 밑의 실무 관료들이 사실상 알아서 처리했고 정치국 회의에서는 정치국원들에게 적절한 휴가와 재택근무를 보장하는 문제, 정치국원들을 위해 붉은 광장에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는 문제들(...) 따위가 계속해서 논의되었다. 결국 브레즈네프가 서기장으로 마지막으로 재선된 26차 당대회 직후에 수슬로프, 브레즈네프, 키셀레프, 펠셰, 라시도프, 안드로포프, 우스티노프, 체르넨코가 연달아서 노환으로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여담으로 사실 인간의 영구치도 사랑니를 포함하면 총 32개다. 오히려 악어의 이빨 갯수는 종마다 다르지만 최소 80개는 넘긴다.

5.22. 노인들 2

문: 차르 시대의 황위 계승 방식과, 소비에트 연방의 서기장직 계승 방식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답: 차르 시대에는 젊은이가 노인의 뒤를 이었다. 그러나 소비에트 연방에서는 노인이 노인의 뒤를 잇는다.
※ 실제로 1980년대 무렵 소련 정치국원들의 평균 연령은 70대에 달했을 정도로 고령화가 극심했다. 유리 안드로포프[44]콘스탄틴 체르넨코[45]가 집권한 지 1년 만에 죽는 등 이 짓이 두 번이나 계속되자 정치국에서는 결국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46][47]를 후임자로 선출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5.23. 폴란드에 온 브레즈네프

브레즈네프의 폴란드 방문을 앞두고, 폴란드 정부는 "브레즈네프 동지가 폴란드에 오다"라는 제목의 유화를 선물하기로 하였다.

하여 유명한 화가를 찾아 그렸는데, 웬 남녀가 침대 위에서 알몸으로 뒹굴고 있고, 창문 밖으로는 크렘린 궁전이 보이는 그림을 가져온 게 아닌가.

화가 난 폴란드 정부 요원이 문책하였다.

"이 여자는 누군가?"

"브레즈네프 동지의 부인입니다."

"이 남자는?"

"브레즈네프 동지의 비서입니다."

"이런 법이 어디 있나! 그렇다면 브레즈네프 동지는 어디에 있는가?"

"분부하신 대로 브레즈네프 동지는 폴란드에 와 있습니다."
※ 브레즈네프는 레닌, 부인은 나데즈다 크룹스카야(레닌의 아내), 비서는 트로츠키, 그리고 레닌이 있던 장소는 폴란드가 아니라 망명지인 스위스 취리히나 볼셰비키 당대회가 열렸던 핀란드인 판본도 있다.

5.24. 푸시킨

소련 정부에서는 러시아의 위대한 시인 푸시킨을 추모하는 기념 문예 공모전을 개최하였다.

3등에게는 브레즈네프의 저작을 읽는 푸시킨을 나타낸 모양의 트로피가 수여될 예정이였다.

2등에게는 푸시킨의 저작을 읽는 브레즈네프를 나타낸 모양의 트로피가 수여될 예정이였다.

그리고 대망의 1등에게는 브레즈네프의 저작을 읽는 브레즈네프를 나타낸 모양의 트로피가 수여될 예정이였다.

참고로 브레즈네프는 빈말로도 문학성이 훌륭하다 할 수 없는 회고록을 재임 기간에 발표했고, 이 조악한 회고록은 레닌상 문학 부문을 수상했다.

5.25. 브레즈네프와 손자의 대화

브레즈네프가 손자와 함께 모스크바 크렘린 앞의 레닌 묘를 참배했다. 손자가 물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도 돌아가시면 여기서 사시게 되나요?"

"그럼, 물론이지. 여기서 살 게야."

그러자 누워 있던 레닌이 벌떡 일어나서 말했다.

"잠깐! 여기가 무슨 기숙사라도 되는 줄 알아?!"

※ 실제로 스탈린이 죽고 나서 레닌 묘에 스탈린을 합장하기도 했었다. 물론 격하운동이 일어나고 다시 빼냈지만.

5.26. 올림픽

1980 모스크바 올림픽에서 소련 공산당 총서기 레오니드 브레즈네프가 단상에 올라 연설을 시작했다.

"O!"

박수가 쏟아진다.

"O!!"

더 큰 박수가 쏟아진다.

"O!!!"

더, 더 큰 박수가 쏟아진다.

"O!!!!"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O!!!!!"

사람들이 일제히 기립박수를 친다.

브레즈네프의 측근이 단상으로 달려와 그의 귀에 속삭였다.

"서기장 동지, 저건 연설 대본이 아닙니다. 올림픽 오륜기라구요!"

올림픽 오륜기 그림을 연설 대본으로 착각했다. 오륜기 그림이 둥근 원 5개를 W 형태로 겹쳐붙인 모양인데 이걸 O가 5개나 있는 연설문으로 착각하고 그대로 읽어버린 것이다.[48] 브레즈네프의 아둔함을 제대로 풍자한 유머. 그리고 지도자가 무슨 소리를 지껄이건간에 일어서서 박수를 쳐야 했던 소련 사회의 꽉막힌 분위기 역시 유머 포인트다.

5.27. 브레즈네프와 황제의 대화

죽어서 저승에 간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니콜라이 2세를 만났다.

"러시아는 아직도 강대국인가?"

"강대국이다마다요."

"군대는 여전히 강력하고?"

"물론입니다."

"정치범들은 아직도 시베리아로 보내고 있겠지?"

"옛날과 다름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아직도 보드카를 마시고 있을거고?"

"그렇습니다."

"보드카의 알코올 도수는 아직도 38%인가?"

"아니오. 지금은 40%로 올랐습니다."

그 말을 들은 니콜라이 2세는 이렇게 말했다.

"... 그렇다면 말인데... 고작 그 2% 때문에 혁명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 실제 보드카의 도수는 러시아 제국 사람이었던 멘델레예프가 40%로 규정한 것이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정확한 유머는 아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2%'는 당시 러시아 제국의 인구에서 로마노프 왕조 및 소수의 자본가와 귀족, 지주, 부농들을 합친 비율이다.
※ 출처는 리더스다이제스트 1988년 11월호로, 원문에는 니콜라이의 영어명인 '니콜라스(Nicolas)' 황제라고 되어 있었다. 러시아 제국이나 소련이나 도긴개긴인 현실을 비꼬는 유머다.
※ 한국에서는 이승만박정희로 바뀌기도 한다. 이때 보드카는 막걸리나 소주 도수이며 거꾸로 알코올 도수가 내려갔다는 판본도 있다. 박정희 정부의 막걸리 제조 금지 조치를 비꼬는 것.

5.28. 해외 순방

문) 브레즈네프는 재임 중 간혹 해외로 순방을 나가곤 했는데, 그 후임자 안드로포프는 그러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답) 브레즈네프는 배터리만 있으면 작동했지만, 안드로포프는 콘센트가 필요했기 때문.

※ 말년의 브레즈네프는 페이스메이커를, 안드로포프는 투석 장치를 달고 다닌 점을 꼬집는 유머. 물론 안드로포프도 헝가리 대사를 지낸 적도 있고 좀 더 쌩쌩했을 때는 외국을 많이 나갔다.

5.29. 브레즈네프와 허수아비

어느날 체르넨코가 브레즈네프에게 보고를 올렸다.

"서기장 동지, 인민들은 서기장 동지께서 편찮으셔서 여론을 진정시키기 위해 서기장 동지의 허수아비가 차를 대신 타고 다닌다고 합니다.

그러자 브레즈네프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 그런 거짓말이 어딨나? 난 한번도 내 차에 허수아비를 태운 적이 없어! 내 차에는 늘 내가 타고 다닌다고!"

※ 말년에 노쇠해서 맛이 간 브레즈네프를 희화화하는 동시에 브레즈네프가 농담도 못알아듣는 아둔한 영감이 됐다고 비꼬는 농담이다.

6. 고르바초프 시대 (1985~1991)

6.1. 서기장이 된 고르바초프

체르넨코가 죽은 후 고르바초프는 정치국의 합의에 따라 서기장에 선출되었다. 첫 출근을 한 고르바초프는 책상 위에 앉아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세상에, 내가 그렇게 아픈 줄 나도 몰랐군."
서기장 세 사람이 연속으로 병들어 죽은 것에 대한 풍자. 이럴 만도 한 것이 브레즈네프 이후부터 정권 교체가 안정되었지만 이로 인해 정치국내 의원들의 평균연령이 거의 60대 후반대였기에 당시 정치국 서기장에 취임한 안드로포프는 1년 3개월 재임 중 사망, 체르넨코는 362일, 1년 재임을 3일 앞두고 사망했다. 결국 정치국에선 그나마 가장 젊은이던 고르바초프를 선출켜야 했다고 한다.

정작 고르바초프는 서기장이 되고 37년이나 더 살았다. 소련이 얼마 못 갔을 뿐

6.2. 국방장관법무장관의 필요성

룩셈부르크를 국빈 방문한 고르바초프를 환영하는 만찬에서 총리가 각료들을 소개하던 중, 국방장관의 차례가 되자 고르바초프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기분이 상한 총리가 묻자 고르바초프는 서둘러 정색하고 입을 열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이거 실례했소. 죄송하오. 헌데 웃지 않고는 못 배기겠군요. 룩셈부르크처럼 조그마한 나라에서 국방장관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오?"

그러자 총리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나도 모스크바에서 당신이 법무장관을 소개했을 때, 웃음이 터지려는 걸 꾹 참느라고 혼이 났단 말입니다."
※ 사회주의권에서는 법치주의를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수단이라며 경멸했다. 1930년대 중화소비에트공화국에서는 국민당의 침공에 맞서 혼란한 와중에 법치주의자들이야 말로 반혁명이라면서 절차와 법을 방패로 삼는 자들의 씨를 말리고 혁명적 양심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이 아니라 혁명논리로 통치하는 국가가 법무부를 두고 있다는 것 자체가 법치주의 입장에서는 비웃을 일인 셈.

※ 이 이야기의 변화판으로, 흐루쇼프둡체크가 등장하는 것도 있다. 두브체크가 흐루쇼프에게 해군성 설립을 허가해달라고 요청하자, 흐루쇼프가 깜짝 놀라면서 왜 바다가 없는 내륙국체코슬로바키아에 해군성이 필요하냐고 물었고, 그러자 두브체크는 그러면 왜 소련에는 문화성이 있느냐고 되묻는 버전이다. 판본에 따라서는 둡체크를 후삭으로 흐루쇼프를 또 브레즈네프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다.[49]

6.3. 임기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 그리고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하느님의 초청을 받아 만찬회 석상에서 마주앉았다. 레이건이 먼저 물어 보았다.

"하느님, 미국인들이 언제쯤 모두 부자가 될까요?"

"5년 후다."

"그렇습니까? 제 다음 임기때이겠군요."

다음은 미테랑.

"우리 프랑스인들은 언제쯤이면 모두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15년은 족히 걸릴 게다."

"역시 제 임기가 끝난 다음이겠군요."

미테랑은 아쉽다는 듯이 탄식을 했다.

마지막으로 고르바초프.

"언제쯤이면 소련 인민들이 모두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하느님은 이를 듣고 슬피 울며,

"오, 미안하다. 그건 임기가 끝난 다음에나 될 것 같다."

참고로 과거 프랑스 대통령의 1회 임기는 무려 7년이었고 중임하면 14년이라 위와 같은 유머가 나왔다. 이 유머는 프랑스에서 대통령이 너무 강력하고[50] 임기가 독재 국가급으로 길다는 점을 덤으로 비꼬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 뒤 프랑스는 2002년 대선을 앞두고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1회 임기를 5년으로 줄였다.

6.4. 소련제 로봇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로봇이 투입되었다.

미국제 로봇은 7분 정도 작동하다가 원자로에서 방출되는 강한 방사능에 의해 회로가 타서 멈추었다. 일본제 로봇은 9분 동안 작동하다가 멈추었다.

그런데 소련제 로봇은 1시간째 작동 중이다. 사고 현장에 취재온 기자들이 소련제 로봇의 성능에 감탄하고 있을 때 확성기가 울려퍼졌다.

"이바노프 이병! 이제 쉬는 시간이니 담배 한 대 피우고 오시오."

※ 실제로 체르노빌 원전 사고 당시, 소련 전역에서 강제 징발된 수많은 인력(대략 60만 명)이 '바이오 로봇'이라는 이름으로 폭파된 원자로에서 새어나온 방사능 물질을 제염하고 원자로를 석관으로 덮어씌우는 데 투입되었다. 수량 부족으로 인해 제대로 된 방호의도 입지 못한 채 투입되는 등 인권 따위는 개나 줘버린 방식이었지만 당시에는 이게 아니면 방법이 없었다. 로봇을 써봤지만 배터리 수명이 짧아 어려웠다. 결국 이는 소련이었기에 시킬 수 있는 일이었지만 소련이었기에 해낼 수 있었던 수습이었던 것. 그래도 소련은 북한마냥 미쳐돌아가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 '바이오 로봇'들이 교대로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일해서[51] 치사량 이하의 방사능에 노출되도록 배려하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작업 도중에 시간 되었다고 다 손놓고 자리를 떠날 수는 없었기에 이들 상당수는 방사능에 피폭되는 걸 피할 수 없었다.

이 유머는 드라마 체르노빌에서 비슷하게 패러디 되었다.

※ 일본제 로봇이 미제보다 더 오래 견딘 것도 당시 버블경제로 미국을 능가하는 경제력을 지니게 된 일본이라는 시대의 모습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6.5. 운전수 고르바초프

고르바초프가 셰바르드나제(당시 소련 외무상)를 만나기 위해 리무진을 타고 가고 있었다.

그런데 도중에 운전수가 배가 아프다고 했다. 그리고 차를 세우더니 얼마 뒤에는 아예 운전석에 앉아 있지를 못했다. 고르바초프는 아픈 운전수를 뒷좌석에 태우고, 자신이 운전석에 앉아서 병원으로 차를 몰고 가기로 했다.

검문소에 도착했을 때, 차창 너머의 고르바초프의 모습을 본 경비병이 깜짝 놀라서 정중히 거수경례를 하고 그냥 통과시켜 버렸다. 상관이 무슨 일이냐고 하자 경비병 왈,

"서기장님이 직접 운전을 하실 정도면 얼마나 높으신 분이 타고 계시겠습니까?"

※ 비슷한 이야기로 교황이 등장하는 버전도 있다. 이 경우는 이탈리아 경찰이 무조건 경찰청 장관을 불러달라고 해서 하소연하는 이야기다.

※ 소련 체제 하는 아니지만 실제로 블라디미르 푸틴자기가 직접 전투기를 몰고 공군 기지에 도착해 자리에 있던 장성을 당황시킨 일화가 있다.

기독교 유머에도 비슷한 유머가 수록되어 있다. 도시를 천천히 둘러보고 싶었던 교황이 운전수와 잠시 교대해서 직접 차를 몰았고, 신호위반을 단속하러 온 교통경찰들이 단속은 안 하고 통과시켰다는 내용.

6.6. 노동자와 고르바초프

한 노동자가 영웅 칭호를 받아 크렘린으로 초청을 받았다. 고르바초프는 노동자를 마이크 앞으로 데려가 그에게 말했다.

"이 마이크에 대고 말하면 전 세계에 당신의 말이 방송될 겁니다."

"정말입니까, 서기장 동지?"

노동자는 고르바초프의 말에 반신반의하며 그에게 물었다.

"제가 한마디만 해 봐도 되겠습니까?"

"해보세요."

그리고 노동자는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살려줘요!"

※ 군대 유머로 바꾼 버전에서는 이병이 마이크 앞에 설 기회를 받아 "사람살려!"라고 외쳤다고도 하고, 소원수리 시간에 '살려줘요' 라고 썼다고도 나온다. 후자는 웹툰 마음의 소리에도 나왔다.

6.7. 나는 빼 줘

고르바초프의 아내가 고르바초프에게 물었다.

"여보, 근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자유롭게 해외로 나가지 못하죠?"

"그러면 너도나도 다 빠져나가고 이 나라에는 당신과 나밖에 안 남을 게 아니오?"

그러자 아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어머, 자기는 내가 여기 남을 줄 알았어?"
※ 소련 지도자가 다른 사람으로 바뀌거나 고르바초프의 아내가 셰바르드나제같은 당시 소련의 고위 간부로 바뀌는 것들도 있다. 또한 베를린 장벽 버전도 있다.
※ 물론 고르바초프의 아내는 1998년 사망할 때까지 잘 함께했다.

6.8. 비누가 부족한 이유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한창 페레스트로이카를 진행시키고 있을 때의 일이다. 두 지식인이 러시아에서 비누가 부족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A: 왜 하필 생필품 중에 비누가 제일 부족할까?

B: 공산당이 과거의 를 씻어 내고 있는데 당연한 거 아닌가!

실제로 공산주의 시절에는 공산당에서 일정량의 생산목표를 정하고 할당량을 각 공장에 분배하는 작업을 하였다.

그런데 먼나라 이웃나라 독일편에 소개된 바에 따르면 생산목표보다 소비량이 높아 배급목표가 소비를 따라가지 못해 난감한 일이 많았다. 위에 서술된 비누만 해도 생산목표량 정도의 재료를 수입하였는데 소비량을 따라잡지 못해 타국에 수입을 하려 해도 가격 차이가 심하거나 비슷한 상황에 처한 경우가 많아 비누를 받을 수 없었다. 재료를 주문하려 해도 기한이 오래걸리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6.9. 식당에서

1980년대 말 소련의 한 식당에서.

문) "왜 미트볼정육면체 모양이죠?"
답) "페레스트로이카(Перестро́йка, 개조)!"

문) "게다가 덜 익었잖아요!"
답) "우스코레니예(ускоре́ние, 가속)!"

문) "심지어 한 입씩 누가 베어먹기까지 했네!"
답) "고스프리욤카(Госприёмка, 품질 검사)!"

문) "뭘 잘했다고 묻는 말마다 그렇게 뻔뻔스럽게 되받아치는 거죠?"
답) "글라스노스트(Гла́сность, 언론의 자유)!"

※모두 고르바초프 집권기에 등장한 개념들이다. 개혁개방을 하든 안하든 마찬가지로 시궁창인 소련의 상황과 민주주의적 가치를 좋을대로 왜곡해서 갖다붙이는 소련 정부를 비꼬는 유머인 것.

6.10. 고르바초프의 연설

고르바초프가 한창 페레스트로이카를 진행시키고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고르비는 연설 도중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2년 후 전기 공급이 멈출 겁니다."

누군가가 외쳤다.

"하루에 12시간 일하자!"

고르비는 또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5년 후에는 천연가스가 고갈됩니다."

이번에도 같은 남자가 외쳤다.

"하루에 18시간 일하자!"

고르비는 감격해 그를 불렀다.

"동지, 고맙소! 동지는 무슨 일을 합니까?"

남자가 답했다.

"장의사입니다."

※ 그러니까 사람들이 과로사로 많이 죽어나가면 장의사인 본인 일거리가 늘어날 거라는 얘기다(...) 물론 러시아는 지금도 전기 공급이 끊기거나 천연가스가 고갈되지는 않았다.

6.11. 기차 여행

고르바초프 부부가 함께 동독을 방문한 뒤 기차를 타고 소련으로 돌아오는 길이였다.

"여보, 미하일, 지금 우리가 어디쯤인가요?"

고르바초프는 손을 잠시 창밖으로 내밀어 보더니 말하기를,

"아직 독일을 지나는 것 같소."

시간이 흐른 뒤, 아내가 다시 여기가 어디냐고 묻자, 고르바초프는 다시 손을 내밀어 보고는 말하기를,

"이제 폴란드에 들어온 것 같은데."

다시 시간이 흐른 뒤, 아내는 같은 질문을 반복했고 고르바초프도 마찬가지로 손을 내밀어보고는 대답했다.

"우리나라 국경을 넘은 것 같소. 곧 도착하겠구려."

잠시 후 정말 기차가 멈추자, 신기해진 고르바초바 여사는 남편에게 어떻게 손만 내밀어서 위치를 맞추었는지 그 비법을 물어보았다.

고르바초프가 웃으며 설명하기를,

"첫 번째로 손을 내밀자 사람들이 열렬히 입을 맞추더군요. 그런데 두 번째로 손을 내밀자 사람들이 침을 마구 뱉지 않겠소? 세 번째로 내밀었을 때는 내 손목시계를 훔쳐가더군."

※ 동독은 소련의 철저한 통제 하에 있었기에, 혹은 고르바초프가 동서독 통일을 지지해 주었기 때문에 고르바초프에게 키스를 보냈다. 폴란드는 소련을 지독할 정도로 증오하여 침을 뱉었다.[52] 소련의 경우 경제고 사회고 아주 개막장이라(...) 손목시계를 훔쳐가버렸다.

6.12. 고르바초프와 100인의 경제보좌관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에겐 100명의 애인이 있는데 이 중 한명은 에이즈 환자다. 하지만 미테랑 대통령은 누가 에이즈 환자인지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겐 100명의 경호원이 있는데 이 중 한명은 위장한 테러리스트다. 하지만 레이건 대통령은 누가 테러리스트인지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겐 100명의 경제보좌관이 있는데 이 중 한명은 유능한 보좌관이다. 하지만 고르바초프는 누가 유능한 보좌관인지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 이는 레이건이 고르바초프에게 해준 농담. 이 농담이 두 초강대국 정상들의 마음에 썩 들었는지, 정상회담장이 아주 웃음소리로 뒤집어져서 바로 아랫층에 있던 낸시 레이건이 놀라서 들어와보기까지 했다고 하며, 고르바초프는 1차 한소정상회담 때 노태우 대통령에게도 이 농담을 해주었다.

7. 소련 해체 이후(1991~)

7.1. 옐친의 업적

Q: 소련이 70년 동안 그토록 강조했지만 인민들을 설득할 수 없었던 과업을, 옐친은 단지 자신의 재임시절 몇 년 만에 다 이루었다. 그것은 무엇일까?

A: 인민들에게 사회주의가 좋다는 것을 알게 해 준 것이다.

※ 실제로 옐친의 재임 시절 러시아 내의 옛 소비에트 연방에 대한 향수가 상당했다고 한다. 옐친 시절 경제가 완전히 파탄나버린 러시아의 상황을 비꼰 것.

7.2. 기나긴 줄

상점 앞에 생필품을 사러 아무리 줄을 서도 줄이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마을 할아버지는 벌컥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줄이 길다니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지금 모스크바 크렘린 궁으로 가서 옐친을 끝장내고 말겠어."

며칠 후, 그 할아버지는 돌아와서 마을 주민들에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크렘린 궁 줄은 여기 줄보다 훨씬 길더군."

※ 브레즈네프가 등장하는 버전도 있다. 시기상, 그리고 테마상 원본에 가까운 것은 이것일 것이다.

7.3. 스탈린과 푸틴

어느 날, 낮잠을 자던 블라디미르 푸틴의 꿈에 스탈린의 유령이 나타났다.

"지금 붉은 광장에 돌아다니는 시민 아무나 열 명을 잡아 총살시킨 다음, 크렘린을 파란색으로 칠하게."

그러자 푸틴이 물었다. "왜 하필 파란색입니까?"

"하!"

스탈린이 말했다.

"역시 앞의 것은 안 물어볼 줄 알았어."

※ 학교 유머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학교 유머 문서 참고.

※ 파란색, 즉 영어에서 blue라고 뭉뚱그려 부르는 색깔을 러시아에서는 голубой(연한 파랑, 하늘색)와 синий(짙은 파랑, 남색) 둘로 분류한다[53]. 전자는 동성애자 혹은 이상(ideal)의 뉘앙스가 담겨 있으며[54] 후자는 속어로 죽은(dead), 취한(drunken) 상태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 간혹 우크라이나가 이기고 있다며 핀잔을 주는 버전도 있다. 참고로 우크라이나 국기에 약간 연한 파란색이 들어가 있다.

7.4. 옐친과 아들

대학교에 다니는 옐친의 아들이 옐친에게 물었다.

아들: 아버지! 술에 취하면 어떤 느낌이 들죠?

옐친: 저기 식탁에 컵이 2개 보이지? 2개의 컵이 4개로 보이면 몹시 취했다는 뜻이지.

그런데 아들이 식탁을 보고 당황해서 하는 말.

아들: 아버지! 식탁에 컵은 하나밖에 없어요!

※실제로는 옐친은 아들이 없고 딸만 둘이었다.

출처 - 조갑제닷컴 원전은 모 트위터 유저의 이야기. 술에 취한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지적을 하는 내용이었다.

8. 검열/감시/탄압에 관한 농담들

8.1. 서신 검열

소련에는 서신검열이 있는가?

절대로 없다. 다만 당의 심기에 거슬리는 내용을 담은 편지가 배달되지 않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 소련 시대에는 소련 공산당의 심기에 아주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내용이 들어간 편지는 그냥은 배달되지 않고 그 자리에서 폐기(소각처분)되거나 내용이 뭉텅이로 잘려나간 채로 배달되었다.원본은 검열이 있다는 내용인데 검열된 것 같다

8.2. 작품 검열

자신의 작품들이 검열당하는 것에 화가 난 톨스토이는 검열당국으로 가서 항의했다. 톨스토이의 항의에 검열당국 직원은 이렇게 대답했다.

"삭제를 하면 선생님은 그냥 몇 구절만 잃고 말지만, 삭제를 안 하면 저희들은 목이 달아납니다요."

레프 톨스토이는 제정 러시아 시기에 사망했기에 소련 시기의 검열에 대해 레프 톨스토이 본인이 검열당국에 가서 항의할 수는 없지만, 톨스토이 성을 달고 러시아에서 중요한 문학인이었던 사람만 3명이다. 알렉세이 톨스토이[55] 같은 경우가 대표적. 이 사람은 소련 시절의 유명한 SF 소설인 아엘리타를 쓰기도 하였다.

※ 공산당의 문화 검열을 비꼰 것. 다만 레프 톨스토이의 저작은 오히려 정반대이다. 톨스토이를 비롯한 제정 러시아 시절의 문호들은 소련 시절에도 여전히 존중받고 높은 평가를 받았다. 톨스토이는 그 중에서도 더더욱 존경받는 대상이 되었는데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농민들의 모습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공산주의 운동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 아이러니하게도, 공산주의 이론에서 농민은 혁명의 적이거나 최소한 혁명에 협조적이지 않을 것으로 간주되었다. 농민은 생산수단(토지와 농기구, 종자 등)을 가진 프티 부르주아이기에 계급투쟁에 기반한 공산주의 혁명에서 농민의 계급이익은 노동자의 그것과 같지 않다고 본 것이다. 또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여촌야도 현상을 보며 농촌지역이 왜 이리 구체제에 우호적이거나 구체제 정치인을 선호하는것인지 살펴보면서 도출해낸 결론이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제정 러시아, 1차대전을 경험하면서 노동자와 농민이 연대하게 됐고, 그 결과 혁명은 성공했다. 노동자가 극히 적은 시골에서도. 하지만 마오쩌둥은 농민을 혁명의 필수적 요소로 취급하였고, 이는 중소분쟁의 사상적 원인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8.3. 표현의 자유

문: 소련 헌법과 미국 헌법은 둘 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데 뭐가 다른거죠?
답: 미국 헌법은 표현한 이후의 자유까지 보장하고 있습니다.

※ 이 말은 로널드 레이건미국 대통령실제로 한 농담이었다.

이디 아민은 "표현의 자유는 보장하지만 표현한 이후의 자유는 보장해 줄 수 없다."라는, 이와 비슷한 어록을 남긴 적 있다.

8.4. 미국인과 소련인

미국인과 소련인이 자기 나라 자랑을 하고 있었다.

미국인은 "우리나라에서는 백악관으로 쳐들어가서 대통령의 면전에서 책상을 두드리며 '대통령 각하, 난 당신이 이 나라를 다스리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라며 자랑했다.

그러자 소련인은 "그건 우리나라도 할 수 있다. 나도 크렘린으로 쳐들어가서 '서기장 동지, 난 미국의 대통령이 나라를 다스리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라고 할 수 있다"라며 답했다.

※ 이 말도 위의 '표현의 자유'처럼 로널드 레이건이 실제로 한 농담이고, 고르바초프에게도 이 유머를 들려줬다고 한다.

※ 루즈벨트와 스탈린이 나오는 판본도 있다. 이 밖에 북한 버전도 있다.

8.5. 사형수

소련에서 어떤 사나이가 총살형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총살형이 교수형으로 바뀌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어떤 사형수 하나가 말했다.

"과연 우리나라다워. 실탄이 다 떨어진 모양이야."

그렇게 총살형에서 교수형으로 바뀐 사형수가, 이번엔 형 집행 전날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다른 사형수 하나가 말했다.

"과연 우리나라다워. 밧줄도 다 떨어진 모양이야."

그렇게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죄수가, 이번에는 갑자기 사면이 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간수에게 어찌된 영문인지 물어보려는 찰나, 또 다른 간수가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크~ 과연 우리나라답군. 당신 먹일 식량도 다 떨어진 모양이야."

8.6. 그런 소릴 하다간

빵 배급 줄에 선 한 남자가 불평하기 시작했다.

"이건 참을 수 없어! 난 내 평생을 공산주의의 영광을 위해 바쳤다고! 그런데 빵 하나 받는 데 6시간이나 줄을 서야 하다니! 제길, 빌어먹을!!"

같이 줄을 서고 있던 다른 남자가 속삭였다.

"조심하게, 동무. 알잖은가. 작년이었으면 그런 소릴 하다가 무슨 꼴을 당했을지."

그러고는 손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팡!' 쏘는 시늉을 했다.

불평하던 남자는 집으로 돌아왔고, 그의 아내가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빵이 다 떨어졌어요?"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휴... 그보다 더 심각해, 여보. 이젠 총알마저 다 떨어진 모양이야."

8.7. 이심전심

두 경비병이 크렘린 궁전 바깥에서 경계를 서고 있다.

그 중 한 명이 다른 경비병을 보며 질문했다.

"그래서 동지, 이번 공산당 대회에서 결의된 새로운 정책들에 대한 동무의 의견은 어떠하오?"

그 경비병은 대답했다.

"그야 당연하지 않소? 동무의 의견이 곧 내 의견과 똑같소."

그러자 첫 번째 경비병이 소리쳤다.
"그렇다면 동무를 반동으로 체포하겠다!"

8.8. KGB와 앵무새 1

겁에 질린 남자가 KGB에 찾아와 말했다.

"키우던 앵무새가 간밤에 사라져버렸습니다."

"미안하지만 절도는 우리 소관이 아니오. 경찰에 신고하시오."

"경찰에는 이미 신고해 놨습니다. 단지 저는 그 놈의 망할 앵무새가 하는 말에 무조건 반대한다는 걸 알려드리려고 온 겁니다."
※ 이것도 레이건이 실제로 한 농담이다. 영상

8.9. KGB와 앵무새 2

소련에서 반체제 활동을 하고 있던 이반...

그날도 이반은 자신의 집에 동지들과 함께 모여서 공산주의 정권을 성토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통의 전화를 받은 이반은 급히 동지들에게 외친다.

"동지들, KGB가 금방 우리 집에 들이닥친답니다. 어서 피하세요."

동지들은 책과 자료를 가지고 부리나케 도망갔다.

정신없이 증거가 될 만한 물건들을 없애던 이반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 자신이 키우던 앵무새를 잊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 앵무새가 반체제 인사들이 모여서 하는 이야기들, '체르넨코 나쁜놈, 인민의 적!' 또는 '자본주의 만세! 미국 만세!' 등의 말을 배워서 되풀이하곤 했던 것이다.

이반은 급한 마음에 앵무새를 냉동실에 집어넣고 문을 닫아버렸다. 그러자마자 바로 KGB 요원들이 이반의 집을 덮쳤다.

그러나 이미 모든 걸 다 없애고 감춘 뒤라 KGB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온 집을 다 뒤졌지만, 아무 것도 찾지못한 KGB 요원들.. 막 나가려다 냉장고 앞에서 안절부절하는 이반을 보곤.. '드디어 찾았다!' 라고 하면서 냉동실 문을 확 열였다.

그러자 그 앵무새가 굴러 떨어지더니,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체르넨코 만세! 공산주의 만세!" "미국 망해라! 자본주의는 망해라!"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 소리를 들은 요원들은 이반에게 경례를 하면서, "앵무새를 아주 훌륭하게 교육시켰습니다. 동무, 자랑스럽소." 라고 말하고 웃으면서 밖으로 나갔다.

KGB 요원들이 돌아가고 난 뒤 이반이 안도의 한숨을 쉰 뒤 앵무새에게 물었다.

"네 덕분에 살았다만.. 왜 그렇게 말이 바뀌었냐?"

부리를 덜덜 떨며 앵무새가 말했다.

"하이고... 추워. 주인님도 시베리아에 한 번 갇혀보세요.. 말 안 바꾸고 배기는가.."

혁명적 앵무새를 냉장고에 가두긴 했지만, 혁명적 인민들도 저렇게 탄생하는데 무엇이 문제랴!

8.10. 감시 카메라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 소치호텔에 머물고 있던 외신기자들이 시설이 엉망이라며 항의를 했다. 이에 발끈한 러시아 부총리가 이를 반박하며 한 말, "샤워기를 정상적으로 쓰고 나가는 모습이 담긴 비디오를 갖고 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출처
※ 이게 1980 모스크바 올림픽으로 바뀐 버전도 있다. 이때는 소련 시절이었으므로 공산주의 유머에 부합한다. 근데 2014년 버전이 훨씬 충격적이다

8.11. 세상에서 가장 웃긴 농담

한 판사가 법정에서 나오면서 배꼽을 잡고 웃는 것을 보고 동료가 물었다.

"뭐가 그렇게 우스운 거요?"

"방금 세상에서 가장 웃긴 농담을 들었다오."

"혹시 나한테도 그 농담을 좀 들려줄 수 없을까요?"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는걸. 왜냐면 그 농담을 한 자에게 10년형을 선고했거든."

8.12. 소련 지식인의 5대 원칙

* 생각하지 마라.
* 생각을 했다면 말하지 마라.
* 생각하고 말까지 해버렸다면 글로 쓰지 마라.
* 생각하고 말하고 글로 써버렸다면 그 글에 서명하지 마라.
* 생각하고 말하고 글로 썼는데 서명까지 했다면 이제는 놀라지 마라.

※ 생각하기, 말하기, 글쓰기 모두 지식인을 연상시키는 행동들인데, 그걸 전부 막아버리는 꽉 막힌 소련 지식인계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8.13.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

*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착취한다
*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그 반대다

※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는데, 반대로 바뀐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사람이 사람을 착취한다는 뜻으로 거기서 거기라는 뜻이다.
※ 일명 아르메니아 라디오(Армянское радио)라고 부르는 유머로 실제로 한 것들이며 이 문서에서도 해당 방송국 출처인 유머가 있다.

8.14. 입원사유

폴란드를 방문한 소련 대표단이, 최근에 준공된 정신병원을 시찰했다. 대표단원이 지배인에게 물었다.
"이 환자는 무슨 병세로 입원한 거요?"
"외국으로 망명하려고 했기 때문에 입원시켰습니다."
"아니, 이런 악질 분자를 어쩌자고 입원시킨 거요? 총살형에 처하거나 강제 노동 수용소에 처넣지 않고?"
"네?! 이봐요, 이 놈은 소련으로 망명하려고 했단 말입니다."
소련의 한 정신병원에 한 당 간부가 환자를 데리고 왔다. 엄중히 관리하라고 당 간부가 말하니 의사가 물었다.
"아니. 증세가 얼마나 심하길래 그렇게 엄중하게 관리하라는 겁니까?"
"망명을 하려고 했소."
"예?! 그럼 굴라크로 보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허참... 이보슈, 잘 들어봐요. 이 놈은 북한으로 도망가려 했단 말이오.
실은 북한을 거쳐 남한으로 가려 했다 카더라

※ 판본 내용은 소련으로(북한으로) 망명하는 것을 정신병이나 마찬가지인 미친짓이라고 비꼬는거지만, 실제로 브레즈네프 시절 소련에는 정치범을 수용하기 위한 정신병원이 다수 존재했다. 정신병원에 수용시킨 이유는 정치범수용소의 수감자 통계에 잡히지 않기 때문. 그렇다고 이게 좋은 것도 아닌 게, 말이 정신병원이지 치료를 빙자한 갖가지 고문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고문 중 하나가 몇 날 며칠 동안 사람을 이불로 싸매고 침대에 묶어놔 제대로 숨도 못 쉬게 하는 고문. 그 실상은 글라스노스트 시기에야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어를 못하는 외국인을 정신병자로 몰아서 수십 년 동안 감금하다가 글라스노스트 시기에야 겨우 풀려난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56]

※ 당연하지만 실제로는 타국에서 소련으로 망명하는 사람들이 여러 이유로 발생했다. 1962년에는 6만 4천 명의 중국인들이 소련으로 망명했다. 마오도 스탈린 못지 않게 숙청을 좋아했고, 당시 대약진 운동으로 인한 여파가 어마어마했다.[57] 게다가 이후 벌어진 문혁까지 생각하면 중국에 비해 소련은 지상락원이었다. 이때 중국은 비누, 치약같은 기초생필품이나 쌀, 국수같은 기본 식료품도 배급표를 받아서 사는 나라였지만, 소련은 1950년대 중반 이후로는 매일같이 고기를 먹을 수 있었고, 중국에서 사치품으로 여겨졌던 텔레비전같은 전자제품도 구하는게 불편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보급되었고, 일반인들 대상으로 별장도 보급되었던 시절이었다. 아무리 소련이 소비생활에 불편한 점이 있다 한들 당대의 중국과 비교해보면 클래스 차이가 엄청났다.

8.15. 토끼 수색

KGB, FBI, CIAUN배 범인 체포 대회에 출전했다. UN 사무총장은 숲에 토끼 1마리를 풀어놓고 잡아오라는 문제를 내주었다.

CIA는 숲 속으로 들어가 숲 전체에 동물 정보원들을 심어놓고, 만나는 나무와 바윗돌마다 "토끼를 보지 못했느냐"고 질문하는 등의 뻘짓을 1주간 반복한다. 1주 후, 당연히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한 CIA는 "애초부터 토끼 따위는 없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수사를 종결한다.

FBI는 숲 속으로 들어가 2주 동안 뒤져도 토끼가 나오지 않자 숲에 불을 놓는다. 토끼를 비롯한 숲의 모든 동물들이 타 죽었지만 FBI는 사과를 하지 않고, 대신 사건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을 빨갱이로 몬다.

KGB는 숲으로 들어간 뒤 5분만에 떡이 되도록 두들겨맞은 1마리를 끌고 나왔다. 곰이 소리지른다.

"알았어요! 제가 토끼에요, 우리 엄마도 토끼였어요! 토끼 맞다구요! 제발 살려주세요!"
※ 8.21 문단 '아틸라'와 흡사한 개그. FBI를 GIGN으로 고친 버전도 존재한다.

※ 구 서독 헌법수호청, 일본 내각조사실, 구 동독 슈타지에서 수십만 년 된 해골을 합동으로 조사했는데 슈타지는 정확한 연도를 맞추자 헌법수호청과 내각조사실에서 물었더니 '자기 입으로 털어놓더라'라는 버전도 있다.

배철수의 만화열전 감격시대 편에서 일본고문이 상상초월이었다는 개그로 이게 어레인지되었다. CIA는 미국 경찰, FBI는 영국 경찰, KGB는 일본 경찰로 바뀌어 나온다. 미국 경찰은 과학첩보로, 영국 경찰은 기마부대를 대동하여 토끼몰이를 하고, 일본 경찰은 곰을 고문시켜 자신을 토끼라고 말하게끔 한다. 게다가 이 만화열전이 방송되던 당시는 엽기토끼 마시마로가 유행이던 때라 일본 경찰들에게 고문받아서 자기를 토끼라고 말하는 곰이 마시마로에게 매번 골탕먹는 곰인 "부갈루"로 등장하는 패러디도 있었다.

※ 이 유머는 한국 버전으로 토끼는 , CIA는 미국 경찰, FBI는 중국 경찰, KGB한국 경찰로 어레인지된 것이 있다. 미국경찰은 첨단 과학첩보로 쥐를 찾고, 중국은 인해전술로, 한국은 위의 KGB와 같은 방식으로 찾는다는 내용. 또는 안기부 문서에 있는 것과 같은 버전도 있다.

※ 이 유머는 나중에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으로 "생쥐를 붙잡아와서 코끼리라고 자백하도록 고문한 뒤, 냉장고에 넣는다" 처럼 비슷하게 패러디가 된다.

※ 조 사코의 만화 팔레스타인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의 유머가 실려있다. 각각 CIA, KGB, 신 베트(이스라엘 국내 첩보기관) 요원이 누가 토끼를 빨리 잡는지 내기하는 내용으로 CIA는 10분, KGB는 5분만에 토끼를 잡지만, 마지막으로 들어간 1시간 넘게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찾으러 가보니 - 신 베트 요원이 숲 속에서 "네가 토끼라고 자백해!"라면서 당나귀를 두들겨 패고 있었다.

8.16. 나쁜 어린이

어느 날, 한 어린이가 아버지에게 궁금한 걸 물어보았다.

"아빠, 데드 모로스(Дед мороз)[58]는 어디서 나쁜 어린이들의 목록을 가져와요?"

그러자 아버지 왈.

"그야 당연히 KGB지!"

8.17. 배관공

어느 수용소에 있었던 일이다.

"자네는 어쩌다 이곳 감옥에 왔나? 정치범인가, 아니면 일반범인가?"

"정치범입니다."

"정치범이라... 음, 무슨 일을 저질렀길래?"

"그게... 사연이 좀 길어지겠습니다. 저는 원래 배관공 일을 하는데요. 한번은 지역 내 당 위원회에서 하수도를 고치라고 부르길래, 하수도 상태를 살펴보았거든요. 그런데 하수도 파이프 전부 녹이 심하게 슬고 썩은 게 태반인지라 전부 새 걸로 교체해야 해서 "이거... 아무래도 상태가 좋지 않네요. 전부 싹 갈아야겠는데요."라고 말했지요. 그러더니 7년 형을 선고하더군요."

8.18. 텔레비전

어느 소련인 남자가 텔레비전을 켰다. 브레즈네프가 연설하는 모습이 나왔다.

잠시 동안 화면을 보다 지루해서 다른 채널을 돌렸다. 여기에서도 브레즈네프가 나와 연설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채널에도, 그 다음 채널에서도 브레즈네프가 나왔다.

남자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채널을 돌렸다. 화면에 갑자기 KGB 요원이 나왔다. 그는 손가락질을 하며 남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봐!! 한 번 더 채널 돌리면 징역 5년이다!!"

※ 당시 소련 메인뉴스 프로그램인 브례먀와 공산당 주최로 진행되는 주요 공식행사들이 여러개의 채널로 동시방송되다보니 나온 농담이다.
※ 사실 가끔이지만 정말로 이런 장면을 끼워넣는 광고나 프로그램이 존재하긴 한다. 물론 컨셉.
※ 한국에서는 전두환이나 노태우 버전으로 바뀌기도 한다.
BBC는 실제로 엘리자베스 2세가 승하했을 때 다른 채널들의 정규 방송을 끊고 당장 BBC One으로 채널을 돌려서 뉴스 특보를 시청하라는 자막을 띄웠다. # 물론 채널을 안돌리거나 다른 채널로 돌린다고 징역을 때리는 일은 없었지만.

8.19. 차 한 잔 부탁드립니다

어떤 소련 남자가 호텔방에 다른 모르는 사람 셋과 함께 하룻밤을 합숙하게 되었다.

남자는 잠을 청하려 했지만, 다른 세 사람이 보드카를 마시고 얼큰히 취한 채 정치적인 농담을 시끄럽게 지껄이는 통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남자는 화가 났지만 술 취한 사람들에게 무턱대고 조용히 하라 할 수는 없었다.

남자는 꾀를 내어, 옆 사람들이 모르게 슬그머니 1층으로 내려가 여직원에게 10분 후에 67호실로 차를 한 잔 가져다 달라고 주문했다. 태연히 올라온 남자는 다른 셋의 이야기에 끼어들었고 정확히 5분 뒤 탁자 위의 재떨이에 대고 짐짓 말했다.

"소좌 동지, 67호실에 차 한 잔 부탁드립니다."

당연히 5분 뒤, 노크 소리가 나더니 여직원이 차를 들고 들어왔다. 그러자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늘해졌고, 남자는 드디어 잠을 푹 자게 되었다.


다음날, 잠에서 깬 남자는 방 안에 자기 혼자밖에 없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허둥지둥 프론트로 달려가 같이 묵었던 세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 물어보았다.

"아, 간밤에 KGB에서 끌고 갔어요."

남자가 겁에 질려 말했다.

"그… 그러면 왜 나는 안 잡혀갔습니까?"

그러자 여직원 왈.

"소좌 동지께서 그 차 한 잔 농담이 맘에 들었다고 특별히 봐주시는 거라고 하더군요."

※ 주인공은 그냥 다른 3명들을 조용하게 하려고 마치 재떨이 밑에 도청기나 있는 마냥 연기를 한건데, 이게 진짜로 있었던 것. 정치적 농담을 한 죄목으로 세 사람은 어디론가 끌려간 것이다.

※ 다른 버전으로, 나머지 세 사람(폴란드인)은 여직원이 진짜로 차를 들고 들어오자 놀라서 잽싸게 짐싸서 나가고, 다음날 아침 남자가 체크아웃할 때 프론트 직원이 "소령 동지께서 간밤에 차 한잔 농담 괜찮았다고 전해달라더라고요"라고 하는 버전도 있다. 이 농담은 실제로 소련 내에서도 상당히 유행했던 농담으로 소련인들은 민감한 발언을 하거나 들은 후 갑자기 전등이나 찻잔 뒤에 "잘 들으셨지요? 동지~?"라고 속삭이는 장난을 실제로 치곤 했다고 한다.

※ 2018년에 평양을 방문해 공연했던 백지영은 당시 도청당할 수 있으니 말하는데 조심하라는 주의사항을 사전에 받았고, 실제로 호텔에서 수건이 별로 없다고 혼잣말 했더니 나중에 방에 돌아왔을 때 소파 위에 수건이 잔뜩 쌓여 있었다는 경험담을 말한 바 있다.영상 링크

8.20. 베스트셀러

소련에서는 솔제니친과 같은 반체제 작가들의 작품 출판을 금지했기 때문에, 타자기로 일일이 쳐서 비밀리에 서로 돌려보곤 했다.

하루는 고르바초프가 집에 들어와보니, 아내가 열심히 타자기로 무언가를 치고 있었다.

"지금 무얼 치고 있는 거요?"

"우리 아이들한테 읽히기 위해 톨스토이안나 카레니나를 타이핑하고 있는 거에요."

"웃기는군. 아니, 그 책을 직접 읽게 하면 되지 않소?"

"누가 그걸 모르나요? 하지만 아이들이 타자기로 찍어낸 게 아니면 아무것도 읽으려고 하질 않으니 어떻게 해요?"

※ 톨스토이의 작품은 소련에서도 적극 권장했고 출판 및 대여가 가능했다. 즉 딱히 할 필요 없는 책도 일부러 해야 할 정도로 지하 출판이 성행하고 있었으며, 이와 동시에 심의를 통과한 출판물이 불신받는 당시 사회를 보여준다. 거기에 더해서, 고르바초프와 같은 고위 인사의 가족들조차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도 주요 포인트.

※ 고르바초프가 경악한 또 다른 이유는 분량이 엄청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태백산맥이나 토지를 타이핑해서 읽힌다고 생각해 보자.[59] 물론 안나 카레니나는 이 소설들보다는 적은 분량이긴 하다.

8.21. 3인조

문: KGB에서는 행동대를 항상 3인조로 편성해서 내보내곤 했다. 왜 그랬을까?

답: 한 명은 임무 전에 명령문을 읽어야 했고, 다른 한 명은 임무 후에 보고서를 써야 했고, 마지막 한 명은 다른 두 인텔리를 수시로 감시해야 했으니까!

※ 즉 글을 읽고 쓸 수만 있어도 인텔리라는 것.

8.22. 아틸라

헝가리 인민 공화국은 정권 선전을 위해 고고학 사업에 투자하였다. 그러던 중 전설적인 훈족의 왕 아틸라의 유골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굴되었다. 헝가리 측은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지만 헝가리는 고고학이 발달되지 않아 아틸라의 유골인지 아닌지 도무지 검증할 수 없어 상대적으로 발달된 기술이 있던 소련에 유골을 보내 검증을 부탁했다. 며칠 후 소련 측은 아틸라가 맞다고 답변했다. 헝가리 측은 열광했지만 소련 측이 기술적 설명 없이 그냥 아틸라가 맞다고만 하는 것에 의심을 품고 어떤 방법을 써서 아틸라인지 알아냈는지를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소련 측은 두번째 답변을 보냈다.

"자백을 받아냈소."

8.23. 통금령

소련 경찰은 7시 이후로 집밖에 나갈 수 없도록 통금령을 내렸다. 그런데 6시 30분에 경찰이 한 남자가 밖에 있는 것을 보고는 체포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이상한 행동에 의아한 동료 경찰이 물었다.

"이봐, 7시까지는 아직 30분이나 남았는데 왜 지금 체포하나?"

그래서 대답하길

"내가 저 녀석 사는 곳을 아는데, 아마 집까지 30분 안에 도착하지 못 했을거야."

9. 수용소에 관한 농담들

9.1. 죄수들

한 강제수용소에서.

"무슨 죄로 들어왔는가?"

"1939년에 포포프 동지를 욕한 죄야. 당신은?"

"나는 1943년에 반동 포포프를 옹호한 죄다."

두 죄수는 어둠 속에서 얼굴이 가려진 나머지 죄수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내가 바로 포포프요."

※ 마오쩌둥 치하에서 숙청과 복권을 반복한 덩샤오핑을 소재로 한 중국 버전도 존재한다.

※ 놀랍게도 2022년까지 계속해서 그 형태가 업데이트되는 공산주의 유머이다. 다름아닌 백지혁명 이후 중국의 검역조치 일체 완화에 따른 것인데, 해당 버전에서는 대백(大白, 방역요원을 속되게 칭하는 말)이 저 포포프의 포지션을 맡는다.

9.2. 태만죄

강제수용소에서.

"몇 년 받았나?"

"10년."

"무슨 죈데?"

"아무 죄도."

"그럴 리가 있나. 5년이면 몰라도 아무 죄도 없이 10년씩이나 받을 리가 있어?"

"맞아. 아마 태만죄였을 거야."

"사보타주라도 했단 말인가?"

"아니. 어느 날 밤 친구하고 둘이서 보드카를 마시며 이오시프 스탈린 욕을 좀 한 일이 있어. 그런데 그날 밤은 진눈깨비가 내리고 추워서 밀고를 하지 못하고 다음날 아침에 하려고 했는데, 친구 녀석은 그날 밤 바로 나를 밀고했던 거야. 내가 태만했던 죄지."

아무 죄도 없어도 5년까진 받을 수 있단 게 숨겨진 킬포인트

9.3. 수용소에 온 이유

군법 회의의 재판은 어느 것을 막론하고 모두 대동소이하다. 개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몰인정한 재판관들은 흡사 고무도장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컨베이어에 실려 나오는 천편일률적인 선고도. 모두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것이 꼭두각시놀음이라는 것은 그들 자신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호송 부대의 일반 병사들이다.

1945년 노보시비르스크 이송 감방에서 호송병이 문서를 보고 호명을 하며 죄수들을 인계받고 있었다.
"아무개! 제58조 1항. 25년."
그러자 옆에 있던 호송대장이 호기심을 보이며 물었다.
"무슨 죄를 지었는가?"
"아무 죄도 없습니다."
그러자 호송대장이 하는 말,
"거짓말 마, 아무 죄도 없으면 10년 형이란 말이야!"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제1부 제7장 일부 발췌.

※ 당시 소비에트 형법 제58조 1항에 따르면 정권의 약화를 기도하는 모든 활동은 반혁명이며, 조국에 대한 반역은 총살형 혹은 10년 형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형법 제58조는 총 14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스탈린 시대의 대숙청 희생자들 거의 전부는 58조에 의거 형벌을 선고받았다. 이 58조의 범위는 상당히 넓어서, 독일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탈주하여 돌아왔어도 58조에 걸렸고, 리투아니아나 라트비아 등 가맹 공화국의 민족주의자로 활동해도 58조에 걸렸으며, 하다못해 점령군에게 나무 한 단만 팔거나 아내와 바람 피던 남자를 살해했는데 알고 보니 그 남자가 공산당원이었을 경우에도 58조에 걸릴 수 있었다. 상황을 보았을 때 해당 죄수는 독일군의 포로였다가 58조로 걸려든 것으로 추정된다.

※ 이 책에 소개된 일화들은 전부 사실이다. 그것도 아주 빈번하게 있었던 일이다. 수용소 군도에 따르면 1937년경에는 10년, 20년, 총살형 셋 중 하나였고, 1943년경에는 20년의 강제 노동 아니면 교수형이었으며, 1945년에는 누구나 10년 형에 5년의 권리 박탈이 일률적으로 선고되었다고 한다.

9.4. 어느 유배자의 푸념

시베리아로 유배형을 받은 어떤 소련인이 이렇게 항변했다.

"한 가지만 물어볼 게 있습니다. 미국이 그렇게 파탄 난 악질 반동 국가라면 왜 그런 열악한 곳으로 절 유배 보내지 않는 겁니까?"
외국으로 유배를 못 보내니까

※ 참고로 이 농담은 김현희가 체포됐을때 김현희가 북한인임을 입증하기 위해 안기부 조사관들이 옆에서 해준 농담이기도 하다. 한국어를 모르는 척 하던 김현희는 이 농담을 듣고 키득거리다가 결국 화장실로 달아났다.

9.5. 운하를 건설한 것은

문) "백해-발트해 운하를 건설한 게 누군 줄 알아?"

답) "왼편은 정치적인 농담을 지껄인 사람들이, 오른편은 그 농담을 들으며 낄낄거리던 사람들이 건설했다네."

※ 실제로 백해-발트해 운하 건설에는 스탈린 시절 굴라크 수용자들이 동원되었다. 악명높은 니콜라이 예조프가 수운인민위원에 임명되어 운하 건설을 감독했다. 예조프는 내무인민위원에서 해임된 후에도 수운인민위원 자리는 유지하다가 숙청, 처형당했다.

9.6. 노동수용소가 살기 좋다는 게 사실입니까?

아르메니아의 라디오 방송국에 엽서가 들어왔다. "노동수용소가 살기 좋다는 게 사실인가요?"

방송에 답변이 나왔다.

"그렇습니다. 예전에도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이 있었는데, 궁금해서 직접 가보겠다고 한 지 5년이 지났습니다. 아직까지 소식이 없는 걸 보니, 거기가 마음에 쏙 든 모양이에요."

9.7. 수용소 생활

스탈린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 러시아의 한 작은 마을에 살던 이반은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왔다.[60]

마을 사람들은 모두 모여 수용소 생활은 어땠는지 물었다.

이반은 담배를 피며 놀라운 이야기를 해주었다.

"수용소 생활요? 수용소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아주 평범해요. 수용소 내 일상을 소개하자면 말이죠, 먼저 아무 날을 예시로 듭시다. 우린 아침 7시에 울리는 기상 나팔과 함께 잠자리에서 일어나지요. 그럼 간수들이 각 감방으로 따뜻한 와 갓 구운 을 가져다줍니다. 뭐, 차 맛은 좀 싱겁지만, 죄수가 그런 걸 불평할 수는 없잖아요?

천천히 아침을 먹고 나면 오전 9시에 일이 시작됩니다. 일이라고 해도, 통조림 공장에서 깡통에 딱지를 붙이는 정도입니다. 물론 오래 서 있으면 다리가 좀 아프지만, 죄수가 그런 걸 불평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게 일을 하다가 12시가 되면 점심시간이 됩니다. 점심으로는 빵과 수프가 나오지요. 당연히 스튜 맛이야 그저 그렇지만, 죄수가 그런 걸 불평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게 점심을 먹고 담배를 피며 쉰 뒤 오후 1시에 다시 일을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한 오후 3시가 되면 간식시간을 알리는 나팔이 불고, 우리는 차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하지요. 그리고 오후 6시가 되면 오후 일과가 끝납니다. 그러면 다시 저녁으로 빵과 수프를 먹습니다. 역시 맛은 그저 그렇지만 죄수가 그런 걸 불평할 수는 없잖아요?

저녁을 먹으면 각자에게 자유시간이 주어집니다. 그럼 우리는 담배를 피며 수다를 떨거나, 을 읽거나, 카드게임을 하지요. 소개한 대로 감옥에서 할 수 있는 놀이란 게 얼마 없지만 죄수가 그런 걸 불평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게 저녁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 9시가 되면 취침을 알리는 나팔이 붑니다. 그럼 우리는 모두 침대에 들어가 잠을 잡니다. 정말 평범하죠."

그때 마을 사람들 중 한 사람인 표트르가 그에게 물었다.

"오, 그래요? 그런데 좀 이상한데요, 이반."

"괜찮아요, 질문해요. 표트르. 그런데 뭐가 이상하단 건가요?"

"실은 제가 얼마 전 지인에게 들은건데 다시 수용소로 끌려간 미하일의 말은 당신과 정반대라 했어요. 지인에게 물어보니 그가 그러는데 "...뭐랄까? 미하일이 '그곳은 인간 이하의 가혹한 대접과 사람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끔찍한 중노동이 있는 곳이더라.'고, 얼굴이 하얗게 된 채로 학을 떼며 말했다."고 전했거든요."

그러자 이반은 담배를 깊게 빨고는 무표정하게 한마디 했다.

"아아, 그 친구요? 어리석은 인간 같으니, 그딴 말이나 하니까 또 끌려가지..."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흩어졌다.

※ 원전은 다하우 수용소를 소재로 한 나치 개그다. 작은 시골마을에서조차 정부를 모욕하면 잡혀갈 만큼 감시망과 밀고가 촘촘하다는 것도 은유하고 있다.


[1] суббо́тник. 토요일의 무보수 노동.[2] 중국은 소수 민주당파가 수십석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북한의 경우 천도교청우당조총련이 소수의 의석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들은 전부 구색정당이기에 딱히 의미는 없다.[3] 구색정당제가 아니라 진정한 다당제를 실현하였다.[4] 세묜(Семён)은 시몬의 러시아식 변형이며, 요나노프(Ионанов)는 '요나의 아들'이라는 의미의 성씨이다.[5] 이를 포그롬(pogrom)이라고 부른다. 오늘날에는 홀로코스트 같은 고유 명사로 사용된다.[6] 스테판 반데라처럼 나치와 손잡고 학살한 케이스도 있고, 그런 것과 상관 없이 그냥 박해/학살한 케이스도 많았다.[7] Лиски. 러시아 남서부에 위치한 보로네시의 행정구역.[8]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출신으로 코민테른의 수장이었던 볼셰비키 카를 베른가르도비치 라데크(Карл Бернгардович Радек, 1885-1939)를 말함.[9] 랍비를 러시아 성씨스럽게 변형한 이름으로, 러시아 유머에 자주 등장하는 전형적인 유대인의 인물화.[10] 인종차별적인 농담일 뿐, 실제로는 흑인 유대인도 엄연히 존재한다. 예시로 에티오피아에도 흑인 유대인 공동체가 존재한다.[11] 다만 이들의 입장에서도 할 말이 없진 않은데, 이 '실적'은 단순히 보너스나 고과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엔카베데 및 지역 경찰들에게 "체포해야 할 머릿수"가 할당되었고, 이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본인들이 끌려가서 할당량을 채워야 했다.[12] "수용소군도"에 실린 모든 일화는 전부 실화이다. 참고로 저 이웃집 갓난아기는 가족이 전부 체포당해 끌려가는 와중에 혼자 집에 남겨진 것이었다.[13] 폴론스카야는 마야콥스키를 사랑했으나 유부녀였고, 동시에 남편과 완전히 이혼하고 싶어하지도 않았다.[14] 뛰어내리지 않으면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처형된다는 의미다.[15] 히틀러무솔리니가 누구의 경호원이 더 용감한지 내기를 했는데, 히틀러의 경호원은 당당하게 뛰어내리고, 무솔리니의 경호원은 울먹이면서 억지로 뛰어내렸다는 이야기. 여기에 만네르하임이 추가되어 그의 경호원은 욕을 퍼붓지만 다른 두 정상은 만네르하임의 승리라고 인정하기도 한다.[16] 스탈린과 티토의 정상회담으로 바뀐 버전.[17] 다만 어찌저찌 그들에게서 벗어날 경우, 타 지방으로 이주하면 그 누구도 이를 눈치채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이는 당시 소련의 형편없는 관료제와 근무기강 때문에 어떤 사람이 타 지방에서 오면 당원인지 범죄자인지 도무지 체크가 불가능했던 상황에서 가능했다. 이 때문에 출당된 사람이 당원증도 반납하지 않고 다른 지방에서 당원인척 간부가 되기도 했고, 체포 대상자가 어디로 도망쳤고 어디에 거주하는지도 다 알고 있는데 안 잡아가는 희한한 경우도 있었다. 정 반대로 체포에 응하면 최소 굴라크 8년이었다.[18] 소련 시절 모든 굴라크가 외부와 연락이 불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에서 묘사되듯, 많은 굴라크의 경우 가족이나 친지에게서 편지나 식량 소포 정도는 받을 수 있었다.[19] 이는 레벤스라움에 기초한 것으로 레벤스라움에 따라 서유럽인은 말살 대상이 아니었기에 그럭저럭 상식적으로 대했지만 소련인은 정부 차원에서 말살 대상으로 못박았다... 2차대전 내내 소련군은 독일에 대한 보복을 멈추지 않았음에도 민간인 사망자로 따져 보면 독일:소련은 1:10의 차이를 보이는데 적어도 소련은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인 학살은 벌이지 않아 그나마 규모 자체는 작았던 것이다. 물론 그래도 그 피해 숫자는 222만으로 결코 작지는 않았다. 단지 독일이 2천만이나 죽이고 정부 차원에서 조직적인 학살을 벌이는 등 소련보다 한술 더 떠서 묻혔을 뿐이지...[20] 여담으로 2년 후인 1974년에 북한의 세금 제도는 폐지된다.[21] 엄밀히 말하면 농촌을 쥐어짜서 공업에 전부 투자한 결과라고 봐야 한다. 실제로 우크라이나에서는 대기근이 일어난 1930년대 중반은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소련의 GDP 연간 성장률은 10%에 가까울 정도로 고도성장을 하던 시기였다. 이는 당연히 경제성장률의 거의 전부가 식량과 무관한 중공업이 차지했기 때문.[22] 이때 마쓰오카가 "수상님이 만일 일본을 배신하면 수상님의 목을 받으러 오겠습니다"라고 개드립을 치는 바람에 분위기가 싸해졌다고 한다.[23] 단순히 일 잘해서 상 주는 것이 인센티브가 아니다. 소득의 처분권, 양도권 등이 다 보장되어야 가능하다. 소련처럼 가격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결정하는 나라면 더욱 그렇다. 더군다나 스타하노프 메달을 탈 정도면 어지간한 아첨 정도로는 부족했다(...)[24] 케네디는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였다.[25] 이러한 경공업 천시 현상은 심각한 후유증을 불러, 결국 상당수의 식품및 생필품들을 수입 대체재로 메꾸게 되었는데 대표적으로 대한민국의 팔도 도시락오리온 제과초코파이, 그리고 오뚜기 마요네즈가 그 대표적인 예다.[26] 물론 스탈린 시대와는 달리 죽진 않았다. 베리야를 마지막으로 흐루쇼프 시대부터는 숙청이 좌천이나 연금으로 바뀌었다.[27] 미그로 유명한 아르툠 미코얀의 형이다.[28] 1900-1986. 이원집정부제 하에서 외교를 전담하는 대통령으로 있을 때 핀란드가 자유 진영에 있으면서 소련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위태로운 현실에 맞는 합리적인 외교로 나라를 안정적으로 유지했으나, 동시에 핀란드화 정책과 함께 26년이라는 장기간 동안 집권하며 언론 탄압을 벌였다.[29] 실제로 케코넨은 소련의 지지로 핀란드에서의 권력을 강화하였다. 다만 케코넨은 본래는 반소 정치인으로서 겨울전쟁 때 핀란드가 패전했음에도 영토할양에 반대한 2명의 정치인 중 하나였지만 2차대전에서 독일의 전세가 기울자 소련에 우호적인 중립을 주장하는 정치인이 되었다.[30] 다만, 이 당시 소련은 핀란드를 사실상 속국 취급하였으며, 흐루쇼프는 1958년엔 소련의 마음에 들지 않는 정당이 집권하자 간섭해서 핀란드 내각을 뒤엎어버리는 밤서리 위기나, 1961년엔 아예 소련군을 상시 주둔시키고 대놓고 간섭하려하는 긱서 위기를 일으키는 등 핀란드를 병탄하려는 의도가 있던건 사실이다.[31] 물론 러시아 제국 때도 외화를 벌기 위해서 대량으로 곡물을 수출하는 바람에 러시아 시민들은 굶주렸고 그 탓에 공산혁명이 일어났다.[32] 돼지가 우는 소리를 나타내는 러시아어 의성어.[33] 하지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모스크바를 공식 방문한 것은 소련 해체 이후인 1994년이다. 단, 남편 필립 공은 1973년에도 비공식 방문한 적이 있다. 엘리자베스 2세의 방소도 70년대에 추진된 적이 있으나 엘리자베스 여왕이 소련보다는 중국을 가보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하여 중국 방문이 먼저 성사되었다.[34] 랍비(rabbi)를 러시아 이름처럼 바꾼 이름인데, '이반 라비노비치' 등의 이름으로 러시아의 우화 및 농담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로 유대인을 상징하는 경우가 대부분.[35]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다만, 후술하는 대화 내용은 창작.[36] 1루블이 100코페이카이며 닉슨 재임 당시 공식 환율로 1루블은 대략 1.1~1.3달러 수준이었으므로 27코페이카는 30센트 정도로 계산 가능하다. 당시 1달러는 2020년 기준 한화 약 1,250원의 가치가 있으니 전화 한 통에 약 400원이라고 볼 수 있다.[37] 러시아인의 이름은 이름+부칭(아버지 이름을 약간 비튼 것)+성씨로 구성되는데, 이름+부칭 조합은 보통 공식적인 자리에서 일반적인 존칭으로 자주 쓰인다. 브레즈네프의 풀네임은 '레오니트 일리치 브레즈네프.' 친한 경우에는 부칭 혹은 부칭을 약간 비튼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38] 사실 브레즈네프는 다른 서기장들과는 달리 겉으로는 무신론을 표방하고 있었으나 사실은 개신교를 믿는 지미 카터 대통령과 회담할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거라고 했다가 당황하는 등 속으론 깊은 정교회 신앙이 뿌리박혀있었다. 몰래 정교회 박해를 완화한건 덤.[39] 작중 연설문에는 '인디라 간디 수상'이라고 적혀 있어야 하는데 '마가렛 대처 수상'이라고 잘못 적혀 있었던 것이다.[40] 치매로 치면 중증도 정도로, 기억력이 서서히 나빠지면서 고집이 세지는 시기다. 즉 치매로 인한 옹고집일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41] 소련 정치국원이었던 아르비드 펠셰를 말한다. 라트비아 출신으로 1966년에 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되어 1983년에 노환으로 사망했다.[42] 짐볼 갖고 놀듯 올라타서 콩콩 튀고 다니는 목마이런 거[43] 로널드 레이건은 젊은 시절 B급 배우로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몇 편 찍기도 했고, 아이오와 주에서 라디오 DJ로 활동하기도 했다.[44] 서기장 집권(1982년) 당시 68세, 사망한 해(1984년)의 연령은 69세, 서기장 역임 기간은 1년 3개월.[45] 서기장 집권(1984년) 당시 72세, 사망한 해(1985년)의 연령은 73세, 서기장 역임 기간은 고작 362일로 역임 1주년을 3일 정도 남긴 채 사망했다.[46] 서기장 집권(1985년) 당시 54세, 퇴임 당시(1991년) 60세, 서기장 역임 기간은 6년 5개월, 사망한 해(2022년)의 연령은 91세[47] 서기장 집권 당시 54세로, 1980년대 중반 당시에는 다소 높은 연령이었지만 평균 연령이 70대 초반에 달하는 초고령 노인 투성이였던 소련 정치국원들 중에서는 그나마 파릇파릇한 젊은이였다.[48] 그 와중에 "O!!"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점점점 더 커져가는 게 포인트.[49] 아드리아해를 끼고 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잔재인 헝가리 왕국에는 "바다 없는 나라의 해군성" 이 실제로 있었다.[50] 심지어 국회 해산권한도 있다.[51] 대략 40초 ~90초 동안 일하고 돌아왔는데, 40초밖에 노출되지 않았는데도 한동안 주먹을 쥘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자기희생을 기록하기 위해 찍은 사진사는 바닥에서 올라오는 방사선 때문에 사진이 하얗게 탄 모습을 발견했다. 또한 투입된 병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age(1986-04-26)]년이 지난 지금도 대표적인 방사능 피폭 증상인 강렬한 금속 특유의 비린내 맛이 느껴진다고 한다.[52] 폴란드의 경우 소련 위성국이었던 1950년대에도 카틴 학살에 대한 사죄와 동부 영토 반환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질 정도였다. 폴란드 출신으로 국방장관이었던 콘스탄틴 로코솝스키도 공격해서 추방해 버린 건 덤.[53] 러시아어에 이 두 색깔을 합쳐 부르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보라색을 영어로 옮길 때 violet과 purple로 구분해야 하듯이, blue를 러시아어로 번역할 때는 문맥을 보고 파악해야 한다.[54] 예: голубая мечта(직역하면 하늘색 꿈, 의역하면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 голубая кровь(직역하면 하늘색 피, 의역하면 고귀한 핏줄로 영어의 blue blood와 뉘앙스가 일치) 등[55] 알렉세이는 레프 톨스토이와는 먼 친척이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성씨만 같은 남남 수준이었지만.[56] 국내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찬드라 쿠마리 구룽 사건 참조.[57] 이와 비슷하게 당시 조선족들 중에서는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어 북한으로 망명한 경우도 있었다.[58] '서리 할아버지'라는 뜻으로 러시아판 산타클로스에 해당한다. 손녀인 스네구로치카와 같이 행동하며 손녀가 명단을 만들면 그걸 참고해 선물을 준다. 그럼 손녀가?[59] 타이핑은 아니지만, 조정래는 정말로 아들과 며느리에게 태백산맥 필사를 시켰다. 그리고 그걸 따라서 필사한 독자들도 있다.[60] 다만 이 또한 스탈린 사후에나 가능하던 이야기다. 스탈린 시절에는 애초에 사면이나 석방이란 것 자체가 많이 없었고, 수용소에서 형기를 다 이행하고 석방되더라도 거주 제한을 받아 자신이 가고 싶은 곳에 가서 사는 대신 어디 시베리아의 다른 마을이나 중앙아시아에서 감시를 받으며 살아야 했다. 다행히 스탈린이 죽은 후에는 이렇게까지 하진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