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28 10:35:43

연설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팝픈뮤직의 수록곡 명칭 연설에 대한 내용은 猿の経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 개요2. 웅변?3. 상세4. 좋은 연설 조건의 제시5. 연설과 발표(프레젠테이션)의 차이점6. 연설을 잘하는 사람들
6.1. 대한민국6.2. 국외
7. 나무위키에 문서가 작성된 연설
7.1. 현실7.2. 가상
8. 관련 문서

1. 개요

연설(, speech)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는 그렇게 함으로써 청중을 설득하는 것. 그러니 발표와 마찬가지로, 준비가 다 되었다면, 우선 경험을 바탕으로 목소리의 높낮이와 세기, 속도, 억양 등을 녹음기로 측정한 뒤, 발표하는 연습부터 해보는 것이 좋다.

한국어로 '연설', '웅변', '변론'은 마치 각각 매우 다른 개념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의외로 본래 '연설'의 이론과 실제가 만개하였던 고대 로마에서 'oratio'라고 하면 위 세 가지를 다 지칭하는 것이었다. 인간의 특질은 비단 이성(ratio)뿐만 아니라 말(oratio)에 있는 것이라는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주장은 로마인들이 연설을 얼마나 중시하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적 분류에 의하면, 연설은 정치연설, 식장연설, 법정연설로 구분해 볼 수 있다(논자에 따라 번역어를 좀 달리 하고 있기는 하다). 각각의 알기 쉬운 예로, 국회에서의 연설, 축사, 변호인의 변론 따위를 꼽아 볼 수 있겠다.

수사학 역시 본래의 의미는 연설을 잘하기 위한 학문이다.

2. 웅변?

이걸 멋들어지게 잘 하는 것을 웅변(雄辯)이라고 하는데, 대한민국에서는 1970년대 이래로 초등, 중등 교육과정에서 웅변을 장려했고 그 때문에 각종 웅변대회가 열리고 심지어 이걸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웅변학원'이 대유행했다. 1970년대에 유행한 건 간단한 이유였는데, 바로 반공 기조 때문이었다. 냉전이 극에 달한 시기[1]에 대중을 휘어잡는 연설 능력이 중요시되었고, 이것이 영미권 엘리트 교육에서의 "스피치"와 결합된 희한한 형태로 발전하여서이다.

어쨌든 이 웅변학원이 어찌나 유행했던지, 태권도 학원에서 웅변을 덤으로 가르친 곳들도 있었다. 심지어 2010년대 후반까지도 있었다. 웅변대회에 도복을 입히고 애들을 내보낸 사진을 당당하게 광고 현수막으로 내붙였다. 그런데 2000년대 후반에도 웅변대회가 있었다는게 더 놀랍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기점으로 화해 무드로 바뀌고 결정적으로 2000년대 중반기부터 군사력으로도 남한이 북한을 압도하게 되는 등, 사실상 체제경쟁이 의미가 없어지자 2000년대 후반부터 웅변학원이 줄어들었고 2020년대 들어선 거의 전멸하였다. 웅변대회가 없으니 굳이 웅변을 배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며, 영미권 제도교육(프레퍼레이션 스쿨)에서 중시하는 스피치 능력은 굳이 말하자면 웅변과 다른 '연설'의 영역이다.

웅변대회에서는 내용, 음성, 태도, 반응 등의 영역으로 나누어 학생들의 웅변을 평가했다. 한국어 웅변에서는 한동안 특유의 말투와 발성을 가르쳤으며, 매우 규격화되어 있었다. 어구의 첫 음절을 (특히 장음) 상승조로 처리한다든지, 내지르듯 호전적으로 발성한다든지, '이 연사 힘차게 외칩니다/강력하게 주장합니다' 류의 상투어로 연설을 끝맺는다든지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두 손을 높이 치켜들면서 마무리하는 건 덤.

이때 웅변의 트렌드는 이성도 이성이지만 '피를 끓게 만드는' 감성에 호소하는지 여부를 매우 중요하게 보았다. 현대 대한민국에서는 이보다 좀더 차분한 스피치가 대세가 되었으나, 북한에서는 아직도 이런 호전적인 웅변을 가르친다. 물론, 대한민국에서는 굳이 이렇게까지 호전적인 웅변이 필요없는 사회이기도 하다.

3. 상세

연설은 대중을 상대로 한 공식 화법인 만큼 연설 능력은 정치인에게 매우 중요한 소양이며[2] 그리고 더 나아가 전 국민과 세계를 상대해야 하는 국가 지도자에게는 거의 반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능력이다. 아래에 제시된 관련 문서만 봐도 국가 지도자와 관련된 것들이 많고 우리나라에서도 대한민국 대통령의 연설 화법이 구설수에 오른다거나 각 언론사에서 대통령의 신년 연설 중 많이 언급된 단어의 횟수를 분석하여 한 해의 정부 정책 기조를 예측하는 등 대통령의 연설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중에게 큰 영향력을 미쳐왔다. 리더십이 중요시되는 현대 사회에서 효과적으로 연설해야 하는 주체는 정치인 뿐만 아니라 특정 사회 집단의 리더에게도 요구되고 있으며 청자 입장에서도 연설에 대한 기본적인 전략과 지식을 익혀 비판적으로 연설을 들을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효과적인 연설 전략을 대략적으로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연설에는 논리정연하고 문법적으로 큰 하자가 없는 연설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감 있는 말투와 태도가 없으면 청중을 설득시키기 힘들다. 사전에 내용을 미리 만들어서 그것을 읽어나가거나 외우는 방식으로 연설하기도 하지만 즉석에서 내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는 다른 사람들이 스크립트를 짜줄 수 있으나 후자는 배경지식이 풍부해야 하며 비록 즉석이기는 하지만 화자의 머릿속에 어느 정도의 계획과 방향을 구상하여야 한다.

청중에 대한 분석은 연설에 있어서 특히 중요시된다. 연설에는 학교나 회사처럼 연설자가 알고 있는 청중을 대상으로 하기도 하지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행하는 연설이 훨씬 많아서 청중 분석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연설자와 청중 간의 우호도나 연설 주제에 대한 관심의 정도, 찬반 여부 정도는 대략적으로 조사한 다음 임하는 것이 좋다. 만약 청중이 연설 주제에 대해 관심이 많고 연설자에 우호적인 입장이라면 연설자가 주장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표현해도 좋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오히려 청중에게 반발심만 느끼게 하기 때문에 공감대 형성이 우선시된다. 그리고 모든 연설의 기본은 청중들도 쉽게 이해 가능한 일반인 수준의 단어들로만 구성하는 것이 좋은 편이다. 그래야 청중들이 연설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서 청중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설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연설자 자체에 대한 공신력도 연설의 성패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데 연설자의 공신력을 높이는 요소에는 연설 분야와 관련된 전문성 보유 여부나 지식 수준, 연설자에 대한 사회적인 인지도 등이 있다. 일례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와 관련된 김연아의 연설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받는데, 성공 요인 중 연설자 김연아가 동계 올림픽이라는 연설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만큼 그 분야에서 사회적 인지도도 높았기 때문이다. 만약 동계 올림픽과 전혀 연관이 없거나 전문성이 낮은 연설자가 같은 연설을 했다면 그만큼 성공적인 연설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같은 설득 담화인 토론에서는 감정에 호소하여 말하기가 금기시되는 반면 연설에서는 논리정연하게 말하는 만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중시된다. 아무리 논리정연한 연설이라도 청중의 공감과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없다면 결코 좋은 연설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논리정연함 없이 일방적으로 감정에 호소하는 연설은 지양되어야 하며 둘 사이를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연설은 일정한 형식에 맞춰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형식에 꽉 맞춘 연설은 청중에게 지루함을 느끼게 만들기 때문에 적절한 유머 사용으로 청중에게 심적 여유를 주고 주의를 집중시키는 것도 좋은 연설 전략 중 하나이다.

4. 좋은 연설 조건의 제시

주의: 사람마다 각각 자신에게 맞는 연설 방법이 있음을 숙지해야 한다. 밑의 조건들은 제시하는 조언에 불과하며 사람에 따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연설에 있어서 의사소통에는 수많은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1. 좋은 연설을 하려면 우선 진실해야 한다.
    청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진실한 연설은 효과적인 연설이다. 모든 연설은 일회적인 이벤트가 아니며 연속적인 커뮤니케이션 과정의 한 부분이라는 점이다.
  2. 연설은 명쾌해야 한다.
    ‘구렁이 담 넘어가는 식’ 으로 좋다는 것인지 나쁘다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해야 된다는 것인지 말아야 된다는 것인지도 알 길이 없는 식으로 하면 효과적인 연설이라고 할 수 없다. 또는 입장이 난처해서 말할 수 없으면 현재로서는 말할 수 없다고 명백하게 밝혀주는 것이 좋다.
  3. 연설은 이해하기 쉽고 간결해야 한다.
    연설의 내용이 복잡해지고 맺고 끊는 맛이 없어 자꾸만 늘어지는 경우에 청중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간결한 연설은 전체적으로 잘 조직되어야 한다.
  4. 연설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반대의 예로 웅변을 생각하면 쉽다. 웅변은 특수한 연설의 예이다. 역동적이되 표정, 시선, 어조가 대화처럼 자연스러워야 한다.
  5. 연설은 적절해야 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는 연설이 좋다. 결혼식, 장례식, 동창회 등 상황에 걸맞지 않는 자신만의 관심사를 늘어놓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적절한 연설을 위해서는 청중에 대한 고려가 우선이다.

5. 연설과 발표(프레젠테이션)의 차이점

발표는 사실이나 결과를 알림(정보 전달)이라는 의미가 중점이다. 이것은 일종의 '보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발표의 한 축은 설득적인 주장도 있는데, 논문 발표와 같은 경우는 발표 내용이 사실이나 결과가 아니라 주장이다. 그렇지만 발표는 언제까지나 '내용 전달'이 중심으로 음성과 몸짓을 통해 청자를 직접 설득하는 행위가 아니라 사실이나 견해 등의 내용을 전달함으로써 청자가 내용을 파악하거나 그 견해에 동의하도록 하는 말하기이다. 또한, 발표는 표현 방식보다 표현 내용을 중요시한다. 즉, 내용을 어떻게 구조화하여 제시하느냐가 중요하므로 파워포인트와 같은 매체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발표는 '내용 전달, 일 대 다'라는 의미를 중심으로 하는 반면, 연설은 '청중, 일방성'이 중심 의미이다. 연설은 청중에게 일방적으로 자신이나 집단의 주장을 펴거나(의견 전달) 사실을 설명하여 전달하는 담화 유형이다. 주장 연설은 당연히 설득이 목적이고, 정보 전달 연설에 포함되는 강연(강의)은 발표의 '보고'라기 보다는 청중의 '이해'가 주 목적이므로 그 성격이 좀 다르다.

또한 연설에서는 강연 내용과 그 상황에 따라 적절한 준언어적/비언어적 표현도 사용하고, 이에 청중들이 잘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설득 전략을 이성적(논리적 근거)/감성적(감정에 호소)/인성적(청중과 화자의 됨됨이)으로 분석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연설의 설득력을 높여주기 위해 갖추어야 할 요건이자, 효과적으로 연설을 보다 좋게 할 수 있는 비법이다.

결론적으로, 발표는 정보 전달(일종의 '보고')이 주 목적이고, 설득을 목적으로 할 때에도 직접 설득 보다는 동의시키기에 가깝다. 연설은 설득이 주 목적이고, 화자에게 공식적으로 신뢰성을 높여주기에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는 이해시키기에 가깝다.

6. 연설을 잘하는 사람들

6.1. 대한민국

6.2. 국외

7. 나무위키에 문서가 작성된 연설

7.1. 현실

7.2. 가상

8. 관련 문서


[1] 1970년대는 냉전시기 전 세계적으로 보면 오히려 미중수교 등 화해무드가 번지던 때였지만 대한민국 한정으로 남북의 체제경쟁이 극한에 다다른 때였다.[2] 미국만 보더라도 오바마, 빌 클린턴, 레이건 전 대통령들도 대권을 노리기 전 전국적 지명도를 다진 계기가 대통령 후보 찬조 연설이었다. 애초에 웅변 능력 하나로 독일 총통 자리에 올랐다고 알려진 인물도 있다.[3] 해당 연설은 흔히 '작통권 연설'로 통한다. 어째 익숙한 말이 나온다면 기분 탓이 아니다. 바로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라는 명대사를 만들어낸 바로 그 명연설이 바로 즉흥적으로 연설을 한 것이다.[4] 간결하고 쉬운 단어를 사용했던 링컨의 연설은 현학적인 만연체가 표준이었던 19세기 당시에는 무식하다고 받아들여졌으나, 링컨보다 먼저 연설했던 에드워드 에버렛은 링컨이 고작 2분간의 연설로 자신이 한 2시간짜리 연설보다 많은 의미를 담았다며 찬사를 보냈고, 에버렛의 말 대로 링컨의 연설은 명연설로 재평가받았다.[5] 반면 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은 남의 연설문을 마구잡이로 베껴서 욕을 심하게 먹었다. 대통령에 당선된 현재도 전임자 오바마는 비판자, 싫어하는 사람들도 '말만 잘하는 놈'이라 욕하는 반면 바이든은 그런 평조차 없고, 몸은 오히려 더 노쇠한만큼 딱히 카리스마적인 연설로 대중에게 임팩트를 남긴 적은 아직 없다.[6] 무솔리니는 당대 기준 꽤나 고학력이었고, 공산당 시절부터 그 글재주를 인정받아왔으니 연설 내용의 질적 차이는 당연할 수밖에 없다.#[7] 다만 히틀러는 쇼맨십과 자극력 등 선전선동능력이 탁월했을 뿐이고 감정 표현과 언어 능력은 비논리적이거나 과격하거나 하는 등 여러모로 좋지 않았다. 반면 무솔리니의 경우 쇼맨십은 물론 연설 내용도 굉장히 좋았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나라 체급이[8] 참고로 공식적인 직위이며 김대중, 노무현 시절의 경우 당연히 청와대 소속 공무원이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