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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2 14:25:56

강원국

파일:청와대 흰색 로고.svg 대통령비서실 연설비서관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
초대
윤태영
2대
강원국
연설기록
이태규
<colbgcolor=#082e59><colcolor=#fff> 참여정부 제2대 대통령비서실 연설비서관
강원국
姜元國 | Kang Weon-kug
파일:bluehouse_Kang.jpg
출생 1962년 7월 8일 ([age(1962-07-08)]세)
전라북도 전주시
학력 전주신흥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외교학 / 학사)
종교 개신교 (예장통합)[1]
경력 대우증권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비서실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실 행정관 (국민의 정부)
대통령비서실 대변인실 행정관 (참여정부)
대통령비서실 연설비서관 (제2대 / 참여정부)
효성그룹 비서실 상무
KG그룹 상무
메디치미디어 편집주간
전북대학교 기초교양교육원 초빙교수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 석좌교수
우석대학교 객원교수
링크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 |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3. 대통령의 글쓰기4. 출연5.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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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정무직공무원 및 작가. 국민의 정부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연설담당 행정관 및 비서관을 역임했고, 베스트셀러 《대통령의 글쓰기》및《회장님의 글쓰기》를 저술했다.

2. 생애

전주신흥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었던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 비서실에서 연설문을 담당하였다. 실은 원래 글쓰기에는 젬병이었으며, 그런 주제에 꿈만 야무져서(본인의 표현이다) 기자가 되려고 했지만 당연히 떨어지고 미련이 남아 신문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계산에 홍보실을 지원했다고 한다.

1990년, 갓 입사한 신입사원일 때가 대우증권 창립 20주년이었는데, 20주년 사사(社史)를 만드는 임무를 덜컥 맡게 되었다. 60대 중반의 퇴역 언론인인 작가를 보조하는 게 그의 임무였는데, 얼마 안 가 그가 다른 회사 사사를 표절하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상사에게 이야기하자 가서 따지고 계약금을 받아오라는 지시를 받았고, 어찌어찌 그렇게 했는데 문제는 '이제 시간이 없으니 니가 해'라는 명령을 들었다는 거였다.

기한 내에만 쓰면 된다고 했고, 본인 왈 '쓰라니 썼다. 괴발개발 썼다.'라고 한다. 겉만 그럴싸하게 고급 장정에 컬러 사진을 잔뜩 넣어서 말이다. 웃기는 것은 글을 보는 사람은 없었고, 잘 만들었다는 말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졸지에 '글 잘 쓰는 사람'이 된 그는 사보와 사내방송 일을 했고, 하다 보니 정말로 솜씨가 늘었다. 김우중이 전경련 회장이 되자 회장비서실로 자리를 옮겨 김 회장의 연설문 작성을 보좌하는 일을 맡았고, 그 인연으로 김대중 대통령, 그리고 후임인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실에 합류하게 된 것.

연설비서관이 될 때의 일화가 재미있다.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김대중 대통령이 서울을 출발하면서 연설하는 모습을 TV로 보면서 아내에게 "대통령 연설문은 어떤 사람들이 쓰나? 나도 저런 연설문 쓸 수 있는데...."라고 말했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고도원 연설비서관이 청와대에서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가이드라인대로 경축사를 써서 보내자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는데, 당시 청와대가 어디 있는지도 몰라서 무작정 택시를 탔다가 '청와대로 가자'는 말이 나오지 않아 광화문에서 내린 뒤 물어물어 청와대를 찾아갔다. 그리고 박선숙 공보기획비서관이 "몸은 튼튼해요?"라고 묻더란다. 글을 쓰겠다고 온 사람한테 몸은 왜 묻는지 의아했는데, 출근하고 사흘이 못 가 그 이유를 알았다고 한다. 대통령 연설문을 쓰는 일은 '노가다'였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이후 2000년 청와대 공보수석실 행정관, 2003년 대변인실 행정관을 거쳐, 2004년부터 참여정부 임기 말까지 노무현 대통령 연설비서관으로 재직하였다.

본인 회고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뒤 박지원 당시 비서실장이 찾아와서 그쪽을 도와주라며 국민의 정부 청와대의 명예를 걸고 제대로 하라고 했다. 그 때문에 대부분 후임 대통령이 들어오면 그만두는 자리임에도 졸지에 노무현 대통령 인수위에 가서 연설문 작업을 도와줬지만 자기 글을 안 찾더라는 것이다. 그 때문에 후임이 할 거니깐 나갈 준비만 하고 있었는데, 인수위의 마지막 일인 취임식 당시 노무현이 본래 생각하지 않았던 오찬과 만찬에도 연설문을 찾더라는 것이다. 남들은 노 대통령이 연설문 써놓은 것을 잘 안 쓰니까 안 써놨었는데 갑자기 연설문을 찾으니 패닉상태였는데, 본인이 써놨던 게 있어서 급하게 가져갔는데 노대통령이 그걸 사용해 오찬,만찬 연설을 하셨고 취임식이 끝난 뒤 노무현이 인수위로 찾아와 강원국 비서관을 부르더니 "낭패를 볼 뻔 했는데 덕분에 해결했다. 잘하셨다."라고 칭찬해줬다. 그 때문에 국민의 정부에 이어 참여정부에서도 계속 연설담당 비서관으로 일했다고.

김대중 대통령 이전까지 "대통령의 연설문 및 말씀자료를 작성하는 것은 막중한 임무"라며, 연설비서관이 아닌 공보수석(現 홍보수석비서관)이 담당했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 이후 연설문 및 말씀자료 작성업무가 연설비서관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즉, 우리나라 연설 비서관의 1세대격 인물. 강원국 비서관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도 말과 글에 능하다고 정평난 둘에게서 배울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고 한다.

대통령의 글쓰기를 보면 알겠지만 청와대의 연설비서관으로 일하면서 선대 대통령들의 연설문 관련한 것들도 알아냈는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에 대한 것도 간략히 썼다. 군인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은 권위적이고 강인한 느낌, 노태우는 전문가에게 맡긴 걸 사용했고 김영삼도 기본적으로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언론이 딱 캐치할 만한 부분만 개인적으로 추가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단순한 문장력만으로는 노태우 쪽이 제일 유려하다고 한다. 노태우는 평소에 연설문을 외우는 경향이 있어, 유엔총회에서 연설할 당시 마지막 페이지가 사라진 불상사가 있었지만 영문[2]을 미리 외워둬서 외운 대로 하는 것으로 무사히 마무리지은 적이 있다고 한다.

팟캐스트 맘마이스에 출연해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과의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풀영상 이 때 유시민을 깐(?) 적도 있다. 유시민이 글쓰기 방법을 알려주는 책을 집필했는데, 강원국은 이를 두고 "유시민은 실력이 지나치게 뛰어나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사정을 잘 몰라서 도움이 안 된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내가 잔기술을 알려주겠다"고 발언했다. 해당 장면

사실 과거 참여정부 당시 유시민에게 도움을 받아 연설문을 쓴 적이 있는데, 노무현은 연설문을 보더니 "유시민 씨의 생각이 글에 있다. 내 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당사자는 밤새 작업해서 PC방에서 송신했다는 그 연설문이 단칼에 까였다고 한다.

위장이 굉장히 좋지 못하다고 한다. 사실 선천적인 것이 아니고 스트레스로 인한 후천적인 것인데, 어느 날 청와대로 가는 출근길에 급똥 때문에 서울의 모 지하철역에 있는 화장실에 들렀다가 흑역사를 겪은 적이 있다. 출근시간이라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고 소변기 칸은 그래도 몇 개 남아있었지만 대변기 칸이 꽉 차 있는 상태였고 한참을 기다려도 단 한 사람도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도저히 참지 못하고 대변기가 아닌 소변기에다가 용변을 봤다고(...) 한다.

'나는 말하듯이 쓴다'에 남긴 회고에 따르면 교회 예배 도중 급똥 때문에 매우 난처한 상황에 처한 적이 있단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냥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에 다녀오면 되지만, 하필이면 그 순간 목사가 "이 자리에 신천지 추수꾼이 있는 거 다 압니다. 당장 나가세요."라고 말해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다고.

3. 대통령의 글쓰기

청와대에서 다년간 대통령 연설문을 담당했던 경험을 살려 2014년 2월에 《대통령의 글쓰기》를 출간했다. 우리나라의 정치풍토상 호불호가 극도로 갈리는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보니, 출간 당시에 진보 성향의 독자들에게 잠시 주목받았을 뿐 엄청난 호응을 받지는 못 했다. 그저 꾸준히 팔리는 정도였는데...

2016년 10월 최순실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을 수정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것으로 촉발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어마어마한 반사이익을 받았다.[3] 이는 김어준과 유튜브의 공도 큰데, 그 시기 언론의 신뢰도가 JTBC 하나 외엔 모조리 바닥을 쳐 대안언론으로 유튜브가 부각되는 시점이었는데, 그때 영향력이 날로 상승하던 김어준의 파파 이스에서 김어준이 그를 게스트로 초대했는데, 이때 입담이나 인터뷰 내용 등이 엄청난 파급력을 보여주어 교보문고에서는 2016년 10월 24일[4]부터 동년 11월 2일까지 열흘 동안의 판매량이 그 이전 열흘보다 76.6배나 증가했다. 2015년의 같은 기간과 비교해도 자그마치 25.5배나 늘어난 것이다. 교보문고 이외에도 YES24나 알라딘 등 인터넷 서점에서도 2016년 11월 첫째주 및 둘째주에 전부 종합 순위 5위권, 인문 분야 순위 1위를 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책이 팔리면서 강연도 많이 다녔는데, 강연자로서도 입담과 소재가 좋아서 평이 좋았다고 한다.

만일 이 책이 두 전직 대통령의 연설문을 소재로 한 게 아니어서 보수 성향 독자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한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지 않았다면 이 책은 절대로 이와 같은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대입 논술고사와 구직 시 자소서 쓰는 것을 빼고는 글쓰기와 거리가 너무나 먼 우리나라의 현실 및 역시 글쓰기 만큼이나 연설이라는 것에 큰 의미나 관심을 두지 않는 풍토 등을 생각했을 때, 대통령의 연설문을 소재로 잡아 글쓰는 법을 설명한 책이 인기를 끌 리 없다.

이렇게 잘 팔리면서 2017년 5월 1일부로 교보문고 단독 리커버판이 새로 나왔는데[5], 본인도 아이러니함을 느꼈는지 감사의 글에서 이 사태에 대한 심경을 고백했다. 제목부터가 '부디 새 정부에서는 <대통령의 글쓰기>가 잘 팔리지 않기를'이다.. "최순실 씨나 박근혜 대통령에게 고맙다는 인사라도 해야 하나? 씁쓸하다. 화장실에 가서 혼자 웃을 수도 없고, 내겐 '웃픈' 현실이었다."라나. 또한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서는 '자기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지도자와, 그런 지도자 아래서 침묵으로 자리를 연명하려 했던 참모들의 합작품이다. 말과 글이 가능하지 않은 대통령, 영혼 없이 받아쓰기만 하는 참모들 사이에서 최순실 씨는 얼마나 이 나라를 갖고 놀기 좋았을까.'라고 표현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말과 글의 중요성과 가치를 알고 그것을 통해 집권한 첫 대통령이고, 노무현 대통령은 한 발 더 나아가 '토론공화국' '나토(노 액션 온리 토킹) 정부'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토론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역주행을 시작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그게 잘못된 방향이었다는 것을 처참하게 확인시켜 주었다는 것이 그의 생각.

그리고 우리 사회는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사람이 대접받지 못하고, 모난 돌이 되어 정 맞는다면서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나대면 나만 손해 본다는 사실을. 이유를 묻지 말고, 호기심이나 궁금증도 갖지 말아야 한다. 그런 것 갖기 시작하면 자신만 괴롭다. 봐도 못본 척, 알아도 모른 체하며 자기 앞에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해야 한다. 옆에 사람이 죽어나가도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 우리 모두 사이코패스가 돼야 한다. 하지만 이런 사회를 정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부정, 부패, 비리, 농단은 말 없는 사회를 좋아한다. 말과 글이 죽은 사회는 그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다. 아무도 그것에 시비 걸지 않고 문제 제기하지 않는다. 보고도 모른 체한다. 고발자는 배신자가 되고 이의를 제기하면 충성심이 부족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라고 했으며, 말과 글이 살아나야 정의가 바로세워진다는 것이 이 책의 주제이자 그의 주장.

4. 출연

5. 저서



[1] #, 과천교회 안수집사이다.[2] 노태우는 육군사관학교에서 영어 교관으로서 사관생도들을 가르친 적이 있었을 정도로 영어를 꽤 잘했다.[3] 대통령의 연설문은 국가 보안이며, 초안이나 연설문을 써주는 스피치라이터는 연설담당비서관이라는 공식적인 직위를 가졌다. 이 연설문은 국정서류와 마찬가지로 홍보수석과 비서실장의 대동하에 끝까지 확인하여 직접 낭독까지 하고, 이 연설문을 쓸지 말지 최종승인도 대통령의 몫이다. 그런데 아무런 직책도 없고 공식적으로 알려지지도 않은, '대통령의 친구'에 불과한 일개 일반인이 이런 일을 했다는 게 드러난 것이다. 도저히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후에 그 '친구'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일에 개입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졌다. 연설문에 관여한 정도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던 것.[4] 최순실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을 받아보고 자기 마음대로 고쳤다는 사실이 확인된 날짜[5] 노무현 대통령의 육필원고로 표지 디자인이 바뀌고 감사의 글이 추가된 정도. 내용엔 딱히 달라진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