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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아나스타스 이바노비치 미코얀 (러시아어) Анаста́с Ива́нович Микоя́н Anastas Ivanovich Mikoyan |
아나스타스 호브한네시 미코얀 (아르메니아어) Անաստաս Հովհաննեսի Միկոյան Anastas Hovhannesi Mikoyan | |
출생 | 1895년 11월 25일 |
러시아 제국 티플리스현 보르찰라구 사나힌 (現 아르메니아 로리주 사나힌) | |
사망 | 1978년 10월 21일 (향년 82세) |
소련 러시아 SFSR 모스크바 (現 러시아 모스크바) | |
묘소 | 노보데비치 묘지 |
재임기간 | 제5대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 주석 |
1964년 7월 15일 ~ 1965년 12월 9일 | |
부모 | 아버지 호브한네스 네르세소비치 미코얀 어머니 타마라 오타로브나 미코얀 |
형제자매 | 누나 아쉬헨 남동생 아르툠 |
배우자 | 아슈켄 투마냔 |
자녀 | 세르고, 스테판, 바노, 알렉세이, 블라디미르 |
종교 | 무종교 (무신론) |
소속 정당 | [[소련 공산당|]] |
주요 서훈 | 사회주의노력영웅 10월 혁명 훈장 레닌훈장 (6회) 적기훈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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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련의 정치인.제5대 최고회의 상무회 주석을 역임했으며, 대외적으로는 무역부 장관으로 활동했을 시기의 업적으로 유명하다.
2. 주요 약력
- 1953.3. 소련 국내외무역부 장관 (1953.3.15.~1953.8.24.)
- 1953.8. 제3대 대외무역부 장관 (1953.8.24.~1955.1.22.)
- 1964.7. 제5대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 주석 (1964.7.15. ~ 1965.12.9.)
3. 생애
1895년 지금의 아르메니아 로리주에서 빈농이었던 호브한네스 미코얀과 타마라 미코얀의 3남매 중 둘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1906년 티플리스의 고등교육기관인 네르시션 학교와 성모 에치마이진 교회 산하 제보르갼 신학대학에서 아르메니아 정교회 사도로서 신학 교육을 받았으나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종교에 대해 회의감을 느꼈고 1915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에 입당해 볼셰비키에 가입하였다.
1917년 러시아 2월 혁명이 일어나자 이에 대한 영향으로 바쿠 혁명을 주도했으나 체포되었고 1919년 2월이 되어서야 석방된다.
같은 해 10월 모스크바로 소환되어 전러시아의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2년부터 1924년까지 로스토프나도누의 당비서로 재임했다.
4. 여담
- 스탈린의 친구였으나 결국 눈 밖에 났는데 얼마 안 가 스탈린이 죽는 바람에 숙청을 피하는 행운(?)도 있었다. 이런 점에서 뱌체슬라프 몰로토프와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아예 당에서 쫓겨났다가 말년에야 겨우 복당이 허락된 몰로토프보다 더 평안한 여생을 보냈다.
- 살벌한 권력투쟁으로 유명했던 스탈린 시기 소련 고위 정치인으로는 이례적으로 온화하고 상식적인 성격에 권력욕이 별로 없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성격에 더해 한편으로는 약삭빠르고 처세술에 능한데다 상술했듯 운까지 따라줘 소련의 고위 정치인 중에서는 레닌, 스탈린, 흐루쇼프, 브레즈네프의 시대를 모두 겪으면서도 큰 고초를 겪지 않고 말년까지 자리를 유지해서 '일리치때 부터 일리치때 까지'[1] 숙청당하지 않고 고위직을 역임하면서 천수를 누린 몇 안되는 인물이다. 이런 미코얀의 미꾸라지같은 처세술은 당시에도 유명했는지 '미코얀은 빗방울을 피할 수 있다'는 식의 농담이 많았다. 비 오는 날 스탈린이 모든 정치인을 소환했는데 혼자만 젖지 않은 채 나타났다든가, 밖에 폭우가 쏟아지는데 우산이나 비옷을 챙길 필요가 없다는 식.
- 미식가였으며 직접 요리도 즐겨 하는 등 식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1936년 무역부 장관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각종 미국 요리들을 접하고는 호평하여 소련에 햄버거, 도넛, 시리얼, 아이스크림, 팝콘, 토마토주스, 토마토 케첩 등을 소개하였다. 특히 햄버거는 '미코얀 커틀릿'이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다만 곧이어 터진 제2차 세계 대전 때문에 널리 보급되지는 못해서, 햄버거가 널리 퍼진 것은 소련 붕괴 후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등에 맥도날드가 들어오면서부터였다. 그 외에 급식 시스템 확립에도 애썼으며 소련 고위 정치인으로는 이색적으로 요리책을 쓰기도 했다. 요리책의 제목은 맛있고 건강한 음식에 대한 책(Книга о вкусной и здоровой пище)으로 미코얀의 단독저작은 아니지만 편찬에 적극적으로 관여했으며, 현재도 러시아를 비롯한 구소련권 가정에서 많이들 애용되고 있는 책이다. 또한 아이스크림을 좋아해서 스탈린으로부터 "동무는 공산주의보다 아이스크림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는 농담을 듣기도 했다. 미국의 유명 아이스크림인 에스키모 파이가 프랑스에서 크게 성공하는것을 보고 소련에도 들여왔는데, 하드 형태의 아이스크림을 에스키모로 부르게될만큼 크게 히트하여 소련 붕괴 후 그 위성국가들이 현재도 바 형 하드 아이스크림을 에스키모라고 부른다. 재미있는점은 북한이 이 미국 아이스크림을 소련것으로 착각했는지 현재 북한에서도 아이스크림을 에스키모라고 부른다.
- 한반도와도 어느 정도 인연이 있는 사람이다. 8월 종파사건의 여파를 우려한 소련 정부 측으로부터 사태 수습의 임무를 부여받아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미코얀 및 그와 함께 방문한 펑더화이의 압력을 받은 김일성은 일단 꼬리를 내렸지만, 머지않아 자신의 뜻대로 상황을 정리하면서 1인 지도체제를 확립하게 된다.
[1] 레닌과 브레즈네프는 부칭이 일리치로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