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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6 03:36:14

선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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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정체3. 역사4. 해석
4.1. 신학적 해석
4.1.1. 천주교4.1.2. 로마서4.1.3. 선악과를 만든 이유
4.2. 신화학적 해석4.3. 기타 해석
5. 생명나무 관련6. 대중매체

1. 개요

<colbgcolor=#f5f5f5,#2d2f34> 언어별 명칭
한국어 선악과 ()
영어 Forbidden fruit,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1], Adam's apple[2]
중국어
일본어
야훼 하느님께서는 보기 좋고 맛있는 열매를 맺는 온갖 나무를 그 땅에서 돋아나게 하셨다. 또 그 동산 한가운데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돋아나게 하셨다. 야훼 하느님께서 아담을 데려다가 에덴에 있는 이 동산을 돌보게 하시며 이렇게 이르셨다.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 마라. 그것을 따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는다."
창세기 2장 9, 15~17절

창세기에 등장하는 금단의 열매.

2. 정체

선악과의 정체는 호사가들의 오랜 논쟁거리다. 신학적 관점에서는 인간이 야훼를 배신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물로만 여기며, 실존하는 특정 나무의 열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서유럽 전통에서는 사과로 묘사된다. 그러나 성경 원문에는 사과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사과라고 해석하고 있는 것은 오직 가톨릭을 포함하는 서방 교회뿐이다. 사과가 선악과로 여겨진 것은 5세기 후반부터인데, 각종 신화들[3]의 영향이라는 설과 라틴어로 사과와 이 같은 발음(Malum)이라서 생긴 말장난이라는 설이 공존한다. 그리스 신화와 켈트 신화, 북유럽 신화에서는 사과를 신성한 과일로 여겼고,[4] 그에 따라 다른 종교를 우상으로 여기며 배척한 가톨릭에서는 사과를 악의 근원이 되는 과일인 선악과로 폄훼하였다는 것이다.

유대인의 고향인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가장 흔한 과일은 무화과였기 때문에, 당시 유대인 사이에서는 무화과가 과일의 대명사였다. 그러므로 굳이 이름을 말할 필요까지도 없다고 생각한 무화과를 가리키거나, 최소 모티브일 수 있다. 무화과가 나는 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성욕의 상징이기도 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시스티나 천장화에도 무화과가 선악과로 표현되어 있다. 선악과를 먹고 수치를 느껴 가린 잎이 무화과 나무라는 점에서, 보통 부끄러운 상황이라면 가장 가까운 것으로 가리려 할 테니까 무화과라는 해석도 유대교에서 전승으로써 전해져 오고 있다. 또 이 점을 예수가 무화과 나무를 저주한 사건과 결합해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탈무드는 여러 유대 전승이 다 모여 있는 책이라서 여러 가지로 기록되어 있다. 한 전승에 따르면 밀알이라고도 했다. 재미있게도, 에덴 동산에서 수렵 채취 생활을 하던 아담과 이브가 밀알을 발견해 먹었고, 이것이 농경 사회로 이어지면서 고생을 하게 되었다는 그럴 듯한 해석을 반영한 것이다.

가장 유력했던 가설은 포도이다. 에녹서에서 "나무 모양은 캐롭나무와 비슷한데 열매는 포도와 비슷하다"고 묘사했고, 바룩묵시록 4장 8절에서도 역시 선악과를 포도로 해석했다. 이는 포도와 포도주를 동일시하고, 사람을 지혜롭게도 하지만, 반대로 죄를 범하게도 하는 술의 속성을 빗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외에 살구[5], 바나나[6], 오렌지[7], 복숭아[8], 자몽[9] 등이 선악과라는 주장도 있다. 물론 성경에서는 선악과를 어떤 과일이라고 정확히 명시하지 않았으니 결국 해석하기 나름이다.

3. 역사

창세기에 의하면, 에덴 동산을 만든 야훼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면 반드시 죽을 거라고 미리 경고하였다. 그러나 에덴의 뱀의 유혹에 넘어가[10] 하와와 함께 선악과를 따먹는다. 야훼는 뱀을 포함한 셋을 꾸중한 뒤, 나뭇잎 대신[11]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었다. 그 후 야훼는 명을 어긴 둘에 대한 분노와, 이대로라면 생명의 열매까지 먹어 죄인인 채로 영생할 수 있겠다는 우려로 인해 두 사람을 에덴 동산에서 추방했다고 한다. 또 더 이상 생명의 열매에 접근하지 못 하도록 에덴 동산을 일반적인 농경지로 전락시키고, 여러 천사(케루빔)들과 불타는 칼을 두어 그 터 동쪽을 보호하게끔 했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아담과 하와의 후손인 모든 인간은 선악을 아는[12] 대신 더 이상 에덴에서 낙원과 같은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으며, 이전과 달리 노동을 해야 비로소 그 과실을 얻고 출산의 고통이 더욱 극심해지는 등 고생스러운 삶을 살게 되었다. 또한 결정적으로 이는 원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결국 이 사건을, 야훼의 약속과 신뢰에 대한 인간의 배신의 시발점이라 성경은 일컫는다.

4. 해석

4.1. 신학적 해석

4.1.1. 천주교

천주교에서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긍정하며 신은 스스로의 능력을 인간을 위해 축소하였으며, 선과 악은 이분의 존재가 아닌 악은 선의 부재라는 해석으로 중론이 모였다.

첫 인간인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는 죄를 범하기 이전에도 죄(하느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와 선악의 개념은 있었다.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시대를 초월하여 하느님은 모든 선의 근원이므로 언제 어디서든 하느님의 계획과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선이고, 이에 순종하지 않고 명령을 어기는 것이 악이다.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죄가 들어왔다'는 표현은, 이전에는 죄라는 관념 자체가 없었는데 선악과 사건 이후에 생겨났다는 뜻이 아니라, 죄라는 관념은 있었으나 다만 인간에 의해 저질러지지 않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생물을 다스릴 권능을 받은 인간의 교만을 막고, 그들 위에서 다스리는 하느님의 존재를 환기시키기 위하여 에덴 동산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동산 가운데'에 모든 생물 중에 사람이 건드릴 수 없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 나무 등을 두었다는 해석이 있다. 또한 이 선악과 이야기의 핵심은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는가?"가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했다"는 점이다.

즉, 굳이 선악과라는 특수한 나무의 열매가 아니더라도,하느님이 에덴 동산의 흔하디 흔한 한 나무의 열매를 지목하고 먹지 말라고 했는데 인간이 이를 거역하고 먹으면 그것도 역시 같은 죄라는 것.

인간(히브리인)이 하느님을 저버려서 벌을 받았다가, 하느님이 인간을 가엾게 여겨서 용서하고 영웅을 보내면 인간이 또 잠깐 하느님을 칭송했다가, 다시 인간이 또 하느님을 저버리고 또 용서 받고 또 저버리는 것이 성경 내용의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특히 판관기에서 이런 일이 심하다. 즉 선악과 사건은 성경에서 반복되는 테마를 처음으로 제시한 사건인 것이다.

여하튼 본질적인 해석으로 돌아가면, 성경에서는 계속해서 생명을 지혜와 한 세트로 취급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애초 에덴에서 하느님의 은총 안에 있었던 인간에게는 진정한 지혜로부터의 지원이 충만히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선악과와 생명나무가 각각 상징으로 함께 있던 것도 이에 대한 의미가 있는 것이며, 아담이 땅을 다스리는 대표로서 하느님 앞에서 모든 동물들의 이름을 지었다는 구절 등에서도 이러한 점들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 따로 지혜를 얻고 선악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하느님의 지혜를 벗어나 인간이 제멋대로 좋고 나쁨을 판단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며, 이는 신이 만들어 놓은 이상적 상태에서 벗어나 그 근본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망가지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구원론에서 강조하는 믿음이란 것도 어떻게 보면 이러한 제멋대로의 지혜를 통제해 원죄 이전에 함께 했던, 진정한 생명의 지혜에 자신을 맞추고자 하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4.1.2. 로마서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로마서 2:14-15)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로마서 7:7-8)

로마서 2장 14-15절을 보면 이방인은 양심이 율법의 역할을 한다고 나와 있고, 로마서 7장 7-8절을 보면 바울은 율법이 탐심이라는 죄에 대해 말하지 않았더라면 탐심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텐데 탐심에 대해 말하는 바람에 오히려 마음에 탐심이 생겨났다고 말하고 있다. 즉 양심으로 말미암든 율법으로 말미암든 죄에 대해 알게 됨으로써 죄의 욕구가 생겨나는 역효과가 난 것이다. 예를 들자면, 마약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은 마약을 하고 싶은 욕구가 들 수 없지만, 마약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을 알게 되면 마약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 가능성이 생기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죄에 대해서 아는 것이 그 죄가 들어올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전도서 7장 29절에 따르면 사람은 원래 정직하게 지어졌으므로 아담과 하와는 원래 선한 본성을 지녔고, 타락 전에는 선과 악을 구별하는 능력은 없어도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보다 큰 죄를 지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아담과 하와에게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고, 로마서 7장 7-8절과 같은 원리로 아담과 하와는 죄가 무엇인지 알게 됨으로써 죄를 짓고 싶어하는 본능을 갖게 되었다. 원죄 때문에 아담과 하와의 영혼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게 됐고, 그 결과로 아담과 하와의 영혼은 타락하여 자신만의 기준으로 선악을 자기 나름대로 나눌 수는 있어도, 선악을 분별하는 기준은 선악과를 먹은 직후의 정확한 기준과는 다르게 차차 엉망이 되었다. 하와는 선악과를 먹고 아담이 선악과를 먹기 전까지는 자신이 벌거벗은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는데, 그때는 하와가 부적절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에게 성욕을 일으키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담이 하와의 벗은 몸을 보고 아무때나 성적인 욕구를 느끼지 않는 상태였기 때문에 하와에게 그런 부끄러움의 본능이 발동하지 않았던 것이고,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타락하자 둘 다 그런 본능이 발동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성경에 따르면 사람이 성령을 따르게 되면 선악을 올바르게 분별할 수 있게 되는데, 사람에게 있는 선과 악을 구별하는 기능은 성령이 충만해도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성령 충만한 사람도 죄의 유혹을 여전히 받을 수 있다.

4.1.3. 선악과를 만든 이유

예정론을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타락하고, 그 중 일부는 천국에 가고 나머지는 지옥에 가는 등 모든 것이 다 창세 전부터 짜여진 하느님의 계획이며, 하느님의 모든 의도를 다 알 수는 없다는 주장을 한다.

예정론을 벗어나서 생각해보면, 하느님은 만물을 자신의 영광을 위해 창조하셨는데, 무조건 선하기만 한 로봇 같은 존재에게 찬양을 받는 것보다, 타락할 자유의지가 있는 존재에게 찬양을 받는 것이 더욱 자신에게 영광이 되기 때문에, 타락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성경에 따르면 피조물인 천사 역시 타락할 자유의지가 있고, 타락한 천사는 마귀가 된다고 한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창조신와 피조물 관계를 인지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는 이 열매를 먹지 말라는 것 외엔 아무런 제약이 없었으며, 원하는 대로 마음껏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랬다가는 인간이 자기 주제를 모르고 자신이 신적인 존재라고 여길 수 있으므로, 최소한의 제약사항으로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내려 지키게 하여 항상 자신들이 피조물인 것을 인지하도록 한 것이다.

4.2. 신화학적 해석

원문을 가만히 살펴보면 구체적으로 '에츠 다아쓰 토브 워-라(פרי עץ הדעת)'인데 에츠는 나무고 다아쓰는 지식, 토브 워-라는 선과 악이라는 뜻이다. 사실 선악과는 상당히 잘못된 번역 중 하나로, 서로 상반된 2개의 것을 통하여 전체를 의미하는 것은 메리즘이라고 불리는 고대 히브리어의 관용적 표현이었다. 즉 '선과 악을 알게하는 지혜의 나무'라는 말에서 '선과 악'은 전체를 나타내기 위한 예시일 뿐이고, 실제 의미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게 하는 나무', '지식의 나무'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4.3. 기타 해석

여기에 대해서, 일부 사람들은 "선악과를 따먹기 전엔 죄(선악)에 대한 개념이 없었으니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죄라는 것은 죄의 개념에 속하고, 죄의 개념이 없으면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도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니 죄의 개념이 없었다는 것과 충돌되니 모순 아닌가"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 이는 그리스도교적인 죄와 선악의 개념을 잘 몰라서 생기는 오해이다.

어쨌든 논리학자들은 이 이야기를 인간이 합리성[13]을 갖추게 된 것에 대한 우화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또 에덴의 뱀이브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지혜를 얻게 되어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된다'고 한 것을 보면, 선악과를 먹는다는 것은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욕망에서 나오는 행동, 즉 하느님의 자리를 넘보는 '교만'을 상징한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일부 사람들은 "하느님은 아담과 이브가 본인과 같아지는 것을 질투했다고 볼 수 있다." "심리학에선 이것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나 욕망처럼 아들이 아버지의 통제하에서 벗어나려는 시도, 즉 아버지의 목을 베고 자신이 왕좌에 앉으려는 욕망을 상징한다고도 한다."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주장이다. 같은 창세기에 보면 하느님은 단지 말씀만으로 우주만물을 창조했다고 나온다. 만약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느님과 같은 능력을 가지게 된다면, 그리고 하느님이 본인과 같아지는 것을 질투하는 분이었다면 결코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지 않았을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선악과 자체의 능력]보다는 [선악과를 먹는 행위의 의미]를 기준으로 해석해야 올바른 해석이 나올 것이다.

'신이 전지전능하다면 어차피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 동산에서 추방될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 그렇다면 선악과를 만든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또 어차피 먹게 될 것이라면 왜 먹지 말라고 하셨는가?"에 대한 논쟁은 성경에 대한 아주 오래된 논쟁거리이자 악의 문제의 기반이 된다. 대표적인 해답 중 하나는 에덴동산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지속적으로 환시시키려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당시 신은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제외한 모든 열매를 허락하셨다. 하지만 그들이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알 것이기 때문에 에덴 동산의 진짜 주인은 창조신이며, 창조신는 그것을 아담과 하와에게 베푼 것이며, 아담과 하와가 그것에 감사하며 그것을 통해 창조주와 인간의 관계를 확인하는 표시이자 창조주와의 사랑을 다시금 느끼는 매개체로 삼으려 했다는 해석이다.

기독교계 신흥종교에서도 여러 가설들을 내놓고 있으나, 전혀 신학적이지 않고 논리성도 떨어져 정식으로 인정받고 있지 않다.

아담과 하와가 일종의 씨족이라 봐야 하는 시각도 있다. 다시 말해, 아담과 하와는 그 씨족 사회의 대표격 인물일 뿐이라는 것. 이런 시각으로 보면 아담과 하와의 시기는 석기 시대로 볼 수 있으며, 그 중에서도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해당한다. 이야기를 재구성하면, 씨족의 누군가가 선악과(라 불리는 식물)를 따먹으려는데, 하필 독사의 공격을 받은 탓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옷을 만들어 입고 농사를 시작하게 된 것.[14] 그리고 인류가 정착하면서 자연스레 인간과 자연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계급 사회가 형성되고 도시가 형성되고 권력이 자리잡게 됨에 따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 즉 타락이 발생하기 시작했다고 보면 된다. 이후 권력의 타락은 카인의 살인, 노아의 방주 사건 등으로 이어졌고, 그 이후로도 성경은 수많은 이야기를 통해 권력의 타락을 경고하고 있다.

5. 생명나무 관련

사실 창세기에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는 다른, '생명나무'가 따로 등장한다. 신학적 차원이라면 모르되,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가려져서 존재감이 없는 나무. 선악과가 지혜를 뜻한다면, 이 나무는 생명을 뜻한다.
야훼 하느님께서는 '이제 이 사람이 우리들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되었으니, 손을 내밀어 생명나무 열매까지 따먹고 끝없이 살게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시고 에덴 동산에서 내쫓으셨다. 그리고 땅에서 나왔으므로 땅을 갈아 농사를 짓게 하셨다.
창세기 3장 22~23절

즉 아담과 하와가 따먹은 것은 두 나무 중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이며, 그들이 에덴에서 추방된 이유는 상술했듯 생명나무열매도 따먹을 것이 우려되어서였다. 위에서 한번 언급했듯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부터가 문학적인 표현이므로 생명 나무 역시 고대 중동의 창세 신화에서 따왔을 가능성이 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의 성체에 대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예수 자체가 그 생명의 나무라고 해석하였다.[15] 예수의 성체를 받아 모실 수 있는 그리스도교인 그 자체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즉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선민이라 해석한 것이다.

6. 대중매체


[1] 영어 성경이나 일본어 성경에서는 열매라는 구체적인 단어를 쓰지 않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부터 나온 것을 먹지 말라고 되어 있다. 불가타의 표현도 'lignum scientiae boni et mali'로서 저 영어 표현과 동일하다.[2] 거룩한 전통에서 아담이 선악과를 먹다가 목에 걸려서 울대뼈가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별칭. "선악과를 먹지 마라"는 경고를 잊고 먹다가 갑자기 기억이 나자 목에 걸려버린 것이라고 한다.[3] 그리스 로마 신화, 켈트 신화, 북유럽 신화 등.[4] 특히 북유럽의 신들은 이둔의 사과를 못 먹으면 불로불사가 될 수 없다.[5] 에덴 동산으로 추정되는 곳 인근에 살구나무가 많다.[6] 바나나의 형태와 옛 중동에서는 바나나를 무화과라고 불렀던 점, 후에 아담과 하와가 몸을 가릴 때 쓴 무화과는 옷으로 쓰기에는 잎이 너무 작으나 바나나잎은 실제로 옷으로 만들어 입기도 한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7] 사실 오렌지는 정결과 관대함을 상징해서 성모 마리아의 도상에도 나타난다. 하지만 이런 신성한 과일을 함부로 손댔다는 점 or 오렌지의 과즙을 그리스도의 피로 치환해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한 인류의 구원이라는 상징으로서 선악과로 여기곤 한다.[8] 복숭아의 형태를 근거로 한다.[9] 살구와 비슷한 이유. 1750년에 그리피스 휴즈 목사가 선악과 나무의 기원을 찾던 중 기원이 되는 곳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발견한 자몽을 금단의 열매라고 칭했었다.[10] 정확히 말하자면 뱀이 먼저 하와를 유혹했고, 선악과를 이미 먹은 하와가 남편 아담에게 같이 먹자며 유혹했다.[11] 당시 아담 부부는 죄책감과 벌거벗었다는 부끄러움으로 인해 무화과나무의 잎으로 임시 의복을 지어 입고 있었다.[12] 창조자가 아닌 피조자가 선악을 스스로 판단하는 독립적인 판단자가 됨으로써 하나였던 야훼 하느님과의 관계가 둘로 나뉘어져 끊어졌다. 창조자인 야훼 하느님의 입장에서는 피조자의 고의적인 반역[13] 인간이 무언가를 추구할 때 생기는 득과 실로 인해 자신이 득을 보면 타인 또는 사물과 같은 만물에 가해질 실로 선과 악이 갈리는 문제로 해석할 수 있다.[14] 이 이후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독사'를 욕설의 대표격으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예수의 성전 정화가 대표적인 일.[15] 요한 복음서 6장 51절. "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한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16] 그리스 신화에서도 프로메테우스가 신들만의 것인 불을 훔쳐 인간을 진보시켰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거기서 영감을 얻은 듯.[17] 여기선 인간이 사용하는 무기나 도구는 모두 신의 지혜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설정이다. 루시펠 왈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경지"라고 했다.[18] 이 사건의 흑막앙대핑이다. 해핑은 속아서 먹은 하와, 앙대핑은 이걸 먹어보라는 뱀의 역할과 비슷하다.[19] 원작에선 성희롱 묘사가 수위가 꽤 높은데 뱀이 늘어난 양팔로 하와의 양팔을 묶고 가슴을 주무르고 핥는다. 그것도 에덴에 살던 당시의 알몸의 하와를 상대로 이런 료나물을 찍은 것. 애니에서는 양팔을 묶고 낼름거리며 시도하려는 장면으로 순화됐다.[20] 나뭇잎으로 일부를 가렸는데 수영복 수준이라 높은 노출을 자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