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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2 17:32:40

고제(전한)

한태조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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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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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 초대 황제
고제 | 高帝
파일:한고제초상.jpg
출생 기원전 256년 혹은 기원전 247년[1]
패현 풍읍 중양리
(現 장쑤성 쉬저우시 페이현)
즉위 기원전 202년 2월 28일
전한 정도현 범수 북안
(現 산둥성 허쩌시)
사망 기원전 195년 6월 1일 (향년 52세 혹은 61세)
전한 장안 장락궁
(現 산시성 시안시)
능묘 장릉(長陵)
재위기간 후초의 한왕
기원전 206년 3월 혹은 4월
~ 기원전 202년 2월 28일
한 황제
기원전 202년 2월 28일
~ 기원전 195년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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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11><colcolor=#ece5b6> 성씨 유(劉)
방(邦)
부모 부황 태상황
모후 소령황후 유온
형제자매 4남 1녀 중 3남
배우자 정실 고황후 여씨
후궁 고황후 박씨, 척부인
자녀 8남 1녀
신장 179cm[2]
계(季)
작호 한왕(漢王)
존호 고조(高祖)
묘호 태조(太祖)
시호 고황제(高皇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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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高祖本纪.gif
《사기》에 실린 <고조본기>
1. 개요2. 출생3. 생애4. 가족 관계5. 평가6. 기타7. 대중매체에서8.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400여년 동안 이어진 통일 제국 한나라를 건국한 창업군주이자 초대 황제였다.

중국사에서 진나라의 시황제, 이세황제와 후초의 의제에 이어 네 번째로 황제라는 칭호를 공식적으로 쓴 인물이었으며, 휘는 방()이었다. 일반적으로는 본 문서의 표제인 고제 보다는 한 고조유방으로 불린다.[3]

중국 역사상 최초의 평민 출신 황제로, 기존의 지배층이었던 제후나 귀족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피지배층에서 황제라는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진(秦)나라 말기의 대혼란에서 세력을 일으켜, 초한대전에서 숙적 항우(項羽)를 제압하고 천하를 차지했다. 중국 전 역사를 통틀어서 이렇게 평민이 패업을 이루고 왕조를 연 사례는 약 이로부터 1,500여년 뒤의 시대인 명태조 밖에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유례없는 일이었다.

이후 각지의 반란을 평정하고 이성왕(異姓王)들을 숙청하여 대제국 한나라의 기틀을 닦았다. 특히 한(漢)족, 하나의 중국과 같은 오늘날까지 엄존하고 있는 중국의 국가적 문화 정체성을 만들어낸 왕조의 창시자로서 중국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황제는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했으나 완벽히 하나로 묶어내는 것에는 실패했고, 시황제가 시작한 황제 체제는 한고조가 이를 완성했다고 평가된다. 또한 이후 중국에 분열기가 찾아왔어도 그때마다 통일 국가의 대의명분을 제공해줬다. 따라서 오늘날 중국, 혹은 한족의 중시조에 해당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황제(黃帝) 헌원씨로 대표되는 삼황오제가 있고 역사적 실증으로만 따져도 상나라 등 한나라 보다 이전의 시대가 있지만, 한고조가 창설한 한나라가 후세에 통일된 중국과 중화문명의 큰 기반을 제공하고, 오늘날까지도 중국인들이 자신들을 한족(漢族)이라고 칭하는 것만 봐도 충분히 중시조라 부를 만한 사람이다.

주로 한 고조(漢高祖)라는 호칭으로 불리는데, 이는 정식 묘호나 시호는 아니다. 유방의 묘호는 태조이며 시호는 고황제(高皇帝)다. 즉 정식 호칭은 태조 고황제이며 사마천(司馬遷)이 유명한 저서《사기》에서 고조(高祖)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그것이 유방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칭호로 굳어진 것. 정확히 말하자면 고조는 태조 고황제의 약칭인 것이다.[4] 다만 이 고조(高祖)라는 용어가 한고제 본인을 칭하는 상징적인 칭호를 넘어, 후대 왕조의 창건자들에게도 붙는 묘호가 된 것은 고제의 영향이 컸다고도 할 수 있다.

2. 출생

파일:패현.png
유방은 패현(沛縣) 풍읍(豊邑)[5][6] 중양리(中陽里)에서 태어났다. 이 지역은 원래 송나라 땅이었으나 유방이 태어나기 3~40여년 전인 기원전 286년 송나라가 망하면서 초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풍읍은 위치에서 알 수 있듯이 초나라의 중심 지역보다는 위(魏)나라의 국경과 훨씬 가까운 지역이었다. 거기에 유방의 동생의 후손인 전한의 학자 유향의 말과 그를 인용한 《한서》의 기록에서는 위나라가 대량으로 천도한 기원전 4세기 중반 무렵 유방의 선조가 진(秦)나라에서 위나라로 포로로 끌려 갔다가, 이후 신릉군과 동시대의 사람인 유방의 아버지 대에 이르러서야 풍읍에 정착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유방의 증조부이자 유태공의 조부인 유청은 위나라의 대부 벼슬까지 지냈다고 하는데 위 왕실의 재산을 횡령한 사건으로 가세가 몰락해 평민이 된 것으로 보인다.

《사기》나 《한서》(漢書)에서는 아예 유방(劉邦)이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대목이 없다. 그저 성이 유씨이고 자(字)가 계(季)라고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유방이라는 이름이 언급되는 것은 후한[7]의 학자 순열(荀悅)의 《한기》(漢紀)에서부터인데, 후세 학자들이 《사기》, 《한서》에 주석하면서 한 인용으로, 발굴된 유물 자료들로써 대체로 옳다고 간주한다. 물론 다른 이야기를 하는 설은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관점으로는 유방이 어렸을 당시에는 유계라는 호칭으로 통하다가, 즉위한 후 유방이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초한전쟁을 모르는 현재의 대다수 사람들마저 유방과 항우라는 유명한 이름을 아는 실정과 달리 유방 본인에게 '방' 이라는 이름은 일생 동안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본인으로서도 착 감기지 않는 이름이었을 것이라는 소리이다.[8]

유방의 출생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유방의 어머니인 유온이 연못가 근처에서 쉬다가 문득 잠이 들었는데, 꿈 속에서 (神)을 만났다고 한다. 그때 뇌성벽력이 치고 하늘이 시커멓게 변했는데, 근처에 있던 태공이 그 모습을 보자 유온의 배 위쪽에 교룡(蛟龍)이 떠있었고, 유온의 몸에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으니 그 사람이 유방이었다.

3.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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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족 관계

부친은 태공(太公)이었고 어머니는 유온(劉媼)이었는데 태공이나 온은 남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높여 부르는 호칭에 지나지 않았다고 《사기집해》나 《사기색은》 등의 주석서에서 일관되게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유태공과 유온을 현대어로 풀이하자면 그저 유씨댁 어르신, 유씨댁 안주인 정도의 의미로 유방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진짜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찾을 수가 없다. 유방의 형제를 살펴보면 이름이 형제 간의 서열, 순서를 간편하게 나타내는 백중숙계(伯仲叔季)를 붙여서 지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유방의 형들로 유백(劉伯)과 유중(劉仲)이 언급되는 것을 보면 '유계'라는 호칭이 어째서 생겼는지는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유방은 본래 개별적인 이름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고 그저 '유씨네 막내'정도로 통용될 수 있는 유계라는 이름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 학자 사타케 야스히코는 유방이 평민 출신이라 본래 이름이 없었으나 황제가 된 뒤에야 이름과 글자가 나왔다고 여겼다. 그러나 둘째 형 유중은 유희(劉喜)라는 휘가 알려져 있고, 이복동생 유교(劉交)는 유(游)라는 자가 따로 있었기에 모든 사람의 휘가 불명확한 것은 아니다. 백중숙계가 대충 지은 이름 같아 보이지만 그게 정식 자나 이름인 예가 꽤 있어 유계라는 이름이 개별적인 이름일 가능성은 다분하다. 더욱이 유교가 유학자로 특히 《시경》에 능한 인물이었음을 감안하면 집안 사람들 중에 이름이 아예 없는 인물이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기도 하다.

고제는 8남 1녀를 두었는데 여덟 아들의 어머니가 모두 다르다.

5.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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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기타

鴻鵠高飛 一擧千里[18]
큰고니 한 번에 1,000리를 나는데,
羽翮已就 橫絶四海[19]
날개가 이미 자라 온 천지를 나는구나.
橫絶四海 當可奈何[20]
온 천지를 날아다니니 어찌하리오.
雖有矰繳 尙安所施[21]
화살이 있다 한들 어찌 쏘리오.
<홍곡가>(鴻鵠歌, 큰고니의 노래)
<홍곡가>는 적장자인 황태자 유영을 교체하려다가 주변의 반대에 부딪히자 이를 한탄하며 만든 노래라고 전해진다. 유영 대신 자신의 아들이자 서자인 유여의를 태자로 만들려던 척부인은 이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7.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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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관요 · 제갈풍 · 유보 · 정숭 · 손보 · 무장륭 · 하병 소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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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봉세 회양왕 · 초효왕 · 동평왕 · 중산왕 · 정도왕 · 중산왕
81권 「광장공마전(匡張孔馬傳)」 82권 「왕상사단부희전(王商史丹傅喜傳)」 83권 「설선주박전(薛宣朱博傳)」
광형 · 장우 · 공광 · 마궁 왕상 · 사단 · 부희 설선 · 주박
84권 「적방진전(翟方進傳)」 85권 「곡영두업전(谷永杜鄴傳)」
적방진 곡영 · 두업
86권 「하무왕가사단전(何武王嘉師丹傳)」 87권 「양웅전(揚雄傳)」
하무 · 왕가 · 사단 양웅
88권 「유림전(儒林傳)」
정관 · 시수 · 맹희 · 양구하 · 비직 · 복생 · 구양생 · 임존 · 주감 · 장산부 · 왕식 · 후창 · 호모생 · 엄팽조 · 안안락
89권 「순리전(循吏傳)」 90권 「혹리전(酷吏傳)」
문옹 · 오성 · 황패 · 주읍 · 공수 · 소신신 질도 · 영성 · 조우 · 의종 · 왕온서 · 윤제 · 양복 · 감선 · 전광명 · 전연년 · 엄연년 · 윤상
91권 「화식전(貨殖傳)」 92권 「유협전(游俠傳)」
백규 · 정정 주가 · 전중 · 극맹 · 곽해 · 우장 · 누호 · 진준 · 원섭
94권 「흉노전(匈奴傳)」 95권 「서남이양월조선전(西南夷兩粤朝鮮傳)」
흉노 · 남월 · 민월 · 동해국 · 조선
96권 「서역전(西域傳)」
선선국 · 저말국 · 소완국 · 정절국 · 융로국 · 서미국 · 거륵국 · 우전국 · 피산국 · 아타국 · 서야국 · 포리국 · 의내국 · 무뢰국 · 난두국 · 계빈국
아익산리국 · 대월지국 · 강거국 · 대완국 · 동저미국 · 도괴국 · 효순국 · 언독국 · 사거국 · 소륵국 · 울두국 · 오손국 · 고묵국 · 온숙국 · 구자국
울리국 · 위수국 · 언기국 · 아탐자리국 · 비륙국 · 비륙후국 · 욱립사국 · 선환국 · 포류국 · 포류후국 · 서저미국 · 동저미국 · 겁국 · 호호국 · 산국
차사전국 · 차사후국 · 차사도위국 · 차사후성장국
97권 「외척전(外戚傳)」
효혜황후 · 효문태후 · 두의방 · 효경황후 · 왕지 · 진아교 · 무사황후 · 효소태후 · 효소황후 · 사양제 · 왕부인 · 허평군 · 곽성군 · 효선황후 · 효성황후
반염 · 조비연 · 소의 부씨 · 정도정희 · 효애황후 · 효원소의 · 중산위희 · 효평황후
98권 「원후전(元后傳)」 99권 「왕망전(王莽傳)」
왕정군 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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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기(前漢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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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4권 「고조기(高祖紀)」 5권 「혜제기(惠帝紀)」 6권 「여후기(呂后紀)」
유방 유영 여치
7·8권 「문제기(文帝紀)」 9권 「경제기(景帝紀)」 10·11·12·13·14·15권 「무제기(武帝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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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불릉 유순 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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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원전 232년생인 항우와 15살 차이라고 했고, 유방의 절친인 노관도 기원전 247년생인데 심지어 같은 날에 태어나 가족끼리 서로 매우 친했다는 언급이 있어 아마도 기원전 247년이 출생년이 맞을 듯하다. 하지만 기원전 256년으로 보기도 한다. 여담으로 기원전 247년생이라면 시황제가 즉위한 해 출생이고, 기원전 256년생이라면 진나라가 시황제의 증조부인 소양왕 치세였던 시절에 출생한 것으로 시황제와는 고작 3살 차이밖에 안 난다.[2] 키가 7척 8촌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 척단위인 23cm로 계산하면 179cm가 나온다.[3] 사마천 이후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정치인이나 관료, 학자들도 대개 한 고조라고 통칭한다.[4] 중국사 역대 2천 2백년 동안에 유방을 존칭하여 고조 또는 한고조라 했지 그냥 고제라고 부른 적은 없으며 시호인 고황제를 약칭하여 고제라고 부르는 경향이 근래에 있는 것이다. 문제나 무제 등 다른 황제들의 시호를 약칭하는 방식과 맞추려고 굳이 고제라고 부르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나 다소 억지스럽고 생소하다. 대학자 사마천이 의미 없이 또는 착각해서 고조라고 호칭한 것이 아니다. 이후 중국사의 많은 왕조들이 있었고 다른 고조(高祖)들이 있었지만 중국사의 중시조 격인 의미를 담아 2천2백년 동안 유방을 특히 한고조라 호칭하는 것에는 한나라 태조 고황제라는 의미가 모두 축약되어 있는 것이다.[5] 지금의 장쑤성 (江蘇省) 펑현(丰县, 병음: Fēng Xiàn)[6] 풍읍의 패현이라 '풍패'라고도 하는데, 조선 시대에는 전주의 별칭이 풍패였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본관이 전주이기 때문이었다.[7] 이라고는 해도, 이 시기는 이미 조조가 집권하여 위나라나 마찬가지였다.[8] 하지만 원래 옛날 사람들은 본명인 휘를 잘 사용하지 않았고 보통 자나 호로 불렀다. 당장 유방과 항우라고 되어 있는데 원래 항우부터가 우(羽)는 휘가 아닌 자이며, 항우의 휘는 적(籍)이었다.[9] 이 발언에서 유래하여, 유방을 마상옹(馬上翁) 혹은 마상지내옹(馬上之乃翁)이라고도 한다. 말 위의 어르신, 의역하자면 말 좀 타본 형님 정도?[10] 더벅머리 놈 정도로 번역되기도 한다.[11] 여담으로 동주의 마지막 왕인 난왕이 같은 해에 사망했다.[12] 다만 척부인도 억울한 피해자는 아니다. 후궁임에도 불구하고 노골적으로 유방에게 유여의를 태자로 삼아달라고 밤새도록 울며 애걸복걸을 하는 등 그녀도 율법 및 사회적으로 질타를 받을 문제 행위를 당당히 했기 때문이다. 여후가 도를 넘은 잔인한 보복을 가했고 후대에도 평가를 깎아먹는 악행들을 저질러서 그렇지, 척부인의 경우 1차적인 원인은 고조 유방이 제공했고, 본인도 악의없는 무지함이 커 잘못에 비해 지나친 처형을 당한 것은 동정받을 부분이 맞지만, 국정을 농간한 요부 및 상전인 황후의 권리를 침해한 방자한 첩으로 비판받을 사항이었다.[13] 싸우다가 죽은 병사들을 하나하나 시체를 찾아서 고향에 보내주었을 정도니 따를 수밖에.[14] 여기서 유래하여 유방을 '패상융준'(沛上隆準) 또는 '한준'(漢準)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참고로 이 융준용안이라는 말은 훗날 조선의 건국자인 이성계이방원을 묘사할 때도 등장한다.[15] 대풍기혜운비양[16] 위가해내혜귀고향[17] 안득맹사혜수사방[18] 홍곡고비 일거천리[19] 우핵이취 횡절사해[20] 횡절사해 당가내하[21] 수유증격 상안소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