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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혜문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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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秦)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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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秦) 초대 국왕
혜문왕 | 惠文王
생몰 기원전 356년 ~ 기원전 311년 (45세)
재위 국군 기원전 337년 ~ 기원전 324년
기원전 324년 ~ 기원전 311년
영(嬴)
조(趙)
사(駟), 인(駰)[1]
부친 진 효공
왕후 혜문후
자녀 진 무왕, 진 소양왕

1. 개요2. 생애
2.1. 즉위 이전2.2. 즉위 초기2.3. 장의와의 만남2.4. 진 혜문군의 칭왕2.5. 5국이 연합하다2.6. 사마착의 파촉 정벌2.7. 초나라와의 전쟁
3. 미디어 믹스
3.1. 중국 드라마 대진제국
3.1.1. 대진제국지열변3.1.2. 대진제국지종횡3.1.3. 대진제국지굴기
3.2. 미월전
3.2.1. 초나라에서의 만남3.2.2. 18화 ~ 36화3.2.3. 37화 ~ 54화

[clearfix]

1. 개요

전국시대 진나라의 26대 국군(國君), 초대 왕이다. 휘는 사(駟) 혹은 인(駰). 칭왕하기 전에 '혜문군'(惠文君), '진백 사'(秦伯 駟(駰))라고 불렸다. 정실부인(혜문후)은 진무왕을 낳았고, 후궁이었던 미팔자(芈八子) 사이에서 진소양왕을 낳았다. 약식 시호로 '진 혜왕'(秦 惠王)이라고도 불린다.

상앙(商鞅)을 등용하여 진나라가 강대국으로 가는 발판을 마련한 명군인 아버지의 뒤를 이어, 상앙과 사적으로는 사이가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변법을 폐기하기는커녕 오히려 정착시켰고, 장의(張儀)를 등용해 연횡책으로 외교와 군사력을 끌어올렸으며, 파, 촉을 정벌하면서 최고의 곡창 지대를 확보하여(후일 소양왕 때 촉군태수 이빙이 도강언을 건설하며 작물 생산력을 한 단계 더 높인다), 일약 진나라를 전국 7웅 중 최강자로 우뚝 서게 만들어 천하 통일의 발판을 마련했다.[2]

2. 생애

2.1. 즉위 이전

혜문왕이 태자 시절에 상앙의 변법을 어겨 스승인 큰아버지 영건(嬴虔)과 공손 가(公孫賈)가 코가 잘리는 벌을 받고 그의 시종은 처형되었다. 영건은 코가 베인 것 때문에 집에서만 은거하게 되었다.

효공 24년(기원전 338년), 효공이 서거하자, 태자 영사가 군위를 계승하였다. 이때는 칭왕하기 전이라서 '혜문군'(惠文君)이라고 불렸다. 같은 해에 상앙의 정책에 반발하던 보수 귀족들과 큰아버지 영건이 들고 일어나, 결국은 상앙을 처형했다. 그러나 혜문왕은 상앙의 변법을 폐지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고, 훗날 진나라는 서쪽 변방의 작은 국가에서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의 강대국으로 우뚝 섰다.

2.2. 즉위 초기

진 혜문군 원년(기원전 337년), 초(楚), 한(韓), 조(趙), 촉(蜀)의 사신들이 내조(來朝)를 하였다.

진 혜문군 2년(기원전 336년), 주나라 천자가 즉위를 축하하였다.

진 혜문군 3년(기원전 335년), 혜문군이 성인이 되자, 관례(冠禮)를 거행하였다.

진 혜문군 4년(기원전 334년), 주나라 천자가 주 문왕주 무왕의 제사에 사용하는 고기를 보내었다. 그리고 제나라와 위나라가 칭왕하였다.

진 혜문군 5년(기원전 333년), 위나라 출신인 공손연(公孫衍)을 등용하여, 대량조(大良造)에 임명했다.

진 혜문군 6년(기원전 332년), 위나라가 음진(陰晉)이라는 땅을 진나라에게 바치자, 음진이라는 지명을 영진(寧秦)으로 변경하였다.

진 혜문군 7년(기원전 331년), 공손연이 위나라를 공격하여, 위나라 장수 용가(龍賈)를 사로잡고, 병사 8만명을 참수하였다.

진 혜문군 8년(기원전 330년), 위나라의 하서(河西) 지역을 정벌하였다. 과거에 위나라의 장수 오기(吳起)의 군대에 진군이 격파당한 곳이라서, 진나라는 큰 성과를 이뤘다.

진 혜문군 9년(기원전 329년), 황하를 건너서 분음(汾陰)과 피지(皮氏)를 점령하고, 위나라 왕과 응 땅에서 회맹을 하였다. 그리고 초(焦) 땅을 점령하였다.

2.3. 장의와의 만남

진 혜문군 10년(기원전 328년), 장의(張儀)를 등용하고, 승상으로 임명하면서 연횡책을 가동했다. 장의의 등용 이후, 그의 언변 덕분에 한동안 큰 전쟁 없이 땅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이게 나중에 다른 나라들의 분노를 사는 계기가 되었다.

진 혜문군 11년(기원전 327년), 의거(義渠)의 군주가 항복하면서, 그 땅을 현으로 만들고 초와 곡옥(曲沃) 땅은 위나라에 돌려주었다.

진 혜문군 12년(기원전 326년), 진나라는 처음으로 납제(臘祭)를 시행하였다.

진 혜문군 13년(기원전 325년), 위나라의 군주가 칭왕을 하면서, 그 뒤를 이어 한나라가 칭왕을 하게 되었다. 그때 진나라는 장의가 섬(陜) 땅을 공격했고, 섬 땅에 살고 있던 주민들을 위나라로 추방하였다.

2.4. 진 혜문군의 칭왕

진 혜문왕 원년(기원전 324년), 혜문군이 칭왕을 하였다. 그리고 연호를 바꾸어서 진 혜문왕 원년으로 하였다.

진 혜문왕 2년(기원전 323년), 장의가 제나라와 초나라 대신과 설상(齧桑)에서 만나 회맹하였다.

진 혜문왕 3년(기원전 322년), 한나라 태자와 위나라 태자가 내조하였다. 그리고 장의는 위나라로 갔고, 위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진 혜문왕 5년(기원전 320년), 진 혜문왕이 북하(北河)로 순수했다.

2.5. 5국이 연합하다

진 혜문왕 7년(기원전 318년), 악지(樂池)가 진나라의 승상이 되었다. 그리고 장의의 등장으로 자신의 자리를 잃은 공손연은 위나라로 돌아가 위(魏), 조(趙), 한(韓), 제(齊), 연(燕) 등 5개국과 흉노까지 동원하여 대규모의 연합군을 조직하고 함양을 침공했다. 진 혜문왕은 영질(嬴疾)에게 군사를 주어 보냈고, 수어(修魚)에서 5개국 연합군을 격퇴했으며, 연합군을 이끄는 장수였던 신치(申差)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장의에게 명을 내려서 그의 외교술로 연나라 군대와 제나라 군대를 철수시켰고, 남은 위나라, 조나라, 한나라의 3국 연합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여 승리하여 8만명을 몰살하고, 조나라 공자 갈(渴)과 한나라 태자 환(奐)을 죽였다. 공손연은 이 패배로 위나라에서 축출되었다.

진 혜문왕 8년(기원전 317년), 장의가 다시 돌아와서 진나라의 승상이 되었다.

2.6. 사마착의 파촉 정벌

진 혜문왕 9년(기원전 316년), 파, 촉(巴, 蜀)에서 분쟁이 일어나자 사마착(司馬錯)이 서쪽인 파, 촉을 정벌하는 것이 천하 통일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3] 하지만 장의는 서쪽이 아닌 동쪽으로 세력을 넓힐 것을 주장했는데, 혜문왕은 사마착의 의견을 받아들여 파, 촉 점령에 의견을 개진한 사마착이 직접 이끄는 정벌군을 보내 완전히 점령했다.

장의의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장의의 궁극적인 목표는 동주의 천자였다. 주 천자를 붙잡으면 제후국들을 쉽게 다스릴 수 있을 거라고 봤던 것. 하지만 사마착은 오히려 그렇게 된다면 다른 제후국들이 진나라를 상대로 연합해 공격할 것이라며 반대했고, 혜문왕은 후자를 선택했다. 당시 파, 촉 지역은 폭군에 의해 반란이 일어나고 정세가 불안정하였기 때문에 전쟁의 명분도 충분했다.

진 혜문왕 10년(기원전 315년), 한나라의 태자 창(太子 蒼)이 진나라에 인질로 왔지만, 한나라의 석장(石章)을 빼앗았다. 조나라의 장수 이(泥)가 진나라를 공격하자, 이를 물리쳤다.

진 혜문왕 11년(기원전 314년), 영질을 보내어 다시 초 땅을 빼앗았다. 진나라 군은 한나라를 공격하였고, 안문(岸門)에서 공손연이 이끄는 한나라 병사 1만명의 목을 베며, 공손연을 도망가게 만들었다.

2.7. 초나라와의 전쟁

진 혜문왕 12년(기원전 313년), 혜문왕은 위나라 왕과 임진(臨晉)에서 회맹하였다. 서장 영질이 조나라를 공격하여 조나라 장수 장(莊)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진나라는 초나라의 공격으로 큰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장의는 초나라로 가서 재상이 되었다.

초나라의 재상이 된 장의는 초 회왕에게 땅을 준다고 거짓말을 했다. 장의는 상, 어 지역의 600리의 땅을 준다고 하며, 친진파 세력들을 포섭하여 초 회왕에게 좋은 말을 건네주자 병사가 죽지도 않고, 돈도 안들어가는데 땅이 굴러들어오자 좋은 회왕이 덥석 받아들였다. 초나라 군대는 물러갔지만, 장의는 자신의 병을 핑계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에 장의는 제나라와 초나라가 연합 상태라서 그런거라는 뜻을 내비쳤고 이에 회왕은 일방적으로 제나라와의 연합을 끊었다. 그러나 장의는 초나라 사신에게 진나라 땅을 준다고 얘기한 적이 없다며 자신은 진왕에게서 하사받은 상, 어 근처의 6리의 땅을 말한 것이었다고 했다.

진 혜문왕 13년(기원전 312년), 분노한 회왕이 진나라를 공격했지만, 진나라는 서장 장(章)을 보내어 초나라의 단수(丹水)를 공격, 초나라 장수 굴개(屈丐)를 포로로 잡고, 초군 8만명을 죽였다. 그리고 진군은 초나라의 한중을 공격하여 점령했다. 결국 초나라는 상, 어 지역을 얻으려다가 오히려 한중 지역을 뺏기고 말았다. 또한 초나라는 옹지(雍氏)를 공격하여 포위를 했지만 실패했다.

진 혜문왕 14년(기원전 311년), 초나라를 공격하여 소릉(召陵) 땅을 차지하였다. 촉의 상국 장(壯)이 촉나라의 군주 촉후(蜀侯)를 죽이고, 진나라로 투항하였다. 같은 해에 진 혜문왕이 사망하자, 그의 아들 영탕(嬴蕩)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진 무왕(秦武王)이다.

3. 미디어 믹스

3.1. 중국 드라마 대진제국

3.1.1. 대진제국지열변

1부인 대진 제국에서는 상앙의 반대파이자 원로 대신인 감룡에게 세뇌되어 상앙의 변법에 반대하고 급기야는 감룡과 귀족들의 계략에 의해 본인의 녹읍에서 바쳐진 가마니에서 쌀 대신 썩은 쌀과 모래가 나오자 그 즉시 칼을 뽑아 자신의 녹읍 백성을 도륙하면서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시발점이 된다. 하지만 상앙이 태자를 잘못 가르친 죄로 공자 건의 코를 자르고 그외 스승들에게 얼굴에 문신을 세기는 형벌을 내리면서 반란은 금세 진정되고 변법은 백성들에게 적극적으로 지지를 받게 된다.

이때 자신의 형인 공자 건이 코를 잘리는 벌을 받게되어 분노한 진 효공에게 강제로 의절 당하고 궁궐밖으로 추방 당하여 전국을 떠돌게 된다. 그후 그는 흑백촌?이라는 한 시골 마을에 머물면서 백성들의 삶을 체험하게되고 상앙의 변법으로 백성들의 삶이 풍요롭게 되고 군사력이 강해지는 것을 보고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되었으며 어른이 되자 흑백촌?을 떠나던 중 자신이 흑백촌에 머물게 되었을 때부터 자신을 사랑하는 연화가 자신에게 고백하나 본인은 죄인이라 결혼하지 못한다는 말로 거절한다.

이에 상심한 연화는 영사가 보는 앞에서 자살하게 되고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을 눈앞에 본 영사는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다시 전국을 떠돌게 된다. 그 후 어떤 마을에서 다시 임시로 머물면서 과거 자신에게 학살당한 백성들의 가족을 만나게 되고 그들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어리석음과 그 사건에서 배후가 있음을 알게된다. 모든 것을 알게된 영사는 진 효공에게 상앙의 변법을 보고 느낀 점과 변법에서 의도치않게 생긴 부작용 해결법을 상소로 올리고 진나라를 아주 떠나려고 하고 영사가 철이 들었음을 알게된 진 효공은 영사를 다시 태자로 복귀시킨다.

그 후, 진 효공이 죽고 진나라 왕이 된 영사는 상앙을 탄핵하는 진나라 귀족 세력들과 갈등하던 중 상앙과 자신의 삼촌인 공자 건과의 대화를 통해 변법으로 생긴 불만과 원망을 모두 상앙의 책임으로 돌리고 상앙을 처벌하는 대신 변법을 유지하게 한다는 맹세를 상앙에게 한다. 그리고 변법을 통해서 상앙을 처벌하는 동시에 감룡을 포함한 진나라 귀족 세력들에게 경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1부는 끝난다.

3.1.2. 대진제국지종횡

파일:75683F21-1F17-4A51-AFB6-318C181ACD14.jpg

전편 대진제국지열변이 상앙의 변볍(병법)으로 국가 발전을 주로 다루는 데 비해 대진제국지종횡에서는 혜문왕과 장의를 주인공으로 각나라의 이해 관계와 외교 전쟁 씬이 많이 삽입되어 재미를 주고있다.

드라마 첫 장면에 3년의 칩거를 마치고 드디어 조정에 나선다. 나오자마자 위나라 사신이 제나라 군상이 왕이 되는 상왕 대전에 오라고 하는데 영사는 위나라 사신에게 연극을 보여주며 비웃고 자기도 상왕이 되겠다며 위나라를 협박한다. 협박당한 위나라와 제나라는 어쩔 수 없이 진나라가 상왕이 되는 것을 허락한다. 영사는 상앙을 더럽게 싫어했지만 상앙의 변법은 진나라에 득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유지하겠다고 공표했고, 원로 대신인 감룡은 이에 격렬하게 반대한다.[4] 영사는 위나라로 떠나기 전 스승 공자 건을 만나뵙고 떠난다. 멍청한 위나라 왕은 혜시의 말을 듣지 않고 영사를 사사건건 방해한다. 처음에는 공손연이 애써 키운 특수 부대를 투입해 상왕 대전에 참석하기 위해 길을 가던 영사를 암살하려 하는데[5] 영사가 단 둘이 싸워 내가 이기면 부하들은 죽이지 말고 보내달라며 공손연에게 일대일 결투를 청해 시간을 버는 동안 영화가 군사를 이끌고 도착하여 무사히 탈출한다. 그 후에는 뒤늦게 영사를 구하러 달려온 위나라 변방 지역 군수의 집에 머물게 되는데 호의를 베푸는 듯 하지만 실상은 상왕 대전에 영사가 제때 참여하지 못하도록 가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때 호랑이 군주라고 불리는 영사가 궁금해 시녀로 변장하고 식사를 가져왔던 똑똑하고 도리에 밝은 군수의 딸 위서가 위왕을 대신해 사죄하며 도망칠 길을 알려준다. 몰래 탈출하려던 순간 군사들이 들이닥치자 영사는 재빠르게 위서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군수를 협박하여[6] 무사히 떠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결국 상왕 대전에는 지각하고 만다. 상왕 대전에 오지 못하게 뒤에서 온갖 공작을 해댄 주제에 아무 것도 모르는 척 비꼬아대는 위왕 때문에 열받은 영사는 특유의 웃는 얼굴과 말빨로 위왕을 은근하게 압박하고 돌려까며 오늘의 치욕을 잊지 않겠다고 한다. 결국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위나라 대신 혜시가 영사를 달래기 위해 위서와의 혼인을 제의하고 영사는 흔쾌히 받아들인다.

한편 위서는 위왕에게 불려가 혼례식에서 영사를 암살하라는 명을 받는다. 이때 위서의 아버지는 영사를 풀어주었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가 있는 상태였다. 결국 위서는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7] 자신의 손을 잡고 기뻐서 싱글싱글 웃으며 다정하게 대전으로 데려가던 영사의 가슴을 칼로 찌른다. 상앙의 변법으로 불만이 많은, 원로 대신 감룡을 위시한 구 귀족들의 심상치 않은 기미가 보이는 상황에서 스스로 칼을 맞았다는 사실이 알려져서는 안 되기 때문에 영사는 신하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소매로 가슴에 꽂힌 칼을 감추고 대전으로 들어간다. [8] 영사는 대전에 들어와 문을 닫고 나서야 위서를 밀쳐내며 진나라를 말아먹으려고 작정했냐며 역정을 내며 가둬버린다.[9] 치료를 하고 감룡에 의해 역모가 일어나려고 하자 쉬지도 못한 채 수습하러 간다. 감룡은 효공의 형제인 공자 건을 찾아가 왕이 되라고 하나 공자 건은 자신이 직접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해야겠다며 영사를 보러온다. 영사를 보고 공자 건은 감룡을 처단하라고 하고 감룡을 찾아가 독주를 주어 죽인다.

위나라에서 진나라로 넘어올 때 버림받은 공손연을 발견하여 진으로 데려온다. 진나라와 하서 전투가 일어나려 하자 영사는 공손연이 적임자라 생각하고 선봉으로 내세운다. 하서 전투가 크게 승리하자 공손연을 대량조[10]로 세운다. 위나라는 대패하여 땅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노장까지 잃고 그 뒤로 하락세의 길을 걷는다. 장의는 위나라 사람으로 와교에 관한 책론을 썼으나 버리고 초나라로 간다. 장의는 초나라에서 영윤[11]의 옥[12]을 훔쳤다는 이유로 매를 맞았고 죽은 척 기절하여 미아두[13]에게 발견된다. 장의는 미아두에게 구해줘서 고맙다며 성이 미씨인 걸 보면 초나라 공실의 후예이니 자신이 출세하면 왕비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한다. 미아두는 의거국 왕자인 의거해[14]와 뜨겁게 사랑하고 있었던 데다 장의의 행색이 남루한지라 처음에는 허풍으로 생각해 진지하게 듣지 않는데, 의거해가 삼촌에게 강제로 초원으로 끌려가자 길을 떠나는 장의에게 자신을 왕비로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처음 장의의 책론을 보았던 영사. 장의는 진나라 조정에 와서 자신의 생각을 열심히 이야기하지만 비웃음만 당하고 등용되지 못한다. 여관비도 많이 밀린 상태이고 부자들이 가는 식당에 갔다가 연변을 늘어놓어 그 모습을 본 영사는 그를 객경으로 등용한다. 장의는 외교술이 중요한거라며 위나라에게 땅을 주자고 주장한다. 장의와 상극인걸 느낀 공손연은 떠난다.

진나라에서 자리를 잡은 장의는 미아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초와 혼인 동맹을 진행하는데, 아뿔싸, 장의가 일을 진행하러 초나라에 사신으로 가보니 미아두는 의거해의 아들을 낳은 상태였다. 뜻밖의 상황에 장의는 눈앞이 팽팽 도는 걸 느끼지만 약속을 어길 수 없다며 혼사를 진행하고, 아들인 미염은 의거국을 통해 진나라를 견제하고 싶었던 초나라 대신 소양의 인질이 된다. 미아두는 낳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들과 생이별하고 진나라에 도착하지만 영사가 후궁을 찾지 않아 뜻 밖의 독수공방 신세. 독수공방 신세를 견디지 못하고 이곳저곳 맘대로 돌아다니던 미아두와 우연히 만난 영사는 곧장 미아두와 동침한다. 영사는 그 후로 미아두를 매우 총애하기 시작했으니 미아두와 노느라 조례도 빠질 정도. 미아두가 시집 오기 전 의거왕과의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모르는 척 하고 있었다. 미아두가 직접 아이의 존재를 실토하고 초나라 영윤에게 인질로 잡혀있는 자신의 아이를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자 분노해 떠나라고 한다. 쫓겨난 미아두는 어찌되었든 초나라에 가서 아이를 보게 되니 되었다고는 하지만 태기가 보이고 마차에 내려 잠시 쉬던 중, 군사로 위장해 수레를 따라온 영사가 나타나 미아두를 안아주며 돌아간다.

팔자로 봉해지는 미아두와의 관계는 작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영사 캐릭터의 매력 중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보통 정통 사극에서의 군주 커플과 달리 매우 과감하다. 이런 저런 잔소리를 하러 온 공실의 어른들 앞에서 영사와 동석한 미팔자가 은근슬쩍 영사의 소중한 곳을 터치해대는 바람에 자기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낸 영사가 "아야, 아파라 아파!"하고 아픈 척을 하며 급하게 몸이 안 좋다며 자리를 뜨는 장면도 있다. [15] 어떻게 보면 경박하다 싶을 정도로 침대에서 뒹굴거나 스킨십이 많은 커플로 둘 다 성격이 만만찮아 싸우기도 잘 싸우지만 그만큼 깨도 잘 볶고 결국은 찰떡궁합이다. 군주 커플이라고 해서 단순히 위엄있는 게 아니라 정말 평범한 남편과 부인처럼 싸우고 화해하고 사랑한다. 단 둘이 있는 것만 보면 가벼워 보이지만 서로 본분에는 충실하다. 영사는 치마폭에 싸여 있는 듯 하지만 그를 탐탁찮게 여기는 타국의 군주들까지도 능력만은 인정할 정도로 총명한 왕으로 국외 상황부터 후궁 내부 상황까지 모르는 것이 없고, 미팔자는 영사를 살살 녹일 정도로 애교가 많고 말하는 것이 거침없지만 상황을 읽는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 영사의 감탄을 자아내며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절대 넘지 않는다. 심지어 슬하에 아들이 있는데도 고초를 겪기 전까지는 아들의 태자 지위에 대한 욕망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

한편 장의의 협박질로 위나라는 진나라 영사를 군상에서 왕으로[16] 인정하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상왕 대전에서 위왕이 마차를 끌고 한왕이 말을 끌라 하여 위나라의 굴욕이라며 혜시는 거부하지만 장의가 너네가 먼저 훼방을 놓았고 암살시도까지 하지 않았냐며 안 그럼 쳐들어간다고 협박하여 어쩔 수 없이 한다. 마지막까지 꼼수를 부리지만 장의가 가둬놓고 내보내지도 않아서 위왕은 열심히 마차를 끌게된다.

진나라에 인질로온 위나라의 왕자가 문제를 일으키자 지금의 위나라의 태자보단 진나라의 인질로 온 왕자가 위왕이 되는 게 위나라와의 전쟁이 더 재밌어 질 것이라면서 돌려보내기도 하는 비범한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함곡관에 5국 연합이 처들어오게되어 최전방 병사들의 훈련 시찰을 나갔을 때 최전방에서 싸우는 병사들은 변변한 갑옷 없이 싸운다는 말을 듣고 갑옷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직접 사죄하기도 하였다. 사실 함곡관 전투는 진나라에 굉장히 불리했다. 군대 수도 밀리고 5국의 군대를 감당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 진나라 사람들이 도망을 가고 난리였다. 장의는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 초나라의 군대를 철수시키고 제와 연도 합종에서 빠진다. 장의는 각 나라가 취하는 이득이 다르다는 것과 5국의 재상이라는 것은 허울뿐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세치 혀로 발라버렸다. 제와 연 그리고 대국 초나라가 빠지자 남은 건 위와 한. 한나라의 군수 물자가 있는 곳이 함락되자[17] 한나라 군사만이라도 전장에 나가야 한다며 군을 이끌고 위와 한 vs 진의 대결에서 진나라가 대승을 거둔다. 거기다가 한나라는 태자가 죽는 상황까지 벌어져 손실이 막대해졌다.

함곡관 전투에 나서지 않아 미원[18]은 불만이 가득했고 초나라는 결국 합종책이 실패하고 우리는 군사를 내보낸 식량과 돈만 잃었으니 잘된거라며 정신승리를 한다. 사실 초나라 군대가 합쳐져서 공격했다면 정말 진나라가 다시 일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과 파촉 정벌에서 사마조[19]의 의견을 수용하여 파촉 정벌에 나선다. 장의는 한나라를 주장하였으나 사마조가 한나라를 공격하고 주나라까지 들어가면 제후국들이 다시 힘을 합쳐 공격할 거라며 반대하였다. 또 파촉이 수탈로 인하여 봉기가 일어난 상황이고 전쟁의 명분이 충분하다고 주장하여 혜문왕은 파촉으로 군을 보낸다. 파촉에 장자 영탕도 전장에 나가게된다. 왕후는 자신의 아들이 전장에 나가는 것을 반대하였으나 영탕은 원했고 혜문왕도 다 컸으니 전장에서 공을 쌓아야 한다며 보냈다.

파촉 정벌에 대승하고 의거에 있던 건평이 죽자 의거를 멸국시키려 한다. 의거가 망하고 왕이었던 의거해와 왕자였던 의거염은 흩어지게 된다. 장의는 초나라에 가서 그 유명한 6백 리 사건을 일으킨다. 처음에는 초왕을 만나기 힘들었으나 친진파인 공자 자란의 힘으로 만나서 세치 혀를 놀린다. 거져먹는 땅에 신난 초왕은 기대가 컸으나 진나라는 줄 생각이 없었다. 잔뜩 기대했던 초왕은 이 모든 게 장의의 장난이었다는 것을 알고 진진과 소양의 말을 무시하고 선전포고를 날린다. 장의 때문에 제나라와의 연맹도 일방적으로 끊은 상태. 진진은 장의가 진나라의 첩자 노릇을 해달라고 부탁했으나 초나라 실정이 간첩질도 소용없는 정도이며 꽤나 객관적인 시각으로 미원에게 조언을 해준다.

미원은 제나라와 다시 연맹을 맺으러 갔고 진나라도 군을 정비한다. 한나라와 위나라와 다시 연합하여 초와 대응하려고 한다. 이에 태자를 죽게 만든 장수를 어쩔 수 없이 한나라로 보내게 되고 3국 연합으로 초나라가 되려 한중 지역을 빼앗기게 된다. 초나라와 전쟁이 길어지면 불리해질 상황밖에 안 되기 때문에 다시 친하게 지내려고 한다. 초와의 전투로 공자 영화가 죽고 혜문왕은 크게 슬퍼한다. 처음 장의는 한중의 반을 주라고 했으나 혜문왕은 영화가 그곳에서 죽으면서 얻은 땅인데 땅은 절대 줄 수 없다며 강력하게 반대한다. 나중에는 초나라가 화해 할 테니까 장의나 내놓으라고 해서 장의는 초나라로 제발로 찾아간다. 그곳에서 미원은 장의를 죽일 줄 알았으나 쳐맞고 살아서 돌아온다.

위나라와 동맹을 맺기 위해 영탕을 공주와 혼인시키려 한다. 하지만 영탕은 초나라 여자한테 반한 상태였고 혼인식날 초나라 여자와 밤을 보내다가 위나라 공주를 때리는 사건을 벌여 공주가 위나라로 떠나버린다. 기가 막힌 상황에 혜문왕은 욕을 해대며 태자를 폐위할 생각까지 한다. 영질[20]과 장의는 위나라를 언급하며 반대한다. 사실 처음부터 혜문왕은 영탕을 내세울 생각이 별로 없었다. 영직에게 경전을 비롯한 왕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책을 읽으라고 했고 똑똑하고 착하고 효자스러운 영직이 마음에 들었지만 영질이 영직이 왕이 되면 미팔자의 외척세력이 득세하게 되어 영씨의 힘이 약해질거라며 반대했다.

탐탁치는 않지만 기왕에 영탕을 태자로 인정하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영탕의 어머니인 왕후의 위치를 굳건히 하기 위해서 관내후의 아들인 영장과 손을 잡고 미팔자를 모함한다. 미팔자는 자신의 아들인 미염이 진나라 안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들을 만나러 갔지만 그 곳에는 예상치 못하게도 의거해가 있었다. 결국 미팔자는 불륜을 저질렀다며 붙잡히게 된다. 혜문왕은 미팔자를 살려둘 수 없다고 하고 영직은 부왕을 찾아가 빈다.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미팔자에게 정이 깊었던 혜문왕은 장의를 불러 차마 미팔자와 영직을 죽일 수 없다며 왕명을 거스를 방법을 알려달라 하고 장의는 연나라 인질로 보내라고 한다. 혜문왕은 사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일부러 태자 자리를 굳건히 하기 위한 술책이었다. 태자 폐위를 생각했으나 이 때문에 혼란이 빚자 차선책을 내세웠던 것. 혜문왕은 추운 곳에서 모자가 어떻게 버티냐며 슬퍼하고 떠나기전 영직에 대해 말하길 엄마를 위해서 자신에게 대들지 않았냐며 착하고 효자스럽다며 아쉬워했다. 외척 세력을 생각해서 감무와 위염이 만난걸 이상하게 여겼는데 생각해보니 이상할 필요가 없었다며 위염과 감무를 요직에 앉힐 생각을 한다. 영질은 장의는 진나라 사람이 아니며 너무 이곳저곳 관여하고 있다며 점차 그의 권력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혜문왕은 장의는 진나라를 위해서 목숨까지 내놓았다며 내키지 않아 하지만 지금까지 선왕의 재상들이 새로운 왕이 등극하면 실각한 것을 생각해 볼 때 맞는 말이었다. 결국 장의는 무왕이 오른 후 실각하여 위나라로 떠난다.

미팔자와 영직은 연나라로 떠나고 연나라가 재상 자지 때문에 개막장이 되자 조나라로 온다. 혜문왕은 미팔자를 그리워하여 장의에게 다시 데리고 오라고 하지만 가치 있는 인질인 미팔자와 영직을 쉽게 돌려줄 리 없었다. 미팔자의 의거해 사이의 아들인 의거염은 혜문왕이 살려주었고 영장의 술책으로 인해 왕후를 친모로 착각한 채 왕후에게 아들 노릇을 한다. 혜문왕은 의거염의 도발과 영직, 미팔자를 그리워 하다가 죽는다. 또 죽기 직전 영질에게 영장을 죽이라고 지시했다.

이토록 비범하고 현명한 군주의 모습을 보여준 혜문왕이었지만 말년에 친족이 전쟁에서 사망하게 되면서 점점 미쳐가고 참모인 장의 조차 혜문왕이 미쳐서 온전한 정신 상태일때가 아니면 상의하기 힘들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었냐하면 자신이 수십 년 전에 죽인 상앙의 환상을 보고 거열형을 하라고 소리칠 정도였다.

3.1.3. 대진제국지굴기

작중 시점에서 고인이나 39화에서 늙은 소양왕 영직이 전국 6국이 진나라를 치기 위해 주나라의 천자인 난왕에게 확답을 받았을 때 술을 먹으면서 그들을 꺽기 위한 방책을 고심하던 중 영혼으로 등장한다. 물론 아들보다 훨씬 더 젊은 모습으로 등장하며 여기서 자신이 가장 아꼈던 자식인 영직이 드디어 왕이 됐다면서 좋아하나 지금 6국이 합세해서 진을 공격하는데 태평하게 뭐하고 있냐면서 꾸중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영직은 이미 전국 6국 모두 합쳐봐야 진나라에게 상대가 안 된다면서[21] 조상들의 꿈인 천하 통일을 이룩할 것이고 자신이 주나라를 멸망시키고 천자의 지위에 대신 오를 것이라고 밝히면서 왕도로서 그들을 제후국으로 만들고 따르지 않을 시 무력으로 멸망시킬 것이며 설령 자기 손에서 이룩하지 못한다고 해도 자신의 후손들 즉 아버지의 후손들이 진나라의 천하 통일을 이룩할 것이라는 말에 상당히 기뻐한다. 그리고 영직이 자신이 뽑은 새로운 장수인 영규를 소개하려던 사이에 혜문왕의 영혼은 사라진 뒤였다.

3.2. 미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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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초나라에서의 만남

왕후가 죽은 지 1년이 지나고 잘해주지 못한 슬픔에 상심해하나 초나라가 5국과 함께 연맹하여 진나라에 대항한다는 것을 알고 동생 저리질과 함께 초나라로 가서 연맹도 깨고 왕후도 얻을 겸해서 초나라로 온다. 초나라와 이것저것 비교하는데 초나라는 마차를 타고 다니고 진나라는 주로 말로 다녀 도로가 초나라가 더 넓다. 초나라에 도착해서 시장을 가고 귀족같은 미주 자매를 만나고 저리질은 미주를, 혜문왕은 미월을 먼저 눈에 들인다. 저리질이 초나라 간신배 근상에게 뒷돈을 주어 미리 초나라에 대해 정보를 알아냈는데 적통 공주가 현숙하고 예쁘다는 것과 이름이 미주라는 것을 알려 준다. 초 위왕이 월나라를 공격한 이후 월나라 사람이 초에 잠복하여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데 침방에 먼저 들른 미주 자매가 공주라는 사실을 알고 월나라 사람이 공격하고 혜문왕과 저리질이 도와준다. 이와중에 미월이 채찍질과 채소를 날리는 등 도와주자 혜문왕은 제법이라며 칭찬하고 미주는 고맙다는 말을 한다. 왜 월나라 사람이 여인을 공격하냐고 묻자 대뜸 미월이 자기들이 원한을 산 게 아니라 나라 관계가 껄끄러워서 그렇다고 하자 저리질은 왕족 출신이 아니면 말이 안 된다고 받아치고 미주가 혜문왕의 상처 부위에 손수건을 감아주다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여 저리질이 눈치를 챈다. 그렇게 혜문왕은 미주가 누구인지 미리 알아봤고 미월이 어르신이라고 부르자 수염을 깎았다.

초 회왕은 진왕을 만나는 것을 내키지 않아 했으나 근상에게 뇌물을 보내고 남후에게 야명주 선물을 주어 남후의 꼬심에 진왕과 만나게 된다. 초왕은 진왕이 지속적으로 혼인을 요구하자 수랏간 궁녀를 미주로 위장하여 보여주는데 진왕은 말장난을 하며 4덕을 갖추었다고 말하며 기름 냄새가 난다며 가짜임을 눈치챈다. 미주와 미월은 진나라 왕을 구경하러 가고 그곳에서 진나라 상인이 진왕이었다는 사실을[22] 알게 되고 미월이 황헐과 함께 출궁하여 진왕에게 가짜 미주를 알려주러 가게된다. 장의는 자신의 책론을 가지고 궁으로 오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미월과 황헐을 만나 함께 진왕을 보러 간다. 진왕은 굴원의 제자인 황헐에게만 관심이 있을 뿐 초라한 행색의 장의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황헐과 미월이 가고난 뒤 진왕의 고민을 파악하고 자신이 세 치 혀로 연맹을 깰 수 있다고 장담하나 진왕은 사기꾼이라 생각했는지 돈을 줄 테니 가라고 했으나 장의는 상심해 하며 자신감을 내보이자 포부가 좋다며 2개월 내에 연맹을 깨뜨리는 것으로 약속한다. 의거에서 왕이 교체되자 문제가 생길 것을 염려하여 장의를 믿고 돌아가는데 초왕은 이를 수랏간 궁녀를 보고 도망간 거라고 생각한다.

의거에 있는 동안 장의는 위나라에서 연맹을 위해 받친 위미인을 이용하여 연맹에 금이 가게 한다. 진왕은 2개월 후에 다시 초나라로 예물을 가지고 돌아온다. 난감해진 초왕은 소양이 여기는 초나라 수도니까 여차하면 죽이자고 말하고 수락한다. 황헐에게 이 사실을 들은 미월은 미주에게 말하고 위후의 출궁증을 가지고 가 진왕을 만난다. 진왕은 정면 돌파하겠다고 말하고 초왕과의 만남에서 단도로 위협하며 자신을 죽이면 진과 초는 원수지간이 되는 건데 이를 원하냐면서 위협한다. 소양이 미리 자객을 두었다면서 항의하고 조나라 사신이[23] 둘이 정분났으니 자기는 빠지겠다며 가버리고 미주는 진왕과의 혼인을 원한다 하여 혼사가 이루어지게 된다.

위후는 이에 크게 반발하지만 간신배 근상이 5국 연맹이 그럴싸하지만 모두가 생각이 다르고 5국은 합쳐야 초와 대등하지만 진나라는 그 자체로 초와 힘이 비슷하다며 진나라 왕후가 위신있다고 말하여 그나마 기분이 풀린다. 재례제 때 진왕을 보기로 하고 만족해한다.

3.2.2. 18화 ~ 36화

혼인 하기 전 의거가 왕후의 행렬을 공격하고 미월이 인질로 잡히자 장의와 용예, 왕자 영화를 보내어 미월을 구해준다. 처음 혼인한지 얼마 안돼서는 미주에게 잘해주지만 첫날밤부터 진나라 사람이 되기를 요구한다.[24] 하지만 궁궐에 미련없는 미월이 자꾸 왕후 행렬 습격 사건과 황헐의 죽음 때문에 마음대로 동패를 만들고, 위부인의 모국 사람을 고발 하는 등 사건을 일으키자 왕후를 크게 질책한다. 미월이 벌로 청소하게 되자 악심을 품은 괵미인이 일부러 가서 모욕적인 말을 뱉자 미주는 무릎을 꿇고 자신의 뺨을 때리라고 하고 이때 갑자기 번소사가 계단에서 구르게된다. 진왕은 미주를 엄청 째려보고 다행히 번소사가 아들을 낳는데 갑자기 괵미인이 왕후에게 모욕적인 일을 당하여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지고 진왕은 미주에게 실망스럽다며 가버린다.

괵미인 사건으로 충격을 먹은 미주가 쓰러지고 임신한 사실이 알려지고 잠시 위부인에게 내명부 권한을 주려다가 그만둔다. 초나라에 사신으로 갔다온 장의가 육백리 사건[25][26]으로 인해서 쫓겨나자 미월이 직접 대왕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장의에게 큰 총애를 준다.[27] 장의의 육백리 사건으로 완전히 속은 초나라는 진나라로 쳐들어오고 장의에 의해 초와 제나라 연맹이 끊어져서 겨뤄도 이길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다. 결과 진나라가 한중 6백리를 차지하며 대승을 거두었다. 위부인과 위소사가 일부러 왕후에게 초나라가 상어 6백리를 차지하려다 오히려 한중 6백리를 빼앗겼다며 비웃자 모욕을 느낀 임신한 미주가 편전으로 들어와 장의를 욕하고 초나라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자 무서운 눈빛을 뿜으며 너는 진나라 왕후라면서 크게 화를 낸다. 그 뒤 진왕은 미주에게 내명부 통솔권을 빼앗고 초방전에 가두고 왕후를 뵈려면 대왕의 승인을 받으라 한다.

미월이 동생 위염의 일로 자신을 찾아오자 냉담하게 진나라 법이 있으며 피해갈 수 없다고 말하고 미월은 시침을 하러 들어가지만 남자 옷 푸는 법을 몰라 들키고 진왕은 이런다고해서 동생을 구할 수 없다며 분노한다. 하지만 진왕은 미리 선수쳐서 위염을 데려가고 벌로 새끼 손가락을 자른다. 미월은 대전 앞에서 배소를 불고 이것이 진왕의 마음을 흔들어놓아 승은을 입게된다.[28] 미주에게서 적통 공자를 얻자 좋아한다. 은나라 성군의 이름 성탕을 따 탕이라고 지어준다. 미월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지만 강요하지 않는다. 이후 미월을 불러 첫 정인인 황헐 이야기를 하도록하며 황헐의 무덤을 큼직하게 만들어주고 매년 이곳에 와서 제사를 지내는 것을 허락한다. 미월에게 각국이 쓰는 문자와 도량이 달라 어려움을 느낀다고 말하고 직접 각국의 글자를 써서 보여준다. 이에 미월은 미주가 시집올때 초에서 가져온 책이 엄청 많다면서 그것을 진나라의 말로 번역하겠다고 한다.[29]

미월이 혜문왕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팔자'라는 높은 지위에 봉해진다. 혜문왕에게는 다 큰 자식인 맹영 공주가 있는데 맹영의 혼사를 논하게 되자 '연'나라로 갈 것이 정해진다.[30] 그런데 하필, 연나라의 태자가 아닌 왕의 부인으로 가게되는데 왕의 나이가 60대이다.. 이런걸 다 알지만 혼사를 무르지 않는다. 영부인을 만나고 온 맹영은 큰 결심을 하고[31] 진왕은 자신의 옥패를 주고 언제나 너의 옆에는 진나라와 아버지인 내가 있다며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연락하라는 당부를 해주고 보낸다.[32][33] 맹영 공주의 혼사가 끝난 후에 허전함과 미안함을 영부인에게 털어놓는다. 혜문왕의 마음은 미월에게 일편단심으로 향해있어 다른 후궁들은 별로 챙기지도 않는다. 특히, 단적으로 보여주는게 자신의 생일을 왕후인 미주가 성심껏 차렸고 모든 후궁들이 모인 자리에서 대놓고 면박을 준다.[34] 그런데 하필이면 왕후인 미주를 냅두고 미월을 대놓고 데려가는 바람에 자신의 아버지 효공왕은 상앙을 등용했고 그로 인해 자신의 스승의 코가 베이고 재상으로서 큰 권력을 가지자 상앙을 죽였지만 그가 만든 변법을 유지하면서 강국이 되었다며 애증의 관계를 보이며 자신의 생일이 상앙이 죽은 날임을 알려준다. 하지만 미월에게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하고 미주에게 이런 사실을 말하지 못하자 둘 사이에 또 벽이 생긴다. 미월이 임신하자 크게 기뻐하고 초나라 신녀를 기리는 신당까지 챙겨준다.

위나라 출신인 공손연이 진에서 위로 떠날 기미를 보이자 혜문왕이 붙잡는다. 그에게 많은 재물을 선물로 준다. 이 사건으로 위소사가 자살하는데 그에 대한 표현이 압권이다. 사람이 죽었음에도 '위소사가 만든 맛난 음식 못먹겠네..'라고.. 말함으로서 혜문왕의 성격을 보여준다. 자신이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끝없이 잘해주지만 관심 없는 사람은 죽든지 말든지 신경쓰지 않는다. 위부인이 혈서를 써서 대왕의 처소 앞에 무릎을 꿇고 빌며 공자 화도 같이했다. 반나절을 꿇고나서야 대왕이 일어나라고 명하며 위나라와의 전쟁이 벌어지게된다.[35]

이때 황헐이 황흠이란 이름으로 용대인 집에서 머무르고 미월과 만나려한다. 미월은 옛 친구를 보러 간다며 출궁을 허락받는데 널부러진 승명전을 보며 마음이 흔들린다.[36] 황헐이 함께 도망치자고 하지만 태동을 느낀 미월은 가지않고 승명전에 와 상소 정리를 하며 이제서야 마음 정리가 되었다며 이미 마음이 이쪽으로 기울었음을 인정한다. 후에 황헐과의 재회가 인위적이었던 것에 대해 장의와 이야기를 나눈다. 여기서 혜문왕은 황헐이 살아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미월과 황헐이 음모에 걸려들까봐 걱정했으며, 장의는 순리대로 절차를 밟아 재회를 주선했다는 게 밝혀진다. 혜문왕의 눈과 귀는 어디에나 있는데 그걸 보길 원하느냐, 원치 않느냐의 차이라고.[37]

함곡관의 군 정비를 위해 궁을 비운 사이 대모가 미월의 약에 손을 대고 왕은 재빨리 궁으로 돌아온다. 대모는 사전에 미주에게 안식환을 먹였고 규 상궁을 가두었으며 이런 행동 때문에 장형을 선고받고 끌려간다. 미월의 목숨이 위험해지자 혜문왕은 일어나서 승명전에서 상소를 정리하고 살아서 진나라의 천하 통일을 봐야한다고 절규하고 이 소리를 들은 미월이 기적적으로 아들을 낳는다. 대모는 머리가 잘리고 벽에 걸리는 효수형에 쳐해진다. 미월의 아들의 이름을 오곡이 풍성하다는 뜻으로 '직'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주는데 국가의 사직할때 쓰이는 직이며 주나라 시조의 이름이기도 하다.

3.2.3. 37화 ~ 54화

공손연이 악심을 품고 위나라로 가 각국을 선동하여 연맹을 만든다. 진나라는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 장의를 보내 연맹을 깨뜨릴 생각을 한다. 한편, 후궁에서는 장의와 초나라에서 악연이 있었던 화씨벽이 함양에 도착하여 왕후와 미월이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된다. 미월은 장의의 부탁을 받았고 왕후는 초나라의 보물이라 사서 돌려줄 생각이었다. 결국 왕이 직접 나서서 각각 1만 5천을 내게 하고 가져가 상자 안의 옥을 꺼내는 사람에게 주기로 하였다.

미월이 화씨벽을 풀었는데 안에 있던 독에 중독되어 위중한 상태에 놓이자 범인을 색출해내는데 사활을 건다. 이때 위부인이 왕후가 한 짓일지도 모른다고 고한다. 우선 독이 초나라 뱀독이었으며 왕후가 독에 중독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초나라에서 가져온 진귀한 약을 먹었다고 말한다. 이에 왕후를 의심하고 금족령을 내린다. 조사 결과 범인이 맹소씨라는 사실을 알고 가차없이 죽인다.

미월이 아픈 몸으로 찾아와 범인은 왕후가 아니라며, 장의가 화씨벽에 걸려들었으나 그걸 되팔고 도망간다는 것은 상황이 앞뒤가 안맞고 처음부터 장의를 노리고 한 것이라며 범인이 공손연이라고 생각한다. 이전에 장의를 연맹을 깨뜨리기 위해서 사신으로 보내려 했지만 화씨벽에 대한 혐의 때문에 집에 머물라고 하고 혹시 도망갈까봐 군인들을 보낸다. 이런 삐친 장의를 위해 미월이 직접 나서고 공손연과의 자존심 싸움을 부추겨 장의를 연맹 회합을 깨뜨리는데 보낸다. 제일 먼저 맹영 공주가 있는 연나라로 연의태자가 왕이 된 후 실권이 재상에게 있고 맹영의 서신이 오질 않는다며 직접 가보겠다고 한다.

책론 정리를 하던 미월이 맹영 공주의 서신을 발견한다. 맹영이 시집 간 후 왕자를 낳았는데 연왕이 죽고나서 태자가 올랐고 역후가 되었으나 그녀를 한나로 인질로 보내 버린것이다. 5국 연맹이 다굴로 진을 치려하는 상황에 선뜻 나서지 못하나 미월이 맹영 공주를 데려오는 것은 소수의 인원만 있어도 된다하여 위염을 보내 데려온다. 하지만, 맹영 공주의 3살짜리 아들은 조나라 조응천이 인질로 잡아가 오지 못한다. 맹영은 초라한 모습으로 혜문왕을 찾아가 자신의 아들을 데려와 달라고 빈다. 하지만 혜문왕은 너로 인해서 이미 많은 병력을 썼다며 철벽을 친다. 맹영은 부왕에게 자신은 그저 장기판의 말에 불과했다며 나가버리고 혜문왕은 상소를 모두 집어 던져버린다.[38] 맹영 공주의 서신을 바탕으로 알린 사람은 소진으로 맹영은 그가 진나라 조정에서 일하기를 바랬다. 미월만이 왕의 승명전을 자주 들락거리자 질투가 난 미주는 자신도 같이 책론을 정리하겠다고 했었고 일부러 소진에 대해서 말한 것 장의와 소진이 비슷하여 중용되면 자신은 누구 편을 들어야 할 지 모르겠다라고 한 것을 이용한다. 이를 소진을 등용하려한 혜문왕에게 말함으로서 소진은 진나라에서 등용되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여관 주인이 빨리 나가라고해서 한나라로 가버린다.[39] 함곡관에서 계속해서 5국과 전쟁을 하던 중 위염이 기발한 생각을 하여 대승을 거든다. 그 이후 연이어 승리하여 조나라 태자를 붙잡고 한나라 왕을 죽인다. 소진의 책략을 이용하여 제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자 조나라와 함께 연합하여 연왕과 재상 자지를 죽여 맹영 공주는 역후로 다시 돌아간다.

의거를 형제국으로 만들기 위해 직접 출정하는데 미주는 경씨를 추천하나 조산으로 인하여 데려가기 싫다고 하고 이미 의거왕과 만난 적이 있는 미월을 데려가겠다고 한다. 의거왕이 티나게 미월을 월 공주라 부르며 치근적거리자 경계한다. 미월과 단 둘이 있는 자리에서 의거왕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고 말하고 미월을 업어주다가 초원에서 독충에 쏘인다. 태의가 와서 치료하는데 가벼운 상처이나 치료를 좀 오래해야 한다고 하나 혜문왕은 이까짓 거 괜찮다고 말하고 추후 이 치료 시기를 놓쳐 명을 앞당기게 된다.

2년이 흐른 후 태자를 정해야 하는데 미주의 아들이 적통 공자이기 때문에 미주가 많이 들이밀지만 계속 미룬다. 저리자도 태자를 정해야 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태자를 일찍이 정하면 공격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미룬다. 사실 정무로 바빠 아들들이 어떻게 크는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미주가 어화원을 새로 꾸미겠다며 혜문왕과 후궁을 데려간다. 사실 일부러 미주가 영탕을 태자로 밀기위한 수법이었는데 골프를 치는 모습을 보고 미주는 영탕이 무의 기질이 많고 용감하다고 칭찬하지만 칭찬하기에 무섭게 공이 웅덩이에 빠지자 내관들 보고 빨리 끄내라며 칼집으로 때리는 폭력성을 보여주고 욕지껄이를 하자 위부인을 비롯한 후궁들이 비웃고 이 모습을 보고 영탕에 대한 마음이 식고 태자감이라는 생각에서 점점 멀어진다. 반면 영직이 공을 꺼내는데 물을 길어 손쉽게 꺼내자 칭찬한다.

한나라를 치느냐 파나라를 치느냐의 문제에서 아들들에게 의중을 떠본다. 미주는 감무와 저리질에게 영탕의 교육을 맡기고 답안까지 마련해가는데 영직의 말빨에 당해서 망한다. 일전에 왕후가 일부러 영탕에게 공부에 대한 자극을 주기 위해서 영직과 같이 공부하게 하는데 혜문왕이 오자 영탕은 싸움박질 하러 나가고 없고 영직이 진득하게 앉아서 공부하고 있자 영탕을 혼낸다. 사방관에서는 영탕은 다수의 의견을 선택하고 영직은 모두가 생각하는건 한나라도 알고 있을 거라머 촉나라와 파나라와의 전쟁을 택한다. 부왕의 마음에 쏙 든 영직을 점점 태자로 생각하는 듯 하고 미월에게도 그럴 뜻을 내비치지만 미월은 형제들끼리 싸움 붙이지 말라며 반대한다. 나중에는 아예 영직을 데리고 출궁하겠다고 말해 혜문왕의 분노를 산다.

결국 '적통'이라는 타이틀을 강조한 저리질에 의해 영탕을 태자로 책봉한다. 태자가 된 이후 영통을 너무 괴롭혀 자살하게 만드는데 번장사가 찾아와 구구절절 모든 것을 다 이야기 하자 그제서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다. 하지만 나이도 많이 먹고 과로로 인하여 쓰러지게 되고 왕후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후궁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40]

혜문왕이 죽기 직전 미월을 부르고 세상이 너를 부를 때 절대 거절하지 말라는 말을 남긴다. 그의 사후 미월은 연나라의 인질로 가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 반전이 있었으니 헤문왕이 바로 자신의 칙서를 남기고 죽은 것. 그것을 혜문왕의 형제인 영부인에게 남긴다. 그 선지의 내용은 만약 왕자의 난이 일어나면 미월의 아들을 왕으로 세운다는 것이었다. 결국 혜문왕의 예상대로 무왕 영탕이 어이없게 죽은 뒤 나라가 혼란스러워지고 왕자의 난이 일어나면서 위나라에 넘어갈 위기에 처한다. 영부인은 용예를 시켜 미월을 연나라에서 데리고 오라고 부탁한다. 미월은 영부인과 만나 칙서를 받고 저리질은 영직을 데려간다. 의거왕과 함께 진의 궁으로 들어온 미월은 아들을 왕으로 세워 자신은 태후가 되었고 진나라의 군대를 장악함으로서 나라가 안정된다.


[1] 출토된 진나라 유물인 진인옥판(秦駰玉版)에서 기록된 이름.[2] 비슷하게 초나라는 도왕이 등용한 인재인 오기가 초나라를 중흥시켰지만, 항목에도 있듯 오기가 좀 극단적인 인물이라 그를 미워한 초나라 귀족들이 그를 죽일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고, 결국 오기를 두둔하던 도왕이 죽고 숙왕이 즉위하자마자 숙왕 역시 오기를 죽이는데 동조하면서 오기의 사망 이후 초나라도 점점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3] 실제로 훗날 3년 넘게 치러진 장평대전에서 진나라는 조나라보다 군량에 여유가 있어 이길 수 있었다. 군량에 여유가 없어진 조나라는 신중하고 연륜있는 명장 염파에서 성급하고 경험이 적은 조괄로 대장을 바꾸는 실수를 저질렀는데 결국 이것이 대패로 이어졌다.[4] 상앙의 변법은 구 귀족들의 특권을 빼앗는 법이다. 일례로 보잘것 없는 농민이라도 전장에서 세운 공에 따라 신분 상승할 수 있다. 적의 수급 하나 당 한 계급을 올려주었으니, 진나라가 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또한 수급이라는 단어의 유래가 바로 상앙의 변법에서 나온 것이다.[5] 명예를 중요시 여기는 공손연에게 자신이 키운 특별 부대를 전장이 아니라 뒤 구린 암살에 써먹는다는 것은 모욕적인 일이었다. 게다가 입을 봉한다는 명목 하에 살아 돌아온 전사들을 모두 죽였다.[6] 위서는 겁에 질렸지만 사실은 영사 자신에게도 위서에게도 완벽한 임기응변이었다. 아무리 군수가 딸을 아낀다 하더라도 위왕의 명으로 붙잡고 있던 영사를 제멋대로 놓아 준 행동은 간과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때 영사가 위서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협박함으로써 위서는 영락없이 못된 진군에게 사로잡혀 협박당한 피해자 포지션이 되었다.[7] 위서는 이미 일전에 위나라에서 도망치던 영사가 옥을 주었을 때부터 그를 마음에 담고 있었다.[8] 이때, 위서에게 속삭이는 대사가 매우 좋다. "가만 계시오. 아직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으니까. 움직이지 말고 비수를 잡아빼지 마시오. 그랬다간 내가 죽을 테니까."[9] 이후에 자신을 찾아온 혜문왕에게 위서가 죽음을 청하지만, 영사는 오히려 위서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는 걸 알고 용서하고 부인으로 받아들인다. 다만 이때의 일이 트라우마가 되어 가끔 위서와 함께 있을 때 발작을 일으키곤 한다.[10] 상국 겸 장군으로 진나라의 최고 직책[11] 소양[12] 화씨벽[13] 훗날 미팔자, 선태후.[14] 극중에서 미아두가 부르는 애칭은 만아자[15] 지나치게 주제 넘는 행동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공실의 어른들을 향해 '나는 당신들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일부러 국사를 논하는 자리에 후궁인 미팔자를 데리고 간 영사의 의중을 꿰뚫어 보고 한 술 더 떠 장단을 맞춰준 것 뿐으로, 영사 본인도 미팔자의 식견에 감탄한다.[16] 본래 춘추 시대의 질서상 왕은 주나라의 천자 하나뿐이고 다른 나라들은 모두 제후국이다. 나라에 따라 군주인 제후의 작위가 다른데 진나라의 경우에는 백작이나 관습상 영사의 아버지는 시호가 효공이다. 그런데 전국 시대에 이르러 주나라의 힘이 약해지자 강한 제후국들이 스스로 왕을 칭하게 되었고, 영사 역시 이런 흐름 속에서 왕이 되어 진나라를 강국으로 만들고자 했다.[17] 사실 한나라는 자기네는 군수 물자 없다며 다른 나라 거 쓰려다가 들통난 것. 이러니 합종이 잘 될 수가 없다.[18] 어부사로 유명한 그 굴원이다. 극중에서는 미원으로 나오는데, 성이 미(羋)이고 씨가 굴(屈)이기 때문에 결국 같은 이름이다.[19] 사마착으로도 불린다.[20] 저리자 혹은 저리질.[21] 진나라와 쌍두마차를 이뤘던 강대국 제나라는 민왕 때 송나라를 욕심내다가 6국의 미움을 받게되고 진을 필두로 해서 연나라의 명장 악의가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제를 치고 수도인 임치가 함락되면서 그 이후로 멸망의 길에 접어들었고 위나라와 한나라는 진나라의 동진에 의해 점점 힘이 약해져가고 있었으며 이 두 나라 연합군은 진나라 명장 백기에 의해 20만이 몰살당하면서 그 국력이 크게 약해졌다. 더구나 위나라보다도 한나라는 그 상황이 매우 심각해져서 애초에 7국 중 가장 약한 나라였는데 여기에 상당수의 병력을 쏟았기 때문에 멸망의 길을 걷게 됐고, 연나라는 애초에 진나라에 상대조차도 될 수 없던 나라였다. 또한 초나라 역시 이미 진나라에 진출로 인해 수도인 영이 함락되면서 천도를 할 수 밖에 없었고 이 이후 초나라는 진나라에 제대로 대항하기 어려워진다. 그 나마 조나라가 성장을 하면서 진나라에 맞설 수 있었으나 장평대전으로 40만의 젊은이들을 순식간에 잃어버림에 따라 세대가 끊기면서 매우 어려워지고 있다는 걸 아버지에게 말한다.[22] 미주 자매가 누구냐고 묻자 진왕은 진나라 상인이라며 선을 보러 초나라를 왔다고 말한다.[23] 초나라는 미주를 조나라로 시집 보낼 생각이었다. 조나라 사신 또한 적극적으로 초나라에 접근했고 떼어버리기 위해 장의의 계책을 써서 공주와 진왕이 사사로이 만난다는 것을 보여 준다.[24] 혜문왕의 누이인 영부인은 위나라 왕에게 시집을 갔는데 진과 위가 전쟁이 벌어지자 혜문왕이 영부인에게 위나라의 기밀을 요구했다. 이에 영부인은 기밀을 넘겨주었고 결과적으로 이게 크게 작용하여 진나라가 승리하게 되자 위나라가 이 사실을 알고서 영부인을 죽이려든다. 결국 진나라는 5개의 성을 주고 영부인을 진나라로 데려왔다.[25] 진왕은 미주와의 혼사를 성사시켜주면 상, 어 6백리를 줄 의향이 있다며 술자리에서 얘기하고 둘이 혼인을 한 뒤 지속적으로 초나라가 요구한다. 하지만 애초에 진왕은 줄 마음이 없었고 술자리에서 한 얘기를 믿는다며 비웃는다.[26] 장의는 초나라 사신으로 가서 6백리를 주겠다고 약속했다며 자신의 6백리라고 말하는데 진왕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혀를 잘라버리라 하는데 미월이 의도를 파악하고 진왕이 준 상, 어 6리의 이름이 육백이라고. 그것을 알고 크게 총애한다[27] 이 전에 공손연이 공자 화를 태자로 올리려했으나 장의 때문에 실패한다. 육백리 이후 장의를 편애하자 악심을 품는다.[28] 들어간 건 맞지만 초나라에서 황헐과의 사이를 알고있었고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이불을 주며 한쪽에서 자라고한다.[29] 미주와 왕의 관계 개선을 하기위해 왕후의 생각이라고 말한다.[30] 정치적으로 진과 연이 멀리 떨어져있어 직접적인 충돌이 없고 연이 제나라와 동호를 막아주기 때문에 진나라 입장에서는 이득이다.[31] 왕자들은 공을 세우기 위해 전장으로 나가고 많이 죽었다. 그에 반해 공주는 신분은 높고 나라의 녹을 많이 받으니 이런 혼사가 일종의 국위 선양이라고 할 수 있다.[32] 사실 미월이 미주를 찾아가 맹영 공주의 혼사를 막아달라고 청한다. 미주는 이에 응하지만 결코 맹영의 혼사를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맹영이 지금 저러는 것은 어리광을 부리는거라면서 대왕을 안심시킨다. 이 사건도 하나의 미주 자매의 멀어지는 요소로 작용한다.[33] 맹영은 영부인을 찾아가고 영부인이 자신이 위나라로 시집간 이야기를 해주면서 맹영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해준다.[34] 후궁들 말로는 5년 전부터 왕이 자신의 생일을 초라하게했다고 한다. 혜문왕은 지인을 만나러 가야되겠다면서 잔치는 너네들끼리 알아서 즐기라하고 나가버린다.[35] 이에 위부인은 공자 화에게 전쟁의 선봉으로 서달라는 상소를 쓴다.[36] 초나라 서책 정리가 끝난 후 미월에게 매일 와 이곳의 상소를 정리하라고했다.[37] 미주가 진나라 밀은 거칠어서 먹기 싫고 초나라 쌀이 먹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다. 이때 주위에 있던 사람은 대모와 일하는 궁녀 몇이 전부였으나, 아주 나중에 혜문왕이 미주가 했던 말을 묻는 장면이 나온다. 어찌보면 복선이었던 셈.[38] 진의 상황이 그러기엔 너무 적이 많았다. 혜문왕도 자신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상황에 화를 낸다.[39] 이때 미주의 이간질과 소진에 대한 악심으로 추후 연나라로 간 미월을 처음에 도와주지 않는다.[40] 왕자 영직의 훈련을 태감이 맡도록 했고 이를 본 영탕이 갑자기 시비를 걸고 목격하게된다. 영탕은 영직은 태감이 왕의 처소 앞에서 훈련하게 하면서 자신은 왜 안되냐고 따지고 왕은 열받아서 화병이 나서 쓰러지는데 어떻게 보면 미주가 일부러 교묘하게 혜문왕을 죽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