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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초대 국군 후직 | 后稷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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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지 | <colbgcolor=#FFFFFF,#191919>태(邰)[A] | |
| 직책 | 후직(后稷) | |
| 성 | 희(姬) | |
| 휘 | 기(棄) | |
| 부왕 | 제곡(?)(帝嚳) | |
| 모후 | 강원(姜原) | |
| 생몰 기간 | 음력 | 미상 |
1. 개요
중국 신화의 등장인물. 주나라의 왕성인 희성 부족의 시조.2. 상세
《사기》에 의하면 제곡 고신씨의 정비인[2] 강원이란 여인이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임신해서 낳았다고 한다. 강원은 후직을 혼자 감당하기 힘들었는지 버릴까도 고민했으나[3], 신화가 흔히 그렇듯 하늘의 기적으로 여러 연이 닿아 후직은 무럭무럭 성장했다고 한다.이후 요순시대부터[4] 하 왕조까지 벼슬살이하며[5], 나중에는 태(邰)[A]에 봉해져 농업을 지도하는 직책(后稷)을 맡았다고 전해진다. 덕분에 후대 중국에서는 염제 신농씨와[7] 함께 농경의 신으로 여겨졌다. 조선에서도 농사의 신으로 모셨다.
참고로 후직의 아들 부줄은 이후 왕조가 어지럽자 '농사' 직위 대신 희성 주족 집단을 데리고 주 땅인 주원, 관중 분지를 떠나 북방 융적 야만인들이 사는 곳으로 이주하여 생계를 꾸리며 11대까지[8] 나름 잘 살다[9][10], 고공단보 대에 이르러 다시 주원으로 돌아와 상나라 속국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A] 현 섬서성 무장현 일대로 비정.[2] 이는 산해경 등에서 창작된 내용으로 보기도 한다. 당장 주족의 창시 전설이 전해져오는 시경 『대아-생민』편에도 이런 설을 신뢰하지 않았는지 관련 내용이 없다. 즉, 미혼 상태에서 후직을 낳은 것.[3] 이후 강원의 행동이 시경엔 나타나지 않아 버리고 갔는지 아니면 다시 거뒀는지 알 수 없지만, 사기엔 다시 거둬 길렀다고 나와있다. 처음엔 아이를 버리려 했기 때문에 '기(棄)'라는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후직의 동생 태새가 숙균을 낳았다는 얘기도 일단은 전해지는걸 보면 강원이 다른 자식도 낳았을 가능성이 있다.[4] 사기에 따르면 희성과 (기에서) 후직이란 명칭 역시 순임금한테 받았다고 한다.[5] 다만 후직과 초기 주족이 진짜 요순, 하 왕조와 연관이 있는지 아니면 후대의 미화인지는 확실히 검증할 방법이 없기에(고고학적으론 주의 주거 위치가 하나라 세력권 밖으로 추정된다), 역사학계에서도 진지하게 보고 있진 않다.[A] [7] 이 신농씨를 후직의 조카 숙균 혹은 아우 태새가 후대에 신격화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후직은 황제. 믿거나 말거나[8] 사실 하나라 초기부터 따지면 11대의 집권기간이 너무 길어지는 문제가 있어, 실제론 후직이 하말상초 어느 무렵쯤 인물 아니냐는 추정도 있다. 이 설을 따르면, 부줄도 하가 아닌 상이 세력권을 넓혀 서쪽 지방을 침범하자 이에 위협을 느끼고 관중의 평야 지대 대신 북방 산악 지대로 숨었다고 볼 수도 있다.[9] 후직의 동생 태새의 아들 숙균 무리(강성 주족)는 계속 주원에 머물며 농업을 계승했으나, 상나라 무정 시기 정벌 당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10] 혹은 애초에 주족은 유목민 세력이었다 관중에 오면서 정주 세력이 된건데, 이후 조상 올려치기를 하는 과정에서 후직 신화가 창조되었을 가능성도 아예 없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