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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14:36:19

2010년대

2010년대생에서 넘어옴
연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2020년대 2030년대
세기
19세기 20세기 21세기 22세기 23세기
밀레니엄
제2천년기 제3천년기 제4천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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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상은 2010년대가 시작되기 직전,
2000년대 마지막 날[1]제야의 종 타종식 영상이다.

1. 개요2. 정치, 경제, 사회
2.1. 정치
2.1.1. 대한민국2.1.2. 미국
2.2. 경제2.3. 사회
2.3.1. 대한민국 기후
3. 문화
3.1. 교육
3.1.1. 경기도 고등학교 남녀합반
3.2. 음악
3.2.1. 한국 음악3.2.2. 해외 음악
3.3. 패션3.4. 방송
3.4.1. 지상파3.4.2. 종합편성채널3.4.3. 케이블 채널
3.5. 드라마3.6. 영화3.7. 예능3.8. 만화, 애니메이션
3.8.1. 대한민국3.8.2. 일본3.8.3. 미국
3.9. 게임3.10. SNS
4. 이 시대에 새로 생겨나거나 흥행한 것들5. 이 시대에 쇠퇴한 것들
5.1. 세계5.2. 대한민국
6. 사건 사고
6.1. 한국6.2. 기타 국가
7. 스포츠 행사
7.1. 축구
7.1.1. 청소년 축구
7.2. 기타
8. 대중매체에서9. 2010년대에 들어가는 해10. 참고/관련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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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0년대2010년~2019년까지의 기간이고, 21세기, 제3천년기의 2번째 연대이다.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많은 혼돈과 혼란이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 연대에 음력 윤달이 든 해는 2012년 (3월[2]), 2014년 (9월), 2017년 (5월[3])이 있다. 한국에서 2010년대의 음력 윤달은 모두 홀수 달에만 들었다는 특징이 있다.

2010년대는 아날로그의 완전한 몰락과 디지털 시대의 개막으로 표현될 수 있다. 1990년대 Windows 95의 출시를 기점으로 태동되기 시작한 디지털 문화는 2000년대 아날로그와의 공존기를 거쳤고, 이 후 2007년 출시된 iPhone을 시작으로 2010년대 초반 스마트폰의 급격한 대중화로 아날로그 시장을 완전히 소멸시켰으며 디지털 시대가 열리게 된다. 디지털 시장 역시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기존의 PC 중심에서 모바일 웹 서비스로 판세가 바뀌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2009년부터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지만, 유럽의 재정위기와 미국의 재정 적자, 중국의 경기 둔화 등으로 성장률은 완만했다. 세계 경제의 성장동력은 주로 신흥국과 개도국에서 나왔고, 특히 중국, 인도, 브라질 등의 브릭스(BRICS) 국가들이 두드러졌다. 세계 무역은 2010년에 14.5% 증가하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2011년부터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 유로존의 부채위기, 중동의 정치불안 등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유럽에서는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가 발생하여 유로존의 통합이 위협받아 유럽연합(EU)은 구제금융과 구조조정을 요구하였으나, 국민들의 반발과 저항을 받았으며,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무역보호주의와 국제협력의 철회를 추진하였다. 중국은 경제성장률이 10%를 넘어가는 고속성장을 이어가며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하였으며, 일대일로라는 거대한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 각지에 영향력을 확장하려고 하였다.

2010년대는 다른 특징으로는 국제정치의 긴장과 갈등이 본격적으로 점화되었다는 점으로, 미국과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등의 대립이 심화되었다. 미국은 중동에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이어가며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였으나,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인 이슬람국(IS)의 탄생과 시리아 내전의 복잡화로 어려움을 겪었다. 미국은 IS를 공격하고 시리아 반정부 세력을 지원하였으나, 러시아와 이란이 시리아 정부를 지원하면서 대립이 심화되었다. 또한 미국은 중국의 군사적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동맹국들과 협력을 강화하였으며, 중국은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영토권을 주장하며 인공섬을 건설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였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반정부 시위에 개입하여 크림 반도를 점령하고 동부 우크라이나의 분리주의자들을 지원하였으며,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반복하며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와 제재를 받았다. 이란은 미국과 유럽, 중국, 러시아 등 6개국과 핵협상을 통해 핵활동을 제한하고 경제제재를 해제받았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협정을 파기하고 제재를 재개하면서 긴장이 고조되었다.

이와는 별개로 2010년대는 민주화 운동과 사회운동이 활발히 일어난 시대로, 아랍의 봄, 홍콩 우산혁명, 태국 셔츠 혁명, 우크라이나 유로마이단 혁명, 미국 블랙 라이브스 매터 운동, 대한민국 촛불집회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러한 운동들은 인터넷과 SNS 등의 새로운 매체를 통해 조직되고 확산되었으며, 권력의 부패와 억압, 불평등과 차별, 인권과 민주주의 등의 이슈를 제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들은 대부분 진압이나 내전 및 재독재화로 실패하였다.

2. 정치, 경제, 사회

과학의 발전과 민주주의의 확산으로 평화로운 시대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으나, 전 세계 각국에서는 사회적 혐오 정서의 난립, 각종 전쟁과 테러까지 좋지 않은 사건들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메르스에볼라 출혈열의 세계적 유행, 세월호 참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역사상 최악의 테러 집단인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의 탄생, 남중국해 군사적 위기, 도호쿠 대지진, 남수단 내전, 브렉시트 등, 사회를 어지럽히는 사건들이 많이 발생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가졌던 인터넷 기술에 대한 장및빛 전망과 달리, 소셜 미디어(SNS) 등을 통해 혐오 정서가 빠르게 번지는 악영향 또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2010년~2011년, Arab spring Timeline(아랍의 봄)

스마트폰, 소셜 미디어 등 통신망의 진보가 눈부시게 진행된 시대로 이를 이용한 사회 운동도 본격화 되었다. 특히 2010년대의 시작을 장식한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 역시 이러한 통신망의 진보에 크게 덕을 보았다. 북한에서조차 스마트폰이 이용되기 시작하여 도시 지역에서는 흔히 쓰는 수준에 이르렀고,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이런 것이 필수품이 되었고 물가 정보를 공유하는 등으로 상당히 자본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대침체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었고, 이로 인해 유럽에서는 유로화 위기를 맞이하였다. 특히 남유럽 국가의 경제 위기는 매우 큰 타격을 입혔다. 이에 따라 신자유주의, 세계화 체제에 대한 의구심, 자국우선주의 사고가 각국에서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런 혼란을 틈타 세계 각지에서 많은 테러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은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의 유행과 미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났던 월가 점령 시위,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보호무역주의의 탄생, 다문화외국인 노동자 이민 반대 등을 주장하는 유럽 극우, 반 유럽연합 세력의 성장, 영국의 브렉시트, 중국의 팽창주의, 일본의 우경화, 노골화되는 북한의 핵개발, 이슬람 테러 단체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의 탄생 등이 있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G20.svg.png
G20 참가국 지도[4]

중국의 급부상 및 세계 각지 신흥국들의 부상, 전통적 선진국 전반의 쇠퇴로 인해 정치적 영향력의 구도가 변화됨에 따라 기존의 G7 체제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다. 따라서 신흥공업국들과 지역강국들이 포함된 새로운 체제가 대안으로 필요했고, 결국 G7를 넘어서 G20 체제가 들어섰다.

2.1. 정치

2.1.1. 대한민국

이명박 전 대통령박근혜 전 대통령2010년 1월 1일 ~ 2017년 3월 10일[5]까지 약 7년 간 집권하였고 2017년 5월 10일 ~ 2019년 12월 31일 나머지 3년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집권기간이다. 즉 2000년대[6]와는 반대로 2010년부터 2017년 초반까지는 보수 정권의 시대였다. 따라서 이전 시대인 2000년대의 한국 정치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민주당계 정당에서 이명박 정부의 보수 계열로 넘어가는 시기라면 2010년대의 한국 정치는 주로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자 첫 파면 대통령인 박근혜 정부와 9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뤄낸 촛불 정권인 문재인 정부까지 박근혜, 문재인 두 대통령의 비중이 가장 많은 시기이다.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으로 인해 북한에 맞대응할 분위기가 정부, 여당을 통해 고조되다가 그 해 6월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한나라당의 패배와 함께 잠시 누그러졌다가, 같은 해 11월 연평도 포격전로 남북관계가 악화되어 점차 보수 우세 분위기로 갔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총 투표율이 54.2%라는 저조한 모습을 보였는데, 초기에는 민주통합당의 우세를 예상했지만 한나라당의 후신인 새누리당이 152석으로 과반수에서 2석 더 차지한 반면, 민주통합당은 127석으로 졌다. 민노당의 후신 중 하나인 통합진보당은 민주통합당과 연대해 13석을 확보했으나 전국구 선거부정 문제로 찢어졌고, 여성 의원은 지난 대선 때보다 6명 더 많은 47명이 됐다.

18대 대선을 앞둘 적부터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아버지 박정희 때부터 이어진 지지층을 확보한 덕에 그녀의 승리가 예상돼 왔지만, 2011년 하반기 당시 20대의 지지를 받는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대두하면서 안개 정국으로 변화되기도 했다. 민주당 측은 경선 과정에서 문재인이 손쉽게 후보가 되어 안철수와 단일화를 논의했으나, 안철수가 대선후보 등록 직전에 자진 사퇴하면서 사실상 범야 단일후보로 격상되었다. 선거 와중에 국가정보원·국방부 여론조작 사건 관련 의혹 등 여당에 불리한 악재가 터졌으나, 박근혜 후보가 베이비붐 세대의 지지[7]로 박빙의 승부 끝에 당선되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 때부터 경제정의와 국민화합 등 장밋빛 공약을 내세웠으나, 집권 뒤에는 김기춘윤창중, 우병우 등 문제가 많은 인사들을 요직에 앉히고 제대로 된 시대정신이나 지도자로서의 자질 없이 국정을 주도해 큰 비판을 받았다. 민주노총 등 진보단체 탄압을 비롯해 2015 개정 교육과정 역사 교과용도서 국정화 논란,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관련 의혹, 2015년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 합의 시 피해자 배제 문제 등이 대표적인 패착으로 지적된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새누리당을 1석 차이인 123석으로 앞서면서 또 한번 '여소야대' 구도가 형성됐고, 9월부터 밝혀지기 시작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엄청난 사건이 터지면서 국민들로 하여금 박근혜 정부 퇴진 운동을 이끌어내었고, 이로 인해 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탄핵되는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이후 진행된 19대 대선에서는 41.08%의 득표율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면서, 민주당계 정당이 다시 대권을 차지하였다.

이렇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반기에 적폐청산과 정치개혁으로 높은 인기를 얻었고,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였으나 2018년 후반에 소득주도성장으로 인한 경제 문제, 청와대 특별감찰반 비위 논란 등으로 지지율이 40% 후반대로 떨어졌고 2019년에는 북미정상회담 결렬, 남북한 관계 악화 등으로 대북 정책에 있어서도 실효성을 잃으면서 지지율이 40%대를 유지하다가 한일무역분쟁 때 대일본 관계에서 강경 대응을 하면서 지지율이 잠시 오르다가 조국 사태로 지지율이 다시 내려가고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문재인 정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라임 사태 등의 의혹들이 생겨나며 긍정과 부정이 각각 40%대를 유지하는 엇갈린 평가를 받게 된다.

반면 우파 정치권에선 2016년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홍준표 등이 중심이 되어 2017년 초에 새누리당을 '자유한국당'으로 탈바꿈시켰고, 유승민, 김무성 등 일부 비박계 인사들은 '바른정당'이란 새 정당을 차려 우파정당 구도가 재편됐다. 아스팔트 우파 등 극우 쪽은 이명박 때엔 국민행동본부 등지가 한창 활약하다가 박근혜 정권 출범을 전후해 '박사모'와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대한민국 엄마 부대' 등지의 친박 우익단체들이 점차 두각을 드러냈고, 2016년 하반기 촛불집회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 발표를 계기로 박사모 등 친박 내지 극우단체들이 모여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가 만들어져 수많은 기부금과 회원 합류를 계기로 점차 세를 키웠고,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섰기에 '태극기부대'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또한 촛불 시위대와 주장이 대치됐기에 이념의 갈등으로도 번졌다. 2017년 박근혜 탄핵 후 단체명을 '대통령 탄핵무효 국민저항총궐기 운동본부'로 바꾸고 반북/반 문재인 성향을 기조로 문 정권 퇴진과 탄핵무효 운동을 유지하는 한편, 19대 대선을 전후해 조원진 등을 중심으로 '새누리당'이 만들어져 정치세력화 단계까지 갔지만 내분으로 인해 대한애국당과 '박근혜 대통령 석방 1천만 국민운동본부', '일파만파애국자총연합', '박근혜대통령구명총연합' 등 여러 갈래로 분산됐다. 2019년 제3차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태극기부대 8,000여명이 입당 원서를 내기도 했고, 대회장에서도 이들이 반 이상을 메울 정도였다.

이들이 영향력을 크게 만든 건 신혜식의 '신의한수'와 안정권의 'GZSS', '황장수의 뉴스브리핑', 펜앤드마이크, 뉴스타운 등과 같은 우파 유튜버나 언론사들이 가세했기 때문이다.(시사저널 기사)

2010년부터 2017년까지는 북한에 대한 인식이 매우 악화되었다. 2010년대의 시작을 연 2010년에 연달아 일어난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전 등의 북한의 도발이 원인이었고, 참여정부 시절에 개최한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때 NLL 대화록 논란 등으로 인해 민주당계 정부 시절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도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또한 분단 이후 70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북한에 대한 민족적 동질감이나 통일에 대한 국민적 염원도 많이 줄었고 민주화 이후 탈냉전 및 반공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북한과의 화해 추구 역시 민주화가 된지 20년을 넘어가며 동력을 잃은 시대적 배경 역시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사회적 반북 분위기는 2012년 18대 대선 등 2010년대의 각종 선거에서 보수정당이 선전, 승리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박근혜 정권 들어서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연기해가며 미국, 일본과 연계해 대북 강경책을 추진했으며, 2016년에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광명성호 발사사건 등의 도발행위를 계기로 개성공단을 닫고 사드(THAAD) 배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나, 이는 진보 재야세력의 반발에 부딪혔다.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도 남북관계 악화는 해소되지 않을 듯 했으나,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한 동시참가를 계기로 역전의 계기를 보여준뒤 그해 4월부터 남북정상회담 국면을 맞이하면서 남북관계 및 대북인식이 어느 정도 호전되었다.[8] 당시 일각에서는 핵무기를 포기했던 카다피 독재정권이 리비아 내전에 대한 미국과 나토의 군사개입을 받고 몰락한 사례와 핵없이 재래식 군사력만을 유지했다가 1989년 동유럽 혁명으로 정권이 붕괴된 동독, 루마니아의 사례를 보았던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이후 2년에 걸쳐 2019년 6월 남북미정상회동까지 총 4번의 정상회담이 이루어졌으나, 미사일 발사를 비롯한 지속적인 무력 도발과 다시 시작된 대남 비방으로 인해 남북관계는 다시 악화되었다.

주요 이슈로는 2008년 말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양극화 심화로 인해 복지 문제가 2010년대 초반부터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으며 2000년대까지만 해도 대북 정책이나 역사관 외에는 사실상 정책적 차이가 별로 없었던 한국의 거대 양당이 경제 정책에서 뚜렷한 견해 차이를 보이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한편, 2010년대 중반부터는 페미니즘(특히 래디컬 페미니즘)이 정치권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고[9], 문재인 정부부터는 적폐청산 이슈가 대두되기도 했다.[10]

2010년대 중반까지는 2000년대 중반으로부터 이어진 정치 불신 경향이 강했다. 2010년대 초중반 당시 20대~30대 초중반의 투표율은 여전히 낮은 편이었고 새정치를 내세운 벤처기업 CEO 출신의 정치인 안철수가 이른바 '안철수 현상'을 불러일으키며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이러한 청년층의 정치 불신 경향과 더불어 반북 분위기 등에 힘입은 1940~1950년대생들의 결집은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정부의 탄생에 큰 도움을 주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선전하며 대한민국 사회의 제3세력에 대한 갈망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으나 그 해 말 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초대형 사건은 2017년 이후 정치 지형을 민주당계 정당의 확고한 우세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민주당계 정당의 우세 및 보수정당의 열세는 보수정권의 실정이나 초대형 부정부패 스캔들 뿐만 아니라 2010년대 후반 86세대와 X세대가 베이비붐 세대(1955~1964년생)의 인구수를 크게 앞질렀다는 측면에서도 분석되고 있다. 한편 86세대(1960년대생)와 X세대(1965년~1976년생) 이후 N세대(1977~1997년생), 밀레니얼 세대(1981년~1996년생), Z세대(1997년~2010년생)의 등장으로 젠더 문제와 같이 이전까지의 구도에서는 크게 부각되지 못했던 이슈들이 새로운 정치적 쟁점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2.1.2. 미국

2009년에 출범한 미국의 사상 첫 유색인종 대통령인 오바마 행정부는 2011년 5월 2일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는 넵튠 스피어 작전과 10월 21일 이라크 미군철수 선언으로 처음 평화의 계기가 마련됐고, 2014년에는 일명 '오바마케어'라는 전국민 의료보험제도를 실시해 서민과 가까운 정권을 표방했으나, 중동에서는 새로운 무장조직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가 대두하여 안정될 기미를 무너뜨렸으며 2009년 오클랜드 소요 및 2014년 퍼거슨 소요 등처럼 인종차별 문제도 해소되지 않았다. 2016년 11월 8일에 열린 45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준비된 후보'로서 우세하는 듯 했으나 귀족적인 상류층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서민 이미지 연출은 오히려 백인 중/하류층에게 반감을 사 '위대한 미국을 만들자'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이길 빌미를 만들었다.

2017년 출범한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오바마가 이뤘던 것들을 되돌리고자 보호무역 추진과 반이민 정책, 미군 주둔지역 비용 부담, FTA 폐기/수정 등 '미국 이기주의'적인 정책으로 밀고 나갔으며, EU와 중국에 대해 무역전쟁을 하는가 하면 2017년 북한에 대해서도 강경책으로 일관하여 관계가 험악해지자 전쟁 일보직전까지 가게 만들었다. 그러나 2018년에 북한 지도자 김정은과 역사상 최초로 북미정상회담을 싱가포르에서 열어 평화공존의 기반을 만들려 했고, 경제면에서 보호무역 등 자국 우선주의 속에서도 경기가 다시 살아나 중/하류층 백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2.2. 경제

대한민국, BRICS, MINTG7의 명목 GDP 변화[11]2010년2012년2014년2016년2018년2019년성장률
단위: 10억 달러(약 1조원)
미국 전체 명목 GDP: G7/G20 14,992 16,197 17,522 18,707 20,580 21,428 42.9%
<rowcolor=black>중국 전체 명목 GDP: BRICS/G20 6,087 8,532 10,476 11,233 13,895 14,343 135.6%
일본 전체 명목 GDP: G7/G20 5,700 6,203 4,850 4,923 4,955 5,082 -10.8%
독일 전체 명목 GDP: G7/G20 3,396 3,527 3,884 3,467 3,950 3,846 13.2%
영국 전체 명목 GDP: G7/G20 2,475 2,705 3,064 2,694 2,861 2,827 14.2%
프랑스 전체 명목 GDP: G7/G20 2,643 2,684 2,852 2,471 2,788 2,716 2.7%
<rowcolor=black>인도 전체 명목 GDP: BRICS/G20 1,676 1,828 2,039 2,295 2,713 2,875 71.5%
이탈리아 전체 명목 GDP: G7/G20 2,134 2,087 2,159 1,876 2,086 2,001 -6.2%
<rowcolor=black>브라질 전체 명목 GDP: BRICS/G20 2,209 2,465 2,456 1,796 1,885 1,840 -16.7%
캐나다 전체 명목 GDP: G7/G20 1,613 1,829 1,804 1,528 1,716 1,736 7.6%
대한민국 전체 명목 GDP: G20 1,144 1,278 1,484 1,500 1,721 1,642 43.5%
<rowcolor=black>러시아 전체 명목 GDP: BRICS/G20 1,525 2,208 2,059 1,277 1,670 1,700 11.5%
<rowcolor=black>멕시코 전체 명목 GDP: MINT/G20 1,058 1,201 1,315 1,078 1,221 1,258 18.9%
<rowcolor=black>인도네시아 전체 명목 GDP MINT/G20 755 918 891 932 1,042 1,119 48.2%
<rowcolor=black>터키 전체 명목 GDP MINT/G20 772 874 934 864 771 754 -2.3%
<rowcolor=black>나이지리아 전체 명목 GDP MINT/G20 363 459 568 405 398 448 23.4%

이 시기는 미국한국의 선방, 유럽일본의 본격적인 쇠퇴, 신흥국의 위기, 중국의 급부상과 정체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2008년 대침체 이후 이전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새로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여러 논쟁이 시작되었다. 한 예로, 러시아계 영국인 경제학자 아나톨 칼레츠키는 인도적 성격을 지닌 '자본주의 4.0'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을 제시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미국은 선방했다. 미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큰 타격을 받았지만 그 이유는 부동산 거품의 붕괴가 주요 원인이었지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인적 기반 및 사회적 기반 자체가 무너진 것은 아니었고, 기축통화 발행국이라는 이점을 더해서[12] 구조조정과 양적완화 정책을 통해 경제가 되살릴 수 있었고 여기에 셰일가스 혁명까지 겹치면서 결국 2010년부터 10년간 2~3% 성장을 지속적으로 이뤄냈다.출처 다만 경제 위기 극복 과정에서 벌어진 중산층 붕괴와 연방정부 부채, 정치의 양극화 등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으며 또한 중국과의 정면 대결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므로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평가가 존재한다. 그래도 기존의 패권을 지킬 수 있는 경제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럽, 일본 등과 비교시 선방했다.

러시아유럽, 일본은 크게 쇠퇴했다. 유럽은 위에서 언급한 인적, 사회적 기반의 취약성이 유로존 위기를 계기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남유럽국가들에서도 고질적인 부정부패와 낮은 경쟁력, 산업 구조의 한계 등으로 인하여 경제/정치적인 위기를 맞았으며, 특히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국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앙골라나 모잠비크, 브라질, 칠레, 멕시코, 아르헨티나, 페루, 파나마, 에콰도르 같은 옛 식민지였던 나라들로 취업 이민을 떠나는 등의 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했다.[13] 일본의 경우는 1990년대의 거품 붕괴에 구조적 문제까지 드러나면서 위기를 맞았고 2012년 총선거 이후 집권한 아베 신조아베노믹스를 제창하며 경제 회복에 나서, 2015년 이후 점차 경제가 회복기세로 돌아서는 듯 했으나 본격적인 회복의 기세는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2010년대를 마쳤다. 러시아 역시 동부 우크라이나 위기 이후의 서방의 제재와 유가 파동으로 그 취약성이 드러났다.

반면 중국은 급부상했다. 꾸준히 성장률이 낮아지긴 했으나 2019년 6%대의 성장률을 지키며 2010년대를 마무리했다. 러시아와 달리 제조업 위주 경제 구조인 점과 13억의 인구를 기반으로 큰 내수 시장을 형성한 것이 급부상 요인으로 지목된다. 그러나 중국/경제 문서에서 보듯이 부동산 거품. 빈부격차, 부패 등의 문제가 심각해졌다는 점이 불안요소이다. 2030년대 선진국 진입이 가능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평부터 이번 세기 안에는 선진국 진입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평까지 중국 경제에 대한 전망은 다양하다. 2015년 중국 주식폭락, 2018년 미중 무역 전쟁도 주시할만한 문제 중 하나다. 자세한 것은 중국 위협론중진국 함정/중국 문서 참고.

이외 나머지 신흥국들의 경우는 위기를 맞은 나라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나라들도 있는데 대체로 산업 기반이 든든한 나라일수록 건재하고 그렇지 않은 나라일수록 위기를 맞는 추세다.[14] 중진국 함정을 겪고 있는 국가들은 그리 눈에 띄는 성장을 보여주지 못했다. 동남아시아라틴아메리카 국가 중에 한국보다도 낮은 성장률을 보인 국가가 많았다. 로봇산업 등 기술 발전에 따른 선진국 기업의 공장 철수, 보호무역의 심화, 국내 계속되는 부정부패와 빈부격차 심화, 아랍의 봄, 내전 등의 정치적 혼란과 같은 내외적 요인들로 인해 선진국 진입은 더 멀어졌다. 그나마 칠레콜롬비아 같이 자원의 덕을 본 국가나 2010년대 OECD에 가입한 발트 3국 국가, 폴란드, 체코와 같은 비셰그라드 그룹 국가가 상대적으로 선방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경우,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들의 세계시장 선점에 힘입어 선진국 기반을 더욱 확고히 하였다. 2009년 세계경제 위기 때는 한때 성장률이 0.8%에 그치고 고환율까지 이어져 GDP가 2007년 대비 무려 30% 가까이 폭락하면서 1인당 GDP 2만 달러가 일시적으로 붕괴된 적도 있었으나, 2010년 6.8% 성장과 더불어 다시 회복하였다. 이후 2012년 한 해(2.4%)를 제외하고는 2018년까지 대체로 3% 내외의 성장률을 유지했다.[15] 그러나 2019년 기준 아직 1인당 GNI가 세계은행 기준 고소득 국가들의 평균 1인당 GNI 4만 5천 달러에 못 미치는 4만 3천 달러에 그치고, 중국 경제에 기대는 의존도가 더 커졌으며, G7 등 전통적 선진국에 비해 복지의 질이 낮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여기에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잠재 성장률의 하락 또한 문제점 중 하나로 꼽힌다. 2019년에는 2.2%로 GDP 성장률이 떨어지면서, 2010년대 유지되었던 3% 성장이 2% 내외, 크게는 1% 성장까지도 떨어질 가능성이 지적되고 있다. 또한, 2018년 기준, 이전에 다른 선진국보다 훨씬 낮은 수치를 보이던 실업률이 선진국들을 따라잡기도 했다. 하지만, 고도 성장을 이어온 한국의 관점에서는 2% 성장이 저성장이나, 일본이나 유럽 등 전통적 선진국 시각으로는 높은 수준이라는 점에서 선방했다는 평이 많다.

2.3. 사회

(세대공감 토크파티 '해피투모로우') '베이비부머 세대를 말한다..우리시대 50대의 자화상'

냉전 이후 태어난 세대인 1990년대[16], 이른바 “Z세대[17]가 성인으로 첫 진입한 시대. 독일의 경우 1990년 10월, 동서통일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이 성인이 되었고, 러시아와 동유럽에서도 구소련 세대라 불리웠던 세대들에 이어서 러시아/유로 시대에 태어났던 세대들이 성인이 되었다. 2010년대 사회에 진출한 이들은 2000년대보다 높은 10% 내외의 청년실업률에 많은 고통을 받았다. #

대한민국의 경우 제6공화국의 시작과 함께 출범한 노태우 정부, 독재정권 청산을 이룬 문민정부, 50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뤄낸 국민의 정부 초중반 시기에 태어난 1991년생 ~ 2000년생들이 성인이 되었거나 학창시절을 보내다가 성인으로 성장한 시기다.[18] 이 세대는 1987년 민주화운동과 1988 서울 올림픽 이후 국제화 시대에 성장했으며, 동시에 마지막으로 인구적으로 유의미한 세대다. 특히 에코붐 세대인 90년대 초중반생은 에코 세대인 1984~1990년생 보다도 인구가 많고, 에코붐과 초저출산 사이에 낀 1998~2001년생보다도 상대적으로 인구가 많으며 2002년 출생이후에 도래한 초저출산 시기에 태어난 세대와는 압도적으로 인구 차이가 많이 난다. 하지만 60~70년대에 출생한 86세대X세대처럼 유의미한 사회 변동을 불러오지는 못했다.

1920년대생은 이 시대에 점차 90대로 진입해서 대부분이 사망했고, 일제 시대에 출생하고 학창 시절에 광복을 맞이한 산업 세대인 1930년대생들이 80대가 되었고 광복 전후에 태어난 1940년대생들이 70대가 되었다. 마지막 산업화 세대인 1950년대생 세대들이 60대가 되어 노인 세대에 접어들었다.[19]

또한 80년대 민주화에 기여한 1960년대생 '86세대' 베이비부머가 차츰 50대로 접어들면서 586세대가 되었으며,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반생은 이 해 시작부터 중년이 되었고 후반에 50대가 되었으며 1960년대 초반생은 이 시대에 50대를 보냈으며 201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사회에서의 은퇴기를 맞이하게 되는 연대다. 다르게 말하면 인구 절벽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대라는 의미.[20][21] 그리고 90년대의 신세대이자 X세대로 불린 1970년대 출생자들이 40대가 되어 중년기를 맞이했다. 이와 함께 개방적인 자식 교육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터넷 문화를 본격적으로 접하기 시작한 1980년대생이 30대에 접어들어 부모 세대가 되었고, 완전히 현대 문명 속에서 자란 1990년대생들은 이 시기에 학창 시절을 보내다가[22] 성인이 되었으며 2000년대생들은 이 시대에 모두 학창 시절을 보냈고, 2010년~2012년생도 이 년대인 2010년대 후반부터 학교에 재학하게 된다.

수도권의 범위와 인구는 빠르게 늘어났다. 서울의 인구는 1990년대 1,060만명을 찍고 천만명 이상이 유지되다가 199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하락하여 2017년부터[23] 천만 선 아래로 내려갔으나, 서울을 둘러싸는 경기도의 인구는 빠르게 늘어, 수도권 집중 현상은 도리어 더 강해졌다. 이러한 수도권 집중 현상은 일부 도시권을 제외한 시골 지역에서 심각한 고령화 현상을 일으켜, 지역소멸 현상이 대두되었고. # 수도권 지역에서는 부동산 문제가 심각한 이슈로 부상하였다.

이전까지 관행처럼 이어져 온 권위주의 폐해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어 개선되거나 사라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윤일병 사건으로 군대 내 구타 및 가혹행위가 사회문제가 되었고, 간호사 태움 문화 및 직장 내 갑질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이후 개선되거나 없어지게 되었다.

출산율의 경우 2016년까지는 2002년 이후의 출산율 1.1~1.2명대, 출생아 수 40만명대가 계속 이어졌으나 2017년에 출산율이 1.05명으로 당시 최저치를 경신하고 출생아 수가 30만명대로 진입했으며, 2018년에는 출산율이 0명대로 진입하며 저출산 문제가 더욱 심화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30만명이 넘어 2020년대 초반에 비해서는 상황이 낫긴 했다. 이 탓에 30만대로 감소한 2017년생이 학교에 입학하는 2024년 들어 초등학교 폐교 전망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2016년 아이바오러바오가 입국하면서 한국에 판다가 다시 들어왔고, 이들이 바오 가족의 시초가 되었다.

2.3.1. 대한민국 기후

2010년대에는 지구온난화가 심해서 평균기온이 크게 오르고 4계절이 뚜렷해지고 연교차가 커졌다. 지구온난화로 북극한파로 겨울 한파가 잦아져서 12월은 대부분 추웠으나 다른 계절은 크게 올랐다. 특히 여름철인 5~8월의 경우 이상 고온이 심해졌으며 특히 8월의 경우 매우 크게 올라서 8월 폭염이 일상이 되었다.[24] 2010년대의 경우 초반의 경우 저온이 잦았으나 2010년대 중후반(2014년~2019년)에는 고온이 심했다. 역대 가장 강한 폭염도 이 연대에 있다. 또한 초반(2010~2012년)에는 대체로 습한 장마가 나타났고 집중호우도 매우 잦았지만[25], 2013년부터 강수량이 감소하더니 중후반(2014~2019년)에는 거의 모든 해에 마른 장마가 나타났고 건조했다.[26]

3. 문화

스마트폰. 이 한 마디로 2010년대의 문화는 정의된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여전히 아날로그 매체가 대중적으로 사용되던 시기였고 디지털 시장은 각 분야별로 세분화된 형태를 띄었다. 피쳐폰이 세분화된 디지털 시장의 일부를 흡수해서 폰 속에 적용시키긴 했지만 피쳐폰의 기술로 모든 디지털 기기들의 기능을 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휴대폰 뿐만 아니라 여러 휴대용 디지털 기기들이 공존하는 디지털 시장의 양상은 2000년대 내내 이어졌다. 그러나 2007년 AppleiPhone 출시를 기점으로 스마트폰이 등장했고, 2009년 12월에 한국에 정식 출시된 후, 2010년대 초반(2011~2013년 사이)에 빠른 속도로 대중화되었다. 세분화된 디지털 전자기기 시장을 전부 휴대폰 하나로 통합하고 서비스하는 스마트폰의 탄생은 디지털 기술의 완전체로 여겨졌고 인류의 생활 양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스마트폰의 대중화 이후 기존의 전자시장은 완전히 몰락하였으며 아날로그 매체 역시 인류의 실생활에서 완벽하게 사라졌다. 다만 2010년대 초반(2012~2013년)까지는 일부분 2000년대 중후반 분위기가 많이 남아있었다.

2010년대의 문화는 스마트폰의 발전과 항상 붙어있었다고 볼 수 있다. 스마트폰의 발전과 함께 2000년대까지의 PC 시장은 모바일 시장으로 대세가 옮겨졌고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모바일 서비스에 특화되어 있는 SNS 플렛폼이 크게 발전하였다.[27] 모바일 시장에서의 SNS는 PC 시절의 SNS 문화와는 완전히 단절된 새로운 형태의 인터넷 문화를 만들어내게 되었고 이런 인터넷 문화의 유행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스마트폰의 발전이 가져온 인류 생활의 변화는 바로 실생활에 존재하는 절차의 간소화이다. 2000년대에 태동한 VOD 서비스는 성격이 완전히 진화해서 단순히 영상을 다시 보는 것을 넘어 기존 영화관 등이 가지고 있던 박스오피스의 역할까지 완전히 가져왔다. 이 때문에 넷플릭스유튜브를 통해 새로운 영화가 개봉해도 사람들이 극장에 가지 않고 스마트폰 내 모바일 서비스에서 새로운 영화를 구입해서 보는 현상이 생겨났고 이러한 VOD 서비스의 발달은 OTT의 발달로 이어지게 된다. 또한 은행, 우체국 역시 모바일 서비스가 발달하여 사람이 직접 은행이나 우체국에 가지 않고도 은행업무를 쉽게 처리할 수 있게 되었으며 201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서는 신분증까지도 스마트폰이 대체하게 되었다.[28] 스마트폰과 함께 나타난 간소화 현상은 요즘 들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발병으로 탄생한 인류의 비대면 문화의 뿌리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3.1. 교육

3.1.1. 경기도 고등학교 남녀합반

2010년쯤부터 남녀공학 고등학교라면 관내 모든 고교들이 전체 학년 합반을 시행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경기도에서 분반을 하는 일반고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단, 공립학교에 한정된 사실이다. 사립 고등학교라면 경기도에 소재해 있더라도 분반이었다.

물론 공립 고교라고 해서 그당시에 경기도의 모든 지역이 전체 학년 합반을 당연시 여기지는 않았다. 대표적으로 수원시2016년까지 전체 학년 합반을 하는 고등학교가 단 한곳도 없었다. 이처럼 지역의 역사가 오래된 곳은 경기도일지라도 합반을 하지 않았다. 수원처럼 전통이 깊은 곳이면 신도시에 소재된 고등학교 마저도 분반이었다.

신도시가 많고 난개발이 심한 지역들이 합반 일반고가 많았다. 개발이 많이 된 곳은 남녀칠세부동석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개발 구역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깨는 새로운 땅이기 때문에, 그 땅에서 대한민국의 전통을 따라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지역의 3분의 2가 신도시로 뒤덮인 고양시2014년부터 단 두개의 사립 고교들을 제외하고 나머지의 공립 고교들이 전체 학년이 합반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용인시부천시는 공립 고교라면 분반을 하는 학교는 없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 아니라 아예 존재하지 않았고, 성남시2013년부터 공립학교는 단 한 곳만을 제외하고 전부 다 전체 학년이 합반이었다.[33]

대한민국의 타 지역의 일반고들은 경기도처럼 합반을 해도 전체 학년을 시행하지 않았었다. 일반고는 특성화고특목고처럼 학과별로 학급이 편성되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충분히 성별을 갈라서 학급 생성이 가능해서 남녀 공학일지라도 남녀를 다른 반에 배정했다. 고등학생대학 입시를 앞둔 중요한 나이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많은 교육부들은 일반고 합반을 못마땅하게 여겼었다.

그러나 이때로부터 10년이 지난 2020년대부터는 출산율 감소로 인해 학생수가 줄어들어서 지역 상관없이 모든 일반고가 전체 학년 합반으로 변경하는 추세에 있다.[34] 그러나 어디까지나 출산율 감소로 인해 생긴 현상이기 때문에 출산율이 낮지 않았더라면 일반고가 합반을 3년 내내 하는걸 당연시 여기는 지역은 경기도 하나밖에 없었을 것이다.

3.2. 음악

3.2.1. 한국 음악

한류의 역사를 뒤바꾼 곡이라는 평가를 받는 "강남스타일" 2010년대 멜론 시대 차트 1위를 차지한 "벚꽃 엔딩"

대한민국 음악은 20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2세대 아이돌(2010~2012년) 및 3세대 아이돌(2013~2019년)의 전성기,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의 어쿠스틱한 가수들과 음원강자형 가수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싸이강남스타일의 대성공은 한국 가수들의 국제 경쟁력을 더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새로이 등장한 2세대 이후의 아이돌 가수들은 기존의 일본, 중국, 태국 등의 아시아 지역을 넘어서 남미권을 비롯한 비아시아권에서도 큰 관심을 받았으며 유튜브 등 인터넷을 통해 서구권에도 열성적인 팬들 일부 확보하는 등 그동안 아시아권 한정으로만 진출하던 한국 아이돌 산업이 전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한편 2010년대 초반에 흥행하기 시작한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버스커버스커AKMU라는 대형 스타를 낳았고, 이는 이전부터 인디음악에 존재하던 어쿠스틱한 음악들과 맞물려 흥행에 성공하였다. 이들의 성공에는 아이돌 음악에 대한 20대 이상 대중들의 반감도 적지않게 작용했지만, 아이돌 음악 외의 확실한 대안이 생기면서 국내 대중음악도 어느 정도 장르의 다양성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나름 상징적인 변화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아이돌 음악은 대중성보다는 자체적인 팬덤을 집중적으로 키우는 방향으로 방향을 선회하였기에 아이돌 음악의 위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거기다 위에서 언급한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2010년대 중후반에 들어 쇠퇴한 대신 프로듀스 101을 비롯한 아이돌 데뷔 서바이벌이 흥행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인디 음악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커져서 인디 아티스트들이 지상파에 출연하는 등 활동 기반이 넓어졌다.

또한 이 시기에 음원 사이트의 가입자 수가 크게 늘어나 음원 시장이 크게 성장했으며, 대한민국의 공인 음악차트인 가온차트가 등장했고, 아이유를 비롯한 음원강자들이 활발히 활동하면서 많은 히트곡을 냈다. 가온차트 집계 결과 대한민국 가수 중 2010년부터 2017년까지 8년간 음원 누적 스트리밍 및 다운로드 1위는 아이유이다.[35][36] 또한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년간, 즉 2010년대 동안 누적 음원량을 집계한 멜론 2010년대 연대 차트 TOP 100에 아이유가 총 11곡을 진입시키며 다시 한번 압도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

종합하자면 여러 방면으로 암흑기였던 2000년대에 비해 질적, 양적인 성장을 거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BIGBANG은 2011년에 대한민국 가수 최초로 iTunes 종합 Chart 10위 안에 들었으며 2011년 11월 7일에 대한민국 최초로 MTV 유럽 뮤직 어워드(Europe Music Awards, EMA)에서 Worldwide Act 상을 수상하였다. 2012년에는 싸이강남스타일 곡이 역대급 성공을 거두면서 대한민국 음악 중 사실상 처음으로 전 세계 음악시장을 뒤흔들었다. 2013년에는 EXO으르렁이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3세대 아이돌 시장의 새 장을 열었고, 당시 음반시장 침체기였음에도 12년 만의 밀리언셀러에 등극하고 현재는 21세기 데뷔가수 최초로 음반 통산판매량이 1000만장을 돌파하는 등 음반시장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음반은 음악을 듣는 단순한 기능에서 발전해 팬덤의 결속력을 다지고 팬 문화 발전으로까지 이어지는, 변화의 큰 축을 담당하게 됐다. BIGBANG은 2015년 4월 25일~2016년 3월 6일 MADE WORLD TOUR로 아시아, 북미, 남미, 오세아니아 등 다양한 국가에서 총 66회 공연에 150만 명 관객을 동원하였다. 2017년 12월 31일 Last Dance Tour를 마무리하면서 BIGBANG은 대한민국 최초로 1000만 명 관객을 돌파하였다. 2018년에는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200차트 1위를 2번 연속으로 기록하고, 해외에서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며 UNICEF에서 주관하는 청년 어젠다 '제너레이션 언리미티드'(Generation unlimited) 행사에서 연설을 하게된다. 음반판매량 또한 단일 200만장을 판매하는 등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이러한 인기를 국내에서도 인정받아 대통령 축전, 최연소 문화 훈장까지 받으며 국내외로 남다른 업적을 세우게 됐다.

(Movie Trailer) 건축학개론(ARCHITECTURE 101) 본예고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중반생들 즉 90년대를 향유했던 그 당시 10~20대들의 경제력이 커짐으로써 건축학개론,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 위대한 유산, 무한도전 2014년 토토가 등 90년대를 추억하는 작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무한도전 가요제, 쇼미더머니, 언프리티 랩스타와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어 관련 음악이 음원사이트 상위권을 차지하기도 했다.

음원사이트 역주행으로 히트를 친 곡들이 있다. 다만 2018년 이후에는 2018-2019년 연쇄 음원 사재기 파동이 발생하여 일부 곡들이 사재기 의심을 받고 있다. 2019년에는 프로듀스 101 시리즈 투표 조작 사건이 발생하여 큰 이슈가 되었으며, 그로 인해 그룹 X1이 해체되었다.

3.2.2. 해외 음악

Pop Music 2010~2014

음악적으로는 2000년대의 음악처럼 아예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기보다는 이전 시대에서 제시했던 방향을 조합해서 재탄생하는 식으로 이어져 왔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주로 록과 일렉트로니카 쪽에서 이루어졌던 이러한 시도가 2010년대에 와서는 흑인음악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정도. 기존의 R&B는 앰비언트, 힙합, 등의 영향을 받아 PBR&B, 혹은 Alternative R&B라는 이름으로 각색되기 시작했고, 이 흐름을 대표하는 뮤지션으로는 프랭크 오션, 드레이크, 더 위켄드 등이 있다. 힙합 역시 주류화되는 과정을 통해 과거에 비해 부드러워지고 웅장해졌으며, 시대를 대표하는 불후의 명반으로 자리잡은 칸예 웨스트의 5집이 이를 잘 상징한다. 물론 이에 반발하는 흐름 역시 존재하며, 켄드릭 라마나 Run the Jewels 등은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게 본인들의 스타일을 잘 살린 명반을 내놓았다.

일렉트로니카의 경우, 2000년대에는 언더그라운드에 있다가 스크릴렉스의 힘으로 메인스트림에 등장한 덥스텝을 시작으로 소위 '베이스 뮤직'이라고 불리는 장르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2010년대 말에 접어드는 2017년 기준으로 이들 베이스 뮤직 주류의 흐름은 대체로 덥스텝-트랩(음악)-퓨쳐 베이스의 테크를 타고 있다. 일반적인 댄스 성향의 베이스뮤직은 빅룸 하우스가 일시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지만 다시금 인기를 끌게된 하드스타일이 꾸준한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이를 제외하면 대체적으로는 새로운 흐름보다는 과거의 음악적 흐름을 따라가고 발전시키는 경향을 보인다. 2000년대를 풍미했던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은 이 시점에 오게 되면 신스팝의 형태로 변용되어 오버/인디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신스팝 그룹들이 등장하고 있다.
Japan Music Rank Yearly 2011~2014 Japanese Jpop MV 2014

일본 대중 음악은 시장을 이끌어갈 수 있는 신인 아티스트들이 부재한 가운데 중견 아티스트들만이 업계를 지탱하는 버팀목으로 건투하고 있다. 그 가운데 AKB48, 쟈니스 등 여러 아이돌만이 높은 음반 판매량을 거두며 사실상 일본 대중 음악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3.3. 패션

전체적으로 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여러 시대의 패션들이 번갈아 빠르게 유행한다.[37] 이렇게 유행이 빨리 변하는 데에는 유니클로ZARA 등의 SPA 브랜드들의 강세가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아디다스 3선 트레이닝 바지는 2010년대 중후반의 상징이였다.

2000년대부터 시작된 한류의 영향력이 가장 커진 시기로, 한국의 패션유행이 해외(주로 아시아)로 퍼져나가고 있다. 예를들어 얼짱이란 용어가 일본과 중국에서는 한국의 패션, 메이크업을 지칭하는 고유대명사 격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스타일난다 같은 국내 브랜드가 이런 붐을 타고 급성장해 프랑스 대기업 로레알에 6천억원에 매각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스트리트 브랜드들이 특히 두각을 드러낸 시기이기도 하며, MLB나 NBA 라이선스를 받은 패션업체의 영향으로 평상시에 농구 유니폼이나 야구모자 등을 쓰기에 이르렀다.

신발 분야에서는 2012년까지 나이키와 협업했던 칸예 웨스트가 아디다스로 이적해 발표한 이지 부스트 시리즈, 그의 친구인 버질 아블로의 브랜드 오프화이트가 나이키와 함께 선보인 '더 텐 시리즈'가 대성공하여 신발이 주목 받는 시대로 자리잡았다, 그 해 버질 아블로는 하이엔드 브랜드인 오프화이트의 수장에서 루이비통의 수석 디자이너가 되어 버렸다.

워터파크에서 남녀 불문하고 래시가드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시대이다.

헤어스타일은 2000년대의 샤기컷/울프컷에 이어서 투블럭 댄디컷이 완전히 대세를 차지하게 된다. 2010년대 후반 들어서는 조금 변형된 앞머리 가르마 스타일이 인기를 끌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를 전후하여 평창 롱패딩 유행이 있었다.

3.4. 방송

3.4.1. 지상파

2000년대까지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던 지상파 방송은 2010년대 들어 종편, 케이블 및 뉴미디어의 대두로 전에 없던 위기를 맞았다. 지상파의 영향력 약화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분야는 뉴스였다. 우선 보수 정권의 노골적인 방송장악으로 인해 김미화, 김제동, 윤도현, 정관용 등 진보 방송인들이 지상파 공영방송사에서 모습을 감춘 데다, 최승호 등 진보 언론인들이 해직되거나 비제작부서로 좌천되면서 공영방송(KBS, MBC) 뉴스 논조가 우경화되고 질적으로도 크게 하락했다. 특히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 오보와 참사 본질을 흐린 보도들은 지상파 방송을 넘어 언론 전체의 신뢰도 추락으로 이어졌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정국에는 손석희JTBC 뉴스룸에 완패하고 말았다. MBC 뉴스데스크의 경우, 시청률 상승을 위해 30년 넘게 유지한 밤 9시 편성을 밤 8시로 변경했고, 2019년 3월부턴 평일 한정으로 저녁 7시 30분까지 앞당겼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지상파 특유의 기계적 중립에 대한 반발이 커지면서 진보 성향의 시청자는 JTBC팟캐스트로, 보수 성향의 시청자는 유튜브로 이탈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2019년 현재 지상파 3사 메인뉴스가 유튜브로도 생방송되고 있고, KBS와 SBS는 24시간 뉴스 채널을 운영 중이다. 대신 시사교양 쪽은 2009년 SBS 〈궁금한 이야기 Y〉가 최초로 스토리텔링식 고발프로그램 장르를 개척했고, 2013년에는 KBS1이 대한민국 최초의 역사토크쇼 〈역사저널 그날〉을 방영되는 등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지상파 드라마 역시 뉴스 못지 않은 하락세를 겪었다. TV 시청 인구 감소와 생활 패턴 변화 등으로 전반적인 시청률 파이가 축소되면서 2000년대까지 심심찮게 나오던 시청률 50% 드라마는 2010년 제빵왕 김탁구를 끝으로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고, 2010년대 중후반 들어 주중 드라마는 10%만 넘겨도 대성공이라 할 만큼 저조한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38] 지상파 드라마의 몰락에는 쪽대본 시스템으로 인한 질적 하락, 막장 드라마의 범람, 장르를 가리지 않는 연애 클리셰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더욱이 드라마 제작 주체가 방송사에서 외주 제작사로 바뀌고, 시청률만큼 중요한 화제성에서 종편과 케이블 드라마에 크게 밀리면서 스타 작가와 배우 섭외는 물론 드라마 편성에도 난항이 이어지고 있다. 2010년대 후반 들어 지상파 3사 모두 드라마 편성을 축소하고 있고, 2019년 MBC가 평일 드라마 슬롯을 밤 10시대에서 9시대로 옮기면서 주중 드라마는 10시라는 공식이 깨졌다.

예능[39]은 뉴스, 드라마에 비해 그나마 상황이 낫다. 2013년 나 혼자 산다슈퍼맨이 돌아왔다가 관찰 예능 시대를 열었고, 2015년에는 1인 방송 트렌드를 접목한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성공을 거뒀으며, 2016년에 시작한 미운 우리 새끼는 2019년 현재까지 20% 가까운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다. 런닝맨, 나는 가수다, 아빠! 어디가?, 복면가왕 등의 판권이 해외(주로 중화권)로 수출되면서 한국의 오리지널 콘텐츠 경쟁력이 강화되었고, 이 중 복면가왕은 미국에도 수출되었다. 하지만 과거 지상파의 스타 예능 PD들이 종편, CJ E&M[40] 또는 대형 기획사 등으로 이적하면서 지상파 예능은 더 이상 트렌드를 선도하지 못하게 되었고, 전 세대를 아울러야 하는 지상파의 특성 때문에 확실한 타겟을 노리는 뉴미디어 방송에 약점을 보이는 일도 많아졌다.[41] 한마디로 예능에서 가장 치명적인 식상함의 덫에 빠진 것이다.

2018년 3월 무한도전이 종영하고, 2019년 3월에 의도치 않게 1박 2일이 잠시 중단되었지만 그 해 12월에 시즌4로 재개되면서 무한도전만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2019년 7월 기준 SBS의 토요일 저녁 예능과 MBC 일요일 저녁 예능(복면가왕 제외)이 재방송으로 채워지고 있다.[42] 시청률이 가장 높은 황금시간대에 재방송을 내보낸다는 건 그만큼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의미다.

방송기술 측면에선 아날로그 지상파에서 HD로 전환되는 시기인데, 미국은 2009년 6월 12일, 일본은 2011년 7월 24일 정오, 한국은 2012년 12월 31일 새벽 4시를 기해 각각 아날로그 TV 방송이 종료되면서 디지털 방송으로 완전 전환되었다. 또 2017년 흑백-컬러-HD에 이은 4세대 송출시스템 'UHD'가 탄생했고, 그 해 연말 시험방송이 시작돼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중계방송이 UHD로 제작되었다.

3.4.2. 종합편성채널

2009년 '조중동 방송법'이라 불리며 여야 간 치열한 공방 끝에 '종합편성채널'과 신문/통신의 방송업 겸영이 법적으로 허용되었으며, 이에 따라 2011년 12월 1일 0시를 기해 보도전문채널[43] MBN이 종편으로 전환되었고, 뒤이어 조중동 3사가 JTBC, 채널A, TV조선을 각각 개국했다.
개국 초기 종편 4사는 뉴스, 교양, 드라마, 예능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내세웠지만 설립 과정에서의 잡음과 부실한 컨텐츠 등으로 인해 외면 받았다.[44] 이로 인해 경영 적자가 심해지자 JTBC를 제외한 종편 3사(MBN, 채널A, TV조선)는 드라마 제작을 중단하고 2012년 총선과 대선 정국에 발맞춰 하루 10시간 이상을 뉴스쇼 위주로 편성하면서 제작비 절감과 인지도 상승에 성공했지만, '종편 같지 않은 종편', '정권여당 후보의 나팔수', 'TV북조선'(TV조선 한정)[45]라는 비판도 받았다. 또한 예능의 경우, 중장년층을 주 대상으로 설정하면서 제작비가 저렴한 소위 떼 토크쇼를 많이 제작했고[46], 이는 곧 종편 대표 컨텐츠로 자리잡았다. MBN의 대표 프로그램인 나는 자연인이다가 시작된 것도 이 무렵. 반면 JTBC는 계속해서 드라마[47]와 젊은 층 감성의 예능[48]을 편성하면서 일부 프로그램이 관심을 받기도 했지만, 타사에 비해 낮은 평균 시청률과 높은 경영적자로 순탄치 않은 시기를 보냈다.

2013년 5월, JTBC는 손석희를 보도부문 사장으로 영입하고 뉴스부문의 혁신에 나섰다. 그 전까지 JTBC 뉴스는 조악한 CG, 토끼와의 인터뷰 등 안 좋은 의미로 역대급 행보를 보이고 있었는데, 손석희가 영입되고 메인뉴스 앵커를 맡게 되면서 보수 일변도 기조에서 벗어났고, 2014년 세월호 참사 보도에서 삽질을 거듭하던 지상파 포함 타 언론사와 달리, 사고 원인 규명에 집중하고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보도로 상당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밀회, 송곳 같은 드라마가 시청률 대비 높은 화제성을 보여주었고, 본격 시즌제 음악 예능으로 선보인 히든싱어, 정치 예능의 효시가 된 썰전, 본격 19금 토크쇼 마녀사냥, 신개념 요리 예능 냉장고를 부탁해 등이 히트하면서 JTBC가 종편 내 선두주자로 떠오르게 되었다.

2016년 JTBC는 아는 형님한끼줍쇼를 성공시키며 명실공히 예능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스모킹 건인 최순실 태블릿 PC를 단독 보도하면서 이어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지상파를 제치고 여론을 주도했다. 이 시기를 전후해 JTBC를 제외한 종편 3사의 보도 편중 및 편향과 패널들의 막말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했고, 이에 대해 각사가 보도 편성 축소 및 드라마 제작, 막말 패널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등 체질 개선에 나서면서 채널A의 하트시그널, TV조선의 연애의 맛, 내일은 미스트롯처럼 시청률과 화제성을 모두 잡은 작품들이 제작되었다.

2019년 현재 JTBC는 tvN과 함께 지상파 3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채널로 성장했고, 나머지 3사도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3.4.3. 케이블 채널

케이블 방송업계는 '소수의 승자와 나머지 약자'로 재편되는 시기였다. 우선 2인자였던 CJ미디어가 2009년에 오리온으로부터 온미디어를 먹고 2년 후 통합법인 'CJ E&M'을 탄생시켰고, 2018년에는 CJ오쇼핑에 역합병되어 영화와 엔터테인먼트, 홈쇼핑까지 아우른 CJ ENM이 출범했다. 타 언론사에 뉴스를 공급하던 연합뉴스도 2011년 'news Y'(現 연합뉴스TV)란 보도채널을 개국해 MBN의 빈 자리를 메꿨다.

2010년 엠넷 슈퍼스타K2의 대성공은 2010년대 케이블 방송의 약진을 상징하는 일대 사건이었다. 전작인 슈퍼스타K를 능가하는 스토리텔링과 악마의 편집, 그리고 참가자들의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전혀 새로운 오디션 프로그램에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결국 슈스케2의 파이널 경연은 시청률 18.1%를 기록했고[49], 이후 MBC의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 SBS의 K팝 스타 등 유사 오디션 프로그램이 지상파를 점령하면서 방송계 트렌드 리더의 자리를 지상파에서 뺏어오는 계기가 되었다. 엠넷은 슈스케에 이어 SHOW ME THE MONEY, 프로듀스 101 시리즈를 연이어 히트시키며 오디션의 명가로 자리잡는 듯 했으나, 점점 심해지는 악마의 편집과 출연자의 각종 논란으로 매번 홍역을 치러야 했고, 마침내 이 사건이 터지면서 채널 역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같은 CJ 계열 채널인 tvN은 2009년 재밌는 TV 롤러 코스터의 히트로 정상궤도에 올랐고, 2012년 KBS 해피 선데이의 전성기을 이끈 연출진들(이명한, 신원호, 나영석)이 연이어 이적해 오면서 예능과 드라마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게 된다. 신원호 PD가 연출한 첫번째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은 시간대와 캐스팅의 한계를 딛고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이후에도 응답하라 1994, 응답하라 1988, 슬기로운 감빵생활 등으로 예능 PD에서 믿고 보는 드라마 PD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나영석 PD는 KBS때 부터의 제작진들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나영석사단'을 만들고 비예능인(주로 배우)들과 자신이 1박 2일에서 선보였던 여행, 음식, 합숙이라는 요소를 결합한 예능 프로그램 시리즈(보다 시리즈, 삼시세끼 시리즈, 신서유기 시리즈 등)로 금요일 밤 9~10시대를 장악했다. 또한 tvN은 2014년 이후 미생, 시그널, 또 오해영, 도깨비, 나의 아저씨, 미스터 션샤인, 호텔 델루나 등의 드라마로 지상파를 압도했고, "A급 대본은 tvN, B급 대본은 JTBC, C급 대본은 지상파로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드라마 분야에서는 지상파를 능가하는 위치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OCN은 색다른 장르의 오리지널 드라마를 제작하면서 장르물 드라마의 명가로 떠올랐고, 겟 잇 뷰티온스타일, LCK켠김에 왕까지OGN도 2010년대를 대표하는 케이블 채널로 자리잡았다. 다만 OGN은 2016년 LCK 중계권 분할에 이어 2018년 중계권을 상실하면서 그 동안 숨겨져 있던 컨텐츠 부족 문제가 가시화되었고, 결국 경영난 끝에 폐국 수순을 밟게 되었다.

CJ 계열 이외의 채널 중에서는 iHQ코미디TV맛있는 녀석들을 히트시켰고, 티캐스트E채널도 예능 채널로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3.5. 드라마

정통 멜로 드라마가 쇠락하고 대신 로맨틱 코미디 유행이 지속되고 있다. 케이블TV 드라마가 크게 성장했으며 웹툰, 웹소설의 인기로 인해 웹툰, 웹소설 원작의 드라마들이 대거 제작되고 있는 중이다. 한편 내용적으로는 재벌과의 사랑, 기억상실이나 출생의 비밀 등 매우 극적인 배경 설정이 대다수를 이루었던 2000년대와는 달리 직장인, 취업준비생 등 현실적이고 평범한 인물들의 삶을 그려내는 작품이 많다. 또한 로맨틱 코미디 물등 기존 드라마 장르에 식상해하는 시청자들의 증가로 OCN 오리지널시리즈로 대표되는 장르물이나 스릴러물도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또한 전반적으로 지상파 3사 드라마들의 부진이 두드러지기 시작했으며[50][51], 지속적인 투자와 과감한 도전을 해온 tvN, OCN, JTBC로 대표되는 케이블, 종편드라마들이 화제성과 시청률 면에서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또한 이와 함께 장르의 다양화, 스타작가/연출진[52]이나 배우들을 모시기 위한 경쟁도 더욱 가속화되었다.

사극의 경우 정통 사극이 줄어들고 퓨전사극의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퓨전사극의 주제는 대부분 로맨스가 주류였다. 그래도 2010년대 중반까지는 대왕의 꿈, 정도전, 징비록 등 정통사극이 꾸준히 나왔으나 2010년대 후반 들어서는 정통사극이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시트콤의 경우 2010년대 초반까지는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을 비롯한 몇몇 작품을 통해 명맥이 이어졌으나 2010년대 중반 이후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3.6. 영화

할리우드에서는 2012년에 개봉한 어벤져스가 엄청난 수익을 거둔 것을 계기로 메이저 영화사들이 너도나도 슈퍼히어로 영화 제작에 나섰고 그에 따라 슈퍼히어로 장르가 유행을 탔다. 2000년대에도 엑스맨과 스파이더맨, 그리고 다크나이트의 성공으로 슈퍼 히어로 장르가 유행을 탄 적이 있었다. 하지만 2010년대 슈퍼 히어로 영화들은 하나의 단일 세계관에서 다른 히어로들과 크로스오버를 하는 시네마틱 유니버스 제작 방식이라는 점에서 2000년대 슈퍼 히어로 영화들과 차이점을 보인다. 슈퍼 히어로가 아니더라도 자사만의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구축하려는 시도들도 나왔지만 2020년대에 와서도 아직까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보다 더 성공적인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없다. 또한 스타워즈쥬라기 공원, 매드맥스 등 신작이 오랫동안 나오지 않았던 프랜차이즈의 속편들도 복고 열풍을 타서 제작됐다.

게다가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이 급격하게 커지면서 창작의 자유를 원하는 제작진(그 외에도 예술 분야를 통틀어서)들이 넷플릭스와 협업을 했다. 또한 영화제와 독립영화, 예술영화를 통한 새로운 인재 발굴도 일어났다.

2009년 12월에 개봉한 아바타의 흥행 수익 1위 기록을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10년 만에 깨고 세계 흥행 1위에 도달하였다.

3.7. 예능

대표적으로 나 혼자 산다미운 우리 새끼로 대표되는 관찰 예능, 뭉쳐야 뜬다짠내투어, 꽃보다 할배로 대표되는 여행예능, 냉장고를 부탁해로 대표되는 쿡방이 등장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엠넷의 슈퍼스타K를 시작으로 프로듀스 101, 쇼미더머니 등 오디션 프로그램 역시 청소년들이나 일부 성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편이다.

또한 콩트와 토크, 리얼 버라이어티를 합친 아는 형님이나 오디션과 쿡방을 합친 마스터 셰프 코리아같은 혼합장르의 예능이 등장했으며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 히든싱어 같은 전 세대가 같이 즐길만한 음악예능들도 꽤 인기를 끌었다. 효리네 민박같이 일반인과 연예인이 서로 어울리며 리얼한 모습을 보여준 힐링예능들도 등장했다. 그리고 2005년부터 꾸준히 인기를 끌던 전설적인 리얼 버라이어티쇼 무한도전이 2018년에 마무리된 시기다.

지상파 3사의 개그 프로그램들이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KBS만 개그콘서트를 겨우 유지해가는 실정이었다. 또한 해외프로그램의 판권을 구입해 한국식으로 재해석해 제작하는 경우도 늘었다.[53]

2010년대 후반부터는 대도서관 같은 인기 스트리머나 유튜버들이 TV로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뉴미디어와 기존의 올드미디어 사이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지고 있다. 또한 JTBC의 웹드라마, 웹예능을 제작하는 스튜디오 룰루랄라에서 제작한 박준형의 와썹맨, 장성규의 워크맨 같이 방송사에서 웹예능을 자체적으로 제작해서 내놓는 경우도 늘어났다.

2010년대의 예능 트렌드는 인위적인 연출과 웃음보다는 관찰을 비롯한 극도의 리얼리티를 강조하기 시작했다고 보면 된다. 또한 종편과 케이블의 괴물같은 성장, 유튜브트위치로부터 시작된 1인 미디어방송이 유행을 하고 큰 인기를 끌면서 지상파로 대변되는 올드 미디어들의 예능들이 위기를 겪고있는 시기이다. 장르의 다양성이 한층 확대된 시기이기도 하다.

3.8. 만화, 애니메이션

3.8.1. 대한민국

한국 만화/웹툰계는 2011년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으로 몇몇 웹툰이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돼 위기를 맞았다. 이에 웹툰 작가들과 독자들이 '노컷 캠페인'을 전개해 2012년에는 방심위와 한국만화가협회 측이 '웹툰 자율규제 협약'을 체결했고, 같은 해에는 '만화진흥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국가 주도로 만화가가 창작할 만한 환경을 제공코자 했다. 애니메이션계에선 CJ ENM이 <안녕 자두야>, <신비아파트 시리즈> 등을, EBS에서는 <꼬마버스 타요>, <로보카 폴리> 등을 각각 히트시켜 애니업계의 큰손이 됐고, 2010년 영실업이 기획한 <변신자동차 또봇>을 시초로 완구회사가 본격적으로 애니 제작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이에 손오공도 관계사 초이락컨텐츠팩토리를 통해 <헬로 카봇>으로 맞서기 시작했으며, 뒤이어 <터닝메카드>로 히트쳤다.

3.8.2. 일본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대세로 떠오른 모에 계열 작품이 더 인기를 끌게 된다. 2010년대의 대표적인 모에물로는 유루유리, 주문은 토끼입니까?, 케모노 프렌즈 등이 있으며, 만화잡지조차 소년잡지나 순정잡지보다 모에계 잡지 <망가타임 키라라> 시리즈가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반면 소년만화 잡지 중 <주간 소년 점프>는 나루토, 가히리, 블리치 등 2000년대 작품들이 사라진 대신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암살교실>, <원펀맨>, <하이큐!!> 등 신흥 연재만화들이 '포스트 원나블' 후보군으로 급부상했다.

라이트 노벨모바일 게임 시장이 활성화됨에 따라서 라이트 노벨과 모바일 게임을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화가 활발하게 진행되기도 했다. 아이돌물 또한 인기를 크게 끌게 되는데, THE iDOLM@STER의 애니메이션화와 함께 러브라이브!, 아이카츠!, 노래의☆왕자님♪, 앙상블 스타즈! 등의 아이돌물이 나오게 된다.[54] 한편 이러한 동향에 대해 이른바 뽕빨물이 업계 주류가 되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반면 아동 애니메이션은 소수 작품 및 제작사의 과점과 침체기 속에서도 2009년 LEVEL-5 게임 원작 애니 <썬더일레븐>에 이어 2011년 <골판지 전사 시리즈>, 2014년 <요괴워치>, 2018년 <요괴워치 섀도사이드> 등을 각각 내놓아 새로운 장을 열었다. 또 <미소녀 전사 세일러문 크리스탈>을 비롯해 <안녕! 보노보노>나 <전설의 마법 쿠루쿠루(신판)>, <카드캡터 사쿠라 클리어 카드 편> 등 1990년대 작품들의 속편이나 리부트작 등이 나오면서 추억팔이가 진행되기도 했다. 극장 애니계에선 2013년 미야자키 하야오 잠정 은퇴 후 호소다 마모루신카이 마코토 등이 '포스트 지브리'의 기수로 떠올랐다.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듯, 2017년 타츠키 강판 사태나 2019년 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 방화 사건 같은 혼란스러운 사건도 많이 일어났으며, 2012년 아베 신조 내각 출범을 전후해 우경화가 진행되어 <마법과 고교의 열등생>, <게이트 - 자위대. 그의 땅에서, 이처럼 싸우며> 같은 극우 미디어물판을 치기도 했다. 이것 때문인지 한국 팬덤 사이에서 <진격의 거인>이나 <함대 컬렉션> 등이 극우 논란에 오르내리기도 했고 2019년 일본제 불매 운동으로 여름 동안 일본 애니메이션이 대한민국 극장가에서 막혔다.

3.8.3. 미국

미국 애니계는 '디즈니의 왕좌 탈환'으로 대표되는 시기인데, 2010년 〈공주와 개구리〉와 〈라푼젤〉로 조금씩 회복세에 들어섰다가 2012년 〈주먹왕 랄프〉에서 폭발력을 발휘해 2014년 〈겨울왕국〉 들어서 세계구급 임팩트를 이루었다. 반면 라이벌 중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는 〈슈퍼 배드〉 시리즈로 신흥 강호가 되기도 했다. 당시 업계측은 정치적 올바름, 페미니즘 성향을 작품 내에 집어넣는게 주류가 되었고 애니메이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2010년대 후반에는 중국의 힘이 커지면서 디즈니 등이 친중 논란이 의심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고로 2019년 〈사우스 파크〉 시즌23 2화 'Band in China'에서 이를 풍자했다.

3.9. 게임

한국 PC 게임은 리그 오브 레전드가 2012년부터 2010년대의 마지막 해인 2019년까지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사실상 스타크래프트를 뒤이은 새로운 국민게임이 되었다.

콘솔 시장은 닌텐도의 초반 암흑기이자 후반 전성기인 시대.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재부흥. 엑스박스 시리즈의 초반 전성기이자 후반 암흑기인 시대다.

인디게임이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내고 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한 시대이기도 하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인디게임으론 Braid, 마인크래프트, 아이작의 번제, 언더테일 등이 있다.

VR 게임의 태동기인 여대이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앵그리버드 시리즈의 흥행으로 모바일 게임 시장은 급격히 활성화되고 게임계의 암흑기를 초래했다. 한국에선 선데이토즈, 데브시스터즈 등이 <애니팡>, <에브리타운>, <쿠키런> 등 for kakao류 게임들을 히트시켜 PC 온라인게임 시장을 압살했다. 이에 따라 넥슨 등 기존 PC게임 업체들도 모바일 게임시장에 중점을 두었고, 지상파, 케이블TV, 영화관까지 가릴 것 없이 게임 광고를 쏟아냈다.

오락실 게임의 경우 2000년대에 이어 급격히 쇠락하게 되는데, 그로 인해 많은 오락실이 문을 닫거나 VR게임장으로 전환하였다.

3.10. SNS

대한민국에서는 주류 SNS가 싸이월드 ->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 인스타그램 순서대로 움직였다.

2010년에는 2000년대와 비슷하게 싸이월드 문화가 한국 SNS 문화를 대표했다. 2011년~2012년에는 스마트폰의 확산과 같은 시대의 흐름을 뒤따르지 못한 싸이월드는 도태되었고, 대신 모바일 환경에서도 쓰기 편한 트위터, 페이스북이 강세를 보였다.

2012년 후반~2014년에는 메신저인 카카오톡의 대성공으로 카카오스토리가 인기를 끌었다. 2014년 후반부터는 카카오스토리가 쇠퇴하고, 페이스북이 독주하기 시작했으며 페이스북의 강세는 2020년, 일부 지역에서는 2022년까지 이어지기도 했으나 가계정의 난립과 관리 부실 등으로 사용자가 인스타그램으로 빠져나가면서 주류 SNS의 지위를 잃었다.

메신저 서비스는 2010년 출시한 카카오톡의 압도적 강세로, 문자 메시지에 준하는 지위를 가졌다. 그리고 2015~2020년 동안에는 페이스북의 전성기에 페이스북 메신저(페메)도 자주 사용되었다. 즉 2010년대 중후반~2020년 당시 청소년층 SNS 문화는 페북과 페메를 중심으로, 좋탐(좋아요 누르면 타임라인 글 남김), 좋페(좋아요 누르면 페메 보냄)와 같은 여러 요소를 낳았다. 이는 2020년대 페이스북 이용자층이 인스타그램으로 옮겨진 후에도, 하트 특징(하트 누르면 특징 적어 줌), 좋뎀(좋아요 누르면 DM)으로 이어졌다.

동영상 플랫폼은 유튜브가 장악한 시기였다. 유튜브도 상기한 SNS와 마찬가지로 모바일 시대에 발맞춰 흥한 SNS였다. 2012년 싸이강남스타일을 전 세계에 알리고, 201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유튜브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2020년대 초반부터는 틱톡이나 유튜브 쇼츠와 같은 짧은 길이의 숏폼 영상들과 챌린지 문화가 나타났다. 틱톡의 경우 초창기인 2010년대에는 만드는 틱톡의 바이럴성 광고로 인해 챌린지 문화가 부정적 인식을 가졌다. 2020년대의 시작과 동시에 코로나가 확산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챌린지 문화가 퍼졌고, 숏폼 영상은 2020년대를 주름잡는 요소로 발돋움하게 된다.

4. 이 시대에 새로 생겨나거나 흥행한 것들

5. 이 시대에 쇠퇴한 것들

이전 시대부터 201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쓰인 것들에 한하여 적기 바란다.

5.1. 세계

5.2. 대한민국

6. 사건 사고

사건사고들의 대부분에는 소셜 미디어가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점, 특히 2014년에 많은 일이 있었음에 주목하자.

6.1. 한국

6.2. 기타 국가

7. 스포츠 행사

7.1. 축구

7.1.1. 청소년 축구

7.2. 기타

8.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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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은 실제 2010년대가 배경인 내용을 다룬다. 근미래물은 위 항목 참고.

9. 2010년대에 들어가는 해

2010년 - 2011년 - 2012년 - 2013년 - 2014년 - 2015년 - 2016년 - 2017년 - 2018년 - 2019년

10. 참고/관련 문헌


[1] 2009년 12월 31일[2] 중국은 4월.[3] 중국은 6월.[4] #[5]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임기는 국회 탄핵이 가결된 2016년 12월까지 보기도 한다.[6] 진보계열로 구분하면 1998년~1999년도 포함할 수 있고, 보수계열이 집권한 2008년 3월 ~ 2009년은 제외할 수 있다.[7] 방송3사의 출구조사 결과에서 50대에서 박근혜 후보가 62.5% : 37.4%로 승리했으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세대별 투표율 조사 결과 전체 유권자 중 당시 50대인 베이비붐 세대가 82.0%로 월등히 높았고, 20대는 68.5%, 30대는 70.0%였다.[8] 그러나 2018년의 사회 분위기는 2000년대의 민족주의, 반미 분위기에 입각한 친북 정서와는 분명 상황이 달랐다. 민족의 화해, 협력이라는 명분보다는 북한의 비핵화라는 현실적인 문제의 해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으며 반미보다는 미국과의 협력을 통한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추구해야 한다는 여론이 대다수였다. 또한 '비핵화를 위한 북한과의 대화'라는 정책에 대한 지지도와는 별개로 북한 자체에 대한 대한민국 사회의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으로 남아 있었으며 몇몇은 전쟁으로 통일해야 한다거나 '우리도 전술핵을 배치해야 한다'는 등 과격한 의사를 표현하기도 했다.[9] 다만 정치권에서 페미니즘이 이슈화되기 시작한 것은 2018년이었다.[10] 페미니즘을 정치권으로 이슈화시킨 미투 운동도 어찌보면 적폐청산 버프를 어느 정도 받았다고 할 수 있다.[11] #[12] 실제로 미국의 경제정책을 보면 한마디로 말해서 전세계적으로 독일처럼 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미국 자신을 빼면 이 정책의 최대 수혜국이 숙적인 중국이라는 점.[13] 2012년 1월 <위기의 남유럽을 가다> 편에서 다룬 바 있다.[14] 실제로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2016년 1월 원자재 가격의 폭락에 따라 앞으로 성장의 주요 동력은 원자재 수출이 아닌 기술력이 될 것이라며 브릭스(BRICs)의 시대가 가고 강력한 과학 기술을 가지고 있는 틱스(TICKs)의 시대가 왔다고 말하기도 했다.[15] 여기서 주목할 것은, 2010년~2015년 기간 동안, 소득 양극화 지표인 소득 5분위 배율, 지니계수 등이 하락했다는 점이다. 소득격차가 심해지던 2000년대와 달리, 2010년대에는 중반까지는 소득격차가 완화되었다.[16] 냉전 말기에 태어난 90년생은 제외한다. 정확히는 2019년에 (세는 나이로)20살, 만 19세가 된 2000년생까지 포함.[17] 물론 1997~2000년생에 한정이지 2001년 이후에 출생한 2000년대생은 포함되지 않는다.[18] 1988년~1990년생 또한 노태우 정부 시절 출생이지만 이들은 2000년대에 성인이 되었으며 동시에 2001년생~2002년생 또한 국민의 정부 출생자이지만 이들은 2020년대에 성인이 되었다. 단, 2001년생을 제외한 2002년생부터는 2020년대 이후에도 학창시절을 보내다가 성인이 된다.[19] 만 65세를 기준으로 할 시 1945년~1954년생, 국민연금을 기준으로 할 시 1950년~1957년생 까지다. 2015년부터 베이비붐 세대가 환갑이 되기 시작했지만 2019년까지는 정식 노인으로 접어들지 않았다.[20] 대한민국의 생산가능인구는 2017년에 정점을 찍고 2018년부터 줄곧 감소하고 있다.[21] 2010년대 후반을 시작으로 1960년대 초반생 조차도 손주를 보거나 할머니, 할아버지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2023년 기준으로 이들은 환갑이 지난 60대이다.[22] 1990년생 제외. 2000년생까지 포함[23] 인구 조사마다 다르며, 2016년이나 2020년에 1000만명 아래로 내려갔다는 조사도 있다.[24] 사실 폭염이 없는 해가 더 유별난 것이다. 일제강점기 시대에도 서울 기준으로 1913년을 제외한 모든 해가 폭염을 나타냈다. 그나마 꼽자면 1936년으로 8월 폭염이 없고 저온이 심했지만 역시 7월 하순에 잠시 폭염이 나타나기도 했다. 다만 2010년대 들어서 그 강도와 빈도가 잦아진 건 확실하다.[25] 이 3년 동안 서울의 연강수량이 매해 1,600mm를 넘겼으며, 2010~2011년의 경우에는 2,000mm도 넘겼다. 이후 후술할 내용처럼 마른 장마로 인해 한동안 연강수량이 평년을 넘는 해가 나오지 않다가 연대가 바뀐 2020년이 되어서야 다시 나오게 된다.[26] 특히 서울 기준 2014~2016년과 2019년은 연강수량이 1,000mm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더 나아가 2015년에는 연강수량이 800mm도 되지 않았다.[27] 반면 싸이월드처럼 PC 시장에서 강점을 보였던 플랫폼은 스마트폰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몰락하게 된다.[28] PASS 같은 앱이 등장하면서 스마트폰 사용자는 더 이상 복잡한 공인인증서 같은 인증절차나 직접 전화하는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손 쉽게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게 되었다.[29] 2005년생은 둘 다 겪었다.[30] 소위 '오장풍 교사 사건' 이라고 불리는 사건이 바로 이 사건이다.[31] 물론 2020년대 현재는 직접적 체벌은 사실상 완전히 없어졌으며, 간접적 체벌도 일부 보수적인 학교를 제외하면 많이 없어졌다.[32] 6학년 기준.[33] 용인은 전국에서 손에 꼽을정도로 극심한 난개발과, 수지구기흥구는 역사 특성 상 개발되어서 만들어진 도시이기 때문에 용인 전체에서 남녀분반이 없었고, 부천은 경기도 인구 밀집 1위라서 분반을 하기엔 어려운 환경에 뭣보다 부천의 교육 문화는 역사가 오래되면 남녀공학에 분반을 하는 문화로 가지 않고 아예 깔끔하게 단성학교로 가는 쪽으로 되어있고, 성남은 고양처럼 신도시가 땅 면적을 3분의 2가 덮고 있기 때문에 합반 일반고가 많은 것이다.[34] 대표적으로, 2020년쯤부터 서울 소재의 수많은 일반고들이 전체 학년 합반이 되었다. 2022년인 현재에는 서울에 3년 중 1년이라도 분반을 하는 일반고는 강남 3학군을 제외하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상태이다.[35] 집계 기간 동안의 스트리밍 및 다운로드 횟수를 누적시킨 기록이다. 다만 가온차트 정책 변경으로 2017년 이후 스트리밍 : 다운로드 반영 비율을 알 수 없게 됨에 따라 이후의 기록은 추정만 가능하다.[36] 자세한 내용 및 자료는 가온차트, 아이유 문서 참고 바람.[37] 흔히들 패스트 패션이라고 부른다.[38] 그나마 KBS 주말연속극이 여전히 3~40%대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지만 진부한 설정과 클리셰로 2, 30대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39] KBS는 제외[40] 이명한, 나영석 등.[41]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개그콘서트.[42] SBS 토요 예능은 놀라운 대회 스타킹 이후 무한도전과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 밀려 계속 동시간대 최하위를 기록하다 2019년 2월부터 백종원의 골목식당 재방이 편성되고 있고, MBC 일요 예능은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 재방이 편성되다 8월부터 같이 펀딩이 방송되었다.[43] 그 이전에는 경제전문채널이었으며, 2005년부터 보도전문채널로 전환되었다.[44]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종편 채널 삭제 인증이 유행하기도 했다.[45] 공교롭게 종편 개국 직후 김정일이 사망하면서 북한 관련 뉴스가 쏟아졌고, 이는 곧 종편의 보도 비중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46] MBN 고수의 비법 황금알아궁이,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웰컴 투 시월드, TV조선 살림 9단의 만물상[47] 김수현표 주말 드라마 무자식 상팔자가 종편 최초로 10%대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48] 신화방송[49] 2010년 당시 케이블 시청률 성공의 기준이 1%, 초대박의 기준이 2%였다.[50] 대표적으로 2019년 MBC의 경우 드라마 블록을 대거 축소및 개편시켰으며, 월화드라마 폐지설도 나오는 상황이다. 또한 SBS는 한시적인 드라마 휴방기도 가지고 있다.[51] 지상파 3사가 본격적으로 쇠락하기 시작한 것은 2018년이다.[52] 대표적으로 도깨비와 미스터 션샤인을 집필한 김은숙 작가와 연출자인 이응복PD의 사례를 들 수 있다.[53] 반대로 한국 예능이 해외로 수출되는 경우도 크게 늘어났다. 일본 예능 표절을 일삼았던 불과 10년, 2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엄청난 발전을 했다고 볼 수 있다.[54] 다만 아이돌물은 2015년 인기가 정점을 찍은 이후 2016년부터 인기가 식어가는 추세다.[55] 2000년대에도 KBS2 〈스펀지〉 같은 예가 있지만, 2010년대만큼 우후죽순 생기진 않았다.[56] 2000년대 대한민국에서는 다모임, 엠군, 엠엔캐스트, tv팟, 판도라TV 등 한국산 동영상 사이트가 대세였다.[57] Windows 7, Windows 8, Windows 8.1[58] Windows 2000, Windows XP[59] 2020년 1월 14일부로 Windows 7 마저도 보안 지원이 종료됨에 따라,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은 몇몇 기업, 공공기관 PC를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Windows 10 업그레이드를 하고 있다.[60] 이렇게 되면 전업 성우들은 비성우 연예인들의 더빙 참여를 위한 도우미(강사)나 AI에 필요한 목소리를 제공하는 가이드 정도로 활동 범위가 상당 부분 축소되어 명맥을 유지할 것이다.[61] 하지만 비디오 게임 더빙 쪽은 성우들이 활약하는 비중이 꽤 큰 편이다. 블리자드 사의 게임들이 대표적이고, 그것들 외에도 자잘한 게임 더빙은 찾아보면 의외로 수가 제법 된다.[62] 주말의 명화, 토요명화, 명화극장, 영화특급 등.[63] 이 과정에서 MBC는 코미디 하우스가 사라진 이후 하땅사, 코미디에 빠지다, 코미디의 길 등이 차례차례 새로히 생겨났으나, 이것들도 모두 오래가지 못하고 너무 빨리 사라졌다. 코미디의 길이 사라진 이후 MBC는 아예 희극인실까지도 없애버린 상태이다. 종편에서도 JTBC를 제외한 나머지 종편채널의 채널A, MBN, TV조선이 공개 코미디를 신설한 적이 있으나, 여기의 것들도 금방 사라졌다.[64] 예시로는 투니버스로 이관된 뽀롱뽀롱 뽀로로이다.[65] 다만 SBS는 2017년까지는 꽤 좋은 시청률을 유지했었던 프로그램들이 꽤 있다. 그리고 2018년까지는 5% 이상이라도 유지했었으나 2019년에 추락세가 가팔랐었다. 그러나 2020년 이후로는 SBS가 어느정도 부활하고 있다.[66] 2017년까지는 5~10% 정도의 시청률을 유지했던 프로그램들이 있었으나 2018년부터는 급추락을 했다. 2019년 들어서 수목드라마에서 부활하는 징조가 보였으나 2020년 들어서서 다시 추락했다.[67] 2017년까지는 시청률이 꽤 되던 프로그램들이 있었으나 2018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추락하였다. 이후 0%대 드라마마저도 속출하는가 하면 시사/보도분야마저도 정치편향 시비까지 일고 있다.[68] LOL 리그 방송으로 그나마 흥행성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옛날 스타1 리그만큼은 못하다. 무엇보다 초창기인 1999년과 2000년 시절에는 다양한 게임을 소개하는 방송을 하거나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이제는 다 옛말이다. 그리고 2020년대 시점에서는 존폐 위기에 놓여 있다.[69] 2012년 2월, 음악채널인 MBC MUSIC으로 전환하였다. 다만 이 과정에서 비판과 논란의 여지는 남아있다.[70] 케이블TV의 담배 모자이크도 대략 이때부터 생기기 시작했다.[71] 애니플러스만 봐도 잘 알 수가 있는데, 2012년까지만 해도 애니메이션 전문 방송사들 중 자체심의가 가장 느슨했고 대부분의 작품을 무삭제로 방영했던 애니플러스가 이젠 조금만 야하다 싶으면 가차없이 19금으로 등급을 매겨 버리고, (비록 TV 방송분 한정이긴 하지만) 삭제/편집을 수도 없이 해대고, 심지어 몇몇 19금 작품(ex. 건전로봇 다이미다라, 츠키모노가타리, 그리자이아 시리즈 3부작)은 개연성까지 망칠 정도로 중요 장면까지 삭제를 해서 트위터 운영자마저도 대놓고 VOD(무삭제)로 볼 것을 추천할 정도였다.[72] 거기다 영화 채널이라고 사정이 나을 것도 없는 게, 방심위가 미국 영화에서 나오는 욕설을 이젠 자막뿐만 아니라 영어 원어 음성에서 나오는 비속어까지도 건드리기 시작함에 따라 몇몇 영화 채널에서는 12 및 15세 이용가 영화에서 나오는 fuck을 음소거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73] 2019년 현재 대도시권에서 아날로그 케이블 방송이 종료되고 디지털 케이블 방송으로 전환 중이라고 한다.[74] 전세와 월세의 중간 형태로, 전세금 상승분을 월세로 돌리는 계약이다.[75] 박사모, 훗날 대한애국당, 우리공화당 세력[76] 2012년 KT, 2020년 SKT, 2021년 LG U+ 모두 이동통신 3사가 2G(CDMA)를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2G(CDMA)는 완전히 역사속으로 사라졌다.[77]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최초 보고, 본격적인 유행은 2020년부터 대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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