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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니스 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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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2f4f4f> (구) 쟈니스 사무소
파일:쟈니스 그룹 로고.svg
기업명 구) 쟈니스 사무소
현) SMILE-UP.
국가
[[일본|]][[틀:국기|]][[틀:국기|]]
업종명 연예 기획사
설립일 1962년 6월(창업)
1975년 1월 30일(법인 등기)[1]
폐업일 2023년 10월 2일(연예매니지먼트업 종료일)
2024년 4월 9일(완전 폐업)
후신 STARTO ENTERTAINMENT
창업주 쟈니 키타가와
대표자
대표이사 사장
히가시야마 노리유키[2]
이사 부사장
시라하세 아키라
본사
[ 펼치기 · 접기 ]
도쿄도 미나토구 아카사카9쵸메 6-35
링크 FAMILY CLUB FAMILY CLUB_2 SMILE-UP.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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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 여부 <colbgcolor=#fff,#1f2023><colcolor=#373a3c,#ddd>비상장 기업
법인 형태 주식회사
법인 번호 9010401014127
사업 내용 탤런트의 육성, 매니지먼트, 프로모션
자본금 1,000만 엔
직원 수 약 190명(2022년)
}}}}}}}}} ||

1. 개요2. 역사
2.1. 1980년대 이전2.2. 1980년대2.3. 1990~2000년대2.4. 2010~2015년2.5. 2016~2022년2.6. 2023년
3. 용어4. 방침5. 쟈니스 주니어6. 쟈니스 카운트다운 라이브7. 쟈니스 게이밍 룸8. 비판9. 오너 일가 및 주요 간부
9.1. 쟈니 키타가와9.2. 메리 키타가와9.3. 후지시마 쥬리 케이코9.4. 코스기 류조9.5. 이이지마 미치9.6. -타키자와 히데아키-9.7. 히가시야마 노리유키
10. 팬덤11. 한국 관련12. 한국 기획사 관련
12.1. 연습생 관련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12.2. 영향이 없거나 미미하다는 주장
13. 현재 소속 연예인
13.1. 그룹13.2. 솔로
14. 과거 소속 연예인
14.1. 그룹
14.1.1. 해체한 그룹14.1.2. 퇴소 멤버
14.2. 솔로
15. 주요 자회사1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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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5d2f37703b00004d00dacac5.jpg
쟈니스 사무소 본사[3]
일본의 남성 연예인 전문 대형 연예 기획사.[4] 일본 남성 아이돌 업계를 대표하는 회사로, 이전 이름인 '쟈니스'는 창업주 쟈니 키타가와영어 이름 애칭에서 유래되었다.
“쟈니스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건 아니다. 나도 쟈니스 사무소가 없어지는 건 슬프다. 왜냐하면 나에게도 모교 같은 곳이니까. 교장선생님이 성희롱했다고 모교 자체가 없어졌으면 하는 것은 아니다. 교장 선생님이 성 가해자인건, 학교 선생님들도 소문으로 모두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학교에서 보낸 시간, 문화제나 수업, 친구, 그리고 나의 청춘은 사라지지 않는다. 똑같은 것이다. 학교가 사라지는건 다른 이야기이다. 물론 법률적으로,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자니 기타가와) 본인은 사망했고 이제 없다. 그런데도 학교를 무너뜨려야한다는데는 나도 찬성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네가 쟈니스를 망쳤다’고 비방하는데, 나조차도 그런 지적에는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 日 가우안 인터뷰
2023년 쟈니 키타가와 연습생 성착취 파문으로 인해 사실상 폐업한 뒤 기존 회사는 STARTO ENTERTAINMENTSMILE-UP.으로 사명을 변경했고 모든 매니지먼트 업무를 스타토 측으로 이관하며 스마일업은 피해자 보상 업무 등 담당사로만 존속하고 있다.

2. 역사

2.1. 1980년대 이전

쟈니스의 창업주 쟈니 키타가와대학생 시절인 1950년에 일본 유명 가수 미소라 히바리미국 공연을 보는데, 마침 공연 관리를 맡았던 사람이 쟈니의 아버지와 지인이라 미소라 히바리와도 친분을 쌓게 되었다. 이 경험은 훗날 쟈니 키타가와의 연예계 진출의 계기가 된다. 그리고 쟈니가 조치대 재학 중이던 1955년, 밴드를 결성해 연예계에 진출하였다.

이후 일본에서 계속 살다가 30대 초반이던 1962년, 마침내 쟈니스 설립의 계기가 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쟈니는 도쿄의 재일 미군 시설인 워싱턴 하이츠(現 요요기 공원)[5]에서 살고 있었는데, 쟈니의 집에는 신기한 미제 물건들이 많았기 때문에 동네 아이들이 쟈니를 잘 따랐다고 한다. 그래서 쟈니는 동네 소년들을 모아서 쟈니스 소년 야구단을 만드는데, 본인은 이 소년 야구팀의 코치를 맡았다. 근데 이 야구단이 단순한 동네 야구 규모가 아닌 게, 당시 프로야구라든지 그 유명한 역도산에게서도 지원을 받을 만큼 규모나 영향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하여튼 쟈니는 어느 날 이 소년 야구단에서 근처 요요기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 4명이랑 같이 영화를 보러 갔는데, 그때 상영했던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다들 큰 감동을 받아서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때 소년 4명을 모아 쟈니스라는 최초의 그룹을 만들고 1962년 쟈니스 사무소를 창업한다.

쟈니의 누나인 메리는 당시 카운터바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쟈니가 창업한 이후 바를 폐점하고 쟈니스의 경리를 맡게 된다. 이후 쟈니는 당시 '엔카'가 주류였던 일본 가요계에 미국쇼 엔터테인먼트라는 개념을 들여와서 일본 대중들에게 소개하면서 이 분야의 선구자적인 길을 걷게 된다. 당시 일본의 대형 기획사였던 와타나베 프로덕션의 의뢰로 1964년 쟈니스 소년 야구팀 중 4명을 뽑아 만든 동명의 댄스 그룹[6]으로 데뷔했다. 회사 명칭은 사장의 미국식 이름에서 따온 것이긴 하나, 공식적으로는 '(댄스 그룹) 쟈니스의 소속사'라는 뜻에서 지었다고 한다.

쟈니스의 본격적인 성장은 1970년대 포 리브스(フォ一リ一ブス)와 고 히로미의 연속 히트부터였다. 1968년 레코드 데뷔한 포 리브스는 당시 일본에서는 생소했던 춤을 추며 노래하는 10대 소년들의 아이돌 그룹이었는데, 일본 청소년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7] 포 리브스는 1970년대 초까지도 홍백가합전에 연속 출전할 만큼 계속해서 인기를 모았다. 포 리브스가 시들해질 때쯤 등장한 또 한 명의 인재가 바로 1972년 데뷔한 고 히로미. 그는 당시 노구치 고로, 사이조 히데키와 함께 신 고산케(新御三家)로 불리며, 1970년대 남성 인기 가수 Top3로 군림했다. 또 이때 쟈니스 연습생 육성 시스템인 주니어 제도도 정립되었다.[8]

하지만 고 히로미는 쟈니스에서의 활동에 회의감을 느꼈고, 마침 바닝프로덕션으로부터 이적 제안이 들어오자 1975년에 주니어 멤버 6명을 데리고 이적해버린다.

1975년 쟈니스는 와타나베 프로덕션에서 벗어나 자체적인 연예 기획사로 독립한다. 하지만 이후 데뷔시킨 그룹과 솔로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고, 1970년대 중후반 내내 암흑기를 보낸다. 이른바 "쟈니스 겨울의 시대"로 이 시기에 쟈니는 고 히로미가 떠난 충격으로 일은 거의 하지 않고 마작으로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2.2. 1980년대

오늘날 쟈니스하면 떠오르는 요소들은 1980년대부터 많이 부각되기 시작한다. 쟈니스가 일본에서 독보적인 남성 아이돌 기획사로 올라선 것도 이 시기부터였다.

이전까진 소수의 여성 연예인도 키우고 있었으나[9], 1980년대 부터는 남성 연예인만 키웠다.

1980년대 초반 쟈니스는 타하라 토시히코, 콘도 마사히코, 노무라 요시오 등 이른바 타노킨 트리오를 차례로 데뷔시키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콘도 마사히코는 데뷔 싱글이 창립 이래 최초의 밀리언에 연간 3위라는 대기록을 세우는 등 쟈니스의 암흑기를 끝낸 일등공신으로 쟈니스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이 때문에 콘도 마사히코는 메리 부사장이 매우 아끼는 연예인이었다고 한다.

뒤이어 1985년에 백 텀블링 같은 아크로바틱 스타일의 안무를 내세우며 후대 쟈니스 그룹에도 상당기간 영향을 준 소년대가 데뷔해서 히트하고, 1987년에는 롤러스케이트를 타며 춤을 추는 특이한 콘셉트로 데뷔한 히카루GENJI가 사회현상이라고 언급될 정도로 큰 인기를 자랑하였다. 쟈니스를 지금과 같은 제국의 위치로까지 끌어 올려 준 것이 바로 1980년대 말에 데뷔한 히카루GENJI였다. 댄스 가수적 측면에서 보자면 이때가 쟈니스의 전성기였다고 볼 수 있다.[10] 이후부터 쟈니스의 위상은 최소한 일본 남성 아이돌 업계에선 누구도 넘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에 실력파를 자처하며 데뷔한 오토코구미, 닌자 등이 실패하고[11] 설상가상으로 생방송 음악 프로그램인 TBS더 베스트 텐, NTV의 노래의 톱텐, 후지 테레비밤의 히트 스튜디오가 1990년까지 모두 종영되자[12] 쟈니스 사무소는 큰 위기를 맞게 되었다.

2.3. 1990~2000년대

이런 위기 속에서 1988년 결성, 1991년 데뷔한 SMAP이 특유의 예능감과 친근함을 내세워 버라이어티에서 활약하면서 점차 인기를 얻게 되었으며[13] SMAP 멤버 개개인도 각종 예능, 드라마에서 활약하며 인지도를 크게 넓히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SMAP 인기 멤버로는 1990~2000년대 일본 드라마계의 시청률 제왕 기무라 타쿠야와 국민 MC이자 버라이어티계의 최고 거물 중 한 명인 나카이 마사히로[14]가 있다. 초난강이란 예명으로 한국에서도 활동한 바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친한파 연예인 쿠사나기 츠요시도 SMAP 멤버이다. 이렇게 SMAP이 여러 분야를 뚫으면서 이들을 기점으로 20대 초중반, 5~10년 전후에 불과했던 일본 아이돌 그룹의 수명도 크게 길어졌다. 다만 빛과 그림자라고, 그만큼 본업이랄 수 있는 아이돌 그룹 본연의 퀄리티는 더 떨어지게 된다.

한편, 1993년에는 NHK BS2에서 여태 선배 그룹의 백업댄서 정도로만 알려졌던 쟈니스 주니어가 전면으로 나선 방송인 '아이돌 온 스테이지'[15]가 시작되었다. 1995년에서 1999년 전후는 이른바 주니어 황금기로서 쟈니스 주니어의 인기가 웬만한 데뷔조를 능가했다. 또한 1995년 V6를 시작으로 4년마다 배구 월드컵 이미지 캐릭터, 소위 배구조로 새 그룹을 데뷔시키는 체제도 만들어졌다.[16] 1999년에는 쟈니스가 배출한 마지막 국민 아이돌이라고 할 수 있는 아라시가 데뷔한다.

2.4. 2010~2015년

2000년대에도 인기를 유지한 쟈니스였지만, 2010년대 초반 Kis-My-Ft2SMAP와 계속적으로 1:1 바타로 엮이면서 속칭 라인(파벌) 문제가 불거졌다.[17] 1980년대에는 쟈니 대표가 모든 데뷔조를 직할할 수 있었지만, 쟈니가 나이를 든 것도 있고 SMAP 이후 아이돌 그룹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모든 데뷔조를 혼자서 관리하기 어려워지자 복수의 간부를 중심으로 업무를 분담한 것이 이 '라인'의 기원으로 보인다.

이 '라인'은 다음과 같이 나뉘었는데, 라인이 다른 그룹은 절대로 방송에 같이 출연하는 일이 없었다.
이에 대해 2015년 1월 메리 부사장은 주간문춘 인터뷰에서 어찌보면 당연하게도 대외적으론 라인의 존재를 부정했지만, 실제론 철저히 같은 라인끼리만 활동하는 양상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결국 윗선에서 정리를 한 모양새인데, 2016년 1월에 라인의 한 축이던 이이지마가 쟈니스 사무소를 퇴사한다. 위에서 라인을 4가지로 분류하였지만, 큰 틀에선 이이지마-쥬리 구도로 수렴되었던 만큼 한 쪽이 없어지면서 사실상 라인이 한 쪽으로 합쳐진다.[20] 하지만 아직 '더 소년구락부'를 제외한 미디어 활동에서 라인의 틀이 깨진 사례는 없기 때문에 앞으로의 추이를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2.5. 2016~2022년

2017년을 기점으로 팬들은 라인이 깨졌다고 보고 있다. 왜냐하면 그동안 공동 출연이 없었던 이이지마 라인의 아이돌쥬리 라인의 아이돌의 공동 출연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21]

2016년 회사 경영진 사이에서의 내분을 원인으로 이이지마 미치가 쟈니스를 나가고, 이이지마의 담당이었던 SMAP이 해체, 쿠사나기 츠요시, 카토리 싱고, 이나가키 고로가 사무실을 나갔다. 그 후로 2021년 하반기인 현재까지 소속 연예인들의 퇴소와 사건사고가 이어지면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기그룹 SUPER EIGHT의 멤버 시부타니 스바루니시키도 료가 각각 2018년, 2019년 퇴소했다. SMAP의 멤버 중 사무소에 남았던 두 명 중에서 나카이 마사히로가 자신의 회사를 차려 2020년 4월 독립했다. 인기 탤런트였던 야마시타 토모히사테고시 유야 등이 논란을 일으킨 끝에 사무소를 나갔고, 콘도 마사히코가 불륜 논란으로 활동을 중단했으며,[22] 최고참 그룹 소년대 멤버 중 히가시야마 노리유키를 제외한 두 명이 퇴소했다. 야마구치 타츠야의 성추행 사건으로 인한 퇴출 후 밴드활동을 할 수 없었던 토키오[23]의 멤버 중 보컬인 나가세 토모야가 2021년 3월 31일을 끝으로 퇴소했다.

과거에도 소속 탤런트의 이탈이나 탈퇴는 있어왔으나 최근의 이탈 추세가 특히 문제가 되는 이유는, 쟈니스가 더이상 방송업계에 독점에 의한 압력을 행사할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과거 쟈니스는 쟈니스 사무소를 나간 연예인들, 특히 쟈니스 주니어 출신마저 연예계 활동을 하지 못하게 막아 소속 연예인들이 독립을 꿈꾸지 못하도록 하고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해 왔다. 심지어 국민 그룹인 SMAP 출신의 3명마저도 탈퇴 후 지상파에 나오지 못하게 했던 것이 일본 공정거래위원회의 주의를 받음으로써 드러났다. 퇴사 후 스스로 개인사무소를 설치한 나카이 마사히로가 거의 유일한 예외였으나, 그도 건강 문제로 인하여 프로그램을 정상적으로 진행하기가 어려워졌고, 남은 기무라 타쿠야도 활동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2010년대 이후 인터넷 방송과 SNS, 유튜브 등 뉴 미디어의 발달로 기존의 주류 방송사 외의 매체를 사용하여 연예활동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쟈니스가 퇴사한 연예인들의 활동을 방해할 수단도 크게 줄어들었다. 실제 SMAP 출신의 세 사람과 야마시타 토모히사, 테고시 유야가 적극적인 SNS 사용과 유튜브 채널 개설 등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미 위와 같은 선례가 생긴 상황에서 사무소에 불만을 가진 연예인들이 계속해서 계약해지를 해 나간다면 이때까지 쟈니스가 일본 방송가에서 가졌던 지위는 더이상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 현재 사무소의 주력 그룹인 아라시가 2020년 12월 31일 이후로 활동 휴지에 들어갔다. 리더 오노 사토시[24]를 제외한 4명은 연예계 활동을 계속한다고 하나 그룹의 이름을 걸고 하던 예능, 광고 등의 활동은 모두 중지될 수밖에 없는 만큼 수입에 있어서 후유증이 클 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2021년 3월 12일 사무소 내 중견 그룹인 V6가 동년 11월 해체, 멤버 모리타 고가 사무소를 퇴소한다고 발표했다.

현재 SMAP과 아라시만큼의 위치를 구축한 스타가 사무실에 없는 가운데 쟈니 키타가와 사장이 사망 전 후계자로 지명한 타키자와 히데아키와 쥬리가 현재의 위기를 어떻게 수습하고 회사를 정비하며, 다시 국민적 인기를 얻는 아이돌을 배출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추후 쟈니스의 입지가 달려 있는 상황이다. 한편, 앞서 언급했던 뉴미디어의 발달과 변화의 물결을 수용해 쟈니스 사무소가기존에 빡빡했던 초상권 보호[25]와 폐쇄적인 문화를 없애고 유튜브와 온라인 굿즈 샵을 열었던 것도 이 시기부터였다.

하지만 타키자와가 2022년 10월부로 퇴사했고, 후속적으로 King & Prince 멤버 3명(히라노 쇼, 진구지 유타, 키시 유타)이 2023년 소속사를 퇴소한다고 밝히면서 쟈니스의 활동 지원 및 인사적체 관련 문제가 공론화되고 있다. 이렇게 퇴소한 연예인 상당수는 타키자와가 설립한 TOBE로 이적해 쟈니스 시절보다 활발한 활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2023년부터 SMAP 전 멤버들이 지상파 황금시간대 드라마에 다시 출연하기 시작하면서[26], 쟈니스 소속의 연예인들은 쟈니스를 직접적으로 퇴사한 연예인들과 시청률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가뜩이나 가요계 파이는 LDH 사단과 K-POP 아이돌들이 빠르게 잠식해 나가는 중이고, 연기 역시 아뮤즈를 비롯한 타 기획사의 라이징 남자 배우들이 즐비한지라 점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2.6. 2023년

2.6.1. 쟈니 키타가와 연습생 성착취 파문

2023년 4월 13일 전직 쟈니스 주니어 출신인 오카모토 카우안이 쟈니 키타가와에 의해 장기간 성학대를 당했음을 폭로했다. 주로 자신의 멘션에 불러 성기를 만지는 등의 추행을 가했으며, 심지어 피해자는 갓 중학교를 졸업한 미성년자였다. 오카모토는 자신 외에도 수많은 피해자가 존재한다고 언급했고, 수년간의 폭로와 증언에도 쟈니스의 압력에 굴복해 침묵하는 일본 언론사들 대신 외신기자 협회를 통해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미투에 침묵하는 日 언론…대형 연예기획사 오너 성폭행 사실 보도 않고 외면.

쟈니스는 이번에도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사건을 묻어버리려 했지만[27] 계속해서 폭로가 이어지고 외신이 주목하자 결국 쥬리 케이코 대표가 기자회견을 했으나, 여기서도 '소란을 일으켜 죄송하다', '고인의 행적에 대해 확인이 어렵다'며 사건을 얼버무릴 뿐 결국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나 진상규명은 이뤄지지 않아 일본에서도 여론이 폭발했다. 日 뒤집은 아이돌 제왕의 충격 '성추문 스캔들' 결국…

2023년 9월 기준 쟈니 키타가와 연습생 성착취 파문이 점점 커지며 피해자들의 폭로가 매일매일 늘어나는 상황으로, 쟈니스 측이 외부인사들로 꾸린 조사위원회에서도 지속적인 성착취가 사실로 판명되었다. 심지어 조사위원회가 추산한 피해자는 수백을 넘어 천 단위에 이르며, 만 8세 시절부터 성착취를 당한 피해자까지 나왔다. 키타가와의 성착취 이력 역시 회사를 세우기 전인 19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크게 논란이 되면서 쟈니스에 대한 보이콧이 이어지며 거의 모든 광고 및 매체에서 퇴출당한 상태다.

이 와중에 9월 16일 사무소와 소속 연예인이 맺는 '전속계약서' 내용들을 공개한 폭로 기사가 떠서 다른 의미로 다시 난리가 났다.[28] 이 계약서의 내용이 그야말로 노예계약 수준이라 쟈니스 입장에서는 쟈니 사장의 성착취 혐의에 이어서 또다시 악재를 맞게 되었다. #1일부 번역 #2

2.6.2. 사명 변경 및 폐업

쟈니 키타가와의 성추문 폭로 이후, 10월 2일의 기자회견에서 사측은 쟈니스에서 추진했던 사회공헌 프로젝트 이름에서 딴 SMILE-UP.으로 개명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쟈니스 사무소는 10월 2일자로 사명을 변경하고, 연예매니지먼트업을 중단하며, 피해자 보상업무 담당사로 남을 예정이고, 피해자 보상업무가 모두 종료되면 스마일업 또한 폐업한다#.[29] 매니지먼트 쪽은 또다른 새 회사를 만들어 그쪽으로 모든 것을 이관할 예정. 소속 탤런트가 개인이나 그룹으로 만드는 사무소와 개별적으로 계약을 맺는 태세를 정돈할 것이라고. 히가시야마는 "희망하는 탤런트 개인이나 그룹이 설립하는 회사와 개별적으로 계약을 맺는 에이전시 회사"라고 설명했다. #1 #2 후지시마 쥬리 케이코 편지 전문. 기존 회사는 폐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쟈니스 소속 연예인들은 새 회사와 계약하거나 다른 회사로 이적하거나 그룹으로 독립적인 회사를 세워 활동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칸쟈니∞, 쟈니즈WEST, Sexy Zone이 팀명을 변경한다고 밝혔다. 그 중 쟈니즈WEST는 10월 18일 부로 WEST.라는 이름으로 변경했으며 칸쟈니∞는 2024년 2월 4일에 SUPER EIGHT로 변경했다. Sexy Zone 또한 나카지마 켄토가 탈퇴한 2024년 4월 1일부터 timelesz로 팀명을 변경했다.

또한 외부 전문가에 의한 재발 방지 특별 팀의 제언을 근거로 현재 강구하고 있는 재발 방지책에 대해 보고했으며 피해 보상의 구체적 방책을 발표했다. 9월 말까지 피해보상 접수 창구에 478명이 신청했고 325명이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11월부터 보상을 시작하고 싶다. 앞으로는 임상심리사 등의 협력을 받아 다가가는 형태를 제대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1 #2 한국 기사

다만, 이러한 조치가 기존 사장이자 쟈니 키타카와의 사실상의 후계자인 前 사장 후지시마 쥬리 케이코의 잔여지분만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회사가 면피를 위해서 위장하려는 행동이지 않느냐의 반응 등도 존재한다. #

10월 6일에 쟈니스 사무소 간판이 철거되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

10월 17일에 쟈니스 사무소 사이트는 Family Club[30], 피해보상 관련 공지 사이트는 SMILE-UP.이라는 명칭으로 바뀌었으며, 쟈니스 주니어는 주니어를 카타가나로 바꾼 'ジュニア'로 변경되었다.

11월 13일, 2023년 NHK 홍백가합전 참가 명단이 발표되었는데 쟈니스 소속 아티스트들이 단 1팀도 포함되지 않았다.

12월 8일, 기존의 업무가 이관된 신설 회사가 스타토엔터테인먼트(STARTO ENTERTAINMENT)로 사명이 변경되었다. 새 사명은 팬클럽 회원들로부터 받아 결정되었으며, 총 14만 156건을 응모한 가운데 새로운 회사의 경영진이 논의 끝에 결정했다고 한다.#

2024년 4월 9일, Smile-UP 사이트와 Family Club 모두 폐업한다는 공지문을 올렸으며, 이로써 쟈니스라는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STARTO ENTERTAINMENT로 바뀌게 되었다.
故ジャニー喜多川による性被害にあわれた方に心よりお詫び申し上げます。
今後当サイトでは被害補償の状況を適宜お知らせしてまいります。
被害にあわれた方々のお気持ちに寄り添い、迅速かつ適切な被害救済に弊社一丸となって全力を尽くして取り組んでまいります。

なお、SNSなどを通じて被害にあわれた方やご家族等に対する誹謗中傷が行われております。そのような不当な行為は絶対に止めていただきますよう切にお願い申し上げます。
고 쟈니 키타가와에 의한 성 피해를 당한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향후 당 사이트에서는 피해 보상의 상황을 적절히 알려 드리겠습니다. 피해를 당한 분들의 기분에 다가가 신속하고 적절한 피해 구제에 폐사 일환이 되어 전력을 다해 임해 가겠습니다.
덧붙여 SNS 등을 통해 피해를 당한 분이나 가족 등에 대한 비방 중상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부당한 행위는 절대로 멈추어 주시도록 부탁드립니다.
Smile-up 공지문

平素よりFAMILY CLUB Official Siteをご利用いただき、誠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本サイトは2024年4月9日をもちまして、サービスを終了させていただきました。
突然のお知らせとなりましたことを、心よりお詫び申し上げます。
今後のアーティスト情報に関しましては、下記サイトにてご確認ください。
https://starto.jp
これまで多くの皆様にご利用いただき、誠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평소보다 FAMILY CLUB Official Site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본 사이트는 2024년 4월 9일을 가지고 서비스를 종료하였습니다.
갑자기 소식이 되었음을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향후 아티스트 정보에 관해서는 아래 사이트에서 확인하십시오. (https://starto.jp)
지금까지 많은 분들께 이용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Family Club에서의 공지문

3.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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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방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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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쟈니스 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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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니스 사무소에서 정식으로 데뷔하지 않은 연예인을 쟈니스 주니어라고 한다. 흔히 한국 아이돌계의 연습생에 대응되곤 하지만 항목에도 있듯 엄밀히 따지면 개념 차이가 있다. 쟈니스 주니어는 크게 도쿄 본사에서 선발해 활동하는 쟈니스 주니어(도쿄 주니어)와 칸사이 사무소에서 선발해 오사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칸사이 쟈니스 주니어(칸사이 주니어)로 나뉜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콘서트나 방송 무대에서 선배 그룹의 백업댄서로 활동하며, 인기 주니어들은 버라이어티나 영화에서 활약하거나 독자적으로 유닛 활동을 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쟈니스 사무소에서는 CD 음반을 내야 데뷔한 것으로 간주했으나, 이쿠타 토마를 시작으로 음반을 내지 않고도 전업 탤런트로서 쟈니스 주니어를 졸업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또 2012년에는 A.B.C-Z가 DVD 싱글로 데뷔하면서 그룹 데뷔의 의미가 확장되었는데, 이는 A.B.C-Z가 아크로바틱을 특기로 하는 그룹인 만큼 음반보다 영상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2017년에는 주니어 유닛 포유가 주니어 사상 최초로 유닛 전체 승격되었으며, Travis Japan은 아예 디지털음원 발매로 데뷔했다.

6. 쟈니스 카운트다운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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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쟈니스 게이밍 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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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5px"
{{{#000,#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color:#1D1D1D; margin: -6px -1px -11px"
Johnny's Gaming Room
창 립 멤 버
파일:KMF2_로고_투명본w.png
파일:Heysayjump_logo(2022).png
미야타 토시야 타마모리 유타 아리오카 다이키
선 발 멤 버
파일:Sexy Zone__logo.png
파일:johnnyswest_logo.png
파일:SixTONES_maskara_logo.png
파일:Snow Man 로고.svg
파일:naniwadanshi_fc_card_logo.png
사토 쇼리 시게오카 다이키 코우치 유고 후카자와 타츠야 오오하시 카즈야
카미야마 토모히로 타나카 쥬리 사쿠마 다이스케 타카하시 쿄헤이
후지이 류세이 모리모토 신타로 나가오 켄토
졸 업 멤 버
파일:Snow Man 로고.svg
무카이 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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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니스 출신들이 모여서 만든 게임 그룹. 2023년 10월 17일부터는 '방과후 Gaming life'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8.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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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오너 일가 및 주요 간부

일본 연예계에서 상당한 입지를 구축한 회사인 동시에 비상장 기업[31]이며, 족벌 기업이다.

현재 등기임원은 메리, 쥬리, 타키자와 그리고 그 외 6명이다.

9.1. 쟈니 키타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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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메리 키타가와

파일:external/blog-imgs-74.fc2.com/150124.png

メリー喜多川
1926. 12. 25 ~ 2021. 08. 14.(향년 93세)

쟈니 사장의 친누나이자 前 회장, 쟈니스 엔터테인먼트 대표. 본명은 후지시마 메리 야스코(藤島メリー泰子)

쟈니스 사무소 창립 이전에는 요츠야에서 바를 경영했다고 한다. 창립 초부터 쟈니 사장이 연출이나 캐스팅, 매니지먼트에 전념하는 반면, 재정 관리나 교섭, 접대 등 실질적인 경영 활동은 메리 부사장이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재계에 상당한 인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원로 배우 모리 미츠코, 쿠로야나기 테츠코와 친분이 두터워서 이들에게 재정적 지원을 받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32]

경영 활동 이외에도 각종 콘서트의 무대 의상을 담당했는데, 깃털, 반짝이, 바지 옆선의 3종 세트가 바로 그녀의 작품. 나이가 나이인 만큼 현재 의상을 직접 제작하진 않겠지만, 여전히 이러한 의상들이 양산되고 있어 현재도 의상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듯하다.

2020년 2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고령으로 인해 회장직에서도 물러난다고 한다. 이미 실질적인 경영에는 참여하고 있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회장직까지 내려 놓고 경영선에서 완벽하게 물러나게 되었다.

2021년 8월 14일, 폐렴으로 도내 병원에서 사망했다. 8월 17일 언론 보도를 통해 밝혀졌다. #

9.3. 후지시마 쥬리 케이코

藤島ジュリー景子 ([age(1966-07-20)]세) 1966. 7. 20 ~

사실상 쟈니 키타가와의 후계자였다. 쟈니 사장의 조카이자 메리 부사장과 소설가 후지시마 타이스케(前 도쿄 신문 기자)[33]의 딸이다. 제이스톰 대표이기도 하다.

쟈니스 사무소의 몇 안 되는 여성 탤런트로 활동했다. 타노킨 트리오와 함께 드라마 「3학년 A반 킨파치 선생」 1기에 출연하기도 하였으나, 정식 데뷔하지는 못하고 미국 유학을 거쳐 스타일리스트로 전향하였다. 쟈니 사장의 기대 속에 아라시NEWS를 맡았으나, 처음에는 크게 고전하다가[34] 2007년을 전후해 아라시가 국민 아이돌로 성장하고, NEWS 역시 2012년 4인 체제로 개편 후 안정된 활동을 보여 주고 있어 회사 내 입지가 굳어졌다. 2016년에 이이지마 미치가 퇴사한 후 찌라시에서 심심찮게 차기 사장 취임설이 등장하고 있는 듯. 그리고 2019년 사장에 취임했다.

업계에서는 교섭 스타일이 어머니인 메리 부사장을 닮았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쟈니스의 실질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만큼 팬들에게 까이는 일이 많으며, 언론에도 잘 모습을 비추지 않는다. 그간 그룹 프로듀싱을 해왔으나 시대에 맞지 않는 후진적 행보로 인해 팬들을 소속사 안티로 만드는 데 최대 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엔터업계에서 민희진 등 여성 경영자, 프로듀서들을 후지시마에 빗대는 것은 이들에게 상당한 모욕이다.

2023년 8월 29일 주간문춘의 단독 보도로 경영에서 물러난다는 기사가 떴다.# 사실상 쟈니 키타가와 연습생 성착취 파문 때문에 물러난 것으로 보이며, 실제 9월 7일 기자회견에서 사임을 선언했다.

9.4. 코스기 류조

小杉理宇造 ([age(1947-11-10)]세)

前 고문 겸 스마일 컴퍼니[35] 사장, 쟈니스 엔터테인먼트 대표. 1947. 11. 10. ~

콘도 마사히코의 치프매니저 출신인데, RVC 레코드에 재직하던 시절 콘도를 맡고 쟈니 사장을 안 것을 시작으로 오늘날까지 쟈니스와 관계를 맺고 있다. 1989년에 일어난 나카모리 아키나의 이른바 사죄 기자회견은 그의 작품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 그동안 다른 간부들에 비해 팬과 대중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은 존재였으나, 2016년 SMAP 해체설 사건 때 주간지에서 이야기하며 다시금 그 존재가 알려졌다.

2019년 임원진 발표에서 그의 이름이 사라진 것으로 보아 일선에서 물러난 듯하다.

9.5. 이이지마 미치

飯島三智 ([age(1957-02-20)]세)

SMAP 치프매니저 겸 제이드림 이사. 1957. 2. 20. ~

원래는 사무 직원으로 입사하였으나, 무명에 가까웠던 SMAP을 맡아 오늘날 일본 최고의 아이돌로 키운 입지전적인 인물이다.[36] 방송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편이지만, SMAP 멤버들은 이이지마를 쟈니 사장 못지않게 특별한 존재. 어려운 시절부터 동고동락하여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 여긴다고 한다. SMAP 외에는 Kis-My-Ft2야마시타 토모히사의 매니지먼트를, Sexy ZoneA.B.C-Z의 미디어 출연 관리를 맡았다.

2000년대 초반에 SMAP이 국민 아이돌로 자리잡은 반면, 쥬리가 담당한 아라시의 성장이 늦자 항간에는 쟈니 사장이 자신의 후계자로 이이지마를 낙점한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퍼지기도 하였다. 이후 세대 교체로 아라시가 쟈니스 판매량 부동의 탑에 서게 되고, 2015년 1월 메리 부사장이 주간문춘 인터뷰에서 차기 사장은 쥬리라고 대차게 밝혀 버렸다. 동시에 이이지마를 급히 호출하여[37] 쥬리와 이이지마가 문제가 된다면 나는 쥬리를 남겨둘 것이니 자신과 대립할 생각이라면 SMAP을 데리고 나가 버리라고 말하기도.#

그리고 2016년 1월 말에 정말로 이이지마가 쟈니스를 퇴사하면서 SMAP의 쟈니스 탈퇴 및 해체는 거의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였으나, 생방송으로 대국민 사과를 통해 재결합을 밝혔다. 하지만 8월 13일, 결국 SMAP은 해체가 확정되었다.

메리 부사장이 이이지마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것은 아마도 SMAP의 독자 노선이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이지마가 SMAP을 처음 맡았을 때부터 쟈니 사장이 그에게 사실상 전권을 주었다. 이이지마 퇴사 이전까지 SMAP에 대한 사항은 쟈니 사장에게만 직보하는 체제가 구축되고 현장 매니저도 모두 그의 관할 하에 있었다.[38] 다른 간부들이 이에 위화감을 느끼면서 점차 이이지마 VS 쥬리(메리)의 구도가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7년 이이지마 미치는 중국 쪽의 투자금을 바탕으로 커렌(CULEN)이라는 기획사를 설립했다. CUL TURE&EN TERTAINMENT라는 뜻으로 지어졌으며, SMAP의 前 멤버인 이나가키 고로, 쿠사나기 츠요시, 카토리 싱고를 영입했다. 현재 이 셋은 새로운 지도(NEWSMAP)라는 이름으로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활동 중이다.

9.6. -타키자와 히데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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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히가시야마 노리유키

소년대의 멤버. 2023년 9월 7일부로 사장직에 정식 취임했으며, 2023년 연내 탤런트 활동에서 은퇴하기로 했다. 쟈니 키타가와 연습생 성착취 파문의 여파로 전임 후지시마 쥬리 케이코 사장으로부터 위임받은 형태로 보인다.

10. 팬덤

일본 최대 남성 아이돌 기획사인 만큼 팬덤이 많으며, 여러 그룹이나 개인을 동시에 좋아하는 문어다리 팬질도 흔한 편이다. 지나가는 쟈니스 팬을 붙잡고 물으면, '이치방(一番)'으로 꼽는 최고로 좋아하는 그룹 외에도 관심 있는 다른 그룹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것을 통칭 쟈단계(쟈니스 다단계)라고 부른다. 쟈니스 소속 연예인을 좋아하게 되면 대부분 그가 속한 그룹에 관심이 생기고, 그 그룹의 레귤러 프로그램이나 소속 멤버의 드라마를 보게 되면 거기에 출연하는 또 다른 소속 연예인에게 관심이 생기는 식으로 무한 루프, 끝이 없다. 쟈니스 빠도 오덕의 일종이니 덕계와 공통점이 많다. 쟈니스 쪽이 그쪽보다 훨씬 좁긴 하지만, 의외로 깊고 빠졌다 싶으면 나가기가 힘들다. 그 외 성별이 반전된 것 말곤 별 차이 없다. 개인팬으로 출발한 쟈니스 팬들도, 그렇게 그룹의 모든 멤버들을 좋아하는 하코오시(箱推し)가 되기도 한다.

팬질하기에도 딱 좋은 시스템. 역사가 길다 보니 각 그룹 간 어필 포인트가 달라 미소년부터 미중년까지 취향대로 골라잡아 덕질하다 보면 하루가 심하게 짧다. SMAP 같은 경우엔 할머니와 손녀가 손을 잡고 콘서트를 구경하는 등. '치비 주니어(ちびジュニア)'로 콩알 같던 초등학생 소년을 눈여겨 보았는데, 그 아이가 자라 번듯한 청년이 되어 데뷔할 때 왠지 자식 기르는 듯한 쾌감도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 갈수록 CD 데뷔가 어려워지는 사내 구조 때문에 주니어 내 인기 유닛이었던 Ya-Ya-yah 멤버 4명 중 데뷔를 못 한 2명이 다른 소속사로 옮기는 사태가 발생했다. 아유카와 타이요는 유명 기획사인 프로덕션 오기로 이적해 2011년 URAKARA 10화 출연을 시작으로 다시 연기 활동을 하게 되고, 야마시타 쇼온은 동생 레온을 데리고 Sky Corporation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블로그를 시작한 뒤 쟈니스 측에서 뭐 하냐고 고나리를 받은 후 잠시 내릴 수밖에 없었다. 다만, 2010년대 후반 이후 정식 데뷔를 하지 못하고 퇴사한 7ORDER와 아예 LAPONE 엔터테인먼트, HYBE로 이적한 쟈니스 주니어들을 보면 어느 정도는 풀어진 듯하다.

도호쿠 대지진의 피해 지역에 발전차 2대와 전문 스태프, 생수 등을 실은 트럭을 지원했다. 그리고 TOKIO, 아라시, KAT-TUN, Hey! Say! JUMP의 음반 레이블인 제이스톰에서 1억 엔을 적십자사를 통해 기부했다. 전지 9850개(내역: 단1전지 6630개, 단2전지 2160개, 단3전지 1060개), 회중 전등 608개, 방수 시트 120매를 센다이 지역에 지원했다.

11. 한국 관련

한국에서 일반인들의 쟈니스에 대한 이미지는 '일본의 유명 (남성) 아이돌 기획사' 정도다. 물론 일본 연예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일 경우 아예 모를 수도 있지만, 일본 연예계에 관심이 있다면 쟈니스 사무소가 가장 유명한 기획사일 수밖에 없다. 네임드가 있는 다른 대형 기획사들이 잘 없기 때문이다.[39]

그러다보니 일본 아이돌계와 한국 아이돌계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한국의 경우에는 일본처럼 한 대형 기획사가 남자 아이돌계를 거의 독식하는 것이 아닌, 적어도 3~4개 이상의 다수의 대형 연예 기획사가 존재해 경쟁 체제가 꾸려져 있다는 것이다.[40] 성별을 나눠 기획사를 운영하는 것도 일본만의 특성이라, 한국은 그런 거 없다. 그러니 당연히 기획사 팬덤의 성질도 차이를 보인다.[41]

한편, 팬덤 측면에선 한국에서 90년대 후반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뤄진 후 일본 대중문화의 관심이 비교적 높았던 2000년대 초중반에는 일본 최대 아이돌 기획사였던만큼 팬덤의 규모도 상당했으나[42], 그 후 일본 대중문화 자체가 침체기를 겪으면서 예전과 같은 팬덤 활동은 줄어든 편이다. 그나마 2010년대엔 쟈니스 대표 아이돌인 아라시가 정말 한국에선 얼마 남지 않은 일본 대중문화 팬덤의 중심 역할을 했지만[43] 그 아라시마저 2020년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사실 공식적인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뤄지기 전에도 쟈니스 노래가 안 알려졌던건 아니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콘도 마사히코긴기라기니가 한국의 롤러장 등지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2020년대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이 될 정도의 임팩트를 남겼다.
군부정권, 민주정권,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일본 노래는 늘 방송 불가였다. 그런데도 필자가 어린 시절, 그러니까 1980년대를 거쳐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일본 노래는 여기저기서 참 많이 들렸다. 가장 오래된 기억은 '긴기라기니'라는 제목의 댄스곡. 1980년대 일본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린 꽃미남 스타 곤도 마사히코의 노래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대단해서 방송 출연 한 번 없이 바닷가 마을에 살던 꼬마들이 흥얼거릴 정도였다.
기사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곤도 마사히코의 노래 '긴기라기니'가 길거리를 장악하고 갤러그가 한국의 오락실을 점령한 것도 1980년대였습니다. 방송도 일본 것을 베꼈습니다. 일본의 전성기였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전성기는 막을 내립니다. 잃어버린 30년의 시작이었습니다.
기사

1980년대 후반에는 롤러스케이트 퍼포먼스가 인상적인 히카루GENJI가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도를 챙겼다. 그 영향인지 인터넷 시대 들어 히카루GENJI 팬 사이트가 사실상 팀은 95년 이미 해체했음에도 훨씬 시간이 지난 2000년대 후반까지 운영되기도 했다. 또한 당시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KBS 젊음의 행진에서는 그들을 모방한 통크나이(야차)라는 그룹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다만 이 시절에는 인터넷은커녕 개인용 컴퓨터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일본 음악을 쉽게 에서 접할 수 있던 시절은 결코 아니었다. 듣는 음악도 이러니 유튜브도 없던 시절에 보는 음악계인 쟈니스 음악은 더 알려지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이로 인해 일본과 비교적 가까운 부산에 사는 사람 일부나[44] 불법적으로라도 일본 대중문화를 구입할 정도로 관심있는 소수의 매니아들을 제외하면 메이저한 수준은 아니었고, 마이너 가운데서는 메이저한 수준이었다고 보면 된다.

12. 한국 기획사 관련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 한국 아이돌 업계에 영향을 끼쳤다.[45] DSP의 1세대 아이돌 젝스키스가 블랙키스와 화이트키스로 팀을 나눈 바 있는데, 멤버 이재진V6의 콘셉트[46]에서 따온 것이었다고 한다. 또한 주니어 시스템[47], 콘서트의 굿즈로 큰 매출을 올리는 방식, 무빙스테이지라는 연출 기법도 쟈니스가 먼저 시도했다.[48]

다만, 이를 가지고 원조 논쟁을 벌이는 것은 무의미하다. 무대 기법은 결국 서로 영향을 받으며 발전해 가는 영역이며, 또한 앞서 언급한 아이돌들의 운영 방식은 K POP 전체의 운영방식이라 말하긴 어렵다. K POP의 가장 기본적인 운영방식은 미국잭슨 파이브를 만들어 낸 1960년대의 모타운 레코드이 시작이다.[49]

예능 출연의 경우 영향이 있다고 주장하는 측에선 예능 프로에서의 적극적 활동으로 인기를 모으는 성장 루트가 제시되었다고 한다. 쟈니스의 영향이 있기 이전 한국에는 그와 같은 가수의 활동은 찾아볼 수 없다. 단발성 출연이 아닌 대중들한테 이미지를 구축하는 정도의 적극적 활동을 말하는 것이다.
반박하는 측에선 예능 출연은 이전부터 신인 연예인들이 써먹던 흔하디 흔한 홍보 수단일 뿐 이걸 쟈니스랑 엮는건 과장이라 주장한다.

12.1. 연습생 관련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

SM엔터테인먼트의 초기 모델로 꼽히는 기획사는 바로 일본 남자 아이돌 시장의 개척자인 쟈니스 사무소다. 연습생 시스템 도입부터 수년에 걸친 아이돌 육성 프로젝트 'SM 루키즈'까지, 사업 구상의 토대에는 쟈니스가 있었다.
기사
쟈니스사무소는 70~80년대를 거치며 일본 최고의 남성 그룹을 연달아 데뷔시켰다. '쟈니스'가 남성 아이돌을 의미하는 대명사가 될 정도였다. 또한 일본 최초로 연습생 육성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이는 한국 연예산업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기사
그 외 기사기사문헌일본 서적일본 서적

위와 같이 여러 출처를 제시할 수 있다.

"수많은 후보들을 뽑아 회사에 소속시키고 경쟁시키지만, 다수는 오랜 기간이 지나도 데뷔하지 못하다가 결국엔 퇴사하는 결말"의 구조인데, 세계적으로 봐도 특이한 케이스다. 이것을 쟈니스가 시행하여 크게 성공하였고, SM 이수만 사장이 여기에 영향을 받아 한국에서도 해당 구조가 시작됐다.

다만 케이팝만의 경쟁력있는 연습생 시스템으로 발전했고, 이에 오늘날 결과물을 놓고 보면 내용적 측면에서 차이점이 많다.

아래 주장에 대해 반박하면 다음과 같다.

1. 이수만이 직접적 발언을 안했을 뿐 전술한 바와 같이 다수의 기사와 문헌은 연습생 시스템에서의 영향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쟈니스 주니어와 연습생이 개념 자체가 다르다고 하는 발언도 틀렸다. 많은 인원을 오랜 기간 회사에 소속시키고 경쟁시켜, 그 중 소수만 데뷔한다는 핵심 구조가 같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의 아이돌 이전 시대나 모리스 스타가 언제 해당 구조를 사용했다는 말인가? 이런 시스템이 아니었다. 뒤에서 펼친 논리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뉴키즈의 오디션에 수백명이 몰렸다"는 이야기를 써놨는데, 이는 하나 마나 한 당연한 소리다. 그게 아니라 "수많은 후보들을 뽑아 회사에 소속시키고 경쟁시키지만, 다수는 오랜 기간이 지나도 데뷔하지 못하다가 결국엔 퇴사하는 결말"의 구조냐는 것이다. 결국 "본질이 비슷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는데, 그런 수준의 논리를 관철하면 케이팝 특유의 강점조차 "본질은 일본 아이돌이랑 비슷하다"고 평가 절하할 수 있다.

2. 제시한 기사와 문헌을 무작정 뇌피셜 수준이라고 매도하는데, "뇌피셜"이란 단어는 제대로 된 출처를 제시하지 못한 아래 주장이 들어야 할 상황이다. 위 문헌의 경우 해당 내용에 대한 서적 출처가 각주에 적혀있고, 일본 서적의 출처 또한 제시했다.K-POP 新感覚のメディアK-POPはなぜ世界を熱くするのか 다수의 후보를 회사에 소속시키고, 그들이 교육받고 경쟁하며 소수만 데뷔하는 구조에서 영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업계 관련자가 "정확히 이러한 경로를 통해 어떤 부분을 도입했다"라고 왜 말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런 식의 억지 논리라면 세상의 분석 자료 중 태반이 쓸모 없는 것이 된다. 그 정도로 구체적이고 명확한 증언이 있는 것은 희귀한 케이스다.

3. 본 주장은 단순히 쟈니스가 영향을 끼쳤다고 했을 뿐 쟈니스만 유독 부각시켜 영향을 끼쳤다고 한 적이 없다.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영향력이 크다고 말한 적도 없다. "한국에서 연습생 시스템이 시작된데는 쟈니스의 영향이 있었는데, 이후 발전된 결과물을 놓고 보면 내용적 측면에서 차이점이 많다"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것을 서술하면 안되는 내용이라며 전부 다 지워버린 것이 논쟁의 발단이었다.

4. 케이팝이 발전하면서 보인 모습을 말하는건데, 여기다 최초격인 H.O.T. 시절을 이야기해봤자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해당 구조는 사업 규모가 커지니 자연스럽게 따라온 것일 뿐이다"는 주장 또한 근거가 부족하다. 세계로 범위를 넓혀보면 한국 기획사와 규모가 비슷하거나 더 큰 곳들은 많이 존재한다. 그럼 그들 중 대다수가 해당 구조의 모습을 보인다는 말인가?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결국 "영향 자체가 절대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라며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영향이 없다"는 말이 잘못됐다는 것을 시인하는 꼴이다. 애초에 본 주장이 "절대적 영향을 끼쳤다"고 한 적도 없다. 단지 영향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5. 10명 미만의 연습생으로 성공한 회사가 얼마나 되는가? 근데 그런 규모로 잘만 만들고 있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발언이다. 십수명 정도는 상당한 규모고 대형기획사에선 그보다 더 많은 인원을 운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방탄소년단의 경우 기적이라 일컬어지는 예외적 케이스고 그조차 상당한 후보들이 거쳐갔다. 게다가 방탄이 성공하며 돈을 번 이후에는 실컷 다수의 연습생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6. 결론을 보면 "영향이 없다"는 주장을 지키지 못하고 무너진 꼴이다. 결국 "서술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미미한 영향이다"라고 외치는건데, 현실은 다수의 언론 기사와 서적에서 영향이 있다고 서술했다는 것이다. 언급할 가치가 없는 작은 수준이라면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결과물에서 쟈니스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미미한 영향이라 단정짓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다. 영향을 받으며 자체적인 모습을 꽃피우는 사례는 현실에서 많이 존재한다. 서양에서 영향을 받았으니 쟈니스의 영향은 미미하다고 결론내는 것 또한 논리 부족이다. 양쪽에서 모두 영향을 받은 것이 케이팝 업계다.

7. 아래 주장의 최종 결론은 이러했다. "케이팝 연습생 시스템은, 숫자 놀음이 아닌 가수나 하나의 프로젝트가 론칭하기 전에 몇년 전부터 기획사에서 사람을 뽑아서 장기적으로 노래, 춤, 인성, 외국어 등을 교육하는 것". 이에 대해 명확한 반박을 하며 본 논쟁을 정리할 수 있다. 일단 "숫자 놀음"이라고 표현할 수 없다. 한 회사의 많은 연습생들 속에서 뛰어난 결과물이 나왔기 때문이다. 많은 숫자의 연습생이 주요 조건인 것이다.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를 봐도 많은 연습생들이 정신없이 거쳐가며 블랙핑크라는 결과물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많은 연습생들 끼리의 "경쟁"이 주요 조건이었다. 단순히 교육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 부분을 빠뜨린 잘못된 정의다. 정리하면 케이팝 연습생 시스템의 주요 요소는 "많은 수의 연습생을 회사에 소속시킴" "그들끼리의 치열한 경쟁" "교육" "이것들을 몇년에 걸쳐 시행"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요소들을 쟈니스가 옛날부터 시행하고 있었고, 세계적으로 봤을 때 특이한 행태였다는 것이 사실관계다. 교육의 경우 증언이 이러하다. 2023년 10월 1일 방영된 "마츠모to나카이"에서 쟈니스 출신 연예인들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08년 이후 연습생 시절을 거친 나카지마 켄토는 댄스 레슨같은 트레이닝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1980년대 연습생 시절을 거친 나카이 마사히로는 자기들은 제대로 레슨 받았다고 답했다. 즉 한국에 영향을 줬을 시기에는 쟈니스도 교육을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한국은 교육과 경쟁 면에서 시스템을 발전시키며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웠고, 반면 쟈니스는 그 부분에서 오히려 퇴화를 보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2.2. 영향이 없거나 미미하다는 주장

일단 쟈니스가 하는 주니어와 연습생은 개념 자체가 다르다. 위 주장에서 제시한 기사들 중 이것은 SM이 '쟈니스 주니어'라고 불리는 쟈니스의 연습생 제도를 따왔다고 말하는데, 한국에서 말하는 연습생과 주니어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즉, 해당 기사는 오히려 한국 기자들도 둘의 개념을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방증이 되는 기사다. 애초에 한국에서도 아이돌 시대 이전 명칭만 없었다 뿐이지 여러 가수들이 연습생 비슷한 생활을 했다고 증언하고 있고, 이들 중엔 오디션-합숙생활을 거친 댄스가수들도 이미 있었다. 쟈니스와 연결성을 주장하는 자들이 대표적으로 언급하는 이수만의 경우 주니어 시스템은 쟈니스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여러번 언급한 바 있으나 연습생 관련해선 언급한 적조차 없고, 애초에 이수만은 쟈니스보다 본인이 미국 유학 시절 접한 모리스 스타가 기획한 뉴 키즈 온 더 블록 등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받았다고 수차례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이들 역시 오디션-연습생 개념은 당연히 있었다. 즉, 주장의 당사자 본인은 다른 대상을 언급하고 있는데 엉뚱한 쟈니스를 끌고 오는 격.[50]

이러다보니 출처라고 말하는 기사들도 정작 내용은 인과 관계가 정확히 설명이 안되는, 즉 쟈니스란 회사가 먼저 있었고 거기서 어린애들 스카웃해서 연습시키던데 그럼 그거 벤치마킹한거겠지라는 뇌피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흐름이다. 관련 출처들이 의미가 있으려면 정확히 어떤 부분을 벤치마킹했는지[51], 업계 관련자가 정확히 이러이러한 경로를 통해 연습생 시스템의 어떤 부분을 도입했다는지 하는 구절이 하나라도 나올법 하지만 그런 건 없다. 결국 연습생 시스템 자체로는 비빌 여지가 없으니 나오는 말이 많은 후보들을 뽑아 회사에 소속시키고 경쟁시키지만, 다수는 오랜 기간이 지나도 데뷔하지 못하다가 결국엔 퇴사하는 결말이 특이하다는건데, 이건 생각하기 나름인게 이미 아이돌 시대 이전 가수 데뷔 준비생들도 데뷔 준비하다가 결국 계약이 틀어져 연예 활동을 포기하거나 다른 소속사로 이적하는 스토리는 흔하디 흔했다. 그 숫자라는 것조차 애초에 이수만이 처음 데뷔시킨 H.O.T.만 하더라도 처음 연습생 5명이 그대로 데뷔하는 등 1세대는 다수의 연습생이라고 할 것도 없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니 나온 주장이 이후 연습생 숫자가 늘어났지 않느냐는건데, 이건 사업 규모가 커지니 자연히 따라온 것일뿐# 이걸 가지고 무슨 큰 영향을 받았다 운운하는게 논리적으로 과장된 주장이다. 상기한 K팝의 해외 진출 언급마냥 겨우 이런 지엽적인 걸로 원조 따지기엔 연습생 시스템에 끼친 영향 자체가 절대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어느 회사든 사업 규모가 커지면 회사의 연습생 규모는 늘어나는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규모가 커지면서 인턴도 여러명 받았다가 별로인 경우 잘하는 몇명 빼고 내보내는거랑 크게 다를 바 없는건데, 이 논리면 다른 수많은 기업들한테도 이수만이 영향을 받은거라고 주장할 수 있다. 결국 1세대 때부터 직접적으로 들여온 것도 아니고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자연히 따라오는 연습생 늘어난걸로 영향 운운하는거 자체가 주관성이 심하고, 심지어 인정한다 치더라도 무슨 큰 영향력을 끼쳤다고 보기 어려운 주장이다.

오히려 과거를 파면 팔수록 연습생 비슷한 제도는 이미 있었고, 심지어 아이돌 시대에서도 결과물 자체가 다른데 숫자 수준의 지엽적인 부분만 가지고 '연습생 시스템=쟈니스'라는 식으로 쟈니스만 유독 부각시켜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하는건 침소봉대다. 당장 이수만이 직접적으로 영감을 받았다고 증언한 뉴키즈도 수백명의 10대 소년들을 오디션 보고 거기서 9명까지 간추려 연습시키다 또 줄이고 줄여 5명만 데뷔시킨 케이스였다. 즉, 10여명 중 5명 데뷔나 30여명 중 10여명 데뷔나 본질은 비슷한건데, 이게 도대체 무슨 혁신적인 영향이 있다는 것인가? H.O.T.의 벤치마킹 모델은 이미 여러차례 언급된 바 있는 서태지와 아이들과 뉴키즈온더블록이었고, 이시기 운영 방식 역시 서태지와 아이들을 참고한 '앨범 출시와 활동 개시'-'휴지기'-'후속 앨범 발매와 활동 재개'를 순환하는 시스템이었다.

게다가 지금도 K팝 중소기획사들은 여전히 10명 미만 많아봤자 십수명 내외의 연습생이 전부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K팝 아이돌 그룹 잘만 만들고 있다.[52] 즉, 숫자가 많아졌다는 것은 K팝 연습생 시스템에서 무슨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킨 구조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말하는 연습생에 해당하려면 숫자 놀음이 아닌 가수나 하나의 프로젝트가 론칭하기 전에 몇년 전부터 기획사에서 사람을 뽑아서 장기적으로 노래, 춤, 인성, 외국어 등을 교육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는게 더 그럴듯하기 때문이다. 즉, 상기된 논리를 인정하더라도 그 영향이 미미하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다. 애초에 상기한 내용에도 이미 결과물에 차이가 크다는걸 인정하고 있으면서 미미한 영향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심지어 나머지 부분조차도 해당 링크를 보면 알 수 있듯 많은 아이돌 문화는 이미 서양에서 파생된 것이었다.[53]

13. 현재 소속 연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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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Johnny & Associates_logo.png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argin: -2px 0 8px; min-width: 50%"
{{{#!folding [ 소속 아티스트 ]
{{{#!wiki style="margin: 2px -1px -1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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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KIO KinKi Kids 아라시
NEWS SUPER EIGHT KAT-TUN
A.B.C-Z
나니와단시
A에! group
SOLO
하세가와 준 오카모토 케이토
포유 하야시 쇼타 무로 류타
타카다 쇼 테라니시 타쿠토
토미오카 켄토 노자와 유키
}}}}}}}}}}}} ||
현재 쟈니스 사무소 공식 홈페이지에 단독 페이지가 있는 그룹을 정식 데뷔조로 친다. 원래 쟈니스는 CD 데뷔를 해야 데뷔로 취급한다는 인식이 있었으나, 위에서 언급했듯 연기자 데뷔나 DVD 데뷔 등으로 기준이 바뀌었다. 그룹에서의 멤버 배열 순서는 공식 홈페이지에 실린 순서를 따른다.

13.1. 그룹

CD 데뷔 순으로 기재. ☆은 2023년 현재 멤버 변동 없이 활동하는 그룹이다. (아라시는 활동 중지라 제외.)

13.2. 솔로

데뷔 연도는 그룹으로 데뷔 → 솔로 데뷔 순으로 기재한다.

14. 과거 소속 연예인

여성 탤런트는 로 구별하며, 현재 솔로로 쟈니스 사무소에 소속된 연예인은 굵은 글씨로 쓴다.

14.1. 그룹

14.1.1. 해체한 그룹

14.1.2. 퇴소 멤버

14.2. 솔로

그룹으로 정식 데뷔한 적이 없는 솔로 연예인만 여기에 서술한다.

15. 주요 자회사

16. 여담

성이 같은 경우
<colcolor=#2f4f4f> 나카지마 [[Hey! Say! JUMP|{{{#!wiki style="display: inline; margin-left: -1px;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2f4f4f; font-size: .5em"]]
나카지마 유토
[[Sexy Zone|{{{#!wiki style="display: inline; margin-left: -1px;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2f4f4f; font-size: .5em"]]
나카지마 켄토
도모토 [[KinKi Kids|{{{#!wiki style="display: inline; margin-left: -1px;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2f4f4f; font-size: .5em"]]
도모토 츠요시
[[KinKi Kids|{{{#!wiki style="display: inline; margin-left: -1px;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2f4f4f; font-size: .5em"]]
도모토 코이치
사토 [[Sexy Zone|{{{#!wiki style="display: inline; margin-left: -1px;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2f4f4f; font-size: .5em"]]
사토 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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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아츠히로
이름이 같은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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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게오카 다이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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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스케 [[Hey! Say! JUMP|{{{#!wiki style="display: inline; margin-left: -1px;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2f4f4f; font-size: .5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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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모리 유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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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다 유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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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모토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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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세가와 준
카이토 [[Travis Japan|{{{#!wiki style="display: inline; margin-left: -1px;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2f4f4f; font-size: .5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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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쿠라 카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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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하시 카이토
카즈야 [[나니와단시|{{{#!wiki style="display: inline; margin-left: -1px;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2f4f4f; font-size: .5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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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나시 카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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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지마 켄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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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세키 코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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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모토 코이치
코지 [[Snow Man|{{{#!wiki style="display: inline; margin-left: -1px;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2f4f4f; font-size: .5em"]]
무카이 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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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우미 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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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다 타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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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카자와 타츠야

[1] 와타나베 프로덕션에서 독립.[2] 2023년 쟈니 키타가와 연습생 성착취 파문의 여파로 기존 오너 일가였던 후지시마 쥬리 케이코의 사퇴 이후 사장직을 위임받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퇴를 표명하였다.[3] 구 SME 노기자카 빌딩으로 노기자카46의 유래가 된 곳이다.[4] 참고로 한국에서는 연예 기획사라고 하지만, 일본에서는 예능 사무소(芸能 事務所)라고 지칭한다. 연예인도 일본에서는 예능인이라고 한다. 밀접한 관계인 광고 회사도 일본에서는 광고 대리점(広告 代理店)이다.[5] 쟈니 키타가와는 1931년 미국 LA에서 태어나 미국 일본 복수국적이었나 2019년 사망 전인 2014년 미국 국적 포기[6] 현재 쟈니스라는 명칭은 쟈니스 사무소의 약칭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러므로 이 댄스 그룹을 지칭할 때는 보통 초대 쟈니스라고 한다.[7] 허나 포 리브스 역시 후술된 쟈니 키타가와 연습생 성착취 파문의 피해자였다. 항목에도 있지만, 2012년 사망한 멤버 키타 코지는 무려 80년대 후반부터 성학대 사실을 책으로 출판도 하고 언론에도 눈물로 호소했으나 철저하게 묻혔다. 2023년 문제가 터지자 34년만에 절규하는 인터뷰가 방영되었을 정도. 영상.[8] 다만 이 제도가 본격적으로 주목받는건 90년대 들어서다.[9] 쟈니의 조카이자 후계자인 후지시마 쥬리 케이코도 1970년대 당시 여자 연습생 출신이다.[10] 인기 자체는 이후 SMAP이나 아라시 등이 더 뛰어난 감도 있으나, 이들은 실력보단 그룹의 이미지나 캐릭터에 어울리는 멤버들을 뽑아 데뷔시켰다는 느낌이 강했다.[11] 오토코구미는 아주 실패한 건 아니었다. 데뷔 초기 때는 오리콘 차트 1위도 여러 번 차지한 데다 도쿄 돔 공연까지 했을 정도로 나름 인기가 좋았던 아이돌 그룹이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히카루GENJI가 압도적인 인기를 얻는 바람에 전성기가 짧았을 뿐. 해체 이후에는 각자 뮤지션, 배우의 길을 택했고 멤버 중 한 명이었던 나리타 쇼지는 2009년에 대마초 소지 혐의로 체포된 사례가 있었다.[12] 지금에야 일본에서 음악방송이라고 하면 뮤직 스테이션부터 떠올리겠지만, 1980년대 음악방송이라고 하면 위의 세 방송을 가리켰다. 히카루GENJI 등을 비롯한 아이돌의 주된 활동 무대도 이쪽이었다. 뮤직 스테이션은 1986년에 시작된 후발주자로, 시청률 확보에 크게 고전하다가 1988년부터 히카루GENJI가 매주 출연하면서 가족 대상에서 청년 대상으로 노선을 바꾸고 지금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13] 1992년에 SMAP후지 테레비의 '꿈이 MORI MORI'로 첫 레귤러 버라이어티에 출연할 때, 쟈니 사장이 담당 프로듀서에게 “벗는 것만 빼고 뭐든지 시켜도 좋다”고 한 일화는 팬들 사이에서 유명하다.[14] 나카이는 한때 쟈니스 사무소 내 개인 소득 1위의 연예인이었다.[15] 이 방송은 1997년에 '뮤직 점프'를 거쳐, 2000년부터 '더 소년구락부'로 바뀌어 현재에 이른다.[16] 다만 배구 월드컵으로 데뷔한 팀은 2011년 Sexy Zone이 마지막이다.[17] 일본에서는 '파벌'로 불린다. 한국에서도 초기에는 '파벌'이라는 용어가 그대로 쓰였으나, 어감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인지 점차 '라인'이라는 표현으로 굳어졌다. 한국에서 '파벌'이라는 말은 대개 사내정치라는 의미에서만 쓰는데, 쟈니스의 '파벌'은 사내정치보단 매니지먼트 분담이라는 특성이 더 중요한 만큼 표현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18] V6는 애매한 편이었으나, 2014~2015년을 전후해 쥬리 라인으로 분류되었다.[19] Hey! Say! JUMP는 원래 쟈니 라인이었으나, 2013~2014년을 전후해 쥬리 라인으로 분류되었다.[20] 일본의 연예 전문 리포터 이노우에 코조는 2015년 가을 무렵 Kis-My-Ft2야마시타 토모히사가 쥬리 라인으로 넘어갔다고 언급하기도 하였다.[21] 다만, 2020년부터 현지에서 쥬리 라인과 타키자와 라인으로 구별하고 있다. Snow Man과 쟈니스 주니어 유닛 IMPACTors는 타키자와 쪽으로, 쟈니스 주니어 인기 유닛인 나니와단시는 쥬리 쪽이라는 말이 많은 것으로 보아 아직은 쥬리와 타키자와가 밀어 주는 그룹이 서로 다른 흐름인 듯.[22] 2021년 4월 30일을 끝으로 퇴소했다.[23] 더! 철완! DASH!라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24] 다만 오노는 아직 소속사에 적은 걸어 놓고 있다.[25] 다만, 아직까지 스포츠신문에서는 웹 기사에 사진을 쓰기가 어려워서 그룹명으로 대체하고 있다.[26] 쿠사나기 츠요시는 쟈니스로부터의 압력을 직접적으로 견딜 수 있는 NHK 드라마에만 출연하고 있었다.[27] 실제로 쟈니 키타가와의 성착취는 회사를 세우기 전인 1950년 대부터 벌어져 왔다. '왜 죽은 뒤에야 말하느냐'는 일부 관계자들의 2차 가해와 달리 피해자들은 수십년간 폭로와 소송을 벌였으나 쟈니스가 언론과 야합해 묵살해왔고, 그렇게 수십년간 쌓인 피해가 쟈니 사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쟈니스 사무소의 위세가 점점 약해지기 시작한 이제서야 겨우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28] 계약서의 내용은 '을(탤런트)는 갑(쟈니스 사무소)에게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를 포함하는 태양계 전역에서의 예능 창작 활동을 위해 제3자와 협상·협의할 권한을 부여', '을의 예능 창작 활동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저작권법의 모든 권리는 일본을 포함한 전세계를 포함하는 태양계 전역에서 (중략) 갑에 독점적으로 귀속하며 갑은 자유롭게 이용 및 처분할 수 있다', '매출의 75%가 사무소의 분취, 나머지 25%를 멤버 인원수로 배분한다', '계약 파기도 할 수 없다' 등이다. 쉽게 말해 불공정 계약.[29] 이는 미나마타병 배상으로 인하여 핵심 사업부문을 자회사 JNC에 전부 양도하고 피해보상 업무만을 맡게 된 칫소(전 신일본질소비료)의 형태와도 유사하다.[30] 임시 명칭.[31] 실제로 일본의 기획사들은 경영권 및 정보 공개 문제 때문에 비상장 기업이 많다. 호리프로에이벡스, 아뮤즈가 상장 기획사의 대표적 사례.[32] 이후 모리 미츠코와 쿠로야나기 테츠코는 쟈니스 카운트다운 라이브를 비롯한 여러 공연에 게스트 출연하고 있다. 2012년에 모리 미츠코가 사망했을 때, 다수의 쟈니스 탤런트들이 장례식에 참석하였다. 쟈니스 팬들에게는 여러모로 애증의 존재라고 할 수 있을 듯.[33] 후지시마 타이스케에게는 원래 아내가 있었으나, 요쓰야의 바에서 메리와 눈이 맞아 쥬리를 낳은 뒤 이혼하였다. 덧붙여 소설가 외에 보수 우익 성향의 사회 평론가로도 활동했다. 1974년에 시인 김지하가 군사정권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자 일본 팬클럽 대표로 내한해 그의 사형 선고는 문학 활동이 아니라 정치 활동 때문이라고 발언하여 일본 팬클럽이 뒤집어진 적도 있었다고. 1997년에 암으로 사망.[34] 2000년대 초반 아라시는 스캔들과 캐릭터 변화로 혼란을 겪었으며, NEWS는 사건사고와 멤버 탈퇴가 이어졌다. 그래서 이후 데뷔한 Hey! Say! JUMPSexy Zone 등은 쟈니 사장이 직할하였는데, 항간에는 이를 두고 쟈니 사장이 쥬리 부사장에게 실망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하였다.[35] 야마시타 타츠로타케우치 마리야의 소속사. 쟈니스 계열사는 아니다.[36] 쟈니스 사무소는 원래 여성을 매니저나 스타일리스트로 쓰지 않는다. 여성 직원은 있지만 모두 사무직이며, 쟈니스 탤런트와 같이 일하는 여성 스타일리스트는 모두 외주직원.[37] 이 사건으로 한때 “이이지마를 불러(飯島を呼んで)”라는 말이 인터넷에서 유행하기도 하였다.[38] 그래서인지 SMAP은 쟈니스 내 타 그룹과 접점이 적은 편이다. 그나마 Kis-My-Ft2Sexy Zone이 데뷔하고 이이지마가 미디어 스케줄을 맡으면서 같이 방송에 출연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39] 아키모토 야스시 계열은 말 그대로 야스시 사단이라고 불리며 소속사보단 팀명인 XX48, XX46이 더 유명하고, 이 둘이 남녀 아이돌 그룹을 오랜기간 독식한게 일본 아이돌 산업이다보니 나머지 기획사는 클 여지가 적기도 했다.[40] 2000년대 들어 2세대 아이돌들이 여러 면에서 독창적인 면모가 돋보인 것도, 1세대 1,2개 기획사가 주도하던 흐름에서 벗어나 YG, JYP, HYBE 등 젊은 감각의 회사들이 크면서 다변화된 대형 기획사들이 각자의 색깔을 가지고 경쟁 체제를 꾸린 점이 한몫했다.[41] 한국 걸그룹이 여성 팬이 상당한 것도, 기획사 자체 팬덤이 있기 때문도 있다. 어떤 그룹 좋아해서 그 그룹 보려고 해당 기획사 연습생 됐다는 식의 일화도 생각보다 흔한 편.[42] 다만 초난강의 사례를 봐도 대중적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그래도 매니아 문화 측면에선 홍콩영화의 인기가 쇠락하면서, 팝 문화(와 절대치로는 좀 차이가 많이 나긴 했지만) 다음가는 영역이긴 했다.[43] 그래서인지 아라시가 나오는 일본 여행 홍보 CF를 한국에서 방영한 적도 있었다.[44] 날씨에 따라선 대마도쪽에서 전파가 넘어와 일본 방송을 접할 수도 있었다고 한다.[45] 음악의 경우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 어렵다. 오늘날 K-POP이라 불리는 한국 아이돌 음악의 시초는 쟈니스류 음악과는 거리가 먼 서태지와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쟈니스류 음악은 이전 소년대를 모방한 흔적이 있는 소방차에서 그 느낌을 엿볼 수 있다.[46] V6은 연장조를 토니센(20th century), 막내조를 카미센(Coming Century)으로 나눴다.[47] SM의 루키즈 시스템이 이 콘셉트를 따온 것이다. 다만 보이그룹에서는 2000년대 슈퍼주니어에 도입하려다 실패한 이후 2010년대 NCT에선 비교적 성공적으로 적용되었으나, 걸그룹에서는 SM 루키즈 출신들이 1명을 제외하고 타 소속사로 가거나 연예활동을 은퇴하는 등 실패하면서 사실상 폐지의 기로에 놓인 상황이다.[48] 무빙스테이지를 처음 고안한 것은 아라시마츠모토 준이며, 명칭을 지은 것은 오노 사토시. 일본에서의 사용 권한은 쟈니스에게 있다.[49]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모타운은 프로모션과 음반 제작을 통해 활동을 도왔고 실질적인 잭슨 파이브의 제작자는 그들의 아버지였다. 잭슨 파이브는 모타운으로 소속되기 이전에도 활동하면서 유명세를 얻고 있었다.[50] 결국 아라시 논란 항목에도 있지만 K팝에 쟈니스가 얼마나 영향을 줬냐는 여러 갑론을박이 있고, 상기했듯 명확히 영향을 받거나 안받은 것이 나눠지는 분야가 있는 반면, 두루뭉실한 경계선에 걸쳐있는 분야들도 있다보니 이런 논쟁도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51] 심지어 출처라고 제시하는 기사들조차 숫자가 많고 어쩌고 하는 말은 하지도 않는다. 즉, 영향이 있었다고 언급하는 정도지 그 영향이 정확히 무엇인지, 또 그게 업계에 끼친 영향력의 크기는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52] 이런 구조에서 탄생한 그룹이 오늘날 K팝 글로벌화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방탄소년단이다.[53] 북미 뿐만 아니라 남미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졸업시스템을 처음 도입한 보이그룹 메누도가 대표적.[별도] 그룹은 그대로 소속사를 유지한 채 활동하며 개인 활동은 사무소를 퇴소하여 개인 소속사를 갖는다[별도] [56] 상대적으로 많이 방문했지만, 팬들이 애원하는 만큼 오진 않았다. 멤버인 사쿠라이 쇼가 NEWS ZERO 때문에 한국에 몇 번 방문했지만, 아무도 모르게 방문 후 돌아갔다.[57] 한국에 많이 방문해서 팬이 많다기보단 멤버 마츠모토 준이나 니노미야 카즈나리 등 멤버들이 유명한 일본 드라마에 많이 출연하기 때문에 그로 인해 알게 되거나 입덕을 하게 된다. 마츠모토 준고쿠센, 너는 펫, 꽃보다 남자 등이 대표적. 2010년에는 일본관광청 홍보 모델로 한국 지상파 방송에 CF로 등장하기도 했다.[58] 트위터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면 그룹 이름은 몰라도 한 번쯤 봤을 콘서트 영상. “일본의 콘서트 연출력이 궁금하다면 아라시 콘서트를 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59] 실제로 멤버들이 코미디언 못지 않은 입담을 선보이고 있다.[60] 멤버들이 악기를 잘 다루며, 콘서트와 음악 프로그램에서 밴드 세션을 선보이는 경우가 많아 TOKIO 이후 밴드 콘셉트 그룹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연차가 찬 뒤 콘서트 개최시 아예 후반부는 밴드세션으로 쭉 달린다.[61] 일본어로 BUSAIKU(부사이쿠)는 추남을 뜻한다.[62] 배우 쿄모토 마사키의 아들.[63] Hey! Say! JUMP 前 멤버 모리모토 류타로의 동생.[64] KAT-TUN 前 멤버 타나카 코키의 동생.[65] 데뷔 결정은 쟈니 사장 생전에 결정[66] 2001년 타키자와 히데아키이마이 츠바사의 각각의 솔로 데뷔가 발표난 적은 있지만, 후에 두 사람이 합의하여 타키&츠바사로 함께 데뷔했다.[67] 최근 쟈니스 사무소는 연예인으로서 활동이 적은데, 급료는 많이 가져가는 베테랑급의 소속 탤런트들(이들은 1980년대~1990년대 초반에 메인으로 활동했고, 현재의 쟈니스사무소를 만드는데 공로가 있기 때문에, 활동이 많이 줄었다고 해도 공로자로서 대우를 받았다.)을 내보내려는 방침을 두고 있다. 오카모토가 계약형태를 바꾼 건 이러한 배경으로 추정된다. #[68] 그룹이나 홈페이지 상에서는 솔로로 분류되어 있다.[69] 한국나이 33세에 승격이라 쟈니스 대기 만성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70] Hey! Say! JUMP 오카모토 케이토의 아버지[별도] 그룹은 그대로 소속사를 유지한채 활동하며 개인 활동은 사무소를 퇴소하여 개인 소속사를 갖는다.[72] SixTONES 타나카 쥬리의 형.[별도] [74] SixTONES 모리모토 신타로의 형.[75] rock을 '락'으로 읽느냐 '록'으로 읽느냐와 같은 경우. 한국에서도 외래어 표기법상으로는 영국식 발음을 우선한다.[76] 참고로 노기자카 빌딩은 SME산하 걸그룹인 노기자카46의 이름이 된 소니뮤직의 유서 깊은 사옥이었으나, 현금유동성을 위해 SME이치가야빌딩(市ヶ谷ビル)과 함께 매각이 발표되었고 이후 노기자카 빌딩은 쟈니스가 구입한 것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쟈니스가 구입한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대략 5-60억 엔 정도로 일본언론은 추산했다.[77] 무라카미 싱고는 취득 사실이 알려졌으나, 급수가 불분명.[78] 아이바 마사키도 취득했으나, 갱신하지 않아서 만료되었다.[79] 니노미야 카즈나리(二宮 和也)와 카메나시 카즈야(亀梨 和也)&오오하시 카즈야(大橋 和也)의 경우 한자는 같지만, 읽는 법이 다르므로 제외.[80] 오카모토 켄이치와 오카모토 케이토는 부자 관계이므로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