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6-08-18 02:58:49

친박


파일:다른 뜻 아이콘.svg  
#!if 넘어옴1 != null
''''''{{{#!if 넘어옴2 == null
{{{#!if 넘어옴1[넘어옴1.length - 1] >= 0xAC00 && 넘어옴1[넘어옴1.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1[넘어옴1.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1[넘어옴1.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1[넘어옴1.length - 1] < 0xAC00 || 넘어옴1[넘어옴1.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2 != null
, ''''''{{{#!if 넘어옴3 == null
{{{#!if 넘어옴2[넘어옴2.length - 1] >= 0xAC00 && 넘어옴2[넘어옴2.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2[넘어옴2.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2[넘어옴2.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2[넘어옴2.length - 1] < 0xAC00 || 넘어옴2[넘어옴2.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3 != null
, ''''''{{{#!if 넘어옴4 == null
{{{#!if 넘어옴3[넘어옴3.length - 1] >= 0xAC00 && 넘어옴3[넘어옴3.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3[넘어옴3.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3[넘어옴3.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3[넘어옴3.length - 1] < 0xAC00 || 넘어옴3[넘어옴3.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4 != null
, ''''''{{{#!if 넘어옴5 == null
{{{#!if 넘어옴4[넘어옴4.length - 1] >= 0xAC00 && 넘어옴4[넘어옴4.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4[넘어옴4.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4[넘어옴4.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4[넘어옴4.length - 1] < 0xAC00 || 넘어옴4[넘어옴4.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5 != null
, ''''''{{{#!if 넘어옴6 == null
{{{#!if 넘어옴5[넘어옴5.length - 1] >= 0xAC00 && 넘어옴5[넘어옴5.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5[넘어옴5.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5[넘어옴5.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5[넘어옴5.length - 1] < 0xAC00 || 넘어옴5[넘어옴5.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6 != null
, ''''''{{{#!if 넘어옴7 == null
{{{#!if 넘어옴6[넘어옴6.length - 1] >= 0xAC00 && 넘어옴6[넘어옴6.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6[넘어옴6.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6[넘어옴6.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6[넘어옴6.length - 1] < 0xAC00 || 넘어옴6[넘어옴6.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7 != null
, ''''''{{{#!if 넘어옴8 == null
{{{#!if 넘어옴7[넘어옴7.length - 1] >= 0xAC00 && 넘어옴7[넘어옴7.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7[넘어옴7.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7[넘어옴7.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7[넘어옴7.length - 1] < 0xAC00 || 넘어옴7[넘어옴7.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8 != null
, ''''''{{{#!if 넘어옴9 == null
{{{#!if 넘어옴8[넘어옴8.length - 1] >= 0xAC00 && 넘어옴8[넘어옴8.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8[넘어옴8.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8[넘어옴8.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8[넘어옴8.length - 1] < 0xAC00 || 넘어옴8[넘어옴8.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9 != null
, ''''''{{{#!if 넘어옴10 == null
{{{#!if 넘어옴9[넘어옴9.length - 1] >= 0xAC00 && 넘어옴9[넘어옴9.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9[넘어옴9.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9[넘어옴9.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9[넘어옴9.length - 1] < 0xAC00 || 넘어옴9[넘어옴9.length - 1] > 0xD7A3
은(는)}}}}}}}}}{{{#!if 넘어옴10 != null
, ''''''{{{#!if 넘어옴10[넘어옴10.length - 1] >= 0xAC00 && 넘어옴10[넘어옴10.length - 1] <= 0xD7A3
{{{#!if ((넘어옴10[넘어옴10.length - 1] - 0xAC00) % 28) == 0
는}}}{{{#!if ((넘어옴10[넘어옴10.length - 1] - 0xAC00) % 28) != 0
은}}}}}}{{{#!if 넘어옴10[넘어옴10.length - 1] < 0xAC00 || 넘어옴10[넘어옴10.length - 1] > 0xD7A3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if 설명 == null && 리스트 == null
{{{#!if 설명1 == null
다른 뜻에 대한 내용은 아래 문서를}}}{{{#!if 설명1 != null
{{{#!html 친박정희계}}}에 대한 내용은 [[박정희계]] 문서{{{#!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를}}}{{{#!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의 [[박정희계#s-|]]번 문단을}}}{{{#!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의 [[박정희계#|]] 부분을}}}}}}{{{#!if 설명2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를}}}{{{#!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3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를}}}{{{#!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4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를}}}{{{#!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5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를}}}{{{#!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6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를}}}{{{#!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7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를}}}{{{#!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8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를}}}{{{#!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9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를}}}{{{#!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의 [[#|]] 부분을}}}}}}{{{#!if 설명10 != null
, {{{#!html }}}에 대한 내용은 [[]] 문서{{{#!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를}}}{{{#!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의 [[#s-|]]번 문단을}}}{{{#!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의 [[#|]] 부분을}}}}}}
#!if 설명 == null
{{{#!if 리스트 != null
다른 뜻에 대한 내용은 아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if 리스트 != null
{{{#!if 문서명1 != null
 * {{{#!if 설명1 != null
친박정희계: }}}[[박정희계]] {{{#!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문서의 [[박정희계#s-|]]번 문단}}}{{{#!if 문단1 == null & 앵커1 != null
문서의 [[박정희계#|]] 부분}}}}}}{{{#!if 문서명2 != null
 * {{{#!if 설명2 != null
: }}}[[]] {{{#!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2 == null & 앵커2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3 != null
 * {{{#!if 설명3 != null
: }}}[[]] {{{#!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3 == null & 앵커3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4 != null
 * {{{#!if 설명4 != null
: }}}[[]] {{{#!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4 == null & 앵커4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5 != null
 * {{{#!if 설명5 != null
: }}}[[]] {{{#!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5 == null & 앵커5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6 != null
 * {{{#!if 설명6 != null
: }}}[[]] {{{#!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6 == null & 앵커6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7 != null
 * {{{#!if 설명7 != null
: }}}[[]] {{{#!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7 == null & 앵커7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8 != null
 * {{{#!if 설명8 != null
: }}}[[]] {{{#!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8 == null & 앵커8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9 != null
 * {{{#!if 설명9 != null
: }}}[[]] {{{#!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9 == null & 앵커9 != null
문서의 [[#|]] 부분}}}}}}{{{#!if 문서명10 != null
 * {{{#!if 설명10 != null
: }}}[[]] {{{#!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문서의 [[#|]] 부분}}}}}}

{{{#!wiki style="margin:-10px"<tablebordercolor=#c9252b,#c9252b><tablebgcolor=#c9252b,#c9252b> 파일:박근혜 투명.svg박근혜
관련 문서
}}}
<bgcolor=#fff,#1c1d1f>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C9252B,#C9252B> 일생 일생 ·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 · 심판) · 구속 · 재판
가족 틀:박정희 가문
18대 대선 제18대 대통령 선거 · 박근혜 정부 · 장단점 · 선거송
비판 비판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 자질 · 개인처신 (발언 문제) · 역사관 · 사이비 종교 논란 · 민주주의 후퇴 · 박근혜와 최태민의 부적절한 관계 · 박근혜 편지 사태 · 중국 전승절 참석 논란 · 세월호 7시간
사건 사고 사건 사고 · 박근혜 커터칼 피습 사건 · 박근혜 5촌 살인사건 · 국정원 게이트 (대북공작금 유용 사건 ·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 · 사법농단 의혹 사건 ·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 MBC 블랙리스트 사태)
지지 세력 친박(진박 9인회 · 삼성동계) · 박사모 · 박근혜 키즈
별명과 밈 별명 · 박근혜 화법 · 어록 · 줄푸세 · 살려야한다 · 속아만 보셨어요 · 그래서 대통령 되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 대통령직을 사퇴합니다 · 우리의 핵심 목표는 이것이다 ·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 길라임 · 이명박근혜 · 이 쳐죽일 역적년놈들 다신 정치못한다 · 근혜산성
기타 자택 · 지지율 · 여담 · 육영재단 · 정수장학회 · 신뢰의 리더십 박근혜 · 박근혜는 할 수 있다! · 진박 감별사 · 문고리 3인방
별도 문서가 없는 평가 및 논란은 해당 주제 관련 문서 참고
박근혜 정부와 관련된 문서는 틀:박근혜 정부 참고
}}}}}}}}} ||
친박계
친박근혜계 | 親朴槿惠系
Pro-Park Geun-hye Faction
<colbgcolor=#C9252B,#C9252B> 형성 <colbgcolor=#fff,#1c1d1f>1998년
해체 2025년[1]
수장 박근혜
주요 정치인 유영하
조원진
이정현
민경욱

최경환
서청원
홍문종
서병수
정우택
김태흠
이장우
황우여
김재원
유정복
한광옥
윤상현
추경호
권영세
김진태
황교안
김문수
[2014~]
박대출
조지연
홍사덕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계파의 정당 역사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한나라당
한국미래연합 한나라당
한나라당
한나라당 미래한국당
친박연대
미래희망연대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자유한국당 새누리당
새누리당 대한애국당
우리공화당
자유공화당 친박신당
미래통합당 우리공화당
국민의힘
해체 }}}}}}}}}

1. 개요2. 명칭3. 성향4. 역사5. 구성원
5.1. 탄핵 이후 2024년까지 명단
5.1.1. 수장5.1.2. 진박 9인회5.1.3. 삼성동계5.1.4. 그 외 간부급 인사들5.1.5. 기타 인사들
5.2. 구 친박 명단
6. 진박? 진실?
6.1. 기타 진박(?)
7. 비판8. 문제점
8.1. 법치주의 훼손
8.1.1. 탄핵 부정
8.2. 폭력 시위/집회8.3. 가짜뉴스8.4. 맹목적인 반이명박 성향
9. 존속 여부10. 관련 문서11. 둘러보기

1. 개요

親朴槿惠系(친박근혜계) / Pro-Park Faction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박근혜, 넓게 보면 제5-9대 대통령 박정희와 그 가문을 따르는 세력을 일컫는 말이다.

1990년대 후반에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로 세력이 커지기 시작했고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때부터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이전까지는 보수정당내 가장 강력했던 계파였다.

박근혜가 처음으로 비대위원장이 된 2004년부터 두 번째로 비대위원장이 된 2011년까지 친이와 함께 보수세력을 양분하던 계파였고, 그 이후부터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2016년까지는 보수세력의 절대적 주류계파로 군림하였다. 삼김시대가 사실상 끝났던 16대 대선부터 지금까지 통틀어 진영을 막론하고 이 계파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계파는 존재하지 않는다.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으로 파면 이후 수장이던 박근혜가 구속되고 21대 총선을 거치면서 그 세가 많이 줄었지만, 21대 국회(2020~2024)까지만 해도 정계 요직의 각종 보수층 인사들이 전직 대통령 예방 과정 등을 통해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고 있고 박근혜에 대해 우호적인 정치인도 여전히 존재했다.[3] 그러나 제22대 국회(2024~)에 접어든 시점에서 보면 한동훈의 박근혜 예방을 위해 공천되고 당선된 유영하를 제외하면 하술되는 전원이 정계 개편으로 각자의 변화된 지형에서 다른 권력에 흡수되고 자진 합류하거나 정계를 은퇴한 뒤 야인 신세가 되었다.

무엇보다 박근혜 본인이 2023년 9월 인터뷰를 통해 정치적 친박은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은 밝히면서 친박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시기부터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시기 때까지 대한민국의 극우를 비롯한 강경보수의 정치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 중에서 12.3 내란 이전까지 가장 높은 파이를 차지 하고 있었다고 평가받으며[4] 비판자들에겐 중도층과 무당층에게 버림받은 '보수 몰락을 자초한 주범'이라고 비판받는 세력 내지 어둠의 진보[5][6]라는 별명 역시 갖고 있다. 실제 이들은 '박근혜의 호위 무사, 내시, 십상시[7], 간신'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후, 이 '보수 몰락을 자조한 주범'의 포지션은 상술한 12.3 내란으로 인해서 친윤이 그대로 답습하는데, 심지어 친박 내부의 온건파들이 반발해서 별도의 계파인 친유친무 등으로 이탈 및 분열된 것처럼 친윤도 내부 온건파들이 한동훈계로 분열된 것까지 일치한다.[8]

2. 명칭

2007년에서 2013년까지 한나라당, 새누리당 시절 친박과 계파 갈등을 벌인 대표적인 계파로 친이(親李)계가 있었다. 그러다 2013년에 박근혜 정부 들어 친이계 세가 줄면서 친박과 반대되는 세력들은 친이까지 포함한 비박(非朴)계로 불렸다. 특히 비박 중에서도 박근혜를 적대시하던 사람들은 반박(反朴)이라고 불렀다.

대표적인 반박 인사로는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정두언, 김용태 전 의원 등이 있었다. 지역적으로 보면 주로 수도권이나 부울경에 반박 인사들이 많았다. 부울경 지역구의 반박 인사로는 하태경, 장제원, 김세연 의원 등이 꼽힌다.

친박계가 몇 년 동안 유지되면서 별별 '박'들이 많이 생겼는데,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이었다가 이를 벗어난 탈박(脫朴)[9], 박근혜에게 찍힌 사람들은 찍박, 친박에서 비박으로 돌아섰다 회개(?)를 하여 용서를 받고 다시 돌아온 인물을 돌박 혹은 복박(復朴)[10], 이외 친박이었다가 짤리거나 멀어진 사람을 이르는 '짤박', '멀박'[11], 친박이지만 홀대 받는 사람을 이르는 홀박(忽朴) 등이 있다. 광의의 친박계를 가리키는 범박(汎朴), 박근혜를 옹위하는 옹박(擁朴), 원조(元祖) 친박계를 가리키는 원박(元朴),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새로 친박계에 영입된 사람들을 두고 신박(新朴)이라 부르기도 했다. 또 박 대통령이 2015년 진실한 사람이란 표현을 쓴 이후 20대 총선에선 '진실한 친박' 또는 '진짜 친박'이란 느낌의 '진박(眞朴)\'이라는 용어도 나와 각종 풍자 대상이 되기도 했다. 진박이라는 말이 등장할 때 거기에 반대되는 가짜 친박을 의미하는 가박(假朴), 박근혜를 이용만 하는 이들을 의미하는 용박(用朴) 같은 용어들이 추가되기도 하였다. # #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2017년 3월 10일 탄핵이 인용되면서 구심점을 상실한 쪽박이 되었다. 탄핵소추 이후 인용까지, 집회를 통해 친박을 지원하며 탄핵에 반대하던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삼성동계탄기국이다.

이후 이들은 2020년까지도 각종 시위, 집회를 끈덕지게 하며 반탄핵, 반정부 운동 등을 펼쳤으나, 고작 4년 만에 자기들끼리도 내부 분열이 일어나 찢어지고 가장 큰 보수정당이라 할 수 있는 자유한국당 내에선 엄연히 친박계였음에도 대중들에게 찍혀있다 보니 친박색을 대놓고 드러내진 못하는 편이었다.

그나마 2019년 2.27 자유한국당 전당 대회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선출되어 친박계도 친황계로 바뀌는 거 아니냔 말이 나오기도 했으나,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패하며 죄다 물갈이되었다. 심지어 극렬 친박 부대는 비례대표 득표율도 처참해서 죄다 원외정당으로 쫓겨났다.

정치인 뿐 아니라 박근혜 지지자들과 그 집단들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사용 중이다. 언론에서 박근혜 탄핵에 대해 반대를 표방하는 집단들과 지지자들에 대해서 친박 단체라는 표현을 하고 있고, 이들의 시위에 대해 친박 집회라고도 언급한다.

3. 성향

비박계에 비해선 아무래도 좀 우경화되었다고 평가받는다.[12] 물론 친박이라고 무조건 극우적인 인사만 있는 것은 아니고 중도적인 성향도 있긴 하겠지만 비율상 적은 편. 정치적 입지를 따지면 1990년 3당 합당 이전의 3당 중에서 상도동계를 제외한[13] 민정계[14]공화계[15]의 후예라고 볼 수 있지만, 서청원한광옥 같은 상도동계, 동교동계 출신 인사들도 소수 있긴 했다.[16][17]

다만 이들은 계파가 이어졌다고 평가받진 않는다. 상도동계도, 민정계도, 공화계도 아닌 박정희 개인에서 갈라진 독자적인 계파에 가깝다. 2000년대 이후의 민정계와 공화계는 당적만 민주정의당과 신민주공화당이었지 군사정권에 대한 구설수가 거의 없고, 오히려 신민주계나 비박계로 갔거나 친박계 원로그룹으로 가는 등 뿔뿔이 흩어져 계파가 분해된 것에 가깝다.[18]

친박계는 박근혜의 정계 입문 이후 2000년대에 한나라당에 입당했거나 기존의 상도동계, 민정계, 공화계 일부가 전향한 인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친이계를 포함한 비박계가 상도동계의 인물이나 이념을 계승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사실 친박은 정치적 성향상의 분류로 만든 계파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솔직히 이념보다 더 중요한 게 박근혜 일가와의 친분 및 정치적 관계였다. 때문에 친박의 정치적 포지션은 구심점인 박근혜와 그 측근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꽤나 바뀌어왔다.[19][20]

기존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박근혜에게 일정한 정치적&물질적 이득을 제공하고 충성을 다하냐 여부가 더 중요했던 것. 다만 이렇게 이념상 엇갈림이 심한 인사들은 결국 얼마 안 가 박근혜와 척을 지게 되는데, 애초에 이념이 아닌 특정 인물 중심의 친X이라는 계파명을 창조한 한국 언론이 이런 사태를 야기한 주범 중 하나라고 볼 수도 있다.

4. 역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친박/역사 문서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친박/역사#s-|]]번 문단을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if 문서명 = 문서명 != null ? 문서명 : calleeTitle
의 [[친박/역사#|]]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 구성원

일단 친박 중에서도 정치 생명을 박근혜 대통령과 끝까지 함께 한 인물도 있고, 박근혜 정권 도중에 정권을 비판하며 거리가 멀어진 인물도 있으며, 애매하게 퇴임 이후 색이 옅어진 의원도 있으므로 다 같은 친박으로만 묶기에는 그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는 것은 참고하자.

친박계는 자유한국당의 모 관계자의 인터뷰에 따르면, 박근혜라는 왕 밑에 철저한 계급사회로 나눠져 있으며, 같은 등급들이 끼리끼리 놀며, 계급을 초월한 소통은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한다. 원로그룹, 1등급, 2등급, 3등급으로 구분되며, 탈박 인사[21]친이 인사[22]는 역적, 불가촉천민 취급 당한다.[23] 원로그룹은 1920년대~1940년대 생 원로 고령 정치인들이고[24] 1등급은 재선~5선 그룹[25], 2등급은 초~3선 그룹,[26] 3등급은 수석비서관, 초선 의원들로 구성되어 있다.[27] 기사에도 대략적인 내용이 나와 있다.

2016년 기준 무소속 서청원(8선) 의원이 맏형, 비리로 구치소에 수감된 최경환(4선) 의원이 계파의 좌장으로 불린다. 다만 이들의 실제 영향력이 가장 크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현재 친박계 중에서 당 내 서열이 가장 높고 주류이기 때문에 맏형, 좌장 취급해 주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뒤늦게 밝혀진 바에 따르면 청와대에서 20대 총선을 앞두고 '서청원=공천 탈락'으로 밀고 가려고 했다가 김무성 대표가 옥새런을 시전하면서 겨우 막았을 정도. 참고로 서청원 의원은 20대 국회 기준으로 무려 8선 의원으로 현역 국회의원들 중 최다선이다.[28]

전직 국회의원 중 친박계의 본진인 주요 인사로는 위의 서청원 의원(8선), 최경환 의원(4선), 홍문종 의원(4선), 유기준 의원(4선), 정우택 의원(5선)[29], 원유철 의원(5선)[30], 정갑윤 의원(5선)[31], 김광림 의원(3선), 김재원 의원(3선)[32], 김선동 의원(재선)[33], 이장우 의원(재선), 김태흠 의원(3선), 김진태(재선), 정종섭 의원(초선)이 있으며, 현역 의원 중에서는 윤상현 의원(5선)[34] 등이 있다. 여성 정치인 중에서도 김정재 의원(3선)과, 신연희강남구청장(재선) 등이 있으며 탄핵 표결에서도 반대표를 던지거나 상대 대선 후보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올려 검찰에 입건되기도 하는 등 악명 높게 극우적인 성향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의외인 경우로 바둑기사 출신인 조훈현 의원(초선/비례대표)도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에 이름을 올리거나 표창원 리스트에 작성되거나 하는 둥 친박을 넘어 진박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35]

자유한국당 외부에서 활동하는 친박인사로는 친박계 맏형 서청원(8선), 이정현(3선) 전 대표들이 있다. 이정현은 대통령 탄핵 가결의 책임을 지고 2017년 연초에 탈당했으며, 21대 총선을 앞두고 순천시를 떠나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을에 출마했으나,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후보에는 물론이고 미래통합당 박용찬 후보에도 밀려 3위로 낙선했고, 최근에 국민의힘에 복당했으며,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전라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했지만 더불어민주당 김영록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또 서청원은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18년 재보궐선거 패배의 여파에 따라 탈당하였고,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자유공화당에 들어갔고, 이후 우리공화당으로 당명 변경 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우리공화당 비례대표 2번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하였고[36], 현재는 우리공화당 상임고문이다.

한편 진박 감별사 조원진 의원(3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자, "자유한국당은 보수정당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새누리당[37]에 입당해서 아예 제19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출마했으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는 물론이고, 그 당시 다른 원내정당 후보들[38]에도 밀려 6위로 낙선했으며, 박사모 계열과 다투고 갈라섰고, 대한애국당을 창당해 당대표가 되었다. 조원진 계열이 빠진 새누리당은 박사모 세력(정광용, 정광택)만이 남은 원외정당이 되었다. 이후 홍문종 의원(4선)이 자유한국당을 탈당하여 조원진과 손을 잡았으나, 불화로 틀어지며 다시 갈라선 상황.[39]

은퇴한 인사로는 이한구 전 의원(4선)[40], 이완구국무총리(재선), 홍사덕 전 의원(6선) 등이 주요 친박계 인사들로 꼽혔었다. 또한 참모진으로 있었던, 허태열(3선), 이병기 전 비서실장[41]이 있다. 또 동교동계의 중진이었으나 2012년 대선 당시 민주당계와 연을 끊고 친박으로 넘어와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비서실장이 된 한광옥 前 비서실장(4선)[42]이 있다.

20대 총선에 불출마하거나 낙선한 인사로는 김태호(4선)[43], 이인제 전 의원(6선)[44]이 있다. 이들은 원유철 의원처럼 예전에는 친박계 인사로 꼽히지 않았으나, 2015년 유승민 사태 이후 소위 신박으로 분류되었고, 희한하게도 얼마 안 되어 다 일선 정치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일단 이인제 전 의원은 여전히 친박계로서 개인 통산 세 번째 대선 출마 선언 등의 활동을 비밀리에나마 하고 있으며,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충청남도지사에 출마했지만 낙선했고, 이후로는 나이도 있고 해서 정계를 사실상 은퇴하며 잊혀졌다. 김태호 전 의원은 조용히 저술 활동을 하면서 살고 있다가 경상남도지사 전략공천을 받아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나섰지만,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이라는 변수에도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후보에게 패배하여 다시 잠시 야인이 되었었다. 그래도 이 쪽은 21대 총선에서 당선되면서 돌아오기는 했다.

친박 성향의 광역자치단체장들으로는 유정복인천광역시장, 서병수부산광역시장, 김관용경상북도지사가 있었으나, 김관용 지사는 3선 제한과 77세의 고령이라는 점이 있어 2018년을 끝으로 정계 은퇴 수순을 밟았고, 유정복은 시정을 통해 그럭저럭 채무삭감이라는 성과를 남긴 채 2018년에 재선에 도전했지만, 하필 7회 지선을 앞두고 같은 당 국회의원인 정태옥이부망천 발언이 터지면서 크게 패배했다.[45] 또한 서병수는 시정에 대한 부산시민의 비토가 컸고, 엘시티 비리 연관설이 도는데도 공천을 받았으나, 당연히 낙선했다.[46] 그나마 이철우 경상북도지사권영진 대구광역시장이 당선되었지만, 이철우는 중립, 권영진은 舊 친이로 모두 친박계는 아니다. 그래도 시간이 흘러 정우택2022년 3월 재보궐선거에서 5선 의원에, 유정복, 김진태, 이장우, 김태흠 모두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통하여 각각 인천광역시장, 강원도지사, 대전광역시장, 충청남도지사에 당선되었다.

원외인사로는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가 있었으나, 유일호 전 부총리는 사실상 정계를 떠났다.[47]

정진석 전 원내대표도 과거엔 친박으로 꼽혔지만,[48][49] 당선 이후 계파 갈등을 봉합한다고 스스로 낀박을 자처하며 여러모로 비박계 손을 많이 들어주어 친박 지도부와 거리를 뒀다.[50] 그리고 2016년 12월 탄핵 사태에 책임을 지고 원내대표를 사임했다. 1월 말엔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황교안 국무총리의 대선 출마설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아예 19대 대선 후에는 친박계 인사들을 육모방망이로 두들겨야 된다고 맹비난하면서 비박으로 입장을 확실히 바꿨다.

한선교 의원의 경우는 2008년에 친박 무소속 연대를 내걸었으며, 보통 친박계로 분류되나 간혹 언론에서 비박으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8.9 전당대회 당시 친박 후보로 사실상 이정현 후보가 낙점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친박계 조언을 무시하고 당대표 선거에 나간 것이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한선교의 경우는 친박으로 분류되지만, 서청원 - 최경환 - 윤상현으로 이어지는 주류 친박은 아니다. 뒤늦게 조선일보와 모 친박 인사의 인터뷰를 통해서 밝혀진 한선교가 반쯤 버림받게 된 이유는 정윤회 문건 유출 사태에 박지만이 연관되었기 때문인데, 한선교가 박지만과 친분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최순실에게 찍혔기 때문이다. 다만 한선교 본인은 박근혜에게 여전히 충성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당대회와 비대위 이후 정진석과 한선교는 중립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한선교는 2017년에 중립 진영을 대표해서 원내대표 선거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친홍+친무계 김성태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그리고 청년층에서 새누리당/박근혜의 지지가 낮은 것을 만회하기 위해 박근혜가 발탁하여 정치적으로 키운 젊은 청년 정치인들이 있었다. 손수조, 이준석 같은 인물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소위 "박근혜 키즈"로 불렸는데, 정치적 업적이나 실질적 권력이 있는 것은 아니고 일종의 선전용 광고 모델이었다. 다만 이준석은 얼마 안 가서 가치관 등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차이를 보이며 유승민 의원을 두둔하는 등 본인 스스로 멀박이라 지칭하며 친박에서 멀어졌고, 나중에는 아예 새누리당을 탈당하여 바른정당에 합류했다.[51]

그리고 손수조의 경우는 여성이고 거기에 박근혜 키즈라고 불리니 친박계에서 대놓고 공천을 밀어줘서 20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텃밭인 부산광역시 사상구에 2번 연속 공천을 받았다. 이 때문에 첫 번째 출마 때에는 참여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에게 부산 사상을 내주면서 문재인의 정치적 영향력을 크게 키워버렸고[52], 과거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이었지만, 2번 연속 무공천 받은 결과[53]친 비박계 장제원 후보가 새누리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출마해 두 번째로 출마한 손수조를 누르고 당선되기도 했다.[54] 심지어 손수조 후보의 경우 새누리당 중진 의원들의 적극적 지원 유세에도 불구하고 장제원 후보는 물론이고 더불어민주당 배재정 후보에게도 밀려 3위로 낙선하며 사실상 정치 생명이 끝났다는 분위기.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도 탄핵되면서 정치계에는 영영 발도 못 붙이게 되었다.[55]

이학재 의원도 원래는 친박계에 속했다. 당시 제18대 대통령 선거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거나 비서실장도 맡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사상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자 박근혜에게서 완전히 등 돌리게 되었고 2016년 말, 새누리당에 탈당하여 바른정당에 입당했다. 그 후 친유로 전향했다.[56]

이 외에도 구속되어 구치소에 수감된 친박 인사로는 계파 보스인 박근혜 전 대통령[57]과 비선실세인 최순실김기춘 전 비서실장(3선),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초선)이 있다. 조윤선 전 장관도 친박으로 꼽혔지만, 2015년에 유승민 의원 사태와 관련해 청와대 정무수석직에서 물러나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사이가 멀어진 거 아니냐는 얘기도 들렸다. 다만 다시 신뢰를 회복했는지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김기춘 실장, 최순실, 박근혜와 같이 나란히 구속되어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또한 진박 감별사를 자처한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도 국가정보원 특활비 수수 의혹으로 같이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기타 언급되지 않은 친박들[58]은 대체로 걍 존재감이 없거나 비주류인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부턴 친박이란 타이틀 자체가 거진 국민밉상급으로 전락해서 대놓고 친박이라고 하는 사람도 드물어졌다. '국민을 절망케 한 친박 부역자들' 옆의 글도 읽어보면 도움이 된다.

2016년 12월, 새누리당혁신과 통합 보수연합이 구성되면서 사실상의 친박 명단이 공개 작성되었다.

국내 거주 북한이탈주민들 중에서도 친박 성향을 보이는 이들이 있다. 북한이탈주민들은 북한에서 살면서 그 폐해를 직접 당한 피해자라서 한국으로 귀환하고 나서는 강경한 반공 성향을 보인다. 그러다 보니 일부는 친박과 행동을 같이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태영호와 같이 보수 성향을 보이지만 비박인 사례도 있고, 최근에는 비박의 비율이 높아졌다.

다만 이에 대해 공산주의와 반공이라기보다 북한 체제가 가지고 있는 개인 숭배의 영향이라는 해석도 있다. 최고권력자에 대하여 대를 이어 절대충성하는 것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그 충성 대상이 바뀌었을 뿐이다. 일례로 극우 성향의 뉴라이트는 초창기 다수가 과거 주사파 출신으로 이루어진 사례가 있었다.

5.1. 탄핵 이후 2024년까지 명단

5.1.1. 수장

친박의 수장은 '친박근혜계' 그대로 박근혜다. 박근혜는 전 한나라당 당대표, 전직 5선 국회의원(15~19대).[59] 이후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을 역임하고, 탄핵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고 구속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친박의 우두머리로서 옥중에 있으면서 변호사를 통해 간간히 메시지를 전하며 이후로도 적지 않은 수가 남아 있던 친박계 의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
한때 '선거의 여왕'으로 불릴 정도였고 실제로 대통령까지 차지하는 등 승승장구하였지만, 탄핵 정국 이후 완전히 몰락, 더불어민주당에게 4연승[60]을 쥐어주면서 지금은 영향력을 모조리 잃고 과거의 영광으로 남게 되었다.[61]
2021년 12월 31일 사면되어서 풀려났으나, 그간 야권 대개편으로 친박 세력이 몰락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거의 다 잃었기에 병원에서 생활하며 조용히 은거 중이며, 앞으로도 대외 활동을 자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5.1.2. 진박 9인회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진박 9인회 문서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진박 9인회#s-|]]번 문단을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if 문서명 = 문서명 != null ? 문서명 : calleeTitle
의 [[진박 9인회#|]]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1.3. 삼성동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삼성동계 문서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삼성동계#s-|]]번 문단을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if 문서명 = 문서명 != null ? 문서명 : calleeTitle
의 [[삼성동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1.4. 그 외 간부급 인사들

5.1.5. 기타 인사들

이하는 가나다순.
하지만 2024년 22대 국회의원으로 원내 진입에 성공하면서 유영하를 제외한 이곳에 등재된 모든 인사들에 비해 친박"출신"이 아닌 현역 친박으로 불릴 만한 명맥을 가진 유일한 의원이 되었다. 사실상 박근혜의 말년을 담당하는 최후의 1인이 된 셈이다.

5.2. 구 친박 명단

6. 진박? 진실?

하지만 상술된 친박내 주요인사들보다도 더 친박내 영향력이 강하다고 꼽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비서관들이다. 이 세 사람을 언론에선 일명 '문고리 (권력) 3인방'[136]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친박 중에서도 최측근 인사로 분류되었다.

사실 이 세 명의 비서관들은 박 대통령이 98년 보궐선거 당선을 통해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시절부터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인물들로 친박계의 2인자들이라고 불리는 서청원, 최경환 의원처럼 군번을 따질 친박이 아니라, 사실상 왕과 내시, 신하의 관계에 가깝다.[137]

그리고 이들이 박근혜 당시 의원을 처음 보좌하기 시작했을 때, 당시 박근혜 의원 비서실장으로서 이 3인방의 상사였던 사람이 정윤회라고 한다. 2014년 세계일보를 기폭제로 국내를 한바탕 뒤흔들어 놓았던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사건도 쉽게 말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떠나 정계에는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었던 것처럼 보이던 정윤회씨가 실제로는 여전히 박근혜 대통령 곁에 남아 이 문고리 3인방에게 지시를 내리면서 장관 임명 등 박근혜 정부 전체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게 아니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던 사건이었던 것. 참고로 정윤회는 박근혜 당시 국회의원의 비서실장이기도 했지만, 박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최순실의 전 남편이기도 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의 이름은 훗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에서 다시 회자된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언론을 화려하게 수놓은 최순실은 1970년대부터 박근혜 당시 영애와 피붙이나 다름없을 만큼 가까이 지내던 사이었으며, 최순실의 부친인 사이비 교주 최태민은 박근혜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가 암살당한 뒤 멘붕에 빠져있을 무렵 '육 여사가 자기 꿈에 나타나 당신을 도우라고 했다'는 사기꾼 스멜이 짙은 소리를 하며 가까운 사이가 되어 박 대통령이 지금까지도 인생의 은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다만 주변 사람들은 당연히 그들의 관계를 탐탁지 않게 본 모양인데, 오죽하면 노태우 정권 당시 박근혜의 친동생인 박지만박근령노태우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저 사람이 누나/언니를 속이고 조종해서 악행을 저지르니 제발 누나/언니 좀 저들과 떨어트려 구해달라는 탄원서를 냈고, 군사작전을 방불게 하는 물리적 구조작전까지 실행했을 정도.

결국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하여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 전 부속/수석비서관 셋은 구속되었다. 심지어 문고리 3인방 등을 비롯한 최측근들을 박근혜가 아닌 최순실이 직접 지휘한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막강한 비선실세였다는 점이 드러났는데, 자세한 내용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항목 참조.

6.1. 기타 진박(?)

드립 삼아 진박으로 지칭되는 경우도 있다. 정의당 소속인 노회찬 전 의원은 2016년 총선에서 자신을 대놓고 진박이라고 호칭하며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에 출마하였다. 경제민주화를 비롯한 박근혜 정부의 공약을 충실히 따른다는 뜻이 들어간 진박이다. 이 문서의 진박과는 오히려 반대 의미의 드립성 발언이다. 대통령 본인이 한 공약과 오히려 거꾸로 가는 세태 때문인지, 당시 노 의원의 진박 발언은 호응이 많았다.

더불어민주당 김광진 전 의원은 2015년 국군의 날 행사 때 우연히 박근혜 대통령의 바로 뒤에 위치해 있어서 농담 삼아 친박 의원이라고 불린 적이 있다. 의전 실수는 아니고 사전에 국회의원들의 나이 및 당선 경력 등을 고려해서 자리를 배치하다 보니 일어난 우연이라고 한다.

이철희 의원도 썰전에서 자신을 치는 박이란 의미로 친박이라고 한 적이 있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보이그룹 샤이니의 멤버 민호도 박근혜가 온 행사에서 옆에 있다 보니 "대통령님이 한국 화장품을 쓰셔서 피부가 좋다"는 식의 아부성 멘트를 날려 한동안 친박 연예인 드립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특히 당시 청와대 비선의료사건의 핵심인물인 박채윤에게 화장품을 소개받는 자리라는 나름 주요한 장면이라 민호의 멘트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정국 내내 뉴스 자료영상으로 함께 출연했다.

오죽하면 JTBC 정치부 회의(2017년 2월 3일 방송)에서 해당 영상에 대해 설명하면서 시청자들이 오해를 하지 않도록 양해해 달라고 하며 '민호 씨에게 불똥이 튈까 봐 걱정스럽다'라고 따로 언급할 정도. 물론 민호 자체는 립서비스를 한 것일 확률이 높아 게이트와는 별로 관련은 없다.

7. 비판

만일 황제가 못하는 일이 없다면 옛날에 황제들이 어째서 매사를 본인들 마음대로 하지 않고 간쟁하고 보필하는 신하를 두어서 스스로를 속박했겠습니까? 예로부터 소인은 임금의 뜻을 고분고분 받들려고만 할 때 "천자가 하겠다는데 어찌하여 안 된다는 것입니까?"라고 했고, 임금이 격노했을 때는 "귀함이 천자에 이르렀는데 못할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아첨을 했던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같이 나라를 무너뜨리는 창이자 임금을 혼미하게 만드는 짐독입니다.
진덕수(13세기 유학자), 『대학연의』 中
어떤 사람이 부모를 섬기는 마음으로[138] 그 군주를 섬긴다면 신하라고 할 수 있는가? 신하라고 할 수 없다. 자기 몸을 죽이면서까지 군주를 섬긴다면 신하라고 할 수 있는가? 역시 신하라고 할 수 없다. (중략) 군주가 자기를 위해 죽고 자기를 위해 망할 때, 내가 (이것에) 따라서 죽고 망한다면 이것은 사적으로 총애를 받는 자나 하는 일이다. 이것으로 신하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있다. ······ 어떤 사람은, 신하는 자식과 함께 칭하여 신자(臣子)라고 하지 않는가?라고 한다. 그렇지 않다. ······ 군주와 신하의 명분은 천하 국가라는 입장에서 생긴 것이다. 나에게 천하의 책임이 없다면 나는 군주와는 관계없는 사람이다. 나가서 군주를 섬길 때 천하 백성을 위한 것으로 일을 하지 않으면 군주의 노비가 된 것이고, 천하를 위한 것으로 일을 삼으면 군주의 사우(師友)인 것이다.
황종희(17세기 유학자), 『명이대방록』 신하론(原臣) 中
전국위원회 무산시키고 말이야. 못하게 했잖아, 혁신을! 이제는 정말 보수의 존립에 근본적으로 도움 안 되는 사람들은 육모방망이를 들고 뒤통수를 뽀개버려야 돼요. 동지라는 것에서 이제 적으로 간주해서 무참하게 응징해야 된다고!
정진석[139]
대한민국에서 한때 집권 여당을 하고 탄핵 과정을 거치면서 남아있던 온실속의 화초.. 웰빙 정당이라는 그런 비아냥을 들으며 남아있던 자유한국당의 잔존 국회의원들이 얼마나 아직도 현실을 모르고 있고 대중을 모르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산 증거입니다.
전원책, 2018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참패한후 이부망천정태옥을 비판하며.
박근혜 팔아 국회의원 하다가
박근혜 탄핵 때는 바퀴벌레처럼 숨어 있었고
박근혜 감옥 가고 난 뒤 슬금슬금 기어나와
당권이나 차지해보려고 설치기 시작하는 사람들
참 가증스럽습니다.
차라리 충직스러운 이정현 의원을 본받으십시요.
다음 선거때 국민들이 반드시 그들을 심판 할 것입니다.
더 이상 이런 사람 정치권에서 행세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당시 페이스북에 친박들을 바퀴벌레에 비유하며 비난한 글.
'친(親)-'을 붙여 누구와 친하다는 뜻을 드러내는 정파가 늘 그렇듯, 정파 안에서는 "우리가 남이가" 식으로 뭉치고 정파 밖에 대해서는 배타성을 드러낸다는 평이 많다. 2000년대 중반 박근혜의 신뢰를 받던 진영의 경우 2000년대 후반 들어 친박이라는 울타리를 넘나드는 행보를 보이자 친박계 인사들의 지속적인 견제를 받아 2010년 탈박을 선언하기도 했으며, 2016년에는 아예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여 당선되었다.[140] 2015년 새누리당 내 계파 갈등의 한가운데에 서있었던 유승민 국민의힘 전 의원은 워낙 스토리가 널리 퍼졌다.

그러다 보니 '박근혜 대통령 눈치 살피기만 급급한 전형적인 간신배 무리들'이라고 비판받고 있지만, 정작 본인들은 진박 감별사라는 희대의 단어까지 등장하며 대놓고 패거리 정치를 하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순수하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다. 또한 친박은 박근혜가 중심인 계파인데, 박근혜는 87년 체제로 5년 단임제를 채택한 대부분의 대통령들이 그러했듯 대통령 임기가 끝나자마자 죽은 권력이 되는 것이 불가피한 현실이다. 당장 이들과 대립 관계인 친이계는 중심축이던 이명박이 대통령에서 퇴임하면서 계파가 와해되어 사실상 비박의 일환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중이었다.

즉 아무리 막강한 대통령이라 해도 권력에 유통기한이 있으므로 새누리당은 차기에도 권력을 창출할 '미래 권력'을 준비해야 하는데, 박근혜는 자신의 후계 권력 등장을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친박계가 이에 동조하며 '차기 대권 주자'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유력 정치인들을 지속적으로 견제하면서 후계 구도의 싹을 밟아버리고 있는 상태다. 이에 해당하는 인물을 들자면 김무성, 유승민 등이 있다.[141] 이 때문에 배신의 정치로 찍히며 팽당한 유승민처럼 되지 않기 위해 항상 박근혜의 의중을 헤아리고 그렇게 발언을 해야 하기 때문에 친박 세력에서 뚜렷한 대권 후보가 자라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 당시 유력 대권주자로 언급되던 반기문이 친박으로 들어올 가능성도 점쳐졌으나, 본인이 불출마를 선언하며 무산되었다.

또한 자유한국당 시절 박근혜 전 대툥령을 상왕처럼 취급하는 행보는 이미 전두환이 일해재단국가원로자문회의 같은 방식으로 시도하려 했지만 바로 노태우에게 뒤통수를 맞고 백담사로 유배당했으며, 상왕은커녕 노태우의 후임이자 철천지 원수인 김영삼에 의해 노태우와 같이 구속되는 신세가 되었다.

새누리당 내 비박계 의원, 특히 수도권, 부울경 동부 지역 출신 의원들에게는 애증의 대상인데, 실제로 19대 총선에서 강남3구를 제외한 지역구 중에서 서울에서 당선된 의원은 죄다 비박계다.

그래서 비박계는 표차가 적은 수로 갈리는 수도권, 부울경 동부 지역에서 이기기 위해서 "새누리당이 좌클릭도 수용해야 한다"는 말이 많다. 서울 양천구 을 지역구의 김용태 의원, 강서구 을 김성태 의원, 경기도 여주시·양평군 정병국 의원, 경기도 포천시·가평군 김영우 의원, 부산 중구·동구 정의화 전 의장, 부산 금정구 김세연 전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142]

2016년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나온 소위 "진박(眞朴) 마케팅"도 제대로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오죽하면 진박 마케팅의 핵심지인 대경권 민심조차도 "저건 심했다."고 말할 정도다. 대경권 역시 비박 정치인인 권은희, 김희국, 류성걸, 유승민, 주호영 등을 숙청하면서 민심이 나빠졌고, 결국 더불어민주당대구에서 2석을 챙겨가는 일이 벌어졌다.

이준석 전 비대위원도 진박 마케팅은 "사람들에게 굉장히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라면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되려는 상황에서 '진실한 사람'을 선거구호로 내거는 건 상당히 부끄러워야 할 일이다."라고 언급했다. 또한 보수 논객인 전원책 변호사는, 썰전에 출연하면서 이런 진박 마케팅을 민주주의를 갉아먹는 좀비정치라고 매섭게 꾸짖었다.

결국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으로 야권이 분열된 어부지리 상황 속에서도 "친박과 비박의 공천권 다툼"이라는 역대급 삽질로 인해 16년 만에 여당이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하고 제1당 자리까지 빼앗기면서 여소야대 정국이라는 굴욕적인 상황을 맞이하고 만다. 이는 공천권 다툼 + 탄핵여파로 수십 석을 잃어버린 2004년 새천년민주당의 사례와도 유사하다. 더군다나 이후 총선패배 후유증을 제대로 겪는다는 점에서도 빼다 박은 상황이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8월 9일에 개최된 새누리당 전당대회의 결과, 친박계가 대부분의 당직을 독식 하면서 친박 패권주의가 더욱 심화되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입증했다. 이는 친박계가 공천학살을 통해 일찌감치 비박의 싹을 완전히 잘라 놓고 난 이후 발생한 결과였기 때문에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물론 차기 19대 대선 후보급 의원들이 경선 레이스에 뛰어들기 때문에 당권 경쟁에서 개입할 이유가 없는 비박계 중진들이 전당대회를 그다지 관심 없어해서 소 닭 보듯이 생각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때 주호영이 범비박 대표로 나갔고, 최후의 수단으로 유승민 비상대책위원회도 고려되었지만 친박이 모두 거부했다.

그리고 친박들은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난 후 대부분은 자기 몸 사리며 나 몰라라 하곤 하였다. 과거 박근혜 대통령이 콘크리트 지지율을 유지할 땐 모든 것을 바치려 행동하던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그나마 개인적 인연이 있는 이정현박근혜를 지킨다고 했다.

김무성, 유승민, 정병국, 하태경비박 정치인들이 탄핵을 찬성했고 친박 정치인들이 끝까지 반대했다고 하면서 비박계 정치인들을 배신자로 매도했지만 사실 김진태, 조원진이 먼저 탄핵을 언급했고 오히려 김무성, 유승민박근혜의 사과와 사퇴를 먼저 건의했고 최후의 수단으로 탄핵을 고려했다.

원래 이러한 사람들일수록 위기가 터지면 위기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자기만 살겠다고 빠져나가기 급급한 경우가 많다. 능력은 부족하여 연줄로 어찌어찌 정계에 몸을 담았는데 매달고 있던 동아줄이 끊어지려고 하는데 끊어지려고 하는 동아줄을 수리할 능력은 없으니 새 동아줄을 찾기 위해 나몰라라 내빼는 셈이다.

사실 나서도 도리어 국민들 화만 돋을 뿐이라 딱히 도움도 안 되어 나설 처지가 아니다. 또 친박 중에서도 초, 재선들은 딱히 충성도라고 할 게 없기도 하다. 물론 그럼에도 끝까지 친박에 남아 있는 자들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친박은 처참한 종말을 맞을 확률이 높다는 게 어찌 보면 씁쓸한 대목이다.

게다가 친박으로 남은 사람은 벌써 간신배로 낙인이 찍혔다. 온갖 어불성설로 유명한 김진태는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고 떠들었다가 지역구인 춘천시 시민들이 바람에도 꺼지지 않는 LED 촛불, 또는 그것을 넘어 횃불까지 들고 김진태 의원 사무실을 돌기도 했다. #

이후 새누리당을 개혁하기 위해 영입된 인명진 비대위원장[143]에 대해 친박계의 좌장인 서청원이 2017년 1월 공식 기자회견에서 "거짓말쟁이 성직자인 비대위원장 이야말로 악성 종양의 성직자가 아닌지 되묻고 싶습니다"라고 폭언을 퍼부었다. 그래도 조금은 바뀔 것이라는 보수 지지자들의 최소한의 희망조차 지워버린 꼴이 되고 말았다.

결국 홍준표 전 경남지사에게 양박, 즉 양아치 친박이라는 비판까지 듣게 되었다. # 하지만 도리어 박사모들은 지나가는 홍준표에게 태극기를 손에 들려주고는 자기를 극찬했다는 정신승리를 시전하였다. # 이미 이들은 인지부조화에 이른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물론 박근혜가 스스로 정치계에서 물러날 때라면 친박의 소멸도 가능한 이야기이다. 대통령이 아니면 권력의 정점에 서있다고 보기 어려운 대한민국 특성상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박근혜가 숨만 쉬고 있어도 태극기 부대로 대표되는 콘크리트 지지층의 힘으로 지역구 몇석과 소수의 비례대표 의석으로 국회 교섭단체 의석(20석)을 어떻게든 만들 수 있다는 친박계의 망상도 있었다.

그러나 이도 이젠 옛날 이야기라는 것이 21대 총선으로 드러났다. 태극기 부대는 비례대표조차 못 내고 원외로 쫓겨났고, 미래통합당은 개헌저지선만 겨우 건지며 완패한 데다가 당내의 친박들은 대거 낙선[144]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박근혜의 지지 호소는 중도층의 대거 이탈만 불러 왔을 뿐 도움이 되지 못했다. 친박이 가진 최소한의 정치적 기반조차 이제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8. 문제점

8.1. 법치주의 훼손

8.1.1. 탄핵 부정

"같은 사건을 여러차례 반추하며 재재조사에까지 이르는 것은 사회적·법적 안정성에 반하며 국가적 소모가 된다”
- 이시윤 (전 감사원장, 전 헌법재판관) #[145]
설득력이 부족한 주장에만 의존하여 탄핵을 부정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공당(公黨)의 일원이자 국민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야 할 정치인들이 현재와 미래를 일절 언급하지 않고 앞으로 전진하지 못한 채 '탄핵 선고'라는 흘러간 과거에만 집착하며 헌정질서를 흔들고 있다. 보수주의를 정치적 신조로 삼고 있는 친박 세력은 법치가 굳건히 유지되는 데 다른 누구보다 더 앞장섰어야 함에도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치 않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법치와 사회적 안정을 깨뜨리고 있는 건 상식인의 관점에서 용납되기 어렵다.

그들은 탄핵에 대해 탄핵부정, 탄핵무효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 이유로 탄핵 과정에 대한 납득이 가능한 논리를 언급하며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과 탄핵의 사유가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친박은 지속적으로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 박근혜 석방 집회 등을 벌이고 있는데 탄핵 반대와 같은 부정도 부정이지만 석방조차도 문제가 있는 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탄핵에 대해 시인하고 이를 받아들인다는 입장 발표이 단 한 번도 없었다.[146]

결국 친박들의 이러한 행각은 안 좋은 선례를 남기고 말았다. "법적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법적 결정에 대한 불복"을 집단적으로 행한 것이다.[147]

8.2. 폭력 시위/집회

`탄핵반대 폭력시위` 박사모회장 징역2년
탄핵 반대 집회 사망자 4명으로 늘어…1명 추가 사망(종합)
‘탄핵반대 폭력 집회’ 정광용 박사모 회장, 징역 2년 실형

친박성향의 시민들이 대규모로 집결해 형성된 박사모의 정광용 회장이 탄핵반대 폭력 집회, 시위로 인해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친박의 만행이 어찌나 심했는지 친이 등 일부 보수 성향의 유저들조차도 같은 보수라고 하지만 이건 박근혜 개인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에 불과하다며 이들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부정, 무효와 폭력시위에 대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본다며 선을 그었다.

8.3. 가짜뉴스

신문·방송보다 유튜브" ... 가짜뉴스에 빠진 노인들
탄핵찬성 여론이 31%라고?...헌재 선고 앞두고 극우 ‘가짜뉴스’ 극성

친박들은 가짜뉴스의 주요 발생지이며 이것이 확산되게 하는 곳 중 하나이다.

그 유명한 박근혜 편지 사태도 친박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이면 가짜인지 진짜인지 의심을 하고 제대로 확인조차도 안 하고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고, 비난을 위한 비난을 하는 점을 역이용한 것이다.

8.4. 맹목적인 반이명박 성향

'박사모'는 왜 '이명박'을 물고 늘어질까
박사모, 이명박 대통령 탈당 요구
류근일 VS 정광용, "박근혜·이명박…네가 가라 야당"
박사모, 이명박 비판 성명 "'이명박 전 시장님이 공개적으로 이재오 후보를 밀어주지 않았다면 이런 혼탁한 선거는 아예 없었을 것입니다'"

같은 보수로 묶여있기에 겉으로만 보면 그놈이 그놈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친박과 친이의 갈등은 민주당 내부의 친노와 비노, 혹은 호남계와 영남계의 갈등보다도 더 심하다. 그나마 민주당쪽은 동교동계나 친노나 적어도 민주화 운동에 자긍심이 있다는 공통분모는 가지고 있고 실제 대통령끼린 사이가 좋아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반목이 일정 이상 심해지지 않았지만, 친박과 친이는 역사 자체가 3당 합당 이전의 신민주공화당 + 민주정의당(친박) vs 통일민주당 + 통합민주당(친이), 즉 독재 세력 vs 반독재 세력으로부터 시작되었기에 반목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애당초 전자는 비슷한 애들끼리 보스, 지분 문제로 다툰 거라면[148], 후자는 아예 이념 노선부터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친박과 친이계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공화 + 민정계와 민주계의 갈등도 이 정도로 심하진 않았다.

제17대 대통령 선거 국면이 다가오면서 두 계파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2004년 총선 때 탄핵 여파로 중진 정치인들이 대거 낙선하면서, 기존까지 한나라당을 장악하던 민정계민주계는 와해되어 버리고 새로운 계파 세력으로 친박친이가 떠오르게 된 것이다.[149] 17대 대선 과정에서 두 후보의 캠프들은 양쪽 후보의 의혹들을 캐내며 높은 수위의 네거티브를 하였고, 경선 결과 역시 1.5%의 적은 차이로 MB의 승리가 결정되면서 양 계파의 갈등이 폭발하였다. 실제로 박사모에서는 한동안 계속 경선 불복 운동을 벌이기도 했으며, 17대 대선 막판에 들어 이회창이 정계은퇴를 번복하고 출마하자 한 때 자신들과 척을 졌던 이회창을 박근혜가 지지해 줄 것을 요구하며 자택 앞에서 촛불시위까지 할 정도였다.

결정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직후에 치러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강재섭을 비롯한 당권을 장악한 친이계가 친박계 인사들을 대거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공천 학살 사건'을 일으키면서 양대 계파의 갈등은 절정에 달했다. 박근혜는 친이계의 공천룰에 큰 반감을 표하며 당에서 요청한 지원유세도 거부했고, 간담회에서 "살아서 돌아와달라."라며 공개적으로 탈당한 인사들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얼마 안 가 광우병 파동이 터졌을 때도, 친박 쪽에서는 이명박 정부를 맹비난하며 야권과 의견을 함께했다. 4년 뒤, 박근혜는 공천 파동의 아픔을 잊지 않고 있다가 자신이 비대위원장이 되어 전권을 쥐게 되자 친이계 인사들을 역으로 공천에서 모두 탈락시키기도 했다.

실제로 이를 알 수 있는 사례는 18대 대선친이계였던 김덕룡문재인을 지지한 것과 18대 총선 때 친박 유권자들이 친박 공천 학살을 주도했다고 알려진 친이 이방호 꼴보기 싫어서 민주노동당 강기갑 후보를 지원한 사례다. 실제 강 후보가 당선도 되었다. 즉, 친이계가 꼴보기 싫어서 자기들이 빨갱이라고 비난하는 민주노동당 후보를 지원할 정도로 친박과 친이 사이에 반목이 심했던 것이다.

또한 이명박 정부 내내 여당 안의 야당으로 행동하여 항상 이명박 정부와 친이계랑 계속 반목하였다. 대표적으로 광우병 촛불시위, 세종시 수정안 반대, 사대강 정비 사업 반대 등과 같은 현안에서는 오히려 민주당과 동조하였을 정도였다. 2012년 대선 때는 박근혜가 야권 성향의 지지층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MB와의 정치적 손절 및 분리를 강조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하기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 측이 탄핵사유를 부정하는 것에 질문을 받자 ''본인이 뭐라고 얘기하든 국민이 다 알고 있으니까 국민 뜻을 따르면 된다.''고 조롱하는 식의 답변을 했는데 이것이 괜히 나온 발언이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실제로 저런 말을 해도 납득이 가는 입장이었기 때문.

해당 발언의 배경을 살펴보면 이미 이명박 전 대통령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훨씬 이전부터 "박근혜 후보가 집권하면 최태민씨 일족이 집권하는 것 아니냐" 박정희 정권 시절, 최태민 목사가 당시 퍼스트레이디였던 박근혜 대통령을 등에 업고 국정농단을 일삼았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최태민 목사의 딸 최순실과 남편 정윤회가 국정 농단의 대를 잇게 될 것"이라고 하며 오래전부터 이미 최순실 사태를 정확하게 예측했었다. (중앙일보)10년 전 최순실 사태 예측한 이명박 전 대통령.

심지어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의 최순실 국정농단 발언 외 정윤회 발언도 끝끝내 적중했다.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참조. 발언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최순실국정농단을 벌인 것은 사실이었다.

이렇게 박근혜의 핵심 문제점들을 정확하게 일침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친박들이 좋게 생각할 리 만무했고, 그 결과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에 대해서도 철저한 집단 침묵이나 환영 반응으로 이어졌다.[150][151]

9. 존속 여부

사실, 친박의 미래가 밝지는 않은 게 현실이다. 당장 대중적으로 비호감도가 너무 높은 데다가 지지 세력 또한 노쇠해서 새로 유입될 신규 자원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152]

게다가 친박과 비박이 손 잡고 이 위기를 헤쳐나가기엔 이미 탄핵이란 강을 건너 개개인이 어찌해 보기엔 화해가 불가능한 수준까지 도달해 버렸다. 결국 한쪽이 청산되지 않는 한 싸움이 끝나지 않을 판. 게다가 정치적 구심점인 박근혜는 이미 법적 판단을 받아 감옥에 들어간 상황이니 무슨 도덕적 우월성을 내세울 근거도 없고, 차기 대권주자 역시 씨가 마른지 오래다.

그나마 당권만 잡자는 거면 2017년 이명박, 박근혜가 같이 구속된 것으로 인해 친이와 친박 서로 간에 문재인의 정치공세에 대한 희생양이라는 그들만의 공감대가 생겼고, 이후 태극기부대의 입당을 바탕으로 친박이 제1보수정당에서 일정 부분 세를 다시 얻긴 했다. 2018년 범 친박 세력이 결집하여 나경원이 원내대표에 당선시키면서 친박이 아예 죽진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물론 나경원 자체는 비박계 인사였기에 이후 나경원은 친박, 비박 서로 책임 공방을 하지 말고, 당내 계파 갈등을 종결해야 한다고 호소하며 친박에 대한 청산도 어물쩡 넘어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2019년 2.27 전당대회로 친박으로 분류되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새로운 당대표가 되었는데, 첫 인선에 대해 친박 색채가 강화되었다는 평가가 많다. 친박을 계승해 본인과 가까운 친황이라는 새로운 계파를 형성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 # # 이에 자유한국당이 도로 친박당 되는 것 아니냐는 당내 우려가 나왔고, 김무성 같은 비박계들 또한 친박 중심 인사에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래도 여전히 친박 정치인들의 영향력이 강해서 최소한 21대 총선 컷오프는 피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

2020년 1월, 자유한국당새로운보수당이 통합하면서 친박, 친황친유, 소장파, 친이, 친무, 친홍비박계와 갈등을 갖게 되지만 그래도 극우 유튜버들의 친박에 대한 지지로 인해 친박이 주도권을 갖게 되었다.[153]

그러나 2020년 4월,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대패하며 이 모든 게 신기루였음이 다시 한번 밝혀졌다. 나아가 황교안을 비롯한 대부분의 친박 인사들이 낙선, 게다가 친박 계통 소수정당도 분열 후 전멸하면서 친박 계파의 미래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김선교, 유상범, 정점식황교안과 가까운 친황 정치인들이 입성했다고는 했지만 과거와 달리 주도권을 잃어버렸다. 심지어 박정희, 박근혜의 고향인 대경권의 25개 의석 중 친박계인 국회의원 수가 추경호, 김용판, 곽상도, 윤두현, 이만희, 김석기, 김정재 외에는 없다고 봐야 한다.

친박들은 경선 과정에서 밀려나 선거에 출마조차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대구광역시 동구 을에서는 김재수농림축산식품부장관친유계강대식 전 대구 동구청장에게 밀리고 윤창중마저 낙선했다. 동구 갑에서도 당시 현역이자 전직 행정안전부장관정종섭의 강력한 지원을 받은 이진숙류성걸 전 의원에게 밀렸다. 심지어 그 보수적인 경북 북부에 속하는 군위군·의성군·청송군·영덕군에서 친박계인 천영식 청와대 비서관이 김재원의 지원을 받고도 김희국 전 의원에게 밀렸다. 기존 현역 의원이었던 김재원은 서울특별시 중랑구 을에서 친유계윤상일 전 의원에게 밀렸다.

미래통합당 내 친박 인사도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 기준 20명이 채 안 되는 수준으로 줄어들었는데, 반대측에선 비박 중심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어 숙청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 21대 총선 직후 원내대표 선거에서도 비박주호영 후보가 낙승하였다. 게다가 주호영과 경쟁한 상대 후보였던 권영세 의원도 범친박 출신이긴 했지만 친이-친유조해진 의원과 손을 잡으며 친박 성향이 옅어지고 개혁보수를 강조하는 상황이었다.[154] 즉, 주호영이 되든 권영세가 되든 친박들의 약화는 이미 기정사실화가 된 것이다. 주호영이야 2016년 20대 총선 컷오프로 애초부터 박근혜와 껄끄러운 관계인 데다 원래 친이계고, 권영세도 친박과는 이미 거리를 두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향후 국민의힘에 들어오는 청년 인재들조차도 극우적 성향보단 자유보수주의, 보수자유주의 성향의 중도우파 비박계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되니 친박은 진짜 언제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 모르는 형국이다.

실제 몇 번의 선거를 거치고, 미래통합당국민의힘으로 개편되는 과정에서 극우와 선을 긋는 행보가 이어지고 있어 친박계의 입지가 갈수록 줄어들어갔고 2021년 재보궐선거, 제1차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국민의힘의 주도권이 중도우파로 완전히 넘어가면서 사실상 단일대오 계파로서의 친박계는 사라졌다.

원조 친박계인 김태흠[155]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친박이라는 호칭에 대해 "계주는 감옥 갔고 총무도 없는데 친박 같은 게 어디 있습니까?"라고 답하기도 하였을 정도였다.

2021년 12월 31일, 특별사면되면서 병원에서 퇴원한 다음 대구로 낙향한 뒤, 박근혜는 옥중에서도 자신을 끝까지 보필했던 법률대리인 유영하 변호사의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출마와 함께 유영하의 후원회장을 맡기로 하면서 본인이 이루지 못했던 정치적 소망을 대신 이어갈 것이라는 발언을 남기면서 이후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지역인 대구광역시를 중심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간접적으로 펼치게 될 가능성을 시사하게 되었다.

하지만 상황은 결코 녹록치 않아 보인다.

일단 아이러니하게도 상당수의 친박 정치인들이 박근혜를 감옥에 보낸 윤석열이 보수정당에 합류해 대통령이 되면서 친윤에 붙은 것은 물론 앞서 20대 대선 경선에서 패배한 홍준표가 대구로의 하방을 선언하면서 출사표를 던진 상황이었고 같은 친박이던 김재원 역시 이를 견제하면서 출마 의사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박을 내세운 둘이 끝내 단일화에 실패하였고 결국 10% 페널티를 적용한 홍준표의 득표율보다 두 사람의 득표율을 합한 득표율이 더 낮게 나오면서 사실상 친황 몰락의 전철을 한번 더 밟은 셈인 데다 대구에서마저도 박근혜 마케팅의 실효성이 전무함을 재차 증명한 꼴이 되어 버렸고 기껏 야심차게 준비했던 재기의 발판마저 말끔히 소멸했다. 물론 그나마 아직까지 친박 "출신"이 아니라 온전하게 현역중에서 친박이라고 불릴 만한 인물로 유영하 변호사가 제2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유일하게 명맥을 이어가고는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친이와 함께 이미 수명이 다해 친윤으로 통합되어 구분의 실효성이 없다고 보는 시선이 주류다. 일례로 동교동계에 22대 국회에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인 박지원이 있다고 해서 동교동계가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는 없기 때문에 현재의 친박이 여전히 정계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은 사실상 전무하다.

10.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