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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풀어 쓰자면 '진실한 친박(眞朴)인지 아닌지 감별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몇 개월 앞둔 2015년 말 한국 정치판에 혜성처럼 등장한 신조어다. 다만 속내는 당연히 비꼬는 뜻이며 대통령 개인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 경쟁과 권위주의적 의식이 빚은 정치 코미디가 만들어낸 웃지 못할 결과물이었다.2. 배경과 등장
진박 감별사라는 듣도 보도 못한 말이 세간에 처음 돌게 된 시발점은 2015년 12월 19일 대구 동구 을 선거구에 출마를 선언한 새누리당 이재만[1] 예비후보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한 친박 조원진의 "내가 가는 곳은 모두 진실한 사람이다"라는 발언이었다.#당시 대구 동구 을 선거구의 현역 국회의원은 같은 새누리당의 유승민이었는데 잘 알려져 있다시피 유승민 의원은 2015년 새누리당 원내대표 직을 수행하면서 청와대[2] 및 친박그룹과 증세 논란, 국회법 개정안 논란 등으로 갈등을 빚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2015년 중순 국회법 개정안 논란으로 갈등이 폭발하였고 이에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데 이은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는 희대의 발언을 하면서 유승민을 맹공하자 결국 유승민은 단순히 대통령에게 밉보이고 계파싸움에서 밀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당한 사유없이 선거로 선출된 원내대표직을 힘없이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유승민은 원내대표 사임의 변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해 에둘러 박근혜와 친박의 정치행태가 반헌법적, 반민주적임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유승민은 친박의 공적이자 박근혜의 개인적인 정적으로 완벽하게 찍히게 되었고 친박 세력은 유승민의 원내대표직뿐 아니라 정치 생명 자체를 끝내 버리겠다는 결의를 다지게 되었다. 박근혜 역시 11월 진실한 사람 선택해달라[3]는 발언으로 유승민 찍어내기에 힘을 보탰다.
이런 상황에서 친박 성향의 이재만 전 동구청장이 유승민의 지역구에서 출마를 선언했고 개소식 자리에는 홍문종, 이장우, 조원진 등 내로라 하는 친박 진영의 중진 의원들이 이재만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대거 참석하였다. 사실 이 자리에서 다른 두 의원 역시 대통령의 의중에 맞는 진실한 사람인 이재만 후보를 밀어달라는 취지의 축사를 했지만 조원진이 "진실한 사람이 누구인지 헷갈릴 수 있다. 나 조원진이 가는 곳(후보)은 모두 진실한 사람이다"라며 본인을 진실한 사람 감별사로 자칭한 발언의 임팩트가 워낙 커서 묻혔고 이 발언에서 진박 감별사라는 희한한 신조어가 파생되었다.
정치권과 언론 정치부에서 드문드문 언급되던 이 표현이 언론에 최초 보도되고 회자된 것은 2015년 12월 말 경 채널A, 중앙일보 등에서 진박 마케팅이 횡행하는 대구 정가 분위기에 대한 가십성 기사를 실은 것이었다. 이후 YTN, 한겨레 등에서 관련 보도를 이어가면서 일반 국민들 사이에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3. 유행한 이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친박계의 분위기는 썩 좋지 못했다. 물론 새누리당의 총선 전망 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나[4] 문제는 당내에서 친박계의 리더십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우선 2014년 7월 당 대표 경선에서 친박의 좌장 서청원이 비박의 지지를 받은 김무성에게 예상 외 일격을 당했고 뒤이은 2015년 2월의 원내대표 경선에서도[5] 비박으로 분류되는 유승민(원내대표)-원유철(정책위의장) 조가 친박이 내세운 이주영(원내대표)-홍문종(정책위의장) 조를 84대 65라는 제법 큰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었다.이는 친박계에게, 특히 그들의 지역 기반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었다. 원내대표 유승민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판사 출신 민정계 재선 유수호의 아들이자 경북고-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위스콘신 대학교 대학원[6]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TK의 성골과도 같은 인물이었고 당 대표 김무성 역시 민주계의 적자이자 사실상 새누리당 내 PK의 좌장 노릇을 한 중량급 정치인이었다. 즉, 친박계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친박계 뿐 아니라 새누리당 전체의 핵심 지역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TK-PK를 대표하는 이들이 당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은 총선 이후 레임덕이 본격화될 박근혜의 임기 후반부와 이때 치러질 차기 대선 레이스에서 친박계에게는 큰 위협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친박계는 위에 언급된 바와 같이 국회법 개정안 파동으로 유승민을 원내대표직에서 낙마시켰고 김무성 당시 당 대표 역시 유승민의 사퇴에 침묵으로 동조하면서 일단 친박계가 총선의 키를 쥐게 되었다.
20대 총선에 임한 친박계의 전략은 대략 세 단계로 정리해 볼 수 있었는데 ① 우선 야권이 분열되어 새누리당의 총선 승리가 유력한 상황이므로, 수도권 등 비영남권까지 포괄하는 당 차원의 전략보다는 TK, PK에서 친박계 의원을 대거 당선시키는 자파 위주의 전략으로 총선에 임해야 하며, ② 이를 위해 다소간의 역풍이 일더라도 해당 지역에서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는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자파 의원들을 지원하고 친박계 중진 의원들이 여기에 적극적으로 지원사격을 해서 자파 의원들을 대거 당선시키는 것이 제1의 목표이고, ③ 이를 바탕으로 총선 이후 당권을 친박계가 되찾아와 박근혜의 레임덕을 막고 제19대 대통령 선거에도 친박계 후보를 내세우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일견 타당한 전략으로 보였다. 당시 야당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분열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지리멸렬해 있었고 야당이 내세운 정권 심판론도 수차의 재보선에서 이미 그 효력을 다한 것으로 착각할 만했다. 거듭되던 실정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의 지지율은 나름 안정적인 추이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7] 친박계로서는 당내 비박계 및 수도권 의원들의 불만을 진압해서라도 자파의 이익을 고수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왔다고 여길 법했다.
이 전략에 따라 친박계는 공천만 받으면 십중팔구는 당선이라고 볼 수 있는 TK 지역에서 비박계의 씨를 말리고 친박 일색을 만들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선거법상 중립의무 위반으로 해석할 소지가 다분했던 당시 대통령의 진실한 사람 선택해달라는 발언 역시 이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눈엣가시 유승민을 타도하기 위한 1번타자로 간택받은 이재만 전 동구청장의 출마행사에 친박계 중진들이 대거 참석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고 이 와중에 진박 감별사 발언이 나오면서 세간의 이목을 끈 것이다.
물론 일회성으로 튀어나온 말실수가 아니었다 보니 본인이 감별사라고만 자칭하지 않았을 뿐 친박 실세였던 최경환 의원은 더욱 활발하게 진박 후보들의 선거사무소를 방문하며 진실한 사람 드립을 거듭 치고 다녔고 이는 진박 마케팅으로 더욱 세간의 구설에 오르게 되었다. 최경환은 왜 진박마케팅에 사활을 거나?
여기에 2016년 2월에는 친박의 전적인 후원을 등에 업고 4선의 이한구 의원이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친박의 전략은 거의 달성되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진박 어벤저스라고까지 비꼼을 당했던 이들 청와대, 행정부 출신 후보들이 정말로 지역에서 경쟁력이 있는가는 검증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다들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4. 여파와 결과
당연하게도 이러한 진박 마케팅, 진박 감별사 짓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좋을리가 없었다. 공당의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이 정당 본연의 가치인 이념과 정책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도 없이 대통령이라는 특정 개인에게 충성하는가 아닌가를 기준으로 뽑아달라 말라 흰소리를 해댔니 좋은 반응이 나올리가... 언론 역시 좌우할 것 없이 심상찮은 TK민심...'진박 마케팅' 역풍 부나, 대구를 중세로 만드는 '진박' 등 비판을 이어갔다. 심지어 대구의 유력 지방지인 매일신문조차 사설로 대구 시민 부끄럽게 하는 총선판, 고전하는 진박 후보들, 이젠 정책 선거로 승부하라며 연이어 진박 마케팅을 비판하고 나설 정도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친박계, 그리고 이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청와대는 눈 하나 꿈쩍 않고 진박 마케팅을 꿋꿋이 밀어붙였고 이는 총선을 불과 한 달여 앞둔 2016년 3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연이은 TK와 PK 방문으로 그 정점을 찍었다. 총선을 한 달 남겨둔 민감한 시점에 안방 단속을 하러 내려가서 진실한 후보들을 알음알음 지원해 주러 간 셈이었으니 당연히 논란이 일었으나 이런 역풍을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친박과 청와대의 계산은 자파에게 유리한 쪽으로 크게 뒤틀려 있었다.
어쨋거나 그 결과 20대 총선을 앞둔 새누리당의 공천은 상당부분 친박의 의도대로 진행되었다. 물론 당대표 직을 유지했던 김무성이 옥새런으로 소소하게나마 친박계에 저항, 공천 불발로 인해 탈당한 무소속 유승민의 지역구를 무공천으로 지켜냈고 서울의 서초구 갑 선거구에서 탈박(...) 현역 이혜훈이 친박 조윤선을 누르는 등 TK 외 지역에서 일부 이변은 있었으나 말 그대로 일부 케이스였고 옥새런도 잘 뜯어보면 김무성이 자파 세력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거래를 한 것일 뿐 친박의 의도를 정면으로 거슬렀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허나 이렇게 생난리를 피워 가며 준비한 새누리당 20대 총선의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말아먹었다. 자세한 내용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정당별 결과 및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정당별 결과/새누리당 문서 참조.
정파적으로 보면 전국적으로 확실한 승산을 쥐었다고 착각, 당의 이익보다 자파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어떠한 무리수도 마다치 않았던 친박의 패배였고[8] 새누리당의 입장에서 보면 TK 지역기반 수호를 위해 날뛴 일부 정파 때문에 수도권, PK 등 TK 이외 전 지역에서 참패를 당한 당의 패배였다. 그 결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일어났다.
[1] 前 동구청장으로 청와대 비서관인 1966년생 이재만과는 다른 인물이다.[2] 지금 와서 보면 유승민은 청와대 실세 3인방으로 불리는 비서진을 견제하는 발언을 수 차례 했는데 이때부터 비서 3인을 사실상 뒤에서 조종하던 비선실세 최순실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냔 의견도 있다.[3] 링크를 들어가 보면 그 유명한 '혼이 비정상' 발언도 이 날 나왔다.[4] 안철수가 신당을 창당하며 야권이 분열되자 과반은 사실상 확정이고 법안을 마음대로 추진할 수 있는 180석을 확보하느냐 마느냐를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새누리당이 140석대도 패배고 130석대까지 내려간다면 참패라고 예상하던 지경이었다.[5]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이 러닝메이트로 조를 꾸려 경선을 치른다.[6] 유승민을 비롯해 최경환, 안종범 등 박근혜 정부의 핵심 경제통들이 전부 위스콘신 매디슨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했다.[7] 정확히 말하면 전체 지지율은 낮은 편이었지만 노년층이나 TK로 대변되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존재해서 실정을 저질러도 일정 수치(30%) 밑으로는 잘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레임덕으로 가도 일정층에선 영향력을 유지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물론 현실은 냉엄해서 총선 이후 같은 해에 터져 버린 역대급 게이트로 인해 4%라는 헌정사 대통령 최저 지지율을 기록했지만...[8] 다만 일부에선 친박의 기존 예상보다도 더 큰 출혈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절대치로 보면 친박계 정치신인들이 국회에 대거 입성하면서 소기의 전술적 성과는 어느정도 달성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덕분인지 그 난리를 겪고 친박계가 국민밉상으로 찍힌 후에도 얼마 안 가 치러진 새누리당 대표 경선에선 정작 (호남계란 특징은 있지만) 친박계인 이정현 의원이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물론 많은 정치인들은 막연한 의리나 정파보단 이익과 재선 가능성에 따라 움직이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친박 초재선이라고 불리는 그룹이 대중의 신뢰를 잃은 친박 말을 무조건 들을지는 의문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