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음이의어에 대한 내용은 비박(동음이의어) 문서 참고하십시오.
비박근혜 비박 / 반박 | |||||
<colbgcolor=#C9252B> 형성 | 2012년 | ||||
해체 | 2021년 | ||||
수장 | 이재오, 김무성, 유승민, 정병국, 홍준표 등 | ||||
정치적 이념 | 신보수주의[1] 보수주의 | ||||
경제적 이념 | 경제적 자유주의 | ||||
주요 정치인 | 나경원 오세훈 오신환 이준석 김종인 원희룡 주호영 권성동 하태경 태영호 김성태 정몽준 박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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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보수정당 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는 다른 계보에 속한 사람들을 뭉뚱그려서 일컫는 명칭.친박의 반대 개념들 중의 하나로 보수정당 정치인을 거론할 때 사실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다. 2000년대 참여정부나 이명박 정부 때는 친이 vs 친박 대결이 한창이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비박이라는 말은 거의 쓰이지 않았다.
그러나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당권을 쥔 친박계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공천에서 상당수 배제되어 위축된 친이, 중립&독자파, 소장파, 상도동계[2] 등 친박에서 이탈한 일부 인물들을 묶어 언론에서 본격적으로 '비박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따라서 하나의 동질한 집단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는 표현이다. 물론 강경파 위주인 친박에 비하면 온건파나 중도파가 많다고 평가받지만 같은 비박계 내에서도 다양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친박의 반의어로 비박계라고 할 수는 있지만 비박 자체가 하나의 계파로 분류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크게 친이(친이명박계), 친홍(친홍준표계), 친유(유승민계), 친무(김무성계), 소장파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소장파 내에서도 성향이 나뉠 수 있고, 비박에 속하는 집단인 친이, 친홍, 친유, 친무, 소장파에서 두 개 이상의 계파에 속하거나 무계파인 사례도 존재할 수 있다.[3]
대표적인 비박계 인사로는 친이계의 좌장인 이재오, 정두언[4] 전 의원, 박진, 나경원, 정병국[5], 장제원, 주호영, 권성동[6] 의원 같은 친이계가 있고, 친이계는 아니지만 홍준표[7] 자유한국당 당대표나, 박명재, 정몽준 전 의원 같은 인사도 대표적인 비박계 인사에 속한다. 그 외 권영세 통일부장관[8], 김무성, 유승민, 유의동, 홍철호, 전여옥 前 의원처럼 '원조 친박'이었다가 박근혜 대통령과 사이가 멀어져 대표적인 비박계 인사가 되는 소위 '탈박, 짤박' 인사도 꽤 거론된다.
20대 총선 시즌 중에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진영 前 보건복지부장관도 원래 대표적인 친박계 인사였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노인 기초연금 공약을 후퇴시키자 박 전 대통령과 대립하다가 친박에 의해 자신의 지역구였던 서울 용산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러자 진영은 새누리당을 탈당해 더불어민주당으로 넘어와 민주당의 용산구 후보로 20대 총선에 나왔고 보란듯이 당선돼 살아남았다.
그리고 김무성 전 대표의 측근인 김성태, 김학용, 김용태[9], 하태경, 오신환, 강석호 의원, 황진하 전 새누리당 사무총장[10] 등도 비박계로 분류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하던 시절 직접 영입했지만 이후 가치관에서 차이를 드러내며 자신을 멀박으로 언급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도 비박계로 분류된다.
그리고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도 본래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에 큰 공을 세운 인사였으나, 자신의 사명이라 생각하는 경제민주화 노선이 버림받자 박근혜 대통령과의 연을 끊고 더불어민주당으로 넘어갔다. 앞에서 이야기한 진영 전 장관의 더민주 입당도 김종인 의원의 작품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보면 알듯이 원래부터가 비박계인 사람도 많지만, 반대로 원래는 친박이었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박 대통령과 반대되는 가치관이나 정책 등으로 부딪히게 되어 사이가 멀어지고, 비박이 되는 경우도 꽤 있다.[11] 즉, 지금까지 친박으로 분류되던 사람들도 언제 비박이 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외 내용은 친박, 친이 문서도 참조하면 도움이 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며 박근혜의 레임덕이 시작되면서 비박에게 더욱 힘이 실리는 듯 했으나 박근혜가 3차 대국민담화에서 유시민 말대로 번역이 필요한 담화문을 내면서 탄핵에 대한 입장을 놓고 우왕좌왕하는 중이다. 다만 아직도 박근혜에 대한 탄핵의 키를 쥐고 있다는 평가가 많으며 비박의 행보에 박근혜의 운명이 달려있다는 평론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민주당을 장악한 친노 세력과는 먼 사이인 것 같지만 그 정치적 뿌리가 동일하다는 특징이 있다. 비박의 최종보스인 김영삼이, 노무현의 정치적 스승이었다. 노무현은 김영삼에게 공천을 받고 정치를 배웠으며, 현재 보수정당 국민의힘의 전신이던 통일민주당에서 정치 인생을 시작하고 김영삼을 졸졸 따라다녔다.[12] 그러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노무현이 김영삼과 갈라지게 되었다. 그 당시 노무현과 비슷한 또래이자 위치였던 사람이 바로 김무성이었다. 후에 김영삼과 노무현은 화해할 기회 자체는 많았으나 정치적 입장 때문에 끝내 그렇게 되지 못하였다. 즉, 의외이지만 노무현과 대립한 바 있었던 이회창, 이명박, 김무성은 사실상 노무현과 같은 뿌리 출신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홍준표 역시 김영삼에게 영입된 인사이다.[13]
2. 박근혜 탄핵 찬성과 분당
12월 1일 새누리당이 박근혜 대통령 4월 퇴진을 당론으로 채택한 이 후로 비박 내에서도 김무성 의원은 대통령이 4월 퇴진 약속을 한다면 여야 협상과 관계없이 탄핵을 할 필요가 없으니 불참한다는 입장이고, 반면에 유승민 의원은 대통령이 4월 퇴진 약속을 하더라도 여야 협상이 결렬된다면 탄핵에 동참한다는 입장이다.#12월 4일 격론 끝에 여야 합의 불발시 9일 탄핵표결 참여가 만장일치로 정해졌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점은 그동안 비박내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했던 비박계 좌장 김무성 의원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지분이 적었던 유승민 의원의 의견이 만장일치로 채택된 것이다. 박근혜 탄핵을 원하는 민심의 영향도 있겠지만 세력 구도 재편으로 볼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12월 9일 찬성 234표로 박근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다.#
12월 16일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비박 나경원이 패하고 친박 정우택이 당선되었다. # 12월 18일 유승민 의원은 “전권 행사 비대위원장 아니면 어떤 제안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그리고 비박과 중도모임에서는 찬성하였으나 친박에서 극구 반대하는 바람에 사실상 무산되었다. 12월 21일 결국 김무성 유승민 등 비주류 의원 35명이 탈당을 결의하고, 12월 27일에 분당하는 것을 선언했다. #
이후 대부분이 바른정당에 이적하며 자유한국당 내에서의 세력은 크게 약화되었으나, 5월 6일, 비박계 의원 12명이 복당하고 11월 2차 탈당까지 벌어지며 대부분 자유한국당에 흡수되며 어느 정도 건재하게 되었다.
3. 해체 직전까지의 세력
바른정당으로 분당된 이후에도 자유한국당에는 여전히 비박계가 많이 남아있었는데, 당시 홍준표 위주인 친홍, 주호영[14] 의원 위주의 친이, 김무성을 중심으로 한 친무[15], 남경필, 오세훈, 김용태, 김상훈, 권영세 위주의 소장파가 있었고, 바른정당에는 유승민, 정병국, 오신환을 증심으로 한 친유로 존재하였다.그러다 바른정당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바른정당이 국민의당과 합당하며 친이와 일부 친유 인사들이 탈당하였다. 당시 유승민의 오른팔이었던 류성걸이나 유승민과 가까운 김세연, 홍철호, 박인숙이 탈당하고, 오세훈, 김영우, 조해진 등 일부 친이 정치인 역시 탈당했다. 이후 바른미래당이 손학규 체제에서 갈등이 발생하자 친유 출신 정치인들은 새로운보수당을 설립하였다. 그 후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미래통합당으로 합당했다.
당시 황교안 체계에서는 친박, 친황이 주요 세력이 되었으나 21대 총선에서 압도적으로 패배하고, 중도 성향이 강한 김종인이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하면서 다시 당권파 주류로 성장하였다. 2021년 재보궐선거 당시 친이 정치인인 오세훈과 박형준이 승리하였고, 이준석이 당 대표로 취임하면서 확고한 주류로 바뀌었다.
윤석열이 국민의힘의 대선후보로 뽑히고 2022년에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윤석열 정부가 탄생하면서 국민의힘의 당내 역학관계는 친윤과 비윤으로 재편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4. 세부 계파[16]
일단 친홍을 제외하면 온건보수파들로 분류된다. 그 친홍마저도 극우하고는 거리가 멀다.[1] 친이명박계 성향.[2] 다만 상도동계 자체가 이미 YS가 은퇴한 1990년대 이후 세가 크게 위축되어 2010년대 와선 크게 거론되진 않는다. 또 상도동계에서 친박으로 넘어간 사람도 있는데, 친박계 맏형으로 평가받는 서청원 의원이 대표적.[3] 소장파 - 친이 - 친유에 속하는 정병국, 친홍 - 친무에 속하는 홍문표 등의 사례가 있다. 이철우 경상북도지사처럼 계파성이 옅은 인사도 있다.[4] 단, 정두언 의원은 한때 대표적 친이계 인물이었지만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을 비판해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도 사이가 멀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친박으로 전향한 것도 아니다.[5] 친유계로도 분류된다.[6] 친윤, 친무계로도 분류된다.[7] 아예 계파를 해체하자고 주장했었다. #[8] 단 권영세는 초선 시절에도 남원정과 더 가까운 인사였고, 친박이라고 하기는 애매한 인물이다. 사실상 소장파 인사에 해당된다.[9] 비박계 중에서도 초강성으로 꼽히며 본인은 스스로를 반박(反朴)이라고 자평한다. 2016년 20대 총선 패배 이후 혁신위원장 자리를 제의받으면서 대대적인 당 혁신을 예고했으나, 친박계의 반발로 혁신위원장 임명이 무산되자 "국민과 당원께 은혜를 갚고 죄를 씻기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그들(친박)과 싸우겠다", "국민에게 무릎 꿇을지언정 그들에게 무릎 꿇을 수는 없다"며 비통한 심정을 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여당 의원 중 가장 먼저 박 대통령의 새누리당 탈당을 거론하기도 했으며, 이후 친박 지도부가 물러나지 않자 본인이 먼저 남경필과 함께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물론 추후에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하긴 했다. 이후 남경필도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10] 사실 황진하 의원이 사무총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친박계의 도움도 꽤 컸으나, 나중에는 거리를 둔다.[11] 반대로, 원유철, 차명진과 같이 원래는 비박이었다가 이후 친박으로 전향한 사례도 있다.[12] 심지어 김영삼과 김대중이 갈라졌을 때도 노무현은 김영삼 쪽에서 끝까지 도와 유세를 했다. 당연히 김영삼과 갈라졌다지만 후에 민주당으로 노무현이 들어왔을 때 동교동계 입장에선 자기 보스의 라이벌의 부하가 들어온 셈이라 갈등이 끊이질 않았다. 1990년대 중반 김대중이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자 노무현은 이기택 등과 함께 통합민주당에 잔류하다가 후일 통추를 거쳐 1997년에야 국민회의에 합류했다.[13] 사실 이상할 것도 없는게 민주당계와 비박계는 반독재 세력이란 공통분모가 존재한다.[14] 단 주호영 의원도 바른정당 소속이었다가 다시 자유한국당으로 복귀했다.[15] 바른정당에 들어갔다가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하였다.[16] 크게 5개 부류[17] 당장 남원정의 정병국 전 의원은 친이, 친유로 분류되고,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은 친이로 분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