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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pad> | |
국민통합21 | |
<colcolor=#282D7B> 영문 명칭 | <colbgcolor=#fff>National Integration 21 |
한문 명칭 | 國民統合21 |
등록 약칭 | 통합21 |
등록번호 | 제98호 |
등록연월일 | 2002년 11월 11일 |
말소연월일 | 2004년 9월 13일 등록 취소 (성립요건 흠결)[5] |
중앙당사 |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70길 7 (여의도동 14-2, 동아빌딩 2층) | |
대표 | 공석 (해산 전) |
국회의원 | 1석 / 299석 |
[[광역자치단체장|{{{#282D7B 광역자치단체장}}}]] | 0석 / 16석 |
[[기초자치단체장|{{{#282D7B 기초자치단체장}}}]] | 0석 / 234석 |
[[지방의회의원|{{{#282D7B 광역의회의원}}}]] | 0석 / 682석 |
당 색 | 남색 (#282D7B) |
청회색 (#4F689A) | |
당원 수 | 48,397명[6] |
2004년 9월 13일 기준 |
1. 개요
|
국민통합21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정몽준 |
2. 역사
2002년 9월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몽준이 창당을 선언한다. 10월 16일 창당준비위원회가 결성되어, 1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되었고, 25일에 관보를 통해 공고되었다. 창당대회에서 정몽준이 당대표 겸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11월 11일에 선관위에 정식 정당으로 등록되어 15일에 공고되었다. 당시 발기인으로는 강신옥, 이철, 정상용, 최욱철, 서석재, 한영수, 이규정, 김진선, 조남풍, 김척[8] 등 정계와 군 인사들 뿐만 아니라, 강부자, 백일섭, 김상희, 윤석화, 최진실, 남궁원[9], 김흥국, 이만기, 김현정 등 연예인들도 다수 있었다. #[10] 1992년 아버지 정주영이 통일국민당을 만들 때 최불암, 강부자 등 여러 연예인들을 영입했던 것과 동일한 상황이었다.2002년 재보궐선거가 선거 데뷔전이었으며, 울산광역시 중구 선거구에 중구청장을 역임했던 전나명 후보를 공천하였다. #당시 후보선출 대회 결과는 한나라당 정갑윤 후보에게 밀려 낙선.
유력 대권후보로 떠오른 정몽준은 캐스팅보트로 부상하면서 여러 후보들과 연대 및 단일화 협상을 시작했다. 초반에는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한국미래연합이라는 1인 정당을 이끌고 있던 박근혜와 힘을 합쳐 보려 했지만, 두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향이 미묘히 다른 데다 정몽준 캠프에 있었던 강신옥 변호사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김재규를 변호한 이력이 있어 박근혜의 반감이 대단했다. 결국 두 사람의 연대는 무산되었고, 박근혜는 한나라당으로 복당해 이회창 캠프에 들어갔다.
박근혜와의 연대가 무산된 뒤 눈을 돌려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단일화 대표 선정을 놓고 경쟁을 벌이다가, 여론조사를 통해 노무현으로의 후보 단일화에 합의하였다. 한때 공동정부의 꿈에 부풀기도 하였으나, 투표 전날 정몽준이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 철회를 선언했고 그러고도 노무현이 당선되면서 당세가 급격히 약화되었다. 당장 대선 당일인 2002년 12월 19일 당직자 60여 명이 집단 탈당했고, 다음날에는 남아 있던 당직자 전원이 당직을 사퇴했다. #
이후, 2003년 재보궐선거에서는 자유민주연합, 하나로국민연합과 연합하여 하나로연합의 문기수 후보를 지원하였으나, 3위로 낙선했다. 정몽준은 2003년 6월 26일 국민통합21의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이어진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 지역구 3명을 공천하였으나 태생부터가 정몽준의 1인정당에 가까웠기 때문에 정몽준 단 1명을 제외한 모든 후보가 낙선하며 1석을 얻는데 그쳤고, 비례대표에선 0.6%를 득표했다. 이에 정몽준이 해외출장 중이던 5월 20일 당무회의를 열어서 자진 해산을 선언했다. 대표 권한대행을 맡던 이인원도 5월 21일 사퇴하면서 대표직이 공석이 되었다. 그러나 정당법 39조에 의하면 정당해산은 오직 정당의 대의 기관(=전당대회)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당무회의의 결정은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었다. 이후 법적으론 존재하지만, 사실상 활동정지 상태가 되었다. 한마디로 껍데기만 남아버린 셈이었다.
|
제17대 총선 국민통합21(통합21) 비례대표 선거포스터 |
2004년 9월 13일, '성립요건 흠결' 사유로 등록 취소되었다. 개정된 선거법상의 정당 존속 조건[11]을 유예 기간 180일 내에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후 정몽준은 무소속의 길을 걷다가 대다수의 당원과 함께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12]
2.1. 월드컵 마케팅
당대표 정몽준이 대한축구협회 회장이자 2002년 한일 월드컵과 인연이 깊은 인물이었던 만큼, 정당 홍보에서 월드컵과 축구를 많이 써먹었다.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은평구 갑 김신호 후보는 붉은악마 유니폼을 입는 모습을 선거 공보물에 사용했을 정도이다. |
국민통합21, 꿈은 이루어집니다.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국민통합21 홈페이지의 비례대표 후보자 홍보 문구 |
2004년 총선에서 비례대표 후보로 이인원 후보 등 4명을 출마시켰다. #당시 홍보 공보물 여기에서도 대놓고 월드컵 마케팅을 펼친다.
3. 상징
|
국민통합21 당기 |
4. 강령 및 정책
5. 역대 지도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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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최고위원
- 1대 정몽준 (2002-11-11~2003-06-26) (사퇴)
- 2대 신낙균 (2003-06-26~2004-02-04) (새천년민주당 복당)
- 대표권한대행 이인원 (2004-02-11~2002-05-21) (사퇴)
- 공석 (2002-05-21~2004-09-13)
- 정책위의장 전성철
- 당무조정실장 이인원
- 회계책임자 김정석
6. 선거 결과
<rowcolor=#fff> 연도 | 선거명 | 지역구 (비율) | 비례대표 (득표율) | 총 의석 (비율) | 결과 |
2004년 | 17대 | 1 / 243 (0.41%) | 0 / 56 (0.56%) | 1 / 299 (0.33%) | 원내6당 |
7. 기타
- 중앙당사 주소는 창당추진위원회 시절부터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공원로 101 (여의도동 12, CCMM빌딩 901호)였고, 2004년 1월 3일에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70길 7 (여의도동 14-2, 동아빌딩 2층)으로 옮겼다.
- 당명에 '국민'과 '21'이 공통적으로 들어가 비슷하게 느껴지는 건설국민승리21(국민승리21)과는 별 관계가 없다. 국민이야 원래 정당명에 자주 들어가는 단어이며, 21은 20세기 후반~21세기 초반에 유행했고, 보통 21세기를 상징한다. 국민승리21은 진보정당이고, 보수정당에 가까운 국민통합21과는 사상적으로 반대 방향에 있던 정당이다.
국민승리21과의 연관성을 굳이 찾자면 두 정당 모두 울산광역시에 어느 정도 지지세가 있었다는 점인데, 진보정당인 국민승리21이 울산에서 지지세를 얻은 이유는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을 비롯하여 공업도시인 울산에 자리잡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조직적 지지기반이 있었기 때문이고, 국민통합21이 울산에서 지지세를 얻은 이유는 역시 당연히 공업도시인 울산 경제를 지탱하는 가장 큰 기업 중 하나인 현대중공업의 실질적 오너가 정몽준이었기 때문이다. 정몽준의 지역구였던 울산 동구는 13대~17대 총선 내내 정몽준에게 5회 연속 과반득표 당선, 그것도 13대 단 한 번만 빼고 4회 연속 60% 이상의 득표로 당선이라는 엄청난 승리를 안겨준 지역구이지만, 지역의 정치적 성향은 보수세가 강하기는커녕 울산 북구와 함께 울산에서, 더 나아가 경상도 전체에서 가장 진보정당 지지세가 강하고, 민주당계 정당의 지지세도 상당히 높게 나오는 편에 속한다는 아이러니가 있다.[13][14]
8. 관련 문서
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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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정부 이후 |
[1] 정몽준, 이인원 등[2] 정몽준 등[3] 김민석, 신낙균 등[4] 김민석, 신낙균 등[5] 주요 인사들은 한나라당에 합류하였다.[6] 등록 당시 당원 수는 51,582명이었다.[7] 참고로 정몽준은 아버지 정주영이 창당한 통일국민당 소속으로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 적이 있다. 이듬해 아버지 정주영이 정계 은퇴하면서 동시에 탈당하였고, 이후 9년간 당적을 갖지 않고 무소속으로 의정활동을 해왔다.[8] 의문사한 김훈 중위의 아버지.[9] 이후 아들 홍정욱이 18대 의원으로 당선된다.[10] 다만 김흥국을 제외한 나머지 연예인들은 발기인으로 이름만 올리고 적극적인 선거운동에 나서진 않았다.[11] 과거의 지구당 제도가 시도당 제도로 개편되면서 5개 이상의 시도당 각각에 1,000명 이상의 당원을 보유해야 존속할 수 있게 되었다.[12] 이후 정몽준은 지역구를 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에서 서울로 옮겨 국회의원에 2번 더 당선된 것을 거쳐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박원순에게 패해 사실상 정계에서 물러났으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새누리당을 탈당하였다.[13] 이를 간단히 보여주는 사례로는 울산의 '지역구 국회의원은 (보수 정치인인) 정몽준인데, 구청장은 민주노동당'이었다. 정몽준이 울산 동구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20년(1998~2008년)중 지자체장을 직선으로 뽑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시행된 것은 후반의 10년(1998~2008년)인데, 이중 8년(1998~2006년)간 구청장을 배출한 것은 노동운동계 무소속(이후 민노당에서 활동함)이나 민노당이었다는 것.[14] 그나마 2006~2008년의 2년은 무소속으로 당선되었다가 이후 한나라당에 입당하는 정천석이 구청장이었으나, 이 사람은 동구청장에 각각 무소속, 한나라당, 더불어민주당으로 세 번 당선되었다는 특이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사람인 데다 애초에 평화민주당으로 정계에 입문한 사람이라 일반적인 보수 정치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한나라당 입당이 정몽준계로 활동하는 과정에서 보스를 따라 움직인 것으로 여겨지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