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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7 20:09:56

유영하

파일:국회휘장.svg 대한민국 국회의원 (대구 달서구 갑)
제21대
홍석준
제22대
유영하
현직
<colbgcolor=#e61e2b><colcolor=#fff>
대한민국 제22대 국회의원 당선인
유영하
柳榮夏 | Yu Young-ha
파일:15841_1_2.815.jpg
출생 1962년 10월 19일 ([age(1962-10-19)]세)
경상남도 부산시 부산진구 부전동
(現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전동)[1]
거주지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
현직 변호사유영하법률사무소 대표
제22대 국회의원 당선인
본관 풍산 류씨(豊山 柳氏)
학력 대구서부국민학교 (전학)
군포국민학교 (53회 / 졸업)
안양중학교 (27회 / 졸업)
수성고등학교 (23회 / 졸업)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행정학 81 / 학사)
소속 정당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지역구 대구 달서구 갑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22
소속 위원회
병역 육군 육군본부 사령실 병장 만기전역
경력 제34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24기
청주지방검찰청 검사
인천지방검찰청 검사
서울북부지방검찰청 검사
유앤정 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
유영하법률사무소 대표
법무법인 하우림 소속변호사
한나라당 군포시 당협위원장
한나라당 전략기획위원회 부위원장
한나라당 박근혜 최고위원 법률특보
한나라당 박근혜 대선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법률지원단장
새누리당 군포시 당협위원장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박근혜 정부)
포항제철 법률고문
법무법인 산지 변호사
제22대 국회의원 (대구 달서구 갑 / 국민의힘)
링크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약력3. 정치 행적4.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4.1. 박근혜 파면 이후4.2. 박근혜 구속 및 사면 이후
5. 논란6. 소속 정당7. 선거 이력8.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변호사이자 전 검사이다. 변호사유영하법률사무소 대표이다.

2005년 이후 박근혜의 법률분야 참모로 두각을 나타내 정치 인생 동안 줄곧 박근혜를 지지하고 보좌하였다. 박근혜가 탄핵된 이후에도 계속 꾸준히 접견하였다. 2016년 10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발발하자 박근혜의 개인 변호인을 맡아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2017년 3월 31일 박근혜가 구속된 이후 채명성과 함께 박근혜의 변호를 담당하고 있는 변호사가 되었다. 다만 본격적으로 재판이 시작된 2017년 5월부터 변호인이 많이 추가되었는데, 재판정에서는 여전히 유영하가 혼자서 변론을 주도했다.

박근혜가 구속된 후에 자신과의 면회를 허락한 유일한 인물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사실상 대리인으로 활동했다. 박근혜가 사면된 후에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한 윤상현 의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1회 통화는 했지만, 만나지 못한 이유로 유영하를 들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나려면 유영하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다만 본인이 유영하가 싫어서 그를 거치기가 싫어서인지, 아니면 유영하가 윤상현을 막아서 그런 것인지, 구체적인 이유를 말하진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출소 및 사면 된 이후에도 빠짐없이 옆에서 보좌하고 있다.

2. 약력

1962년 10월 19일, 경상남도 부산시 부산진구 부전동(現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전동)에서 태어났다. 다음 해 가족들의 연고인 대구로 이사하였고, 대구서부초등학교에 입학하여 6학년 때 경기도 군포시로 이주하여 군포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안양중학교를 졸업하고 1980년 수원 수성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1년,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81학번)에 입학했다. 1984년 2월 7일 육군에 입대하여 육군본부 사령실에서 행정병(일반행정 특기)으로 복무했고, 1986년 5월 1일 병장으로 만기전역했다.

연세대학교 졸업 후 1992년 30살의 나이로 제3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5년 사법연수원을 제24기로 수료한 후 창원지방검찰청에 발령을 받아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2003년 양길승 대통령 제1부속실장의 '청주 키스나이트클럽 향응 사건'이 불거졌을 때, 과거 이 업소 사장으로부터 2차례에 걸쳐 180만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받은 사실이 드러나[2] 그해 11월 법무부로부터 감봉 3개월의 징계 처분을 받았다. 이후 2004년 초 징계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하자 사직했다.[3]

2004년 2월 25일에는 유앤정합동법률사무소를 개설하며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2007년 법무법인 하우림에 입사할 때까지 변호사유영하법률사무소를 운영했다.

3. 정치 행적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때 한나라당 후보로 경기 군포에 출마하며 정계 진출을 노렸으나 낙선했다. 김부겸 후보에게 무려 17,000 표 차이로 참패한 것. 이후 한나라당 정치발전위원 등을 맡았고, 2005년 8월 박근혜 당시 당 대표에 의해 한나라당 전략기획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발탁됐다.

2007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법률지원을 맡아, 박근혜의 법률분야 참모로 두각을 드러냈다. 당시 박근혜와 경선 중이었던 이명박 후보 측의 네거티브 공세에 대응하는 역할[4]을 맡았으며, 이명박이 연루된 BBK 사건의 핵심인물인 김경준 씨를 미국 교도소까지 찾아가 기획입국시켰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후보는 BBK 사건 무혐의를 받았으니, 설레발에 비해 소득은 별로 없는 편이었다.

그 후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또 낙선하고 말았다. 김부겸과 맞붙어서 또 한 번 나가떨어진 것. 참고로 제18대 총선 당시 친박계 의원들의 공천 탈락에 항의하는 표시로 한동안 전국 지원유세를 거부했던 박근혜가 열흘간의 칩거를 깨고 가장 먼저 한 게 바로 유영하의 선대본부 개소식에 참여한 것이었다. 그렇게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떨어졌으니 스타일을 완전히 구긴 셈이다.

2012년 대선 때에 박근혜 후보 캠프의 네거티브 대응팀을 맡는 등, 박근혜의 핵심 측근으로 자리 잡았다. 2011년 1월에는 토마토저축은행부행장으로 선임되는 등 낙하산 인사를 타기도 했다. 그러다가 2011년 9월 토마토저축은행이 영업 정지되기 직전에 퇴사했는데, 이에 대해 영업 정지를 먼저 알고 퇴사한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강적 김부겸이 대구 수성갑으로 지역구를 옮겼기 때문에, 이번 만큼은 당선이 유력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여당 후보로서의 프리미엄을 과시하며 보육시설 확충, 금정·수리산역 터널형 방음벽 설치 등의 공약을 내세웠는데 이것이 지역주민들에게 상당히 먹히기도 하였다. 게다가 경쟁자인 이학영 후보는 군포 출신도 아니었으며,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 활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기업 회장집 담을 넘었다가 실형을 선고받은 사실도 보도되었기 때문에, 군포 토박이에 '젊고 건전한 일꾼'으로 포장된 유영하의 당선은 거의 기정사실처럼 여겨졌다. #

하지만 이번에는 이학영에게 또 패하고 말았다. 바로 옆 선거구인 시흥갑에서는 새누리당 함진규 후보가 민주통합당 현역의원인 백원우를 꺾고 당선되었는데, 함진규보다 훨씬 더 좋은 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기력하게 패했으니 여러 모로 비교가 되었다. 이로써 2004년부터 2012년까지 (그러니까 제17대 총선부터 제19대 총선까지)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소속으로 경기 군포에 출마했으나 세 번 모두 고배를 마시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지금까지도 친박 가운데서 대표적인 '원외' 친박 인사로 분류되는 이유.

고려할 점은 군포시가 전통적인 새누리당 약세지역이라는 것이다. 제 18대 대선만 하더라도 군포에서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7.7% 차이로 이겼다. 유영하는 이보다 적은 격차인 2.6% 차이로 이학영에게 패배했다. 유영하가 송파로 지역구를 옮긴 뒤에 치른 제20대 총선에서 군포는 구도심 위주인 군포갑과 산본신도시 위주인 군포을로 분구되었다. 군포갑에서는 충북에서 지역구를 옮긴 새누리당 심규철 후보가 726표(1.1%) 차이로 석패했다. 차라리 군포에서 인지도가 높은 유영하가 송파 대신 분구된 군포갑에 출마했더라면 3전4기 끝에 꿈에 그리던 국회 등원에 성공했을 수도 있다. 도덕성에 관한 지적이 많았지만 여러모로 정치운도 따라주지 않는 정치인이다.

2013년에는 박근혜의 하나뿐인 올케 서향희 변호사가 설립한 법무법인 새빛에서 파트너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리고 2014년 3월부터 2016년 1월까지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차관급) 으로 역임했으나 구설수가 있었다. 인권위 활동 당시 논란에 대한 건 후술. 인권위 퇴직 후 법무법인 산지에 입사했으며,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재개설했다. 2016년 4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내에 공천 칼바람이 불어 닥친 와중에 새누리당의 대표적인 표밭으로 분류된 송파구 을 후보로 단수공천 받으며 ‘진박 중의 진박’ 임을 증명해 보였으나, 김무성 대표의 이른바 새누리당 대표 직인 날인 거부 사태 이후 당내 무공천 방침에 따라 출마를 포기하는 아픔을 겪었다.

2016년 11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변호인을 맡았으며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과는 매우 친하다고 전해진다.

2022년 3월,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에 따르면 대구광역시장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으며 출마를 확정 지을 경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원할 것이라고 한다.

2022년 4월 1일, 대구광역시장 출마를 선언하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후원회장을 맡을 것이라고 한다. 박 전 대통령과 충분히 상의한 끝에 출마를 결정했으며 직접적인 선거운동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
2022년 4월 8일,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과 보도 자료를 통해 본인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영상 메시지를 공개했다. #

그러나 2022년 4월 23일 공천관리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경선에서 18.62%를 득표하며 3위로 낙선해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과반에 육박한 홍준표 의원은 물론 친박-친윤으로 알려진 김재원 전 최고위원에게도 크게 밀렸다. #

2022년 5월 1일, 대구 수성구 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 그러나 5월 10일, 공천에서 탈락했다. #

2024년 1월 18일, 대구 달서구 갑 국회의원 선거출마를 선언했다.

2024년 3월 5일, 대구 달서구 갑 국회의원 후보로 단수공천받았다.

4.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2016년 11월 검찰이 박근혜 대통령을 수사하기 시작하자, 대통령 담당 변호인으로 선임되었다. 그런데 대통령 자리가 걸린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면 너무 경량급 변호사가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웬만한 정치인들은 명함도 못 낼 정도의 정치 경력을 쌓은 사람이며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을 입고 유권자 상당비율을 고정 지지층으로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특급 변호사를 선임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소위 친박이라고 불리던 법조인들 중에서만 봐도 대법관을 지낸 안대희를 비롯하여,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총장, 하다못해 고검장급을 지낸 변호사들만 수십 명에 이른다.

한편으로 유영하가 변호를 맡게 된 것은 대한민국 10대 로펌을 비롯한 대부분의 로펌에서 박근혜 변호를 맡지 않겠다고 공언한 탓도 있다. 중요성과 유명세에 비해 큰 수익이 날 수 있는 사건이 아닌데다 승소 가능성도 낮고 이미지만 실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5]

박근혜 변호에 대한 수임료로 500만원을 받았으며, 박근혜 대통령의 사비에서 받고 있다 한다.# 기사에도 있지만 사건의 중요함을 감안하면 사실상 무료변론에 가깝다. 심지어 그 돈이나마 받은 것도 첫 한 달뿐이고 그 후엔 진짜로 무료변론을 해주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유일하게 수임료를 받은 변호사이다. 탄핵 심판 당시 대리인들은 돈을 안 받고 변론하였다고 한다.[6]

4.1. 박근혜 파면 이후

애초에 검찰조사에 대비한 변호인이었으나 탄핵소추안 가결 후 진행된 탄핵심판 중간에 일종의 구원투수로 합류하였으며, 결국 탄핵이 인용된 후 검찰조사에 대비하기 위한 변호인단에 다시 합류하였다.

2017년 3월 21일로 예정된 박근혜 전대통령의 검찰조사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능력 있는 변호사로 보기는 어렵지만, 박근혜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박근혜에 대한 충성심이 높기 때문에 계속 기용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조사 이후 유영하는 박근혜 대리인단에서 사실상 업무를 독점하고 있다. 특히 박근혜가 구속될 시점에서는 유 변호사만이 유일하게 박근혜와 접견할 수 있었고 다른 변호인과 접견을 같이 하거나 조사 내용을 공유하지 않음은 물론 그들의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고 한다. 유영하가 과거 박근혜를 감싸고 있었던 문고리 3인방의 대타가 된 것이다.[7] 이렇게 이상한 상황이 벌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박근혜 대리인단 간에 변론 전략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유영하가 변호인단에서 엑스맨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갈등에 대한 힌트가 썰전에서 나왔는데, 전원책 변호사가 조심스레 밝힌 바로는 대부분의 변호인단이 박 전 대통령에게 이미 드러난 사실관계는 인정하고 법리 싸움으로 넘어가자는 지극히 상식적인 대응을 주문한 반면, 유독 한 변호사만이 대통령은 무죄니까 계속 무죄를 주장해야 된다고 강변하여 서로 간의 갈등이 심하다고 말했는데, 이때 무죄를 주장한 변호사가 바로 유영하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원책은 필사적으로 특정 변호인을 가리키는게 아니니 예단은 하지 말아달라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즉, 박근혜는 전략적으로라도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는 변호인단의 권유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있으며 잘못이 없으니 계속 부인전략으로 가야 한다는 유영하의 주장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법조인들의 의견에 의하면 유영하식의 전략은 결코 박근혜에게 유리하지 않으며 재판에 들어가면 뻔히 증거가 있는데도 범죄사실을 부인하고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형량만 가중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4.2. 박근혜 구속 및 사면 이후

박근혜는 구속된지 10일 만인 4월 9일 유영하와 채명성제외한 모든 변호사를 해임했다.

피고인 박근혜에 대한 재판이 2017년 5월 23일 시작됐으며 특검법에 의해 6개월 이내에 1심 선고를 내려야 한다. 유영하는 박근혜의 대표 변호사로 나섰으며, 이 사건과 관련된 검찰에서 증거로 제출한 진술조서들을 거의 모두 부인하고 참고인을 모두 법정에 불러달라고 요구하였다. 재판부는 한편으로 박근혜 관련 재판을 빨리 진행하기 위해 주 4회 심리를 열기로 했는데, 이에 대해 유영하는 박근혜의 건강을 빌미로 무리한 일정이라고 반발하기도 했다.

결국 2017년 10월 13일, 박근혜의 구속 기간은 6개월 더 연장되었다. 그러므로 박근혜는 2018년 4월까지 서울구치소에 계속해서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에 유영하는 10월 16일에 법정에서 눈물을 쥐어짜며 "법치주의가 무너지거나 형해화되어 광장의 광기와 패권적인 정치권력의 압력으로 형식적인 법치주의가 부활하면 인권의 역사는 후퇴할 것이고 야만의 시대가 되살아날 것이라는 두려움을 재판부께서는 진정 생각하지 않으셨습니까. 이제 저희 변호인들은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과 피를 토하는 심정을 억누르면서..." "허허롭고 살기가 가득한 이 법정에 피고인을 홀로 두고 떠난다."고 하며 변호인단 총 사퇴를 발표했다.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으로 출범하기 하루 전 탈당하고 미래한국당에 합류해 21대 총선 비례대표 후보로 등록했다가 결국 공천에서 탈락했다. 유영하의 컷오프에 박근혜는 '두 번이나 칼질을 당했다'며 유감을 표했으나, 보수 통합을 바랐다던 박근혜의 입장과 대치되는 상황이다.# 이에 실무를 맡는 채명성 외엔 박근혜의 입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 유영하 뿐이라, 유영하가 정계에 돌아오기 위해 박근혜의 입지를 사용한 게 아니냔 의심도 있는 상황이다. 이 의심은 유영하가 대구광역시장 출마를 선언하고, 박근혜가 대놓고 지지선언을 하면서 사실이 되었다. 다만 박근혜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체급차이 때문인지 홍준표에 밀려 경선에서 떨어졌다.

지방선거 낙선 이후에는 본업인 변호사 활동과 함께 대구에 가주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다. 박근혜가 종종 TV에 모습을 비추거나 인터뷰에 나가면 항상 동행할 정도로 박근혜의 신뢰를 받고 있다. 이후 2024년 한동훈을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가 박근혜 대통령을 언급하고 박근혜를 예방하면서 동시에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결국 22대 총선 대구 달서구 갑에 현역의원인 홍석준을 꺾어버리고 단수공천을 받는데 성공했다.[8]

박근혜에 대한 TK의 지지가 여전하고 유영하 본인도 지방선거 이후로 대구에서 꾸준히 밭을 갈아왔기 때문에 무난한 당선이 예상된다.[9]

이후 22대 총선에서 득표율 71.39%로 권택흥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에 성공했다. 20년간 국회의원 선거에 6번, 시장 선거에 한 차례 도전하는 등 선거에서 7전 8기 끝에 원내 입성에 성공한 셈. 거기에 박근혜의 노골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있어 초선임에도 체급이 상당히 올라있는 상황이라 추후 최고위원이나 차기 대구광역시장 출마[10] 등 그야말로 앞길이 훤히 열리게 되었다.[11]

5. 논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유영하/논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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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2004 - 2012 정계 입문


[[새누리당|
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2 - 2017 당명 변경


[[자유한국당|
파일:자유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7 - 2020 당명 변경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20 탈당[12]


[[미래한국당|
파일:미래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20 입당


[[미래통합당|
파일:미래통합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20 합당[13]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2020 - 현재 당명 변경

7.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군포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44,609 (35.99%) 낙선 (2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45,999 (47.09%)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새누리당|
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
62,132 (48.67%)
2024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달서 갑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60,070 (71.39%) 당선 (1위) 초선[14]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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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산광역시 서면에서 태어났다는 보도가 있다. #[2] 당시 인천지방검찰청 특수부 검사[3] 이와 관련해 그는 향응을 제공받은 사실이 없으며, 사장 이씨가 검찰 직원들과 회식자리에 참석해 20만 원 상당의 식대를 임의로 계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해명이 사실이라 해도, 기업인과 공무원이 식사자리를 갖는 것 자체가 대가성을 염두에 둔 자리로 보일 여지가 있으므로,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4] 이명박에 대한 이른바 '뒷조사 담당'[5] 이런 이유 때문에 탄핵 소추안 가결 이후 구성된 대리인단도 사건의 중요성에 비해 중량감이 떨어지는 변호사들로 구성되었다. 그나마 탄핵심판 후반에 합류한 이동흡 변호사가 나름 거물이었는데, 정작 이분은 심판 과정에서 박근혜에게 크게 실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결국 심판결과에 승복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6] 그래도 변호인단의 규모만은 큰 편이어서 박근혜 대통령이 지출해야 하는 총비용은 의외로 크다.[7] 주군인 박근혜에게 직언을 하지 않고 오히려 눈과 귀를 막아 현실도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들은 충신이 아닌 간신이다.[8] 이와 동시에 박근혜의 또다른 복심으로 꼽히던 도태우 역시 공천을 받는데 성공했으나 5.18 관련 망언 논란이 퍼지자 공천을 취소당했다.[9] 특히 예비후보 시절에 박근혜가 지원유세를 해주고 공천 확정 이후에도 한동훈을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가 수차례 지원을 오는 등 TK지역 후보임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엄청난 지원을 받고 있다. 사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영하 본인부터가 국민의힘의 험지인 군포에서 한끗차이로 패배했을 정도로 후보로서의 경쟁력은 상당한 편이다.[10] 현직 대구시장인 홍준표는 21대 대통령 선거 출마가 유력한 인물이라 지방선거에는 불출마할 가능성이 높다.[11] 당장 대구 시내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 중 원내대표인 윤재옥이나 전직 대구시장인 권영진, 전직 경제부총리인 추경호 정도를 제외하면 인지도에서 유영하보다 앞서는 사람이 없다. 아무리 탄핵으로 파면당했다지만 전직 대통령이 대놓고 수행실장처럼 쓰는 사람이면 일반적인 초선의원보다는 체급도 당연히 높고 당 입장에서도 좋든싫든 대우를 해줄 수 밖에 없다.[12] 미래한국당 합류를 위한 탈당[13] 미래한국당이 미래통합당에 흡수 합당[14] 선거이력 사상 첫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