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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7 15:46:07

우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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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제4대 민정수석비서관
우병우
禹柄宇 | Woo Byung-woo
파일:우병우 전 수석_2023년 6월.jpg
출생 1966년 1월 28일 ([age(1966-01-28)]세)
경상북도 봉화군 상운면 가곡리 반송마을[1] 891번지[2]
거주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3]
본관 단양 우씨 (丹陽 禹氏)[4]
현직 변호사우병우법률사무소 대표
재임기간 박근혜 정부 제4대 민정수석비서관
2015년 1월 26일 ~ 2016년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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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205c><colcolor=#fff> 부모 아버지 우용구, 어머니 남동생 우병수 우병진
배우자 이민정[5]
자녀 장남 우주성, 차남 우현성, 장녀 우지원
신체 174cm, 63kg, O형
학력 영주국민학교 (졸업)
영주중학교 (졸업)
영주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6] (법학 / 학사)
병역 면제 (고도근시)
종교 불교[7]
경력 제29회 사법시험 합격
제19기 사법연수원 수료
춘천지방검찰청 영월지청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금융조세조사2부장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중수1과장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변호사우병우법률사무소 대표
대통령비서실 민정비서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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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일생3. 논란4. 평가5. 영향6. 여담
6.1. 성품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법조인.

박근혜 정부 시기 제4대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재임했으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으로 지적되며 사임했다.

2.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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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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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우병우 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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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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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김수남 이영렬 김주현 윤갑근 김진모
정점식 전현준 안태근 김기동 노승권
유상범 추명호 최윤수 손영배 임관혁
박길배 권익환 이동열 }}}}}}}}}

4. 평가

국정 농단을 사전에 방지할 책임도, 사후에 처벌할 책임도 그에게 있었다. 우 前 수석이 민정수석 본연의 자세를 조금이나마 지켰다면 그 자신은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겠지만 박근혜 정부가 지금 같은 처지로 굴러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최순실 사건의 최대 책임자 중 한 명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조선일보 2017년 2월 23일자 사설#[8]
무능하고 오만한 박근혜 정부의 상징.
전원책
우 전 수석의 대통령에 대한 그릇된 충성심과 과도한 권력욕이 박근혜 정부의 파국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향신문 2017년 4월 7일자 기사 [단독]우병우, 아직도 “대통령님…” 공직 망각한 맹목적 충성
돌이켜보면 ‘박근혜 국정 농단 사건’은 시작도 마무리도 우병우였다. 우병우는 분명 거악의 행동대장이었고, 견제와 감시라는 본연의 임무보다 권력자가 물라면 무는 사냥견 역할에만 몰입해 국정을 혼란시켰다.
[양선희의 시시각각] 법이 비껴간 우병우의 죄
지난 1년 사이에 포토라인에 4번째 섰습니다. 이게 제 숙명이라면 받아들이고 또 헤쳐나가는 것도 제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2017년 11월 29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포토라인 앞에서 기자들에게#[9]
박근혜 정부 때 민정수석이었던 우병우 씨는 역대 정권에서 가장 실패한 ‘민정수석’이란 평가를 받는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조사 과정에서 우씨의 장모가 최순실(최서원)씨와 골프를 쳤다는 증언이 여러 차례 나왔다. 우씨의 청와대 입성이 최씨를 통한 것이란 의혹이 제기된 이유다. 우씨는 시치미를 뗐고, 2014년 12월 ‘정윤회 문건’ 사건 전까지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고만 했다. 민정수석은 국정원·검찰·경찰·국세청 등 모든 권력 기관으로부터 정보를 받는다. 그런 사람이 최씨의 존재를 몰랐다는 것은 누구든 납득할 수 없다. 큰 권한이 없던 당시 이석수 특별감찰관도 인지했던 사건을 우씨가 몰랐다면 무능하거나 거짓말이다.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5. 영향

우병우 ‘봐주기 수사‧기소’, 검찰개혁 여론에 기름 부어
[사설]‘우병우 라인’ 인사조치, 검찰개혁 시작이다
"우병우 영장 기각 '자초'"…커지는 검찰 개혁 목소리
우병우 불구속, 오히려 '검찰 개혁' 물꼬 트나
우병우 앞에선 무뎌지는 檢
우병우, 검찰개혁 일등공신 되나?

검찰청에서 폭로된 황제 수사 및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 회장이 구속되는 와중에도 유유히 구속을 빠져나갔던 전적으로 인해 검찰 권력의 강대함을 여과 없이 잘 보여준 인물이다. 검찰 내에서도 우병우의 입지와 영향력은 매우 강했다.

하지만 이러한 행적들 때문에 우병우는 검찰 개혁은 이제 필수 불가결한 상황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산증인이 되면서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인물이기도 하다.

우병우가 자신의 친정이었던 검찰에 준 자폭은 엄청났는데, 우병우를 기점으로 대한민국 검찰과 검사들은 사실상 검찰 개혁에 저항할 명분과 당위성 자체를 크게 상실해 버렸다.
파일:external/image.news1.kr/medium.jpg파일:external/60a660287d95499a7aab1a756ce3e6cff96b743658dc050a673da835ce1dd4c6.jpg파일:external/00c2a34e69c6da716309ab004b3b551f9fb6fd95a3875d3d0caf6f26d57e5408.jpg파일:external/6d39b65fb5b182899355cc29346b104401b3f21319a563b3bc1258095e63d7ac.jpg파일:external/8f47b720ce5d246ab1234f9ef7607b344a5e1ebe65470d8d5af6274271e61904.jpg
결국 검찰은 19대 대선에서 그 누구도, 심지어 검찰 출신이였던 홍준표조차도[10] 초강경한 검찰 개혁을 외치면서 그 누가 되었던 검찰 개혁을 끝끝내 피해 가지를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후,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되어 검찰개혁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그나마도 2022년 이후로는 조용히 매스컴에서 내려간 사람이다.

출세욕이 강한 사람에게 있어 최악의 굴욕이 바로 무관심이고, 반성하는 것인지 본인이 눈치가 빠른지는 알 수 없으나 2022년 이후로는 출마나 요란한 인터뷰 같은 어그로를 끌지 않고 말 그대로 찌그러져서 조용히 개인 로펌을 운영하는 상황이다. 어쨌든 언론접촉도 피하며 잊혀져 가는 인물이 되고 말았다. 민정수석의 말로치고는 너무나 초라하다. 2023년 월간중앙 인터뷰가 사실상 대외활동의 끝이다.

6. 여담

6.1. 성품


[1] 단양 우씨 집성촌이다.[2] 이 지번에 현재도 생가가 남아 있는데, 주인은 바뀌었고 리모델링된 상태라고 한다.[3] 장모 김장자(강남구 논현동 24-11 알파임하우스)를 제외한 처제들이 모두 같은 아파트에 거주한다. 또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최순실, 최순득도 이 아파트에 거주했었다.[4] 문희공파(文僖公派)-상서공(尙書公) 31세 병(柄) 항렬.[5] 정강중기 회장 이상달의 딸이다.[6] 사법학과 84학번[7] 출처.[8] 조선일보는 최순실 게이트 초기부터 우병우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와 박근혜 정부의 불화 문서로.[9] 그런데, 행간을 읽어 보면, '내가 설마 검찰에 꼬리를 잡힐까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법망을 빠져나갈 자신이 있다'라는, 한 점 죄의식도 없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10] 사실 홍준표는 검사 시절 부패사건을 맡았을 때 봐주기 없는 강경한 수사방침을 내세웠다가 윗선에게 제대로 찍혔고, 결국 검찰에서 반강제로 떠나야 했다.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도 살기 위해 그랬다고 할 정도. 홍준표가 검사출신이면서도 검찰개혁을 부르짖는 이유는 본인이 검찰의 온갖 부조리와 도 넘는 짓들을 몸소 경험했기 때문인 것이다.[11] 참고로 저 怯 자는 '겁낼 겁'字다.[12] 박지원은 김대중 대통령 말기에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고 이 때문에 대북송금 사건에 연루되어 고생한 이력이 있다.[13] 이에 대해 유시민은 "승지와 도승지가 바뀐 꼴"이라고 비유했다. 승지 도승지 비유가 와닿지 않는다면, 대략 군대로 치면 국방부장관소장(투스타)에게 전화해서 "저기 지금 나오실 수 있나요?"라고 물어보고 허가받고 나서 오는지 못 오는지 듣고 대답(보고)했다고 생각해 보자. 행정부의 온갖 업무와 사정과 인사를 담당해 온 우병우의 힘이 비정상적으로 막강했다는 증거다.[14] 거기다 1심, 2심 대법원 판결 전부 무죄 확정이었다.[15] 과는 다르지만 둘 다 서울대 출신의 고학력자들이다.[16] 장세동과 닮아서 제5공화국에 캐스팅된 이력도 있다.[17] 검찰 내에서 상당한 요직을 거치며 잘 나갔던 형과 다르게 9급 서기보부터 시작해서 7급 주사보를 맡고 있었다.[18] 검사(법조인)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대다수의 검사는 우리 주변의 자잘한 사건이나 조직폭력배를 잡는 형사 위주의 사건이고, 우병우의 특수부는 검찰 조직 내에서도 10%였다. 그중에서도 우병우 수준의 권력은 1%가 안 될 수준으로 초엘리트만 가능한 자리다.[19] 목에 깁스를 한 것처럼 워낙에 뻣뻣하고 고개를 숙일 줄 몰라서 붙었다고 한다.[20] 우병우의 승진에 강력하게 제동을 건 사람이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하던 조응천이었다고 한다. 조응천은 우병우와 비슷한 TK이고, 서울대 법대 출신이지만 검찰 내부에서 우병우가 오만방자하다는 평판이 너무 지배적이라서 검찰 정기 인사 때 우병우의 승진에 제동을 걸었다고 밝혔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응천이 청와대에서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으로 잘리자마자, 검사장에서 탈락해서 변호사를 하던 우병우가 청와대로 들어온다.[21] 사실 이 부분은 의심되는 것이 있는 것이 우병우는 주민등록상으로는 빠른 1967년생이지만 어릴 때부터 학교(국민학교부터)를 1965년생들과 다녔기 때문에(서울대 84학번. 우병우의 친구로 알려진 사람들도 죄다 1965년생이다.) 실제 나이는 출생신고가 1년 이상 늦어진 빠른 1966년이나 1965년 생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실 정치계만 봐도 1950~1960년대생 중에 이런 식으로 주민등록은 늦게 하고 학교는 실제 나이대로 다닌 사람들이 굉장히 많고, 1970~1980년대생 중에도 종종 있다. 즉 우병우는 늦은 출생신고의 효과로 천재 이미지 조성이라는 득을 톡톡히 본 케이스다. 당장 우병우와 84학번 동기인 김소영이 우병우와 같은 사법시험 29회의 수석 합격자였고, 같은 회차에 3학년 합격자(85학번)인 안태근도 있었는데 우병우가 출생신고 덕에 4학년 합격자이면서 최연소 타이틀을 먹었다.[22] 군대에서조차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서로 존대한다. 육/해/공 사관학교 선배보다 후배가 먼저 진급해 지위가 뒤바뀐 상황에서 서로 만나는 경우가 자주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고성균 장군의 유튜브 채널에서 잘 설명한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행정 부사단장이 이 업무를 맡아주세요"와 유사하게, 사적인 자리에서는 "선배님 지난번에 감사했습니다" 등으로 님자를 붙여서 대화를 나눈지만, 우병우는 상하관계가 엄격한 군대에서조차 지키고 있는 상호 존대 원칙을 완전히 무시해버린 오만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23] 당시 재선 고령군수였던 이태근은 1947년생으로, 우병우보다 무려 20살 연상이며, 한나라당 소속으로 당선되었다.[24] 이순혁, '검사님의 속사정', 2011.에 나온다.[25] 우병우가 갑자기 중수1과장으로 영전하는데는 당시 대구지검장 - 특수부장으로 인연이 있던 정동기 前 민정수석이 직접 힘을 써 주었다고 한다.[26] 그가 모셨던 상관들을 보면 총리(황교안), 민정수석(김영한) 같은 검찰 출신들도 있었고 이 들은 우병우가 차장검사였던 시절에 각각 고검장과 지검장이었고 연수원 기수와 직책 뿐만 아니라 나이 역시 우병우보다 더 많았다. 그랬음에도 우병우는 이들을 자신들의 아래로 취급했다. 김기춘이야 워낙에 법조계에서 넘사벽이었으니(우병우가 사법연수생일 때 검찰총장이었고, 초임검사 임관할 때 법무부 장관이었다.) 오히려 우병우가 기었지만, 외교관 출신인 이병기나 행정관료 출신인 이원종에게는 절대로 숙이지 않고 목을 뻣뻣하게 세웠다.[27] 그리고 실제 파워도 위 비서실장이 쩔쩔매던 일화처럼 막강한 권신이다.[28] 지방경찰청장은 2급 공무원인 치안감인데 (서울청장, 부산청장, 인천청장, 경기청장의 경우 1급 공무원인 치안정감이다.) 이 정도면 평검사보다 1~3급은 높은 직위다. 이를 보면 자신보다 계급이 높아도 권력이 약하면 수족 부리듯 부린 모양이다. 물론 이 당시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 되기 전 시절이라 검찰의 권력이 지금보다 훨씬 강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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