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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4 19:14:57

토마 피케티

<colbgcolor=#EE1C25><colcolor=#fff> 토마 피케티
Thomas Piketty
파일:토마 피케티.jpg
출생 1971년 5월 7일 ([age(1971-05-07)]세)
일드프랑스 오드센 주 클리시
국적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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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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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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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가족 부인 줄리아 카제[1]
학력 파리 고등사범학교 (MSc)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파리과학인문학대학교 (사회 과학/Ph.D.)[2]
직업 교수, 경제학자, 사학자
소속 학교 파리 경제학교
파리과학인문학대학교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전공 분야 공공경제학, 경제사
주요 저서 21세기 자본, 자본과 이데올로기
관련 링크 http://piketty.pse.ens.fr/fr/
1. 개요2. 저서
2.1. 21세기 자본2.2. 그 외
3. 경제학자로서4. 정견5. 논란6. 읽을거리7. 참고

[clearfix]

1. 개요


프랑스의 경제학자. 경제적 불평등을 내재한 자본주의의 동학을 분석하고, 글로벌 자본세를 그 대안으로 제시한 『21세기 자본』으로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저서는 "과학적 사회주의"를 창시한 카를 마르크스의 명저 자본론을 연상시키는 이름이지만 정작 피케티 본인은 마르크스와는 거리를 두는 행보를 보였다. 실제로 그의 주장이나 방법론은 주류 경제학적 노선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마르크스경제학 학자들과도 갈등을 빚는 것은 덤이다. 참고로 이 책의 영문판은 50만 권이 팔렸으며, 권위 있는 학술서적을 주로 펴내는 하버드 대학 출판부에서 펴낸 책 중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고 한다.[3]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에서 판매량 대비 완독율이 가장 낮은 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4]

1971년 프랑스 파리 인근의 클리시에서 태어나, 그랑제콜의 최고봉인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수학경제학을 공부했다. 일약 22세에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과 영국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부의 재분배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만 22세에 박사를 받았으니, 한국에서는 학부 4학년에 해당하는 나이에 박사를 받은 것이며, 두말할 나위 없는 천재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1993년부터 3년간 MIT[5]의 조교수로 임용되어 경제학을 가르쳤다. 1995년 미국 경제학계의 수학을 중시하는 경향에 회의를 느끼고[6] 프랑스로 돌아와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연구원을 지냈다. 2000년부터 파리 경제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2. 저서

2.1. 21세기 자본


21세기 자본』은 지난 3세기에 걸친 20개국 이상의 경제학적, 역사적 데이터를 수집해[7] 자본소득이 경제성장률보다 더 높다는 실증적인 연구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아울러 경제적 불평등의 정책적 대안으로 제시한 글로벌 자본세는 그 대담함과 파격으로 숱한 화제를 낳고 있다. 그의 분석과 대안에 대한 동의 여부는 이미 ‘피케티 신드롬’의 본질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불평등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21세기 자본』은 경제학 전반에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Part.1 Income and capital
Part.2 The Dynamics of the capital/Income ratio
Part.3 The structure of inequalities
Part.4 Regulating capital in the 21st century

2.2. 그 외

21세기 자본이 한국에서 각광을 받으며 그의 다른 저서들이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3. 경제학자로서

그는 역사적이고 통계적인 접근을 통한 경제적 불평등 연구에 천착하고 있다. 주로 경제성장이 소득과 부의 분배와 어떠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관한 역사적이고 이론적인 작업을 수행해왔으며, 특히 국민소득에서 최상위 소득의 비중이 장기간에 걸쳐 변화한 양상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를 통해 그는 성장과 불평등 사이의 관계를 낙관적으로 조망한 사이먼 쿠즈네츠의 이론에 근본적인 의문을 표하고, 소득과 부의 분배의 역사적인 변화 추이에 있어서 정치 제도와 재정 제도의 역할을 강조한다.

21세기 자본론에서 제시한 피케티의 주장이다.

1. 한 사회의 연간 소득(annual income) 대비 부(wealth)의 비율은 순 저축률을 경제 성장률로 나눈 수준까지 성장한다. (부/연간소득 = 순 저축률/경제 성장률)

2. 시간의 흐름과 변화는 불가피하게 사회의 부가 소수의 그룹들에게 집중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들을 “부자들(the rich)”이라고 부른다.

3. 경제 성장 속도는 경제 성장을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었던 산업화 시대가 정점을 찍은 뒤에는 감소한다. 반면 순 저축은 점점 증가하는데 그 이유로는 누진세 제도의 퇴보, 20세기 초반 전쟁으로 인한 혼란과 파괴의 종료, 그리고 부자들이 축적을 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소득이나 부를 소비에 사용해야 한다는 설득력 있는 사회적 이유의 부재가 있다.

4. 소수의 부자들이 경제, 정치, 그리고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사회는 다양한 측면에서 부정적인 측면이 많은 (unpleasant) 사회이다.

5. 연간 소득 대비 부의 비율이 매우 높은 사회는 부를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경향이 강한 사회이고, 이렇게 자수성가보다 세습으로 부자가 되는 경향이 큰 사회는 스스로의 능력이 뛰어나거나(meritocracy) 기업가 정신의 투철함 덕분에 부자가 된 사람들이 많은 사회보다 여러 면에서 훨씬 더 부정적인 측면이 많은 사회이다.

4. 정견

피케티는 프랑스 사회당 당원이며 올랑드 정부에서 자문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이전에 올랑드 정부에서 추진했던 75% 소득세 법안이 피케티의 작품이라는 기술이 있었는데 이는 피케티를 계속적으로 디스해온 한국의 경제신문들이[11]에서 피케티를 "포퓰리스트"라고 주장하였다 피케티는 이에 더해 근로소득만 아니라 금융소득까지 포함하는 더 과감한 증세 정책을 지지하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원문(2012년 6월 9일인터뷰)
Thomas Piketty : C’est vraiment pas malin d’instaurer un taux très élevé sur une assiette très étroite (les seuls salaires, ndlr). Il vaudrait bien mieux appliquer un taux moins élevé, 60% par exemple, sur une assiette large, qui inclurait les revenus de l’épargne. (단지 급여소득에만 매우 높은 세율을 부과하는 건 현명한 일이 아닙니다. 급여소득뿐만 아니라 금융소득을 합한 종합소득에 예를 들어 60%정도 부과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https://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13/oct/24/1percent-pay-tax-rate-80percent
그러나 2013년 10월 24일의 가디언지에 따르면 피케티와 그의 동료 사에즈는 어느 정도는 생산성 높은 일자리 증가와 지대추구 경향 때문에 최고소득세율은 83%가 될 수도 있다고 한 바 있다.

또 한 가지 오해가 피케티의 저서명 ("21세기의 자본")때문에 마르크스주의자로 오인받는 것이다. 그러나 피케티는 본인 스스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고 했으며, 교육 배경(런던 정치경제대학교 박사-MIT교수)[12]이나 그동안의 연구, 그리고 그를 유명하게 만든 저서 "21세기 자본"을 봐도 마르크스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마르크스 경제학의 핵심인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13]을 21세기 자본에서 부정했고, 기술의 발달로 이윤율은 저하되지 않고 일정하게 유지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 대전제를 부인했다. 또한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부익부 빈익빈의 경향을 해결하기 위해서 (또는 그 경향의 결과로서) 혁명이 필히 발생한다고 주장하지만, 피케티는 국제적으로 세율을 높이고 공조체계를 구축하여 자본이 낮은 세율을 찾아가는 경향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피케티의 처방은 일단 체제유지를 전제로 한 것이며, 체제전복을 우선시하는 마르크스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14]

5. 논란

앨런 멜처(Allan Meltzer)는 피케티 교수 주장이 너무 프랑스적인 것에 기반하고 있다며 “피케티는 동료 프랑스 경제학자인 에마뉘엘 사에즈(Emmanuel Saez)와 함께 MIT에서 연구를 했습니다. MIT에는 IMF의 수석 경제학자를 맡고 있는 다른 프랑스인 올리비에 블량샤르(Olivier Blanchard)가 교수를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프랑스는 소득 재분배를 위한 파괴적인 정책을 실시해 온 나라죠.”라고 말했다.

어쨌든 피케티의 데이터가 시사하는 가장 핵심적인 내용 중 하나는, 세계대전의 여파와 높은 세율이 부의 세습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1970년대부터는 미국의 1%들, 그리고 그중에서도 상위 0.1%들에게 다른 국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부가 집중되기 시작했다. 이는 자본과 상속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피케티는 '슈퍼매니저'들의 등장이 이러한 현상의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미국 내 0.1%들의 소득 중 60%가 기업의 관리직과 금융 전문가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소득이 이렇게 엄청나게 치솟게 된 주된 원인이 최고소득세율의 인하에 있음을 밝혔다.

그런데 여기에서 알 수 있다시피 미국과 유럽의 소득 분배 양상에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유럽은 말 그대로 막대한 자본소득이 불평등을 낳지만 미국은 '예외적으로' 막대한 노동소득[15]이 불평등의 원인이 된다.[16]

그와 그의 동료들이 아메리칸이코노믹저널(American Economic Journal)에 실은 논문에서 최고소득세율 인하와 상위 1%의 소득 증가가 13개국에 걸쳐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강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음을 증명해 냈다.

심지어 멜처는 2001-2006년의 자료를 들며 피케티의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데이터 집계 과정에서의 오류[17], r>g라는 단순한 팩트가 어떻게 부의 불평등 심화를 설명하는지, 그리고 부의 불평등 심화와 관해 왜 75% 부유세 등 해당 정책이 필요한지 등이 문제가 된다. 다수의 학자들은 앞서 말한 데이터 측면에서 피케티를 인정할지언정 이러한 세 가지 측면에서 비판을 하고 있다. 특히 뒤의 둘.

가장 먼저 파이낸셜타임스가 피케티의 통계 사용에 결함이 있다는 지적을 한 바 있다. 이에 대해서는 피케티 본인이나 21세기 자본론의 판촉에 기여했다는 폴 크루그먼조지프 스티글리츠[18]는 저 오류가 별 것이 아니라고 했고[19][20] 비판적인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걸고 넘어졌다.[21] 폴 크루그먼의 경우 새로운 책인 자본과 이데올로기의 서평에서 “피케티의 신작엔 흥미로운 포인트가 있긴 하다”면서도 “피케티는 역사와 사회학, 정치적 분석과 경제 데이터를 혼합했는데, 과연 그가 그럴만큼 (다방면에 능한) 박식가일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흥미로운 포인트가 있다”는 수사에 불과할뿐 크루그먼은 “책의 메시지가 뭔지 모르겠다” “서툰 질문 몇 가지를 던지는 방대한 책”이라고 비판했다. 서평 결론에선 “이 책을 정말로 좋아하고 싶었지만, 실망을 했을 뿐”이라는 표현을 써서 옹호의 관점에서 돌아선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피케티의 주장 자체에 대해 근본적인 비판을 할 경우 우선 인도의 개발경제학자인 데브라즈 레이(Debraj Ray)는 Bonnet et al(2014)라는 논문을 소개하면서 피케티가 제시한 자본 중 부동산을 제할 경우 r과 g간의 우세가 사라진다고 한 바 있다. 또한, 자본수익률은 말 그대로 자본을 1원 투자하면 거기서 추가로 얼마나 얻는지의 문제고, 성장률은 생산에 얼마나 투자했건 상관없이 오늘 생산한 것이 어제에 비해 얼마나 더 많아졌는지의 지표이므로 전혀 별개라는 개념상의 미스를 지적했다. 아울러, 자본투자는 저축을 해야 가능하므로 r에는 당연히 g가 반영된다고도 했다. 또, 자본가들이 소득의 많은 부분을 더 저축한다는 피케티의 가정도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22]

퍼 크루셀(Per Krusell), 토니 스미스(Tony Smith)는 우선 저축 성향에 대한 가정이 비현실적임을 제시했으며, 오히려 실증분석에 따르면 부의 불평등이 최근 들어 상승한다는 증거가 없다고 했다.[23] 아울러 피케티가 순저축률을 양으로 설정한 점을 두고 순(net) 개념과 총(gross) 개념을 착각한다고 한 바 있다.[24] 또한 피케티의 가정에 따르면 순저축률은 성장률은 무관하고 일정해야 하지만 실증분석 결과 성장률과 순저축률 간에는 상관관계가 존재하며, 순저축률은 일정하지 않다. 따라서 피케티의 모형의 주장은 실증적으로 현실 설명력이 매우 약하다. 또, 피케티의 이야기와 달리 저성장일 때 저축률은 약하게 하락했으면 하락했지 상승하는 일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Friedman (1957), Cass (1965), and Koopmans (1965)의 연구실적으로 개발해낸 벤치마크 이론에 따르면 순저축율은 0%라는 것이다

미국의 거시, 공공경제학자인 마틴 펠드스타인(Martin Feldstein)의 경우 피케티의 데이터 자체에 근본적인 착시효과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우선 과거와 마찬가지로 장남이나 어느 한 명이 선친의 유산을 전부 상속받는 시스템하에서는 피케티 말대로 상속으로 부의 분배가 악화되지만 오늘날의 균분 상속제하에서는 결국 자녀나 배우자, 친인척 수에 따라 한 사람당 배분되는 몫이 줄어들기 때문에 상속이 부의 분배에 미치는 효과는 약화된다. 그리고 개인은 청장년기에 일을 하고 노년기에 그 저축의 상당수를 소비하므로 유산 역시 개인이 벌어들이는 평생부에 비하면 적어진다. 이리하여 총 부의 성장률과 소득의 상승률은 비슷해진다. 아울러, 오늘날의 고소득층 중 적지 않은 이들은 따로이 법인을 만들어두고 그곳으로 소득을 이전시켜 세부담을 회피하는 행태를 보이는데, 이 경우 감세[25]가 있을 경우 부자들은 이러한 법인으로 소득을 분산시킬 유인이 보다 악화되고 따라서 개인 소득으로 전환해 신고하면서 오히려 부의 분배가 악화되는 듯한 착시효과를 유발한다고 했다. 아울러 피케티의 분석이 중산층, 저소득층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민연금, 의료보험 등을 배제했다고 주장했다.

로렌스 서머스는 순저축으로 볼 경우, 오히려 요소 간 대체탄력성이 1보다 적다고 한 바 있다.[26]이는 노동 한 단위당 자본이 증가한다면 오히려 자본수익 대비 노동수익(임금)이 그 이상으로 증가한다는 의미다.[27] 거기에 더해 부동산을 자본으로 본다면 자본의 축적, 즉, 건물 건설 증가는 오히려 부동산 가격을 폭락시킨다. 현실적으로 부동산 공급곡선은 비탄력적인바 공급 증가에 따른 가격폭락의 피해는 전부 부동산 공급자가 지게 된다.[28] 아울러, 자본 보유자들이 소득의 대부분을 저축한다는 가정에 관해서도 자가주택 보유자들은 결국 그 주택에서 생활하므로 자기가 보유한 주택의 귀속임대료를 매달 소비한다고 볼 수 있다. 자기가 그 집에 안 살 거면 남에게 월세를 줄 수 있고, 결국 그 사람은 기회비용 관점에서 그 월세만큼을 지출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미국같이 자기 주택 보유자들의 비중이 높은 곳에서 저런 가정은 더 타당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카탈루냐 출신 거시경제학자 살라-이-마틴[29]은 첫째로 r>g가 자본주의 국가건 공산주의 국가건 상관없이 일어난다고 한 바 있다. 둘째로 펠드스타인이 지적한 대로 자본은 결국 소비, 상속의 과정을 거쳐 다 까먹게 되고 거기에 더해 r>g가 성립한다고 해도 자본소득자의 면면은 계속 바뀐다고 하면서 r>g는 불평등 증가와 상관없다고 했다. 셋째로 피케티의 예상과 달리 2012년의 전 세계 경제성장률은 오히려 증가했다는 점 역시 지적했다. 또, 역사적으로 볼 때 경제성장률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증가해왔다는 연준의 자료를 제시했다. 넷째로 전 세계적인 불평등이 개도국의 성장으로 줄어든 점을 지적하면서 선진국만을 분석한 점에 한계가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불평등이 왜 경제적으로 해악인지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 역시 지적했다.

국내에서도, 이종화 교수나 신관호 교수가 이를 비판적으로 비평한 감이 있다.[30]

이 외에도 이론적 측면에서 피케티 이론에 대한 비판 자체는 널리고 널렸다. 권남훈 교수의 글에 따르면 이론적 측면에서 9 대 1로 피케티를 깐다고 한다. 심지어 피케티 이론에 대해서는 그의 단짝인 사에즈(출처는 신관호 교수의 글)나 스티글리츠 역시도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시카고 대학교 교수들과 만난 피케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헤크먼, 라스 피터 핸슨(연사)도 참여했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에는 이러한 학계의 지적을 받아들여 주장을 일부 수정해 자산보다는 교육 등을 좀 더 강조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선회한 바 있다. SBTC로 대표되는 교육 격차에 따른 불평등 심화는 학계에서 거의 다수설이니 만큼 그걸 추종했다 봐도 된다. http://m.hankyung.com/apps/news.view?category=general&aid=2015031023151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항상 앞선다" 공식이 1차 대전 이후의 부의 불평등에서는 "하나의 요소"라고 수정했다.

6. 읽을거리

7. 참고



[1] 2014년 결혼. 무려 13살 연하이며, 부인도 역시 시앙스포의 경제학과 교수이다.[2]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와 파리과학인문학대학교 Joint Ph.D[3] 다만 이 책은 전문학술서가 아니라 대중서로 쓰였고, 복잡한 수식은 거의 안 나온다. 그렇지만 그래도 경제학적 지식이 없는 사람이 읽기는 상당히 어렵고, 경제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경우에 조금 쉽게 읽을 수 있는 어중간한 수준이다.[4] 이는 앞의 각주에서 설명한 책의 특성에 기인한다. 대중들이 읽기엔 내용이 어렵고, 전공 지식이 있는 사람이 읽기엔 쉽지만 이 경우엔 피케티의 주장만 파악하면 나머지 데이터는 굳이 읽을 필요가 없는 내용이 되어버린다.[5] 이 학교는 이공계로 유명하긴 하지만, 여러 미국언론의 경제학과 대학원 랭킹에서도 하버드 대학과 함께 1-2위를 다투는 학교다. 박사후 과정(포스트닥)없이 박사받자마자 여기에 임용되었다는 것은 졸업논문이 학계에서 꽤 인정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6] 본인이 직접 21세기 자본의 서문에 쓴 내용이다.[7] r>g 이야기만 치면 이미 기존의 경제학에서도 나타난 바 있다. 중요한 건 그를 뒷받침하는 데이터이다.[8] 중국에서는 검열되어 출판금지 됐다. 중국 출판사에서 중국의 양극화 부분을 삭제해줄것을 요구했으나 이를 거절했기 때문이다.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china/960110.html[9] 2021년 9월 15일 파리 경제학교(PSE)에서 열리는 평등에 관한 토론회에서 발표될 예정이다.[10] 피케티는 자신의 책이나 인터뷰에서 자신의 저서들의 가장 큰 문제점중 하나가 너무 방대하고 길다는것이라고 자주 답했다.[11] 노골적으로 친기업 스탠스를 취하는 경제신문들의 만행은 결국 2015년 디턴의 저서 오역 논란으로 폭발하였다. 기사 결국 저자의 항의로 왜곡을 시인하고 사과한 바 있다. 일부 경제지들은 피케티의 학설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왜곡을 한 바 있다.[12] 이들 학교는 주류경제학의 본진이다.[13]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이전만 할 수 있는 고정자본이 가변자본인 노동에 비해 비중이 늘어나게 됨에 따라 이윤율이 저하한다고 보는 법칙. 자세한 내용은 마르크스경제학의 이윤율 저하의 법칙 문단 참고.[14] 그가 마르크스주의자 내지는 자본주의를 통으로 부정하는 줄 알고 잘못 인용하고 다니는 스노브들이 제법 많은데 피케티 입장에서는 억울할 따름.[15] 기업 관리직이나 금융 전문가를 위시한 전문직이 받는 소득은 어쨋건 노동소득으로 분류된다. 그 사람들이 추가적으로 무슨 스톡옵션이나 자본을 보유한 게 아니라면.[16] 그런데 이는 이미 미국 경제학자들은 상당수 관측한 사실이다. 노동소득의 격차는 기술 편향적 생산 제약 변화(Skill Biased Technical Change)에 따라 숙련 근로자와 비숙련 근로자간 보상 격차가 커진 점, 그리고 그들이 교육을 통해 쌓아올린 인적자본의 축적의 결과다. 노동소득 격차에 따른 불평등 심화는 폴트라인의 라구람 라잔, 심지어 공화당 지지자인 그레고리 맨큐도 이를 관찰한 바 있고 그 핵심적인 원인이 계층간 교육 격차에 있다는 것 역시 주장한 바 있다. 소득 분배 해결의 핵심적인 방안으로 교육 투자를 제시했다. SBTC가 분배 불균등과 관해 중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은 이미 아래에서 피케티 비판에 관해 언급된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지적했다.[17] FT의 통계오류와 펠드스타인의 지적이 있다.[18] 정작 피케티의 책이 먼저 발간된 프랑스는 저 책이 그렇게 널리 팔리지 않았고, 오히려 미국에서 호평을 받았다. 프랑스의 경제학자들은 이를 일컬어 크루그먼-스티글리츠 효과라고 했다고 한다.[19] 여기서 크루그먼의 지적에는 문제가 있을 수도 있는데, 폴 크루그먼은 과거 라인하르트-로고프가 벌인 그리스 등의 재정정책의 실효성(재정적자가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고 했지만 통계 오류가 밝혀지면서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측정 과정에서 벌어진 통계적 오류에 대해 각을 올려 비판했기 때문이다. 그 일을 기억하는 이들이 보기에 크루그먼은 이중잣대를 범하는 것으로 볼 수 있었다.[20] 라인하트-로고프의 경우, 몇몇 국가들의 수치를 계산에서 누락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고, 피케티 역시 수치를 자신의 입맛에 맞추어 cherry-picking했거나 수치를 이유없이 조작했다고 했다. 양쪽 다 비판적인 경제학자들은 이를 걸고 넘어지고, 옹호적인 경제학자들은 수치상 오류가 있건 없건 결론에 큰 변화는 없다고 하는 것도 같다. 거기에 더해 엑셀 오류도 포함된 것도 같다.[21] 하지만 FT의 피케티 비판에 대해 다시 분석한 가디언의 분석에 의하면 FT가 분석한 것은 시계열이 끊어진 자료를 적절하게 가공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1970년부터 1990년까지의 자료와 1990년부터 2000년의 자료가 있으면 이들의 통계 분석 방식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특히 부를 조사할 때 어떤 항목을 조사했는지에 대해 고려하여 그 부분을 빼거나 더해주어야 하는데 그런 걸 작업하지 않았다. 그리고 폴 크루그먼도 그런 분석이 나온 후에 새로운 글을 써서 제대로 설명하여 단지 이중 잣대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했다. #[22] 해설하자면 소득의 더 많은 부분을 저축하는지 어떤지는 자본이나 노동이 주 소득원인지 여부가 아니라 그냥 소득의 많고 적음에 달린 것이다. 가령, 한 가족을 부양하는 자영농은 토지라는 자본으로부터 얻은 생산물의 상당수를 소비할 수 있다.[23] 소득 불평등과 부의 불평등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이 점은 피케티의 옹호자인 크루그먼도 지적했으며, 다른 반응 역시 보인 바 있으나 그중에 피케티에 대고 '글 잘 썼다. 다음에는 소득 불평등도 한번 분석해봐라'는 식의 반응을 보인 바 있다.[24] 솔로우 모형에 따르면 총 저축률에서 감가상각 따위를 제한 순 저축률은 장기에 자본축적이 이루어지면 0으로 수렴한다.[25] 1986년 레이건 시기의 감세 조치를 의미한다.[26] 요소간 대체탄력성=(d(K/L)/d(w/r))*(wL/rK)[27] '상대적으로' 자본수익은 줄어든다.[28]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아울러 재정학에서 이야기하는 조세의 자본화 현상이 대표적이다.[29] FC 바르셀로나 광팬이다. 그리고 개인 홈페이지가 참 아름답게 생겼다. #[30] 문제는, 신관호 교수 역시 초창기 리뷰할 때는 피케티 책을 안 보고 다른 사람이 리뷰한 것을 보고서 평했는데, 이 과정에서 내용을 오해했다는 한계가 있다. 추후, 피케티를 상대로 대담할 때는 이전에 비해 준비를 해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