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292c5b><colcolor=#fff> 베르나르 아르노 Bernard Arnault | |
본명 | Bernard Jean Étienne Arnault 베르나르 장 에티엔 아르노 |
출생 | 1949년 3월 5일 ([age(1949-03-05)]세) |
프랑스 오드프랑스 노르 루베 | |
거주지 | 프랑스 파리 |
국적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85cm, 78kg |
종교 | 천주교 |
학력 | 파리국립고등광업학교 막상스반데어메르슈 고등학교 (졸업) ( - 1966년) 리세 페데르브 프레파 과정 (학사) ( - 1968년) 에콜 폴리테크니크 (공학 / 석사) ( - 1971년) |
직업 | 기업인 |
현직 | LVMH (이사회 의장 겸 CEO / 1989년~ ) |
크리스챤 디올(법인) (이사회 의장 / 1984년~ ) | |
배우자 | 안 드바브랭 (1973년 결혼 - 1990년 이혼) 헬렌 메르시에 (1991년 결혼) |
자녀 | 장녀 델핀 아르노[1] 장남 앙투안 아르노[2] 차남 알렉상드르 아르노[3] 삼남 프레데릭 아르노 사남 장 아르노[4] |
재산 | 1,759억 달러 (한화 약 251조 7,500억원)[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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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LVMH 산하 브랜드 목록 |
프랑스의 기업인이다. 세계 최대 사치재 제조사인 LVMH와 모기업인 디올 SE의 이사회 의장 직책을 오랜 기간 역임하며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다. 흔히 럭셔리 제국의 황제, 캐시미어를 입은 늑대,[6] 유럽 최고의 부호 등으로 불린다.
21세기 들어서 대부분의 부호들이 미국 실리콘밸리 혹은 월스트리트에 기반을 두고 있는 기업가들과 투자가들이라는 것과 대조적으로 비교적 전통적 산업인 사치재 분야로 세계 최대 부호 반열에 오른 특이 케이스이다. 본래 사치재 산업은 유럽 등 자국에서 독립적인 하우스들이 수공예에 가까운 방식으로 생산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산업 규모가 크지 않았으나, 아르노가 1990년대부터 미국 기업 스타일의 적대적 인수합병 방식을 들여와 브랜드들을 하나 둘 수집해나가면서 21세기에는 해당 산업 자체가 소수의 독점적 그룹들로 추려졌다. 여기에 중국이 떠오르면서 대규모 생산 방식으로 공장을 이전시켜 초규모의 경제를 누리게 되면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갑론을박이 빈번하지만 아르노가 이러한 방식을 선도한 인물인 것은 확실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2. 생애
1949년 그랑제꼴 에콜 상트랄 파리 출신의 엔지니어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그는 1966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레파 과정을 마친뒤 프랑스의 공학 전문대학인 그랑제콜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입학하여 1971년 졸업하였다.[7]이후 아버지가 운영하는 건설회사에 입사하였다. 쉽게 말해 재벌 2세. 여기서 경영 수업을 받았는데, 입사 5년 만에 4000만 프랑에 건설사업부를 매각하고 페리넬이란 사명으로 변경한 후 부동산 산업에만 집중하여 성과를 내었다. 1979년부턴 아버지의 후임으로 대표가 되어 미국 진출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다.
미국으로 건너간 후에 플로리다 등지에서 건설업을 하며 여러 사업들이 정착할 무렵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현재 LVMH의 핵심사업인 디올의 모기업 부삭 그룹을 인수하기 위해 도움을 청한 것이 사회당 로랑 파비위스 총리였다.[8] 여담으로 후에 부유세 관련해 마찰도 빚게 되는 사회당과 아르노 회장이지만, 정작 LVMH 그룹을 키울 당시 기업 인수나 금융업 등 여러 제약들을 해결하도록 사업 성장을 도와준 세력 역시 사회당이었다.
하여튼 이렇게 규제가 풀린 덕분에 레버리지를 총동원하여 1984년 부삭 그룹을 인수하면서[9] 당시에는 창업자로부터 물려받은 단일한 브랜드를 소유하는 가족 기업의 형태를 고수하고 있던 유럽의 전통적인 럭셔리계가 처음으로 미국식 경영기법을 도입한 대기업의 주도 하에 복수의 브랜드가 합쳐 그룹으로 운영된다. 여기서 효과를 봤는지 이후 그는 사업에 더 박차를 가해 수십 개의 브랜드를 추가적으로 인수합병하기에 이른다.
상기했듯 관련 기업들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럭셔리 제품과 관련이 없는 나머지 부서들은 죄다 매각하다보니 1989년 루이비통을 인수할 당시에는 루이비통 회장과 다툼이 일어 경영권 분쟁이 일기도 했지만, 전문 기업인 출신인 아르노 회장이 돈의 힘으로 실권을 쥐게 되었다.[10][11] 브랜드들을 인수한 이후 마크 제이콥스, 존 갈리아노, 알렉산더 맥퀸 등의 신세대 디자이너들을 기용하여 루이비통, 크리스챤 디올, 지방시 등 전통적인 패션 하우스들의 차세대 전성기를 이끌어냈다. # #
2019년 하반기부터 이탈리아 프로축구팀 AC 밀란 인수설이 돌았으나 그때마다 모두 부인했으며, 그 후에도 계속되자 아들까지 나서서 전면 부인했다.
2023년 3월 기준 포브스의 연례 억만장자 리스트에서 1위에 올랐다. 2022년 한 해 동안 각국 중앙은행의 긴축과 세계 경기 둔화로 인해 미국의 주요 빅테크 업체들을 포함해서 대부분 기업의 주식이 폭락한 반면 LMVH는 탄탄한 수요와 가격 인상을 바탕으로 선방한 덕분이다.
2023년 하반기부터 긴축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북미와 중국의 소비 둔화라는 악재를 맞아, LVMH 주가도 폭락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Apple, Microsoft와 더불어 매출 성장률이 낮아지기만 했을 뿐 역성장으로 돌아서지 않았다. 단지 기대치에 못미쳤을 뿐이였다. 사실 LVMH가 명품 기업이면서 동시에 신용등급 AA-을 받은 우량 기업이기에 이 정도 버틴거지 테슬라와 같이 신용도가 낮은 BBB 등급의 기술주는 이미 금리 인상 초기 국면부터 실적과 가이던스가 처참하게 떨어지며 주가가 반토막나는 상황을 보여주었다. 반대로 LVMH는 2024년이 되자 다시 상승 추세로 돌아섰다. 여담으로 이 기간 동안에 진정한 승자는 에르메스와 페라리다.
3. 기타
- ZARA 브랜드를 창업한 스페인의 패션 사업가 아만시오 오르테가 인디텍스그룹 회장과 2010년대 유럽 부호 1위를 두고 자주 다투는 편이었지만 오르테가가 은퇴하고 노후를 보내는 2020년대 들어선 아르노의 재산이 더 많다. 그래도 유럽 최대 부호급으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둘 다 패션 사업에서 성공했다는 점은 재미있는 부분. 대비점도 많은데, 한명은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럭셔리 패션 브랜드, 한명은 대중적인 SPA 브랜드에 종사한 사업가, 아르노는 언론 노출도가 높은 반면 오르테가는 은둔형, 아르노는 금수저/명문대 출신이지만 오르테가는 흙수저/고졸, 아르노는 아버지로부터 규모있는 건설사를 물려받아 사업을 시작했지만 오르테가는 철저하게 자수성가형이였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 디올을 인수하기 전 미국에서 한 택시 기사가 '프랑스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디올은 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디올의 브랜드 가치를 실감하면서 디올 인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 프랑스 최고의 갑부지만 정작 프랑스 현지의 대중적 이미지는 좋지 않다. 프랑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재용급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으나 주로 돈 많은 사람들을 비꼴 때 자주 등장하는 이미지다. 루이비통의 상업화된 경영 노선 변경도 변경이지만, 전술한 1984년에 부삭 그룹을 인수할때 불거진 대규모 자산 매각과 구조조정 문제와 2012년 조세 회피 목적으로 벨기에 국적을 따려고 했던 사건으로 인해[12] 프랑스 언론의 거센 비판을 받은 적도 있었다.
- 2017 ~ 2019년까지 3년 연속으로 방한한 바 있다. 주 목적은 LVMH 그룹 브랜드 매장 들리기로, 2019년 10월 30일 서울 청담동에서 루이비통 메종 오픈 행사가 열렸고 아르노의 방한에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게리 건축가와 함께 청담 매장을 찾아 자신의 휴대폰으로 건물 외관 사진을 찍기도 했으며 본사 임직원, 경호원들과 함께 호텔신라에서 묵었다. 이부진 사장이 직접 챙겼다는 후문이다. 이후 2023년 3월에 다시 방한해 LVMH 그룹 브랜드들이 입점한 국내 주요 백화점들을 둘러봤다.
- 차트를 달리는 남자에서 '그사세! 자산 100억이 넘어야 누릴 수 있는 딴세상!' 1위에 올랐다.
[1] LVMH 산하 브랜드인 디올 쿠튀르 CEO. 장남 앙투안과 같이 전처 소생이며, 파트너인 자비에 니엘 사이에 딸 엘리사와 아들 조셉을 낳았다.[2] LVMH 지주사인 디올 SE CEO, 모델 나탈리아 보디아노바의 남편이다.[3] 티파니앤코 부회장이며 버켄스탁 이사진이다. 아내 제럴드 구이엇이 데스트리라는 컨템포러리 브랜드를 운영한다.[4] 루이 비통 시계 부문 마케팅 및 개발 책임자[5] 2024년 12월 포브스 기준 세계 부자 순위 5위. 2017년 지배구조 개편 이후 디올 SE 지분 잔량을 대부분 매입하며 사실상 100% 자회사로 두어 LVMH의 지분 48.2%를 직간접적으로 보유하고 있다.[6] '양의 탈을 쓴 늑대'라는 표현에 명품의 이미지를 덧씌운 표현이다. 자신의 회사와 경쟁할 만한 브랜드가 등장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묘하게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하며,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라면 무자비한 행보도 망설이지 않는 그의 모습을 멸시 반, 두려움 반으로 표현하는 별명이다.[7] 훗날 아르노는 공학에서 배운 과학적 사고를 통해 경영 상황을 빠르게 분석하여 합리적 결정을 내릴 수 있어 사업에 도움이 되었다고 회고하였다.[8] 당시 부삭 그룹은 파산 위기에 처해 있었다.[9] 다만 이때 크리스찬 디올을 제외한 부삭 그룹의 자산 대부분을 정리해버렸고, 종업원도 무려 11,000명 중 9,000명을 해고하는 등 대규모 구조조정을 해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인수 전에는 부삭의 자산이나 종업원들 일자리는 건드리지 않겠다고 이야기해놓고, 막상 인수 후에는 대규모 자산 매각과 구조조정을 했다는 점에서 더 비판받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르노는 이런 비판에 크게 신경쓰는 편은 아닌 것도 같지만, 덕분에 프랑스 내 평판 역시 그닥 좋진 않아보인다.[10] 사실 이때도 처음엔 지분 다툼을 벌이던 루이비통 측에서 먼저 아르노에게 자기들 좀 도와달라고 끌어들인 것이었다. 이에 1987년 지분을 투자하며 루이비통을 도와주려 하던 아르노였지만, 역으로 루이비통 회장을 뒷통수 쳐버린다. 늑대 잡으려고 호랑이 끌어들인 격.[11] 여기에는 뒷 이야기가 있는데 아르노도 원래는 루이비통을 도우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대 전설적인 은행가였던 앙투안 베른하임이 아르노에게 기네스가 갖고 있는 막강한 자본력을 알려주며 기네스와 맞서려 들면 되려 네가 고생할테니 차라리 기네스 편에 붙으라고 조언을 한다. 그리고 이 조언을 들은 아르노는 루이비통을 손절하고 루이비통과 지분 다툼을 벌이던 기네스 편에 붙게 된다.[12] 벨기에 국적을 딸 경우 가업승계 시 실질적인 상속세 면제를 받기 유리하다는 동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여론이 원체 악화되어 프랑스 사업에도 지장을 줄 정도가 되자 아르노 본인이 국적 취득을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