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5-09-30 23:01:19

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등장인물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table width=100%><table bgcolor=#000><table bordercolor=#000><width=50%> 파일: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 글자3.png||문서 ||
----
등장인물 · 개변된 역사(극동 전쟁) · 군사


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등장인물
{{{#!wiki style="margin: 0 -10px -5px; word-break: keep-all"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 max(40%, 5em);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대한제국 ]
{{{#!wiki style="margin: -5px -1px"
<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212529,#e0e0e0> 군부 <colbgcolor=#fff,#1c1d1f>김시혁 · 김시진 · 김석중 · 여운형 · 이응준 · 엄복동 · 조동윤
황실 강종 · 의친왕
기타 이승만 · 박두영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 max(40%, 5em);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국외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212529,#e0e0e0> 러시아 제국 <colbgcolor=#fff,#1c1d1f>니콜라이 2세 · 파벨 알렉산드로비치 로마노프
소련 알렉세이 브루실로프
프랑스 페르디낭 포슈
독일 에리히 루덴도르프 · 알렉산더 폰 린징겐
대영제국 더글러스 헤이그
미국 존 조지프 퍼싱 · 우드로 윌슨 }}}}}}}}}}}}


1. 개요2. 대한제국
2.1. 군부
2.1.1. 육군2.1.2. 해군2.1.3. 기록조사실 → 기록국
2.2. 황실2.3. 관료2.4. 친일파2.5. 독립협회 → 신민당2.6. 황국협회 → 한국 민주당2.7. 민본당 → 한국 자유당2.8. 근황파2.9. 기타
3. 러시아 제국 → 전 러시아 임시정부
3.1. 황실3.2. 관료3.3. 군부
3.3.1. 육군3.3.2. 해군
3.4. 한국계 러시아인3.5. 기타
4. 소련
4.1. 최고지도자4.2. 정치인/관료4.3. 군부
5. 일본 제국
5.1. 황실5.2. 군부
5.2.1. 육군5.2.2. 해군
5.3. 내각5.4. 기타
6. 프랑스 제3공화국
6.1. 관료6.2. 군부
7. 독일 제국바이마르 공화국
7.1. 황실7.2. 군부
7.2.1. 육군7.2.2. 해군
7.3. 정치인/관료7.4. 기타
8. 미합중국
8.1. 대통령8.2. 정치인/관료8.3. 군부8.4. 하코트 가8.5. 기타
9. 대영제국
9.1. 왕실9.2. 정치인/관료9.3. 군부9.4. 기타
10.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10.1. 황실10.2. 군부
10.2.1. 육군10.2.2. 해군
11. 청나라중화민국
11.1. 청나라 구세력11.2. 북양정부
11.2.1. 봉천군벌
11.3. 국민정부
12. 폴란드 제2공화국13. 이탈리아 왕국14. 오스만 제국튀르키예국15. 불가리아 왕국16. 체코슬로바키아 군단17. 벨기에 왕국18. 그리스 왕국

1. 개요

본 문서는 한국의 대체역사 웹소설 『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에 나오는 등장인물과 그 행적을 서술한다.

2. 대한제국

2.1. 군부

김민재가 김시혁에 빙의한 1894년 시점에는 한성구락부로 뭉친 근왕파, 허진을 중심으로 한 대원군파, 안경수, 우범선, 이두황 등을 포진한 친일파로 나뉘어 알력 싸움이 치열했다. 이후 대원군이 사망하면서 대원군파가 자연스럽게 와해되자 근왕파와 친일파라는 양강 체제가 성립되었다.[1] 이후 을미사변과 1차 친위 쿠데타를 거쳐 근왕파가 주도권을 쥔다.

내각의 친일파는 1903년 2차 쿠데타와 1905년 극동 전쟁 승리를 거쳐 비로소 척결되나, 군부는 1895년 1차 쿠데타를 기점으로 친일파를 대부분 털어내는 데에 성공하여, 2차 쿠데타 직전 친일파 고급 지휘관은 강종의 비호를 받은 이병무 1명뿐이었다. 대원군 시절 군인 우대 정책과 2차례 쿠데타를 거친 탓에 자칫 군국주의로 흐를 위험성을 내포하게 되었으며, 수장인 김시혁이 문민통제를 철저히 강조해 이를 제어하고 있다.

1차 세계대전이 무대인 2부에서는 게릴라전 경험만 있어 적극적 참전을 주장하는 남부 출신과 사람 목숨이 종잇장보다 가벼운 전면전을 겪어 보고 신중론을 주장하는 북부 출신 지휘관들의 성향이 나뉘는 모습을 보인다.

충청도를 경계로 지휘관들의 위상이 확연히 갈리는데 영관급 이상 고급 지휘관 절대다수가 극동전쟁에 공을 세운 북부, 특히 서북 출신들이고 일부 예외도 기호 지방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다.[2] 군부를 견제할 기회만 노리던 강종은 출세길에서 밀려난 영호남 출신 장교들을 근황파로 끌어들여 갈라 치기를 시도한다. 김시혁이 확실한 구심점으로 존재할 때는 단순한 의견 다툼 선에서 정리될 수 있었으나 김시혁이 유럽으로 떠난 사이 강종이 근황파를 키워주겠다며 지속적으로 군 내부에 침투해 구주원정군을 제외한 잔류 육군부대 상당수가 오염된다.[3] 이 군 내 근황파가 주축이 되어 2.27 계엄령을 일으키나 김시혁에 의해 제압되고 강종도 퇴위하면서 군부 내 근황파는 뿌리가 뽑혔다.

2.1.1. 육군

2.1.2. 해군

수장인 장기렴이 강종의 무리한 대청 선전포고에 부화뇌동해 사상자만 3천을 낸 이근택에게 직언하다 보직 해임된 인물인데다, 뜸만 들이던 강종이 해군 창설을 적극 지원하게 된 계기가 의화단 진압 과정에서 노획한 마제은 백만 냥을 꿀꺽하려다 들켜서 울며 겨자 먹기로 한 것이다 보니, 태생부터 강종과 척을 졌다.

전력 확충 과정에서 밀덕후 강종이 열심히 구상하던 함명을 가뿐히 까버리고 해군이 알아서 지으며 각을 세우다가 강종이 어뢰정 8척 구매 계약을 엎어 버리고 다 낡아 빠진 이름만 순양함이고 실제로는 폐품인 양무호[14] 강제로 떠안게 만든 것을 계기로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된다.[15] 그러나 자기 돈으로 발족한 해군을 사유재로 여긴 강종은 식단부터 전함 도입까지 끊임없이 간섭을 이어가는 한편 해군의 반항심이 왕 목 잘라 본 프랑스 교관들에게 배워서라고 생각해 신실한 신민들의 나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과 제휴를 추진하고 이것이 또 다른 나비 효과를 부른다.

초창기 해군 창설을 주도한 장기렴과 이동휘는 육군에서 넘어온 드라이 네이비였고, 극동전쟁을 거치고 규모를 키워가면서 항해장교, 상선사관 출신들이 속속 등장하는데, 둘 사이에 미묘한 알력이 있다.

1910년대 들어 동해 정어리 어장을 중심으로 일본과의 어업 분쟁이 격화되어 유혈 충돌로 번져가자 민간인에 대한 물리력 행사가 제한되는 해군 대신 해상 치안을 유지할 조직이 필요함을 절감하고 홍익정밀에서 기선을 임대하고 포군 인력을 충원한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훨씬 폐쇄적인 조직 특성상 꾸준히 군내 근황파를 침투시켜온 강종과 익문사도 해군 내에 협력자들을 심는데는 실패했다. 충무 계획이 발동하자 동남서해의 사령부가 일제히 원수부의 지시를 따르겠다는 전갈을 보내고 강습보병여단, 현지 순검대와 협조해 강원도의 근황파 병력을 제압했다. 인천에 주둔한 서해함대는 한산급 구축함 함흥과 해군육전대를 갈수기 한강을 따라 올려보내 원수부를 함락 직전에 몰아넣은 헌병대를 섬멸하고 경복궁과 헌병 주력에 포격을 가하겠다고 위협해 전세를 원수부 쪽으로 기울게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규모에 비해 한족과 만주족 비율이 대단히 높은 편으로 1921년 해군 총원 4만 6천 중 8천이 한족과 만주족 출신이었다.

2.1.3. 기록조사실 → 기록국

군제 개혁 과정에서 온 사방에 꽂혀 있는 일본의 빨대들을 잘라낼 필요성을 실감하여 창설된 첩보 조직. 작중에서는 원 역사의 정보대상무영을 대신한다.

초창기에는 김시혁과 조동윤 사이에 권한 문제로 살짝 알력이 있었으나, 강종의 익문사 창설을 계기로 갈등을 봉합하고 교통정리가 이뤄진다. 친일파를 처단하고 강종의 권한을 제한하는 황색 계획과 극동전쟁 제2 전선 형성에 크게 기여했으며, 중화민국을 활용한 북양군벌 견제와 중국을 둘러싼 일본과의 대리전에서도 꾸준한 성과를 올렸다. 원세개 몰락 이후 일본은 첩보전에서 한국의 우위를 인정한 채 사실상 승부를 포기한 상태로 다이쇼 덴노가 어전 회의에서 콕 집어 지적할 정도로 공공연한 비밀이다.

내부적으론 황제가 관할하는 제국익문사, 황실경위원, 국가헌병대와 라이벌 관계이며 내각 관할 하의 경무청 정보과와도 미묘한 견제와 협력을 오가는 사이. 하지만 일본으로 망명한 친일파들을 사냥하는 일 만큼은 제대로 협력한다.

이런 유능함은 단순히 소설적 허용이 아니라 원 역사 대한제국이 방첩 역량만큼은 우수했기에 자연스럽게 나온 전개다. 황제가 거느렸던 익문사,[21] 경위원, 정보대는 비록 일본에 규모와 자금력에선 뒤처졌으나 질적인 면에서는 호각이었으며, 일본은 대한제국 곳곳에 협력자를 두고도 이들을 상대하는 데 애를 먹어 결국 무지막지한 물량 공세로 승부해야 했다.

이 우세는 1차 대전 중 일본이 방첩에 예산과 인력을 쏟아붓기 시작하자 흔들리기 시작해 일본쪽 라인 대부분이 끊어지는 지경에 처한다. 여기에 중국쪽 정세 급변으로 신뢰할만 한 기록국 요원들이 해외에 대거 투입되면서 반대로 국내 방첩이 흔들려 강종에게 암약할 빌미를 주게 된다. 3월 혁명 이후에는 해체된 익문사, 헌병대 조직을 상당부분 흡수함으로서 경무청 정보과와 함께 대한제국의 양대 정보기관으로 자리잡는다. 원래부터 활동 영역이 군사정보, 방첩에만 걸쳐 있지 않았는데 광범위한 민간 사찰, 사보타주까지 가능해지자 내각에서도 익문사 이상의 위협이 될 불안을 느끼고 견제에 들어간다.

국군조직법 제정을 두고 내각과 협의중이던 김시혁도 조동윤 이후를 예비해 기록국 권한에 제한을 둘 필요가 있음을 인정하고 협조를 요청했고 조동윤 측은 진행중이던 우장춘 망명을 완료된 후 조율에 응하겠다 답변한다.

2.2. 황실

2.3. 관료

의화단 진압과 남만주 점유를 거치며 지주가 주축이 된 남부와 실업가 중심의 북부로 파벌이 갈린다.

2.4. 친일파

1, 2차 쿠데타와 극동전쟁을 거치며 다 제거되거나 망명하거나 친일 노선을 버렸다. 일본이 현지 협력자 포섭 수단으로 적극 활용한 아시아주의는 사실상 매국의 다른 이름이 되어 대한제국 내에선 뿌리가 뽑혔다. 일본의 아시아주의는 극동전쟁에서 패배하고, 한국이 1차 대전에서 유럽 열강 군대를 격파하는 모습을 보면서 크게 변하게 되는데, 일본이 아닌 한국을 중심에 두거나 최소한 한국의 역할을 매우 강조하는 형태로 변화했고, 일본을 유일무이한 중심에 두는 기존 아시아주의는 일부 강경파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돌아갈 곳이 없는 한국인 친일파들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후자에 완전히 매몰된 채 극단적인 자기정당화에 치중한다.

2.5. 독립협회 → 신민당

중추원이 자리 잡으며 황제와 황국협회에 대응되는 야당으로 자리 잡는다. 한성부를 비롯한 도시가 주요 지지기반. 뚜렷한 구심점 없이 언론사와 실업가의 후원을 받는 구파와 지주와 학생계를 중심으로 한 신파[38]로 파벌이 나뉘며 그 안에서도 인물과 성향에 따라 자잘한 파벌들이 존재한다. 이승만이 제 지지세력을 데리고 민본당으로 떨어져 나가고 남은 계파들이 모여 신민당으로 개편된다.

주 텃밭은 기호지방과 삼남.

2.6. 황국협회 → 한국 민주당

중추원의 규모가 커지면서 근황파 여당으로 정착한다. 강종을 구심점으로 확실하게 뭉쳐있어 결속력에 우위를 가졌으나 기독교계 신파가 점점 세를 불리면서 독립협회처럼 분열하기 시작한다. 구파는 전통적 유림의 사고방식을 따로 황실에 충성하고, 한족, 만주족에 대해서도 교화에 중점을 둔 동화, 흡수 정책을 추구하나 신파는 서양식 사회진화론과 개신교 사고방식에 입각해 제국주의적 면모를 아주 강하게 드러낸다. 텃밭은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당의 수장인 길영수는 1차대전 전후로 강종과 결별을 택하고 정책정당으로 개편을 시도한다. 이 과정에서 길영수를 따르는 청류파와 강종 개인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탁류파로 나뉘었고 청류파가 당권을 쥠으로서 축출된 탁류파는 세력기반인 보부상 청년조직 상당수를 이끌고 헌병대에 합류한다. 민영환이 자리를 비운 사이 강종이 추진한 내각 해산과 게리멘더링을 통한 어용내각 구성으로 힘없는 야당으로 밀려나 강종과 더욱 대립각이 심해진 상황에서 친위 쿠데타와 2.27 계엄, 시위대 학살에 경악하며 강종 퇴위에 동조하게 된다. 3월 혁명 이후 당명을 한국 민주당으로 바꾸고 정책 정당으로 완전히 거듭난다.
}}}
계엄령이 진압된 이후 김시혁이 이승만의 편지를 보고 불쾌감을 드러내자 차라리 김시혁이 군정을 이끌 것을 여운형이 제안하자 옆에서 동조한다. 이후 신민당-한민당 연립 내각이 구성되었을 때 법부대신을 맡으며 죽은 이형의 묘호를 고르고 있을 때 강(槺)종과 유(謬)종을 추천했다.[40]

2.7. 민본당 → 한국 자유당

강종의 총리 제안을 받아들인 이승만이 자신을 따르는 독립협회 강경파와 강종이 미리 포섭해둔 근황파 거수기들을 데리고 꾸린 신생 정당. 이승만은 내심 당명으로 민주를 쓰고 싶었으나 그랬다간 강종이 즉시 역적으로 몰아 파묻어 버릴 게 뻔해서 민본으로 타협했다. 게리맨더링이란 편법으로 의석수를 불리면서 잡다한 인간 군상들이 영입되다보니 또렷한 지역적 기반은 부재하다. 2.27 계엄과 3월 혁명으로 기껏 구축한 내각이 붕괴되고 잔존 세력을 결집시키려던 이승만이 미국대사로 임명되어 사실상 유배당하면서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이후 남은 잔재 세력들이 모여 한국 자유당을 창설하고 야당이 되어 새로운 체제에 인정받고 싶어하는 만인과 한인을 끌어들이며 대일 강경책을 주장하고 다닌다.

2.8. 근황파

2.9. 기타

3. 러시아 제국 → 전 러시아 임시정부

모든 군사 교리는 해당 국가의 사회, 문화, 역사 전반이 아우러진 총체라는 설명과 함께 질을 뛰어넘어 양의 위엄을 선보이지만, 동시에 동맹국을 파트너가 아니라 종속국 취급하는 러시아 외교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래도 대한제국에 있어서는 1순위 우방이라 대한제국도 나름 러시아는 잘 돕고 있다. 1차 대전 발발 이후로 영국과 프랑스의 혐성 가득한 행보가 주목받으며 막무가내긴 해도 가식적이지 않은 러시아는 다시 보니 선녀 같은 우방국이 되었다.

러일전쟁 패전과 1차 대전에서의 고전만 보고 무능력한 장군들이 많았을 거란 일반적인 편견과 달리 언제든 초개처럼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유능한 군인과 식견 있는 관료들이 많이 존재했으며 러시아 국민들도 전쟁 승리를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내했으나, 제일 위에 있는 멍청한 차르 부부와 그를 둘러싼 궁정 귀족들 탓에 희생만 몇 배로 내고 쇠락하는 운명을 막지 못했다. 그래도 바뀐 역사 덕에 차르 일가는 목숨을 보전했고 현재 연해주를 중심으로 임시정부를 구성 중이다.

차르에게 충성하던 장군들은 같은 백군의 배신과 외면속에 고군분투하다 전사하고 남은 백군 장군들은 군벌화되어 따로 놀고, 연해주의 러시아 관리들은 일본에 뇌물받고 주권 침탈과 범죄를 눈감아주고, 유일한 후원자인 대한제국도 소비에트 연방을 러시아 유일의 합법 정부로 인정하고 외교정상화, 경제 교류를 시작할 예정에 차르 부부는 탈출하지 않고 소비에트의 재판을 기다리고 있어 미래가 매우 어둡다. 탈출한 차르의 가족들도 현실을 인정하고 대한제국으로의 망명을 택한다.

3.1. 황실

3.2. 관료

3.3. 군부

3.3.1. 육군

3.3.2. 해군

3.4. 한국계 러시아인

3.5. 기타

4. 소련

물자 공급이 끊어져 생존 위기에 직면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노동자들 중심으로 들고일어난 원 역사와 달리 한국군의 개입과 갈리치아에서의 승전으로 전쟁에 지친 장병들과 농민들이 볼셰비키를 지지해 봉기의 중심이 되면서 레닌, 트로츠키 등 핵심 지휘부를 제외한 기반부터 원 역사와 달라지게 되었다. 차르를 끌어내리지도 못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점령하는 데도 실패해서 최종적으로 차르의 축출도 승전이 아닌 협상으로 이뤄졌다.

이러다 보니 위신에 손상이 가서 위신을 만회하고자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서아시아에 적극적인 공세를 퍼붓고 있어 아직 1차대전 종전협상이 안 끝난 상황에서 유럽 국가들은 동유럽에서 소련과 시즌 2로 싸우고 있어 다들 죽는 소리를 하고 있으며, 튀르키예 공화국 정부와도 손잡고 서남아시아로 광폭적인 남정을 행하고 있어 각국의 경계를 사고 있다. 이 때문에 영국에서는 독일에 대한 재무장을 허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피꺼솟한 프랑스와 벨기에의 반대로 인해 협상이 계속 밀리는 중.[62]

현재 김시진에게 패배해서 위신에 손상이 간 트로츠키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대한제국에 대한 이미지는 마냥 나쁘지 않은 편이다. 볼셰비키의 주 관심사는 어디까지나 유럽과 중앙-서남아시아라서 극동에 있는 대한제국에 대한 관심이 적고 김시혁-김시진 형제라는 인간 핵병기(?)를 상대로 침공하는 건 부질없다 여긴다. 극동전쟁과 1차대전 때 대한제국이 러시아 제국을 도와줘서 소련 대중들 사이에서 대한제국의 이미지도 괜찮은 편이고, 러시아 제국 시절부터 대한제국과 활발한 무역을 하다 보니 적백내전 이후 무역이 마비되자 그 여파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왔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트로츠키를 제외한 볼셰비키들 사이에서는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보다 대한제국과 적당히 타협해서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한 연해주를 사수하고 무역을 회복해서 적당히 공존하자는 인식이 강하다.

소련이 제일 먼저 수교에 나선 나라가 대한제국이었고, 대한제국에게 관리 못하고 있던 북만주를 양도하고 연해주의 보장과 무역 회복, 국체 승인을 받아내서 현재는 나름 무난한 관계를 형성한 편이다. 이후 소련은 대한제국의 중재를 받아 프랑스와도 수교를 맺었고, 이 영향으로 원 역사와 달리 전간기에 국제적으로 여러 나라와 정식으로 국교를 맺게 되었으며, 극동을 통해 프랑스-한국 동맹 경제권과도 이어지게 되었다. 미국이 프랑스-한국 경제권에 적극적으로 진입을 시도하고 있으며 대한제국도 이를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대한제국을 통해 미국과 소련 경제도 간접적으로 이어질 듯하다.그런데 이렇게 되면 원 역사와 달리 대공황에 같이 말려드는 거 아닌가?

독자들은 레닌 사후 스탈린이 정권을 잡을 경우 대한제국과 소련이 전간기에 나름 괜찮은 공생관계를 이루지 않을까 추정 중이다. 본래 소련이 제안한 것보다 더 적은 영토로 만족하며 적대할 의사가 없음을 명백히 내비친 대한제국보다 합법적인 소련 영토인 연해주를 불법 점유한 일본을 향한 적개심이 클 수 밖에 없는데다 역사 개변으로 도시 노동자가 아닌 농민층의 지지로 혁명에 성공하면서 원 역사처럼 대대적인 쿨라크 숙청이 어려워진 소련에게 대한제국과의 교류로 중공업 우선정책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식량, 경공업 제품의 부족 문제를 완화하고 농촌에 닥칠 피해도 줄이는 건 매력적인 선택지이기 때문. 미국 자본가들도 대한제국을 통해 간접적으로 소련과 교역할 생각을 갖고 있어 잘만 하면 홀로도모르 같은 피해를 최소화하며 더 효율적인 공업화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4.1. 최고지도자

4.2. 정치인/관료

4.3. 군부

5. 일본 제국

작중 메인 빌런 포지션 국가. 같은 대체역사 장르의 다른 작품에선 호구 취급받는 일본 제국이지만 여기서는 대공황관동대지진, 군부의 폭주를 거치며 본격적으로 망가지기 이전이라는 점을 착실히 고증해서 말석으로나마 열강 자리에 앉은 것이 괜히 앉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2부 시점에서도 여전히 확장을 노리고 있으며 결국 대한제국이 러시아가 일제의 확장을 용인하지 않는 걸 대가로 1차대전에 참전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정식 열강은 아니라서 외교적인 대접은 열강에 준하는 나라 수준의 취급이며,[67] 2부 외전에 따르면 원 역사에서는 1차대전을 통해 정식 열강의 반열에 오른 반면 본작에서는 대한제국의 존재와 어쩡쩡한 태도 때문에 협상국에게 찍혀 결국 정식 열강의 취급을 못 받게 되었다.[68]

1918년 연해주에 파병된 장병들이 본국의 통제를 벗어나서 원 역사 2차대전기에 보이는 광기를 표출하기 시작해 독자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69] 극동 전쟁 이후 최근 육군 애들 말하는 게 단체로 이상해진 것 같다고 하라 다카시가 1918년에 속으로 깐 걸 고려하면 극동 전쟁으로 기존 인적체계가 박살 난 후유증으로 인해 원 역사보다 더 빨리 폭주가 두드러지는 듯하다.

그래도 1919년까지는 경륜과 능력을 갖춘 문민 관료들이 고삐를 잡고 있어 파리강화회담에선 열강다운 노회함을 보여주기도 하고 한국과의 관계에도 3.1 혁명에 불개입 선언하고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주나[70] 문제는 이 문민 관료들이 20년대 대부분 군부와 우익 세력에게 암살당한다는 것.

1부 외전부터 대한제국에게 자원 수입을 의존하고 있다는 떡밥이 있었는데, 2부 외전에서 그 의존도가 상상 이상으로 커서 국력에 제약이 걸릴 정도라는 것이 밝혀졌다.[71]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상황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이 대한제국보다 위라고 생각하며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서[72] 독자들이 어이없다는 평을 내리고 있다. 그나마 상식적인 내각까지 이 모양이다.[73] 그러나 대한제국에서는 아니꼽기는 해도 뇌가 있는 건가 의심스러운 군부와 극우 세력이 정권 잡고 폭주할 바에는 말이라도 통하는 문민 내각이 차악이라는 이유로 의도적으로 각종 배려를 해주고 있다.[74]

대한제국은 문민 내각이 통제권을 유지하며 정상국가화되는 것이 낫다고 여기고 있어 현재까지는 아슬아슬한 공존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문민 내각들이 대한제국의 은근한 도움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극우, 군국주의 세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고 2부 외전에서 "어느 누가 미치지 않고서야 한국과 미국에게 동시에 전쟁을 걸겠냐"는 발언이 나오면서 독자들은 3부에서 원 역사의 일제가 그랬듯이 중일전쟁 대신에 한국과 싸우고 원 역사처럼 태평양 전쟁이 동시에 일어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5.1. 황실

5.2. 군부

5.2.1. 육군

5.2.2. 해군

상대적으로 안정을 중시하는 노장 중심의 해군 좌파와 강경 소장파 중심의 해군 우파로 쪼개져서 치열한 물밑 파벌싸움을 벌인다.

5.3. 내각

5.4. 기타

6. 프랑스 제3공화국

러프동맹의 인연 덕에 대한제국과 맺어진 또 하나의 우방이며, 열강이지만 아직 산업화 등이 늦어 도움의 요소가 적은 러시아와 달리 제대로 된 도움을 주는 사실상 진정한 우방.[85] 실제로 프랑스도 대한제국을 나름 수평적 파트너로 생각한다는 묘사가 글 곳곳에서 보인다. 다만 이쪽도 2부 시점을 보면 제국주의 열강으로서의 혐성이라는 한계를 뚜렷이 보여주는 까닭에 러시아가 선녀같다는 의견도 독자들 사이에선 나오는 편. 그러나 영국의 서부전선 개입이 확정된 후 혐성과 협잡질이 가히 배후중상 수준에 달하면서 상대적 천사가 되었다. 사실 원 역사의 프랑스가 의외로 대한제국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게 호의적이었음을 고려하면 고증이다.

1918년 4월. 한국과 20년짜리 동맹조약을 체결해 정식으로 파트너가 된다.

전간기에 원 역사와 가장 행보가 많이 달라진 나라 중의 하나인데, 한국과 파트너쉽을 맺은 영향이 매우 컸다. 1차대전 때 한국군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합동 계획한 작전안으로 막바지에 자국군 영토를 모두 수복한 것은 물론이고 한국군을 용병으로 파견해 루르 일대를 함락시켰고, 이를 기반으로 1차대전 이후 라인란트 일대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으며 이를 위해 한국군의 일부를 주둔시키기도 했다.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면서 그레이트 게임이 종결되자 이후에는 프랑스가 영국과 드잡이질하며 경쟁하게 되었는데, 1차대전 때 환율 방어를 위해 많은 화폐를 찍어내고 이를 남중국에서 모두 소화시키는 한편 행정구역상 본국인 알제리에 별개로 있는 중앙은행과 병용시켜 화폐 방어에 성공한 것은 물론, 금 방어도 상당히 해내서 전후 재정 상황이 영국보다 여유롭다고 한다. 다만 전간기 동안 프랑스의 세력권 유지를 위해 소련과 손잡은 튀르키예군과 드잡이질 중이며, 적백내전 때 한국군에게 굴욕을 당해 백군을 완전히 제압시키지 못한 것에 피꺼솟한 소련이 이를 만회하겠답시고 동유럽에 대규모 군사활동을 벌이는 걸 막느라고 쉬지 못하고 싸우고 있어 회복은 요원하다.

남중국 경제의 주도권을 한국과 프랑스가 갖게 되었고, 네덜란드가 영일동맹의 존속에 불만을 품고 인도네시아 사수를 위해 프랑스로 편을 갈아타면서 한반도-남중국-프랑스령 인도차이나-네덜란드령 동인도로 이어지는 동아시아~동남아시아 경제망을 구축했으며 이는 군사, 정치, 외교적인 연계이기도 했다. 동아시아에서는 영일동맹이 맺은 일본-북중국-류큐-대만-영국령 말레이-인도로 이어지는 경제망이 있어 현재 두 세력이 힘싸움을 하고 있고, 이는 미국의 정치 구도에도 영향을 끼쳐 미국은 두 세력의 사이를 중재하는 방식으로 고립주의 노선을 유지하는 한편, 미국 자본의 유입을 철저히 막고 있던 영일동맹과 달리 미국 자본의 유입을 흔쾌히 허락한 한프동맹과 경제적으로는 밀착한 관계이다.

프랑스도 한국과의 시너지가 굉장히 만족스러웠는지 대한제국에게 여러 편의를 봐주는 모습이 많고, 대한제국도 그런 프랑스와 충실히 협력하면서 순탄하게 함께하는 중이다. 전반적으로 전간기의 제3공화국과 달리 대한제국과의 동맹이 프랑스 정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묘사가 많아서, 원 역사처럼 번아웃이 와서 내부적으로 무너지는 일은 적어도 대공황 때까지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6.1. 관료

6.2. 군부

7. 독일 제국바이마르 공화국

'전술적'인 면에서는 명실상부 유럽 최강이자 김시혁도 승패를 장담하지 못하는 유일한 국가. 본작에서는 흔히 악의 제국 이미지 때문에 실제 역량보다 과대평가되는 나치 독일군보다 군축 후유증을 겪지 않았고, 처음부터 총력전으로 달려드는 열강들을 양면으로 맞상대한 제2제국 독일군이 전술적으로 훨씬 뛰어난 군대라는 점이 강조된다.

주도적으로 공세에 임하는 상황이건, 기습을 받아 밀리는 상황이건 가리지 않고 기존의 적들과는 차원이 다른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런 독일군의 가장 큰 특징은 '전쟁은 과학'이라는 명제 아래 진행되는 지독할 정도의 통계, 자료 수집과 이에 기반한 분석. 야구에 비유하면 철저한 데이터 야구를 추구하는 팀이라고 표현된다.

극동전쟁 때 한국군을 상대한 일본군이 교환비 6:1로 열세였고, 렘베르크 방면에서 교전한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10:1로 밀린데 반해 마녀의 숲 전투까지 2.5:1에서 많이 잡으면 4:1 가량으로 한 세대 앞선 선진 군대인 한국군 상대로 가장 준수한 교환비를 내며 선전했었다. 브루실로프 공세가 종료된 시점에 최종 교환비는 대략 7:1. 독자들이 보급도 간당간당한데 이놈들을 대체 어떻게 이기냐고 질려 했을 정도로 철두철미한 전쟁기계의 면모를 보여주었으나 결국 통계와 자료 수집에 의존하는 방식의 맹점을 극복하지 못해 허를 찔린다.

예를 들어 장갑차를 따로 운용해본 적이 없는 상태로, 러시아군의 장갑차 대대를 넘겨받은 한국군이 당연히 러시아의 장갑차 운용 독트린에 따라 대단위 부대를 딸릴 것이라 여겼으나 정작 김시혁은 1개 장갑차 중대에 강습보병 1개 중대만 붙이는 바람에 한국군 예비대 계산이 완전히 틀려버렸고 프랑스 교관들에게 배우고, 프랑스제 야포를 사용하는 한국군 포병대가 프랑스식 평사포, 곡사포 혼성 운용을 할 것이라 여겼으나 한국군 포병대는 곡사포로 통일된 상태라 일방적으로 밀린 끝에 곡사포를 대거 망실하고 만다.

작품이 진행되면 될수록 '전투만 잘할 뿐 전쟁은 못 하는' 독일의 고질적인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2차대전까지 독일군을 비판할 때 흔히 거론되는 '킬딸충' 성향은 물론 북독일 프로이센의 남독일(바이에른, 바덴뷔르템베르크)을 향한 은근하고 치졸한 차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죄다 징고이스트 소굴에 내각과는 아예 다른 나라에 가까운 군부 등등.

1910년대 독일답게 한국군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언사에서 인종적인 편견이 굉장히 심하게 드러나는데,[91] 그것과 별개로 지휘는 굉장히 신중하고 정석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을 강구하는 것도 특징이다. 전자는 시대상 고증이며 동서양 군대의 대결을 그린 대역물에서 일반적인 전개이나 후자 쪽, 그럼에도 허술하게 대응하지 않고 최대한 한국군의 의중을 따라가고, 위협적인 상황도 연출하는 것은 기존 대역물에서 보이지 않았던 전개 방식이다.[92]

전쟁 종결 당시와 전후 융커들이 보이는 태도가 하도 심각해서 사실 진정한 배후중상은 융커 놈들 아니냐고 독자들에게 쌍욕을 먹고 있다.

7.1. 황실

7.2. 군부

7.2.1. 육군

7.2.2. 해군

7.3. 정치인/관료

7.4. 기타

8. 미합중국

1부에서는 큰 비중이 없었고 2부에서부터 비중이 증가한다. 잠재력과 머릿수는 어마어마하지만 오합지졸 당나라 군대였던 1차 대전기 미군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107]

역사 개변의 나비효과로 2부부터 미국 자본가들이 대한제국을 통해 동아시아~동남아시아 시장 개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었는데, 2부 외전에서 고립주의로의 회귀를 표방한 하딩 시절에도 미국 자본가들과 대중들은 "고립주의는 고립주의고 시장 개척은 시장 개척이다"라며 적극적으로 시장 개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영국과 일본은 미국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시장에 진출하는 걸 철저히 막고 있던 반면 대한제국과 프랑스는 미국 자본의 유입에 호의적이라서 서로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1910~1920년대 미국 자본가들과 대중들은 한국에게 호의적이고 일본에게 적대적이라고 한다.[108]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와 활발히 무역하는 걸 고려하면 광란의 20년대가 원 역사를 능가하는 규모일 듯. 대공황의 원인 중 하나가 과잉투자라는 점 때문에 원 역사보다 미국의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시장의 규모가 훨씬 커진 본작에서는 대공황이 일어나도 원 역사보다 피해가 줄어드는 게 아니냐는 설이 있다.

원 역사와 달리 한프동맹이 동아시아~동남아시아 권역에서 영일동맹의 아시아 권역과 팽팽하게 경쟁 중이라서 경제가 아닌 정치외교적인 측면에서는 둘 사이의 중재를 하는 수준이며, 원 역사와 달리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시점에서도 영일동맹 해체에 크게 매달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본의 팽창욕구와 시장 방해, 각종 외교적 결례로 인한 신용도 부족,[109] 2부 외전에서 일본이 한국과 미국에게 동시에 싸움을 걸 거라는 떡밥이 나오면서 원 역사처럼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8.1. 대통령

8.2. 정치인/관료

8.3. 군부

8.4. 하코트 가

8.5. 기타

9. 대영제국

2부 들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독자들의 감상은 1부의 일본을 뛰어넘은 2부 메인 빌런이자 혐성국 그 자체. 한국을 얕보고 일본과 동맹하고 있지만 막상 일본도 그냥 사냥개 정도로 대우하면서 혐성을 보이는 것은 물론 한창 전쟁 중에 승기가 보이는 것도 아니고 패배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판국에 정치질에만 몰두하며 전선을 어렵게 만들고, 자기들이 요청해 한국군을 출병시켜 놓고 일본을 충동질해 한국의 등을 찌르게 만들고 3.1 혁명이 발생하자 강종과 근황파를 지원해 한국을 두쪽내는 내전으로 끌고갈 구상을 내놓는 등 온갖 협잡질과 고구마 제조를 책임지고 있다.

독자들은 후대에 배후중상 음모론이 나와도 이상할 게 없다며 치를 떨고 있다. 물론 현실에서도 혐성국, 현대사의 원흉 중에 대영제국을 찍으면 반은 맞는다 밈이 있을 정도로 신나게 까이는 중이긴 하지만 여기 세계선에서는 그게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단, 높으신 분들과 별개로 일선의 장병들은 김시혁이 경의를 표할 정도로 용감하고 감투정신이 넘쳐흐르는 전사 그 자체의 모습을 보여준다. 헤이그와 고프가 거의 패작을 하는 상황에서 아미앵이 무너지지 않은 데는 산산조각나 전멸하는 순간까지 악착같이 맞선 영국군 제대의 분전이 컸다. 그리고 패작을 하는 지휘관들만 있는 게 아니고 허버트 플러머나 잭 실리 같은 뛰어난 지휘관들도 존재한다.

3.1 혁명 이전까지 대한제국을 러시아와 프랑스 따까리로 보고 강력하게 견제 중이었지만, 3.1 혁명으로 대한제국이 입헌군주정으로 전환되자 포섭 가능성이 있다며 이전보다 유화적으로 나가고 있다.[122]

9.1. 왕실

9.2. 정치인/관료

9.3. 군부

9.4. 기타

10.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1차 대전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바뀌는 계기를 마련한 국가. 황권 강화에 골몰하던 강종은 구주 한복판에서 수백 년간 막강한 권위를 향유한 전제군주국인 이중 제국을 눈여겨보고 먼저 다가가면서 대한제국과 교류가 늘었고 이 과정에서 본래 추진하던 군사 개혁이 탄력을 받아 원역사보다 더 많은 정예 병력을 양성해 성공적으로 보전해 러시아를 밀어붙인다. 그러나 이 개혁의 원조격인 대한제국이 1차대전에 참전하여 브루실로프 공세에서 대차게 박살나버렸고 그 뒤에 비스와 강의 기적 때 다시금 반격을 시도하나 역시나 저지되어버렸고 이후에는 원역사와 비슷한 행보를 걷다 제국 해체의 운명을 맞는다.

10.1. 황실

10.2. 군부

10.2.1. 육군

10.2.2. 해군

11. 청나라중화민국

청 멸망 후 군벌들의 난립과 외세의 개입으로 북중국을 장악한 북양정부와 남중국의 국민정부로 나누어졌다.

11.1. 청나라 구세력

11.2. 북양정부

11.2.1. 봉천군벌

11.3. 국민정부

12. 폴란드 제2공화국

13. 이탈리아 왕국

14. 오스만 제국튀르키예국

15. 불가리아 왕국

16. 체코슬로바키아 군단

17. 벨기에 왕국

18. 그리스 왕국



[1] 군부내 친일 세력의 영향력이 상당히 큰 편인데 경복궁 습격 당시 내부 친일파가 군령을 위조해 평양 기영병들이 사수하던 영추문 방어력을 약화시켰을 정도.[2] 조선 왕조 시절부터 한양에 뿌리내리고 있던 무반 명가들은 대원군의 군사 개혁과 임오군란, 갑신정변 등 수차례의 정변 끝에 신헌(신팔균의 조부)의 가문을 제외하면 소멸했다. 본래 억세고 상무적 기풍이 강했던 북부 출신들은 조선 왕조 내내 차별받다 보니 보수적인 유림층이 없어서 빠르게 근대화의 흐름을 탔고 극동전쟁이란 전면전에서 공을 세워 날아올랐다. 상무적 전통이 희미했던 영호남은 극동전쟁에서도 제2전선으로 돌려진 탓에 실력이건 실적이건 경쟁이 되지 못했는데, 한편으로 유림의 본산이자 농업 중심의 경제 체제를 유지함으로서 근대화 흐름이 늦어 군주를 보위하는 전통적 사고방식에 더 익숙하다 보니 강종이 포섭하기에는 아주 좋았다.[3] 수도권 인근의 3사단과 8여단은 영관급 이상 장교들이 근황파, 평양의 2사단과 만주의 6사단은 위관급에 근황파가 대거 자리잡으며 그외에도 철도경비대나 경무청 등 준군사조직 요소요소에도 근황파가 들어가 박혔다. 향후 대대적인 숙군이 필요해졌다.[4] 경기도의 진위대 3여단을 제외하면 정규군 부대가 없어서 관서, 관북은 물론 서간도와 북간도 병마까지 전부 통솔하는 양서순무사 김시혁의 권위가 훨씬 높았다.[5] 독자들은 4.19 혁명이 떠오른다는 평이 많다. 이승만의 군 사병화 시도에 꾸준히 불편한 입장을 드러내고, 미국의 에버레디 계획에 은밀히 협조할 의사도 내비쳤던 군은 강경진압을 거부하고 국민 여론에 협력했다.[6] 나무위키에 문서가 개설된 사창리 전투6.25 전쟁 당시 동명의 강원도 화천군 마을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작중 등장하는 함경도 사창리는 실제 역사에서는 북한에 의해 신창리로 통합되었다. #[7] 원역사에서도 이응준은 이갑의 사위였다.[8] 근황파는 일부러 1근위기병사단에게 연료를 부족하게 보급해 유사시 한성에 진입할 수 없도록 하려 했으나 민영찬은 이를 짐작하고 SI 단위계와 야파법, 척관법의 차이를 노려 서류상에 기록된 것 보다 훨씬 많은 연료를 배급했다.[9] 강종이 군부, 관료를 견제하기 위해 주요 관방지의 유수들을 임명할 때, 확실히 근황파로 분류된 인사들과 군부, 관료와 갈등이 있는 인사들을 임명했다.[10] 사실 김좌진과 함께 오헝군을 급습한 것도 어차피 낙오당해서 늦었다고 벌받을 테니 기왕에 벌받을 거 일이나 하나 저질러보자는 마인드로 지른 거다... 물론 비록 결과는 대성공이었으나 곧바로 단독 행동했다고 대대장에게 까였다.[11] 장갑차가 러시아군 사양보다 장갑이 훨신 강화된 특주품이라 집중 사격을 받고도 총상을 입진 않았으나 야간에 쫒기면서 이동한 탓에 원수부 담장을 들이박아 머리에 상처를 입는다.[12] 부관 생활을 오래하는 건 장기복무를 노리는 장교에게 좋은 일이 아니다. 진급을 위한 경력관리에 필요한 주요 지휘관 보직 다는 게 그만큼 늦어지기 때문. 그래도 지청천은 부관달기 전에 참전 경력과 전공을 적잖이 쌓아뒀고 원수한테 눈도장도 찍었으니 상황이 좀 낫다.[13] 사단 지휘부는 원래 이범석만 보내려고 했었지만 이범석이 엉뚱한 짓을 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같이 투입되었다.[14] 작중 양무호는 성능은 보잘것없는 주제에 연료인 석탄 소모량은 매우 커서 전력 부족에 시달리던 대한제국에서도 운용을 포기하고 그냥 항구에서 놀고 있었다. 오죽하면 원산 상륙작전에서 1회용 병력 수송선으로 활약한 걸 두고 '군밤의 혜안(...)'이라고 할 정도다...[15] 작은 어뢰정 8척이 뭐 그리 대단한가 싶겠지만, R/D 없이 오직 견시에 의존하던 시기에는 섬 많고 꼬불꼬불한 한국 남해안에 매복시켜 치고 빠지면 일본 입장에서는 무척 골치 아픈 적수가 될 수 있었다.[16] 현지 게릴라들과 교전 및 콜레라 발생으로 3천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게릴라 진압한다고 혼춘 일대에서 학살 행위를 벌이고 열악한 보급을 보충한답시고 북청, 성진, 경흥, 함흥 등지에서 과도한 징발을 해 함경도 사정까지 악화시킨다.[A] 시도급 지명은 순양함과 구축함 함명에만 사용하게 규정 되어있는데도 전국 지자체가 김칫국 마시며 달라 붙는 바람에 진즉 각하, 삼남은 충무공 이순신을 쓰자고 하나 이순신은 대한제국이 직접 건조한 최고, 최강의 함선에만 허락되어야 한다는 해군이 반대, 평양을 중심으로 서북에선 김시혁의 이름을 붙이자고 하나 김시혁 본인이 후대에 험한 꼴 보기 싫다며 완강하게 거부하고 황제도 살아있는 사람 이름 붙였다 배 가라앉기라도 하면 어쩌냐고 완곡하게 거부, 더 과거에 활약한 장군들 이름을 붙이자니 중국, 여진족 때려잡은 장군들이 많아서 만주를 동화시켜야 하는 정책 기조와 맞지 않았다.[A] [19] 이때 헌병대에게 '우리가 이곳에 직접 당도한 이상, 희망을 버려라!' 라고 소리친다.[20] 김시혁은 그때마다 그의 의견을 기각했다.[21] 익문사는 당시의 정보기관 중 인지도는 가장 높으나 경운궁 화재로 인한 문서 소실 탓에 오늘날 구체적인 학술 연구가 불가능하다. 실체를 두고 이런저런 추측만 나도는 상황.[22] 원역사에서는 을사늑약 이후 자결하려다 실패해서 시력을 잃었다.[23] 사실 이 독차 사건은 조사 과정에 석연찮은 부분이 너무 많아서 고종의 자작극 아니냐는 의혹이 학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24] 원 역사에서는 요절한 이복 남동생들이 있었다.[25] 원 역사에서도 일본 황실의 일원인 이방자 여사와 결혼 했던 것을 생각하면 나름 원역사 흐름대로 가는 셈이다.[26] 극동 전쟁으로 초토화된 삼남 복구를 주도한 게 내장원이고 참전용사에게 지불할 수당과 연금도 내장원 수입에서 나오고 있어 강종이 이용익과 대담에서 전격적인 토지 개혁 필요성에 공감했음에도 바로 손대지는 못했다.[27] 이때 박두영이 이럴 줄은 예상 못 했는지 처음으로 당황한다.[28] 이 때문에 이승만은 낙루 총리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29] 삼남 농촌은 극동 전쟁 이후 황실의 내탕금 덕분에 간신히 살아날 수 있었으며 만주인들은 일민주의의 기세를 막기위해 황실에 기댈 수 밖에 없었다.[30] 정확히 말하면 진위 여부를 두고 왈가왈부가 많은 사건이다. 2010년대 이후 고종이 거슬리는 신하를 제거하고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벌인 자작극이라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31] 이 장갑차 덕분에 김시혁은 간신히 헌병대의 사격을 뚫고 원수부로 도달할 수 있었다.[32] 이때 왼손 약지 손가락을 자른 상태였다.[33] 이후 그의 후임으로 임명된 신우균이 강종의 친위쿠데타에 협조한 것을 보면 강종이 친위쿠데타를 위해 일부러 그를 경질시킨 것으로 보인다.[34] 대륙법에 영향을 받은 일본법에 영향을 받은 게 대한제국 사법부라 다른 부처보다 유독 친일 성향이 강했다. 극동 전쟁 당시 법부대신 장석주를 비롯한 다수의 법조인들이 일본 측에 가담했다 숙청되어 지방은 순회판사 제도로 운용해야 할 정도로 만성적 인력 부족이 생겼다.[35] 이때 '저놈 끌어내!'라고 소리친다.[36] 이때 김철수에게 '조국을 배신한 매국노 놈이 어디서 이들을 더러운 혓바닥으로 꾀어내 피비린내 나는 전장으로 끌고 가느냐!라는 호통을 듣고 도망치기도 했다.[37] 대륙법에 영향을 받은 일본법에 영향을 받은 게 대한제국 사법부라 법부는 다른 부처보다 유독 친일 성향이 강했다.[38] 일반적으로는 지주 세력이 가장 보수적인 세력으로서 진보적이기 마련인 학생 세력과 대립할 가능성이 높겠지만, 작중에서는 극동전쟁 때 벌어진 일본군의 잔혹행위로 말미암아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추정 100만에 가까운 학살이 벌어진 삼남에서 전통적인 지주 세력은 소멸했고 내장원이 주인 잃은 빈땅을 난민들에게 불하하는 방식으로 전후 복구가 이뤄져 이전 지주세력과는 접점이 없는 새로운 지주세력이 나타났다. 이들이 자녀들에게 고등교육을 이수케 함으로서 자연스럽게 지주와 학생이 하나의 파벌로 뭉치게 되었다.[39] 익문사에 적발되면 즉시 처리당할거라 수첩에 적어 알려준 보여준 다음 종이를 찢어 삼킨다.[40] 여기서 강(槺)종이 선택되어 이형의 묘호는 강종이 된다.[41] 증강된 헌병대는 원정군이 복귀하는 즉시 한성을 떠나 남만주로 재배치, 수집한 정보는 원수부, 내각과 공유, 수사권 문제는 경무청에 양보.[42] 작중 성균관의 연구 성과로 언급된 사안을 살펴보면 만주와 본토를 아우르는 행정 구역 개편, 농업협동조합 설립을 통한 삼남 지방에서의 금융 자본 확대, 러시아 제국 멸망과 소비에트 연방 출범에 대응한 북방정책, 원양에서 작전 가능한 대함대 설립 필요성 등 정치, 외교, 경제, 군사 등 국가 운영에 중요한 모든 방면에 걸쳐 있다.[43] 이근상은 과거 A7V를 보고 원정군이 저런 양철 상자에 고전했냐고 비아냥 거렸지만 막상 A7V가 자신들을 상대하자 당황했다.[44] 이때 2여단의 소속된 인원들은 황국협회에서 축출된 근황파 탁류파 보부상들이 대거 들어가 있고 매관매직 등 부패가 심각해 평소에 민형식 본인도 한 몫 챙기면서 살던 도중 방어선을 구축하라는 명령이 내려져 초조해 했다.[45] 게다가 2여단 인원들은 반역자들을 처벌하겠답시고 눈에 띄는 사람들을 아무나 잡아다가 함부로 대하거나 협조하겠다고 한 경무서까지 습격해 감옥소에 갇힌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사살해 순검들까지 시위대에 합류하게 만드는 등 사고를 치고 있으며 이를 어느정도 통제하려 한 민형식도 위협하면서 막나가고 있다.[46] 민형식을 죽인 참모장은 민형식이 비겁한 겁쟁이스러운 면모를 보였다고 욕하지만 제1강습보병여단이 기습하자 바로 항복해 버린다.[47] 정훈은 원 역사에서도 일본 육사 출신 친일파로 일본에 항거하는 조선인들에 대해 몇백 명만 종로 거리에 세워서 총살하면 된다는 막말을 입버릇처럼 하곤 했다.[48] 비슷한 시기를 다루는 다른 한국 대체역사소설 조선, 혁명의 시대에서도 1930년대에 기무부대장으로 육군 강경파 쿠데타를 주동하고 항의하는 시민들을 유혈진압하는 악역으로 등장했다.[49] 전우는 이이와 송시열에서 내려온 기호학파의 맥을 이은 인사라 제자가 가장 많았지만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항일은 일절 하지 않았다. 3.1 운동은 단발한 이들과 함께 할 수 없다며 패싱하고 3.1 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경상도와 충청도 유림들이 반성과 더불어 추진한 파리 장서 사건때는 충청도 유림지도자 유준근의 간곡한 설득에도 참여를 거부했다. 유준근과의 면담에서 그는 민족대표 33인을 이교라 폄하하고 이교에 뒤를 따라 독립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치욕이며 수신하며 도를 닦는 게 유림이 할 일이라는 경악스러운 발언으로 유준근에게 당신이야말로 민족반역자란 일갈을 듣는다.[50] 특히 근황을 부르짖으며 반란까지 일으켜 놓은 주제에 그 강종이 일본에 맞서 궐기를 독려했던 극동 전쟁때는 아무것도 안 했으니 기회주의자 소리 들어도 할 말이 없었다.[51] 미천한 무관 주제에 어디서 유림의 도를 논하는가!, 고려가 전쟁을 숭상하다 망했다, 너희는 참람하게 부국강병을 논해 이 나라를 고려처럼 망조가 들게 하고 있다 등등. 당연히 김시혁에 의해 전부 논파당했으며 특히 김시혁이 성종 시기 대사헌이었던(즉, 현 유림에게는 대선배님인) 이서장의 말까지 인용하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52] 김시혁은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이 3가지 있는데 첫째는 군인이 되겠다는 민정의 말을 흘려들은 것, 둘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무관단에게 별 생각 없이 대한군 교리를 전수해 준 것, 셋째는 제위에 오른 의친왕에게 쭉 옆에서 보필하겠다는 선언해 은퇴를 포기한 것.[53] 일단 극동 전쟁 이전임은 확실하다.[54] 극동전쟁 당시 일본군의 요시찰 인물로 등록되었음에도 요리조리 검문 검색을 피하고 게릴라전을 벌이던 실력이 여기서도 발동되었다고.[55] 엄귀비와 의친왕비, 최로하도 지지하는 내용이다.[56] 우장춘은 농학 연구도 연구거니와 오늘날의 고스톱 룰을 정립한 사람이기도 하다.[57] 아내 역시 우정국 기선을 통해 망명하는데 성공한다.[58] 생소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록국 요원들에게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준다며 교통 정리하는 여순검을 거론한다.[59] 의친왕은 대번에 올가의 말에 담긴 저의를 파악하는데 김시혁은 끝끝내 눈치를 못 챈다.그 아우에 그 형[60] 이때 차르가 직접 지원을 청했음에도 임시정부의 총리 및 장관들의 인사권을 주면 고려해보겠다면서 지원을 차일피일 미뤘다고 한다. 즉, 차르의 명령도 씹은 것이다.[61] 데니킨은 차르가 직접 모스크바 지원을 청했음에도 임시정부의 총리 및 장관들의 인사권을 주면 고려해보겠다면서 지원을 차일피일 미뤘다고 한다. 즉, 차르의 명령도 씹은 것이다.[62] 원 역사에서도 전간기에 영국은 이 논리로 독일을 도왔다가 독일이 프랑스와 벨기에를 밀어버리고 영국을 먼저 침공한 뒤에 소련을 침공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따라서 프랑스와 벨기에가 소련이고 뭐고 독일 재무장을 허락하지 않는 건 타당한 판단이다.[63] 그나마 모스크바는 점령하고 남쪽의 툴라 조병창에서 올라오는 보급을 끊는 데는 성공해서 저렇게 협상이라도 한 것이다. 이것조차 못 했다면 김시진에게 일방적으로 끌려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64] 처음 언급된 건 2부 786화. 정식으로 스탈린임이 밝혀진 건 2부 959화. 무명의 정치장교로 언급되었을때부터 독자들은 스탈린이라 추정했는데 원 역사와 혁명의 방향성과 주요 인력 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에 원 역사와 달리 아직 스탈린의 인지도가 다소 처질 만하기 때문이다.#[65] 본작에 누구나 알법한 유명 인사들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 활동상만 슬쩍 보여주는 패턴이 꽤 있다. 독일 사이드에선 누가봐도 롬멜인 산악부대 장교가 동부와 이탈리아 전선에서 활약하는데 이름은 끝까지 언급이 안 된다.[66] 이때 몰로토프를 타바리쉬(동지)라고 부르자 흠칫했다.[67] 당시 열강의 서열은 국력보다 외교적 입지, 패권이 더 중요했다. 당장 미국의 경제력이 1차대전 이전에 유럽 전체 수준으로 올라왔음에도 불구하고 신대륙 국가라는 이미지와 각종 내부적 문제 때문에 1차대전 전까지 2류 열강 취급을 받았다.[68] 본작 1차대전 당시 일본이 보인 태도에 기존 열강들의 불신과 짜증을 샀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이권을 쟁취하는데 성공했음을 고려하면, 대한제국처럼 유럽 파병을 적극적으로 했을 경우 대우가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어찌 보면 자업자득.[69] 현지 군인들이 정부의 명령을 무시하는 건 기본에, 군인들이 성병에 많이 걸린다고 하자 위안부 소리를 하거나 연해주에서 절찬리에 학살을 벌여 러시아인과 러시아계 한국인들을 모조리 적으로 돌린 상황에서 뒤늦게 러시아 황실 일가가 탈출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러시아 황실이 타고 오는 열차를 폭파시키면 연해주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소리나 하고 있다.[70] 처음에는 군부처럼 개입하려 했지만 김시혁이 가담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결과는 정해졌다며 손 뗐다고 한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71] 국가의 체급 자체는 일본이 대한제국보다 크지만, 정작 그 체급 유지를 위한 핵심 요소인 식량(쌀), 경제(금), 연료(무연탄)에 대해 대한제국이 일본의 목줄을 쥐고 있는 상황이다.[72] 당장 영일동맹으로 일본과 같이 묶인 영국조차 일본이 아닌 대한제국을 아시아 1위 열강으로 인정할 정도다.[73] 이에 대해선 김시혁이 처음 빙의한 1894년 당시 일본보다 조선이 아래였던 시절을 잊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라 추측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이때 일본은 운요호 사건, 임오군란, 동학 농민 혁명, 청일전쟁 등의 굵직굵직한 사건에 개입하며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한창 올리고 있었기에 그 시절만 해도 아래였는데...! 라며 과거 그 시절을 잊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74] 원 역사에서도 가상적국이지만 집권 세력이 상대적 온건파일 경우에는 강경파의 득세를 막기 위해 일부러 편의를 봐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특히 상시 핵전쟁 위협에 시달리던 냉전기에 자주 나타난 현상이었다.[75] 사실 다이쇼의 판단이 틀린 것도 아닌 게, 역사적으로 일본의 권력자들이 자기 입맛에 맞는 덴노로 갈아치우며 강제 퇴위당하거나 심지어 폐위당한 덴노들은 꽤 많다. 다이쇼에게 있어 막부나 군부나 거기서 거기이니 당연하다.[76] 다른 지휘관들의 군도는 일반적인 노획물자 처리 규정에 따라 한데 모아서 처리했지만 히데노리의 검은 그가 개인 자격으로 건네준 것이라 김시혁이 그대로 소장했다. 히데키를 만난 김시혁은 혹여 검을 돌려받고 싶다면 돌려줄 생각이었으나 히데키는 그 검은 부친이 장군께 직접 건네주신 것이고 김시혁 장군의 전술을 배울 수 있다면 그깟 검은 얼마든지 줄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며 돌려받을 생각이 없다고 전했다.[77] 물론 김시혁은 러시아의 모신나강을 들이기 위해 딱히 도입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경쟁자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어 일단 프로모션은 들어봤다. 이후 강종의 독단으로 인해 선계약이 체결되면서 곤욕을 치르나 30년식 소총 계약금은 강종의 사비로 낸다는 조건으로 계약이 대충 성사되며 이렇게 도입된 30년식 소총은 의병 게릴라 부대가 나름 잘 써먹게 되며 종전 후에도 만주 쪽 개척촌과 경무청에서 잘 굴리고 있다.[78] 원래 역사에선 1915년에 육군대학 졸업한 뒤 대위로 진급한 상태였고 스위스 주재무관을 거쳐 1920년에 소좌로 진급한다.[79] 그 철도 노선은 영국의 통제를 받고 있기 때문에 이를 폭파시키며 당연히 외교적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80] 막상 자신은 잡히면 안된다는 이유로 후방에 남아있는다.[81] 젊은 시절의 무타구치는 일본군의 시베리아 출병 당시 캄차카반도페트로파블롭스크에 잠입하여 목숨 걸고 정탐 활동을 벌일 담력은 있었지만, 이건 야전부대 지휘관에게 필요한 전투 경험은 아니었다. 현지 파르티잔과 싸워 본 경험도 없고, 1917년 육대 졸업 후 육군성 운수부 선박반에 배치되어 중국으로 좌천되는 1936년까지 대략 18년간 배부르고 등 따뜻한 육군성과 참모본부만 돌며 야전에서 지휘 경험을 쌓지도, 1차 대전 관전장교로 파견되지도 않았다. 군임임에도 전쟁이 얼마나 어렵고, 무서운지 전혀 모른 채 팬대만 잡다 나이 먹고 계급만 올라간 무타구치는 노구교에서, 임팔에서 연달아 무책임한 행각을 벌인다.[82] 원래는 몸이 아프다고 몇 번이나 고사했지만 하라 다카시가 삼고초려한 끝에 임명되었다.[83] 그와중에 육군성이 책임을 외무성에게 돌리자 더 분노해 할복하겠다고 날뛴다.[84] 이 훙후즈는 사실 훙후즈로 위장한 중화민국 부대로 고모토 다이사쿠가 연락도 없이 멋대로 행한 일이었는데 이들은 반쯤 마적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일본 영사관도 공격한 것이다.[85] 물론 러시아도 극동전쟁 때 같이 싸워준 혈맹이니만큼 프랑스에 비하면 적을 뿐이지 도움 자체는 잘해준 편이다.[86] 한국에 오래 지내며 이런저런 유물 콜렉션들을 잔뜩 모아두었고 1919년 계엄령 선포 후 유탄이 날아오는 와중에도 챙길 정도로 애지중지한다.[87] 라이시테를 엄격히 준수하는 프랑스 정치인들이 보기에 독실한 예수회 집안에서 자라 매일 아침 기도문 외우는 포슈나 군종신부 없어졌다고 개인 신부를 대동하고 다닌 노엘 드 카스텔노 같은 장군들은 못 미더운 장군이었다. 반면 페탱은 21살 어린 이혼녀와 결혼했을 정도로 종교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88] 페탱은 자기보다 낮은 사람들에겐 자상하고 세심하게 챙겨주고 나이와 계급을 넘어 부하 장교들과 교리 연구하는 것도 전혀 꺼리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동등 혹은 더 높은 사람들과 친해지는 사교성은 아예 없었다. 군인과 정치인을 막론하고 동급 이상의 인사와는 끊임없이 마찰을 빚어냈기 때문에 원수 계급인 김시혁과는 인종 문제가 아니더라도 섞일 수가 없었다.[89] 이때 신순성은 운명의 결정 앞에선 결과론적인 숫자놀음은 필요 없으며, 단지 그것에 맞설 것인가, 아니면 순응할 것인가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그리고 인간이 강한 이유는 정해진 운명에 순응하기보단, 스스로 그것에 맞설 방법을 선택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90] 원래 역사에서도 한국에 왔던 인물. 군부 포공국 기기창 수석기사로 1901년에서 1904년까지 근무했다.[91] 애초에 전통적으로 유럽에서 가장 인종차별 성향이 심한 민족들 중 하나가 독일인이었다. 괜히 나치즘이 창궐해서 홀로코스트같은 대형사고를 친 것이 아니다. 그 외에는 반쯤 유럽과 따로 노는 러시아가 자강두천(...)을 이루고 있다.[92]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에서 미군 소속 황인 사단장과 흑인 장병이라는 이유로 인종차별적 방심을 하다가 아미앵 전투에서 이틀 만에 사단 하나가 갈려버려 루덴도르프 공세까지 돈좌되는 대형 참사가 난 것과 비교하면 명확한 차이다. 물론 이때 호되게 당한 이후에는 다시는 방심하지 않았다. 깜둥이 주제에 제국의 고급 전술을 따라 쓴다고 욕하는 등 레이시즘은 여전했지만.[93] 다만 이때는 독일의 외교 장관이 대한제국은 러시아와 프랑스의 사실상 종속국이라 우리보다 그들과 더 친밀했을 것이라는 팩트를 들려준 덕에 머지않아 진정되긴 했다.[94] 동부전선도 신경 써달라는 힌덴부르크의 요청을 무시하고 독일 전력의 6할 이상을 서부 전선에 배치한 게 팔켄하인이라 자업자득이다.[95] 브루실로프 공세에서 독일군이 털리던 당시 서부전선의 베르됭 공세는 두오몽 요새를 함락시키며 독일 입장에서 승산이 보이던 상황이었으니 이쪽 세계에선 베르됭 전투가 아닌 한국군의 참전이 1차 대전의 결정적 분기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일부 전쟁사 연구자들은 한국군이 참전하지 않았어도 독일군은 베르됭에서 돈좌되고 주도권을 내줬을 거라 주장하겠지만 일찌감치 역사가 바뀌어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러시아군에게 너무 큰 패배를 안겨주고 그게 서부전선에도 영향이 간지라 다수설이 되긴 힘들것이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군 미참전시 베르됭에서 독일이 이겼을 것이라 if를 돌릴 가능성이 크다.[96] 정확히 말하면 팔켄하인이 소령 시절 적은 보고서가 있긴 했지만 그것도 10년이 넘게 지나 현 1차대전 시점에서 쓰기에는 지나치게 낡은 정보였다.[97] 물론 당시 러시아 제국을 제외한 유럽에서 김시혁과 한국군의 진상을 정확히 아는 인물은 페르디낭 포슈와 팔켄하인 정도뿐이라 힌덴부르크만 뭐라 할 순 없다.(미국까지 포함한다면 퍼싱도 존재한다.) 그 시점에서 한국이 당대 유럽 국가들보다 전술 측면에서 앞선다는 걸 당대 유럽인 중 누가 쉽게 믿겠는가?[98] 린징겐이 그를 설득하기 위해 대한제국의 3월 혁명의 예시를 들었지만 독일군 내에 한국군처럼 하는 사람이 어딨냐고 반문했다.[99] 바로 며칠 전에 폭동을 진압하라는 대통령의 명을 거절했다.(...)[100] 보급선에 가해질 위협 탓에 수적 열세에도 방어 전면을 줄일 수 없는 한국군은 남겨둔 예비대를 전부 끌어올 수밖에 없고, 넓은 방어선을 지탱하느라 과부하가 걸렸을 때 남겨둔 군단으로 크게 우회해 한국군의 후방을 타격, 보급선을 완전히 차단하고 앞뒤로 포위 섬멸한다는 계획.[101] 장병들 처우도 좋아서 군악대원들은 오페라 극장 공연을 시작으로 여기저기 초청을 받고, 제빵병들은 독일식 베이커리를 황제 식탁까지 올리며 돈을 버는 데 원 역사에서의 일본이 그랬듯 전간기에 일부가 정착하거나, 독일계 문화가 이식될 가능성이 높다.[102] 그로덱은 같은 시대를 다루는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에서 주인공과 흑인 부대원들을 유색인종이라 얕보다 처참하게 패하는 모습으로 등장해 국내 대역 팬덤에 알려진 인물인데 여기서는 일말의 방심도 하지 않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갑작스러운 이동으로 정신없는 와중에 적의 매복할 만한 지점을 정확히 짚어내고 정찰을 지시했으니 이미 캐나다 기병여단이 목숨 내놓고 돌격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103] 이때 히틀러를 잘 챙겨준 하사가 원 역사에서 히틀러의 상병 시절 히틀러를 잘 챙겨줘서 히틀러가 홀로코스트 때 구해준 유대인 하사라는 설이 있다.[104] 이때는 아직 박사 학위를 따기 전이었지만, 세상이 평화로워지면 박사 학위를 딸 거라고 말하고 다녔고 머리 좋고 성실해서 한국군이 존중의 의미로 박사라 부르게 된다.[105] 괴벨스는 나치당 결성 이후에도 좌파로 분류될 정도로 좌익 성향이 강했고 처음부터 반유대주의를 신념으로 삼은 것도 아니었다. 암울한 현실에 찌들어 살다 만난 히틀러를 독일과 자신을 구원할 메시아로 보고 그의 신도가 되면서부터 반유대주의를 부르짖게 된다.[106] 원 역사에서도 처음에는 히틀러를 미덥지 않게 보았다가 나중에 심취했다.[107] 1차대전 당시 미 육군의 참담한 상태는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 시절에도 잘 묘사되었지만, 1차대전 파트가 초반부에만 있는 데다 주인공 팀의 혼신의 캐리 덕분에 1차대전 후반부에는 특유의 물량으로 단점을 상쇄시키는데 성공해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108] 일본의 경우에는 대동아공영권에 대한 야망을 일찌감치 눈치채고 경계하는 것도 있다.[109] 2부 외전에서 한국은 미국에게 적어도 거짓말은 안 하는 반면 일본은 미국 외교가에 거짓말을 한 적이 많고 막무가내로 행동해서 미국 외교관들을 곤란하게 한 적이 여러 번 있다고 한다.[110] 본인이 운영하는 광산 회사에서 나오는 막대한 자금 때문에 정치자금을 받는 게 아니라 공화당,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주는 쪽이라고 한다. 물론 미국 정치의 특성상 본인도 여러 기업인들에게 정치자금을 받고 있겠지만 말이다.[111] 이때 본인의 광산 회사가 한국뿐만 아니라 본래 바라던 호주에도 사업체가 진출해서 돈 크게 벌고 있다고 언급되는데, 호주가 일본의 야욕을 일찌감치 간파해 반일 정서가 매우 심해서 아시아 패권을 방어하기 위해 일본을 지원하는 영국 본토의 의사를 씹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한국, 프랑스와 몰래 연줄을 댈 거라는 떡밥이 있었는데 그것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다.[112] 원역사에선 부통령은 캘빈 쿨리지고 후버는 하딩 정권의 상무장관으로 근무했다. 후버가 부통령이 되면서 쿨리지는 자연스럽게 상무장관직에 취임했다.[113] 3선 금지가 법에 못 박히지 않았고 율리시스 그랜트, 테디 루스벨트 등 대놓고 3선 노렸다 당내 반발로 실패한 사례들이 있어서 깔끔하게 물러날지는 불명.[114] 이대로 대사관에만 있으면 자신의 입지가 줄어들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115] 원 역사와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처럼 사복 입고 갔다가 오해 사서 체포당했다.(...)[116] 김시혁과의 첫 대면에서부터 너무 자연스럽게 인종차별적인 발언이 나와서 살짝 지적하자 오히려 뭐가 문제였냐면서 되묻는가 하면, 도중에 부친이 목화밭에서 흑인들을 채찍질하던 것을 회상하는 묘사도 나와 독자들이 기겁했다.[117] 의화단 운동 당시 남부연합 국기를 걸어두었다가 미군과 시비가 트여 김시혁이 중재하는데 고생했고 하코트에게 일침을 먹이기도 한다.[118] 사실 하코트의 행동을 보면 특별히 성격이 악하다기보다는 잘못된 교육을 받아서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는 쪽에 더 가깝다.[119] 이때 집에 있던 카메라를 전당포에 맡겨서 여비를 확보했는데 그의 이름을 본 김시혁이 그 할아버지에 그 손자라고 웃으며 합격시켜주는 동시에 전당포에 맡겨진 카메라도 다시 찾아와 줬다.[120] 존 브라우닝이 설계한 반자동 화기인 Auto-5레밍턴 모델 8는 롱 리코일 작동 방식이며, 그가 설계한 각종 권총이나 기관총들 대다수가 블로우백, 쇼트 리코일로 작동한다. M1895 콜트-브라우닝 기관총과 M1918 브라우닝 자동소총이 가스 작동식이지만 둘 다 큼지막한 소총탄을 쓰는 물건이기에, 원역에서 그가 제작한 총기 중 중간탄과 가스작동식이 조합된 화기는 없다.[121] 콜트 M1929. 원역에서 미군 반자동 소총 사업에 참여했다 탈락했으며 이 소총의 설계를 기반으로 제작한 게 M1 카빈이다.[122] 처음 3.1 혁명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김시혁이 20세기의 나폴레옹이 되는 건가 싶어 발작을 했지만, 김시혁이 의친왕을 새 황제로 추대하고 내각에게 정권을 넘긴 뒤 정치에 손 떼고 지방에서 반란군 잔당 소탕에만 전념하고 있자 진정한 뒤 결과적으로 영국처럼 입헌군주정이 들어섰다는 이유 때문에 생각이 다소 바뀌었다고 한다.[123] 니콜라이 2세는 조지 5세의 이종사촌, 알렉산드라 황후는 고종사촌으로 조지 5세는 사적으로는 이 둘과 친했다.[124] 정확히 말한다면 캐나다 국적이지만, 1부의 배경인 동학 농민 혁명~러일전쟁 시기 캐나다는 완전한 독립국이 아니라 자치령이었으므로 내정 자치권은 있었어도 외교권과 군사권은 영국이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매켄지가 죽을 때도 캐나다는 여전히 독립된 상태가 아니었기에 매켄지의 국적은 영국 국적이라 할 수 있다.[125] 이때 주한 영국영사가 멋대로 종군 기자단 이탈해 한국 취재하면 바로 체포한다고 엄포를 놓자(영국은 일본의 동맹이었기 때문.) 잡을 테면 잡아보라는 패기를 선보인다.[126] 렘베르크는 현재 우크라이나의 르비우를 독일어로 부르는 명칭이며, 폴란드어로는 르부프라고 부른다. 부르는 명칭만 3개일 정도로 민족 구성이 다양했는데 약 5%의 독일계와 절반가량의 폴란드계, 20%가량의 유대계가 친 오스트리아 주민이었고 나머지 25%의 우크라이나계가 친 러시아 주민이었다. 이들은 도시의 주민이 바뀔 때마다 상대를 추방하거나 학살을 저질렀다고 한다. 다시금 이런 학살이 벌어지지 않도록 독일, 폴란드, 유대계 주민들의 피난 시간을 벌고자 외곽 방어를 택한 것. 참고로 미래에서 온 김시혁은 이를 정확히 간파했으나 동생 김시진은 형의 설명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127] 원 역사에서도 영국이 유럽에서 잡은 오스만 포로들의 석방을 일부러 늦춰서 민병대만 데리고 그리스와 영프에 맞서 승리했다. 뛰어난 정치인 이전에 일세를 풍미한 명장 케말의 역량이 발휘된 부분.

#!if version2 == null
{{{#!wiki style="border:1px solid gray;border-top:5px solid gray;padding:7px;margin-bottom:0px"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파일:CC-white.svg|width=22.5px]]]]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if external != "o"
[[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 문서의 {{{#!if uuid == null
'''uuid not found'''}}}{{{#!if uuid != null
[[https://namu.wiki/w/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uuid=b67f8d2a-2afb-4cda-a467-78872db0755e|r1951]]}}} 판{{{#!if paragraph != null
, [[https://namu.wiki/w/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uuid=b67f8d2a-2afb-4cda-a467-78872db0755e#s-|번 문단]]}}}에서 가져왔습니다. [[https://namu.wiki/history/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from=1951|이전 역사 보러 가기]]}}}
#!if version2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border:1px solid gray;border-top:5px solid gray;padding:7px;margin-bottom:0px"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파일:CC-white.svg|width=22.5px]]]]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wiki style="text-align: center"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text-align: left; padding: 0px 10px"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if external != "o"
[[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 문서의 {{{#!if uuid == null
'''uuid not found'''}}}{{{#!if uuid != null
[[https://namu.wiki/w/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uuid=b67f8d2a-2afb-4cda-a467-78872db0755e|r1951]]}}} 판{{{#!if paragraph != null
, [[https://namu.wiki/w/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uuid=b67f8d2a-2afb-4cda-a467-78872db0755e#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조선에는 쿠데타가 필요해요?from=1951|이전 역사]])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2 == null
'''uuid2 not found'''}}}{{{#!if uuid2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2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3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3 == null
'''uuid3 not found'''}}}{{{#!if uuid3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3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4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4 == null
'''uuid4 not found'''}}}{{{#!if uuid4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4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5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5 == null
'''uuid5 not found'''}}}{{{#!if uuid5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5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6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6 == null
'''uuid6 not found'''}}}{{{#!if uuid6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6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7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7 == null
'''uuid7 not found'''}}}{{{#!if uuid7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7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8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8 == null
'''uuid8 not found'''}}}{{{#!if uuid8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8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9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9 == null
'''uuid9 not found'''}}}{{{#!if uuid9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9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10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10 == null
'''uuid10 not found'''}}}{{{#!if uuid10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10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11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11 == null
'''uuid11 not found'''}}}{{{#!if uuid11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11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12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12 == null
'''uuid12 not found'''}}}{{{#!if uuid12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12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13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13 == null
'''uuid13 not found'''}}}{{{#!if uuid13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13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14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14 == null
'''uuid14 not found'''}}}{{{#!if uuid14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14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15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15 == null
'''uuid15 not found'''}}}{{{#!if uuid15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15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16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16 == null
'''uuid16 not found'''}}}{{{#!if uuid16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16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17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17 == null
'''uuid17 not found'''}}}{{{#!if uuid17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17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18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18 == null
'''uuid18 not found'''}}}{{{#!if uuid18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18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19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19 == null
'''uuid19 not found'''}}}{{{#!if uuid19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19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20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20 == null
'''uuid20 not found'''}}}{{{#!if uuid20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20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21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21 == null
'''uuid21 not found'''}}}{{{#!if uuid21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21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22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22 == null
'''uuid22 not found'''}}}{{{#!if uuid22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22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23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23 == null
'''uuid23 not found'''}}}{{{#!if uuid23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23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24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24 == null
'''uuid24 not found'''}}}{{{#!if uuid24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24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25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25 == null
'''uuid25 not found'''}}}{{{#!if uuid25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25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26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26 == null
'''uuid26 not found'''}}}{{{#!if uuid26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26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27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27 == null
'''uuid27 not found'''}}}{{{#!if uuid27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27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28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28 == null
'''uuid28 not found'''}}}{{{#!if uuid28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28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29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29 == null
'''uuid29 not found'''}}}{{{#!if uuid29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29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30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30 == null
'''uuid30 not found'''}}}{{{#!if uuid30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30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31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31 == null
'''uuid31 not found'''}}}{{{#!if uuid31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31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32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32 == null
'''uuid32 not found'''}}}{{{#!if uuid32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32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33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33 == null
'''uuid33 not found'''}}}{{{#!if uuid33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33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34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34 == null
'''uuid34 not found'''}}}{{{#!if uuid34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34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35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35 == null
'''uuid35 not found'''}}}{{{#!if uuid35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35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36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36 == null
'''uuid36 not found'''}}}{{{#!if uuid36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36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37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37 == null
'''uuid37 not found'''}}}{{{#!if uuid37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37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38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38 == null
'''uuid38 not found'''}}}{{{#!if uuid38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38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39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39 == null
'''uuid39 not found'''}}}{{{#!if uuid39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39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40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40 == null
'''uuid40 not found'''}}}{{{#!if uuid40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40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41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41 == null
'''uuid41 not found'''}}}{{{#!if uuid41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41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42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42 == null
'''uuid42 not found'''}}}{{{#!if uuid42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42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43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43 == null
'''uuid43 not found'''}}}{{{#!if uuid43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43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44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44 == null
'''uuid44 not found'''}}}{{{#!if uuid44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44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45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45 == null
'''uuid45 not found'''}}}{{{#!if uuid45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45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46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46 == null
'''uuid46 not found'''}}}{{{#!if uuid46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46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47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47 == null
'''uuid47 not found'''}}}{{{#!if uuid47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47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48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48 == null
'''uuid48 not found'''}}}{{{#!if uuid48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48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49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49 == null
'''uuid49 not found'''}}}{{{#!if uuid49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49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if version50 != null
{{{#!wiki style="display: block;"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if external == "o"
[[https://namu.wiki/w/|]]}}}{{{#!if external != "o"
[[]]}}}}}} 문서의 {{{#!if uuid50 == null
'''uuid50 not found'''}}}{{{#!if uuid50 != null
[[https://namu.wiki/w/?uuid=|r]]}}} 판{{{#!if paragraph50 != null
, [[https://namu.wiki/w/?uuid=#s-|번 문단]]}}} ([[https://namu.wiki/history/?from=|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