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7-16 02:54:18

프레드릭 펀스턴

프레드릭 펀스턴
Frederick Funston
파일:1000011224.jpg
출생 1865년 11월 9일
미국 오하이오주 뉴칼라일
사망 1917년 2월 19일 (향년 51세)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복무 미합중국 육군
최종 계급 미국 육군 소장
복무 기간 1898~1917
학력 롤라 고등학교
캔자스 대학교

1. 개요2. 생애3. 여담

[clearfix]

1. 개요

미국의 군인.

2. 생애

오하이오주 뉴칼라일에서 에드워드 H. 펀스턴의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려 했으나 저체중[1]으로 인해 입학을 거절당했고 캔자스 대학교를 졸업하고 캔자스시티에서 1년간 기자생활을 하다가 그만뒀다. 이후 캘리포니아주 데스벨리, 알래스카를 여행했고 농림부에서 2년간 일했다.

1896년부터 쿠바로 건너가 쿠바해방군으로 참가해 스페인군과 전투를 치렀으며 말라리아에 걸려 귀국했고 이에 대령으로 임관했고 제20캔자스보병연대장이 되었다. 이후 쿠바로 돌아가 전투를 치렀고 곧이어 미국-필리핀 전쟁당시에도 참가했다. 특히 루손섬에서 팜팡가 강을 빠르게 도하해 필리핀군에게 큰 피해를 입힌 공으로 명예 훈장을 수여받았다. 이 전투는 필리핀 전쟁에 분수령이였으며 필리핀 대통령 에밀리오 아기날도를 생포하는데 기여했다. 전후에도 필리핀에 주둔했으며 1902년 미국으로 귀국했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당시 혼란에 빠진 샌프란시스코에 병력을 투입해 치안을 유지했고 무너지기 직전의 빌딩을 폭파시키고 건물들을 재건하는데 힘써 "샌프란시스코의 영웅"으로 표현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약탈자에 대해 무조건 사살명령을 내려 비판을 받기도 했다.

판초 비야를 잡기위한 베라크루스 원정에 참가하기도 했으며 1917년 미국이 1차 세계 대전에 개입하자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당시 미국 원정군사령관에 펀스턴을 낙점했으나 심장마비로 인해 사망하자 존 조지프 퍼싱으로 임명했다.

3. 여담



[1] 키가 164cm였으나 몸무게는 54kg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