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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16:00:38

에이스(전투조종사)

파일:external/4.bp.blogspot.com/Kozedub003La7.jpg
이반 코제두브La-7 전투기
조종석 유리창 아래에 많은 붉은 별들이 적기 격추 수를 나타낸 것이다.

1. 개요

전투조종사들 중 뛰어난 실력을 가진 조종사를 가리키는 말로, 보통 적기를 5기 이상 격추시켰을 때 이 칭호를 받는다.

2. 상세

제2차 세계 대전독일 공군, 심지어 제1차 세계대전의 독일 제국 육군 항공대 파일럿들만 죽 늘어놓으면 겨우 5대 쯤이야 무슨 유치원생 장난질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건 독일군이 우수한 조종사와 항공기 육성을 전간기부터 준비한 결과였고 운용도 남들은 짱박아 놓을 때 대규모로 몰려가 몰빵을 놓거나 전략폭격은 미비한 대신 전술 공군위주로 육성했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가 있었다. 또한 독일공군이 킬마크를 쌓은 전무후무할 대규모 물량전인 독소전에서 공중전은 대체로 중저고도에서 벌어졌지만, 고고도로 올라가지 못한다는건 고도의 우위를 잡을 수 없다는 이야기고 이는 공중전에서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한다. 소련군 전투기들의 고질병인 고고도에서의 출력 부족 문제는 대전기간 동안 끝내 해결되지 않았다. 반면에 독일 공군은 최상급의 성능을 가진 항공기와 수 년간의 실전으로 단련된 조종사들이었으니 소련 공군은 탈탈 털리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서부전선을 보면 독일공군 파일럿들은 압도적 수의 차이와 주도권을 상실하고 휘둘리는 바람에 그야말로 혹사당했고, 심지어는(비록 사촌형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1차대전에서 굉장한 끗발을 날린 에이스 볼프람 폰 리히트호펜(게다가 이사람은 원수다!)까지 전투기 조종사로 직접 출격하는 막장 상황까지 연출되었다. 연합군보다 출격 횟수가 무려 5배에서 10배까지 많았다. 그에 따라 교전횟수도 당연히 연합군보다 많았으며 평균적인 5기 격추 파일럿은 미군은 1297명, 영국군도 영연방을 포함하면 1200명을 넘어가지만 독일군은 880여명 밖에 없다. 그야말로 격추대수의 부익부 빈익빈. 운좋게 살아남는 자가 실력을 쌓고 고수가 되어 운없는 신참들을 격추시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신병 조종사가 참전하면 그의 운명은 두 가지 밖에 없었다. 에이스가 되거나, 하늘에서 제대하거나.[1][2]

그중 소수의 독일 공군 에이스 조종사들의 기록에는 의무적인 출격 이외에도 본인이 원할 때 출격하고 얻은 기록이 포함 돼 있는 점을 볼 때 출격 자체를 즐기기도 했던 것 같다. 가령 독일 탑에이스이자 세계 격추수 1위인 에리히 하르트만은 2차 대전동안 약 1400 소티를 출격해서 852회 전투를 벌였고 352대 격추를 기록한 반면 영국군 탑에이스인 제임스 에드가 존슨은 515소티를 출격해서 57회 전투를 벌였고 38대를 격추시켰다.

상대적으로 인원의 여유가 좀 있던[3][4] 미군이나 영국군은 일정 이상의 전과를 낸 사람을 후방으로 빼서 교육이나 지휘 계통으로 복무할 수 있도록 해서[5] 일정 수준 이상의 격추수가 쌓일 수 없기도 했다.(다만 이 로테이션 제도는 미 육군 항공대 내 모든 부대에서 실시한 것은 아니었으며 아예 이런 게 없는 부대도 있었다.) 미군은 대전 후기에는 정원 14,000명의 정규사단 20개를 편성할 수 있는 300,000명의 파일럿을 본토에서 양성하고 있었고 그 정도면 배치되어 있는 조종사들이 다 쓸려나가도 1948년까지는 버틸 수 있다는 계산하에 비행학교 정원을 줄이고 훈련강도를 높였다. 이런 방식은 전체적인 조종사의 질을 확 높이는 데(상향 평준화) 아주 큰 기여를 했다. 우선 조종사들은 일정 전과를 달성하면 안전한 후방으로 배치될 수 있으므로 전방에서 언제 교전으로 전사할지 모른다는 부담감을 덜고 의욕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일선 조종사들이 실전에서 쌓은 경험들은 새내기 조종사들에게 교범만으론 배울 수 없는, 실전에서 살아남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매우 중요한 내용들이었다.

이렇게 좀 성과를 쌓으면 후방으로 송환하는 상황에서도 20대 이상을 잡는 연합군 에이스 조종사도 놀랍고 그렇게 숫적으로 불리했음에도 살아남아서 전과를 낸 독일군 조종사들도 놀라운 거다. 그러나 전투시에 연합군이 한 덩어리로 뭉쳐서 움직인 건 아니라 실제 전투에 참가한 조종사들이 만나는 기체의 수는 비슷했다. 연합군은 적기는 구경도 못하는 경우도 많았고.

귄터 랄의 인터뷰에서 이 질문이 나온 적 있는데 간단히 3항목으로 설명했다. 첫째, 일단 독일군은 동부 전선에서도 활동했고 여기는 적들이 널려 있었다. 게다가 위에 언급된 것 처럼 대전 전반부는 말할 것도 없고 후반기에도 형편없는 기체[6]의 향연이었던 데다 소련군의 파일럿 스킬도 보잘것 없었기에 양민학살이 벌어진 것이다.[7] 둘째, 연합군이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는 서부 전선을 통틀어 엄청난 규모의 연합군 항공대가 마주할 수 있었던 독일군 기체는 얼마 없었다.(아돌프 갈란트가 압도적인 연합군 전투기의 숫자와 조종사의 숙련도에 기겁하기도 했을 정도다.) 애초에 격추할 적이 없는데 격추수가 낮은 것은 당연했다. 셋째, 독일군 조종사들은 하늘에서 한계까지 싸웠기 때문이다. 독일이 패망했다봐도 되는 1944년 말에도 소련공군과의 전력차는 7배이나 교환비는 루프트바페가 3배 높았다. 다만 동부전선의 경우 정말로 죽고 죽이는(만약 운이 좋게 착륙에 성공하거나 탈출에 성공하더라도 죽는다고 봐야되는) 곳이라 파일럿의 사망률이 높았다고 한다. 또한 파일럿들에게 있어서 탈출해도 뭘하든 일단 자신의 비행기를 잃으면 확실하게 죽는다는 부담감이 심했을 듯하다. 독일 에이스 조종사의 경우 상당히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저격수가 유명해지려면 적어도 저격으로 해치운 적의 숫자가 몇십, 몇백을 자랑하는 게 일반적인 반면에 이쪽은 5대만 잡으면 되니 상대적으로 숫자가 꽤 떨어지는데, 이 5대라는 숫자가 저격수에 비해서 전혀 쉬운 일이 아니다. 저격수의 살해수는 다수의 일반 보병과 약간의 '동업자'를 포함한 것으로 '동업자'의 비율은 다른 희생자에 비해서 절대 소수인 반면에[8] '에이스' 칭호를 받는 전투기 조종사는, 비록 전투기 조종사가 공군 내에서도 상당한 정예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자신과 동급 또는 그 이상의 훈련을 받은 '동업자'와의 전투에서 5대를 잡을 때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을 뜻하니 50:50 싸움을 5번 이기는 거라고 생각해 보면 상당히 대단한 것이다.[9] 게다가 좁은 좌석에서 3차원 기동을 하며 중력 압박을 온 몸으로 받고, 떨리고 흔들리는 기체를 조종하여 적기를 격추시키는건 절대 쉬운게 아니다. 그리고 탈출이 가능한 건 어디까지나 탈출을 안 하면 조종사가 직접 맞지 않더라도 거의 100% 죽기 때문에 마련된 장치일 뿐이다. 자신의 바로 뒤에 수백kg~수t 단위의 연료와 폭발물을 단 채로 적의 폭발물을 탄두로 가진 미사일이나 철갑+소이탄두의 기총 소사를 받는 상황이다. 현대 제트전투기들은 대개 사출식 좌석이지만 당시에는 엄청난 중력 가속도와 공기 마찰로 인한 대항력에 의해 불에 타들어가면서 산산조각이 나고 있는 고철덩어리 위에서 조종사가 직접 낙하산 하나 달랑 메고 탈출해야 했기에 탈출 성공률도 그다지 높지 않았다. 오히려 지상의 보병이야 말로 '동업자' 상대로 싸울 때는 즉사할 부위를 맞는 게 아니라면 후방으로 후송돼서 살 수 있다는 기대라도 있지 조종사는 부상 입은 채로 탈출한다면 구조될 때까지 살아남는다고 보장도 못한다. 부상이 없더라도 적진 한 가운데에 떨어진다면 구조도 못 한다. 그리고 적국의 민간인들도 금방 적군임을 알아채고 린치를 가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바다에 떨어진다면 생존 확률은 당연히 더 떨어진다.

현대전에서 본인 전투기에 적는 격추수는 자신이 격추되면 0대로 돌아온다는 소리가 있는데 농담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때의 루프트바페의 네임드 에이스 조종사들도 다들 두어번 격추당한 경험이 있었다.

베트남 항공전에서 유명해진 미 해군의 랜디 '듀크' 커닝햄이 5기 격추해 에이스단 날 SAM에 얻어맞고 격추당했지만 여전히 에이스로 기록된다.[10] 베트남 항공전 최고 킬수 기록은 월맹군의 응우옌반꼭의 9기, 동 시기 미군의 전설적인 파일럿 로빈 올즈 대령의 격추수는 4기로 에이스 조종사 기준에도 미달하는 수준이지만 실제로는 자기가 적 전투기를 다 제압한 뒤 자기 윙맨에게 미사일 발사를 시켰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베트남 항공전 최강자라고 할 수 있다. 미군은 에이스 달면 후방으로 빠지는데 올즈 대령은 베트남에 계속 남아서 싸우고 싶어 킬수를 조작해 줄였다. 공식적으로는 응우옌반꼭의 킬수가 1위인게 맞다. 현재 제트기 에이스 최고 킬수는 17기 기록을 갖고 있는 이스라엘의 지오라 호크아이 엡스타인(전역 후 엘 알 항공사에서 기장 근무)이다.

간혹 가다가 자기가 올린 전공을 동료에게 넘기고 신고하지 않는다거나(독일의 발터 크루핀스키 소령이나 미해군의 데이비드 맥켐벨 중령) 일부러 출격회수와 격추기록을 누락시켜서 더많은 공중전을 하고자 했다는 인물도 존재한다.(미군의 도널드 브레이크슬리 대령)

일부 에이스들의 경우 격추 횟수에 소수점 이하의 수치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건 적기를 격추는 했는데 부서지기만 하고 살아서 도망쳤다는 뜻(...)은 아니고, 분명 격추를 시켰으나 혼란한 전장 상황 때문에 누가 격추시켰는지 정확히 알 수 없을 때는 같은 편대원들에게 격추 수를 나눠서 계산했다. 가령 아군의 10명의 조종사가 적기를 5기 격추시켰는데, 이걸 각각 누가 격추시켰는지 조사를 해도 알 수가 없는 경우 각 조종사에게 0.5기의 격추수를 배분하는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세워진 기록들은 현대에 다시 깨지기는 많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 현대의 전술기들은 극도로 복잡해지고 값이 비싸졌으며 조종사들 역시 고도로 전문화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눈이 좋아도 현대의 레이더보다 멀리, 정확하게 볼 순 없으며 아무리 공중 기동술이 뛰어나도 눈으로 보이지도 않는 거리에서 레이더를 비롯한 각종 센서로 진행되는 전투에 조종술이 도움이 될 일은 거의 없다.[11] 현대 공중전은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에리히 하르트만, 게르하르트 바르크호른, 군터 랄급 슈퍼 에이스 조종사만으로 이루어져 있어도 북한 공군은 슈퍼 에이스급의 조종 실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쓸려나간다. 더군다나 현대 전투기가 대전기마냥 몇 개월, 빠르면 몇 주 만에 뚝딱 생산해낼 수 있는 물건도 아니고 말이다. 다만 무인기가 상용화될 경우 좀더 값싸게 만든 다수의 무인기를 1~2기의 유인기가 지휘하는 식으로 편대 구성이 개편될 수도 있는데 이때 무인기를 격추 기록에 넣는다면 비슷한 기록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3. 세계대전사에 등재된 에이스

3.1. 제1차 세계 대전

파일:external/pds22.egloos.com/a0017462_4fce4b75a5ebb.jpg

3.2. 제2차 세계 대전

3.2.1. 독일

파일:아돌프 갈란트 탑승기.jpg
파일:히틀러를 만나는 독일 공군 에이스들.jpg
아돌프 갈란트Bf 109 E-4
파일:Bf109F-4_Gelbe14_Ma_JG27_kl96.jpg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의 Bf 109 F-4/Trop "황색 14번" 히틀러를 만나는 루프트바페 조종사들과 에이스들
세계 121위까지 독일 에이스들밖에 없을 정도니 말 다했다. 자세한 것은 제2차 세계 대전/에이스 파일럿 문서 참조.

3.2.2. 핀란드

3.2.3. 미국

파일:b6df7ea45c09221755f88e784af1706e.jpg

3.2.4. 소련

파일:external/lend-lease.airforce.ru/kuznetsov1.jpg
P-40과 쿠즈네초프, 그의 동료들.
미국제 P-39P-40을 타고 독일군 비행기 23기를 격추시킨 니콜라이 표도로비치 쿠즈네초프

3.2.5. 일본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kagi_-_A5M_fighter.jpg

3.2.6. 영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Ray_Flying_Legends_2005-1.jpg

3.2.7. 중화민국

3.2.8. 스페인

3.2.9. 기타

3.3. 냉전

2차 대전 이후 제트기 시대의 에이스 최다 격추기록은 이스라엘의 전투조종사가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 공군은 중동전에서 상당수의 제트기 에이스들을 배출했지만, 파일럿 보호 차원에서 신원이나 전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왔다.

3.3.1. 축구전쟁

3.3.2. 베트남 전쟁

파일:4516738.jpg

3.3.3. 중동전쟁

3.3.4. 이란-이라크 전쟁

3.3.5. 제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3.3.6. 오가덴 전쟁

3.4. 현대전

지대공병기의 발전으로 인해[26] 전투기 간 교전이 드물어졌다. 대신 자폭 무인기의 등장으로 인해 무인기 격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4. 에이스 캐릭터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비행 슈팅 게임은 특성상 현실에서의 에이스의 기준인 다섯 대 격추는 거뜬히 넘어가는 인물이 대다수다. 따라서 특별히 뛰어나단 묘사나 언급이 있는 경우를 서술한다.[비행슈팅]


[1] 2차 대전 당시 루프트바페의 특징 중 하나이기도 했는데, 사병들도 자격만 충족시킨다면 조종사에 지원할 수 있었다. 진짜로 새내기 이등병에게 이런 걸 시킬 리는 없고 유겐트 단원 중 비행사 후보생으로 선발되었다가 실전 배치를 받으려면 적어도 2~3년은 걸렸고, 그 사이에 상병~하사급으로 진급해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경력 있는 부사관급 사병들 중 자격을 충족시킬 만한 자에 한하여 지휘관이 추천하는 방식으로 조종사로 선발될 수 있었다. 실제로 당시 독일군의 에이스 파일럿들의 목록을 보면 중사~상사급 인원이 꽤 많았다. 이들은 같은 계급의 다른 사병들에 비해 당연히 좋은 대우를 받았으며 비조종병과의 장교들에 비교해도 끝발에서 크게 밀리지 않았다. 반면, 영국 공군이나 미국 육군항공대의 조종사 인력은 원칙적으로 장교 계급이어야 했으나 조종사 수가 많이 모자랐던 영국에서는 사병들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2] 조종사에게 원칙적으로 장교 계급을 부여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데, 사병 신분인 정비 인력보다 조종사의 계급이 낮으면 기체에 대한 요구사항 등을 전달하기 어렵게 되고 조종사의 임무 수행에도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비 인력의 영역과 전문성에 대한 대우와는 별개로 조종사가 반드시 높은 계급이어야 하는 것. 그리고 조종사 인력 수급에 큰 차질이 생기자 신병들에게 조종간을 맡겼던 일본 제국군이 전쟁 말기에 무슨 꼴이 났는지가 이를 대변해준다.[3] 항공기 조종사의 총원은 독일이 더 많긴 했다. 항공기 조종사가 전부 전투기 조종사인 건 아니고, 어쨌든 미군과 영국군을 합치면 독일군보다 많아지기는 하는데 영국이 19만 명, 미국이 24만 명인데 독일은 34만 명이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되는게 미국은 상당수의 조종사들을 태평양 전선에도 배치하고 있었고 독일은 동유럽에 한정되어 있었다는 점이다.[4] 미국은 성공적인 조종사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서 전쟁 중에 대량의 실력있는 조종사들을 배출했고, 실제로 1943년 후반에 조종사 자격을 딴 인력들은 1945년 종전때까지 거의 전투에 투입되지 않았다. 그만큼 인력에 여유가 있었다는 얘기다.[5] 강제송환은 아니고 조종사 본인에게 후방에 배치될 수 있는 선택권을 준 것. 대부분의 경우 후방 근무를 선택했지만 실전에 환장한 전투광들도 있었다.[6] 당시 소련제 비행기들은 목재로 만들어져 있었던지라 MG151-20 mm HE탄두 앞에 제로센 전투기처럼 쉽게 불타올랐다. 후반에 개발/배치된 기체들은 그나마 덜하기는 해도 여전히 독일 공군의 격추셔틀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고 이는 영미군에 의해 독일 공군의 등뼈가 꺽일때까지도 변함이 없었다.[7] 당장 격추수 1위인 하르트만의 격추기록 352대중 345대가 소련 공군을 상대로 세운 기록이고 2위인 바르크호른은 301대 전부가 소련 공군을 상대로 세운 기록이다.[8] 그래도 꽤 비율을 차지하긴 하는게, 저격수의 주 임무 중에는 자신의 동업자를 처리하는 '역저격'이 있어서 동업자와 싸울 기회가 나름 존재한다. 외부 지원이 없이 보병만으로 상대한다는 전제하에서는 저격수를 처리하기 가장 좋은건 똑같은 '동업자'니까. 사실 저격수를 상대하기에 가장 좋은건 동업자가 아니라 포병, 공중 폭격, 20mm 이상의 기관포나 박격포, 시가전이라면 대전차 로켓이나 대전차 미사일 등의 중화기 지원을 불러 저격수를 매복했을 거라 보이는 지역이나 건물을 통체로 쓸어버리는 거다. 그러나 실제론 이러한 화력으로 쓸어버릴 수 없는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고 이런 대응은 시간이 걸리기에 결국 적을 관측하는 눈이 되어 줄 수도 있는 저격수의 엄호는 필요할 수 밖에 없다. 카를로스 헤스콕 같이 역저격이 저격 회수의 절반인 괴수도 있지만 이건 저격수 전체로 봤을 때는 극소수.[9] 감이 잘 안 온다면 당장 롤 같은 게임에서 킬 골드도 경험치도 없이 5킬 0데스를 찍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에이스의 굉장함을 실감할 수 있다. 공중전 게임인 워 썬더 공중전 에서도 일반 플레이어 기준이면 1킬 1데스가 평균에서 약간 위이고, 한 게임에 3킬을 하면 정말 잘 되는 판이며 특히 프롭기 판에서 5킬 달성하는건 각 팀에서 한둘씩 겨우 보이는 빠요엔고수들 뿐인데다 이들도 매번 5킬 성공시키지는 못한다.[10] 다행히 커닝햄과 드리스콜은 무사히 구조되었다.[11] 물론 상황 판단이 빠른 조종사가 레이더의 특성을 역이용해 제대로 된 추적을 방해하는 기동이나, 미리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는 기동, 자신에게 날아오는 미사일을 회피하는 기동 등등에선 조종술이 의미가 있지만 이마저도 아예 레이더에 보이지도 않는 전투기가 편대를 맺고 탐지기/공격기 역할을 바꿔가며 시야 외 거리에서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도망치는 것 외엔 반격의 여지가 없다. 다만 이와 별개로 현대전에서도 근접 도그파이트는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훈련은 열심히 한다. 오히려 다 열심히 해서 문제.[12] 제1차 세계 대전 최강의 에이스이다. 항공기 전문가들의 시뮬레이팅 결과, 제2차 세계 대전에도 복무했을 시 격추 기록이 457대로 측정된다. 에이스 하르트만조차 뛰어넘었을 정도.[13] 실제로는 로이 브라운이라는 캐나다 비행사로 추정되었으나 현재는 대공 기관총 사수였던 세드릭 폽킨 하사로 추정된다.[14] 그가 자주 애용한 전술이 바로 붐앤줌이다.[15] 특이하게도 Bf 109 전투기가 아닌 Fw 190 전투기로 슈퍼에이스가 되었다.[16] 적군에 의한 피탄기록이 없다.[17] 영감님이라는 뜻이다. 당시 보잉턴의 나이가 다른 파일럿들에 비해 많은 편이었기 때문.[18] 베스트는 아카기와 히류, 클레이스는 카가와 히류[19] 최단기록 에이스 40시간 5기 격추[20] 다만 그가 지은 저서 대공의 사무라이는 과장되었다는 의혹이 있다.[21] 6기 격추 기록 보유[22] F-15 전투기로 달성한 세계 최초 격추 기록[23] 1970년에 격추되어 전사[24] 1986년에 격추되어 전사[25] MIM-23 호크 미사일을 탑재한 시험비행에서 첫 격추를 기록하기도 했다.[26] 예를 들어 F-15의 모든 전투손실은 오폭을 제외하면 전부 지대공병기에 의한 손실이었다.[비행슈팅] [28] 공교롭게도 미그기Su-57 격추는 전부 F-14로 격추시켰다.[비행슈팅] [비행슈팅] [31] 롱 캐스터: "그 말대로다 카운트. 여기 있는 녀석들은 모두 와이즈맨한테 배웠지. 다들 에이스급이라고."[32] 그런데 이 게임의 아군 인공지능이 워낙 형편없다보니 플레이어에게 잘 체감되지 않으며, 스토리상으로도 8기 가지고도 5기인 솔 편대에게 밀리는 전투력이다.[33]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독일 공군기 6대를 잡았다고 언급한다.[비행슈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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