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cd0000><colcolor=#ffd700> 보리스 페오크티스토비치 사포노프 Бори́с Феокти́стович Сафо́нов Boris Feoktistovich Safonov | |
출생 | 1915년 8월 26일 |
러시아 제국 툴라현 플랍스크 | |
사망 | 1942년 5월 30일 (향년 26세) |
소련 러시아 SFSR 무르만스크주 바렌츠해 근처 | |
복무 | 소련 공군 → 소련 해군 항공대 |
1933 ~ 1942년 | |
최종 계급 | 중령 |
주요 참전 | 겨울전쟁 독소전쟁 |
주요 서훈 | 소비에트 연방 영웅 (2회) 레닌훈장 적기훈장 (3회) 수훈비행십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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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소전쟁에서 활약했던 소련군 에이스 조종사. 총 킬수는 소련군 자료에 의하면 17킬이고, 영국 공군의 자료에 의하면 10킬이다. 다만, 그 숫자가 어찌되었든 대부분의 킬을 독소전 개전 당시에는 구형에 속했던 소련군 기체인 I-16으로 이룩했다는 게 특이점이다.독소전 당시 최초로 소비에트 연방 영웅 훈장을 받은 소련 공군의 파일럿이다.
2. 생애
농부 집안에서 태어나 정규 교육 과정을 이수했다.보리스 사포노프의 I-16기체.
인간적인 면에서는 대인배로 통했다고 한다. 적기를 공격할 때, 일부러 반쯤 손상시키고 그를 따르는 부하들에게 기회를 주기도 했으며[4], 부하가 제대로 격추시키지 못한 폭격기를(데미지를 입었지만 비행은 가능했다.) 마무리 하고 그 킬을 부하에게 미뤄주는 등 그야말로 대인배였던 비행 단장이었다고 한다.
주로 사용한 전법은 역시나 일격일탈 전법. 대숙청 이후 탈탈 털리고 있었던 소련군 중에서는 찾기 힘들었던 개념가였던 셈이다. 바로 윗 문단에서도 나오듯이 선회가 빠르고 저속 기동성이 좋았던 I-16을 몰면서도 일격일탈 전술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그 당시 소련군 조종사들의 훈련 정도가 높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매우 현명한 판단으로 보인다.
영국이 렌드리스를 통해 호커 허리케인을 가져다 주었는데, 이 양반의 부대가 그걸 장비하게 되어 직접적으로 영국군 조종사들과 면담할 기회가 있어 서로 허리케인과 I-153 차이카를 소개해 주었다. 이때 영국군 조종사들도 작전을 같이 수행해 주었는데, 영국측에서도 평가는 좋았다고 한다. 다만, 허리케인 기체 자체는 소련의 혹독한 환경에서 운영하기 어려웠다. 일단 중고 기체들이었고, 에어 필터가 장착되어 있지 않았던지라 해빙기에 활주로 환경(엄청난 먼지) 때문에 엔진이 제대로 작동을 못 했다. 어쨌든 이를 고쳐 쓰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사포노프는 여기다 소련제 20 mm ShVAK과 지상공격용 로켓을 장착하자는 제안을 하게 되고, 이렇게 개수된 허리케인 전투기들은 영국군이 아프리카에서 써먹었던 것처럼 지상공격기로 활약했다.
이후 미국에서 P-40E 키티호크를 제공받아 기종 전환을 하게 되는데, 허리케인에 비해 더 좋은 평가를 내리지는 않았다. 역시 이 또한 동장군 기후 하에서 운용하는 게 힘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강력한 화력과 내구성, 품질 좋은 무선 장비는 호평했다고 한다. 게다가 엔진 신뢰도가 이 동네에서는 별로 좋지 않아서, "글라이더의 기적"이라는 비꼼을 받기도 했다.
어쨌든 허리케인보다 우수한 성능 덕에 이 기체로 기종 전환을 했는데, 이것이 복선이 돼버린다. 1942년 5월 30일에 최후의 비행을 하게 되었는데, 일단 편대장이 기체 트러블 때문에 먼저 귀환하게 되었고, 사포노프 자신도 2대나 격추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결국 얼어붙은 동토의 강으로 추락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독일군 전투기에 당했다는 설과, 슈투카의 후방기총에 당했다는 설, 그리고 엔진 트러블이였다는 설이 존재한다. 대인배치고는 어이없는 최후를 당한 셈이다.
그를 추모하는 기념 우표
어찌되었든 이 사람에게 지도받았던 해군 조종사들은 정예급의 실력을 가지게 되었고, 영웅 칭호를 받는 조종사도 여럿 배출되었다.
[1]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로 보일지도 모르나 애초에 러시아는 혁명이나 농업집단화 이전에도 인구의 절대다수가 농부인 농업국가였고 농부 집안에서 태어나 높은 계급의 군인이 되는 경우도 꽤 많았다. 소련 국방장관을 역임한 안드레이 그레치코도 농부 집안 출신이다.[2] 우크라이나 출신 여성 비행사로 전후까지 살아남았다. 소비에트 연방 영웅 수훈자에 계급도 대령까지 올랐다.[3] 대숙청 이후에 능력 없는 장교들이 지휘관이 되는 게 보통이었는데, 이 사람의 경우는 기존에도 지도 경험이 있었고, 비행 경험도 있었던 특이한 케이스가 아닌가 싶다.[4] 당연히 킬은 부하에게 미뤄주었다.